박양명 의료경제팀 기자
한의사와 의사는 의료법에서 '의료인'으로 묶여있다. 의료인은 국민 보건 향상을 이루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이 있다는 공통된 역할을 한다. 다만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거시적인 개념은 임상 현장에서 의사와 한의사의 업무 범위를 모두 담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한의사는 의료법에서 허용하고 있지 않는 무면허 의료 행위를 했다며 의료법 위반 형태로 법적 다툼에 심심치 않게 휘말리고 있다. 한의사 한 명에 대한 법적 다툼은 의료계와 한의계의 싸움으로 번진다.
사실 업무범위를 둘러싼 의사와 한의사의 다툼은 식상할 정도로 오래됐는데, 최근 법원에서 나오는 판단들이 예사롭지 않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판결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 현대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초음파, 뇌파계,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한의사가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는 결국 한의사가 이들 의료기기를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법원 판결의 흐름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단이 결정적이다. 당시 대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를 사용해도 무면허 의료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한의사가 초음파를 사용하는 게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해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는 아니며 건강보험 급여 대상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법원 판단들이 연이어 나오면서 의료계와 한의계의 대립은 점점 더 심화되는 모습이다. 법원 판단이 나올 때마다, 또는 나오기 전부터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는 서로 반대되는 입장문을 발표하며 대립하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이 이렇다 보니 이제 시선은 행정부로 쏠린다. 의사와 한의사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일각에서는 대안으로 의료일원화를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한의계에서도 찬반 논쟁이 심한 사안인 만큼 합의점을 찾기란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복지부는 이미 의료일원화를 추진한 바 있다. 복지부는 한의협, 의협, 대한한의학회, 대한의학회와 협의체를 구성해 의료일원화에 대한 합의문까지 만들었다.
합의문에는 ▲의료와 한방의료 교육과정 통합과 이에 따른 면허제도 통합 의료일원화를 2030년까지 시행 ▲의협, 한의협, 대한의학회, 대한한의학회와 관계기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의료일원화 통합을 위한 발전위원회(이하 의료발전위원회) 구성 후 구체적인 로드맵 마련 ▲기존 면허자에 대한 해결 방안 논의 ▲의료발전위원회 의사 결정 방식은 의협 및 한의협의 합의에 따름 등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었다.
결론은 무산. 의료일원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타개하지 못했다. 최근 복지부의 움직임은 지금껏 보여줬던 것과는 달라 보인다. 의료계의 민감한 현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커도 거침없이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가 그렇고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도 마찬가지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는 PA 간호사 업무범위 설정도 하고 있다. 거침없는 복지부의 행보가 한의사와 의사의 해묵은 다툼 소재인 업무범위 설정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어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