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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말 못하는 인턴의 서러움

박성우
발행날짜: 2016-10-10 05:00:30

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55]

인턴의 서러움

수술 도중 전공의 선생님이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회상하니 일하라고 하면 일하고, 밥 먹으러 가라면 밥 먹고, 자라고 하면 자니까 어느새 1년이 지나가 있었다고 했다.

인턴은 시키면 무엇이든 해내야 하는 말단이지만 인턴도 사람인지라 아플 때가 있다. 1년 동안 일하면서 아픈 날이 하루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추운 겨울에 수술복 가운 하나 걸치고 칼바람을 헤쳐 가며 하루 이틀 잠을 못 자면 골병이 날 수밖에 없다. 학생은 아프면 조퇴도 가능하고 양호실에 가서 눕는 것도 가능하다. 정 안 되면 책상에 엎드려 잠이라도 잘 수 있다.

하지만 졸업하니 그런 일들이 꿈만 같다. 더군다나 종합병원 수련의들은 병가도 암묵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아파서 쉬면 그 일을 대신할 동기나 선배가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일 환자에게 시행하는 처치와 수술을 미룰 수도 없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찌뿌둥했다. 1월은 정형외과 인턴이었지만 성형외과에 합격했기 때문에 성형외과 0년차 전공의이기도 했다. 정형외과 일이 끝나면 성형외과로 가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매일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고 새벽 6시면 일어나는데 중간에도 여러 걱정 때문에 잠을 편히 못 잤다. 잠자리에 들기 전 환자가 준 떡을 먹고 체했는지 속도 더부룩했다. 새벽부터 설사도 시작됐다. 그래도 아침 6시 반 출근은 해야 한다. 일을 빵꾸내면 안되기 때문에 아파도 출근을 해야 한다.

새벽같이 병동에서 몇몇 환자의 혈액검사를 하고 당일 정형외과 X-ray 사진들을 챙겨 수술실로 내려갔다. 그 와중에 시작한 설사는 멈출 기세가 없었다. 설사를 몇 번 하니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첫 수술 시작 전, 잠시 시간이 비는 10여 분 동안 의실 소파에 몸을 뉘었다. 이런 날은 스크럽 서다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첫 수술 시간에 맞춰 수술실에 들어섰다. 수술대에 환자를 준비하고 마취하는 동안 대기하며 서 있었다. 마취가 진행되는 20분 동안은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 잠시도 의자에 앉아있기라도 하면 "어디서 인턴이 빠져가지고"라는 마취과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얼른 수술대 곁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었기에 수분이 모두 증발한 것 같은 몸을 수술대에 기대 서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스크럽을 설 수 없을 것 같아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이런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야, 인턴 샘아. 이런 날은 아파도 허락받고 아파야 하는 거야. 너 마음대로 아프고 그럴 수 없어." 그런 고민을 하면서 마취가 끝난 환자 준비를 마무리했다. 정형외과 선생님들이 차례차례 들어왔다.

다행히 오늘은 타 병원에서 교육수련으로 파견온 전문의 선생님이 있었기에 인턴이 스크럽을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환자 준비만 하면 수술하는 동안 밖에 나가 쉴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이런 날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인턴도 다 살라고 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수술이 시작되고 정형외과 인턴은 그동안 잠시 물러났다. 2시간 정도 푹 잘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갱의실로 돌아왔다. 형광등이 훤히 켜진 소파에 수술복 몇 개를 돌돌 말아 베개를 만들고 그중 몇 개는 겹쳐서 이불로 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수술실에서 일손이 필요하다며 콜이 온다.

몸이 아픈 날에는 무슨 일을 해도 서럽기만 하다.

밤새 일하느라 감기가 지독히 들었던 동기는 마스크를 쓰고 여전히 병동을 지킨다. 필요하면 병동 간호사에게 부탁해 수액 세트를 받아온다. 동기가 놔주는 주사에 팔을 맡기고 수액을 맞으며 푹 자고 나면 몸이 한결 낫다. 겨울이 되면 당직실에서 수액을 맞는 동기들의 모습을 종종 마주친다.

몸이 아프니 서러운 기억들만 떠오른다. 제주도로 호스피스 환자 트랜스퍼를 다녀온 동기는 겨울이었지만 얇은 의사 가운 하나만 걸치고 비행기를 탔다. 다행히 환자는 무사히 제주도 집에 도착했다.

보호자는 헤어지면서 고생했다고, 돌아가는 길에 따뜻한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3만 원을 쥐어주었다고 했다.

제주도에 도착한 감상도 잠시, 그날 돌아가지 않으면 다음 날 정규 일이 빵꾸 나는 상황이었기에 급하게 공항으로 향했다. 서울 행 비행기는 15분 뒤에 마지막 비행기였는데 병원에서는 돌아갈 비행기 좌석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항공사에 부탁해 겨우 자리를 받았다고 했다.

제주도로 트랜스퍼를 보내면서 돌아오는 방법조차 마련해주지 않는 병원에 대해 동기는 어이없이 웃으며 교육수련부에 항의했다. 그나마 보호자가 쥐어준 3만 원이 자기 고생을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마웠단다.

트랜스퍼를 갈 때는 응급차로 환자와 같이 가지만 지방에서 복귀할 때는 근무시간을 맞추기 위해 수술복에 가운 입고 KTX를 자비로 들여 돌아온 동기가 벌써 여럿이었다. 아무리 인턴이라지만 서럽다.

잠시였지만 갱의실에 누워있으니 그나마 좀 나았다. 첫 번째 수술이 끝났고 다음 환자 수술 준비를 이어한다. 요즘에도 일하면서 잘 웃고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오늘은 아파서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있을 것 같았다.

수술실로 모시고 가던 환자가 멍 때리고 있는 내게 말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릴게요."
괜히 울컥하며 대답했다. "걱정마세요. 마취하고 한숨 자고 나면 수술은 다 끝나 있을 거예요. 선생님들께서 수술 잘 해주실 거예요."

수술이 모두 끝나고 전임 강사 선생님이 발표할 자료를 정리해달라고 했다. 서러웠던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오는데 선생님은 "아침을 못 챙겨먹고 나왔더니 오늘따라 기운이 없네"라고 하셨다. 그 말에 "오늘 아파서 쉬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목까지 치밀어올랐지만 꿀꺽 삼켰다.

시무룩하게 자료를 받자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나도 좀 살자. 인턴 샘아. 부탁해, 내일까지 꼭."

나도 좀 살았으면 좋겠어서 정형외과로 내정된 동기에게 "너희 과 선생님이 부탁하는 건데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했지만 짜증난 목소리만 돌아온다. 인턴 초창기와는 달리 다들 도와줄 여력이 없나 보다.

병원 복도를 터벅터벅 걷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다소 위안이 될까 싶어 이어폰을 꽂은 채 병원 구석에서 일을 한다. 서러운 마음에 집에 전화를 한다. 이래저래 보지 못한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진다.

굳이 오늘 겪은 일에 대해 서러운 처지에 대한 푸념은 아니어도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사람마저 없으면 너무 서럽다. 그렇다고 한 달째 집에도 못 들어가는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에게는 걱정하실까 봐 얘기도 꺼내지 못한다. 밥 잘 챙겨먹고 잠도 잘 자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수많은 환자들이 침상에 누워 나와 같이 밤을 보낸다. 종합병원이라는 공간에는 많은 이들이 있고 불빛이 꺼지지 않는 어딘가에는 누군가가 일하고 있다. 숱하게 많은 이와 마주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외로운 공간일 수 없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나의 편은 어디에 있나. 혹여 병원에 안 좋은 소문이 돌까 봐 속사정을 얘기 못할 때도 있다. 사람들은 의사가 멋있다고 하지만 번듯해지는 과정까지 그만큼 서러운 직업도 의사다.

[56]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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