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병원의사협의회 마상혁 고문

개정 의료분쟁 조정법이 2027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12대 중과실의 판단 기준, 고위험 필수의료의 범위, 심의체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법을 먼저 통과시켜 놓고 뼈대를 뒤늦게 세우는 방식이니 순서가 뒤바뀌었다`.
필수의료 붕괴는 이 법의 시행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민일보 조사에 따르면 다음 달이면 비수도권 신생아중환자실(NICU)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동아대병원 두 명만 남는다. 2026년 상반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21.7%로 전 과목 최저치였다. 인제의대 남소현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학술지에서 소아 심장 수술 합병증으로 10억 원 배상 판결이 나온 뒤 소아외과 기피와 방어진료가 악순환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원인은 하나로 수렴한다. 낮은 수가와 사법 리스크다.
그러니 개정 의료분쟁 조정법이 더욱 필요하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형사특례로 필수의료의 사법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 자체는 정당하다.
그러나 지난 국회 공청회는 이 법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냈다.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교수는 중과실 유형을 법률로 확정한 방식이 오히려 예견 가능성을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황용남 수원고법 판사는 중과실 개념을 하위법령이 아닌 법률로 확정한 방식이 국내에서 유례가 없는 형식이라고 평가했다. 이은경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30년 응급의료 경험에서 본 팀원들의 의료실수 대부분이 12대 중과실 안에 들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시행령, 시행규칙, 연구용역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하위법령에 담아야 할 쟁점이 이렇게 많은 법이라면, 공청회는 법 통과 전에 열렸어야 했다.
최근 고위 공직자 청문회는 의료계의 불신을 한층 키웠다. 임상시험 승인 로비 의혹을 두고 "문과라서 치료제 성능은 몰랐다"는 해명이 나왔다. 대법관 후보자는 법왜곡죄로 판사가 고소당할 가능성을 두고 "그렇게 운영되면 안 된다"는 원론적 답변에 그쳤다.
그러나 판사에게는 오판에 대한 형사책임이 요구되지 않고, 의사에게는 과정이 아닌 결과에 대한 책임이 요구되는 비대칭은 그대로 남았다. 판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의사가 30년째 감당해온 그 두려움이다. 사법부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는 부담을 의료 현장에는 요구해 왔다는 사실이 이 비대칭에서 드러난다.
의료는 공공재의 성격을 가진다. 그렇다면 불가피한 상황과 최선의 노력에도 발생하는 나쁜 결과에 대한 보상은 개별 의사와 병원의 민형사 책임으로 흩어져서는 안 된다. 뉴질랜드형 무과실 공적보상기금, 환자안전 조사와 책임 판단의 분리, 독립된 환자안전 전담기구의 신설이 이제 논의 테이블에 올라야 한다. 이는 공청회에서 이은경 교수가 제안한 방향이기도 하다.
법과 제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모든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다듬어야 한다. 의료인만을 위한 법이어서도 안 되고, 환자와 유족의 감정만을 위한 법이어서도 안 된다. 사법부의 온정주의 재판과 의료계의 방어진료는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한쪽만 해결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의료계를 압박한 결과는 방어진료와 필수의료 이탈로 되돌아온다.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가 증가하고, 그 부담은 결국 건강보험과 환자가 진다. 12대 중과실을 놓고 현장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그 법은 이미 실패한 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행일에 맞춘 서두른 입법이 아니라, 시행을 늦추더라도 하위법령을 정교하게 다듬을 용기다. 국민도, 법조인도, 정부도 인식을 새로 해야 한다. 의료계를 향한 압박의 청구서는 결국 국민의 이름으로 되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