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충제에 축적된 자료들, 항암 임상 가치없다고?
전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강윤희 임상심사위원(의사)
메디칼타임즈 (news@medicaltimes.com)
기사입력 : 2020-01-28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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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곧 어떤 제도든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그 제도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사람을 위해서 만든 제도와 규제에 도리어 사람을 끼워 맞추려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구충제 이슈는 이런 면을 잘 보여준다.

식약처, 대한의사협회, 국립암센터 등은 펜벤다졸 및 구충제의 항암효과가 사람에서의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복용해서는 안된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물론 이는 일반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암환자들에게, 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까?

먼저 말기 암환자에 대한 국제적인 임상시험 규정을 살펴보자. 임상시험에 대한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인 ICH S9 규정은 항암제 임상시험의 경우 동물에서의 반복독성 자료, 생식독성 자료, 유전 독성 자료, 발암성 자료 등 일반적으로 의약품 임상시험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면제해 준다.

우리나라도 이 규정을 따르고 있다. 임상3상을 위해서는 반복독성 자료 제출이 필요하나, 이 경우에도 3개월 반복독성 자료면 충분하다고 간주한다. 임상시험뿐만 아니라 허가에 있어서도 항암제는 반복독성상 심각한 독성이 있거나, 생식독성/유전독성/발암성 독성이 있더라도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환자의 생존을 수개월 연장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 ICH S9 규정은 말기 암환자에게 투여되는 항암제의 경우 일반 의약품과는 다른, 즉 매우 완화된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펜벤다졸의 경우 사람에서의 임상시험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이 부족한지 살펴보자. 우선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는 미국 존스 홉킨스 의대의 연구진들이 우연히 발견한 현상이었다. 쥐를 가지고 뇌종양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쥐에서 집단 기생충 감염이 발생하여 펜벤다졸을 투여했는데 그 뒤로 뇌종양이 잘 자라지 않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마치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과 유사하게 말이다.

펜벤다졸의 동물시험 자료는 ICH S9이 요구하지 않는 반복독성 자료, 생식독성 자료, 유전 독성 자료, 발암성 자료를 모두 가지고 있다. 심지어 반복독성 자료는 3개월 뿐만 아니라, 마우스와 랫트의 전 생애 동안 투여한 장기 안전성 자료를 가지고 있다. 또한 펜벤다졸은 치료 용량에서 생식독성, 유전독성, 배태자 독성(기형 유발), 발암 독성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 사람에게 투여되는 용량으로 환산되었을 때 종양의 크기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이 정도의 자료가 사람에서의 임상시험을 할 가치가 없는 것인지 참으로 의아스럽다.

메벤다졸의 동물 시험 자료는 펜벤다졸보다 몇 배 더 풍부하다. 또 실제 말기 암 환자에게 투여된 사례 보고도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례 보고는 매우 인상적인데, 해당 환자는 주치의에게 메벤다졸을 처방받고 싶다고 요청하였고, 주치의는 이를 받아들여 메벤다졸을 처방했다. 그 결과 환자와 주치의는 메벤다졸의 항암효과를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 비록 메벤다졸 투여 후 2년 뒤 암은 다시 진행하였지만, 주치의는 메벤다졸 치료 기간 환자의 삶의 질이 좋아졌다는 점을 언급했다.

말기 암환자의 삶의 질은 참으로 중요하다. 약물 독성으로 고생하면서 여명을 사는 것과 비교적 부작용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은 차이가 큰 것이다. 메벤다졸은 실제 사람에서의 임상시험도 여러 국가에서 여러 건이 진행 중이다. 우리 나라도 의사가 관심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펜벤다졸 사례를 보고할 수 있는가? 효과가 있든 없든 다양한 사례를 정리하고 보고할 수 있는 상황이다.

또 존스 홉킨스 의대는 메벤다졸의 항암 효과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고, 사람에서의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국립암센터는 어떤 명확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발표된 논문이 허접하다,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의견을 내다니 너무나 실망스러울 뿐이다. 전문가 집단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규제 기관과 똑같이 그저 원론적인 의견만을 내는 것을 보면서, 필자가 1인 시위를 하며 주장한 ‘우리 나라가 땅이 작지, 전문가가 적냐’고 한 말은 취소를 해야 될 것 같다.

아이비 맥킨지라는 의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인용된 구절임). "의사는 단 하나의 생명체, 역경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하나의 개체, 즉 주체성을 지닌 한 인간에 마음을 둔다."

말기 암이라는 절망적인 역경 가운데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환자들의 소리를 무시한다면 과연 참된 전문가 집단이라고, 환자를 위한 규제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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