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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가는 해외여행[33]

양기화
발행날짜: 2015-04-10 05:30:02

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

마드리드로 가는 길(2)

마드리드 인근 도로변에서 만나는 그래피티.
버스가 과다라마 산맥을 넘어서자 멀리 마드리드가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가 마드리드 외곽에 들어서면서 도로변 축대나 빈 건물의 벽과 같은 공간이 나타날 때마다 스프레이를 뿌려 그린 글씨가 예외 없이 등장한다. 우리가 그래피티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나마 현재 사용 중인 건물의 벽에는 그려 넣지 않은 것 같다.

필자가 즐겨 산책하는 양재천 산책로에서도 가끔 스프레이를 뿌려 쓴 낙서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드물지 않은 사회적 현상인 것 같다. 사실 어렸을 적 이웃집 담벼락에 백묵으로 무언가를 썼다가 혼난 경험을 한 자락씩 가지고 있을 터이니 거슬러 올라가면 그래피티의 역사는 어쩌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긁다(scratch)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graffitto'의 복수형 'graffitti'에서 온 그래피티는 공공장소에다 허락을 받지 않고 휘갈겨 쓰거나, 긁거나, 혹은 뿌리는 방식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래피티의 범위는 간단하게 쓴 글씨로부터 공들인 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로마 제국을 지나 고대 그리스, 이집트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적 의미의 그래피티의 시작에 대하여는 견해가 다양한 것 같다. 두산백과사전에서는 '현대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콘브레드(Cornbread)와 쿨 얼(Cool Earl)이라는 서명(tag)을 남긴 인물들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래피티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것은 뉴욕의 브롱크스지역이 중심이었다고 한다. 반항적인 흑인 청소년들과 푸에르토리코인 등 소수민족들이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은 구호와 그림을 건물 벽이나 지하철 등에 스프레이를 뿌려 그리면서 확산된 것이다.

그래피티는 그지역의 힙합문화와 결합하면서 강렬한 색체와 에너지가 넘치는 도안이 되었는데, 즉흥적이면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무엇이 있었다.

1990년대 필자가 뉴욕을 처음 방문했을 때 도로변의 벽에 시뻘건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글씨를 처음 보면서 은근히 겁을 먹었던 기억도 있다. 한 때 도시의 골칫거리로만 여겼던 그래피티가 이제는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부상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있다. 그 배경에는 영국의 뱅크시, 미국의 장-미셸 바스키아와 키스해링의 천재적인 활약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피티를 예술문화를 파괴하는 행위(반달리즘, Vandalism)으로 보는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진숙은 '위대한 미술책'에서 "어떤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찰이 되고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더 좋아 보이게 만들기 위해 문화 파괴자가 된다"라고 한 뱅크시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는 문화 파괴자를 자처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문화의 건설자다"라고 말한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는 쉽게 잊을 수 없는 독창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행작가 손주형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했을 때 도시를 온통 뒤덮고 있는 낙서를 보면서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에 모든 별들이 그라피티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남아메리카 특히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서 그래피티가 아주 일상적인 것이 되고 있다고 한다. 마드리드 외곽도로에서만 그래피티를 볼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스페인 역시 아직 일상적인 단계에 이르지 않은 것 같다.

▲사바티니정원에서 본 마드리드 왕궁(좌)과 오리엔테 광장에 서있는 고트왕들의 동상(우) <출처:위키피디아>(클릭시 관련 페이지 이동)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레판토 매장에서 쇼핑을 하는 것이다. 매장 부근의 공용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일단은 스페인 왕궁의 정원을 통하여 매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왕궁의 규모가 너무 큰 탓도 있고 시간이 늦어서 찬찬히 둘러 볼 짬이 없었다. 다만 정원을 통과하면서 만난 동상들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고트왕들의 동상(5명의 비씨고트왕과 15명의 레콩키스타시기의 가톨릭왕들)이라는 것을 위키피디아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마드리드 왕궁(Palacio Real de Madrid)은 13.5000 m²의 넓이에 2,800여 개 이상의 방을 가지고 있어 서부 유럽을 통 털어서 가장 큰 궁전이다. 스페인의 왕실 공식 관저이지만, 후안 카를로스 왕을 비롯한 가족들이 이곳에 머물지는 않는다. 다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치러지는데, 2004년에는 펠리페 왕자와 레티시아 오르티스 왕세자비 결혼식이 궁전의 중앙 광장에서 치러졌다.

이곳은 9세기 무렵 코르도바의 무함마드1세 왕이 전초기지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은 마이리트(myrit)라고 부르던 요새에 지어졌다. 1036년에는 무어인의 톨레도 왕국으로 넘어갔다가 1083년 마드리드를 점령한 카스티야의 알폰소4세의 소유가 되었다. 그럼에도 카스티야 군주는 마드리드 왕궁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1561년이 되어서야 펠리페 2세가 거처를 마드리드 왕궁으로 옮겼다.

스페인 단체관광을 오는 사람들은 아마도 빠짐없이 들를 것 같은 레판토 매장에 들어섰을 때는 왠지 모르게 휑하니 비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중국관광객들이 먼저 다녀갔나 싶다. 그렇지 않아도 여행비에 보태라며 봉투를 내밀던 작은 아들이 부탁한 레알 마드리드의 바람막이를 어떻게 살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이곳에서 물어물어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레판토 매장은 명품브랜드를 주력으로 하는 매장으로, 1571년 남유럽 제국이 연합한 신성동맹의 함대가 막강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함대와 싸워 이긴 레판토 해전으로부터 착안한 이름이 아닌가 싶다.

▲무명작가가 그린 레판토 해전 <출처:위키피디아>(클릭시 관련 페이지 이동)

지중해를 주도하던 오스만 투르크가 베네치아령 키프로스를 점령하자 베네치아는 투르크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하여 교황청을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동맹을 주도하였다. 그 결과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 비오 5세 치하의 교황령, 스페인 왕국과 제노바 공화국, 사보이 공국, 몰타 기사단 등이 연합한 신성동맹의 갤리선 함대가 시실리의 메시나항을 출항하였다. 신성동맹함대가 그리스 서쪽 코린트만의 북쪽에 이르렀을 때 레판토항을 출항한 투르크 함대와 조우하여 해전이 벌어졌다.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이복동생인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가 지휘한 신성 동맹의 함대는 206척의 갤리선과 6척의 갤리어스로 구성되었고 12,920명의 선원이 승선하여 2만 8000명에 이르는 병사를 수송하고 있었다.

알리 파샤 사령관이 지휘한 투르크 함대는 222척의 전투용 갤리선과 56척의 소형 갤리선, 그리고 좀 더 소형의 함선들로 구성되었고, 1만 3000명의 선원이 승선하여 3만 4000명의 전투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화력에서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전투의 승부를 갈랐다. 신성동맹함대는 1,815문의 총포를 보유한데 반하여 투르크함대는 750문에 불과하였고, 탄약도 부족했다. 뿐만 아니라 신성동맹은 진보된 화승총과 머스킷총이 주력 개인화기였지만, 투르크군은 전통적인 복합궁이 주력 개인화기였다.

5시간에 걸친 혈투 끝에 투르크 함대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이 전투에서 투르크 해군 전사자는 2만 5000명, 그리스도교 해군 전사자는 7000명이었다. 이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신성동맹은 곧바로 콘스탄티노플로 쳐들어가는데 의견을 모으지 못하는 사이에 투르크해군은 빠르게 함대를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중해에 대한 투르크제국의 영향력은 심각하게 손상을 입게 되었다.

쇼핑이 끝나고 스페인여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식당 '사랑방'의 제육볶음과 된장국은 여행하는 동안 조금은 불편했던 속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느지막하게 마드리드 변두리에 위치한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마드리드에 들었다. 이번 여행 중에 유일하게 2박을 하는 숙소라서 내일은 짐을 끌고 나서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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