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황금 같은 휴일-코타키나발루 여행기④ 2017-10-27 11:48:12
얼마나 더 쉬었을까. 엄마와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음악을 들으며 마냥 누워 있었다. 그러다 이제는 좀 움직여야겠다 싶어서 내가 먼저 “갈까?”라고 물었다. 엄마도 더 이렇게 쉬고 싶지만 왔으니 이제 나가보자고 하셨다.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의 링깃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달러만 가져 온 우리는 환전을 먼저 해야했다. 그런데 지도를 살펴보니, 걸어 가기엔 우리 숙소에서 가장 환율을 잘 쳐 준다는 환전소가 꽤 멀어서 고민을 했다. 큰 금액이라면 멀어도 가는 것이 맞는데, 짧은 여행이고 경비도 그리 많이 들지 않으리라 예상했기에 가까운 곳에 있다면 그곳에서 바로 하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니 아주 가까운 거리에 환전소가 있었고, 신기하게도 원화로도 환전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 뒤로 알아보니 굳이 달러로 환전하지 않고 원화를 그대로 가져와서 링깃으로 환전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러와 원화 어떤 것이든 환전 시 차이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일부는 환전을 한 후 이후에 부족하면 추가로 하기로 하였다. 처음으로 생각한 일정은 다음 날 인근에 있는 섬으로 배를 타고 가서 패러세일링을 할 계획이었기에 미리 예약을 하러 제셀튼 포인트로 가는 것이었다. 제셀튼포인트는 항구인데 그곳에 가 보니 여러 투어 업체들이 창구를 열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어서 여행자들이 여러 창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가격을 맞추고 투어 예약을 하고 있었다. 해외 여행할 때는 한 번쯤 깎아 달라고 흥정을 하는 것이 보통이기에 나도 여러 창구를 돌아 다니면서 어느 정도까지 할인해 줄 수 있는지 대화하며 흥정을 하였다. 코타키나발루는 시내에서도 바다가 보이지만 그리 맑지는 않기 때문에, 휴양지의 맑은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인근의 섬으로 배를 타고 가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코타키나발루의 섬은 크게 사피섬, 마누칸섬, 마무틱섬 등이 여행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인데, 스노클링 같은 액티비티를 하는 사람들은 적절한 스팟을 찾아 보통 두 세개 정도 섬을 방문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는 스노클링 대신 패러세일링만 할 생각이었기에 섬 하나만 갈 계획이었고, 사람이 최대한 덜 가는 섬을 원했다. 알아 보니 사피섬을 보통 많이들 간다고 해서 가장 가깝고 한산한 편인 마무틱섬을 택했다. 섬들이 모두 해양공원 내부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원의 입장료와 뱃삯, 그리고 액티비티 비용까지 해서 가장 싸게 해주는 업체로 골랐고, 내일 몇 시에 출발해서 언제 돌아올지를 예약한 후 돌아왔다. 동남아시아는 한국에 비해 마사지 비용이 저렴해서 여행을 오면 많이들 받는 것 같다. 우리도 지친 몸을 풀어줄 마사지 샵을 찾기 위해 여러 샵들이 모여 있는 플라자에 들러 살펴 보았다. 그곳도 역시 호객 행위가 많았고, 인터넷을 보면서 어떤 곳이 후기가 좋은지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건물의 구조가 너무나도 복잡해서 특정한 샵을 찾는데 매우 애를 먹었고, 겨우내 찾아내서 들어갔다. 한국의 3분의 1 정도 되는 가격으로 두시간 정도 마사지를 받았고, 매우 친절하고 시원해서 좋았다. 다음으로 야시장을 방문해서 구경하고 과일들을 살 생각이었으나 생각지 않게 비가 계속 쏟아져서 가지 못했다. 게다가 코타키나발루는선셋이 아름다워서 이 광경을 보러 오는 여행자들이 많은데 날씨가 흐린 탓에 선셋마저 보지 못했다. 내일은 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갖고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5월의 황금 같은 휴일-코타키나발루 여행기③ 2017-10-16 11:38:43
호텔 방 창문이 암막커튼으로 가려져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잤다. 그런데 커튼을 걷어 보니 곧바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제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는데 호텔 앞이 바로 선셋으로 유명하다는 탄중아루 해변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일단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체크아웃하기 전에 해변가로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고, 처음 맞는 코타키나발루의 햇빛에 대비해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나섰다. 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뜨거운 태양과 함께 더운 바람이 몰려왔고 이대로 몇 분이나 더 걸을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얼마 걷다보니 금세 익숙해져서 그제서야 해변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해가 질 무렵이 되면 훨씬 더 아름다워진다던데 벌써 기대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실습을 도는 매일 같은 일상 속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먼 타지에 와서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감회가 새로웠다. 해변을 쭉 둘러본 후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다시 숙소로 돌아왔고, 짐을 다시 싸서 나갈 준비를 하였다. 호텔측에서 공항에 픽업도 와주고 시내에 위치한 다음 숙소로도 또 태워주겠다고 해서 정말 고마웠다. 차를 타고 가면서 코타키나발루의 시내 모습을 처음 구경하는데 아무래도 관광지이다 보니 곳곳에 크고 작은 호텔들이 많이 보였다. 멀리서부터 우리가 앞으로 계속 묵게 될 숙소가 보였고, 첫 날 숙소 직원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호텔로 들어가 다시 체크인을 하였다. 우리 가족의 여행 원칙이 있다면, 한국인들이 많은 곳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타지로 떠나는 여행인 만큼 한국인들이 누구나 가는 곳 보다는 이색적이고 색다른 곳에 가서 외국인들과 어우러지는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숙소를 정할 때도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의 여행자들이 남긴 후기나 평가를 보면서 가격 대비 괜찮은 평을 자랑하는 호텔로 골랐다. 하지만 늘 그렇듯, 숙소의 사진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말들이 있어서 약간 걱정을 하기는 했다. 체크인 할 때, 최대한 고층으로 배정해 달라고 말했고 직원분이 고맙게도 제일 꼭대기 층으로 배정해주었다. 그런데 웬걸, 방에 도착해 들어가 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컨디션의 룸이었고 사진보다도 더 좋아 보였다. 특히나 같이 가신 엄마가 너무 좋다고 만족해하셔서 다행이었다. 짐을 풀고 원래는 곧바로 시내 구경을 나갈 생각이었으나, 쾌적한 룸의 공기가 너무 좋아서 일단 짐도 풀지 않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쉬었다 가기로 했다. 여행의 묘미는 계획했던 것과 다른 또 다른 상황을 만나 생각지도 못한 순간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본격적인 첫 여행부터 스케줄과는 어긋나 버렸지만, 엄마와 나는 예정에 없던 휴식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5월의 황금 같은 휴일-코타키나발루 여행기② 2017-09-25 12:02:58
한국에도 여름 같은 날씨가 빨리 왔지만 코타키나발루는 이보다 더 덥다고 해서 여름옷들을 좀 더 빨리 꺼냈다. 며칠 안 될지라도 수영도 하려면 용도에 맞게 이것 저것 챙길 것이 많아서 준비를 하다보니 더 분주해졌다. 코타키나발루 하면 반딧불 투어 얘기가 많았는데, 한국에서는 이제 보기 힘든 반딧불들을 그곳에 가면 한 가득 볼 수 있다고 하여 기대가 많았다. 그런데 반딧불만큼 모기가 엄청나다는 얘기에 모기패치를 사야 하나 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한여름이 아니라서 구하기가 어려웠다. 얇은 옷과 수영복 등 꼭 필요한 물건들 외에는 최대한 가방을 가볍게 하고 가고 싶어서 이것저것 챙기고 싶은 욕심은 고이 접어두었다. 말레이시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음식을 좀 싸가야 하나 싶었지만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인데다 여행의 즐거움은 현지 음식 체험에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 역시도 그만 두기로 했다. 학기 중의 짧은 연휴에 가는 여행인 만큼 몸도 마음도 가볍게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공항으로 가는 길은 늘 즐겁다. 혼자서 업무 차 가는 길이면 어떨지 아직 감이 오지는 않지만 적어도 좋은 사람과 함께 떠나는 길이라면 설렘을 주는 것 같다. 빠진 것이 없는지 수도 없이 확인을 한 후 비행기 시간 전 넉넉하게 계산을 해서 집에서 나섰다. 코타키나발루행 비행기는 보통 대부분 밤 비행기여서 일과를 마치고 기내에서 한숨 자면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오히려 자야 하는 시간에 비행기를 타서 인지 몸이 더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공항에는 여러 항공기로 동남아로 떠나는 저녁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잠을 푹 자지 못하고 뒤척이면서 가서 그런지 6시간의 비행이 예상보다 길게 느껴졌고, 조금 잠에 들려나 싶을 무렵에 곧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벌써부터 힘들어서 쉴 수 있는 휴일에 괜히 왔나 싶었지만 엄마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괜시리 뿌듯해졌다. 도착하니 코타키나발루의 더운 바람에 잠시 놀랐지만 이내 곧 맞게 될 여름을 미리 만났다는 생각을 하니 적응이 되었다. 공항은 막 착륙한 한국 관광객들로 북적여서 이곳이 아직도 한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지만 입국심사 후 밖으로 나오니 아까보다 더 더운 공기가 밀려들어와 '아, 여기가 정말 휴양지같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현지 시간으로 밤 12시가 가까운 시각이라서 미리 숙소에 요청해 둔 픽업 서비스를 찾았고, 현지 유심을 구입해서 바꿔 낀 후 차를 타고 첫 숙소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또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라 여행지의 풍광을 즐길 수는 없었지만 아직 몸이 피곤한 상태였기에 내일 일어나서 여행을 시작하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도착해서 바로 잠만 잘 곳이라 그리 좋지 않은 숙소로 예약했지만 직원분들도 친절해서 여행객들이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친절함을 칭찬했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이번 여행에서 매일 계획은 굳이 서두르지 않고 눈이 떠질 때 자연스레 일어나서 크게 욕심 내지 않고 이곳의 정취를 맘껏 즐기다 오는 것이었기에 잠들 때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특히 태양이 지는 썬셋이 유명하다는 이곳에서 최대한 비를 피해서 맑고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17년의 여름이 오기 전 엄마와 하는 여행.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인 것이다.
5월의 황금 같은 휴일-코타키나발루 여행기① 2017-09-11 12:26:52
실습 중간에 맞는 며칠 간의 휴일은 또 다른 방학과도 같다. 방학에 비하면 기간이 턱없이 짧지만 한줄기 오아시스처럼 느껴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는 크게 두 번의 쉬는 기간이 있었는데, 4월 첫 한 주는 국시 실기 모의고사가 있는 시기여서 준비를 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고 5월의 첫 주는 공휴일이 많아서 아예 실습을 쉬는 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실습을 할 때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들더니 막상 긴 휴일을 맞으려니 특별한 계획 없이 지나 보내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처럼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어디 가 볼만한 곳이 없을까 해서 인터넷으로 이곳 저곳을 검색해 보았는데, 국내로 가기엔 긴 시간이 아깝고 언제든지 갈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또 다시 해외 여행지들을 찾게 되었다. 어머니와 둘이서 떠날 생각이기 때문에 너무 멀고 험한 곳들은 제외하고, 관광보다는 휴양 위주로 테마를 정해 보았다. 그 중에서 너무 신혼여행지 느낌이 나는 발리나 몰디브 등도 제외하고 2~3시간 거리보다는 시간이 날 때 좀 더 멀리 떠나자는 생각에 5~6시간 정도 되는 거리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추리고 추려서 나의 선택지로 남겨진 장소는 바로 ‘코타키나발루’ 였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는 싱가폴과 가까워서 함께 묶어서 여행하기도 하는데, 그 곳은 도시의 정취를 느끼는 곳이고 우리는 도시보다는 바다가 있는 휴양지를 원했기에 코타키나발루에만 5일간 머무르기로 하였다. 필자가 어릴 적에는 가족여행을 할 때 주로 패키지로 다녔지만 대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스스로 모든 것을 계획해서 떠나는 자유여행을 선호하게 되었다. 물론 나도 똑같이 가보지 못한 생소한 곳을 오로지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된 정보를 기반으로만 계획을 짠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패키지로 가면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자유여행을 통해 겪을 수 있는 여지가 많았기에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더 여행지에 흠뻑 젖을 수 있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길만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 왔다. 이번에는 가족 여행이라기 보다는 엄마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기에 신경 쓸 것도 줄어들어 계획을 짜는 것은 훨씬 수월했다. 황금연휴라 그런지 항공비용이 비수기에 비해 두 세배는 더 비쌌으나 숙박은 그래도 옵션이 많아서인지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다. 항공과 숙박을 정하고 나니 자잘하게 그곳에서 어떤 액티비티를 할지를 정해야 했는데 이런 사항들은 직접 현지에 가서 흥정을 하고 계약을 하는 것이 훨씬 나으리라는 의견을 보고 더 이상은 미리 정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세세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편했지만 혹시나 엄마와 함께 여행할 때는 너무 많이 걸어야 하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큰 문제만 없기를 바라면서 연휴가 오기를 기다렸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가장 설레고 행복한 순간은 바로,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한 후 그 날만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아닐까 싶다. 올해에는 언제 또 이렇게 여행을 갈 수 있을지 아직 불확실하기에 이번 기회에 꼭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리라 마음먹었다.
|의대생뉴스| 병원안에서 진짜 보호자는 누구일까 2017-08-30 05:00:33
병원에 있다 보면 의사와 환자만큼 자주 찾게 되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보호자이다. "환자분, 보호자 어디 계세요?" "보호자 동의 받으셨나요?" 진료에 있어서 환자와 의사만 있으면 별다른 문제 없이 무엇이든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특히 수술에 있어서는 보호자가 더더욱 필요하다. 실제로 필자의 어머니가 수술을 위해 진료를 보고 수술 예약을 잡고, 수술 당일 입원해서 정산을 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절차를 밟아 나가는 데 있어서 보호자 없이 몸이 불편한 환자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벅찬 일들이 많았다. 가족들이 대부분 외국에 있는 탓에 필자는 어머니의 유일한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평일에는 매일같이 병원에서 실습을 해야 하는 탓에 정작 몸이 아픈 내 가족의 보호자로서 병원에 같이 가줄 수 없다는 사실이 심적으로 힘들었다. 어머니 혼자서 아픈 몸을 이끌고 대학병원을 이곳 저곳 전전하시며 홀로 대기를 하고, 진료를 보고, 교수님의 의견을 들으며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언제 수술을 할지 여부를 정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틈틈이 소견이 어떻게 나왔는지, 언제 수술이 가능한지 등을 전화로 밖에 확인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실습하는 내내 온통 신경은 어머니의 전화에만 쏠려 있었다. 마음이 불편했던 나는 결국 시험 기간이 되어서야 평일에 시간이 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이용하여 오후에 시험 보는 당일 날 오전에 진료를 예약해서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외래 진료에 동행해 드릴 수 있었고, 그 때 들은 소견을 바탕으로 의논해서 겨우내 수술 날짜를 잡고 나올 수 있었다. 보호자의 입장에서 결정하기에도 너무 힘들고 어려운 결정인데, 환자 혼자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 누구여도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수술 날짜는 방학 중으로 잡아서 어머니의 입원부터 재원기간, 그리고 퇴원일까지 옆에서 함께 있어드릴 수 있었는데 정말 이렇게 곁에서 계속 케어해 줄 보호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사람들은 맘대로 아프지도 못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수술을 앞두고 낯선 공간에 입원하여 짐을 풀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 전 평가를 하고 베드를 옮겨 수술방 문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어머니는 불안해 하셨고 힘들어하셨다. 그래도 수술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 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고, 어머니의 수술 경과를 문자로 알림 받을 수 있어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수술이 끝나고 아직 마취가 다 깨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병실을 찾은 어머니를 반겨주는 것도 보호자의 역할이고,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의사의 회진을 기다리며 식사와 잔 심부름을 하는 것 역시도 나의 역할이었다. 실습을 돌다 보면 특히 장기 입원한 환자들의 경우는 간병인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들이 모두 일터에 나가있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매일같이 옆에서 케어해 주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혼자 남아 있는 환자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외래에서도 보호자 없이 혼자 오는 환자의 경우는 괜히 더 외로워 보이기도 하면서, 나중에 우리 부모님께서 아프실 때는 꼭 같이 가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후에 아프면 나와 함께 있어 줄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고도 큰 일인 것이다.
수술방에서의 상념 "다치지 말자 우리" 2017-08-21 12:00:26
최근 한 달 여에 걸쳐 성형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등 서저리 파트를 연달아 실습하고 있다. 처음에는 수술방의 차가운 공기와 모두가 무언가 예민해져 있는 날카로운 분위기, 혹시나 컨타미네이션(contamination)을 시킬까 겁이 나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점 등등 여러 요인 때문에 수술방을 가는 일은 꽤 큰 스트레스였다. 물론 지금도 내게 수술방은 여전히 춥고, 무언가 불편하고 어렵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익숙해 지고 편해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나에 비추어본다면,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느끼는 수술방은 얼마나 낯설고 추울까. 꽤 여러 번 수술을 받았던 환자일지라도 수술방이 익숙하게 느껴진다거나 편안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환자들이 베드에 누워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 무늬 없는 천장과 수술방 번호판이오, 주변에는 온통 마스크를 쓴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의료진들이며, 들리는 소리라고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자신의 심박수에 맞춰 울리는 기계음 뿐이리라. 보통 환자들은 너무 긴장해서 춥다는 말도 잘 못하고, 의료진에게 말을 거는 것도 어려워 하시는 것 같았다. 그저 당신의 불편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 채 이에 대해 불평하거나 이야기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의료진 중 누구라도 먼저 다가가 "환자분, 추우시죠?"부터 시작해서 수술에 대해서 간단하게 미리 설명을 해주는 경우 조금이나마 환자의 불안감과 낯섬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의료진의 입장에서 환자를 바라보면, 나중에라도 절대 수술방에 환자로서 들어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물론 마취를 하면 수술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기 어렵고 수술 중 통증을 느끼지도 못하지만 마취가 깨고 나서 환자들이 빠르게 통증을 감지하게 되고 수술이 끝난 후에 밀려오는 미식거림과 불편함이 보기만 해도 얼마나 힘이 들지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환자들도 당연히 최대한 수술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수술을 통해 병을 치료할 수는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지 않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외래를 참관하면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택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우습게도 '다치지 말아야겠다.'였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퇴화하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수술적 치료를 요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특히 젊은 나이이거나 고령이지만 비교적 관리를 잘 하고 있던 사람들도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면 속절없이 수술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형외과에서도, 정형외과에서도 환자의 히스토리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사건, 사고로 인한 외상이 주된 원인이 되어 내원한 경우가 정말 많았다. 친구와의 다툼에서부터 트럭에 깔리는 등의 듣기만 해도 쉬이 믿기 힘든 일을 당한 경우까지 ‘세상에는 정말 별의 별 일이 다 있구나’하는 생각에 매일 아침 아무 일 없이 무사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만으로도 큰 행복이고 행운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외래 때 이런 일을 볼 때면 퇴근하고 나서 가족들에게 괜히 오늘 하루는 별 일 없었는지, 내일도 차 조심, 몸 조심하고 늘 건강이 우선이니 명심하라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곤 한다. 이럴 때마다 부모님은 누가 부모인지 모르겠다며 농담처럼 말씀하시지만, 이런 사건, 사고는 정말 한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고 이미 발생한 뒤에는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늘 조심하고 주의하며 다니는 것이 외상으로 인한 병원행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최우선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대생뉴스| 드라마와 현실사이 흉부외과 의사 2017-08-07 12:00:30
의학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주로 흉부외과 의사들이다. 심장이라는 중요한 장기를 다루는 탓에 병원 안팎에서 큰 수술들을 집도하며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정작 현실 속에서는 대학병원에서 제일 찾기 힘든 전공과 의사가 흉부외과 의사이다. 언제부터인가 흉부외과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고, 필자가 의료계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도 자주 들었으니 이제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큼 부족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흉부외과를 살리자는 법안이 국회에서도 논의되었고, 그 덕에 흉부외과에 대해 지원을 늘려서 인재 양성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실습을 돌고 있는 지금도 대학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흉부외과에 지원하면 타과에 비해 연봉을 더 받을 수 있음에도 지원자가 없다. 과연 왜 그런 것일까? 동기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않았으나 대략적인 분위기를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위험부담이 큰 일을 꺼리는 것 같다. 물론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환자의 건강을 다루는 일이기에 어떤 전공이든 위험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환자의 바이탈(vital)을 다루는 메이저과는 조금 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수술과는 더 급박한 상황들을 자주 마주하게 되며, 또 수술파트 중에서도 24시간 365일 일을 해야하는 심장이라는 장기를 수술하는 흉부외과는 조금 더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시대가 발전하고 환자들의 정보력과 주권이 커지면서 의료 소송과 분쟁도 많아졌고, 이젠 대학병원에서도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소동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만큼 의사들은 치료에 있어 환자와 보호자의 의견을 더 존중하게 되었고 신경 써서 조심해야 할 부분도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대한 안전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하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시대적 흐름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조금 더 편한 과를 선호하는 현상은 분명히 존재하고 결과적으로 환자를 보지 않는 전공들은 인기가 많아지고 흉부외과를 포함하여 몸과 마음이 힘든 과들은 인력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실습을 돌아보니 흉부외과는 인간의 중요 장기인 심장과 폐를 다루는 매우 중요한 과이고, 최근 늘어나는 성인병과 인구의 뚜렷한 고령화로 인해 고령의 나이에도 심장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매우 많아졌기에 없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 역시도 흡연을 하거나 요새는 미세먼지 등 환경이 나빠지면서 폐기능이 약해진 환자들이 많기에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고, 그 외에도 흉부외과에서 다루는 식도도 인간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장기이기에 치료에 힘써야 한다. 현재는 예전부터 수술을 집도해 온 경력 있는 교수님들께서 계시기에 수술에 큰 무리가 없지만, 이 분들이 모두 은퇴를 하시고 난 시점에는 어떻게 될지 미래의 상황이 우려가 되기 시작했다. 필자 스스로도 흉부외과 의사 중에 여자가 얼마나 될까라는 선입견부터 들었기에 이를 기피하는 전반적인 사회현상은 짧은 시간 내에는 해결되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의료계에는 분명 이런 말이 있다. 인기 있는 과는 돌고 돌며 지금 인기 있는 과가 언제 인기가 떨어질지 모르고 지금 허덕이는 과가 언제 인기가 치솟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신념을 갖고 자신의 적성을 판단해 하고 싶다 또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전공을 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수술하는 것을 좋아하고,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사명감을 큰 가치로 여길 수 있다면 정말 의사로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전공임은 틀림 없을 것이다. 의학 드라마에서만 흉부외과 의사의 모습을 조명하기 보다는 현실에서도 그들의 노력과 가치를 좀 더 인정해주고, 더 나은 조건과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미래의 지원자들도 늘어나고 지금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타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Color는 중요하지 않다 2017-07-31 09:27:47
글을 읽으시기 전에 이 글에는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에 대한 스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이 영화는 두뇌가 명석한, 특히 수학에 능한 흑인 소녀 캐서린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흑인이지만, 흑인 최초로…" 등의 대사는 이 영화가 아직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철폐되지 않은 옛날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 소녀가 커서 어떤 인물(figure)이 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교사의 말처럼 이 아이는 심상치 않은 인물이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마주한 현실에서는 투명한 유리천장도 아닌 인종차별이라는 답답하게 꽉 막힌 콘크리트 벽 하나가 그녀를 막고 있었다. 계산에 능하다는 엄청난 특기를 가지고 미국의 나사(NASA)에 취직하게 되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그러나, 첫 출근을 하는 날 도로에서부터 차별을 마주한다. 그 정도 차별쯤은 이제껏 당해온 것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유머러스하고 여유 있게 대처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직장에서 마주하게 될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우주로 인간을 처음으로 보내겠다는 미국의 전 국민적, 국가적 염원을 담아 나사에서는 오직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능력이 중시되는 곳에서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능력보다 더 우선시되었다. 하지만 뛰어난 능력을 인정 받아 오직 백인들만 근무하는 부서에 배정 받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는 불편하고 힘들고 외롭지만 홀로 분투하며 재능을 빛낸다. 그녀에게도 아이들이 있고, 사랑하는 남자가 있지만 이 영화는 유색인종으로서 차별에 직접적으로 철폐를 부르짖기 보다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으로 백인들로 하여금 본인을 인종을 떠나 능력 있는 인재로서 받아들여 지도록 노력했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그 면모를 인정해주는 상사를 만나게 되고, 강인한 의지와 특출난 자신감, 정확하고 빠른 계산 능력으로 나사의 여러 묵직한 프로젝트들에 큰 기여를 하여 최근 그녀의 이름을 딴 건물까지 설립하게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히든 피겨스'라는 제목처럼 그녀는 숨겨진 숫자정보들에서도 행간에 생략된 의미를 파악할 줄 알며, 그녀 외에도 유색인종이지만 능력을 키워 나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숨은 인물들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당대 미국사회는 모든 것에 차별을 조장하는 요소들이 존재했다. Colored restroom, colored coffee maker, colored computer… 이것은 구별이 아닌 차별을 위한 것이었고 모두를 얼굴색으로 구별 짓게끔 만들었다. 나사의 프로젝트가 몇 번의 실패 끝에 우주 프로젝트에 성공하고, 이 위대한 업적에는 그녀의 빠르고 정확한 계산이 중요했다. 그러나 늘 명암이 있다는 말처럼,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그녀의 계산 능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도 대단하지만 이에도 실수가 있는 법, 또다시 찾아온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능력은 다시 또 빛을 발한다. 이렇게 끊임없고 처절한 분투 끝에 그녀는 NASA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이것은 미국 역사에 있어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흐름에도 기여한 바가 상당했으리라 생각이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이 흑인이라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황당한 상황을 겪을 때 나오던 배경음악은 꽤나 유머러스하고 위트 있는 비트감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그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절한 현실이고 슬픔이었으리라는 생각에 음악이 더 슬프게 느껴졌다. 숨겨진 위대한 인물들(figures)은 능력이 있음에도 남들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이 필요했기에, 우리는 그들이 겪었던 삶의 고통을 진짜로 이해하고 알아내려면(figure out) 더 생각해 볼 점이 많은 영화였다.
1분 1초를 살아가는 의사 2017-07-24 12:00:00
작년 실습 때부터 수많은 외과 수술을 봐 왔지만 뇌를 수술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뇌를 수술하는 것은 신경외과에서나 볼 수 있는데, 4학년 마이너 전공들을 돌 때가 되서야 참관할 기회가 나기 때문이다. 몸의 수많은 장기들을 절제하거나 갖가지 수술을 할 때면 과연 뇌 수술을 볼 때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고도의 기술을 요하면서도 신경들이 많은 까다로운 수술이기에 막연히 호기심이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신경외과를 돌기 전에는 자세히 어떤 환자들이 가장 많을지 궁금했는데, 실습 첫 날 입원환자 현황 명단을 보니 stroke 환자와 디스크 수술을 하거나 할 예정인 환자들이 제일 많이 보였다. 신경외과는 크게 뇌와 척추 파트로 나뉘는데 실습을 돌기 전에는 뇌 수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과라는 생각에 척추 파트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뇌 파트 중에서도 stroke 환자는 크게 두 분류로 나뉘는데, 출혈성(hemorrhagic) 뇌졸중과 허혈성(ischemic) 뇌졸중이 바로 그 예에 해당한다. 허혈성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더 많다고 했고, 출혈성과 허혈성을 겉보기만으로 바로 구별하기란 쉽지는 않으나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영상 검사를 하기 전에 어느 정도 impression을 잡을 수 있다고 하였다. Stroke 환자의 경우 영상검사로 진단이 내려지면 최대한 빨리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응급실이나 외래를 찾은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면서 stroke이 의심되는 경우는 재빠르고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응급실 인턴이나 작은 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하는 경우 이런 환자를 만나게 되면 꼭 응급 상황이 어떠한 경우인지를 구별해서 환자의 생명에 지장을 주는 큰 실수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교수님 지도 아래 같은 실습 조원들끼리 각자 환자와 의사 역할을 하며 병력 청취나 신체 검진 하는 법을 모의로 연습해 보았고, 그러면서 꼭 감별해 내야할 질환, 이를 위해 시행해 보아야 하는 검사, 그에 따른 처치 및 치료법 등을 다시 한번 숙지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신경외과의 또 다른 꽃인 척추 파트 수술도 보았는데, 생각 외로 꽤 젊은 환자들도 디스크나 척추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는 경우를 보고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척추 역시도 수술 시 신경 손상을 주의해서 신경 써야 하고, 수술 후에 환자의 삶의 질을 증진 시키기 위해 재활이나 관리에도 힘써야 함을 주지시켰다. 그 밖에 감마나이프 시술도 참관할 수 있었는데, 수술적인 치료 없이도 뇌 종양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외과 파트는 무조건 수술을 강행하리라는 편견을 깨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외과 의사가 된다면 몸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뇌와 우리 인체의 중심이 되는 척추를 전문으로 하는 신경외과 의사가 된다는 것도 참으로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감과 임무는 반드시 각오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의대생뉴스|다친 몸과 마음을 고쳐줄 수 있다면 2017-07-05 12:00:11
언제부턴가 성형외과라고 하면 강남 일대에 줄지어 있는 광고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비단 필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의료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입견이 자리하고 있는데, 보통의 일반 사람들은 얼마나 더 그러할지 짐작할 수 있다. 성형외과 실습을 돌기 전에는 과연 대학 병원에서는 어떤 환자들을 주로 보게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외래에서는 어떤 케이스가 많을지, 수술을 받고 입원하는 환자들은 어떤 경우일지가 궁금했다. 가슴 성형 등 미용을 주로 보시는 교수님의 외래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학생들의 실습도 중요하지만 환자들이 마음 편히 외래진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하나 신기했던 점은 소아의 skin tag를 제거하는 수술을 성형외과에서 하고, 이 때문에 성형외과 외래를 찾는 환자들 중 소아의 비중이 꽤나 높았다는 점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혹시 기형인 부위가 없는지 살피게 되는데, skin tag 같은 경우는 기형 중에서는 빈도가 꽤 높은 질환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기가 자라기 전에 제거해주어야 수술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너무 늦게 온 경우는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수술을 참관하면서 지금까지 봐온 여타 외과 계열의 수술에 비해 훨씬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수처(suture)를 하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너무 오래 걸릴것 같아 답답하면서도, 저정도로 세세하게 꼬매 주어야 상처도 안 나고 봉합이 깔끔하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외래에서는 주로 외상으로 인해 신체 구조물에 상해가 생겨 재건을 위해 찾은 환자들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남들과 다투다가 홧김에 혹은 술 먹고 나서 타인에게 맞아서 상해를 입은 경우도 많아 놀라웠다. 보통은 코뼈 골절이 가장 빈도수가 높았는데 open reduction부터 closed reduction까지 다양한 수술적 치료법을 볼 수 있었다. 특히 closed reduction같은 경우는 포셉(forcep) 등을 콧구멍으로 넣어 힘을 위쪽과 바깥쪽으로 가해 골절된 뼈를 고정하였는데, 저런 방법으로 치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미용성형에 대해서는 수업을 들었는데 환자들의 만족을 채워주되 과도하게 반복해서 수술하는 것을 지양하도록 하는 것이 어려운 점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수술과 다르게 미용 수술은 재건이나 치료를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환자의 주관적인 의견과 판단이 주된 결정 요소가 되기에 의사의 의학적 소견이 자칫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미용 성형을 하더라도,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끝이 어디일지 모르게 무차별적으로 수술을 시행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간혹 교통사고나 여타 상해를 입어 얼굴뼈가 무너지는 등 상처를 입어 재건과 동시에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 지고자 하는 환자들도 있었는데, 이러한 경우는 환자들의 아픈 몸의 상처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도 이해하고 덮어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외형을 고치는 것 보다는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환자의 마음이 의사를 찾아 오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모습으로, 혹은 적어도 남들의 시선을 받지 않을 만큼, 남들과 별 다르지 않은 모습을 꿈꾸며 수술대에 오르는 환자들을 위한 곳이 바로 성형외과가 아닐까 싶다.
|의대생뉴스| 가정을 돌보는 의사 2017-06-23 12:00:55
이번 한 주는 가정의학과 실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가정의학과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진료를 보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로컬에서 꽤 흔하게 보이고 많은 주민들이 방문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전공 특성상 영역이 분명치 않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도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었고 지난 해에 수업을 들으면서, 이번 한주간 실습을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가정의학은 말 그대로 가정의 평안을 돌보는 과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보통 살면서 크고 작은 병을 얻고는 하는데 가족 구성원들은 작게는 배탈부터 감기까지 잦은 병 치레를 하곤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시간만 지나면 곧 사라져버릴 것이고, 별다른 치료 없이도 금세 낫곤 하는, 병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 가벼운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한 가정의 입장에서는 같은 가족들이 작은 병일지라도 문제가 생기면 신경이 쓰일 뿐더러 나을 때까지 걱정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기 보다는 주변에 있는 의원을 찾게 된다. 이처럼 가족이 늘 평안하게, 별탈없이 지낼 수 있도록 작지만 신경이 쓰이는 병들을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에서 보살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가 바로 가정의학과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것을 '일차 진료'라고 일컫는데, primary, 즉 우리네 가정의 주치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드물지만 혹여나 일차진료보다 더 큰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는 환자를 구분해내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보통은 일차 진료에서 경과 관찰을 하거나 주사, 약제를 통해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차나 삼차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차 진료 시에 이를 놓쳐서 가벼운 질환으로 오인하고 큰 병원으로 보내지 않게 되면 환자와 그 가족에게 크게 문제될 수 있기 때문에, 일차 진료에 적합한 의학적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증상이나 검사 결과 등을 통해 어떤 경우가 2, 3차 진료가 필요할지를 감별해 내는 것에도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대학병원은 보통 3차 진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찌 보면 가정의학과가 왜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환자가 여러 분과 중 어느 곳에서 진료를 받아야 할 지 잘 모르는 경우에는 일단 가정의학과 진료를 통해서 가장 진단과 치료에 적합한 분과로 다시 의뢰가 될 수 있다. 가정의학과 전공의 선생님들은 다른 분과에 비해 전공의 때부터 직접 외래 진료를 하면서 일찍이 환자를 대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수련 경험을 통해서 전문의를 딴 후 개원을 하거나 로컬에서 일을 할 때 환자를 보는 경험을 기반으로 일차 진료를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가정의학과라고 하면 피부 미용이나 비만 쪽을 주로 전문으로 해서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밖에도 스포츠 의학이나 노인의학 등 미국에서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폭 넓게 살핀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가정의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된다.
|의대생뉴스| 재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2017-06-12 12:18:39
재활치료. 이것은 특히 운동선수가 큰 사고를 당해서 재기를 꿈꾸는 경우 자주 듣는 용어이다.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며 매진해 왔는데 다치는 순간 노력으로 이루어낸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있을 미래를 위한 꿈이 통째로 무너져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곧바로 수술을 통해 재건을 꾀하지만 보통 수술만으로는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이런 경우 운동선수 뿐만 아니라 사고를 당하여 신체기능이 손상된 대부분의 환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재활치료를 받는다. 보통 정상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신체활동들이 그들에게는 넘어야 할 산처럼 크게 느껴질 것이다. 옷을 입고, 세수를 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일들이 원래 본연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꼭 해내야 하는 과제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활의학에서는 환자의 이런 일상생활의 기능들을 평가하는 지표를 진단과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그만큼 고도의 신체기능보다는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서 독립적인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활의학의 일차적이고 주된 목표이다. 생각보다 우리 신체는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미세한 손상이 큰 기능적 결함을 야기할 수 있기에 외상 등으로 인한 한 순간의 사고나 실수가 개인에게 큰 아픔과 고통을 주는 시련을 낳는다. 재활은 수술적 기법은 이용하지 않고 통증 조절 및 신체 기능 회복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단기적 치료보다는 장기 입원을 하거나 오랜 통원치료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환자와의 유대감을 유지하고 지지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며 그만큼 환자도 주치의를 믿고 힘들고 긴 치료를 견뎌주는 것이 예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재활의학 실습을 돌면서 크게 통증, 뇌졸중, 척추신경 파트로 나뉘어 살펴 보았는데 외래 환자수도 많고 입원 환자 수도 많아서 정말 다양한 환자군이 재활의학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다. 통증 환자들은 주로 TPI 치료를 받았는데, 단순히 약물을 주입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니들링(needling)을 통해 tautband를 자극하는 것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주사를 놓을 때 여러 번 주변부를 자극하며 찌르는 기법이 신기했다. 물론 통증은 한 번 TPI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완치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덜어주고 장기적으로 조절을 해주는 개념이기 때문에 환자로부터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얻기엔 어려운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의사의 역할이라는 것이 꼭 ‘완치’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그 정도를 조절해주는 ‘care’ 자체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원 환자 중에는 뇌졸중인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젊은 나이 임에도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신체 기능을 상실하여 차근차근 재활의 단계를 밟고 있는 환자들도 많았다. 재활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신체기능의 회복 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것이라 보였다. 그들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보통의 날들을 보냈을 텐데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환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환자들 중에는 정신과적인 치료를 동반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일주일 간의 짧은 실습 일정이었지만 반드시 수술적 치료, 약물적 치료부터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장기적으로 환자들의 목표를 함께 세우고 지켜보며 친구로서, 동반자로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재활의학과 의사로서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계기였다.
의전원생의 진단검사의학과 실습기 2017-06-05 05:00:00
병리과에 이어 두번째로 진단검사의학과 실습을 돌게 되었다. 병리과처럼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과이며 임상에서의 진단 및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두 개의 과는 맞닿는 면이 있다. 그래서 비슷한 듯 다른 두 과의 특성들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일단 병리과에서는 조직을 육안으로 관찰하거나 슬라이드로 제작하여 판독에 활용하는 반면, 진단검사의학과에서는 혈액이나 소변 등을 채취하여 혈청 화학검사나 유전자 검사에 이용한다. 그만큼 병리과에 비해 여러 종류의 장비들이 필요하다. 진단검사의학과 의사 외에도 근무하는 인력이 엄청 많았고, 각자 여러 서브파트들로 나뉘어 할당된 업무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이렇게 대부분의 작업을 다른 인력들과 기계들이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진단검사의학과 의사의 업무는 무엇인가’였다. 그래서 첫 오리엔테이션 때 이에 대한 질문을 교수님께 했고, 그에 대한 자세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진단검사파트에서는 기계가 하는 일에 많이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계도 간혹 실수를 할 수 있어 결과에 오류가 없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사람보다 정확하고 빠른 분석과 처리를 해낼 수 있지만 그 능력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365일 매년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류가 생기는 경우 진단과 치료 방안 설정에 있어 잘못된 길로 인도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병원 내 엄청난 혼란과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따라서 늘 이 기계들이 평소처럼 오차없이 제대로 된 결과를 내는지 확인하고 제어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진단검사의학과 의사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업무를 질 관리라고 칭한다 하셨다. 또한 혈액이나 소변 등 여러 검체들을 이용해 결과를 분석하다보면 대부분은 정상 수치 범위 내에 들어오지만 간혹 비정상 수치에 해당하는 검체가 발견되는데, 이 경우는 기계가 비정상으로 분류를 따로 하게 되고 해당 검체들을 대상으로 진단검사 의학 의사들이 직접 면밀히 확인하여 어떤 이상이 있는지를 체크한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관리자의 역할이 필요하고 또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진단검사의학 의사는 병원 외에 일반 제약회사나 혈액은행에서도 근무할 수가 있는데, 예를 들어 수혈을 위해서는 crossmatching과 같은 검체 확인 결과가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여러모로 필요한 분야인 것 같았다. 사실 필자도 의학을 공부하고 이 분야에 들어오기 전에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의사 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상상 이상으로 의사의 역할과 영역이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진단검사의학과 의사들은 환자를 보는 다른 임상 의사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고, 이 때 검사결과에 대한 질 관리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이 크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했던 많은 우려가 AI가 도입될 경우 진단검사의학과의 영역이 크게 침범 받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 전공에 관심이 있어도 지원해도 될까 하는 우려가 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만큼 기계가 이미 많은 일을 하고 있고 충분히 대체 가능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현재도 이미 기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이고 AI 역시도 기계의 하나이기 때문에 기계가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의사가 꼭 관리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여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지 않았나 싶다.
환자를 보지 않는 의사 2017-05-25 12:00:00
짧은 방학이 끝나고 다른 학년들은 한참 방학을 즐기고 있을 시기에 연말 연시만 쉰 우리 학년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곧바로 4학년 실습을 시작했다. 몸만큼 마음도 무거웠는데, 그 이유는 작년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과를 5~6개월 내에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3학년 때는 흔히 메이저라고 말하는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 그리고 내과 실습을 돌았는데 모두 환자를 직접 만나서 문진을 하고 처치를 하며 경과를 지켜보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소위 마이너 과에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과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병리나 진단검사의학, 영상의학과 등이 그 예에 해당한다. 4학년 첫 실습으로 병리과를 돌게 되었다. 사실 환자를 보지 않는 과는 어떨지 감이 잘 오지 않아 궁금한 점이 많았다. 병리과는 판독실, 검체 보관소 등과 함께 있었는데 병리과 의사 외에도 슬라이드를 제작하거나 관리하는 기사분들이 많았는데, 미생물이나 병리학 실습 때 보던 슬라이드들이 엄청나게 많아 보였다. 우리 실습 조 다섯명이 모여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데, 수업 시작에 앞서 교수님께서는 수업 중에 '프로즌'이 생기면 잠시 수업을 멈춰야 한다는 양해를 구하셨다. 여기서 '프로즌'이라 함은 수술 중에 환자 신체 일부인 조직을 떼어내어 악성 여부를 판단하거나 조직의 특성을 파악해야 할 때 병리과로 조직을 보내면 자세하진 않지만 간단하게 나마 빠른 판독을 요청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판독 결과에 따라 환자의 신체 기관이나 조직 부위를 더 절제할지 등의 추가적인 수술 범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시간대에 상관없이 수술이 끝나기 전에 되도록 빨리 판독을 해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실제로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리사 한 분이 "프로즌이요."라며 검체를 가져 오셨고, 교수님께서는 현미경으로 살펴 보시더니 판독 결과를 전화로 수술방에 알리신 뒤 우리 조원들에게도 설명해주셨다. 악성 조직에 대한 수업 중이었는데 바로 실제적인 예를 보게 되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병리과는 환자를 직접 마주하지는 않기 때문에 응급상황이 있지는 않으나 응급 수술이 있는 경우 ‘프로즌’ 같이 신속한 판독을 요하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타과에서 조직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도 병리과의 역할이 중요한데, 필자의 경우는 최근에 어머니께서 갑상선에 결절이 있다는 건강검진 상 진단을 받으셔서 Fine needle biopsy를 받으셨고, 이 때도 병리과의 판독까지 일주일 정도의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처럼 임상 환경에서 환자에 대한 질환을 진단하고 조직의 양성, 악성 여부를 판단하여 치료 방법을 정할 때 병리과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요즘 학생들은 흔히 임상에서 환자를 대하는 전공 위주로만 진로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조직을 판독하고 분석하여 임상 의학에 큰 도움을 주는 병리과 의사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의미 있는 전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께서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병리과로의 진로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지 병리과 의국의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의전원생의 일본 오키나와 여행기⑨ 2017-05-12 10:00:53
이곳 저곳 음식점을 찾던 중 '야키소바'라는 반가운 글자를 보았다. 한국에서도 야키소바나 우동을 찾아먹을만큼 좋아했기에 본토에서의 맛은 어떨지 궁금해졌고, 큰 고민 없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식당이었고 각 테이블마다 큰 철판이 놓여 있었다. 메뉴판에는 야키소바, 오코노미야끼 등으로 세트 구성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대표 메뉴인 야키우동과 오코노미야끼를 먹을 수 있는 기본 세트로 결정했다. 요리사분이 직접 우리테이블로 와서 각종 재료를 넣고 볶아주셔서 보는 재미와 먹는 재미가 모두 있었다. 생각보다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니 복잡해서 ‘혼자서는 만들어 먹기 힘들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 먹을 때 보다는 좀 더 개성이 강하고 간이 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저녁까지 배부르게 먹은 후 오늘이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날 묵은 숙소는 지금까지 중에 가장 좁은 방이었다. 내일 공항에 갈 것을 고려해서 공항과 가까운 시내에 숙소를 구하다 보니 가격 대비 외곽지역에 비해 크기가 작은 것 같았다. 일본에서 숙소를 구하면 타국에 비해 모든 것이 작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절대 사진에 속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속은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공항과 가깝고 주변 환경은 만족스러웠기에, 그리고 이번 여행 때는 크게 기대하지 않은 만큼 크게 실망하지도 말자는 주의였기에 이 정도면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 밤인 만큼 일본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간식을 먹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밤늦게 숙소 앞 편의점을 찾았다. 편의점에는 롤케익, 복숭아 맛 맥주, 커리빵, 치즈타르트, 슈크림빵 등등 그동안 먹고 싶었던 간식들이 많아 일단 다 구입했다. 오늘 하루 간 먹은 것들이 너무 많아 배가 불러 아주 조금 밖에 먹지 못했지만 한국에 가져갈 수 있으니 남은 음식들은 캐리어에 담아 두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마지막 조식을 놓치면 아쉬울 것 같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막바지에 가서 음식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는데 볶음밥과 계란 후라이, 삼각김밥과 함박스테이크 같은 고기와 샐러드 등으로 간단히 요기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두시 정도였기 때문에 가는 길에 한 군데 정도 더 들를 수 있겠다 싶어 슈리성에 들렀다. 내비게이션을 잘 못 봐서 가는길에 조금 헤맸지만 언덕 위에 있는 슈리성이 보여 이내 올바른 길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많지는 않았기에 구석 구석 자세히 구경할 수는 없었는데, 언덕에 올라가니 오키나와의 시내 전경이 다 보여서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광지였다. 오키나와를 여행하는 동안 꼼꼼하게 계획하여 최대한 많은 곳을 보는 알찬 여행은 하지 못했지만 느긋하고 느슨한 일정을 통해 충분히 고민하고 숨 쉴 수 있었던 여유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언제쯤이면 다시 이번처럼 즐겁고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여행의 끝은 늘 너무나도 아쉽다. 그래서 자꾸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