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과학...위험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 2021-07-26 05:45:50
백신 접종같이 국민 다수의 참여를 요구하는 보건의료정책은 대중의 위험 인식을 개선해야 원활히 진행된다. 당신은 자신의 생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 섭취 후 사망률이 50%인 사탕이 있다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망률이 10%라도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사망률이 얼마나 낮아야 먹을 수 있을까? 1%? 0.1%? 사망률이 0%인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한 인간의 모든 선택은 손해의 가능성인 위험(risk)을 동반하며, 인간은 안전을 위해 매 순간 위험과 이익을 저울질하는 위험 인식(risk perception)을 한다. 한 사람의 위험 인식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확장하면 대중의 위험 인식은 공동체 유지를 위한 것이다. 위험 인식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인식하는 위험은 실제 위험, 전문가들이 인식하는 위험과 동떨어져 있을 때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이 있다. 지난 4월 초, 세계보건기구, 유럽의약품청 등 전문 기관에서 혈전 부작용과 백신 투약 사이의 인과성이 미미하다고 발표했지만, 아직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위험하고 열등한 백신'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백신 접종같이 국민 다수의 참여를 요구하는 보건의료정책은 대중의 위험 인식을 개선해야 원활히 진행된다. 즉, 왜 전문가와 대중의 위험 인식에 깊은 괴리가 존재하는지 알아야 한다. 대중의 잘못된 위험 인식은 그들의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만약 위험 인식의 괴리가 정말 지식 수준의 차이 때문이라면 일반 대중과 전문가가 같은 통계를 공유했을 때 인식된 위험이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Zanin et al., 2020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는 국민 대부분이 올바른 자료 조사를 하고 있었음에도 코로나19에 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위험 인식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Savadori et al., 2004는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높은 인식된 위험은 전문 지식의 부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단순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사전 지식만으로는 위험 인식을 할 수 없다.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 오리건대 심리학 교수 폴 슬로빅의 '심리측정 패러다임(psychometric paradigm)'에 따르면, 사람은 사전 지식뿐만 아니라 내적, 외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쳐 판단을 한다. 예를 들어, Fischhoff et al., 1978은 같은 사망률을 가지더라도 '자발적'인 행위가 '비자발적'인 행위보다 약 1000배 더 위험 인식이 낮다고 발표했다. 또한, 일반인들이 흡연의 위험이 높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일상 생활에서 금연 광고를 흔히 접할 수 있으며, 흡연으로 인한 질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발성과 접근성 외, 개인의 사회경제적 위치, 위험에 노출될 사람의 수도 위험 인식을 할 때 고려되는 중요한 요소다. 위험 인식의 과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주관적이니, 전문가 집단은 대중의 위험 인식이 단순히 비논리적인 과정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최근까지의 연구는 전문가 집단이 대부분 수치적 위험 해석(quantitative risk analysis)만 하기 때문에 심리측정 패러다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된 채 진행되어왔다 (Jasanoff, 1998). 그러나 다루는 분야가 비슷한 전문가 집단이라도 경험과 목적의 차이로 인해 위험 인식의 차이가 크게 다를 수 있다. Zingg et al., 2012에 따르면 수의사들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것이 주 목적이기 때문에 도태에 대한 위험 인식이 각 가축과 교감을 하는 농부들의 인식보다 낮다. 이와 유사하게, 인구 전체의 보건을 다루는 예방의학과가 환자 개개인의 수술을 맡는 외과보다 백신에 우호적이다. 전문가 집단의 위험 인식에도 주관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가의 위험 인식은 최신 연구 결과, 수치 해석, 교차 검증 등 최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줄이는 기법을 기반으로 위험을 평가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위험 인식보다 타당하다. 즉, 전문가가 인식하는 위험은 실제 위험과 가장 가깝다. 때문에 많은 국가들은 일반 대중의 관심이 적은 정책을 만들 때, 전문가의 위험 인식만 반영하는 '현실주의적 모델(realist model of risk perception)'을 수용한다. 하지만 코로나19같이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재난은 관련 정책에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또한, 범국가적 재난이 진행되는 동안 허위 정보가 증가했으며, 사회경제적 차이가 벌어졌고, 정치적 이념에 따라 '자발적'과 '비자발적' 위험의 정의가 극단적으로 갈라졌다. 그 어떤 이슈든 전문가와 대중의 위험 인식의 괴리는 넓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실현되어야 한다. 먼저 직관적인 통계가 필요하다. 마음에 와닿기 어려운 절대적 위험도보다 상대적 위험도를 사용하면 효율적으로 위험에 대해 각인시킬 수 있다. 최근에 발생했던 재난 혹은 널리 알려진 질병의 사망률을 그 위험도와 비교하면 된다. 전달자의 다양화 또한 필요하다. 위험 인식은 통계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위험 인식은 주관적인 관점이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위험 인식의 차이를 좁히려면 소통 방식에 있어서 개인 단위로 소통을 해야 한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소통 방식은 불특정 다수의 위험 인식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정부 차원의 소통보다 시청자가 인간적인 공감을 할 수 있는 전문 커뮤니케이터 혹은 인플루엔서가 위험 인식을 쉽게 바꿀 수 있다. 코로나19가 20개월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시민들은 이미 지친지 오래다. 판데믹(pandemic)을 극복하기 위해선 모든(pan) 사람(demos)의 협조가 필요하며, 이는 서로의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공부라는 외길만 걸어온 의대생, 당신의 부캐는? 2021-07-19 05:45:50
TV 예능 프로그램 에 소개된 소위 '부캐''라는 개념이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부캐라는 단어는 원래 게임 용어로 본 캐릭터가 아닌 새롭게 추가한 부캐릭터를 의미하는 단어다. 이 프로그램은 진행자 유재석에게 여러 부캐릭터들을 설정하고 기존 본업인 MC로서의 모습이 아닌 부업에서의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슷한 움직임은 다른 매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Youtube)로 대표되는 인터넷 기반의 스트리밍, 영상 플랫폼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인해 현재 개인 콘텐츠 시장이 매우 활발하게 팽창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은 물론 정치인까지 기존 본업과 다른 부캐를 콘텐츠로 하는 영상으로 제작, 유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부캐의 창출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흐름은 여러 질문들과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줄기차게 '자아정체성' 이라는 단어를 들어왔다. 직업과 진로를 결정할 때 자신이 가장 원하고 잘하는 것을 선택해야한다는 가르침을. 하지만, 일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대와 매우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퍽퍽한 하루 하루를 견디며 내가 바라던 것과는 많이 다를 지라도 스스로를 달래며 주어진 상황에 타협하고 어릴 적 낭만을 치기 어린 것으로 치부하며 살아간다. 다소 서글픈 삶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캐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내가 잘하는 것은 뭐지?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즐겁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공 여부 혹은 주요 수입원이 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부캐를 탐색하고 도전해 삶의 의미를 찾으며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사회의 트렌드와 의료인 혹은 예비 의료인인 의대생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매회 최고 시청률을 갱신 중인 드라나 에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는 5명의 동기 의대교수들이 바쁜 일정 속에도 매주 한번씩 모여 밴드 연습을 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길 정도로 바쁜 일과 중에서도 밴드 연습을 할 때 밝게 웃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몰래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곤 한다. 이처럼 현재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 동아리의 형태로 본업과 다른 활동을 장려하고는 있지만, 사실 위에서 언급한 부캐와는 다른 성격의 취미 공유 혹은 동호회의 성격이 강하다. 단순한 동아리 차원이 아니라,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본업 외에 부캐로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의사 혹은 의대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의학 상식을 전달하고 잘못된 건강 상식을 바로 잡는 youtube 의학 채널들이 있다. 여러 다른 전공 분야의 전문의 선생님들께서 대중들에게 올바른 의학 상식을 제공하는 것은 본업이 가지는 전문성이라는 특성을 잘 살린 좋은 부캐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이미 많은 의사 선배님들께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흥미롭게도 서울의대를 졸업하시고 안과 전문의를 취득하신 후 서울대 안과 교수로 계시는 서종모 교수님은 서울공대 전기공학부 교수를 겸임하신다. 이 경우 역시 본업의 전문성을 부업에서도 연계하여 환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좋은 부캐의 예이다. 창업 분야에서는 더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DHP(Digital Healthcare Partners)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김준환 선생님의 본업은 서울아산병원 입원전담의다. 생활습관과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건강을 관리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고안된 스마트벨트 회사 ‘웰트’의 강성지 대표이사 역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출신이다. 대구 지역의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신약 개발 회사 ‘아스트로젠’의 대표 이사 황수경 대표의 본업은 경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이다. 또한, 최근 원격 비대면 진료로 급부상하고 있는 스타트업 '닥터나우'의 대표는 놀랍게도 의대생이다. 예시로 제시한 youtube 채널, 연구, 창업 외에도 정치, 작가, 기업 등 의사들이 활약하고 있는 분야 역시 사회적 트렌드에 맞추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꿈꾸는 의대생으로서 크게 와 닿는 두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의사는 전문의가 가지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부캐를 생성하기에 아주 좋은 직업이라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렇지만 그 전문성이 전부가 아니기에 꾸준하게 내 안에 숨겨진 부캐를 발견하고 키워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환자를 실제로 마주하기 시작하는 인턴, 레지던트 생활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부캐를 발견하는 여유를 현실적으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로운 의대 재학 시절 중에 부캐로 성장할 수 있는 내 안의 씨앗을 고민해보고 발견하여 새싹을 틔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묻는다. 당신의 부캐는 무엇인가요?
완벽한 불완전함(Perfectly imperfect) 2021-07-12 05:45:50
그 전부터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한테 언제 시험 기간인지 묻지 말고, 차라리 '안 시험 기간'이 언제인지를 물어봐! 난 늘 시험 기간이거든." 칼럼을 쓰고자 문서 파일을 열었을 때, 몇 년 전 시험 기간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금 또한 -당연하게도- 수많은 페이지의 강의록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의과대학 학생에게 수많은 시험은 너무나도 자주 찾아오는 존재다. 카페인과 함께하는 밤샘의 여정을 계속 맞이하는 것이 작년의 나에게는 벅차게 느껴졌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시험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작년 어느 새벽 날이었을 것이다. 해안도시에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나의 악몽에서는 해안가에 서 있는 나를 거대한 파도가 덮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날 내 눈앞에 남아있는 엄청난 강의록의 페이지 수가 마치 내 꿈속의 쓰나미를 닮아있었다. 끔찍하다, 라고 마음속으로 혼자서 되뇌었던 것 같다. 공부로 인한 부담감으로 인해 생겨난 두 가지 나쁜 관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우선 가면 증후군이 있었다. 가면 증후군은 자신의 성취를 운, 또 주변 사람들을 속여서 이룬 것으로 생각하며 자신을 스스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불안해하는 심리를 일컫는다. 다들 저렇게나 똑똑하고 완벽하게 모든 일을 해내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기 일쑤였다. 첫 번째의 잘못된 관념은 자연스럽게 시간에 대한 강박으로 나를 이끌었다. 너는 안 그래도 능력도 부족한데,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도 못한다면 너는 실패한 인생인 거야!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잠을 예상보다 1시간 더 많이 잤다고, 2시간 동안 자신을 자책했다. 그렇게 3시간을 허비했다고 또 4시간을 우울했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누가 하냐 싶지만, 과거의 나에게는 꽤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했던 내가 지금은 훨씬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가끔씩 불안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금세 평온을 되찾는다.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나의 취미생활을 놓지 않는다. 동시에 공부할 때는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 지식을 습득하고자 한다. 과연 어떠한 변화가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해답은 완벽 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그저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었다. 내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 그래서 어떻게든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내서 공부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완벽해져서 결코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에서 기원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고 노력해도 결국 나는 잠이 많으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룰 수 없는 환상을 좇으며 자신을 갉아먹기보다는,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완벽해지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자, 오히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역경을 기반으로 조금씩 발전하고자 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직도 실패는 쓰라리고, 아프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실패를 통해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오히려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다가올 힘든 순간을 더욱 단단하게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환자의 참여를 환영해주세요 2021-07-05 05:45:50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 시즌2가 시작됐다. 첫 방송을 보니 의과대학에 막 입학하고 앞으로 의학을 배움에 들떠 의료와 관련된 무엇이라도 시청해야겠다는 마음에 슬의생 시즌1을 보았던 작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따뜻한 의술을 베푸는 소아외과 교수 안정원을 보며 가지게 된 소아과에 대한 관심과 99즈 5인방의 밴드 합주를 보며 의대 라이프에 품었던 로망이 의료 파업과 집단 휴학으로 좌절되었던 기억이 흉터로 남아있는 듯하다. 슬의생1의 여러 에피소드 중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튜브에 클립조차 올라오지 않은 사소한 장면이다. 바로 아이 엄마가 담당의 안정원과의 상담을 몰래 녹취하다 들킨 장면이다. 아이 엄마는 "다른 병원은 장중첩증의 경우 수술이 아닌 시술을 하더라. 인터넷을 찾아보니 수술할 경우 아이 키가 안 자랄 수도 있다고 하던데..."라며 담당의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질문을 시전한다. 하지만 아이의 장에는 이미 괴사가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며, 의사는 수술 외엔 방법이 없다고 단언한다. 아이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인터넷에서 수술하면 아이 키가 안 자란다고 읽었다며 집요하게 시술을 요구한다. 의사가 그런 정보는 믿지 말라고 하는 순간 아이 엄마의 녹음본이 실수로 재생되고 의사가 간호사에게 수술을 위한 신속한 원무과 수속을 부탁하며 상황은 종결된다. 이 장면과 관련해 화두가 되었던 것은 의사와 상담 녹음의 합법 여부였다. 여러 변호사 및 법률 블로그에서는 담당 의사의 진료 상담을 몰래 녹음하는 행위의 불법 여부를 다루곤 했다. 그러나 내가 주목했던 것은 바로 참여의료였다. 미숙하기는 해도 아이 엄마의 의견도 진료와 치료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일종의 참여의료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담당의에게 의사결정과 관련해 질문하고 요구하는 아이 엄마를 단순히 고집스럽고 아는 체하는 모습으로 표현할 뿐이다. 물론 위 장면에서 의사가 자신의 판단을 배제하고 환자의 제안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다면, 아이의 치료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것은 환자가 치료 의사결정에 참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흔한 부작용이다. 그러나 환자의 의료 참여가 돌파구를 제시하기도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세계적인 구루인 에릭 토폴 박사의 저서 에서 킴 굿셀(Kim Goodsell)이라는 환자에 대해 읽은 기억이 있다. 그녀는 활기차고, 운동을 좋아하고, 놀라울 정도로 힘이 넘쳤으며, 20대와 30대에는 철인 삼종 경기로 세계 순위를 다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심장부정맥으로 쓰러졌다가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적이 있으며, 정밀 검사 결과 부정맥유발성 우심실 형성이상(ARVD)이라는 아주 드문 심장 질환을 앓고 있음이 밝혀졌다. 1만명당 1명꼴로 발생하며, 보통은 굿셀처럼 40대가 아닌 청소년기에 발병하고, 일반적으로 상염색체 우성 방식으로 유전되는 이 질환이 돌연사나 심각한 심장리듬 이상의 가족력이 전혀 없었던 굿셀에게 발병했다는 점이 매우 희한했지만, 담당 의사는 별다른 의구심 없이 그녀를 ARVD 진단에 따라 치료하였다. 그러다 심실성 빈맥이 여러 번 재발하고 근력 저하와 함께 신경학적 증상들이 나타나며 상황이 악화되자 굿셀은 메이요 클리닉을 찾았고, 결국 희귀한 질병인 2형 샤르코-마리-투스(CMT)까지 진단받았다. CMT 또한 ARVD와 같이 일반 대중에서 발병률이 매우 낮으며, 40대가 아닌 성인 초기에 주로 발현되는 유전 질환이다. 굿셀의 친척 중에는 ARVD 증상을 가진 사람이나 CMT나 다른 신경학적 장애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굿셀은 왜 자신에게 이런 희귀한 질병이 두 개나 생겼을지 의문을 품었다.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자 그저 운이 나쁜 것뿐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하지만 굿셀은 '그저 운이 나빠서'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의학적 배경지식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지만 자기 질병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2년간의 조사 작업에 착수했다. 유전학을 독학으로 배우고, 수많은 난해한 논문들을 읽으며 결국 LMNA라고 불리는 유전자에서 일어나는 희귀한 돌연변이를 찾아냈다. 이 돌연변이가 바로 그녀의 심장 질환과 신경계 질환을 하나로 묶어 주는 돌연변이였다. 굿셀은 메이요 클리닉으로 돌아가 자신의 DNA에서 이 특정 유전자 부위의 서열을 분석해 줄 것을 요구했고, 굿셀이 실제로 해당 돌연변이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돌연변이와 거기에 관여하는 생물학적 경로를 알고 있던 굿셀은 그에 맞추어 식생활을 개선했고, 덕분에 증상들 중 일부는 경감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굿셀은 자신의 질병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며, 두 질병을 하나로 묶는 진단은 없다는 의사의 권위적인 말을 떨쳐내고, 결국 대단히 복잡하게 조합된 희귀한 유전 질환들의 근본 원인을 본인이 직접 진단해내었다. 그녀의 의료 참여는 고집과 아는 체가 아닌 끈기와 지식이며, 참여의료의 이상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환자의 의료 참여는 간섭일까 보조일까. 첫 번째 사례에서처럼 환자가 인터넷에서 근거 없는 정보를 읽고 담당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그것은 의사의 시간을 뺏는 간섭일 뿐이다. 그러나 굿셀의 조사와 유전자 분석 요구를 통한 성공적인 진단은 보조를 넘어서 혁신에 이른다. 이것이 환자의 의료 참여를 더 이상 간섭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인터넷 혁신으로 의학 정보의 비대칭성은 점점 해소되고 있으며, 개인 의료기기를 통해 병원 밖에서도 환자가 직접 자기 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디지털 의료 시대가 도래했다. 'Doctor knows best'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의료는 더 이상 공급자 중심이 아니며, 환자 또한 일방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이제 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인 존재이자, 참여의료의 선두 주자이다. 다만 일반인이 올바른 의료 및 의학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가짜 정보에 기반한 참여의료는 정말로 간섭이 되어버릴 수 있으며, 의사가 환자의 의견을 수용한다 해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의사-환자 관계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의료정보, 의학지식, 의학논문의 세계가 아직 일반인에게는 난해한 것은 사실이다. 굿셀처럼 자신의 질병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2년간의 끈기 있는 학습과 조사 작업에 착수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플랫폼을 열고 의학 정보의 비대칭성을 허물어버릴 것으로 기대한다. 의학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와 함께 의료에서의 환자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이며, 환자참여는 부작용 예방, 재원 기간의 단축, 치료 효과의 극대화 등의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평소엔 무관심하던 사람이라도 환자가 되어서는 호기심 많은 아이가 그렇듯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진다. 이젠 아이들도 미지의 자연 속에서 탐구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의학 지식에 있어서는 의사와 비교해 아이와 같은 환자도 이젠 의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진료 및 치료 의사결정에서 의사와 환자는 서로 협력해야 하며, 환자의 의료 참여는 더욱 독려 되어야 한다.
의대생의 '인공지능' 맛보기 2021-06-28 05:45:50
2010년대 중반 등장한 알파고를 필두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 사회 전반적으로 크게 증대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제 단순히 영화에서나 나오는 콘텐츠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산업에서 활용되고 직업을 변화 및 대체시키며 인공지능의 가치관을 판단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 산업에도 활용될 만큼 기술이 발전했다. 의료에서도 다양한 방면으로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 활용될 예정이다. 처음에는 의료 전반적인 보수적인 시각 때문에 인공지능이 도입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고 몇몇 진료과(ex. 영상의학과)에서만 통용될 기술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기술이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가면서 특정 과의 특정 업무를 대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의료계 큰 틀에 변화를 부르는 기술임을 알게 되고 있다. 초창기 의료 인공지능은 학습할 수 있는 창구의 부족이 심했다. 지금은 의료인공지능학회도 생기고 강의도 개설이 되어 일반 의료인들도 쉽게 교육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고 꼭 논문을 읽거나 방대한 양의 개발 공부(ex. 파이썬)를 처음부터 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졌다. 이렇듯 본과 학생으로서 인공지능을 좀 더 거부감 없이 경험해 볼 수 있는 창구 몇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해커톤 및 공모전 참여를 권장하고 싶다. 의료계에 인공지능 바람이 분 만큼 다양한 공모전과 해커톤이 개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SAIHST) 디지털헬스학과와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DHP)가 공동 주최하는 'Digital Health Hackathon'이 있겠다. 메디컬 해커톤으로서 인공지능을 뛰어나게 알지 못하는 본과생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해커톤이다. 메디컬 해커톤의 장점은 인공지능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해커톤들은 팀을 이루어 진행하게 되는데 팀으로서 일하면서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본과생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가 의과대학 학생들로 한정되기 마련인데 해커톤에서라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인간관계를 다양하게 만들고 생각의 넓이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두번째론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단체, 모임 혹은 메디컬 매버릭스처럼 비임상쪽 단체에 참여해 보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자신이 공부하는 것 보다는 인공지능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이다. 또한 보통 이런 단체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연결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새로운 기회를 찾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창구로 소개드릴 것은 '강의'이다. 인공지능도 결국 학문의 일종이다. 강의나 책만큼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해당 학문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다양한 강의가 있지만 입문자로서 경험하기 좋다고 느낀 강의는 'coursera'에서 제공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 강의다. 실제 저명한 대학 교수님들, 머신 러닝의 대가들이 가르치는 강의이니 신뢰도는 아주 높다. 단계를 따라가면서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미니 프로젝트도 있는 경우 나름의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단점이 있다면 강의가 너무 친절해 코드가 기본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주도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초심자의 입장에선 우선 답지를 펴놓고 구현이라도 해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공감은 항상 옳은가…올바른 보살핌에 대한 고민 2021-06-21 05:45:50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공감이 안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몇 주 전 한 수업 중의 팀 프로젝트를 위해 진행한 교수님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마디였다. '환자와의 공감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 자체가 꽤나 진부했기에, 엄청난 답변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무척 싫어한다고 늘 말해온 나였기에, 그리고 학생들과 수업할 때도 한 명 한 명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시며 크고 작은 배려를 보여주신 교수님이셨기에 이러한 답변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어진 교수님의 말씀은 내 고개를 끄덕이게 했고 '공감'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보게 만들었다. 주변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책도 찾아 읽으며 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공감을 바라보게 되었고, 이를 조심스럽게 나눠보고자 한다. 공감은 굉장히 다양한 상황에서 포괄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단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공감을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정의 하에서, 공감은 직접적 경험 없이도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자 인간과 인간을 잇는 하나의 끈 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공감은 그 자체로 인간 존재의 본질적 요소이자 인류에게 내재된 속성 중 하나로 여겨지는데 각종 재난과 재해가 발생했을 때 모이는 성금, 낯선 이를 구해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의인의 모습을 담은 뉴스 등을 보며 우리가 '인류애'를 느낀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공감은 분명 꼭 필요한 심리 작용이고 공감 능력은 인간성의 본질로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나는 공감이 곧 절대선이라고 여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감에 반대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공감에 항상 찬성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공감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선입견과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 이성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절제가 결여된 과도한 공감 능력은 우리를 단순히 더 깊이 공감되는 쪽의 편에 서도록 이끈다. 하지만 어떤 것이 더 공감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더 옳은 것,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공감은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제쳐 두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한 사람을 돕게 하고, 우리의 도움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고 친숙하게 여기는 대상을 돕게 한다. 또 우리의 행동이 장기적으로 만들어낼 효과가 아니라 당장의 감정과 직관에 집중하게 하고, 우리가 공감하지 못하는(혹은 않는) 사람들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다시 말해 때로는 공감이 과도한 피암시성을 조장해 이성적 사고를 막는 눈가리개 혹은 족쇄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감은 정의(正義)의 실현보다는 우리의 초점이 향한 대상에게 돌아갈 이익으로 관심을 돌린다. 공감이 하나의 스펙 혹은 지능처럼 여겨지는 최근, 공감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채로 이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은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나의 의견에 공감해 주는 좋은 사람은 우리 편,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나쁜 사람이자 적' 이렇게 사람들을 둘로 갈라놓은 뒤 반대쪽의 입장은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세상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나의 생각이 반영되는 것이며 이 목표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세상의 부조리 내지는 악이라고 굳게 믿는 이들을 너무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요즘의 세상에는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만큼이나 공감 능력이 과도해서 생기는 문제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시 교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교수님은 당신 스스로도 계속 건강한 상태로 살아오셨고 주변에서 그만큼 아픈 사람들을 본 적도 없기 때문에 환자의 아픔을 잘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환자가 아프다고 말하니 그런 줄 아는 것이지, 어느 정도로 어떻게 아픈지 직접적으로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더불어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공감하는 의사'의 모습을 실제 의료환경에서 보기는 어렵고 직접 그렇게 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므로, 조금 다른 방향으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현재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앞으로 진행될 치료는 무엇이며 왜 이런 치료를 하는지 등을 환자의 눈높이에서 최대한 이해시키고 충분히 설명한 후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얻고 공감대를 이루려고 노력한다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또 환자가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교수님의 능력이 닿지 않는 부분은 솔직하게 미리 알리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학회에 꾸준히 참석하며 개인적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경험도 많이 쌓아서 몇 마디의 적당히 상투적인 위로를 건네기보다는 환자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는 의사가 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환자로 병원을 찾았을 때 "괜찮아질 것이다" 혹은 "그래도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어라" 등의 말을 의무처럼, 무성의하게 건네는 의사 분에게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기에, 교수님의 말이 조금 더 와닿았던 것 같다. 가만히 내 말을 들어주고 함께 그 상황에서 최선을 고민해주는 의사 선생님을 만났을 때 오히려 그 선생님에 대한 신뢰감과 함께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여 주신다는 기분을 느꼈고, 지금보다 분명 나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렇듯 종종 자신의 공감 능력이 훌륭하다고 확신할 때, 정확히 말해서는 공감의 힘을 과신하고 과대평가할 때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내가 당신을 다 안다' 혹은 '괜찮다' 등의 말은 꼭 의사-환자 관계가 아니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든 가볍게 건네서는 안 되는 말일 것이다. 자신이 상대를 다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해 버리고 섣불리 보이는 말과 행동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상대방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위험을 내포한다. 공감 외에도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충분히 많이 존재하며, 실제로 우리는 타인에게 감정이입하지 않고도 타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는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과 슬픔을 똑같이 느끼지 않고도 아이를 도울 수 있다. 인간에게는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도덕성을 발휘할 수 있다. 공감과 이해는 동의어가 아니며, 공감과 선함도 동의어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선한 것들을 필요 이상으로 공감 능력과 연관짓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인류 전체에 대한 보편적인 염려와 같은 거창한 감정부터 시작해 의무감 혹은 자부심, 종교적인 신념 등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사람들은 자신 나름대로의 선함을 행하는데, 우리는 공감에 생각보다 너무 많은 공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인상깊게 읽었던 김경인 시인의 시집 중 이라는 시의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올 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타인의 그늘을 온전히 읽어내려면, 또 환자의 그늘을 올바르게 보살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의 그늘을 다 안다며 성큼 그 그늘에 발부터 내뻗기보다는 '당신의 그늘을 다 알지 못하는 나이지만, 당신의 행복과 안녕을 나 역시 온 마음으로 바랍니다' 라는 마음으로 가만히 그 그늘을 바라보고 보듬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의사가 되는 길, 책임이라는 무게 2021-06-14 05:45:50
2021년 봄, 우리는 본과 3학년이 되었고 어느덧 3개월째 실습을 돌게 되었다. 조금 식상할 수도 있는 주제지만 3학년 실습을 돌게 되면 확실히 느끼는 점이 많은 것 같다. 드디어 선배 의사, 교수님들께서 어떻게 사는지를 바로 옆에서 바라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아진 것은 덤. 분명 선배들은 본과 3학년이 1,2학년보다 쉽다고 했는데… 모든 건 역시 case by case인가 보다. PK실에서는 이제 슬슬 방학이 올 때가 됐는데, 조금 지친다는 투정 어린 말들이 들려온다. 그러던 중 들려온 동기 언니의 말이 의문스러웠다. "나는 그래도 실습 1년 더 돌고 싶어" 개인적으로 PK 생활이 본과 2학년보다 힘든 입장으로서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말이었다. 동기의 주장은 이러했다. "PK는 차라리 모른다고 혼나기만 하면 되잖아. 그런데 인턴부터는 혼나는거 뿐만 아니라 그 책임을 어떻게 져. 나는 그때가도 하나도 모를거같은데."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Do no harm)'라는 말이 있다. 의사가 환자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 우선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말아라 라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신체를 다루는 직업이다.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더라도 그 환자의 건강에 대한 결정(Decision)을 내려야 하는 직업인 것이다. 우리는 의사 면허를 따는 순간부터 환자 건강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 지금의 우리는 한낱 PK 학생이기 때문에 몰라도 괜찮다. 적어도 환자에게 해는 되지 않는다. 그런데 면허가 생기는 순간부터는 달라진다. 우리의 무식은 환자에게 해가 되는 것이다.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께서 해준 말씀이 있다. 아무래도 환자들 중에 중증이 많고, 대부분 암환자이기 때문에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적어도 환자가 나한테 찾아온 것이 내 옆의 의사를 찾아갔을 때보다 더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내면 안된다. 만약 내 환자의 결과가 좋지 않아졌어도, 환자가 나한테 찾아온 것이 그 분에게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또 그런 의사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앞으로 의사가 되는 데에 있어 두고두고 마음속에 새겨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된다는 것은 한 환자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내 결정 하나하나가 그 분의 여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항시 생각해야 하는 점인 것이다. 코로나 백신에 관해서도 병원의 교수님들은 "우리 과에서는 맞아도 괜찮은데 환자분 ~있으시니 관련 과 가서 다시 여쭤보세요~"라고 말씀하신다. 의사가 됨으로써 환자에게 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 신중하고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다시한번 상기하는 순간이었다.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4년 공부의 마지막 마일스톤이라고 생각한다.
환자에게 의사의 말 한마디란 2021-06-07 05:45:50
"최근 항암 약을 바꾸셨는데 이제 이 약마저 내성이 생기면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환자의 의지가 강한 건 알겠는데 이런저런 시도로 몸에 고통 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그저 항암 약이 듣기를 바라는 게…" 최근 한 연예인의 가족이 말기 암 투병 중임을 고백하며 의사의 싸늘한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그의 비판에 많은 사람이 의사의 공감적인 태도의 부족을 꼬집었다. 나는 의사와 환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수강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냉정하게 환자의 현재 상태를 전달하는 것, 그리고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의사로서 올바른 태도인가?' 둘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면 대다수의 의사는 첫 번째를 우선으로 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란 직업은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나의 질병을 낫게 해줄 수 있는 사람, 나와 비슷한 환자를 이미 수없이 많이 보았을 사람, 그렇기에 이 질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흔히 간주 된다. 따라서 의료인의 말 한마디는 환자에게 상당히 절대적으로 간주 될 수 있다. 격려차 건넨 인사가 치료 초기에는 크나큰 희망으로 다가올 수 있으나, 후에 환자에게 마음의 상처로 되돌아올지도 모른다. 얼마 전 방영했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라는 드라마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등장인물 송화는 암 확진을 받을까 걱정한다. 그런 송화에게 익준은 "고치면 되지. 내가 무조건 고쳐줄게"라고 이야기한다. 익준의 말을 듣고 송화는 말한다. "왜 의사들이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하는지 이제 알겠다. 그 말 너무 듣기 좋네. 진짜 어떤 병도 다 낫게 해줄 것 같아, 그 말. 그러니까 환자들한테는 더더욱 그렇게 말하면 안 되겠다. 나중에 혹시 잘못되면, 혹시 결과가 안 좋으면 정말 너무너무 절망할 것 같아." 환자 개개인의 상황은 모두 다르기에 치료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의사는 항상 최악을 생각해야 한다. 아주 낮은 가능성이더라도 치료 후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세세하게 모두 다 설명해야 하고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희망적인 가능성만 환자에게 제시했는데, 희박한 부작용이 환자에게 현실이 되어버린다면 송화의 말처럼 환자는 절망할 것이다. 의학적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좀 더 일찍 부정적인 결과의 가능성을 알게 된다면 남은 생을 더 뜻깊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의사의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의사의 말 한마디는 환자가 앞으로 자신의 여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할 수 있다. 말의 무게를 알고 나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환자의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
의대생이 바라본 비급여 진료비 강제 공개 '근시안' 2021-05-31 05:45:50
의료계는 매분 매초 핫 이슈를 쏟아낸다. 이것들을 쓸어 내고 잘 처리하기 위해서 의사들은 발표되는 정책들에 귀 기울여야 한다. 지난 해 12월 31일, 보건복지부는 '비급여관리 혁신, 국민중심 의료보장 실현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 수립'을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발표가 아닌, 사전에 예고된 발표였다. 모든 국민이 필요한 비급여를 적정 비용으로, 안전하게, 합리적으로 선택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비급여의 급여화와 함께 남는 비급여에 대한 관리를 통한 실질적인 보장성 강화 효과 달성을 목표로 한다. 해당 발표가 있은 후엔 거센 후폭풍이 일어났다. 대한개원의협의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의료계 전반에서 비급여 관리 정책에 대한 강력한 반대 및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장들도 지난달 성명서를 내고 정부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이례적으로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가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우선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의 어떤 부분이 어떤 문제점이 있기에 의료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는지 알아보자.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은 목표 달성을 위해 ▲합리적인 비급여 이용 촉진 ▲적정 비급여 공급기반 마련 ▲비급여 표준화 등 효율적 관리기반 구축 ▲비급여관리 거버넌스 협력 강화 등 총 4개 분야로 구분하여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 4가지의 분야 중 첫 번째 분야인 '합리적인 비급여 이용 촉진'은 의료소비자, 즉 국민의 측면에서 추진 방안이다. 해당 분야의 세 가지의 추진과제를 나열하자면 ①비급여 진료비용 정보공개 확대, ②비급여 진료 사전설명제도 도입, ③ 진료비 계산서&8226;영수증 발급개선. 등이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①과 ②다. 기존의 의료법 제 45조(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고지)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자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제4항에 따라 요양급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 또는 「의료급여법」 제7조제3항에 따라 의료급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의 비용(이하 '비급여 진료비용'을 환자 또는 환자의 보호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고지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 따르면, 병원급 이상의 비급여 가격정보 공개를 의원급에도 적용하고 공개 항목도 확대된다. 또한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종사자로서 의료기관 개설자가 지정한 자가 환자에게 '비급여 진료비 공개 대상 항목(21년 615개) + 환자 요청 비급여(선택)'를 설명하도록 한다. 정리하자면 의원에 새로운 의무가 부과되고 의원으로선 당혹스러운 내용들이 추가된 것이다. 문제점은 우선 직업선택의 자유가 침해당한다. 헌법 제15조에 의한 직업선택의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좁은 의미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그가 선택한 직업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직업수행의 자유(영업의 자유)를 포함하는 직업의 자유를 뜻한다. 따라서 비급여 설명을 의사는 자유롭게 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해당 개정법안이 시행되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또한 정책의 필요성과 유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모든 의료기관은 이미 의료법에 따라 비급여 진료비용을 원내나 홈페이지 고지하고 있다. 환자의 상태나 치료방식, 경과 등에 따라 의료기관별로 비급여 진료비가 다르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데도 이 같은 의료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하게 가격만 비교하는 형태의 비급여 자료 공개 강제화는 의료의 질을 낮추고 국민의 의료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 고질적인 의료정책의 문제점도 여전히 남아있다. 정책 설정과 실행에있어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들고 정부의 사뭇 독단적인 의료정책 제정 및 실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환자&8226;소비자 단체, 의료계 등 각계의 자문과 지속적인 의견수렴을 진행하였으며, 기존의 비급여 관리 관련 제도를 개선하면서, 현장에서 도움이 될 관리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의료 정책을 정함에 있어 의료계 당사자들과 의료 소비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기에 환자&8226;소비자 단체에 자문을 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런 단체가 과연 정치적 올바름을 바탕으로 환자와 소비자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이 같은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부의 자칭 대화와 열린 태도에도 '내로남불'이 만연했다. 정부는 일전의 공공의대 사태에서도 간호사, 의사의 분쟁을 유발하는 발언을 하고 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를 외면하는 등 '열린 태도'라고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비단 공공의대 사태에서뿐만 아니라 이때까지 의료정책에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를 정부가 바꾸지 않는다면, 의료계와 정부 간의 불화는 더욱 깊어져만 갈 것이다. '모든 국민이 필요한 비급여를 적정 비용으로, 안전하게, 합리적으로 선택하여 이용'이라는 정책의 목표는 절대 틀린 것이 아니다. 의료선진국가로서 발돋움하기 위하여,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하여, 한국의 의료 정책은 많은 변화에 맞설 것이다. 허나 그런 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소위 기피과라 불리는 외과 계열,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처우 개선, 공공의료 활성화 및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등. 생각만으로 다소 답답해지는 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뚜렷한 해결방식은 아직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해결방식은 잘 모르겠지만, 아직 부족한 나의 시각으로 볼 때, 해결방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의료계는 좀 더 고도의 협상기술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공공의대 사태에서도 의료계가 보여준 협상의 기술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일각에서는 '공부만 하느라 협상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의사들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편 정부에서는 국가 미래를 위하여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지 심사숙고하는 태도를 배워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병원 운영은 커녕 실습도 돌아보지 못한 예과 2학년이 쓴 글이다. 나의 글이 독자에게 어떤 생각을 심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모든 생각을 존중한다는 말로 끝맺음을 하려 한다. 서툴고 투박한 글 읽어 주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피할 수 없는데 즐길 수도 없다면 2021-05-24 05:45:50
본과 2학년 첫 중간고사가 끝났다. 처음으로 마주한 임상과목들은 결코 자비롭지 않았다. 거짓말이라 믿고 싶은 2만 장에 달하는 강의록을 부여잡고 있자니 어영부영 시험 기간이 다가왔고, 모든 시험이 그렇듯 아쉬움으로 점철된 채 마무리되었다. 교수님들은 '의대 공부는 콩나물 시루와 같다'고 격려해주시곤 한다. 이 말인즉슨 우리의 지식은 매일 물을 부어도 티가 나지 않다가 어느새 쑥 자라있는 콩나물처럼 성장 중이라는 것인데, 시험 직후 내 콩나물들은 끝없이 밀려오는 물에 휩쓸려 사라진 느낌이었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사자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공부한다는 '사슴 공부법'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중간고사 마지막 과목이었던 심장학 시험을 준비하던 밤, 동기들은 우스갯소리로 이미 우린 다리 정도는 뜯어먹힌 사슴이더랬다. 분명 학기 시작부터 사자에게 잡히지 않으려 열심히 달려왔건만 사슴의 종종걸음은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내일부터 또 다시 성킁성큼 찾아올 사자를 피하고자 달려야 한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듣다 보니 나의 주체적인 '하루'는 해가 저물어갈 무렵 시작된다. 저녁을 먹고 공부 더미에 고개를 파묻은 채 최소한 당일 복습을 끝내려 고군분투하다 보면 어느덧 이 짧았던 하루도 다 지나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다음날, 또 다음날이 되는 쳇바퀴 같은 무미건조한 시간을 살아가다 보니 삶 자체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게 된다. 피할 수 없는데 즐길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나눠보자면, 행복에 대한 강박을 버리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당장, 그것도 꼭 매일매일 나의 하루에서 충분한 기쁨을 느껴야만 좋은 삶을 사는 것인가? 그보다는 특별한 행복이 없어도 불행(우울, 불안) 역시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힐링'과 '소확행'이 유행 중이다. 이 두 키워드는 행복, 자기만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보니 행복은 일상에 지속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행복과 불행은 공존할 수 없다는 오인을 심어주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본래 행복이란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일시적인 감정이며, 당연히 행복과 불행은 공존할 수 있다. 고로 즐길 수 없는 상황이라면 행복의 부재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불행의 감정에 잠식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겠다. 초조해하며 콩나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수없이 시루를 들춰보기보다는 평정심을 갖고 물을 주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단,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평정심, 말은 쉽지만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몸속 수분이 커피로 몽땅 대체된 것만 같은 본과 학생들에게 대부분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동요되지 않고 항상 평안한 감정을 유지하는 마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은 매우 비좁다. 매일매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잠시 그 불행의 근원지에서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다. 대신 도망 나온 자신을 '쉽게 회피하는 사람'이라 자책하지 말고, 여유를 갖는 동안 사자를 피해 달릴 전략을 짜는 현명한 사슴이 되길!
"원래 여기선 이래"라는 말의 불편함 2021-05-17 05:45:50
"원래 여기선 이래." 그릇된 일을 하는 친구나 가족을 나무랄 때 되돌아오는 답은 항상 같았다. 물론 내가 그 변명의 진위를 알기는 어렵다. 나는 인생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문화·정신적으로 겨우 '반쪽짜리 한국인'에 불과해서 그것이 정말 이곳의 특징인지는 모르고, 그것이 맞다면 부정하고 싶다. 하지만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나를 이방인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언짢았고, 현상을 핑계로 적당히 얼버무려 넘어가려는 시도가 싫었다. 2020년 3월 16일, 화학 대신 의학의 길을 걷고 싶어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의대를 진학하고 싶다고 가족에게 말씀드렸을 때, 의료 쪽에서 일하시는 작은아버지께서는 격려보다는 우려를 더 표하셨다. "네가 여기 와서 의대 입시를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조금 의아해했어. 여긴 네 성격이랑 정말 안 맞잖아. 이거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거 맞아?" 처음에는 작은아버지의 걱정을 웃어넘겼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오래 보낼수록 그분께서 무얼 경고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개방적인 나와 보수적인 가족들 사이에는 갈등이 잦았다. 곳곳에 있는 위계질서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출하고 싶은 나를 억압했으며 "어디서 감히 훈계질이야?"라는 소리도 여러 번 들어봤다. 이런 갈등은 비단 한국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 것은 바로 집단 내 침묵이었다.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혐오를 목격해도 비판의 소리는 작았다. 명확한 증거 하나 없는 음모론을 친척이 주장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인간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오히려 더 소중한 사람일수록 방관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다행히도 내가 경험한 부조리와 불합리는 그 규모가 작지만, 이따금씩 이곳에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점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있으면, 결국 언젠가는 현실에 타협하지 않을까?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의대에 입학한 이후 나는 왜 내가 지금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명확히 깨달은 것 같다. 의학은 생명의 유지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의대생의 침묵에는 가시적이고 불가역적인 결과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동조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과학적 양심과 윤리적 책임을 가장 우선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 침묵에 저항하는 것은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다. 3월 말, 주변인들이 언론에 의해 심히 과장된 부작용 때문에 옥스포드-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했을 때, 나는 관련 논문과 발표를 인용하면서 백신의 실제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백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하나의 반대가 판을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잘못된 체계를 고치려고 정책을 통과시키려 하셨던 한 의사 분, 의대생들에게 임상이 아닌 진로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리려는 선배들, 느린 실종 수색이 답답해서 스스로 한강에서 수색한 동기, 작년에 홀로 광화문에서 시위하던 친구... 모두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상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었고, 그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더 용기 낼 수 있다.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지 더는 묻지 않는다. 이 사회에 분명 타파할 수 있는 부조리와 불합리가 존재하는 이상, 그리고 그걸 알고 노력하려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 이상, 나는 이곳에서 변화를 함께 만들어갈 의무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내게 부조리를 두둔하기 위해 "원래 여기선 이래"라고 말한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이렇게 대꾸할 것이다. "그럼 나는 원래 이래."
진화하고 있는 미래의료 속 의학과 공학의 연결고리 2021-05-10 05:45:50
에티오피아에서 해외봉사활동 중 팔뚝에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상처를 가진 채 봉사센터를 찾아온 현지인을 만났다. 농사 기구를 다루다가 발생한 간단한 외상으로 생긴 상처를 그대로 방치하여 봉와직염으로 발전했고, 팔을 쓸 수 없게 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봉사단을 찾았던 것이다. 열혈 넘치는 공대생이었던 필자는 환자들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일찍 알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는 안타까움을 느껴 이에 대한 공학적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싶어 의료기기 개발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감사하게도 수준 높은 연구실에서 바이오 센서를 주제로 사람에게 부착 가능한 반도체 전자기기를 설계하고 제작하여 응용하는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스마트 워치 형태의 휘어질 수 있는 밴드를 제작해 땀을 이용해 혈당, 체온, 혈중 pH, 전해질, 스트레스 호르몬 등 인체 항상성 상태를 나타내는 구성 요소를 측정하는 바이오 센서를 설계하고 제작했다. 또한, 블루투스 기술을 이용하여 이를 스마트폰으로 무선 조작하고 결과를 주치의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더 나아가 항상성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 스마트폰으로 조작가능한 약물전달장치를 배에 부착하고 주치의의 처방에 맞게 마이크로 니들에 담지된 약물이 통증없이 투여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하지만 고도화로 집적화되고 복잡한 센서 기술에 대해 연구할 수록, 계속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과연 이 기술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걸까?'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공동 연구하던 의대 교수님께 강의자료를 요청해 관련 내용을 혼자 공부도 해보고 수시로 질문도 드려보았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익히는 의학지식과 실제 환자를 통해 배우는 임상 지식 간에는 큰 간극이 존재했고, 이러한 임상 정보는 오직 자격을 갖춘 의료인만 접근할 수 있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를 계기로 의과대학에 편입한 이후 학생의사 신분으로 병원 실습 중인 요즘, 병원에서 환자들을 직접 보며 느끼는 살아 숨쉬는 임상 지식들은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대학원에서 진행했던 연구의 임상적 중요성에 대해 스스로 다시 평가해볼 수 있었다. 혈당의 경우, 땀을 이용한 혈당 측정 대신 복막 사이질 액을 이용해 연속적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기기가 수년 전부터 병원내에서 사용 중이었다. 전해질의 경우, 혈중 pH와 전해질을 일상생활에서 측정하는 것이 예방의학적인 관점에서 급성 심근경색의 조기진단 인자로서 임상적 의의는 있지만, 이러한 인자에 변화를 보이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일상생활 측정이 의미가 없는 장기간 입원 중인 고령 환자들이었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경우 이를 측정하여 개개인의 면역 정도와 연결시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지만 코르티솔 수치는 하루에도 변화가 워낙 심해서 병원에 입원해서 24시간 동안 측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큰 뜻을 가지고 진행했던 연구가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 과거에 대해 실망스러운 마음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느낀다. 의료현장에 새롭게 적용하여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의공학 기술은 지금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를 세계적으로 선두하고 있는 Northwestern university의 John Rogers 교수 연구진의 최근 연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John Rogers 교수 연구진은 신생아 중환자실의 소아 환자들에게 손바닥 크기만한 패드를 부착하여 활력 징후를 무선으로 측정하고 변화가 나타날 경우 주치의에게 전달되는 기술을 개발하여 2020년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지에 게재했다. 최근에는 피부에 착용 가능하고 땀을 기반으로 낭포성 섬유증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사이언스(science) 자매지에 발표했다. 그 외에도 병원 내의 의료 전달 시스템을 효율화하고 일반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다는 말이 있다. 의료기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괴적인 혁신은 비교적 짧은 미래에 의료 현장은 물론 환자와 건강한 사람 모두의 웰빙 양상을 바꿀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기술의 발전을 실제 현실과 연결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환자와 의료 체계에 대한 이해를 갖춘 의료인이라는 부분이다. 의료인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눈 앞에 다가온 '기회' 혹은 '위기'를 적극적으로 함께 붙잡을 수 있기를 도전하고 기대한다.
"교수님께 여쭤보고 다시 알려드릴게요" 2021-05-03 05:45:50
말과 지식의 무게, 그리고 책임 "교수님께 여쭤보고 다시 알려드릴게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각자에게 다가오는 말의 무게는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한다면 밤 하늘의 별을 따준다는 거짓말까지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병원에서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들의 주치의가 하는 말 한 마디에 많은 두려움을 얻기도, 큰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의학과 3학년에 접어들며, 모든 의과대학생이 그렇듯 나도 PK 실습을 시작했다. 각 과마다 배우는 내용도, 실습에서 하는 활동도 모두 다르지만 대개 외과 계열과 내과 계열로 나누어 각 계열 내에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외과 계열의 실습에서는 수술방에 들어가 참관하는 것이 대부분을 이루고, 내과 계열의 실습에서는 회진, 케이스 발표, 외래 참관이 주된 일정이다. 이 중 케이스 발표는 보통 각 과의 실습 첫날인 월요일, 교수님께서 배정해 준 환자에 대해 학생인 내가 그 환자의 담당 의사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문진 및 신체 진찰을 하고 환자와 질환에 대해 공부하여 발표하는 활동이다. 케이스를 준비하는 동안 환자분께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진을 하다 보니, (그리고 흰 가운을 입고 있다 보니) 환자분들은 우리의 질문에 많은 대답을 해주시고, 더불어 많은 질문을 하신다. 질환에 관련된 내용이나, 검사 결과와 같은 내용은 내가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대답할 수 있지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선생님, 저는 언제 퇴원할 수 있나요?" "약 때문에 식욕이 없는 것 같은데 그만 맞으면 안 될까요?" 위와 같은 결정(decision making)이 필요한 질문들이다. 물론 이 질문들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결정은 주치의인 교수님께서 하실 것이고, 학생인 나의 생각이 실제 진료에 변화를 일으켜 영향을 줄 일은 거의 없다. 이러한 점도 큰 이유지만, 사실 내가 아는 것을 토대로 어렴풋이 대답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이유는 나의 말 한마디로 인해 환자분이 기대감을 가지거나, 실망감을 갖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 해, 그 말에 책임을 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점이 이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내후년에 의사가 된다면 그 때도 두렵다는 이유로, 책임 회피를 위해 대답을 마냥 피해서만은 안 될 것이다. 나의 말에 자신감을 갖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지식이다. 의사의 무지는 환자에게 큰 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많은 지식과 실력을 가진 의사는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환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내 말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그보다 강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지식이라는 근력이 필요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매우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속에서, 환자에게 하는 의사의 말은 그들의 건강과 감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더 큰 중요성을 가진다. 많은 질문들에 대해 온전히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는 의사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만날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많은 지식과 책임감을 가진 의사가 되고 싶다.
뜨거운 스타트업 열기…창업하기 가장 쉬운 시대? 2021-04-26 05:45:50
|메디칼타임즈=김요섭 학생| 온 세계가 스타트업의 열기로 뜨겁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고무적인 성공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어서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다시피 '배달의 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4조7500억원에 매각되었고, '쿠팡'은 미국 상장 이후 5조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으며 '마켓컬리'는 약 5조 규모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수천억 규모의 자금 조달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치과의사 이승건씨가 창업한 것으로 유명한 '토스'는 지난해 매출만 3898억원에 이르며 올해는 약 1조원의 매출을 기대한다. 이 모든 것이 3년내에 일어난 것이다. 예비창업패키지, 청년창업사관학교, 소셜벤처지원사업, 일자리 지원사업 등 정부 각 부처에서 경쟁하듯 쏟아내는 수천만원 규모의 지원사업과 TIPS 등 억대 규모의 R&D 자금이 다수의 초기창업자들에게 풀리고 있는 것도 벤처 창업 붐에 힘을 보태고 있다. 좋든 싫든 단군이래 창업하기 가장 쉬운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성공한 사례들만 보고 헛된 망상을 갖거나, 국가지원사업 수주의 요행을 바라며 창업을 한다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창업을 한다는 것은 마치 늪 속에 빠지는 것과 같아서 뛰어들기는 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나오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공의 열쇠는 늪 깊숙이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어서 손을 뻗을 수록 창업자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뿐이다. 창업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나라 또는 기업을 처음으로 이루어 시작한다는 뜻이 담겨있는데 나라와 기업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능력이 부족한 임금(기업인)이 나라(회사)를 이끌게 되면 국민(임직원)들이 굶어죽는다. 지도자는 나라(회사)가 어려울 때, 능력있는 국민(임직원)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희생해 주길 바라겠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민(이직)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도 국가(기업) 운영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해서 감사히 생각하는 것이 리더로서 올바른 마음가짐일 것이다. 창업 성공의 영광을 누리고 싶다면 실패에 대해서도 온전히 책임을 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관우와 장비가 힘이 약해서 유비의 장수가 된 것이 아니다. 제갈량이 머리가 나빠서 승상 자리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다. 유비가 동료들에 비해 힘도 약하고 머리도 좋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리더였기 때문에 한중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늪에 뛰어들기 전에 기업을 이끌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라.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지켜주길 바라기 이전에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지 살피라." 이것은 열정과 패기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2년 전 나 자신한테 했던 말이다. 이말을 잘 새긴다면 모든 사람이 훌륭한 창업과 성공을 맛볼 것이다.
공부하고 시험치는 반복된 일상 속 '건강한 열심'이란? 2021-04-19 05:45:50
"요즘 하고 있는 취미가 뭐니?" 동아리 담당 교수님께서 자주 물어보시는 질문이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이전 동아리 모임 때마다 교수님은 학생들의 취미를 물으셨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있는 취미에 대해 열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교수님은 취미를 가지라고 항상 말해오셨다. 본과 2학년이 된 필자는 아직도 확실하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 저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는 예과 2학년으로 지금보다 더 여유가 있었을 때였다. 그 여유롭던 시기에는 취미에 대한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취미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본과 2학년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취미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2021년 현재, 본과 2학년의 생활을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2주마다 시험을 치기 때문에 2주 단위로 생활 패턴이 똑같이 반복된다고 볼 수 있다. 항상 첫 블록이 시작된 주 수요일이나 목요일까지 쉬엄쉬엄 강의를 듣다가 두 번째 주 시험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시험이 끝난 후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다시 첫 주의 시작을 조금 여유롭게 보내는 삶이다. 이번 과목이 지나가면 이 과목에 대해 더 자세히 공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험 보기 직전까지 정말 열심히 모든 것을 시험에 쏟아붓는다. 동기들도 하루, 이틀 밤을 새워가며 시험에 모든 것을 쏟는다. 처음 2주간의 패턴대로 살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시험이 반복될수록 이 패턴대로 살기가 버겁다고 느껴진다. 코로나로 인해 더욱 단절된 환경 속에서 정해진 패턴대로 산다는 것은 다시 블록 강의의 첫 주가 돌아왔을 때 다음 블록 강의를 시작하며 산다는 것은, 에너지가 어느 정도 바닥이 난 상태에서 다시 에너지를 쏟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살의 굴곡이 너무 정형화되어 단조로움만 있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모든 에너지를 특정 목표에 쏟으며 살다가 여유가 있는 삶의 구간에서 다시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취미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물론 PBL이나 과제, 시험 등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상에 치이다 보면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여유를 갖기 어렵다. 시험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시험이 끝난 주말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삶의 조그마한 변화보다는 다음 2주간의 패턴을 다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체력을 보충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취미가 있다는 것은, 필자가 취미라고 그냥 일컬었지만 무언가 조그마한 흥미라도 생기는 활동은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다음 2주를 견뎌낼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시험공부로 인해 과부하가 걸린 것 같은 필자의 상태를 다시 원상태로 복구 시켜주는 힘이 취미 활동에서 나온 것을 자주 경험하기도 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가수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와서 한 이야기가 있다. 그 가수는 콘서트 표가 1분 안에 매진 될 만큼 유명하고 그만큼 열심히 제 일을 한 가수다. 그런데 이 가수는 "제가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한 건 일밖에 없구나를 느꼈다. 일만 하느라고 다른 거는 남들만큼 열심히 못 했구나 싶었다. 과연 이게 '건강한 열심'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달라져야 하겠다는 생각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의대생의 본과 생활은 정말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고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동기조차도 열심히 자신의 공부를 한다. 그만큼 의대생 모두 자신의 시간을 대부분 전공에 쓸 텐데 그 열심이 '건강한 열심'이기를 바라고 매번 똑같은 일정에 가슴이 뛰는, 활력을 얻는 그런 활동이 바쁜 일상에 조금이나마 스며들어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는 열심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