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강준호 의무부회장

국가 암검진기관 평가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검진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장치이자, 공공의 신뢰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검진 분야는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도록 각 전문과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컨대 진단검사의학 검사나 폐암 검진에서는 해당 전문의가 전담하며, 타 전문과가 개입하지 않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 임상 현장에서도 다른 과의 전문의가 해당 영역을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시경 검사와 간암 초음파 검사는 상황이 다르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가정의학과, 외과, 내과 등 다양한 전문과 의사들이 두 검사를 활발히 시행하고 있으며, 여러 학회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인력을 양성해 왔다. 특히 간암 초음파 검진은 특정 학회가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다양한 전문과의 교육 프로그램이 폭넓게 인정되는 개방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내시경 질평가는 이와 대조적으로 특정 학회 중심의 폐쇄적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위·대장암 검진에 여러 전문과 의사들이 참여함에도, 평가 체계는 한 학회에 집중되어 있어 제도 운영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 핵심에는 평가 구조 자체의 문제가 자리한다. 현재 내시경 질평가에서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연구 집단과 실제 기관을 평가하는 집단은 사실상 동일한 조직이다. 즉, 기준 설정과 평가 시행이라는 두 축이 분리되지 않은 채 동일한 이해관계 안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해당 학회가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만 제도적으로 우선하고, 타 학회의 교육 평점은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결국 다양한 전문과가 현실에서 내시경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제도는 특정 학회의 교육만을 기준으로 삼는 불균형한 체계가 되었고, 평가에서도 해당 학회 회원들에게 독과점적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가 형성됐다.
이는 실제 의료 현장과도 괴리된 평가 방식이다. 지금까지 1·2·3차 의료기관에서 가정의학과·외과·일반내과를 포함한 다양한 전문과 의사들이 내시경 검사에 참여하며 우리나라 위·대장암 검진 체계의 높은 성과를 이끌어 왔다. 그럼에도 현행 제도는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부분적 진전도 있었다. 가정의학회와 외과학회의 내시경 인증 자격이 국가 암검진 평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작 해당 학회들이 시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평점은 여전히 인정되지 않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의결 과정에서 특정 학회의 반대가 작용해 '자격은 인정하되 교육은 배제하는' 모순적인 구조가 유지됐다고 한다. 이는 제도의 근본적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절반의 개방'에 그친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한 학회 간 이견 조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공공제도의 공정성, 더 나아가 국민이 제도를 신뢰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공공건설 입찰의 평가위원 전원이 특정 건설사 출신이라면 그 평가 결과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료 평가도 마찬가지다. 공정한 평가는 '누가 만들고 누가 평가하는가?'라는 구조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국가 암검진기관 평가는 국민에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검진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다. 그렇기에 그 기준과 과정은 개방적이고 다학제적이어야 한다. 다양한 학회가 참여하는 평가 전문가 풀을 구성하고, 평가 기준을 투명하게 검증하며, 학회 간 교육 프로그램을 상호 인정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은 특정 학회의 권한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공정성과 국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의료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여러 전문과의 경험과 역량이 함께 반영될 때 검진의 질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국가암검진 내시경 분야의 평가가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한 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폐쇄적 구조를 넘어 공정하고 열린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공정한 평가에서 신뢰가 시작되고, 신뢰 없는 제도는 지속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