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레지던트는 싫어요…직접 다 해주세요!"

발행날짜: 2012-09-25 07:00:19
  • 기획전공의 시술 거부 다반사 "수련시키기 너무 힘들다"

#B대학병원 K교수(산부인과)는 얼마 전 분만을 앞둔 산모가 분만실에 의대생은 물론 레지던트의 출입을 제한해 달라고 요구하자 크게 당황했다.

그렇지 않아도 분만건수가 줄어 전공의들에게 분만 현장을 접하게 해줄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가 거부하자 난감했다. 그가 거듭 환자를 설득한 결과 의대생을 제외하고 레지던트만 겨우 분만 현장에 참관시킬 수 있었다.

#S대학병원 J교수(정형외과)는 수술 전 환자가 '교수님이 수술하는 거죠?'라는 질문을 할 때마다 고민에 빠졌다.

값비싼 특진비까지 지불한 환자에게 수술 중 일부는 레지던트가 맡을 수 있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는 결국 수술 95% 이상을 자신이 직접하는 것을 택했다.

"내 몸은 소중하니까, 레지던트 진료 안돼"

이는 유명 대학병원 수련환경의 현주소다.

의료에 대한 환자들의 요구에 맞추려다보니 좋은 의사는 될 수 있지만, 전공의들에게는 인기없는 교수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게 교수들의 공통된 시각.

특히 병원에 대한 환자들의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의료사고가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후배 의사 특히 수련 중인 전공의들에게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해지고 있다.

후배 의료진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환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야하고, 의료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K교수는 "수술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직접 하는 편"이라면서 "몇년 전만해도 간단한 수술이나 수술 후 마무리작업은 레지던트에게 맡겼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직접 해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모 대학병원 교수가 수련의사와 함께 수술을 진행중이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대학병원에서 교육수련이사를 맡고 있는 J교수의 고민은 더욱 깊었다.

그는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위해 수술 중 일부를 맡겨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환자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 때문에 직접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환자에게는 좋은 의사는 될지 몰라도, 후배 의사들에게는 쫌생이 교수가 될 수 있다"면서 "교수가 수술 마무리까지 하고 나가면 전공의들은 수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과연 전공의들에게 최적의 수련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일까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S대학병원 P교수(외과)도 후배 의사를 양성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환자민원을 최소화하려다 보니 전공의들의 수련은 자연스럽게 뒷전이 됐다.

"후세 의술은 누가 이끄나"

문제는 미래의 의료.

이 같은 현상을 두고 교수들은 "당장 환자들은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지만, 그들의 자녀 등 다음 세대는 의료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과거에는 인턴시절 익혔던 술기를 최근 레지던트들은 2~3년차가 돼서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교수들의 설명이다.

교수들은 최근 펠로우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수련환경이 이러하다보니 레지던트 과정에서 술기를 충분히 익히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K대학병원 J교수(산부인과)는 "개인적으로 인턴 때 처음 아기를 받는 경험을 했지만 최근에는 레지던트 1년차도 직접 분만을 주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심한 경우 산과 전공을 하고도 분만 경험이 40여건이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카데바로 분만을 배우는 것과 실제 현장에 함께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면서 "카데바를 이용한 교육에서는 분만과정의 감동과 매순간 닥치는 위험의 순간을 대처하는 능력을 배우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S대학병원 K교수(혈관외과)는 "환자의 권리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피부봉합까지 교수가 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지나치면 곤란하다"면서 "의료는 철저히 도제교육이다. 선배 의사가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기술을 익혀야 하는데 그 기회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실력있는 의사를 배출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또한 산부인과학회 신정호 교수는 "환자들이 진료과정에서 레지던트를 배제하려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라면서 "자신은 최상의 진료를 받고, 후세들은 어떤 진료를 받아도 상관없다는 식의 사고는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현재 명의라고 하는 의사들도 과거 수련과정을 겪으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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