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①의약분업 시행 10년 개원가 지도 변화
|창간7주년기획| 의약분업 10년, 무엇이 바뀌었나#1. 사당역 13번 출구 앞 빌딩. 1층에는 약국이, 2층에 내과 산부인과가 3층에는 피부과 치과가 각각 들어섰다. 약국에는 큼지막하게 ‘처방조제전문약국’이라는 글귀가 붙었다. 이 건물에서 진료를 본 환자 대부분이 처방전을 들고 1층에 위치한 약국으로 직행하고 있었다.
의약분업 시행 10년. 개원시장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당장 의약분업 이후 개원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곧 이어 의료기관과 약국의 개원입지에 변화가 찾아왔다. 자연스럽게 의약사간의 관계도 크게 달라졌다. 메디칼타임즈는 의약분업 시행으로 개원시장이 어떻게 변화했으며 의·약·정 각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의약분업, 병원-약국간 거리를 좁혔다
(2) 의약분업, 의·약사 관계 변화시켰다
(3) 개원의가 말하는 의약분업 10년
#2. 양천구 신정동 B소아청소년과. 건물 2층에 소아청소년과와 약국이 함께 위치했다. 이들의 간격은 불과 1m,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약국이 있다.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받은 환자들이 이 약국에서 조제할 확률은 99.9%. 환자들의 동선을 최소화시키고 있었다.
#3. 서울대병원 앞 문전약국. 하나 건너 하나가 약국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본 환자들의 처방전을 받고 있다. 반면 이대 동대문병원이 위치했던 인근 약국들은 모두 사라졌다. 당시 병원 앞에 들어섰던 약국은 병원이 폐업함과 동시에 이전을 선택했다. 병원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더 이상 약국을 운영할 수 없어졌다는 판단에서다.
가까워진 병원-약국…담합 가능성↑
개원가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 의약분업 이전, 따로국밥이었던 병원과 약국이 의약분업 이후 필요충분조건에 의해 서로의 간에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의약분업 직후 대형병원 인근에 약국 개원이 급증한 데 이어 점차 의원급 의료기관 인근에도 약국들이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환자들의 동선을 최소화하고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층을 고집하던 약국은 병원을 쫓아 3~4층에 개국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즉, 10년 전 병원과 약국의 입지 조건 중 하나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면 최근에는 서로 가깝게 위치하는 게 결정적인 입지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의약분업 이후 처방전을 확보하기 위한 약사들의 활발한 이동의 결과다. 실제로 의약분업 이후 약사들은 병원의 처방전 없이는 약국 운영이 어려워짐에 따라 의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약사의 의사에 대한 의존도는 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신도시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약사들은 입지를 알아볼 때 병원이 몇 곳이 입점했는지 확인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와 반대로 메디컬빌딩 측에서 약사들에게 내과, 이비인후과 등 병원과 함께 입점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원은 “의약분업 시행 직후에는 대형병원 중심으로 병원과 약국의 짝짓기가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같은 현상은 의원급 의료기관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최근 들어서는 개원가에서도 의약사 짝짓기가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의약사간의 짝짓기는 그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지만 담합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의약분업의 폐해”라며 “이에 대한 정부의 실태조사가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의약분업 직후 개원 급증…한해 1000여곳씩 증가
또한 의약분업은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를 크게 증가시키면서 개원가의 지도를 바꿔놨다.
지난 2000년, 정부의 진찰료 인상은 자연스럽게 의사들을 개원시장으로 유입시켰고, 이는 개원시장을 뜨겁게 달구며 개원가에 과잉경쟁을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2000년도 대비 2001년도에 의원급 의료기관은 총 1654곳이나 증가했으며 2002년도 역시 2001년도 대비 1418곳 늘어나면서 개원러시 현상을 보였다.
반면 2000년 대비 2001년도 약 1176곳이 문을 닫았다. 병원과 접근성이 좋은 약국은 살아 남았지만 병원과 거리가 멀리 위치해 처방전을 받지 못하는 약국이 자연스럽게 도태된 것이다.
과거 한동네에 한 개 진료과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한 블록에도 동일한 진료과가 경쟁적으로 들어섰다.
실제로 사당동에는 도로 하나를 두고 맞은편에 내과와 피부과가 각각 개원했다. 심지어 경기도 안양에는 한 건물에 이비인후과, 내과, 소아과 등 유사한 진료과목이 모두 입점, 경쟁적으로 환자유치에 나섰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재정안정화 대책으로 인상됐던 진찰료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면서 개원을 선택했던 의사들이 다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대한개원의협의회 임구일 공보이사는 “의약분업 직후 1~2년간은 의사들에게 개원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재정안정화 대책으로 오히려 개원가의 목을 죄기 시작했다”며 “돈 먹는 공룡이 되고 있는 제도에 대하 실태조사를 실시, 개선방향을 찾아야한다”고 지적했다.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임금자 책임연구원은 “의약분업 이후 약국은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 병원 인근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며 “병원 인근의 약국은 생존하고 그 이외 동네약국은 문을 닫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 동네 위치했던 대형약국들이 대형병원 인근으로 이동했으며, 병원과 멀리 떨어진 곳에 개국했던 약사들은 약국을 접고 문전약국으로 유입되는 사례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