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간호사 제도, 고 배직현 선생님을 추억하며

강윤희 위원
발행날짜: 2021-08-11 05:45:50
  • 강윤희 전 식약처 위원

강윤희 전 식약처 위원
작년 초 코로나가 터지면서 종합병원은 일사분란하게 코로나 환자가 병원 내 진입하지 못하도록, 또 의료진 감염이 안되도록 병원시스템을 정비했다. 이런 일들은 누가 하는걸까? 감염전문간호사가 하는 것이다. 물론 감염내과 전문의 또는 감염관리실장을 맡고 있는 의사가 의학적인 자문을 맡지만 실제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들은 감염전문간호사들이다.

감염전문간호사는 전문간호사 제도 하에 비교적 잘 정착된 아니 어쩌면 유일하게 성공한 전문간호사 제도인 것 같다. 그럼 어떻게 이 분야에서는 성공적으로 전문간호사 제도가 정착할 수 있었을까? 이 시간 감염전문간호사 제도의 정착에 크게 공헌하신 고 배직현 선생님을 추억한다.

고 배직현 선생님은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병원감염관리 일을 하시다가 한국의 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로 오셨다. 당시 필자는 전공의였다. 선생님은 미생물 파트를 도는 전공의에게 그람양성균과 그람음성균을 감별하는 여러 고전적인 생화학적 테스트들을 직접 해보도록 하셨는데, 학창시절부터 미생물을 싫어하던 필자는 그야말로 성의없이 테스트를 했고, 그 결과 그람양성균과 그람음성균이 뒤바뀌는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은 당신의 평생 이런 결과는 처음 본다고 웃으셨지만 진지하게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하셨다.

배직현 선생님은 대학원 과정에 병원감염관리 교과를 개설하셨고, 필자는 미생물이 싫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수업을 듣게 됐다. 만약 필자가 그 때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병원감염관리가 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대부분 직접 강의를 해주셨고, 특히 병원감염관리의 태동이 된 Ignaz Philipp Semmelweis 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내 뇌리에 평생 남았다. 그래서 필자는 병원에서 인턴선생들을 대상으로 병원감염관리 교육을 할 때 이 이야기를 꼭 해준다.

배직현 선생님은 1995년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현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회)를 만드셨고, 1996년에는 병원감염관리지침을 만드셨다. 특이하게 이 학회는 회장은 의사, 부회장은 간호사였고, 감염내과, 진단검사의학과, 감염관리간호사가 동등하면서도 상호 존중과 협조 가운데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배직현 선생님이 계셨다. 솔직히 필자는 이렇게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그리고 동등하게 학회가 운영되는 학회를 그 이후로도 본 적이 없다.

제1회 병원감염관리학회에서 필자는 전공의 1년차였기 때문에 슬라이드 돌리는 일을 해야 했다(참고로 필자는 전공의가 이와 같은 소위 잡일을 하는 것에 찬성한다, 곁다리로 배우는게 많기 때문에). 필자의 기억에 거의 모든 발표 내용이 각 병원에서 손위생을 어떻게 실시하고 그 결과 어떻게 됐는가 였다. 발표연자는 각 병원의 감염관리 간호사들이었다. 병원 이름만 바뀌고 유사한 내용이 무한반복되자 필자는 나중에 좀 짜증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배직현 선생님은 하나하나 격려해주시고 도움이 될만한 코멘트를 해주셨다. 선생님은 병원감염관리에 있어서 전문간호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셨던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요즘은 감염전문간호사의 강의가 너무 어렵다. 좀 쉽게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고 배직현 선생님을 추억할 때 참으로 많은 따뜻한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가하자면 배직현 선생님이 소천하셨을 때 가장 슬퍼한 사람들 중에는 채혈업무를 맡고 있던 간호조무사들이 있었다. 선생님들은 새벽에 나와서 채혈업무를 하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두셨고, 실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모로 애써주셨다. 선생님은 그야말로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어른이셨던 것이다.

최근 전문간호사 제도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고 배직현 선생님이 떠오르는 것은 그런 의료계의 큰 어른이 없거나 안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단순히 배직현 선생님의 인격만을 언급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선생님은 감염관리 전문간호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영역을 정확히 아셨고, 의사와 간호사가 병원감염관리에 있어서 고유의 전문성을 가지고 협력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의사-간호사의 전문적이면서도 동등한 협력이 우리나라 의료발전에 크게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칼럼은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오피니언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