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턴도 전공의입니다 2019-03-18 05:30:10
어느 당직 날 밤 1시간마다 동맥혈채혈을 했던 적이 있다. 환자도 밤새 6번쯤 동맥을 찔렸다. 한두 번 반복되니 결과가 궁금했다. 병동으로 내려갔다가 채혈을 하고 당직실로 돌아와서 침대에 눕지 않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환자는 말기 암 환자였다. 채혈 검사는 그 전의 결과와 비교해서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처방도 추가된 것이 없었다. 잠시 후에 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동맥혈채혈 있습니다"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됐다. 함께 당직을 섰던 내과 레지던트의 생각이 아주 궁금한 밤이었다. 대체 무엇을 알고 싶어서 또 처방을 냈을까. 2018년도 수련규칙 표준안에 제시되어있는 정의에 의하면 '인턴'이란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으로서 일정한 수련병원에 전속되어 임상 각 과목의 실기를 수련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턴의 업무는 실기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실기를 수련하는 사람이 실기 중심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행의 인턴 수련 과정은 수련의 측면에서 합리성과는 거리가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는 현장에서 마주치는 흔한 문제 상황 중 하나일 뿐이다. 인턴 업무 과정을 자세히 보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인턴의 업무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레지던트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처방을 내리면 간호사가 확인하고, 인턴에게 시행할 실기의 내용을 전달하면 인턴은 실기를 시행한다. 이러한 업무 흐름 상 인턴은 자연스럽게 의학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핵심인 ‘레지던트가 처방을 내리는 단계’와 ‘실기의 결과를 통해 다음 처방을 결정하는 단계’ 과정에서 소외된다. 심전도, 소독, 채혈 등 인턴이 수행하는 실기는 대체로 난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실기 자체에 능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인턴이 실기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시점부터는 수련이 아닌 근로를 하는 셈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다보니 인턴도 수련을 받는 전공의라는 사실이 등한시되는 모양새이다. 2018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실시한 전공의 수련병원 평가 비교분석에서 수련환경에 대한 인턴들의 의견을 알 수 있다. 각 연차의 학습 과정이 적절하게 구성되어있는지에 대한 항목에서 인턴 응답자 총 934명 중 약 28%인 269명이 '전혀 아니다'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보통'이라고 답한 이는 454명으로 총 응답자 중 77%인 723명이 '인턴의 학습 과정이 적절하게 구성되어있는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현행 인턴 과정을 수료한 의사는 많은 실기에 능숙하다. 그러나 임상적 상황을 판단하여 검사와 처치를 결정하는 의학적 의사결정은 미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학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 실제로 인턴과 레지던트가 바뀌는 3월을 전후로 예비 레지던트를 대상으로 자체 사전교육을 시행하는 과가 점차 늘고 있다. 인턴은 1년간 주 최소 80시간의 수련을 한다. 그럼에도 별도의 사전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결국 이들 과에서도 인턴 학습 과정이 레지던트가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한 때 인턴제 폐지론이 제기되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턴과 레지던트는 일련의 수련 과정이다. 인턴 수련 과정은 적절한 방법을 통해 레지던트 과정에서 수행하게 되는 업무를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실기 수련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인턴 수련 과정에서 의학적 의사결정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새로운 수련이 시작되는 3월이다. 병원 곳곳에서 인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선배 의사들이 병원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인턴들도 전공의이고 피교육자라는 쉬운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 힘든 수련을 거치며 얻은 값진 경험을 인턴에게도 조금은 나눠줬으면 한다. 수련을 위해 내딛은 첫 발걸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을 기대한다.
|칼럼|지금 이곳에서, 의대생으로 산다는 것 2019-03-13 12:00:36
한참 학기가 시작하는 무렵인 3월 초, 슬로베니아의 작은 마을 포르토즈에서는 전 세계 136개국의 의대생들이 모이는 세계의대생협회연합(International Federation of Medical Student Association) 총회가 일주일간 열렸다. 한국에선 나를 포함한 6명의 작은 파견단이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와 나라를 대표해 참석했다. 총회에서는 매일 적게는 40개에서 많게는 60개의 안건이 상정되고 이를 토론하기 위한 낮 시간과 투표하는 저녁 시간이 5일 동안 반복된다. 안건의 종류로는 각 나라의 정부와 국제보건기구와 같은 국제기관 등에 전달하는 정책 제안, 국가 가입 및 퇴출, 헌법 및 회칙 개정, 임원진 선출 등 매우 다양했다. 그 외에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건강 관련 주제들이 낮이나 밤이나 회의장과 식탁에 올랐다. 세계의대생연합협회 총회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점들도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모든 나라가 투표를 하기 전에 안건에 대해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메일 서버를 통해 미리 공유하고 그 자리에서 낭독한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첨예한 정치적 발언들이 오가기도 했고 거의 모든 나라가 동의의 의미로 국기를 들어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 워낙 다들 활발하게 참여하다 보니 일주일 동안 읽은 메일의 수만 하더라도 150개가 넘었다. 또 다른 점은 수많은 의사결정이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민주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안건은 그게 설령 1년 동안 연합을 이끌 임원진 선거라고 해도 가차 없이 폐기하자는 의사진행 발언을 한다. 또한 독자적인 기구인 의결신임위원회와 자문위원회는 총회 내내 모든 사항이 연합이 추구하는 가치와 헌법, 그리고 회칙에 따라 이뤄지는지 감독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세계의대생협회연합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비정부기구가 될 수 있었고 가장 큰 청년 정치 참여 기구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청년 참여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의 분위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각 나라의 정부 및 교육 기관, 그리고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많은 청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이들의 건강을 위해 의대생들은 나름의 책임감을 지니고 오랜 기간 동안 노력해왔다. 반면, 이곳 한국의 의대생들은 우리나라 보건 정책은 물론 학교 내의 의사결정에서조차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있다. 학생도, 의사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앵무새처럼 선배들이 하는 말과 생각들을 따라 하도록 종용받고 이를 벗어나면 가차 없이 낙오자로 낙인찍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학생은 좌절을 경험하고 상처받는다. 총회 내내 가슴이 뛰었던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생채기로 가득한 내가, 사는 이곳의 너머를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의대생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대답하기 어렵지만 분명 어디에선가 노력과 책임감은 자리를 넓혀가고 있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잠을 조금 더 줄여가며 노력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삼삼오오 모여 시작하는 봉사활동부터 매일 쏟아지는 의료 관련 뉴스를 보며 내뱉는 한숨까지 모두가 그들이 조금씩 나아가는 방식이다. 그렇게 한국의 의대생들은 지금 이곳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총회가 자리한 포르토즈 앞 투명한 아드리아해를 함께 산책하며 파견단 중 한 친구가 재밌는 사실을 알려줬다. 거대한 해류는 계산할 수 있어도 자갈 사이로 스미는 작은 물결들은 어떤 방향으로 들이칠지 현대 기술로도 계산할 수 없다고 했다. 만오천 명이 만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작은 물결들이 큰 해류가 되어 어느 순간 포르토즈 앞바다에 닿길 기대한다.
의전원생이 전하는 일본 온천 여행기⑨ 2019-03-05 10:41:56
오늘은 일본 온천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숙소에 도착해서 바로 잠 든 후에 알람도 맞추지 않고 잠에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늦은 오후인데다가 마지막 날이라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않았기 때문에 서두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짧은 여행의 특성 상 늘 아쉬운 점은 숙소를 자주 옮겨 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관광할 거리가 한 곳에만 모여있다면 짧은 일정일 지라도 한 숙소에만 머무를 수 있지만, 이번처럼 여러 장소를 이동할 경우에는 숙소 역시도 매일 옮겨다닐 수 밖에 없다. 물론 숙소를 옮기면 매일 다른 곳에서 머무는 색다른 재미도 있을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늘 유랑 다니는 완전한 여행객으로서의 여행보다는 그 지역에 사는 거주민처럼 하는 느긋한 여행을 더 선호하는 지라 그렇다. 예를 들어서 여행지에 가서 여행기간 내내 숙소 한 곳에만 머무는 경우에는 매일같이 이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서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여유를 부리며 누워서 쉬다가 늦은 오후에 슬리퍼만 신고 주변 마을을 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숙소를 이동해야 한다면 짐도 한 번을 제대로 풀지 못한다. 그 상태로 다시 싸서 다음날 나갈 생각을 하면 차마 짐을 풀어 둘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체크아웃 시간을 매일 확인해서 부지런히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는 처음 온 날처럼 잘 갖춰 입고 짐을 그대로 바리바리 싸서 또 다시 여행객처럼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한다. 이렇게 되면 진짜 그 지역을 편안하게 둘러보기가 힘들어진다. 무거움 짐은 다 내려놓고, 옷차림새도 마음도 편안하게 마을 곳곳 구석까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면 해당 지역의 거주민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삶을 보다 가까이 살펴볼 기회도 생긴다. 이번 여행은 여러 곳을 둘러보겠다는 욕심에 미처 이런 여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다시 온다면 한 지역에 터를 잡고 좀 더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고 싶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는 아침을 먹고 공항에 가기 전에 일본의 한 맥주공장에서 운영하는 투어를 가 볼 생각이었다. 관광객들에게 나름 인기가 많은 코스여서 일찍이 예약이 마감되곤 하는데, 여행 10일 전 쯤 한 타임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바로 예약을 해두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탓에 투어를 한국어로 진행한다고 하여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예약 시간에만 잘 맞춰 갈 요량이었다. 바로 공항에 갈 생각이라 짐을 싸서 시간에 맞춰 노선대로 버스를 타고 맥주 공장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지금 투어에 참여할 수 없단다. 대체 왜 그랬던 건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을 잘못 알고 있어서 예약한 투어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하였고, 단체로 진행하는 특성상 이미 투어가 시작된 후에는 개별 입장이 불가하다고 한다. 투어를 못 하는 것 자체보다 버스를 타고 거기까지 갔는데 그냥 돌아오는 것이 아쉬워 몇 번 더 물어봤지만 이후 타임에 참여하는 것도 불가하다는 답변을 듣고 힘없이 후쿠오카역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텅 빈 일정에 시간도 많겠다 천천히 걸어왔는데,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는지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주변은 잘 구경하지도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식사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서 수차례 검색을 해서 명란 덮밥을 아주 잘하는 곳을 찾았는데 아뿔싸, 내 주머니에 있는 호텔 자전거 키를 발견했다. 오전에 일찍 호텔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탈 생각으로 챙겨둔 건데 자전거 높이가 너무 높아서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었다. 그런데 키를 돌려주지 않고 체크아웃을 해버린 것이다. 결국 맥주공장도 가지 못하고, 원하던 마지막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다시 호텔로 자전거 키를 돌려주러 갔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이도저도 아닌 날이 되버렸다. 아무 일도 없이 무난하게 여행을 마무리 하나 싶었는데 늘 그러지 못하도록 방해할 만한 요소들이 도처에 있나보다. 느긋하게 시작한 하루였지만 고생 아닌 고생을 하다보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공항에 가기 전에 후쿠오카 역에서 크로와상 몇 개만 사들고 비행기를 타러갔다. 마지막 날의 실수로 이번 여행의 즐거움이 반감된 것은 아니다.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며 잘 여행하다가 마지막날 그저 우스운 마무리에 헛웃음만 날 뿐이다.
|칼럼|전공의법이 가야할 길 2019-03-05 05:30:56
아직도 기억에 남는 법대 시험문제가 있다. 복잡한 계약 상황을 주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묻는 문제였는데 각종 난해한 민사소송과 계약이론이 보기로 제시됐지만, 흥미롭게도 정답은 '당사자간의 대화와 타협'이었다. 올해로 시행된지 두 번째 해에 접어든 전공의법은 일선 수련기관의 근로와 수련환경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나 때는 말이야” 라는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전공의들은 이제 스스로의 근로환경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법에서 규정한 기준을 따르지 못하는 수련기관들은 적어도 양심의 가책정도는 느끼지 않나 싶다. 심지어 의료계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도 전공의법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바뀔 수 없을 것 같던 근로와 수련환경의 기틀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한 많은 이들의 헌신과 과도기의 혼란을 묵묵히 인내해준 선배 전공의들의 희생 덕분이리라. 그럼에도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 접수되는 민원 가운데는 전공의법은 고사하고 2019년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 심심찮다. 이러한 회원들을 위해 대전협은 원칙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전공의 교육수련에 관련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수평위)에 정식으로 민원접수를 하시도록 안내하곤 하는데, 문제는 수평위가 익명이나 당사자 본인 이외의 대리 민원을 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감정적 대응이나 찔러나 보자는 식의 음해성 민원이 난무하여 행정력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음에 공감하지만, 잃을 것이 많은 전공의에게 실명접수는 민원창구가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대전협이 민원인에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도움은 전공의 현안에 관심을 가져주는 언론인들의 협조를 받아 ‘크게 터트리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이런 접근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지만 장담컨대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언론화의 즉각적인 효과를 경험해본 전공의들은 12명의 위원 가운데 전공의가 고작 2명뿐인 수평위의 사실상 답이 정해진 논의 과정에 점점 더 회의적으로 되어갈 수밖에 없으며, 사실상 수평위와 동질체인 병원협회나 수련병원협의회 등을 대표하는 교수위원들 역시 대전협을 소위 노조보다 더 독한 녀석들로 여긴다. 서로를 믿지 못하다 보니 대화와 타협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서로 법조문만 내세우는 안타까운 광경이 연출된다. 법은 만능이 아니다. 처음 이 법을 제정하는 데 깊게 관여한 이들이나 수년간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준수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일선 현장에서는 나름의 아쉬움이나 불만이 있겠지만 이를 이유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결국에는 당사자 모두의 손발이 묶여 아무런 기능도 할 수 없는 맹목적인 구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법은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옳고 그름을 가릴 최소한의 준거로 기능할 수 있다면 족하며 전공의법은 적어도 ‘근로’의 관점에서는 당해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본다. 이제는 다시 한번 지혜를 모아 전공의법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공의들의 근로환경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이들이 교육생으로서 충분한 배움 가운데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국 대부분의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은 교육수련병원으로서 배움의 과정에 있는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과 전공의가 진료과정에 당연히 참여해야 하지만, 수련기관이나 주관부처 누구도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의사가 아닌게 들통날까봐 명찰을 가려야 하는 의대·의전원 실습학생, 남학생은 내보내라는 환자들의 요구, 분만개조에 한 번도 참여해보지 못한 인턴, 몇 년차에 무엇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워야하는지 모르는 레지던트는 우리 의학교육의 현 주소이다. 엄밀히 말해 혹독한 근로환경은 개인이 몇 년 참으면 끝날 일이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의사는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우리가 교육에 무지한 동안 의학 선진국은 아카데믹메디슨(academic medicine)을 위해 경주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양질의 교육수련환경을 조성하고 의학의 저변을 넓히며 국민을 위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도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본다면, 이번에는 서로가 법조문을 들이밀고 기자를 찾아다니며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이 공동선과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함께 해야 한다는 다짐에서의 출발이기를 바란다.
의전원생이 전하는 일본 온천 여행기⑧ 2019-02-07 10:27:18
체크아웃을 하기 전에 새벽 온천을 한 번 더 하고 싶어서 아침 식사 시간보다 좀 더 일찍 일어났다. 시간이 넉넉 치는 않았지만 짧게 나마 샤워 대신으로 했는데, 새벽 공기를 맡으며 즐기는 온천은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대충 짐을 싸 두고 정해진 조식 시간에 맞춰서 내려갔는데, 료칸 자체가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총 네 개 호실 손님들을 위한 식사가 각 테이블에 차려져 있었다. 료칸 건축물 특성 상 전체가 나무로 지어졌고 방음이 잘 되지 않는 구조이다 보니 주변 호실 손님들이 돌아다니는 발소리를 듣고 우리 말고도 다른 손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모두가 한가로운 휴식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도 배려해 소란스럽지 않게 하룻밤 잘 지낸 것 같다. 조식메뉴는 각자 아담한 한 상씩 나왔는데, 밥과 조미김, 미소국, 그리고 약간은 생소한 나물들, 해초류, 생선구이, 연근조림 등이 있었다. 원래 생각한 대로 소박하지만 주인 아주머니의 따뜻한 정성이 느껴지는 식사였기에 온천을 하고 난 뒤여서 그런지 더 꿀맛처럼 느껴졌다. 한 상 잘 차려주신 데에 대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후 서둘러 짐을 싸서 어제 내렸던 버스 정류장으로 다시 갔다. 오전 10시 버스로 다음 목적지인 쿠로카와 온천마을에 가기 위해서다. 후쿠오카, 유후인, 그리고 세 번째가 쿠로카와 온천마을인데, 이 곳 역시도 유후인처럼 온천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쿠로카와 마을이 오히려 더 온천마을의 원조이고, 그 형태가 옛날부터 잘 보존되어 있으며 상업화가 덜 되어 있어 유후인보다는 쿠로카와만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필자도 잘 알려진 유후인과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자체의 매력이 있는 쿠로카와 중 어디를 선택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으나, 짧게 나마 두 곳 모두 가보고 싶어서 긴 이동시간을 감수하더라도 가 보기로 했다. 그다지 성수기가 아닌건지, 원래 쿠로카와로 이동하는 버스는 인원이 적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큰 버스에 여섯 명 정도만 탑승한 뒤 버스는 출발했다. 유후인에서 또 한 시간 넘게 더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미처 다 못 잔 잠을 자려고 했는데, 쿠로카와로 이동하는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나무들만 봐도 상쾌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자그마한 휴게소에 잠시 들른 후 곧바로 쿠로카와 온천마을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마을 앞에는 알기 쉽게 영어과 일본어, 한자로 쿠로카와 온천마을이라는 표지판이 크게 있었고, 내리자마자 유후인과는 또 다른 느낌의 매력을 가진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쿠로카와 온천마을은 특이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마을 안에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료칸들이 여러 개 있다보니 방문객으로 하여금 보다 다양한 온천을 즐길 수 있도록 마패를 이용하고 있었다. 마패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세 종류의 료칸 온천을 즐기고 싶다면 일정 금액을 내고 마패를 받아서 한 곳을 방문할 때마다 도장을 받아 최대 세 곳까지 방문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장이 찍힌 마패가 예쁘기도 하고 기념품이 될 수 있어서 많이들 이용하고 있었는데, 필자는 안타깝게도 당일 저녁 버스로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가장 가고 싶은 한 곳에만 보다 오래 머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알아 본 결과 약간은 외진 곳에 있는 료칸을 방문하고 싶었는데, 차 없이는 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료칸 자체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굽이 굽이 산 길을 따라 가니 한적한 곳에 고즈넉한 분위기의 료칸이 자리하고 있었고, 료칸을 구경하면서 내부로 들어가 온천 이용권을 구매했다. 이 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온천을 즐기는 노천 환경이 인위적이지 않으며 풍광이 멋지고,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스팟(spot)도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가서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온천을 단독으로 이용하는 기분이 들었다. 듣던 대로 경치는 너무나도 멋졌고 창문을 통해 바깥 풍광을 보며 온천을 즐기는 실내 온천 역시도 너무나도 좋았다. 시계가 없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지만, 먼 곳에 온 만큼 아쉽지 않게 충분히 즐기고 나왔다. 어제는 작은 료칸 내부의 개인탕을 이용했고, 오늘은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경치와 함께 시원하게 즐기니 또 다른 즐거움이다. 아침 일찍 부지런하게 이 곳까지 온 보람이 있어 다행이다.
의전원생이 전하는 일본 온천 여행기⑦ 2019-01-07 08:59:48
조용한 곳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좁은 골목길 안으로 한참 들어왔기 때문에, 간식을 먹기 위해서는 처음 유후인에 도착했을 때 마주했던 큰 길가로 다시 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온 길을 따라 다시 돌아가면서 골목 사이사이에 있는 집들, 나무들을 구경하였다. 조금씩 사람들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상점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에 이 곳 동네의 지리를 살펴보니 필자가 묵을 숙소가 한적하면서도 관광지에 밀접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보통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간식은 고로케였는데, 대회에서 수상 경력도 있는 탓에 인기가 매우 높다고 한다. 그러나 식사를 방금 전에 한 탓에 고로케 같이 기름 지고 무거운 간식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포슬 포슬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롤케이크 집이 보인다. 그런데 이 역시도 후기가 갈리는 데다 작은 사이즈로는 팔지 않는다고 하여 부담이 돼 그냥 지나쳤다. 무언가 달짝지근한 것이 먹고 싶은데 이거다 싶을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치즈케익, 푸딩, 과자 등등 지역 특산물도 몇 가지 보인다. 그러던 중 ‘아! 저거다!’ 생각이 드는 간식이 등장했다. 바로 녹차 아이스크림이다. 일본은 녹차, 마차 그리고 이를 이용한 음식들이 많은데, 무작정 달기만한 녹차맛이 아니라 약간은 쌉싸름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오묘한 맛으로 관광객들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소프트 아이스크림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까지 더해지니 지금 이순간 후식으로 딱 좋은 간식임에 틀림없다. 진짜 녹차 원료를 재료로 한 탓에 가격은 그리 착하지 않았지만, 한 입 먹어보고 나니 지불한 돈이 그리 아깝지 않은 맛이다. 기대한 바 대로 약간의 쓴 맛과 단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맛이었다. 만족스러운 디저트 하나에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다. 신이 나기도 하고, 약간은 흐린 날씨였지만 저녁에 료칸에 가서 온천을 느긋하게 즐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한참을 골목길 사이로 걷다 보니 유후인을 방문하는 거의 모든 이들이 찾는다는 긴린코 호수가 나왔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새벽에 물안개가 아름답게 피어나 절경을 이룬다고 한다. 조용하고 한적한 주변 산책길을 걷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와 볼만한 곳이었다. 들은 대로 볼 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온천엔 집중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이었다. 료칸으로 돌아가 아까는 뵙지 못했던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 체크인을 했다. 사실 체크인이라고 하지만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며, 대략적인 숙소의 규칙이나 안내에 대해서 설명을 듣는 것이 전부였기에 일본어를 하지 못해도 큰 문제점은 없었다. 나무로 지어진 료칸의 특성 상 걸을 때마다 약간 삐걱거리는 소리가 바닥에서 울려 퍼졌지만, 이런 료칸 체험이 처음이었기에 모든 것이 새롭고 재밌었다. 방 안에서는 나무냄새와 은은한 녹차 향이 났는데, 한 켠에 보니 직접 녹차가루로 내려 마실 수 있도록 정갈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다시 유후인에는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작지만 편안한 노천탕에 들어가서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겼다. 처음에는 뜨거운 온천 물에 손을 대는 것 조차도 힘들었는데, 발부터 조금씩 조심스럽게 들어가니 뜨거움이 따뜻함으로 바뀌고 이내 그 속에 몸을 담구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노곤해진 몸을 온천으로 풀고 나니 더 잠이 잘 올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의전원생이 전하는 일본 온천 여행기⑥ 2018-12-17 11:50:25
버스를 타고 얼마나 달렸을까. 창 밖으로 비슷한 시골 풍경이 반복되자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후쿠오카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산과 들판이 자주 보이더니 완연한 시골 풍경으로 바뀌면서 유후인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유후인 버스 정류장은 기차역과 나란히 있었는데, 기차역에서 고즈넉하면서도 운치 있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비가 채 개이지 않을 때라 그런지 온 마을에 물안개가 내려앉아 있었다.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후쿠오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메인 거리에 들어서기 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말처럼 상권화된 번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짐이 있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기도 하고 체크인 시간이 안 되었기도 하지만 숙소에 미리 가서 짐만 먼저 두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지도를 보니 역에서부터 길게 나 있는 길을 그대로 따라 가면 한 켠에서 쉽게 숙소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찬찬히 주변을 둘러 보면서 숙소로 향했다. 거리에는 소소하게 운영하고 있는 상점들이 많았는데, 주로 치즈 케잌이나 푸딩, 소프트 아이스크림, 롤케잌 같이 질감이 부드러운 디저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은 특히 학용품이나 음식에 있어서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에 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갖가지 재료들을 체에 곱게 거르는 등의 반복적인 과정을 거쳐 엄청나게 부드러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일본 특유의 감미로운 디저트들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통해 방문을 하게 되고, 특히 내가 방문한 유후인 역시도 관광객들의 수요에 맞춰 유사한 가게들이 이곳 저곳 생겨 나면서 유후인 특유의 한가로운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상점들을 몇 번 지나고 나니 지도상으로 숙소 바로 옆에 있다는 롤케이크 집이 보였다. 꽤 유명한 집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옆으로 나 있는 골목길로 들어가니 바로 숙소가 나왔다. 가정집을 개조한 것 같이 보였는데, 안에 들어가니 주인분이 계시지 않아서 거실에 짐을 두고 곧바로 나왔다.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 내로 비가 한 번쯤 더 내릴 것 같아서 가벼운 우산만 하나 챙겨 점심 식사할 곳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인기 식당보다는 유후인의 한가롭고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조용한 식당을 가고 싶었는데, 마을 탐방 겸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니 한옥처럼 생긴 두부요리 집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메뉴판이 온통 일본어라 정확히 어떤 메뉴들을 파는지 감이 잘 오지는 않았지만, 몇몇 메뉴는 그림으로나마 설명이 되어 있는데다가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여서 이끌려 들어갔다. 아직 이른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고, 내부에는 여러 개의 방으로 구획이 나눠져 있어서 예상대로 조용하게 식사할 수 있는 구조였다. 역시나 한국어,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았기에 일본어 사전을 동원해 대충 메뉴를 파악하여 주문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두부를 이용한 요리라면 어떤 것이든 괜찮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사람이 없어서인지 생각보다 빨리 음식이 나왔고, 손짓을 이용해 일본인 종업원이 메뉴에 대해 설명해 주었으나 역시나 알아듣지 못했다. 이게 모두 두부를 기반한 요리라는 것이 신기할 만큼 다양한 음식들이 나왔다. 약간 차갑게 해서 생두부 자체로 먹는 요리, 따뜻하게 데워 다진 소고기를 볶아 함께 곁들여 먹는 요리, 두부를 넣어 말갛게 끓여낸 국, 두부를 만들 때 생겨나는 얇은 막인 유바를 이용한 요리 등등 그 다채로움에 놀랐다. 특히 유바는 말캉한 식감이 낯설게 느껴지긴 했으나 모든 음식이 건강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라 만족스러웠다. 순하고 건강한 식사를 하였으니 이제는 입 안이 즐거워지는 달달한 디저트를 즐길 때다!
의전원생이 전하는 일본 온천 여행기⑤ 2018-11-20 09:13:39
어둑어둑해지니 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쇼핑몰도 빛이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그 옆의 강변에는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후쿠오카도 서울처럼 도시 안에 큰 강을 끼고 있다 보니 강변으로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렇게 포장마차 문화가 많이 발달한 것 같았다. 방금 전에 식사를 한 터라 음식을 더 사 먹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면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배부를 만큼 다양하고 눈과 코를 즐겁게 해주는 음식들이 많았다. 호텔 옆의 쇼핑몰 안에는 큰 분수대가 있었는데, 이 곳에서는 매일 일정 시각마다 분수쇼를 한다고 한다. 쇼의 내용은 주로 만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가 있는 ‘원피스’의 캐릭터들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만화에 큰 관심이 없는지라 잘 모르는 내용이었지만, 관광객들과 특히 아이들이 많이 좋아했고 분수 쇼가 생각보다 규모가 컸으며 퀄리티가 나쁘지 않아 나름 재밌게 보았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카타 버스 터미널에서 바로 유후인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요깃거리만 사서 숙소로 갔다. 유후인으로 가는 버스는 특히 성수기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대에 자리가 없을 확률이 높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간혹 잘 알아보지 않고 가면 하루의 여행 일정이 다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지역을 이동하거나 교통편을 이용할 때는 꼼꼼히 체크하는 편이다. 유후인까지는 2시간 정도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광을 하려면 오전 중에 버스를 타야했기에 짐을 최대한 풀지 않고 잠에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창문 밖으로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보았지만 내심 그래도 최대한 늦게 비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둘째 날 아침부터 비를 맞으며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니 이래저래 걱정이 되었다. 비 때문일까. 행여나 버스를 놓칠세라 불안해서였는지 예상보다 잠에서 일찍 깼고 대충 준비를 한 뒤에 어제 미리 사둔 샌드위치를 들고 서둘러 나갔다. 예상보다 비의 양은 많지 않았기에 한국에서 챙겨 온 가벼운 우산 정도면 크게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햇빛이 나는 날보다는 이동에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비가 더 많이 내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터미널에 갔더니 예상대로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고, 미리 생각해 둔 시간대의 버스 좌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바로 티켓으로 교환을 한 뒤 터미널 안에 있는 노점들을 구경하면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은 더 바쁘고 분주해 보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비 오는 날의 온천. 나쁘지 않다. 오히려 더 좋을 것 같았다. 너무 더운 날, 햇빛이 쨍한 날보다는 이렇게 약간은 흐리고 비가 내릴 때 온천을 하면 정말 노천온천의 분위기가 더 날 것 같다. 우산은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의식적으로 한 번 더 챙기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한국인 반, 일본인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지만 아무렴 좋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유후인 온천마을에 가는 날이고, 버스에도 늦지 않게 탔고 이 정도면 날도 그리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은 것 같다. 누군가는 너무 상업화되어서 이제는 옛날 유후인 마을답지 않다며 아쉬워하는 곳, 그래도 누군가는 아직도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그 곳에 지금 나는 가고 있다.
의전원생이 전하는 일본 온천 여행기④ 2018-10-04 11:14:53
후쿠오카는 공항과 도심까지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편이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도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첫 날 숙소는 후쿠오카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곳으로 잡아 두었는데, 지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첫 날부터 지역을 멀리 이동하는 것 보다는 하루 정도 머물면서 주변 명소들을 구경하면서 지리를 익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심에 위치한 하카타역에 내리니 우리나라의 서울역처럼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하철 역과 기차역, 그리고 버스터미널까지 모두 인근에 있었기에 유동인구가 정말 많은 곳이었는데,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한 곳에서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하카타 역에서는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좋은 냄새가 계속 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무척이나 유명한 크로와상 가게가 역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첫 날에는 잘 몰라서 지나치고 말았지만, 이후에 다시 하카타역 방문하였을 때 나도 사람들의 긴 줄에 동참하여 크로와상 몇 개를 맛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특이하게 개수가 아닌 그람(g) 수로 가격을 책정하고 있었는데, 갓 구운 빵이라서 그런지 입에 넣자마자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대로변이더라도 초행길은 언제나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지도를 보면서 차근차근히 가는데도 대로변에 있다는 호텔을 쉽사리 찾기가 어려웠다. 지도에 건물이 있는 곳은 공사를 하고 있었고, 평소에도 워낙 방향과 위치에 대한 감각이 좀 떨어지다 보니 뻔히 보이는 큰 건물들을 참고로 하는데도 막상 호텔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같은 자리 주변을 맴돌다보니 계속 눈앞에 보이던 건물이 바로 내가 찾던 호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이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미리 지레 겁을 먹었던 건지 바로 앞에 두고도 상호명을 보지 못한 내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겨우내 찾은 호텔로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보통의 일본 호텔들답게 예상대로 좁은 방이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그래도 필요한 어메니티들이 잘 갖춰져 있고 도심 한복판이라는 위치적인 장점을 염두에 두고 고른 곳이었기에 나름 만족했다. 짐을 풀고 누워서 쉬다가 날이 조금 저물어갈 때쯤 저녁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일본식 우동이 먹고 싶어 밖으로 나왔다. 아까 한참 헤매면서 몇 번을 지나다니던 길목이라 그런지 벌써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길이다. 주변에 엄청 인기 있는 일본식 라멘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브레이크 타임과 겹쳐서 식사를 하지 못할 것 같았고, 그래서 다시 하카타역 쪽으로 가면서 이리저리 주변 골목들을 둘러보며 식당을 찾았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현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은 우동집이 보였고, 들어가서 한국어 메뉴판은 없었기에 번역기를 돌려가며 어렴풋하게나마 뜻을 알아차려 주문을 했다. 한국에서 간혹 일본 카레집이나 이자카야, 일식집에 가면 ‘어서오세요’라는 일본어 인사로 반겨주는 곳들이 있었는데 이런 곳을 모티브로 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구나 싶을 만큼 일본의 작은 식당들은 주방에서부터 큰 소리로 손님들을 반기고 있었다.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나는 괜시리 주눅이 들어 눈인사만 하고 말지만, 그들의 친절함에 긴장감은 이내 녹아버린다. 다른 메뉴들은 한국에서도 볼 법한 평범한 것들이라 냉우동에 우엉 튀김을 토핑으로 한 낯선 메뉴를 도전해보기로 했다. 사실 옆 테이블에 보이는 크나큰 우엉을 보고 눈이 간 것도 선택의 이유 중 하나였다. 제공된 쯔유의 양을 자신이 직접 조절해서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짜지 않아서 좋았고, 우엉튀김과의 조합도 신선했다. 여행지에서의 식사는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식당의 문화, 분위기까지 함께 보고 즐기는 맛이 있기에 맛이 비록 기대에 차지 않더라도 그리 아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작은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그런지 비슷한 차림새를 한 이들이 바쁘게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고, 그들 틈에서 나는 행여나 그들에 맞춰 발걸음에 빨라지지 않도록 생각하고 생각하며 더 천천히 걸었다.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일상에서의 하루보다 더 천천히 흐르길 바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의전원생이 전하는 일본 온천 여행기③ 2018-09-07 11:13:12
사실 일본 여행은 갈 때마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우려가 조금 들긴 한다.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간혹 가다 지진을 느꼈다고 하는 관광객들도 있고, 실제로 큰 지진이 난 경우도 있었기에 매번 조심스럽다. 또한 방사능에 대한 우려도 있기에 약간은 찜찜한 마음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계속 여행하려고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일본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들이 많은데, 지금까지는 일본의 제대로 된 온천 지역을 가보지 못했기에 이번 여행은 또 색다르게 느껴졌다. 미리 구매해 둔 버스표를 우편으로 받고, 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유심칩도 주문해서 챙겨두었다.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의 날씨를 미리 체크해보니 비가 3일 동안 올 예정이라고 나와서 예전에 일본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선물해주었던 양산 겸 우산을 챙겼다. Waterfront라는 회사의 제품인데, 무게도 매우 가볍고 디자인도 예쁘고, 무엇보다 양산 겸 우산의 기능이 모두 되어서 아주 요긴하게 써 온 제품이다. 4일 밖에 되지 않는 여행이기 때문에 가방은 최대한 가볍게 하고 캐리어를 따로 챙기지는 않았다.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캐리어가 오히려 짐이 될 것 같았고, 특별히 가져 갈 물건도, 사 오고 싶었던 물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출국 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많이 여행하는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공항이 무척이나 한산했다. 공항에 오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모두들 표정이 가득 담긴 모습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픈 얼굴과, 그리워하던 이를 만나는 기쁨, 그리고 만나기 전의 설렘,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기대감, 긴 여행을 다녀 온 이들의 피곤함, 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한국을 마주하는 이들의 낯섦까지. 사람들의 솔직하면서도 적나라한 감정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공항이 아닐까 싶다. 그 속에서 나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한참 공부를 해야 하는 시험기간은 아니었기에 어떠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차라리 부담감이라 하면, ‘이번 여행을 무사히 잘 마무리해야 할텐데’ 하는 정도의 여행자로서의 얕은 의무감 정도가 더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또 언제나 그랬듯 여행을 앞둔 설렘과 함께 또 한 번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함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감정을 품고 일본 여행을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는 비행 시간이기에 비행기에 올라 앞으로 4일간 머무르면서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지 대략적인 동선을 다시 한 번 되 뇌였다. 이런 저런 상념을 하다 보니 어느덧 착륙할 시간이 되었다. 승무원들이 일본에 도착할 때쯤 되자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라고 나누어 주었는데, 거기에 한 자 한 자 작성하면서부터 벌써 낯선 기분이 들었다. ‘아, 이제 일본에 도착하는구나’ 이런 낯섦이 느껴지는 순간,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보통은 해외여행을 가면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기온차를 가장 먼저 느끼는 데 반해, 일본 후쿠오카의 가을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약간은 더 습하고 기온이 높은 것 같았지만, 이런 요소들보다는 비슷하면서도 무언가 다르게 생긴 일본인들과 조금은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더 실감이 났다. 오키나와에 갔을 때는 한국의 제주도와 비슷하다고 느꼈다면, 이곳은 서울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입국 수속을 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훅 더운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의전원생이 전하는 일본 온천 여행기② 2018-07-20 11:18:37
후쿠오카에 갈 때는 미리 버스표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일본은 교통비가 꽤나 비싸기 때문에 본인의 관광 일정을 고려해서 최대한 가성비가 좋은 교통 패스권을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공항이 있는 후쿠오카에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유후인과 쿠로카와 마을 두 곳을 다 가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각기 개별적으로 표를 구입하는 것 보다는 3일간 무제한으로 특정 지역 내에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산큐패스를 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것 역시도 일본에 직접 가서 사는 것보다 한국에서 여행사를 통해 구입하면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어서 미리 주문했다. 총 5일간의 일정이고 산큐패스를 사용할 기간을 중간 3일로 지정한 후 일본에 도착한 날과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공항 주변인 후쿠오카에서 머물면서 둘러보기로 하였다. 이렇게 대략적인 일정을 정해둔 후에 유후인에서는 어떤 료칸에서 머물지를 살펴보았다. 유후인 자체는 마을이 크지 않아서 다 둘러보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온천을 하면서 대부분의 오랜 시간 머물게 될 마음에 맞는 료칸을 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보통 대부분의 료칸은 식사가 제공되는데, 조식과 석식을 추가해서 신청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녀간 뒤에 남긴 평을 보면서 어떤 곳이 시설, 식사, 서비스 등 차원에서 좋을지 무척이나 여러 곳을 찾아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양이 엄청 많고 다양한 요리가 나오는 것 보다는 일본 요리 답게 소담하게 나오는 가정식 백반같은 식사가 더 궁금했기에 필자가 원하는 스타일에 부합하는 곳들을 위주로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많은 추천수를 누른 곳은 보기에도 멋지고 먹기에도 맛이 있는 화려한 음식들 위주였기에 필자가 원하는 곳을 찾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주인 아주머니가 한국말은 전혀 못 하시고 외국인 관광객에 최적화된 곳은 아니지만, 많지 않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나서 높은 만족도를 보였던 작은 료칸을 찾게 되었고 온천을 이용하는 방식이나 식사를 즐기는 료칸의 분위기가 따뜻하고 소박해서 좋았다. 시골 길 한적한 곳에 위치한 곳이라 조용하게 쉴 수 있다는 점도 주저 없는 선택에 한 몫을 한 것 같다. 이렇게 큰 줄기인 항공편과 함께 숙소를 대략적으로 정해놓고 나니 세부적인 것까지 계획을 짜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어느 정도 변동이 있어도 괜찮을 정도의 느슨한 스케줄로 정했다. 여행의 묘미는 루틴한 삶에서 벗어나 변화와 낯섦을 즐기면서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기에 사전 계획은 이 정도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유후인에서 지낸 후 버스를 타고 쿠로카와 마을까지 이동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버스편을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여러 대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침 버스를 놓치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이동하는 데에도 한 시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오후 버스를 탈 경우 쿠로카와 마을에서 편한 마음으로 온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이번 여행은 온천을 즐기기 위함이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에 다른 요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또 5일이라는 시간이 그리 긴 기간이 아니기에 많은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여행이 이도저도 안 될 것 같아서 휴식과 여유라는 확실한 테마를 염두에 두고 여행 준비를 마쳤다.
의전원생이 전하는 일본 온천 여행기① 2018-07-10 11:11:01
계절이 바뀌면서 조금씩 바람이 차다고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온천이 생각난다. 가을 단풍도 좋지만 그런 단풍을 보며 즐기는 온천은 더 좋다. 겨울에 하는 노천 온천도 나름의 운치와 낭만이 있지만, 온천에 들어가기 전과 후에 추운 날씨를 견뎌야 하는 그 찰나의 시간이 싫어서 적당히 시원하고 선선한 가을날의 온천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좋은 온천을 즐길 수 있지만 학생 때 조금이나마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가까운 곳이라도 해외를 가보자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눈길을 일본으로 돌렸다. 사실 이전에는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최근 몇 년 간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진짜 여행을 가는 기분을 내기 위해서 일본을 자주 방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매번 다른 지역을 방문하다보니 각기 지역마다 너무 다른 느낌이라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기분이 들어서 지루하다거나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본에는 온천을 즐길 만한 지역이 여러 군데가 있어서 어느 정도 지역의 특색을 조금 더 알아 볼 필요가 있었다. 유후인, 고베, 큐슈 등등 온천을 즐길 만한 곳은 생각보다 많았고 여러 검색 엔진을 통해서 알아 본 결과 온천 자체의 특성도 중요하지만 료칸만의 독특한 느낌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을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천은 어딜 가나 비슷할 수 있지만 료칸과 온천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유후인이 마음에 들었고, 물론 다른 곳들도 유사한 체험을 할 수는 있지만 그쪽의 분위기와 정서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일본 온천에 다녀 온 주변 사람들에게 료칸마다 주인의 정성이 담긴 갖가지 가이세키 요리를 맛 볼 수 있다는 점이 온천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자도 온천만큼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이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귀가 솔깃해졌고, 그래서 료칸의 수도 많고 특색이 다채로운 유후인을 가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휴인과 함께 주변에 갈만한 곳을 더 알아보니 유후인에서 한 두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쿠로카와 마을이 있었는데, 여기도 역시 온천으로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여기는 유후인보다 더 작은 마을인데 상업화 시설이 덜 발달해 있고 조용한 분위기의 다양한 노천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유후인보다 오히려 이 곳을 더 선호하는 여행객들도 많았다. 하나의 선택지가 더 생기다 보니 어떻게 여행 일정을 짜는 것이 더 나을지 고민을 거듭하게 되었다. 총 4~5일 정도의 짧은 기간동안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을까 생각했는데 후쿠오카로 도착해서 유후인으로 이동하는 시간, 유후인에서 쿠로카와로 이동하는 시간 등 이동 시간을 감안하여 생각했다. 유후인만 간다면 이동시간을 줄이고 한 곳에서 온천을 오래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쿠로카와 마을도 간다면 보다 다양한 느낌의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이동시간의 부담은 있지만 다양한 온천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커서 두 곳 모두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쿠로카와 마을은 유명한 일본 영화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장소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만큼 일본 특유의 정서가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이다. 그에 비해 유후인은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게 되면서 이런 저런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고, 그래서 볼거리 먹을거리는 많아졌지만 그만큼 예전과 같은 소박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고들 한다. 그래도 아예 방문하지 않는 것은 많이 아쉬울 것 같아 두 곳을 다 가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여행 계획을 짜는 데에 있어서는 더 복잡해졌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만큼은 더 편해졌다.
미국 University of South Florida 병원 실습기⑭ 2018-07-02 11:18:00
어제로 2주 간의 실습이 모두 끝났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쉽겠다 싶어서 주변에 갈 수 있는 명소들을 찾아 보았다. 플로리다 내에서는 주로 해변가가 관광 명소라면 차를 타고 조금만 더 가면 디즈니월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있는 올랜도를 갈 수 있었다. 7살 때 생애 첫 해외 여행으로 미국 LA를 방문했을 때, 디즈니랜드를 처음 가 보고 너무 신기하고 황홀해서 놀란 어린 나 스스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기에 정말 오랜 만에 디즈니를 방문하고 싶었다. 올랜도는 특이하게도 전 세계 디즈니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다른 지역의 디즈니 랜드와는 다르게 ‘디즈니 월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디즈니 월드 안에는 네 가지 종류의 테마파크가 있는데, 이 곳들을 모두 둘러 볼 시간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가장 대표적인 곳인 ‘매직킹덤 (Magic Kingdom)’만 가기로 했다. 사실 어릴 적에는 디즈니 만화영화를 굉장히 많이 봐서 디즈니를 매우 좋아했지만, 크면서 애니메이션에는 점차 관심이 떨어져서 디즈니월드 방문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릴 적 LA 디즈니랜드에서의 좋았던 기억과 그 때의 향수가 비싼 입장권 가격으로 조금 주저하긴 하였으나 나로 하여금 다시 이 곳을 방문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디즈니의 캐릭터들과 OST들은 누구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 디즈니에 들어서자 넓은 매직킹덤을 쉽게 오갈 수 있게 하는 디즈니 열차와 랜드마크인 하늘색 신데렐라 성이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어린 나였다면 놀이동산 자체가 그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었겠지만 날이 너무 더운 날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도 필자가 방문한 날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던 지라 햇빛이 그리 뜨겁지 않았다. 디즈니의 장점은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아 놀이 기구의 표준 대기시간이 매우 긴데도 불구하고 패스트패스 (fastpass)라는 제도가 엄청난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 시간대 별로 정해진 인원의 방문객들에게 놀이기구를 오래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탈 수 있게 우선권을 주는 것으로, 선착순으로 마감되기 때문에 미리 예약제도만 잘 활용한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디즈니월드를 즐길 수 있다. 필자는 디즈니 월드에 가는 것을 바로 전날 결정하게 되어 티켓을 매우 늦게 구매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날 오후부터 간간히 다른 사람들이 취소하거나 변경한 건 수가 꽤 있어서 비교적 원하는 시간대로 패스트패스를 등록할 수 있었다. 디즈니의 개장은 보통 8시인데, 여름에는 저녁 9시에 디즈니월드의 가장 크고 사랑 받는 행사인 불꽃놀이가 있어 그 때까지 하루 종일 있기에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될 것 같아서 10시 정도에 입장했다. 그래서 미리 예약해 둔 시간에 맞춰 놀이기구를 탈 수 있어서 그리 힘들지 않게 즐길 수 있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정말 많았는데 아시아인은 거의 찾기가 힘들었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눈높이에 맞춰 디자인된 놀이동산이기에 자칫 어른들이 보기엔 다소 재미 없고 유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어릴 때의 추억과 더불어 디즈니 만화를 너무나도 좋아했기에 디즈니 캐릭터들을 모티브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을 4D로 보는 기구 하나에 뭉클함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예보대로 중간에 소나기가 와서 이동이 잠시 힘들었지만 이내 그쳐서 큰 문제는 없었다. 저녁 8시 부근이 되자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명당을 찾아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해가 지면서 거의 모든 방문객들이 신데렐라성 주변에 가득 자리했다. 디즈니 테마에 맞춰 만화 OST에 따라 마치 춤을 추듯 한 폭의 그림같은 불꽃들이 이어졌고 모두들 황홀한 그 순간을 만끽하며 감상했다. 전 세계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디즈니라는 매개체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환호할 수 있음이 놀랍기도 하고 행복을 더해준 것 같다. 다시 언제 또 디즈니를 방문하게 될 지 알 수 없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미국 University of South Florida 병원 실습기⑬ 2018-06-12 06:00:00
오늘은 실습의 마지막 날로,Veterans hospital에서 참관을 하였다. 금요일에는평소와는 다르게 rhinoscopy clinic이 열리기 때문에 이를 참관하도록 했는데, 주로 이비인후과에서 rhinoscopy를 하는 반면, 이곳에서는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께서 이비인후과를 전공하신 경력이 있으셔서 fellow들에게도 새로이 교육을 하여 환자들에게 rhinoscopy를 시행하고 있었다. 특히 현재 USF에서 진행 중인 연구가 nasal polyp에 대한 것인데,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비내시경을 해야 보다 용이하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알러지가 있는 환자들은 한 번쯤 코 안에 용종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을 권고 받았다. 그래서 진료를 통해 비내시경을 받기로 결정을 하면 매주 금요일 마다 진행되는 rhinoscopy clinic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다. 당일 Rhinoscopy를 받는 환자 수는 3명으로 볼 수 있는 시술 건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환자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함께 천천히 진행되어서 참관하는 데에도 더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저번 주부터 지금까지 실습을 하면서 느낀 바로는 한국과 미국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았고, 2주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교수님들과 fellow들이 도와줘서 빠르게 적응을 하고 진료를 함께 볼 수 있던 것 같다. 마지막 날이라 다시 옵저버쉽 프로그램 담당자를 만나서 debriefing 시간을 갖고, 또 담당 교수님을 뵙고 그 동안 실습하면서 궁금했던 점과 느낀 점들을 이야기하면서 마무리를 하였다. 가기 전까지는 막막한 점도 많고 불안하고 걱정도 많이 되었는데 다행히 무사히 경험하고 마친 것 같다. 실습하기 전에는 자세히 몰랐는데,참관을 하며 이곳의 교수님들이 대단히 실력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실제로 미국 동부에서 한 달 간 visiting physician으로 와서 근무하고 있는 레지던트가 이 곳의 프로그램이 알러지 내과 분야에서 매우 체계적이고 좋은 quality를 자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내가 느낀 바가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실습 일정이 다 끝난 후 담당 교수님을 처음 만났던 장소로 다시 가서함께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다시 인연이 되어 교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 때는 내가 원하는 전공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즐기며 일하는 멋진 의사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그 자리가 어디가 되었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을 것 같다.
미국 University of South Florida 병원 실습기⑫ 2018-06-01 12:00:10
오늘의 staff lecture는 severe asthma가 주제였다. 이는 hard to treat asthma라고 불리기도 하며 말 그대로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심한 천식을 일컫는다. 천식을 가진 환자들 중에서도 어떤 기준을 갖고 severe asthma로 진단을 내리는지가 일단 중요하고, 이어서 진단 후에는 보통의 천식과는 어떻게 구분해서 다르게 치료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내용이었다. 보통 천식이라고 하면 호흡기 내과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보통 알러지가 있는 경우 천식으로 발현할 확률이 높아지고 특히 소아의 경우 아토피나 알러지를 보유하는 경우 성인이 되어서 천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알러지 내과 차원에서 관련성이 큰 천식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오전 컨퍼런스 후에 오늘은 LFLG클리닉에서 알러지 내과의 주임교수로 계신 Dr. Lockey의 외래에 참여하였는데, 환자들에게 모두 필자를 소개시켜 주며 환자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환자 중에는 Dr. Lockey와 나이가 같은 분이 있었는데, 이 분과 Dr.Lockey는 정말 친한 친구처럼 보였다. 환자와 의사 간의 관계를 떠나서 오랫 동안 잘 알고 지내다 보니 함께 나이 들어가며 버팀목처럼 의지하는 관계가 된 것 같았다. 이런 점은 아무래도 미국 내 특이한 점인 본인이 은퇴하기 전까지는 은퇴해야하는 나이가 정해지지 않다는 점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보던 환자들을 나이가 들어서까지 진료할 수 있게 되니, 비슷한 나이대의 경우에는 함께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같은 동반자 관계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물어가며 챙기는 모습이 너무 부럽고 또 좋아 보였다. 환자들은 의사들의 질문에 대해 친절하게 답변했고, 무엇보다 참관하는 학생에 대해서도 꺼려하지 않고 오픈 마인드로 반겨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낚시를 좋아하시는 Dr. Lockey가 플로리다 해안가에서 가져온 갖가지 조개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주시며 선물로 주셨는데, 환자에게 베푸시는 친절이 일상에서부터 몸에 밴 것 같았다. 본인의 손자와 함께 매 주말마다 낚시를 간다고 하시며 함께 찍은 사진들을 진료실 안에 가득 걸어놓으셨는데, 지금까지 받으신 상장만큼이나 많은 사진들에 엄청난 손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