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파브리병 치료제, 독일에선 환자들이 먼저 찾아"

발행날짜: 2019-09-06 06:00:55
  • 인터뷰 독일 크리스토프 바너·홍그루 교수

7월 세계 최초 경구용 파브리병 치료제 갈라폴드(성분명 미갈라스타트)가 국내 출시되면서 주사제만 있던 파브리병 시장에 새로운 치료 옵션이 생겼다.

갈라폴드는 순응변이(Amenable Mutation)를 가진 16세 이상 청소년 및 성인 파브리병 확진 환자에 사용된다. 먹는 형태의 치료제라는 장점을 통해 기존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방문해 주사제를 맞아야 했던 환자들의 불편함을 크게 개선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

특히 전세계적으로 24개국에서 800명 이상의 환자가 갈라폴드로 치료를 받을 정도로 주사제에서 경구제로의 처방 패턴 변화도 임상 현장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크리스토프 바너 교수와 국내 파브리병의 권위자로 꼽히는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홍그루 교수를 만나 갈라폴드 출시 전후의 치료 동향 변화와 해당 품목의 효용성 등에 대해 물었다.

왼쪽부터 홍그루 교수, 크리스토프 바너 교수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 드린다.

[Christoph Wanner]
현재 독일 뷔르츠 부르크 대학 병원의 신장내과 전문의이자 파브리 통합 치료 센터(FAZIT)의 총책임자로, 20년 전 파브리 클리닉을 설립한 후 독일 전역에서 파브리병 환자 320명을 진단 및 치료하고 있다.

[홍그루 교수]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전문의이다.

희귀질환인 파브리병은 다소 생소하다. 어떤 질환이며 대표적인 증상은 무엇인가?

[Christoph Wanner]
파브리병은 '신장, 심장, 뇌'를 중심으로 해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부분 손과 발의 통증을 동반하며, 초기 파브리병의 경우 설사 등과 같은 위장관계 문제들과 피부에 나타나는 증상들로 발현되고, 후기로 진행될수록 장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장기에 미치는 주요한 영향으로는 신장의 경우 알부민뇨와 신장 기능 저하, 심장은 심근경색, 돌연사, 심부전, 뇌에는 뇌졸중 등이 있다.

발병 원인은 무엇인가?

[Christoph Wanner] 파브리병은 우리 몸에서 '알파-갈락토시다제'라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의 변이로 인해 효소 활성이 저하되거나 효소가 결핍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알파-갈락토시다제가 분해해야 하는 당지질이 분해되지 못하고 모든 장기와 조직 내에 쌓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홍그루 교수] 쉽게 말해 우리 몸의 당지질을 분해하는 '알파-갈락토시다제'라는 효소 자체가 부족해 세포를 구성하는 필수물질인 '라이소좀'에 당지질이 쌓여 발생하는 것이다. 전형적 파브리병과 같이 신체 전반에 당지질이 쌓이는 경우가 있고, 심장, 신장, 뇌 등의 부위에 선택적으로 쌓이는 경우도 있어 증상에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Christoph Wanner] '파브리병'이라는 표현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병'이라는 표현을 다른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결국엔 당지질적인 대사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니 '대사성 이상'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홍그루 교수] 전적으로 바너 교수의 의견에 공감하는 바이다. 병이라는 표현 보다는 파브리 대사성 이상으로 인해 신장 기능이 떨어졌다면 '신부전증', 심장에 이상이 생긴다면 '심근경증' 과 같이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심장과 신장 모두에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면 각 부위별 진단 방법은?

[Christoph Wanner] 파브리병의 진단은 하나의 진단 패키지를 통해 이뤄진다. 환자가 심장 관련 증상으로 전문의를 찾아왔더라도 항상 소변검사를 해야 하며, 신체 전체의 스펙트럼을 관찰해야 한다. 본인과 같은 신장 전문의도 심장 초음파 이미지를 봐야 하고, 신장 전문의인 홍그루 교수님에게는 크레아티닌, 사구체 여과율 등 신장 기능에 대한 테스트가 필요하다. 이처럼 파브리병의 진단은 하나의 패키지로 진행되며, 신장 전문의나 심장 전문의뿐 아니라 내과 전문의 등 파브리병을 진단하기 위한 하나의 팀이 필요하다.

[홍그루 교수] 진단 방법은 동일하다. 알파-갈락토시다제라는 효소 수치를 확인하고 유전자 변이를 검사한다. 파브리병으로 최종 진단을 내리기까지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심장이 답답하고 숨이 차서 왔다고 하더라도 심장만 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장, 뇌, 피부 등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팀을 이뤄 환자를 진단하고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이 독일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졌지만, 국내의 경우 아직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환자 진단율이나 유병률은 어떠한가?

[홍그루 교수] 파브리병 유병률은 남성에서 4만 명 당 한 명, 전체 인구에서 11만 7천 명 당 한 명 정도의 수치로 발병하며, 국내에서는 약 150명 정도의 환자가 진단을 받은 상태이고 추정 환자 수는 400명 정도로 예상한다. 아직 진단받지 못한 환자들이 있을 가능성이 크고, 증상이 발현됐지만 질환에 대한 의심을 하지 못해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도 상당하다. 국내의 경우 진단율이 상당히 낮은 편인데, 이는 진단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이다. 독일과 일본을 비교해봐도, 진단 시스템의 체계화가 이뤄져 많은 진단이 내려지는 독일에 비해 일본은 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천명 정도만 진단을 받았다. 이러한 차이는 인종적인 요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진단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Christoph Wanner] 독일의 경우 전체 인구 8천만 명 중에서 1천 2백 명 정도가 진단을 받은 상태이고, 2천 명 이상의 환자 수가 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또한, 파브리병 환자 중에서도 전형적인 파브리병, 비전형적인 파브리병, 유전자다형현상을 띄는 파브리병 환자들이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앞으로 파브리병의 분류 체계도 발전할 것으로 전망한다.

흔히 희귀질환이라 하면 불치병을 떠올리기 쉽다.

[홍그루 교수] 파브리병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당뇨병에 비유를 들자면, 당뇨병이 신체 내 대사를 조절하는 인슐린의 결핍으로 인해 당이 축적돼 발생하며 인슐린 투여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인 것처럼, 파브리병 역시 당지질을 분해하는 효소의 결핍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제를 사용한다면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또한 다른 유전적 희귀 질환과 다르게 지속적인 조절과 합병증 발생 예방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충분히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며, 이러한 인식으로 변화를 이끄는 것이 본 인터뷰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진단이 늦어질수록 완치율이나 치료 결과가 영향을 받나?

[홍그루 교수] 가족 스크리닝 등을 통해 조기 진단을 받고 심장이나 신장에 이상이 없는 경미한 상태에서 치료가 진행된다면 치료 예후가 좋고 합병증 예방이 용이하지만, 파브리병이 많이 진행돼 심장에 당지질이 많이 쌓이게 된다면 치료로 완전히 정상으로 되돌리기는 어렵고 적절한 치료를 통해 더는 병이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다.

[Christoph Wanner] 신장의 사구체에는 백만여 개의 필터가 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화되고 섬유화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40세 정도의 환자가 자신의 여과 필터의 절반 정도의 기능을 소실한 상태라고 하면, 새로운 사구체 필터를 만들어 줄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한 치료적 조치가 제한적이다. 파브리병 치료에 있어 신장내과적 접근은 환자의 몸에서 알부민뇨로 빠져나가는 알부민 소실을 최소화하고, 사구체 필터의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세워 관리하는 것이다. 치료가 늦을수록 목표 달성이 어렵고, 사실상 섬유화까지 진행된 상태는 가역적으로 되돌리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에 문제가 더 크다.

치료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으며, 각 치료법의 특징과 적합한 환자는?

[홍그루 교수] 국내에서는 20여 년간 부족한 효소를 정맥을 통해 주기적으로 주사하는 효소대체요법(Enzyme Replacement Treatment, ERT) 이 진행 돼 왔다. 효소대체요법은 2주에 한 번 정맥으로 효소를 직접 공급해 내부에서 신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치료법이다. 최근 새로운 치료 옵션이 국내에 출시됐다. 지금까지 주사제만 있었다면 먹는 형태의 파브리병 치료제이다. 순응변이를 가진 파브리병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 쉽게 당뇨병 치료제를 생각하면 된다. 체내에 직접 인슐린을 주입하는 것 외에도 인슐린이 잘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돕는 치료제와 비슷하다. 경구용 파브리병 치료제는 결핍된 효소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서 결핍된 알파-갈락토시다제 A 효소와 결합해 효소의 활성화를 복원시키고 축적된 당지질을 분해한다. 2주에 한 번 내원해 수시간 동안 주사를 맞는다는 것은 환자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경구용 치료제는 환자 편의성을 높여 파브리병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현재 파브리병의 치료 가이드라인이 확립돼 있는가?

[Christoph Wanner]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립된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이 있다.

[홍그루 교수]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이를 국내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가이드라인 적용을 위해서는 보험 급여와 같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며, 워낙 고가의 치료제이기 때문에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하지만, 독일, 호주 등과 다르게 국내에서는 파브리병으로 인해 심장, 신장, 간과 같은 표적 장기에 확연히 문제가 있는 환자들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증상이 미미한 경우에는 환자의 병이 진행될 것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갈라폴드도 1차가 아닌 2차 약제로 보험급여가 돼 있다. 환자마다 효소 활성도나 장기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치료법이 다양해야하고 초기부터 치료해 합병증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근 국가 차원에서 해당 환자에게 약제 혜택을 확대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독일에서도 경구제가 1차 약제 또는 2차 약제로 쓰이고 있는가?

[Christoph Wanner] 독일의 경우 1차 또는 2차 약제의 별도 구분이 없으며, 순응 변이를 가진 환자들은 바로 갈라폴드를 쓸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주사제에서 경구제로 전환하는 비율은?

[Christoph Wanner] 독일에서 갈라폴드가 출시된지 3년 정도 됐다. 이제는 환자들이 경구용 치료제를 처방 받을 수 있는 지 물어본다. 주사에 대한 부담으로 본인이 기회가 된다면 경구용 치료제로 바꾸고 싶어한다. 특히, 아이들은 주사에 대한 공포가 있고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2주마다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기존 환자 중 순응변이가 있는 환자들은 대다수 경구용 치료제로 전환됐다. 새로운 환자 또한 순응 변이를 가지고 있으면 대부분 경구용 치료제인 갈라폴드로 치료를 시작한다.

경구용 치료제가 편의성 측면 외에도 효과와 안전성 면에서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홍그루 교수]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경구용 치료제의 효과에 대해 확인됐다. 환자 스스로 복용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큰 이점이다. 또, 핵심적으로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합병증 예방 효과 측면이다. 당뇨병 치료제가 혈당 조절이 잘되고, 고혈압 치료제가 혈압 조절이 용이한 것만으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 예방 효과가 입증돼야 좋은 치료제인 것처럼, 파브리병 치료제 역시 합병증 예방 효과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파브리병의 경우 환자 수가 적어서 효과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현재로서는 입증된 연구가 적어 20년동안 써온 약들과 비교해서 무엇이 더 좋다고 제안하기는 어렵고,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Christoph Wanner] 2주 간격으로 부족한 효소를 정맥주사로 공급하는 것의 단점 중 하나가 상당히 간헐적인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약제의 반감기 때문이다. 주사제 치료는 환자마다 효과가 지속되는 기간에 차이가 있는데, 실제 환자 중 10일이 지나면 '힘이 딸린다'는 경우가 있었다. 주사제 투여에는 2주라는 정해진 주기가 있기 때문에 4일을 기다려야 한다. 반면 경구용 치료제는 2일에 한번 복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효과가 지속적이고 휴대와 복용이 간편하다.

[홍그루 교수] 주사제의 문제점은 지속 기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환자마다 효과가 지속되는 기간이 다른데 2주 간격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고, 이 부분에서는 경구용 치료제가 확실히 유리한 면이 있다. 현재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반감기를 늘린 주사제가 개발되고 있다.

국내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 제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홍그루 교수] 현재 국내 심장내과, 신장내과, 소아청소년과, 유전학과, 신경과 등 전문의가 팀을 이뤄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파브리병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해 학회 차원에서 진행한 캠페인이 있는가?

[Christoph Wanner] 신장내과, 심장내과, 안과, 신경계학회에서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해당 과가 파브리병 진단을 해낼 수 있는 과였기에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심장내과는 심근병증이 있는지 스크리닝하고 안과는 와상각막을, 신경과는 조기에 뇌졸중이 생기는 경우들, 신장내과의 경우 알부민뇨를 체크하면 진단이 가능하므로 다른 과에 비해 진단이 용이하다. 알부민뇨의 경우 원인을 찾아내려 하다 보면 파브리병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류마티스내과, 피부과, 호흡기내과 등에서도 환자들에 대한 선별검사를 진행했지만, 진단에 어려움이 있어 캠페인의 효과가 미미했다.

국내·외 파브리병 치료 환경의 개선을 위해 제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Christoph Wanner] 파브리병은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추적과 관찰이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을 위한 한가지 조언을 덧붙이자면, 진료과 구분 없이 파브리병에 관심을 가진 전문의가 레퍼런스 센터를 설립할 것을 제언하고 싶다. 이미 아산병원에 레퍼런스 센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와 같은 센터가 3-4개 정도 세워진다면 국내 파브리병 치료 환경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홍그루 교수] 파브리병 치료는 조기 진단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파브리병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사례가 늘면서 스크리닝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실제로 진단율도 많이 높아지고 있다. 본 인터뷰와 같은 기회를 통해 파브리병에 대한 인식 변화를 도모해 조기 진단율을 높이고, 파브리병에 관해 관심을 가진 전문의들이 전공을 구분하지 말고 하나의 팀으로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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