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명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2020-02-24 09:29:06
|을지의대 의학과 4학년 김기덕| "여러분들은 왜 의사가 지금만큼 돈을 번다고 생각해요? 의과대학에 온 이상 몇 년이 걸리든 여러분들은 의사가 될 것이고, 의사가 아닌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들을 거예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그 친구들과 멀어질 수도 있고, 여전히 잘 지낼 수도 있다. 그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고민해보세요“ 본과 2학년 환자-의사-사회 시간에 강의를 들어오신 교수님께서 처음 하신 질문이다. 보건 정책 관리(Health policy and management)를 전공하신 교수님께서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대로의 대답을 원하고 이런 화두를 던지진 않으셨을 것 같아 꽤 긴 시간 생각에 잠겼다. "의대생은, 의사는 오랫동안/많이 공부하잖아" 주변에 많은 의대생들이 해당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다. 글쎄, 노력과 투자한 시간만큼의 결과를 주는 세상은 동화 속에나 존재한다. 열심히, 많이 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재수와 의과대학 생활을 거치며 충분히 깨달았다. 의대생과 의사들만 공부를 오랫동안, 많이 한다는 말에도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살면서 봐온 많은 공학 계열과 인문 사회 계열의 박사님들도 의사만큼이나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공부를 했다. 또 의사들도 그들 내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오래 한 사람이 꼭 더 많이 벌지 않는다는 데에 동의를 할 것이다. "의사는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직업이고, 생명의 가치에 따른 보상을 받는 법이다" 의사는 병원이라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현장을 책임지며 진두지휘하는 사람이다. 현대 사회에선 본인이 창출하는 만큼의 가치에 대해 보상받는 법이고, 생명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는 의사는 그에 대응하는 보상을 받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 생명은 고귀한 가치인 만큼, 동시에 보편적인 가치여야 한다. 모두가 영위할 수 있어야하는, 그러나 공급자에 충분히 그에 대해 보상해야 할 만큼 고귀한 생명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둘.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 따르는 보상이라면, 왜 우리나라에서 생명의 가치를 가장 최전선에서 직접 실현하는 바이탈과의 의사 선생님들에게는 적은 보상이 따르는 걸까. 셋. 마찬가지로 함께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간호사를 비롯한 다른 의료 활동 종사자들은 왜 조금은 다른 보상을 받게 될까. 각각의 주제만으로도 왜 그런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지면의 한계로 글을 줄인다. "그럼 지금 의사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어떻게 결정이 될까" 사실 어떻게 보면 간단하고, 어떻게 보면 어려운 문제다. 의사들의 평균 수입을 결정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면허라는 배타·독점적인 권리, 다음으로는 사회적 결정 요인들인 경상 의료비, 그리고 총 의사의 수. 면허라는 배타·독점적인 권리를 의사에게만 주는 이유가 있다. 위에 서술한 생명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실현함에 있어, 그 고귀하고 중요한 가치를 아무렇게나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위해 의학교육인증평가, 의료기관평가인증을 비롯한 여러 엄격하게 그 질을 관리하는 제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총 의사의 수를 제한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우리 사회의 한정된 재화와 용역을 투자해 가장 효율이 좋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하기 때문이다. 뢰머의 법칙을 비롯해, '더러운 손의 의사들'과 같은 의사 유인 수요에 대한 이야기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의사는 불필요한 의료비만을 증가시킬 뿐이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서남대 사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그렇게 많은 의사들을 길러낼 교육기관을 운영할 여력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경상의료비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결정이 되는 편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 그리고 실손 보험. 결국 국민들이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의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고 수준의 의료를 실현하지만, 여전히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경상의료비를 부담하는 나라에서 건강보험료 3% 상승은 올해도 국민들이 분노할 만한 일인 듯하다. "앞으로는 어떨까" 나는 OECD health at a glance를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보는 편이다. Outlier에 따라 변화하고, 의료의 수준을 반영하지 못하는 평균은 집어던지고, 우리와 의료 수준이 비슷하거나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몇 나라의 지표들을 보자. GDP대비 경상의료비(Health expenditure as a share of GDP). 미국, 16.9%. 일본, 10.9%. 영국, 9.8%. 한국, 8.1%. 우리의 눈높이에 맞는 진료를 위해서는 1.2배는 더 지불해야한다. 국민들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국민 1,000명당 의사 수(Practising doctors per 1,000 population). 미국, 2.6. 일본, 2.4. 영국, 2.8. 한국, 2.3. 그리고 증가 추세는 상위에 있는 우리나라. 동의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의사의 수입은 의사가 결정하는 걸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25인 중 4명 남짓한, 16%의 의사가 보험 급여를 결정할까. 미용과 비급여 시장의 의사의 손은 과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의 팔씨름을 이길 수 있을까. 의사는 왜 돈을 벌어야 할까. 당신의 생명의 가치는 얼마인가. 당신은 당신 주변의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나. 당신은 당신이 의사가 아니라도 납득할 수 있는가.
제2의 이국종 교수가 필요없는 사회를 기다리며 2020-02-19 19:59:59
|전남대학교 본과 2학년 이윤건| 한 달 전 2020년 1월 13일,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의 병원 내 위치를 공공연하게 보여주는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4~5년 전의 녹취록을 지금 공개하는 것이 과연 병원과의 갈등 해소를 위한 옳은 방법이냐는 주장도 있고, 이유를 막론하고 한 병원의 의료원장이 센터장에게 욕설과 막말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래도 이미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외상외과의 제도적 개선에 있어서도 '영웅'인 이국종 교수님이기에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아주대병원에 대한 비난이 큰 편이다. 하지만 이 논란은 의료원장과 센터장의 갈등 그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옛말에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위 격언에 빗대 보면 '영웅'이라고 부를 만한 이국종 교수님의 존재는 지금이 '난세'라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영웅'의 존재보다는 '난세'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맞게 돌아가고 있는 사회였다면, 애초에 이국종 교수님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국종 교수님은 외상외과의 제도 개선에 관한 이해 충돌에 엮이지 않고 수많은 외상환자를 살린 명의 정도로 세상에 소개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어야 정상적이고 올바른 사회이다. 때문에 지금은 ‘난세’ 라고 칭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난세’는 어떻게 하면 고쳐질 수 있을까. 필자는 여기서 전공 외의 트랙을 걷는, 딴 짓 하는 사람의 중요성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의료계가 어떠한 상황인지 직시할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의료 행정 전문가가 의료 공급의 체계를 바꾸고, 국제보건, 공공보건 전문가가 의료 공급의 대상자를 넓히고, 의료 현장을 느껴본 작가와 기자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그런 과정이 있어야만 정말로 올바른 형태의 의료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영웅'이 필요 없는 사회라고 믿는다. 이것은 다른 직종에도 해당되지만 의료계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의사의 수가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환자의 수와 비교했을 때 결국 의사는 소수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정책가가 많은 사람에게 환영 받기 위해서는 당장에 의사보다는 환자를 위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외상외과, 흉부외과 등의 기피과 처우 개선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부담이 계속 의사에게 지워진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정말로 의료 현장을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가 행정&8729;언론&8729;문화&8729;법률&8729;공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료인의 관점에서만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주어 균형 잡힌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국종 교수님 같은 실력 있고 열정 있는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것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신세한톡|오늘, 여러분들의 정신건강은 안녕하신가요? 2020-02-17 11:34:27
|아주의대 의학과 4학년 조승현|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이 떠올랐던 때가 종종 있었다.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었던 나의 죽음과,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상했을 누군가의 죽음이 자연스럽고 무책임하게 떠올랐다. 나 자신과 내 삶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로서 이성적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 실체를 보였을 때는 이미 속수무책이었다. 문제의 원인은 연초부터 망가져온 성적과 그로 인한 시험 부담이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우울의 끝자락에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시험은 내 불안을 끌어올리며 매시간 매분 경종을 울렸다. 나는 당장 눈앞의 시험이라는 관문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숴 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부서질 테니. 투쟁도피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은 견주어 볼 만한 상대와 '싸우거나', 거대한 상대에게서 '도망치거나'의 두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선택 하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과도한 업무와 사고에 치인 스트레스 덩어리 앞에 정상적으로 놓인 선택은 없었다. 알몸인 채로 눈앞에 호랑이를 만났다면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치고 싶은 상황 속에서 흐르는 시간은 나를 그 필패의 장으로 몰아넣는다. 그렇기에 그저 시험이 미뤄지거나 미뤄졌으면 하는 기대뿐이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는 방법은 시스템을 뒤흔들만한 비정상적인 사건뿐이었다. 영겁의 시간이 흘러 시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경멸하는 쨍한 햇발 아래 멈춰서 구역질을 해댔다. 진의를 떠나 터무니없는 생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했음에 자괴감을 느끼며 있는 힘껏 내 머리를 후려쳤던 기억이 난다. 그 즈음 나는 붉은 깃발을 열심히 흔들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적으로 고통 받는 상황 속에서 정신과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개념조차 이루지 못했으며,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의대생인 이상 힘들다는 푸념을 털어놓아도 공감해줄 리가 만무했다. 부모님께 휴학에 대해 언급하며 내 상황에 대해 피력했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저 열심히 하라는 말뿐이었다. 다행히 존경하는 지도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잠시 말씀을 나누며 마음 챙김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회고할 수 있는 흉터로 남았지만 어디에 쉬이 털어놓기까지 반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다만 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비단 개인적이라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주변에는 스트레스성 질환을 앓는 수준을 떠나 정신과 약을 처방받는 친구들이 늘어 그 수를 양손으로는 세기 어려워졌고, 페이스북 익명 커뮤니티에는 심심찮게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온다. 병원에 가고 싶지만 기록에 남아 당신의 커리어에 흠집이 날까 걱정이라는 글 말미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이 미어지게 억장을 울렸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 '힘들다'는 주관적이고 마법 같은 단어는 작금의 시대 속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자가 면역돼 쉽게 털어놓는 것조차 터부시 돼왔다. 더구나 의과대학에서의 삶은 자명하게 구성원 모두가 힘들어할 텐데 어찌 나 혼자 유독 더 힘들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어린 투정과, Red flag sign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게워낸 대답 없을 외침이 보일 때마다 매번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우리의 정신건강은 그 누구도 신경 써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질환이 없다고 모두가 건강한 것은 아님에도,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클리셰가 될 만큼의 사회적 분위기를 구성원 모두가 만들어낸다. 누가 힘들지 않겠냐며 버티고 열심히 하라는 핀잔은,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이에게 나약하다는 꾸중밖에 던지지 않는다. KAMC(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 왕규창 회장 임기 시절인 2007년에 의과대학생들의 정신건강에 관한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임기가 끝나기 바쁘게 이슈도 함께 마무리 됐다. 구글에 확연히 줄어있는 검색 결과가 생각보다 당연하게 이를 증명한다. 우리의 정신건강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과연 조금 더 안녕해졌을까. 그리고 여러분들의 정신건강은 오늘, 안녕하신가요?
뿌연 안개 속의 국가고시 실기시험 2020-02-03 05:45:50
2020년도 의사 국가시험도 막을 내렸다. 1월 필기시험을 마지막으로 의사 국가시험을 끝내고, 합격한 학생들은 대부분 인턴 준비에 한창이다. 그러나 매년 그렇듯, 어떤 시험에서나 그렇듯, 의사 국가시험에도 불합격자들은 존재한다. 이들이 불합격한 원인은 무엇일까? 모두 노력이나 역량이 부족했던 것일까? 의사 국가시험(이하 '국시')은 실기시험과 필기시험 두 형태로 나뉜다. 이렇게 나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9년, 부족한 임상 실습을 개선하고 필기시험과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하며 새로이 도입된 것이다. 도입 첫해부터 소송에 휘말리던 실기시험은 10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고 매년 개선을 해나가는 중이다. 2017년에는 의과대학생 및 의사 6인이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CPX(표준화 환자 진료) 6문항의 각 항목 ▲OSCE(단순 수기 문제) 6문항의 각 항목 ▲ 각 항목별 합격/불합격 여부 ▲항목별 응시자의 점수 ▲OSCE의 각 항목별 체크리스트 정보를 공개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OSCE 항목별 체크리스트를 제외한 나머지를 공개할 것으로 판결내렸다. 이에 따라 2019년도부터는 실기시험 각 항목에 대한 합격/불합격 여부를 공개하고, 응시자 취득점수와 합격선을 공개했다. 2020년도 제 84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에서는 이의제기 제도를 최초 도입하기도 했다. 그 전까지 불합격자들은 왜 탈락했는지도 모르는 데다, 억울한 점이 있어도 이의신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선에도, 국시 응시대상인 의과대학생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는 현실이다. 체크리스트의 비공개, 여전히 불충분한 피드백 기회 등이 대표적인 미해결과제들이다. 우선, 체크리스트가 공개되지 않은 이상, 구체적인 채점 기준을 알 수 없어 준비하는 데에도 모호함이 있고,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도 알기 어려운 것은 여전하다. 합격선과 취득 점수가 공개되더라도, 본인이 어떤 특정 행위를 해 그 점수를 취득한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점수공개로 일명 '깜깜이 시험'의 누명을 탈피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 입장에서는 뿌연 안개 속에서 준비하는 기분이다. 어떻게 해야 맞는 것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불안감 속에 시험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체크리스트 항목에 대한 평가를 내릴 시에 평가 교수의 해석이 다를 수도 있고, SP(표준화환자)의 실수나 집중력 부족, 주관 개입 등으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보완장치도 없다. 피드백을 할 기회조차 없었고, 시험결과 재검토나 CCTV 검증은 국시원 측에서 공개할 수 없다고 명확히 밝혀왔다. 올해 처음 도입된 이의제기 제도는 범위도 '전산오류', '합격 여부 오류', '실기시험 진행과 관련된 명백한 오류'로 한정돼 있고, 이마저도 형식적이고 홍보 및 안내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시원에서는 실기시험이 절대평가라고 하지만, 항목별 합격선이 다르고 최종 합격선에 대한 심의과정이 투명히 공개되지 않아 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국시 실기시험이 매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시원에서 여러 소송이나 민원을 반영해 개선한 점도 많고, 앞으로도 CPX와 OSCE가 통합되면서 더욱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응시생들에게 남아 있는 여러 의문점들을 보면,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국시원에서 발표한 의사 국가시험[실기] 평가목표집 (2015.6.30.)에 의하면, 의사 국가시험[실기]의 평가목표는 궁극적으로 '역량을 갖춘 의사(competent physician)'를 배출함으로써 의료서비스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라면 올바르고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공부하고 부족한 부분은 수정, 보완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공부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도 없으며, 학생들은 국시를 합격하고도 어떤 점이 부족했었는지 알지 못한 채 의사가 돼버릴 수 있다. 이는 국시원에서 발표한 실기시험의 궁극적 목표와도 맞지 않으며, 불명확성으로 인해 기존의 도입 목적인 '부족한 임상 실습의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의대생들이 정확한 내용으로 공부해 환자들도 더 안전하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우리와 선배들, 후배들이 더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신세한톡| '김사부'가 아니면 안 되는 병원 2020-01-27 05:45:50
얼마 전 낭만 닥터 김사부 시즌2가 시작됐다. 시즌1을 재미있게 보아서 시즌2 시작 소식에 기대를 품고 첫 방송을 보았다. 비현실적인 트리플 보드, 김사부의 실력은 여전히 드라마틱했고 돌담 병원도 인간미가 넘쳤다. 의사를 꿈꿀 때나 의사로 일하고 있을 때나 의학드라마는 여전히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조금 변했다. 시즌1이 방영된 2016년 겨울에 나는 인턴이었다. 병원에 발을 들이고 환자들과 마주한지 겨우 6개월 밖에 되지 않는 초자 의사였고, 공부를 핑계로 잠깐 소홀했던 의사로서 열정과 낭만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 때 김사부는 나의 열정과 낭만에 불을 지피는 존재였다. 시즌 1에서 김사부는 항상 '의사'이다. 개인의 삶은 없고 환자만 생각한다. 신의 손이라 불리면서 성실하기까지 하다. 성실함은 언제나 병원에 상주를 하는 형태로 표현됐다. 응급실 침대에서 자다가 환자가 오면 일어나서 진료를 하는 모습,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에 대해 24시간 내내 집도의, 주치의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전공의 법이 시행되기 전이었던 2016년 당시에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내 생활을 그나마 자랑스럽게 만들어주는 마약 같은 드라마였다. 3년이 흘렀고 김사부와 돌담 병원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변했다. 위험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김사부보다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의사, 박민국에 더 관심이 갔고 그 장면은 어딘가 많이 불편했다. 비가 쏟아지는 밤 버스 전복사고가 발생했고 폭발의 위험이 있다며 탈출을 재촉하는 아우성 속에 김사부와 박민국이 비춰진다. 박민국은 인정받는 외과의로 나오지만 김사부와는 대립의 각을 세우는 인물이다. 그 이유가 이 버스에서 시작된다. 전복된 버스에서 김사부는 탈출하지 않고 쓰러진 승객의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고 있었고 박민국은 탈출하려던 와중에 그 장면을 본다. 그리고 탈출을 선택한 박민국은 의사로서 사명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마치 의사로서 고개를 들지 못 할 일을 한 듯한 박민국의 표정을 보는 순간 3년 전부터 불편했어야 했던 드라마의 내용들이 떠올랐다. 김사부는 시즌1부터 시즌2까지 24시간 365일 당직이다. 돌담 병원에 응급이 생기면 환자를 볼 사람은 한 명이기 때문에 응급 환자가 없어 드라마에 나오지 않았던 날에도 그는 병원에서 30분 이상의 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김사부가 본원에 올라가는 날이면 돌담 병원 주변에서는 아픈 사람이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재단과 본원에서는 인력 보충에 관심이 없다. 수익성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겨우 충원되더라도 본원에서 쫓겨나듯 전출되는 형태이다. 이런 시스템은 김사부를 영웅으로 만들기에 딱 좋은 전제 조건이었다. 드라마는 시스템이 잘 못됐다고 목소리를 내는 대신에 현실에 있을까 말까 하는 김사부를 칭송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드라마이니까,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덤빌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전복된 버스에서 탈출하는 의사를 도망치는 겁쟁이처럼 그려낸 연출에는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다. 심정지 의심되는 환자를 발견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장 안전 확보이다. 2015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서도 반응확인 전에 현장의 안전을 확인하고 접근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고 응급의학 교과서에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폭발의 위험이 있는 곳, 붕괴의 위험이 있는 곳, 또는 바닥이 젖어 있어 제세동기 사용 시 감전의 위험이 있는 곳 등을 피해 심폐소생술이 제공돼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비가 와서 촉촉이 젖었고 폭발의 위험이 있는 기울어진 버스 안에서 심폐 소생술을 시행한 김사부는 사명감이 대단하고 '영웅적'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버스를 빠져나온 박민국이 '의사자격 없는 사람'처럼 그려질 이유는 없었다. 박민국은 꼭 그런 표정으로 전복된 버스를 빠져나갔어야 할까? 또한 그 선택으로 평생 열등감에 빠져 사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은 또 어떤가? 의사는 분명히 사명감이 필요한 직업이다. 가끔은 퇴근도 반납하고 밥도, 잠도 반납해야 할 때가 있다. 잘 못된 시스템 속에서도 분명히 환자는 발생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살려야 한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칭찬하고 존경하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명감이 모든 의사를 '김사부'로 만들지 못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돌담 병원처럼 의료가 사명감과 개인의 열정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사부'와 '박민국'의 대립은 돌담 병원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게 만든다. 관점을 개인에 국한시켜 시스템의 문제점이 가려지고 의료 발전을 막는다. '박민국'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박민국'은 보통의 사람이고 보통의 의사이다. '김사부'의 열정을 존경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열정 페이'에 담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통 사람이 모두 '김사부'가 될 수 없고 '김사부'만 의사가 될 수도 없다. '김사부'를 존경하되 김사부가 아니면 안 되는 시스템에 대한 매서운 칼날을 엄한 곳으로 돌려 무디게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신세한톡|안전한 환경에서 진료를 꿈꾸며 2020-01-21 11:02:49
&160; "코드 블루, 코드 블루, 별관 3층" &160; 와다다다다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흰 가운을 흩날리며 뛰어가는 인턴 선생님, 전공의 선생님들, 급하게 제세동기를 챙기며 분주해지는 간호사 선생님들. 우리는 모두 의료인이다. &160; "코드블루 해제, 코드블루 해제" &160; 사람의 생과 사가 손끝에 달려있다니. 어쩌면 신은 우리 의료인들에게 많은 걸 시험하시고 싶었나보다. &160; 전공의가 끝나고 대학병원에 남아 펠로우를 하고, 교수까지 한다는 건 어지간히 쉬운 일은 아니다. 외래 환자 뿐만 아니라,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회진을 가야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학생 교육, 전공의 교육, 연구 등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60; 그 중에 제일은 이 환자에게 대학병원 교수란 마지막 의사라는 점이다. 최후의 보루. 내가 아니면 이 환자는 살 수가 없다. &160;&160; "충남 천안 S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 80대 사망환자 유가족에게 집단 폭행당해" &160;&160; 아침에 일어나 기사를 보았을 때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천안, S대학병원? 올 한 해 실습을 돈 우리 병원? 내 꿈과 추억이 한 가득 깃들여있는 이 곳?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기사를 마저 읽어갔다. 눈물이 그저 흐르는 건 교수님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까,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을까. &160; 기사 댓글을 읽어보니 더 가관이었다. 의사 편에 들어 언론 조작을 하는 것은 아닌지, 왜 의사의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이 돼있지 않은지. 많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뒤에도 폭행당하는 의료인의 안위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 의료인의 과실을 어떻게든 찾아내보려고 하는 시선으로 다가왔다. &160; 근래에 의료인 폭행 사건은 뉴스나 주변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빈번한 일이었다. 작년에도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당시에 사건 원인은 머릿속에 폭탄칩이 설치됐다는 피의자의 피해망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에 '임세원법'이라는 이름으로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의료인 폭행 사건은 여전히 화두에 있으며, 의료인들 또한 마음 속 깊숙하게 혹여나 내가 피해자는 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자리 잡혀 있다. &160; 실습을 도는 동안 우리 피케이*들은 가장 가까이서 교수님들 뒤를 쫓아다니며 열심히 배웠다. 수술방, 외래, 회진, 정말 열심히도 흰 색 가운을 입고 졸졸 병아리마냥 따라다녔다. &160; *피케이 : 의과대학 6년 교육과정 중에 본과 3, 4학년은 직접 병원에서 실습을 도는데, 이걸 pk라고 부른다. 독일어 Polyklinic의 약자라고 한다. &160;&160; 가장 가까이서 느껴본 바로는 교수라는 직은 환자에 대한 사랑 없이는 절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어려운 의학용어를 알기 쉬운 일상 표현으로 바꿔서 설명해주고, 보호자를 격려해주고, 다른 의료인들의 눈과 손이 된다. 빠진 처방이 있으면 추가해주시고, 놓친 검사가 있으면 왜 필요한지 다시 설명해준다. &160; 지식과 기술이 녹슬지 않도록 매일 교과서와 논문을 다시 찾아본다. 그래도 혹여나 놓친 부분이 있을까 다시 반복해서 환자 차트와 검사 결과를 확인한다. 처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은 그 마음과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가진 힘을 다하신 다음에도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면, 그 때는 부디, 신께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주길 바란다. &160; 하지만 의대 교육을 받는 6년 동안 단 한 번도 우리는 우리의 몸을 스스로 지키는 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 매일 매일 사람을 고치는 법, 살리는 법에 대해서 공부했으면서, 정작 우리는 우리를 지키는 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니. &160; 그러면 정작 우리 의료인들은 누가 지켜주고 살려주는 것인가. &160;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하고 싶다. 사랑하는 내 동료들이, 우리를 이끌어주는 선배님들이, 새로운 희망이 될 우리 후배들이, 모두 건강한 환경에서 의술에 정진할 수 있길.
|신세한톡|인턴 정원 감축, 누구에 대한 징계인가? 2019-12-23 12:14:59
최근 서울대병원의 인턴 필수과목 미이수로 인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울대병원 인턴 정원 180명 중 110명이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에 만족하는 필수 진료과목을 이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110명의 인턴 정원 감축과, 100만 원의 과징금을 의결했다. 이 배경에는 2017년도 이대목동병원에 인턴 필수과목 미이수에 대한 과징금 및 인턴 정원 감축 조치가 배경이 됐다고 한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안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수평위의 중론이 타당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처분의 대상이 적절하지 않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처분 대상은 병원과 전공의, 두 주체에 대해서 이뤄진다. 병원에게는 전공의 정원 감축과 과징금, 해당 전공의에게는 미이수 과목에 대한 재이수가 해당된다. 하지만 전공의 정원 감축은 병원에 국한된 처분이 아니다. 전공의법이 실시됐지만 아직도 인턴들의 생활은 지옥에 가까울 정도로 이미 업무 과포화상태이다. 이런 상황에 인턴 정원을 30% 가까이 감축한다면(3년간 나누어 감축시), 총 업무량은 같은 상태로 산술적으로 일 년에 1만5000여 시간을 남은 전공의들이 고스란히 떠맡게 된다. 이는 남은 전공의의 삶을 전혀 고려치 않은 처분이다. 수련병원이 자체적인 편의를 위해 상세히 고려치 못한 커리큘럼을 제작해 만들어진 작금의 사태에 의해 피해 전공의를 비롯한 모든 전공의가 피해를 받아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례로 들어지고 있는 이대목동병원의 경우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처분이다. 전체 39명의 정원에서 9명을 감축시키는 사안과 180명의 정원 중 110명을 감축하는 것은 환자들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료기관이 받는 타격이 양과 질적인 부분 모두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많은 중환들이 모이는 핵심 의료기관의 전공의가 20%씩 3년간 감축됐을 때 발생하는 업무과포화가 국민건강에 끼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병원의 크기와 관계없이 환자들에게 제공돼야 하는 의료기관에 터무니없이 큰 비율의 전공의 감축이 옳은 처분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는 상당성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즉, 인턴 필수과목 미이수 예방과 제재가 가지는 이익을 좇다가 자칫 국민건강 시스템의 중요 부분을 담당하는 의료시스템의 훼손이라는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을지 우려된다. 이대목동병원 사태 이후,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보건복지부는 각 수련병원에 전공의에 대한 필수과목 이수 지도/감독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 사전에 수련병원 측에 전공의들이 직접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병원에서 인턴은 피용자로서의 성질과 동시에 피교육자로서의 지위도 함께 가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병원을 신뢰하고 1년의 시간을 온전히 병원의 커리큘럼에 따라 수련 받게 된다. 본 징계는 전공의의 적합한 의사 표현에 대한 당위성을 무시하는 행위로 해석되며, 신뢰 주체에 대한 대응을 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대해 전공의는 피해자이며, 행정조치의 의미에만 주목해 그 이면에 있는 실질적 제재 대상을 놓치고 있을 뿐 아니라, 병원과 전공의 사이 신뢰관계까지도 훼손하고 있다. 절대 수련병원의 무책임한 인턴 수련 일정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병원들의 잘못으로 전공의와 무고한 국민들이 받을 피해를 고려한 처분이 내려져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전공의는 수많은 의대생의 미래이자 의학 교육의 연장선이다. 의과대학에서 기본적인 지식을 배웠다면, 의사로서 환자를 마주하고 실제 의료서비스를 행함과 동시에 임상을 통해 전문성을 기르는 의학의 꽃으로 불리는 과정이다. 병원의 체계와 커리큘럼을 신뢰할 수 있고,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살아가는 선배님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는 사회, 안전하게 전문의로 거듭나 비로소 의학의 전문가로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를 소망한다.
|신세한톡|누구나 처음이 있다 2019-12-16 05:45:50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12월이다. 나는 12월이 되면 지난 한 해 동안 썼던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일기를 읽다 보면 시간 여행자가 된 양 당시에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보통은 고민이 많고 힘든 시기일수록 일기장에 구구절절하게 써놓은 경우가 많았는데, 인턴 초반에 쓴 일기가 특히 그랬다. 나의 인턴 첫 주는 하루하루가 처음 하는 일로 가득했다. 첫 당직, 첫 오더 넣기, 첫 동의서 받기, 첫 도뇨관 삽입, 첫 동맥혈 채혈, 첫 비위관 삽입 등등 여러가지 업무 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처음으로 기억 남은 것은 수술장 준비였다. 수술장 준비는 수술 전날에 내일 수술할 환자에게 필요한 도구와 재료들을 미리 준비하는 것과 수술 당일에 환자를 옮기고 마취 및 수술 준비를 돕는 것을 의미한다. 모교가 아닌 서울의 큰 병원에서 인턴 수련을 받았던 나는 병원 구조부터가 매우 낯설었다. 수술 전날 필요한 도구와 재료를 준비하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려도 인계장을 보면서 나의 속도대로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술 당일 수술실에 들어온 환자의 마취 및 수술 준비를 돕는 일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여서 더 어려웠다. 인턴 과정을 마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한두 번 수술 준비과정을 경험하고 나면 금방 배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게 그 처음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졌던 이유는 수술장 분위기 때문이었다. 나의 첫 수술장 준비를 함께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바쁘고 여유가 없었다. 그분들은 새로 온 인턴에게 자신들의 업무 규칙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업무 진행 과정에서 빠르게 움직이지 않거나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보이면 "인계 제대로 안 받았어요?"라는 말로 질책했다. 나 또한 훌륭한 인턴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그분 들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배운 것처럼 미리 알아서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질책을 받을 때면 스스로 한번 더 다그치고 질책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질책을 받고도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그래서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설명이 대부분 빠져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하는 업무들은 처음 하는 일을 처음 하듯이 미숙하게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많다. 그러나 매년 병원에는 새로운 인턴과 전공의가 들어온다. 처음 경험하는 일들을 훈련할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개개인이 알아서 처음이 아닌 것처럼 능숙하게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환자 안전을 위해서도 처음하는 업무를 미숙련자 혼자 감당하게 하는 것 또한 매우 위험하다. 병원은 모든 업무에서 숙련된 사람이 책임자로 같이 일하면서 미숙련자를 교육하고 훈련 시킬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병원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력에는 병원 내 인력배치 과정에서 신입 직원이 배정되는 업무에는 조금 더 많은 인력을 배치하는 것과 신입 직원의 교육 및 훈련에 사용되는 시간도 업무시간으로 인정해주는 방법이 있다. 병원 협회나 국가 차원에서는 인턴과 전공의가 피교육자로서 병원에서 수련목표에 맞는 적절한 교육을 받고 있는지를 매년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병원에 개입할 수 있다.
|신세한톡|"여기 MRI 더블샷이요!" 2019-12-02 05:45:40
뇌혈관 MRI 검사가 2018년 11월 1일 급여화 된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몇 건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정부의 예상보다 훨씬 증가한 MRI 청구 건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전수 조사에 착수하여 검사비가 급증한 곳을 중심으로 '과잉진료' 심사를 하겠다고 한다. 본인들이 예상했던 수치보다 훨씬 상회하자 급여지급기준을 강화하고 대상을 축소하여 문재인 케어 정책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여 보장성을 확보한다는 기조하에 뇌 MRI의 경우 본인부담금은 의원 38만원->8만원으로, 상급종합병원 66만원->17만원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공급 비용이 낮아지면 수요비율은 임계점을 돌파할 시 급증하는 간단한 공급수요 그래프조차도 모르는 것일까. 가격이 싸지면 그만큼 문턱이 낮아졌다는 뜻이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뇌경색을 의심할 만큼 저명하지 않은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경증의 환자들은 너도, 나도 MRI를 찍겠다고 줄을 선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 없고 자신의 질병을 확실히 확인하겠다는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의료진은 검사를 진행하겠다는 그들의 뜻을 현장에서 '거절'할 수 없다. 검사를 하겠다는데 급여화 기준에 맞는 상병명으로 온 환자에게 '당신의 질병은 경증이기에 검사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명분이 없다. 이를 거부한다면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관계에 갈등이 피어나올 수밖에 없다. "원하신다면 검사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레 뇌 MRI 검사 건수는 폭증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해 발표할 때 이런 사태에 대해 나는 그다음 날 짧지 않은 글로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의료비 부담이 낮아지면 의료이용량은 폭증할 것이고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 하므로 결국은 검사 치료를 시행하는 의료공급자들을 옥죄게 될 것이라고. 2년전부터 미리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보건복지부는 '과잉진료'라는 용어를 내밀어 의료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언론화시키고 결국 그들을 '심사'하여 삭감의 발톱을 드러낼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국가는 허울 좋은 통계치만 끌어올릴 생각만 하지, 그에 필요한 재원 소요에 대해서는 모르쇠 하고 있었다. 어설픈 시범사업 모델로 그들 입맛에 맞춘 통계 자료에 따라 한가지 검사를 급여화한 지 불과 1년 만에 이러한 기사를 접하니 비웃음이 절로 나온다. 응급실에서 숱하게 이러한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간단한 접촉사고에 심지어 머리를 부딪치지 않았는데도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검사비가 싸졌고 나는 실비보험을 들어 놓았으니 MRI 더블샷을 찍어달라!"고 하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실무자들은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을까. 지금 당장 이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당신이 책임질래? 내가 머리가 어지럽다는데 검사를 안 해줘?'라는 욕 섞인 분노를 그들은 들어본 적이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십수 년이 가지 않아 어마어마한 참극을 맞이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재정적인 이유든 시스템적인 이유든, 어쨌든 '이 의료계는 답이 없다'고 혼잣말처럼 되뇌는 나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자기 일처럼 나서서 답이 없는 의료계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힘 있는 자들과 부딪히고 싸워가며 옳은 이야기를 하는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을 많이 봐왔지만,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예상되는 내일이 답답하기만 하다. 불과 수년 전, 일개 공보의인 나조차도 지적하던 예상되는 폐해를 보건복지부 실무자들은 정말로 예측하지 못했을까? 그들의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보길 바란다. 온갖 질병이 난무하는 응급실에서 우리나라 의료계가 점점 무너져내려 가는 모습을 처참하게 지켜보고 있다. 비단 뇌 MRI 문제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총체적인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의료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전공의들은 이러한 검은 속내도 모르는 채 힘들게 질병과 사투하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슬픈 이야기의 결말을 알면서도 묵묵히 버티고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의료계 몰락의 방점이 우리 시대에 만큼은 찍히지 않기만을 바라며…'
공보의 의무사관후보생 편입 의무화에 대한 단상 2019-11-25 05:45:00
본과 4학년이 되면 졸업을 앞두고 평소 군입대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일반적인 경로는 바로 공중보건의사로 복무하거나 수련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것이다. 하지만 11월 21일 발표된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계획'에 따르면 공중보건의사가 군의관의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의무사관후보생에 편입되지 않은 의사는 공중보건의사에 배정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추진된다면 후배들은 현역 입대를 할지 수련을 마치고 군복무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졸업 후에 현역 입대를 한다면 국가고시 공부를 하며 쌓아놓은 임상 지식을 입대로 인해 단절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여느 대학생과 다르지 않게 예과 1학년을 마치고 현역 입대를 하는 남학생들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 임용된 공중보건의사는 총 1211명으로 이 중 848명은 의무사관후보생에 편입되지 않은 인원이다. 즉 공중보건의사의 70%가 의과대학 졸업 후 수련 병원에 지원하지 않고 바로 공중보건의사로 복무한 것이다. 선배님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의학전문대학원 출신이라 나이가 많아서, 의료 취약지에서 일차 진료를 통해 내공을 쌓고 수련을 받고 싶어서, 스타트업이나 제약회사 취직 등 비임상분야를 희망해, 외국에서 의사를 하고 싶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졸업 후 공중보건의사를 선택했다. 군의관을 회피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사정이나 자신의 꿈을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실제로 공중보건의사로 복무를 한다면 6년동안 함께 공부한 동기들과의 수련 기회를 포기하고 나이가 어린 후배들 밑에서 수련을 받아야 하며 훈련기간 1개월이 복무기간 36개월에 포함되지 않아 수련을 4,5월에 시작하는 소위 '군턴'이 돼 수련 환경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1978년 세계보건기구가 '알마아타 선언'을 통해 일차보건의료로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했고 이에 따라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부터 농어촌 무의촌의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공중보건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현역 자원 확보를 근거로 공중보건의사 수를 줄이기로 했다. 공중보건의사 제도의 폐지도 거론됐지만 결국 의과대학에 여학생 비율이 증가하고 병역을 마친 의학전문대학원생이 늘어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남학생 인원을 배정인원에서 줄이기로 했다. 이렇게 한다면 부족한 육군 수를 몇 명 보충할 수는 있지만 공중보건의사들이 책임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가해질 위험한 상황들이 발생 할 수 있다. 또한 3월 국회에서 개최된 '공중보건의사제도의 문제점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공중보건의사의 복무기간 36개월에 1개월 훈련기간을 산입하는 것은 훈련기간만큼 복무기간이 단축돼 발생하는 보건의료 취약지의 의료 공백을 근거로 국방부가 거부했다. 의료 공백을 우려해 훈련기간을 산입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공중보건의사 수를 줄인다는 개선방향은 역설적이다. 만약 의무사관후보생에 편입되지 않은 의사를 공중보건의사에 배정되지 않도록 한다면 적지 않은 의과대학 남학생들은 37개월의 군의관, 공중보건의사보다 18개월의 현역 군입대를 고려 할 것이고 이는 의료 취약지의 의료공백뿐만 아니라 군의관의 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또한 의과대학의 목표는 1차 의료인력(일반의) 양성인데 전공 수련을 받지 않으면 1차 의료인력이 가장 필요한 의료 취약지에서 공중보건의사로서 진료를 못하는 모순이 발생할 것이다. 보건의료기본법 제5조 제1항에 따르면 '보건의료인은 자신의 학식과 경험, 양심에 따라 환자에게 양질의 적절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갖게 된 후 개인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 과연 공중보건의사 제도의 취지와 방향성에 맞는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전공을 4번 바꾸게 된 이야기 2019-11-17 18:30:10
나는 전공이 4번 바뀐 삶을 20대에 살았다. 처음 입학한 학교에서는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반수를 거쳐 타 대학 도시공학에 입학했다. 2학년부터는 전자공학으로 전과해 학부를 졸업했고 졸업과 동시에 의학전문대학원 의학과로 진학했다. 나는 왜 전공이 4번이나 바뀌었을까? 내가 가진 삶의 비전은 그대로였으나 현실과의 매칭 과정에 있어서 많은 방황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학부 4년과 군대에서 보낸 2년이란 시간들은 끊임없는 고민의 시기였고,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내가 가진 삶의 비전과 현실적인 진로를 매칭하는데 있어 많은 현실적 괴리감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많은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자, 이제 무엇을 하자!'라고 외치고 달리기도 전에 '뭘 해야 할까?'라는 고민에 6년 중 70%의 시간을 할애하며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변리사, 행정고시 기술직, 취업, 대학원 등 여러 선택지 중에서 방황하던 나에게 다시 의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주변 지인이 나에게 의과대학 학사편입, 의학전문대학원 입시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었다. 어렸을 적 의학을 전공하며 나의 가치관을 실현하고 싶다는 원래의 생각에 다시금 불을 지피게 됐고 결과적으로 많은 행운이 따라준 덕분에 지금의 길을 걷게 됐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이지만 학부 시절과 입학하고 1년 동안의 의학전문대학원 시절은 다른 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불안감 등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제일 크게 달랐던 점은 학부시절 내 생각과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뭘 해야 하지?'에 대한 고민이 아예 말끔히 사라졌었다는 점이다. 사실 의학을 전공한다 해서 모든 것이 정해지고 끝난 것은 아니다. 의학 내에서도 임상과 비임상으로 나눠지며 임상에서도 수많은 과들로 나눠진다. 비임상의 다양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큰 흐름이 정해졌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의 가치관, 그리고 그것을 심화, 활용시키고자 하는 고민의 시간을 학부시절의 나와 다르게 한 켠에 치워두고 바쁘게 본과 1학년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본과 2학년 1학기 순환기학, 신장비뇨기학 시험을 마치고 나서였을 것이다. 한번뿐인 삶에서 물론 지금 하는 길에 더 배워야 할 부분이 많긴 하지만, 원래의 내 삶의 비전을 실현하는데 맞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여기서 한 단계 도약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더 해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와 맞물려 지금도 감사한 것은, 가까운데 같은 고민을 미리 해왔던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최재호 동기(現 Medical Mavericks 회장)가 오래 전부터 해왔던 고민의 맥락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고 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Medical Mavericks 설립 멤버로 참여했다. 당연히 설립 과정에서 많은 난관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쉽지 않은 순간들과 맞닥뜨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영감, 에너지, 경험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쉽게 얻지 못할 가치였다. 이 단체를 하면서 느낀 건 내가 가진 능력이 확실히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될 수 있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단체는 끊임없이 의사의 본분을 강조하며 임상, 비임상의 병행 가능성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나 또한 임상 분야에 대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다변화된 사회 속에서, 내가 가진 '삶의 비전'의 실현을 위해 여러 가지 길을 개척하고 열어두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모두들 각자의 '삶의 비전' 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방황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Medical Mavericks가 하나의 채널로서 고민의 장, 해결의 장, 많은 영감을 받는 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가 각자 가진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기를 그 장의 일원으로서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에서 '자, 이제 무엇을 하자!'로 바뀌어 가는 과정 중에 있다. 앞에는 달려야 할 길이 남아있다. 내가 이 칼럼을 10년 후 열어보았을 때 그 때의 나를 그려보며, 마지막으로 이 글이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채널이 되길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10년이 걸린 편지 - '내가 의학도가 되기까지의 시간' 2019-11-12 05:45:00
벌써 8년 전 일이다. 공학도가 꿈이라던 친구가 의대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평소보다 성적이 잘나왔다는 이유로 의대에 진학해버린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의사는 안정적이고 돈 잘 버는 직업' 혹은 '대의보다는 성적으로 가는 곳'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보편적일 수 있는 이러한 편견들로 필자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인생의 궁극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대 진학에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필자는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나에게는 어떤 인식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가장 큰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받았던 수술인 것 같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증상으로 3시간 후 필자는 응급실에 누워있게 됐다. 그리고 담당 교수님을 만났다. "괜찮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안정됨을 느끼고 있는 환자인 '나'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교수님의 단 한 마디에 필자뿐 아니라 걱정하던 모든 사람들이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한 명의 의사가 한 사람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 이 사회에 큰 힘과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의사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은 사실이다. 의료사고의 증가로 환자가 의사나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이 증가하고 있으며, 의사는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힘쓴다는 비판적인 내용의 기사가 심심찮게 올라오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필자는 의료계를 긍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일로, 일부 의사들은 수고에 비해 연봉이 적다고 하는 반면 언론에서는 의사들이 돈을 더 벌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실이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분법적인 프레임 씌우기는 어느 쪽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는 전체를 대변할 수 없으며 또 개인적인 생각이 모두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의대 진학을 단순히 '대의보다는 성적' 혹은 '돈을 쫓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와 같이 말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입체적이다. 10년 전 의료계 밖에서 필자가 생각했던 이 집단에 대한 모습과 현재 의료계 안에서 바라본 이 집단의 모습은 확실히 다르다. 의대 진학 후 필자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언론을 통해 생긴 이미지와는 달리 병원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어떻게 하면 환자들을 더 건강하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의료진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에게 고마워하는 환자들을 볼 수 있었다. 자기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세력들로 보이는 의료집단 내에는 누구보다 환자를 걱정하고 쾌유를 바라는 의료계 종사자들이 있다. 이것이 밖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정한 내부의 모습인 것이다. 얼마 전, 필자는 10년 전 수술을 해주셨던 교수님께 감사편지를 전해드리고 왔다. 나에게는 왜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어쩌면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 신뢰하고 함께 할 때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한 명의 환자로서, 한 명의 의학도로서 환자와 의사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머지않아 오리라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품어본다.
정신질환자 대책, 국가책임 강화‧인식 개선 시급하다 2019-11-04 05:45:50
최근 상영되고 있는 영화 '조커'는 관객의 호불호를 떠나 소위 가장 핫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차별과 배제 등 감추고 싶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 아서 플렉은 광대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고의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그의 발작적인 웃음은 위화감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결국 코미디 방송 프로그램에서 전국적인 웃음거리로 전락한 그는 분노와 광기로 끝내 살인마 '조커'가 되고 만다. 아서 플렉이 조커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끔찍한 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정신질환에 따른 살인의 책임을 온전히 그에게만 물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사회가 부담해야 할 몫은 정녕 없는 것인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와 케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의사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영화 '조커'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게 한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50만명 정도의 중증 정신질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정신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 또는 재활시설에 등록돼 있는 정신질환자는 약 1/3 수준인 17만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33만명 정도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로 인해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를 시발로 최근의 정신과 의사 살해사건, 진주 안인득 사건 등 참담한 사건들이 정신질환자에 의해 연이어 발생했다. 이 사건들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세간의 심각한 우려를 낳았고, 이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대책과 제도개선을 강력히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제시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이 높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행정입원 제도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마저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효과적일 것으로 보이는 몇몇 정책마저도 인력 및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관련 예산은 1.5%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WHO가 권고하는 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따라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고, 예산 확대를 통해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관리체계를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 한편, 정부의 책임 아래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시스템을 확립하는 것과 더불어 반드시 수반돼야 할 또 다른 과제가 있다. 그것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개선과 조기 진료 및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은 완치되기가 쉽지 않지만 적절한 치료가 진행된다면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질병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정신질환자는 실제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이들이다. 따라서 모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사회적 격리로만 해결하려는 시도는 필요충분한 대책이 아니다. 다행히도 의료인 선배님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2, 3인 병실의 보험급여는 정신병원과 의료재활시설에서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확대됐다. 또한 정신질환자의 약제비용을 '일당정액제'가 아닌 별도로 분리 청구할 수 있게 돼 좋은 약을 싸게 처방받을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적절한 치료 및 케어를 위한 의료인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필자는 미국 교환학생 시절, 자폐통합센터라 할 수 있는 'Emory Autism Center'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자폐질환자의 치료 및 연구는 물론, 자폐질환자의 부모를 대상으로 올바른 케어방법을 교육하고, 나아가 자폐아동과 일반아동이 함께하는 공동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정 질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의료인들이 환자에 대한 연구와 치료를 넘어 환자와 관련한 행정 및 교육 전반에까지도 역할을 확대해야함을 시사해주는 현장이었다. 의료인은 정신질환자를 가장 잘 이해하며, 정신질환자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료란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환자의 감정을 주의 깊게 살피고, 완치 후 환자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지금도 밤낮 없이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인들에게는 과도한 주문일 수 있겠지만,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바로잡고, 그들이 차별과 배제 없이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의료인들의 사회적 책임감과 행동이 더욱 요구되는 시기이다.
EMR 셧다운 "언제까지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하나" 2019-10-28 05:45:00
| "ㅇㅇㅇ님의 근무 시간이 8:00까지로 예정돼 있어 10분 뒤에 강제로 종료된다." 현재시각 오전 10시 59분, 하지만 옆에 전공의 선생님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술 스크럽을 서고 계신다. "저 선생님, EMR 곧 꺼진다고 하는데.. 혹시 어떻게 하면 되나요?" "확인 버튼 누르면 그냥 계속 사용할 수 있어요. 확인 눌러주세요." 비단 특정 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확인 버튼을 무한히 반복해 누르며 사용하는 마이너과들은 양호한 편이다. 전공의 수가 많은 과들은 당직표가 실습 도는 피케이 학생들에게도 내려온다. 밤에 케이스를 만들거나 다음날 수술 일정을 보기 위해 EMR에 접속할 때 당직 선생님의 아이디로 들어가 확인한다. 전공의들의 경우에는 처방을 내다가 정규 근무시간이 끝나 EMR이 꺼져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당직 전공의의 아이디를 빌려 서로 사용하고 공유한다. EMR 셧다운제는 현재까지 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 강북삼성병원, 경희대병원, 순천향천안병원, 아주대병원 등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경남, 충남과 같이 전국 곳곳에서 시행하고 있다. 사실은 표면적으로 전공의법 준수를 위해 시행되는 제도로 꼼수에 가까운 방법이다. 80시간 내에 업무를 마치지 못해 EMR이 강제로 꺼지는 상황이 발생해 전공의들이 불편함을 호소해도, 병원에서는 그 시간 내에 업무를 마치지 못한 전공의의 잘못으로 오히려 책임을 전가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에서 이 전 회장에 따르면 수련병원의 EMR 셧다운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첫째, 전공의의 정확한 수련시간 산정을 막아 초과 근무를 해도 당직비 등을 인정받지 못하게 한다. 둘째, 강제로 EMR 접속을 차단해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처방을 하도록 유도해 전공의들을 의료법 위반하게 만든다. 셋째, 전공의법에 명시된 상한 근로시간인 80시간이 유명무실해져 수련환경 개선을 어렵게 한다." 그렇다면 이제야 병원에 첫 걸음을 디딘 의과대학 실습생인 우리는 어떠한가. EMR 셧다운제와 조금 비슷한 문제점으로 피케이 학생들은 본인 아이디로 EMR에 접근하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 의과대학에 실태를 조사해본 결과, 실습 학생 아이디가 학번 당 하나만 있는 경우도 있고, 실습 학생 개개인이 모두 아이디를 부여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학생 아이디의 환자 접근 권한은 거의 없다. 환자의 접근 권한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권한을 신청해야하고 원무과가 이를 허가해주면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는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의 접근 권한을 일일이 신청하는 데에는 번거로움이 있고, 원무과가 근무하는 정규 시간 내에 EMR에 들어가 신청하기에는 실습 일정만으로도 빽빽하게 짜여있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학생들은 전공의 아이디로 EMR에 접근하는 실상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야하는 것인가.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는 유럽에서처럼 예비면허를 도입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대학병원은 교육병원임을 환자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키고, 면허가 있는 교수나 전공의들 지도하에 실습 학생들에게도 처방 권한을 부여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학생 EMR 아이디는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실습 학생들의 EMR 접근 제한을 병원 쪽에서도 문제점으로 인식해 해결방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한다면, 미래의 의료인들에게 실습 도는 기간 동안 더 좋은 교육 환경이 제공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전공의들에게 더 좋은 수련 환경이 오며, 학생들에게는 더 좋은 교육 환경이 오는 날까지 You are not alone, Just Be a Medical Mavericks!
|신세한톡|문제에 무감각한 수직적 조직문화 2019-10-23 10:41:21
"이러면 무서워서 어떻게 의사 하냐…" 지난해 지하철에 앉아 집에 가던 도중 문득 옆의 대화가 들렸다. 작년 7월, '익산 응급실 폭행 사건'으로 응급실 폭행 문제가 다시 한 번 이슈화됐다. 당시 예과 1학년이었던 나는 '그러게… 생각보다 훨씬 문제가 심각하네'라는 생각만 하고 넘겨버렸다. 사실 병원 내 폭행은 이미 이전부터 비일비재했던 이슈이다. 이는 비단 환자와 의사 사이만의 일이 아니다.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있는 일이며, 심지어 수술실 내에서의 폭언 및 폭행 녹화 영상이 올라온 적도 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폭행이 훨씬 다양한 형태로 의료계 내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너무나 관대한 처벌, 제도적 문제, 근무 환경 등 다양한 이유를 들 수 있다. 응급실 폭행에 대한 처벌 강화, 그리고 전공의 특별법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법적으로 여러 노력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나 피해자 및 내부고발자 보호 등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은 상태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무뎌진다. 대처는 여전히 미온적이며, 조직 내에서의 문제는 계속 가려진다. 교육부의 '국립대학병원 겸직 교직원(교수) 및 전공의 징계 현황(2017년)'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폭행 등으로 징계 받은 교수와 전공의 313명 중 81.1%가 단지 경고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고 기록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폭행 사건 피해 현황'에 의하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보고된 전공의 폭행 사례는 16건, 피해 전공의는 41명에 달한다.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사례들도 합하면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다. '뉴욕대 심리학자 존 조스트 교수에 따르면 어떤 큰 구조적 문제가 존재할 때, 나라 경제가 좋지 않다거나 취업이 잘 안 되거나 등등 그걸 처음부터 '구조적' 문제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추상적이고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인지적으로 많은 능력과 노력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문제를 가급적 작고 구체적으로 명시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심리학 칼럼니스트 박진영 씨의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의료계뿐만 아니라 의과대학 내의 고질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병원, 그리고 의과대학 내에서의 크고 작은 문제를 우리는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데 굳이 나서지 말자고, 그리고 별일 아니라고 치부하고 문제를 쉬쉬한다. 특히 내가 속한 집단에서 일어난 일은 더더욱 그렇다. 구조적인 문제를 숨길수록, 그 심각성은 과소평가 되고 비슷한 문제가 꾸준히 일어나면서 악순환이 계속된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문제를 다른 사람들이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나 또한 감정이 무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내가 해결할 수 없다고 단정 짓고 바보같이 잊어버린 경험들이 떠올랐다. 심지어 가끔은 이게 문제인지 아닌지 마저도 헷갈리고 내 주관마저 흔들릴 때도 많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눈치 보느라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내 목소리가 아예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 마음먹었고, 동시에 좀 더 내 주변의 문제를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살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이런 수직적이고 좁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것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무감각은 너무 무섭지 않은가? 우리가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할 때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제도적으로도 큰 변화가, 그리고 개개인의 차원에서는 더 큰 인식변화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내 의견 또한 누군가에게 피력이 되는 사회, 그리고 조금 더 개방적인 사회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