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가는 해외여행[28]

양기화
발행날짜: 2015-03-24 05:33:33
  • 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카보 다 로카

카보 다 로카 가는 길에 있는 별장. 가이드에 따르면 축구선수 호나우두의 소유로 알려져 있다.
카보 다 로카로 가는 길은 구절양장으로 돌아 돌아가는 느낌이다. 얼마쯤 갔을까? 조형진 가이드가 창문 밖을 가리키면서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포르투갈 출신 축구천재 호나우두의 별장이라고 한다. 산비탈에 홀로 떨어져 있어 호젓해 보이는 이곳에 집을 마련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카보 다 로카는 포르투갈의, 유럽대륙의, 나아가서는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다. 신트라 - 카스카이스 자연 공원(Sintra-Cascais Natural Park)에 위치한 카보 다 로카는 북위 38도 47분, 서경 9도 30분에 위치한다.

카보 다 로카의 표지탑(좌) 그리고 인증사진(우).
카보 다 로카에 가까워지면서 하늘이 짙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산에서 생긴 안개가 골을 따라서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세찬 바람에 휘청한다. 워낙이 바람이 세찬 탓인지 큰 나무는 구경하기 어렵고 마치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듯 땅을 덮고 있는 키 작은 풀이 노란 꽃을 피워내고 있다. 대양을 건너 온 세찬 바람이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는 듯 불어대고 있어 땅 끝으로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다. 바람을 뚫고 바위로 된 표지석으로 갔다.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카몽이스가 썼다는 글이 적혀있다.

루이스 바즈 드 카몽이스(Luis Vaz de Camoes; 1524 ~ 1580)는 포루투갈의 국민시인이라 일컫는 위대한 시인으로 포르투갈에서는 셰익스피어, 호머, 혹은 단테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카몽이스는 대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Os Lusiadas; 루시타니아 사람의 노래)]에서 포르투갈 사람들의 해양 탐험을 찬양했다. 이 작품이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남긴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포르투갈어를 '카몽이스의 언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몽이스는 동 주앙3세의 궁정에서 일하기도 했고, 1547년에는 모로코의 세우타에서 무어인들과의 전투에서 오른쪽 눈을 잃었고, 1552년 인도로 건너갔을 때도 전투에 참여하였다.

1578년 알카세르 키비르 전투에서 포르투갈군대가 참혹하게 패배하여 세바스티앙 왕이 죽고, 카스티야군대가 리스본으로 접근해온다는 소식을 들은 카몽이스는 "나의 조국이 나에게 그토록 잘했기 때문에 나는 내 나라에서 내 나라와 함께 기꺼이 죽을 것이다."라는 글을 라메로대장에게 보냈다고 한다. 시인으로서, 그리고 군인으로서 카몽이스는 조국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그가 발견의 탑에 새겨지고, 제로니모 수도원의 성모성당에 모셔질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포르투갈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구름과 안개로 덮여 흑백사진이 된 대서양(좌)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우).
야트막한 돌담으로 막아놓은 땅 끝으로 다가서니 돌담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이다. 시선을 들어 대서양 멀리까지 내다보려 하지만 이미 두텁게 덮인 구름이 수평선으로 넘어가려는 해를 가리고, 바다에서 떠오르는 물안개는 수평선을 가늠하려는 시선을 흩어놓는다.

대륙의 끝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해남의 땅 끝에서 남해를 바라보던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100여 미터 높이의 절벽 아래로는 파도에 씻긴 작은 자갈들이 쌓여 있는 좁은 해안이 있을 뿐이다. 대서양을 가로질러온 파도들이 하얗게 부서진다. 절벽 아래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는 거센 바람소리에 묻혀버렸지만 가슴으로는 전해오는 듯하다.

카보 다 로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은 강한 바람과 염분에도 강한 큰석류풀(carpet weeds)이라고 부르는 아이조아세아(Aizoaceae ) 속에 해당하는 외래종 식물인 카르포브로투스 에둘리스(Carpobrotus edulis)이다. 다육식물처럼 손가락처럼 통통한 잎 사이로 짧은 줄기에 매달린 노란꽃이 예쁘다.

카로포브로투스 에둘리스.
절벽에 서서 대서양을 내다보면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가슴에 묻어두었던 잡념들을 절벽 아래 대서양에 남김없이 쏟아낸 것 같아 후련해진다. 1993년 가족들과 미국 동부를 여행할 때 메이플라워호가 처음 닻을 내렸던 플리머스에서 처음 대서양의 서쪽 끝을 만난 이래로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드디어 대서양의 동쪽 끝에 올 수 있었다. 대서양을 횡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새겨보았다.

한 가지 더, 대륙의 끝 카보 다 로카의 절벽 위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니 포르투갈 사람들이 왜 바다로 나가야만 했는지 이해된다. 땅은 척박한데 유럽대륙의 중원을 차지한 사람들의 힘에 밀려 살길이 막막하였을 것이다. 바다의 끝이 천길 낭떨어지라 해도 바다에서 살길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바다에서 일해서 먹고 살아야 했던 제주 사람들의 삶 역시 비슷했다고 들었다.

바다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바다로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남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한이 쌓여만 갔을 터이다. 그 한을 노래로 풀어낸 것이 포르투갈의 민속음악 파두(Fado)라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1820년 무렵 형식을 갖추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 같다. 포르투갈어 파두는 운명, 숙명을 뜻하는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그리는 애수, 향수를 가리키는 포르투갈어 ‘사우다드(saudade)’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필자도 마찬가지였지만 흔히 외국인들은 파두가 애수어린 곡과 노랫말, 가난한 이의 삶이나 바다에 대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포르투갈에서 파두는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외국에서 주목받은 파두 노래들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두는 크게 리스본양식과 코임브라양식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리스본양식은 연회나 여가활동 가운데 실내외에서 부르는데, 코임브라양식은 대학도시답게 남성가수가 많고, 가수나 연주자가 학교분위기가 물씬 나는 복장을 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파두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alia Rodrigues)가 부른 [검은 돛대(Barco Negro)]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를 했다. 필자 역시 그녀의 노래가 나오면 숨을 멎을 정도로 빠져들던 기억이 난다. 검은 돛을 단 배를 타고 떠나는 연인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그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애타는 마음을 담은 노래로 가사는 이해되지 않아도 가슴에 와 닿는 처절한 느낌이 절로 느껴져서 였을 것이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바다안개가 수평선을 가리는 카보 다 로카의 절벽에 서니 어디선가 [검은 돛대(Barco Negro)]가 들려오는 것 같다.

망연히 서서 대서양을 바라보는 것도 점점 거세지는 바람 때문에 힘들다. 결국 등대 위쪽에 있는 안내센터로 가서 바람을 피한다. 버스에서 내릴 때 가이드는 이곳에서 카보 다 로카 방문 증명서를 발급해준다면서, 5유로와 10유로의 두 가지 종류의 증명서를 발급해주던 것을 최근에는 비용을 올렸다면서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볼 것을 주문했다. 땅끝 표지탑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이곳에 왔음을 인증했는데, 굳이 증명서를 발급받아 짐을 늘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는 [종이의 역사]에서 증명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캐나다의 광고회사 간부가 1979년에 설립한 회사가 30년 이상 양각무늬가 들어간 매력적인 증서를 발행해왔는데, '개인 맞춤형 망원경 좌표'가 들어 있는하늘의 별에 고객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이고, 기업이 고객을 위해 발행하는 '우주에 있는 당신의 공간'이라는 책에 기입되어 후세까지 전해진다는 것이다.

국제천문연맹은 이와 같은 임의적 지정이 공식기관에서 인정받거나 사용될 수 없는 사기성 행위라고 못 박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업은 지금까지 수십만 개의 증서를 제각기 다른 가격에 판매해왔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천상에 자신의 이름을 넣는다는 생각에 매료되어 문서를 구매한다는 것이다. 의미가 어떻더라도 그 증명서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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