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공보의들 "군 훈련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발행날짜: 2012-01-02 05:29:43
  • 메디칼타임즈의 약속① "현장에서 만나겠습니다"

한 순간 날아든 포탄에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 북한이 쏜 170여발의 포탄은 민가와 보건지소를 가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포탄은 해병대 장병 2명과 민간인 2명을 희생시켰다. 포격 1년을 맞은 연평도 이야기다.

28일 연평도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를 만나기 위해 인천여객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평도 포격 후 있었던 이야기와 현지 상황 등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2011년 11월 23일은 연평도에 포격이 있은 지 1년이 되는 때. 곧이어 12월 19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만큼 연평도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선박에 오르니 연평도로 향하는 해병대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쾌속정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장례식에 맞춰 김정일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북한과 인접하고 있는 연평도로 간다는 게 새삼 실감나기 시작했다.

3시간을 달려서야 소연평도를 거쳐 대연평도에 도착했다. 그사이 기상이 악화돼 차가운 비가 질척하게 내리고 있었다. 마중을 나온 김남일 공보의의 차를 타고 이곳에서 하나밖에 없는 보건지소로 향했다.

"무너진 건물은 대부분 복구…주민들 상처는 여전"

차창 밖으로 비친 연평도 주민들은 평온함을 잃지 않은 듯 의외로 차분한 모습이었다. 5분 남짓 걸려 보건지소에 도착하자 앞에 위치한 대피용 벙커와 지소 뒷편의 군부대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연평도의 마을 주민은 1900여명. 약국을 포함해 의료기관이 전무한 이곳에서 응급상황시 주민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이곳 보건지소가 유일하다.

한마디로 보건지소가 연평도 주민의 건강을 모두 책임지고 있는 셈. 보건지소라고 해봤자 진료 공간은 1층 4개 방이 진료 공간의 전부다. 인력 역시 공보의 4명과 간호사 2명 등 총 7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일반의·전문의·치과·한방 공보의 이들 4명은 올해 4월 연평도로 발령을 받았다. 직접 포격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포격이 남긴 흔적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발령 당시 보건지소에는 포격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김남일 공보의는 "모든 유리창이 깨져있고, 벽과 천장, 기자재에 파편이 박혀있어 참혹한 광경이었다. 포탄이 터진 상태 그대로 복구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6월 말까지 민박집에서 생활하며 근처 노인정에서 진료를 봤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1차 포격 이후 마을 주민이 대피한 상태에서 2차 포격이 이어졌다. 2차 포격 때 포탄 중 일부가 보건지소에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인명 피해는 없었다.

현재 피해를 입은 마을 건물은 대부분 복구된 상태. 하지만 주민들의 마음 속 상처는 아직도 완쾌되지 않았다.

큰 소리에 민감히 반응하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보건지소를 찾고 있다.

공보의들은 "포격 사건 이후 불면증과 초조, 불안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점차 줄고는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서 "군부대 훈련 때 나오는 사이렌 소리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주민들도 꽤 있다"고 전했다.

연평도 건물 외관은 복구된 셈이지만 마을 주민들의 마음 속 여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년차 동기인 이들 공보의들은 연평도에서 근무하며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좌로부터) 권훈·김남일·박찬·이재호 공보의.
"근무 환경보다 외로움과 싸우는 게 힘들다"

공보의들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급작스런 훈련 사이렌 소리에 지하 벙커로 숨는 일이 다반사. 포격 훈련 때는 창문이 흔들거린다.

보안 상 훈련 일정을 미리 알리지 않기 때문에 급작스럽게 마을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는 가슴이 철렁하기 일쑤다.

업무도 만만치 않다. 내과 쪽 공보들은 하루 평균 적게는 40명에서 많게는 70여명의 환자를 보고 있다.

1900여명이나 되는 마을 주민들을 책임지고 있다보니 언제 긴급한 전화가 올지 모른다는 부담감도 있다.

공보의들은 "저녁 6시 이후 업무가 끝나도 11시까지는 줄곧 환자들의 호출 전화가 이어지기 마련"이라면서 "감기나 설사 등 가벼운 증상의 환자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싫은 내색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사실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연평도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오락거리라고 해봐야 노래방 정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낚시나 군부대 시설에서 테니스를 즐기기도 했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포격 훈련 때마다 대피 장소로 사용되는 방공호. 올해 6월 복구됐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나가지 못하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이들의 어깨에서 힘을 빠지게 한다.

김 공보의는 "10시 이후에는 슈퍼마켓도 모두 문을 닫아 적막한 상태가 된다"면서 "어쩔 땐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대연평도의 면적은 7㎢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연평도를 떠나기전 빠른 걸음으로 2시간 남짓 걸으니 한바퀴를 다 둘러볼 수 있었다.

단조로운 무늬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마다 남아있는 개들이 어업에 나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보의들이 말한 '적막하다'는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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