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이 없어요"…현실화 된 비급여 독감접종 '수급 대란'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올해 인플루엔자(독감) 국가예방접종(NIP) 지원 사업이 영유아와 고령자 중심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가운데, 비급여 성인 민간접종 시장은 예상보다 이른 독감 유행과 백신 수급 불균형이 맞물리며 우려했던 의료현장 혼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22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최근 독감 환자가 급증하면서 한 달 새 4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37주(9월 6~12일) 인플루엔자 의사환자 분율은 의원급 외래환자 1000명당 31.0명으로 전주(25.3명) 대비 증가했다. 이 가운데 지난 21일부터 정부 주도로 진행한 독감 NIP 접종이 전국 각급 의료기관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올해는 독감 유행 시기가 예년보다 빨라지고 확산세가 뚜렷해진 가운데, 보건당국이 확보한 NIP 물량이 공급되면서 어린이, 임신부, 고령자 등 국가 지원 대상자들의 접종 현장은 차질 없이 이뤄지는 양상이다. 하지만 NIP 울타리 밖에 놓인 비급여 성인 민간접종 시장의 상황은 정반대다. 일선 의료기관들이 비급여 성인 백신 수급 불균형과 물량 부족을 알리는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포스터를 게시하는 등 성인 접종 수요 대응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취재 결과, 사노피 등 일부 글로벌 제약사들의 백신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면서, 일선 병·의원에는 제한된 잔여 물량만 배정돼 유료로 독감을 예방하려는 일반 성인들의 백신 선택권이 제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경기도 소재 A소아청소년과의원은 최근 환자들에게 발송한 안내 문자를 통해 4만 원의 일반 유료접종 가격을 공지하며 "올해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수량이 한정적이니 빠른 접종을 바란다"고 안내했다. 그러면서 박씨그리프와 플루아릭스 등 주요 백신을 원하는 성인 접종 대기자들은 10월 둘째 주 이후로 가능하다고 공지했다. 또 다른 의료기관들 역시 현재 지씨플루(GC녹십자), 코박스(한국백신), 스카이셀플루(SK바이오사이언스), 플루셀박스(CSL시퀴러스) 등 다른 백신들을 나열하는 동시에 성인 민간접종용 물량 부족을 알리며 내원 환자들에게 조기 접종을 독촉하고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A소청과 원장은 "백신 공급 상황이 개별 의료기관마다 다르다"며 "전국적인 품절이 예상되기 때문에 일단 기존에 내원했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문자 발송 등을 통해 현재 상황을 알리며 빠른 접종을 권유하고 있다"고 토로했다.구조적 악재 겹쳤다… 품귀 현상은 예고된 결과이 같은 비급여 민간접종 시장의 대규모 수급 불균형은 다중의 구조적 악재가 겹친 결과다. 우선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에 따라 올해 백신 균주가 전면 변경되는 과정에서 제조사들의 생산 수율(효율)이 크게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가격 메리트가 높은 미국·유럽 시장으로 물량이 우선 이탈하면서 사노피 등 외자사의 국내 도입 물량이 수백만 도스 이상 대폭 삭감됐다. 실제로 의료기관 선호도가 높은 수입 백신인 사노피 '박씨그리프'와 GSK '플루아릭스' 등의 확보 난이 극심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플루아릭스의 올해 국내 공급 물량은 전년 대비 약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한편, 사노피 역시 공장 수율 문제로 초도 물량 납품에 차질을 빚었다.아울러 지난 몇 년 간 국내 백신 제조사들이 제조 물량을 보수적으로 접근한 배경도 품귀 현상을 극대화했다. 국내 백신 제조사들은 과거 2년간 과도하게 발생한 폐기량(수십만~수백만 도스)으로 큰 손실을 겪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올해는 제약사들이 손실을 막기 위해 생산량을 자발적으로 줄이거나 보수적으로 조절했고, 여기에 다국적 제약사들의 물량 축소까지 겹치면서 전체적인 파이가 쪼그라들었다.올해는 예년보다 빠른 유행 확산세와 맞물려 성인 유료접종 수요가 조기에 폭증하고 있으나, 백신 수급 불균형과 품귀 현상으로 인해 현장의 혼란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의료현장이 체감하는 수급난은 국내 구조적인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낳은 결과라는 진단이다.대한내과의사회 곽경근 회장(서울내과)은 "작년에 백신 물량이 많이 남아서 제약사들이 큰 손실을 겪은 탓에, 올해는 제약사들이 전체적으로 물량을 매우 보수적으로 제작했다"며 "필요량의 120% 수준인 '적정 공급 룰'이 깨지면서 애초에 시장에 풀릴 물량 자체가 부족해졌다"고 지적했다.특히 올가을은 신종플루 시기를 제외하고는 드물게 8~9월부터 인플루엔자 확산 조세가 가파르게 나타나 민간 성인 접종 수요가 조기에 폭증하고 있으나, 백신 생산에 최소 3~4개월이 소요되는 물리적 한계로 인해 현시점에서 추가 공급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유통 단계에서도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곽경근 회장은 "도매상들이 제약사로부터 백신을 한 번에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다 보니, 병의원에서 500개를 주문해도 300개만 주는 식으로 물량을 임의로 축소해 쪼개기 공급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 때문에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성인 환자들의 접종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현상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그는 "비급여 접종 비용은 통상 3만 원에서 3만 5천 원 선에 형성되어 있으나, 이마저도 백신이 없어 접종을 하지 못하는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매년 반복되는 비급여 민간접종 시장의 구조적 인재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근본적인 수급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