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다 간판 잃는다…병의원도 IP가 생명"(하)

김세원 변리사
발행날짜: 2026-06-15 05:00:00
  • [병원경영인사이트]
    김세원 블루핀 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상편에 이어-

2.상표권 보호의 공백 ─ 먼저 등록한 자가 임자다

두 번째 사각지대는 상표다. 우리나라 상표법은 사용주의가 아닌 등록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아무리 오래 사용해 온 병의원 명칭이라도, 동일·유사한 상표를 다른 사람이 먼저 출원·등록하면 그 권리는 등록인에게 돌아간다. 진료과목이 같거나 유사한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비슷비슷한 의료 브랜드가 난립하는 시장 환경에서, 선점한 자가 후발 사용자를 상대로 사용중지 통고나 손해배상을 압박하는 사례는 결코 드물지 않다.

현장에서 가장 흔히 마주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강남에서 십 년 가까이 자리잡은 어느 한방 클리닉 원장님이 어느 날 내용증명 한 통을 받는다. 발신인은 들어본 적도 없는 동명의 한의원으로, '귀하가 사용 중인 명칭은 본인이 이미 등록한 상표권을 침해하고 있으니, 지정된 기한 내에 간판·홈페이지·SNS·블로그 게시물 일체에서 해당 명칭을 제거하라'는 내용이다. 원장님은 황당하다. 분명히 본인이 먼저 쓰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록주의 원칙 앞에서 '먼저 썼다'는 사정만으로는 권리를 인정받기 어렵다. 결국 협상 테이블에 앉아 권리 양수 대가로 수천만 원을 지급하거나, 십 년 동안 쌓아 온 간판을 내려야 하는 양자택일이 강요된다.

성형외과·피부과 영역에서는 시술명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리프팅', '▲▲주사'와 같이 일견 일반명사 같아 보이는 시술명이라도 누군가 먼저 상표로 등록해 두면, 마케팅상 그 표현을 쓰는 모든 의원이 잠재적 침해자가 된다. 광고대행사가 만들어 준 시술 브랜드 명칭을 별다른 검토 없이 홈페이지·인스타그램에 그대로 노출했다가, 몇 달 뒤 경쟁 의원으로부터 경고장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분쟁이 시작되면 진료보다 분쟁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되고, 결국 협상금이라는 이름의 비용을 치르거나 브랜드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개원 초기에 수십만 원 단위의 출원료를 아끼다가 수천만 원, 수억 원의 손실로 되돌아오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더 위험한 케이스는 이른바 '상표 브로커'의 표적이 되는 경우다. 의료 전문 분야에서 잘 알려진 브랜드를 추적하다가, 등록이 비어 있는 명칭을 발견하면 무관한 제3자가 먼저 출원해 버린다. 정작 그 이름을 십 년간 키워 온 원장님은 뒤늦게 무효심판이나 사용 협상에 매달려야 하고, 그 사이 입소문의 흐름은 잠시간 끊긴다. 환자에게 '이름이 바뀌었다'라는 한 줄을 안내해야 하는 그 어색함은, 단순한 비용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상표는 진료의 부속물이 아니라 병의원의 신용 그 자체다. 환자가 다시 찾아오는 이유의 절반은 그 이름에 깃든 신뢰이며, 그 신뢰는 등록이라는 형식을 통해서만 온전히 보호된다. 출원 한 건의 비용은 통상 수십만 원, 등록까지 가도 백만 원 안팎이다. 십 년간 키운 간판값에 비하면 보험료라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3. 프랜차이즈형 병의원일수록 ─ 제도 세팅이 곧 기업가치

위 두 제도의 중요성은 1인 병의원보다 분점·네트워크·프랜차이즈 형태로 확장하는 병의원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가맹점이 늘어날수록 본점이 보유한 시술 기술과 운영 노하우는 핵심 자산이 되고, 통일된 브랜드는 사업의 동일성을 떠받치는 마지막 기둥이 된다. 직무발명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으면 본점이 개발한 기술이 가맹점 또는 퇴사자를 통해 어떻게 유출되더라도 막을 도리가 없고, 상표권이 정비돼 있지 않으면 가맹 계약 자체의 법적 토대가 흔들린다.

실제로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어느 네트워크형 비만 클리닉이 전국 12개 지점까지 확장한 시점에, 핵심 부원장 두 명이 동시에 퇴사해 인접 상권에 비슷한 콘셉트의 병원을 개원했다. 시술 프로토콜과 운영 매뉴얼이 그대로 옮겨졌지만, 본점에는 직무발명 보상규정도, 영업비밀 관리 규정도, 어떤 식의 권리 양도 약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한 비밀 유지 조치가 입증되지 않으니 부정경쟁방지법상의 보호도 받지 못했고, 특허 한 건 출원돼 있지 않으니 침해 주장도 불가능했다. 본점이 십 년에 걸쳐 다듬은 노하우가, 단지 '권리화돼 있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무방비하게 흘러나간 셈이다.

상표 측면의 실패 사례는 더 흔하다. 어느 치과 네트워크는 다섯 번째 가맹점을 모집하는 시점에야 본점 명칭이 타인에게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랴부랴 상표 양수 협상에 들어갔지만, 이미 사업 규모를 파악한 상대방은 등록 비용의 수백 배에 달하는 양도가를 요구했고, 결국 가맹 브랜드 전체를 새 이름으로 교체해야 했다. 이미 인쇄된 가맹점 간판·유니폼·홍보물·각종 디지털 자산이 일제히 폐기됐고, 그 손실은 단순 재제작 비용을 훌쩍 넘어 '브랜드 신뢰의 리셋'으로 이어졌다.

M&A 실사나 투자 유치 단계에서 가장 먼저 점검되는 항목 또한 '이 회사가 무엇을 권리로 가지고 있는가'이다. 직무발명 보상규정과 출원 이력, 등록 상표 포트폴리오 ─ 이 세 가지가 갖춰져 있는 병의원과 그렇지 않은 병의원의 평가액 차이는, 단순히 절세 효과를 합산한 것 이상이다. 권리는 그 자체로 회계장부에 잡히는 무형자산이며, 동시에 경쟁자가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는 진입장벽이기도 하다. 실사를 진행해 보면 의외로 많은 병의원이 본점 명의가 아닌 원장 개인 명의로 상표를 등록해 두고, 법인과의 사용 관계조차 문서화하지 않은 상태로 두고 있다. 매각 단계에 가서야 이 권리들을 법인 명의로 정리하려 하면, 양도소득세부터 가산세까지 적지 않은 부담이 따라온다. 제도는 곧 기업가치이며, 동시에 미래의 회수가능성이다.

원장님의 진료실에서 만들어진 모든 것은 그 자체로 가치다. 다만 그 가치는 권리라는 옷을 입었을 때 비로소 세상에 통한다. 직무발명과 상표, 이 두 벌의 옷을 부디 미루지 마시라.

관련기사

병·의원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