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이 바라본 비급여 진료비 강제 공개 '근시안' 2021-05-31 05:45:50
의료계는 매분 매초 핫 이슈를 쏟아낸다. 이것들을 쓸어 내고 잘 처리하기 위해서 의사들은 발표되는 정책들에 귀 기울여야 한다. 지난 해 12월 31일, 보건복지부는 '비급여관리 혁신, 국민중심 의료보장 실현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 수립'을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발표가 아닌, 사전에 예고된 발표였다. 모든 국민이 필요한 비급여를 적정 비용으로, 안전하게, 합리적으로 선택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비급여의 급여화와 함께 남는 비급여에 대한 관리를 통한 실질적인 보장성 강화 효과 달성을 목표로 한다. 해당 발표가 있은 후엔 거센 후폭풍이 일어났다. 대한개원의협의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의료계 전반에서 비급여 관리 정책에 대한 강력한 반대 및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장들도 지난달 성명서를 내고 정부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이례적으로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가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우선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의 어떤 부분이 어떤 문제점이 있기에 의료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는지 알아보자.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은 목표 달성을 위해 ▲합리적인 비급여 이용 촉진 ▲적정 비급여 공급기반 마련 ▲비급여 표준화 등 효율적 관리기반 구축 ▲비급여관리 거버넌스 협력 강화 등 총 4개 분야로 구분하여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 4가지의 분야 중 첫 번째 분야인 '합리적인 비급여 이용 촉진'은 의료소비자, 즉 국민의 측면에서 추진 방안이다. 해당 분야의 세 가지의 추진과제를 나열하자면 ①비급여 진료비용 정보공개 확대, ②비급여 진료 사전설명제도 도입, ③ 진료비 계산서&8226;영수증 발급개선. 등이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①과 ②다. 기존의 의료법 제 45조(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고지)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자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제4항에 따라 요양급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 또는 「의료급여법」 제7조제3항에 따라 의료급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의 비용(이하 '비급여 진료비용'을 환자 또는 환자의 보호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고지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 따르면, 병원급 이상의 비급여 가격정보 공개를 의원급에도 적용하고 공개 항목도 확대된다. 또한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종사자로서 의료기관 개설자가 지정한 자가 환자에게 '비급여 진료비 공개 대상 항목(21년 615개) + 환자 요청 비급여(선택)'를 설명하도록 한다. 정리하자면 의원에 새로운 의무가 부과되고 의원으로선 당혹스러운 내용들이 추가된 것이다. 문제점은 우선 직업선택의 자유가 침해당한다. 헌법 제15조에 의한 직업선택의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좁은 의미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그가 선택한 직업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직업수행의 자유(영업의 자유)를 포함하는 직업의 자유를 뜻한다. 따라서 비급여 설명을 의사는 자유롭게 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해당 개정법안이 시행되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또한 정책의 필요성과 유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모든 의료기관은 이미 의료법에 따라 비급여 진료비용을 원내나 홈페이지 고지하고 있다. 환자의 상태나 치료방식, 경과 등에 따라 의료기관별로 비급여 진료비가 다르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데도 이 같은 의료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하게 가격만 비교하는 형태의 비급여 자료 공개 강제화는 의료의 질을 낮추고 국민의 의료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 고질적인 의료정책의 문제점도 여전히 남아있다. 정책 설정과 실행에있어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들고 정부의 사뭇 독단적인 의료정책 제정 및 실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환자&8226;소비자 단체, 의료계 등 각계의 자문과 지속적인 의견수렴을 진행하였으며, 기존의 비급여 관리 관련 제도를 개선하면서, 현장에서 도움이 될 관리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의료 정책을 정함에 있어 의료계 당사자들과 의료 소비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기에 환자&8226;소비자 단체에 자문을 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런 단체가 과연 정치적 올바름을 바탕으로 환자와 소비자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이 같은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부의 자칭 대화와 열린 태도에도 '내로남불'이 만연했다. 정부는 일전의 공공의대 사태에서도 간호사, 의사의 분쟁을 유발하는 발언을 하고 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를 외면하는 등 '열린 태도'라고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비단 공공의대 사태에서뿐만 아니라 이때까지 의료정책에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를 정부가 바꾸지 않는다면, 의료계와 정부 간의 불화는 더욱 깊어져만 갈 것이다. '모든 국민이 필요한 비급여를 적정 비용으로, 안전하게, 합리적으로 선택하여 이용'이라는 정책의 목표는 절대 틀린 것이 아니다. 의료선진국가로서 발돋움하기 위하여,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하여, 한국의 의료 정책은 많은 변화에 맞설 것이다. 허나 그런 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소위 기피과라 불리는 외과 계열,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처우 개선, 공공의료 활성화 및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등. 생각만으로 다소 답답해지는 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뚜렷한 해결방식은 아직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해결방식은 잘 모르겠지만, 아직 부족한 나의 시각으로 볼 때, 해결방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의료계는 좀 더 고도의 협상기술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공공의대 사태에서도 의료계가 보여준 협상의 기술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일각에서는 '공부만 하느라 협상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의사들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편 정부에서는 국가 미래를 위하여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지 심사숙고하는 태도를 배워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병원 운영은 커녕 실습도 돌아보지 못한 예과 2학년이 쓴 글이다. 나의 글이 독자에게 어떤 생각을 심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모든 생각을 존중한다는 말로 끝맺음을 하려 한다. 서툴고 투박한 글 읽어 주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피할 수 없는데 즐길 수도 없다면 2021-05-24 05:45:50
본과 2학년 첫 중간고사가 끝났다. 처음으로 마주한 임상과목들은 결코 자비롭지 않았다. 거짓말이라 믿고 싶은 2만 장에 달하는 강의록을 부여잡고 있자니 어영부영 시험 기간이 다가왔고, 모든 시험이 그렇듯 아쉬움으로 점철된 채 마무리되었다. 교수님들은 '의대 공부는 콩나물 시루와 같다'고 격려해주시곤 한다. 이 말인즉슨 우리의 지식은 매일 물을 부어도 티가 나지 않다가 어느새 쑥 자라있는 콩나물처럼 성장 중이라는 것인데, 시험 직후 내 콩나물들은 끝없이 밀려오는 물에 휩쓸려 사라진 느낌이었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사자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공부한다는 '사슴 공부법'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중간고사 마지막 과목이었던 심장학 시험을 준비하던 밤, 동기들은 우스갯소리로 이미 우린 다리 정도는 뜯어먹힌 사슴이더랬다. 분명 학기 시작부터 사자에게 잡히지 않으려 열심히 달려왔건만 사슴의 종종걸음은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내일부터 또 다시 성킁성큼 찾아올 사자를 피하고자 달려야 한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듣다 보니 나의 주체적인 '하루'는 해가 저물어갈 무렵 시작된다. 저녁을 먹고 공부 더미에 고개를 파묻은 채 최소한 당일 복습을 끝내려 고군분투하다 보면 어느덧 이 짧았던 하루도 다 지나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다음날, 또 다음날이 되는 쳇바퀴 같은 무미건조한 시간을 살아가다 보니 삶 자체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게 된다. 피할 수 없는데 즐길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나눠보자면, 행복에 대한 강박을 버리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당장, 그것도 꼭 매일매일 나의 하루에서 충분한 기쁨을 느껴야만 좋은 삶을 사는 것인가? 그보다는 특별한 행복이 없어도 불행(우울, 불안) 역시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힐링'과 '소확행'이 유행 중이다. 이 두 키워드는 행복, 자기만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보니 행복은 일상에 지속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행복과 불행은 공존할 수 없다는 오인을 심어주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본래 행복이란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일시적인 감정이며, 당연히 행복과 불행은 공존할 수 있다. 고로 즐길 수 없는 상황이라면 행복의 부재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불행의 감정에 잠식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겠다. 초조해하며 콩나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수없이 시루를 들춰보기보다는 평정심을 갖고 물을 주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단,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평정심, 말은 쉽지만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몸속 수분이 커피로 몽땅 대체된 것만 같은 본과 학생들에게 대부분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동요되지 않고 항상 평안한 감정을 유지하는 마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은 매우 비좁다. 매일매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잠시 그 불행의 근원지에서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다. 대신 도망 나온 자신을 '쉽게 회피하는 사람'이라 자책하지 말고, 여유를 갖는 동안 사자를 피해 달릴 전략을 짜는 현명한 사슴이 되길!
"원래 여기선 이래"라는 말의 불편함 2021-05-17 05:45:50
"원래 여기선 이래." 그릇된 일을 하는 친구나 가족을 나무랄 때 되돌아오는 답은 항상 같았다. 물론 내가 그 변명의 진위를 알기는 어렵다. 나는 인생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문화·정신적으로 겨우 '반쪽짜리 한국인'에 불과해서 그것이 정말 이곳의 특징인지는 모르고, 그것이 맞다면 부정하고 싶다. 하지만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나를 이방인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언짢았고, 현상을 핑계로 적당히 얼버무려 넘어가려는 시도가 싫었다. 2020년 3월 16일, 화학 대신 의학의 길을 걷고 싶어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의대를 진학하고 싶다고 가족에게 말씀드렸을 때, 의료 쪽에서 일하시는 작은아버지께서는 격려보다는 우려를 더 표하셨다. "네가 여기 와서 의대 입시를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조금 의아해했어. 여긴 네 성격이랑 정말 안 맞잖아. 이거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거 맞아?" 처음에는 작은아버지의 걱정을 웃어넘겼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오래 보낼수록 그분께서 무얼 경고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개방적인 나와 보수적인 가족들 사이에는 갈등이 잦았다. 곳곳에 있는 위계질서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출하고 싶은 나를 억압했으며 "어디서 감히 훈계질이야?"라는 소리도 여러 번 들어봤다. 이런 갈등은 비단 한국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 것은 바로 집단 내 침묵이었다.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혐오를 목격해도 비판의 소리는 작았다. 명확한 증거 하나 없는 음모론을 친척이 주장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인간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오히려 더 소중한 사람일수록 방관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다행히도 내가 경험한 부조리와 불합리는 그 규모가 작지만, 이따금씩 이곳에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점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있으면, 결국 언젠가는 현실에 타협하지 않을까?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의대에 입학한 이후 나는 왜 내가 지금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명확히 깨달은 것 같다. 의학은 생명의 유지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의대생의 침묵에는 가시적이고 불가역적인 결과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동조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과학적 양심과 윤리적 책임을 가장 우선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 침묵에 저항하는 것은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다. 3월 말, 주변인들이 언론에 의해 심히 과장된 부작용 때문에 옥스포드-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했을 때, 나는 관련 논문과 발표를 인용하면서 백신의 실제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백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하나의 반대가 판을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잘못된 체계를 고치려고 정책을 통과시키려 하셨던 한 의사 분, 의대생들에게 임상이 아닌 진로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리려는 선배들, 느린 실종 수색이 답답해서 스스로 한강에서 수색한 동기, 작년에 홀로 광화문에서 시위하던 친구... 모두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상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었고, 그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더 용기 낼 수 있다.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지 더는 묻지 않는다. 이 사회에 분명 타파할 수 있는 부조리와 불합리가 존재하는 이상, 그리고 그걸 알고 노력하려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 이상, 나는 이곳에서 변화를 함께 만들어갈 의무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내게 부조리를 두둔하기 위해 "원래 여기선 이래"라고 말한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이렇게 대꾸할 것이다. "그럼 나는 원래 이래."
진화하고 있는 미래의료 속 의학과 공학의 연결고리 2021-05-10 05:45:50
에티오피아에서 해외봉사활동 중 팔뚝에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상처를 가진 채 봉사센터를 찾아온 현지인을 만났다. 농사 기구를 다루다가 발생한 간단한 외상으로 생긴 상처를 그대로 방치하여 봉와직염으로 발전했고, 팔을 쓸 수 없게 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봉사단을 찾았던 것이다. 열혈 넘치는 공대생이었던 필자는 환자들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일찍 알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는 안타까움을 느껴 이에 대한 공학적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싶어 의료기기 개발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감사하게도 수준 높은 연구실에서 바이오 센서를 주제로 사람에게 부착 가능한 반도체 전자기기를 설계하고 제작하여 응용하는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스마트 워치 형태의 휘어질 수 있는 밴드를 제작해 땀을 이용해 혈당, 체온, 혈중 pH, 전해질, 스트레스 호르몬 등 인체 항상성 상태를 나타내는 구성 요소를 측정하는 바이오 센서를 설계하고 제작했다. 또한, 블루투스 기술을 이용하여 이를 스마트폰으로 무선 조작하고 결과를 주치의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더 나아가 항상성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 스마트폰으로 조작가능한 약물전달장치를 배에 부착하고 주치의의 처방에 맞게 마이크로 니들에 담지된 약물이 통증없이 투여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하지만 고도화로 집적화되고 복잡한 센서 기술에 대해 연구할 수록, 계속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과연 이 기술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걸까?'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공동 연구하던 의대 교수님께 강의자료를 요청해 관련 내용을 혼자 공부도 해보고 수시로 질문도 드려보았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익히는 의학지식과 실제 환자를 통해 배우는 임상 지식 간에는 큰 간극이 존재했고, 이러한 임상 정보는 오직 자격을 갖춘 의료인만 접근할 수 있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를 계기로 의과대학에 편입한 이후 학생의사 신분으로 병원 실습 중인 요즘, 병원에서 환자들을 직접 보며 느끼는 살아 숨쉬는 임상 지식들은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대학원에서 진행했던 연구의 임상적 중요성에 대해 스스로 다시 평가해볼 수 있었다. 혈당의 경우, 땀을 이용한 혈당 측정 대신 복막 사이질 액을 이용해 연속적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기기가 수년 전부터 병원내에서 사용 중이었다. 전해질의 경우, 혈중 pH와 전해질을 일상생활에서 측정하는 것이 예방의학적인 관점에서 급성 심근경색의 조기진단 인자로서 임상적 의의는 있지만, 이러한 인자에 변화를 보이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일상생활 측정이 의미가 없는 장기간 입원 중인 고령 환자들이었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경우 이를 측정하여 개개인의 면역 정도와 연결시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지만 코르티솔 수치는 하루에도 변화가 워낙 심해서 병원에 입원해서 24시간 동안 측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큰 뜻을 가지고 진행했던 연구가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 과거에 대해 실망스러운 마음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느낀다. 의료현장에 새롭게 적용하여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의공학 기술은 지금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를 세계적으로 선두하고 있는 Northwestern university의 John Rogers 교수 연구진의 최근 연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John Rogers 교수 연구진은 신생아 중환자실의 소아 환자들에게 손바닥 크기만한 패드를 부착하여 활력 징후를 무선으로 측정하고 변화가 나타날 경우 주치의에게 전달되는 기술을 개발하여 2020년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지에 게재했다. 최근에는 피부에 착용 가능하고 땀을 기반으로 낭포성 섬유증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사이언스(science) 자매지에 발표했다. 그 외에도 병원 내의 의료 전달 시스템을 효율화하고 일반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다는 말이 있다. 의료기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괴적인 혁신은 비교적 짧은 미래에 의료 현장은 물론 환자와 건강한 사람 모두의 웰빙 양상을 바꿀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기술의 발전을 실제 현실과 연결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환자와 의료 체계에 대한 이해를 갖춘 의료인이라는 부분이다. 의료인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눈 앞에 다가온 '기회' 혹은 '위기'를 적극적으로 함께 붙잡을 수 있기를 도전하고 기대한다.
"교수님께 여쭤보고 다시 알려드릴게요" 2021-05-03 05:45:50
말과 지식의 무게, 그리고 책임 "교수님께 여쭤보고 다시 알려드릴게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각자에게 다가오는 말의 무게는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한다면 밤 하늘의 별을 따준다는 거짓말까지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병원에서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들의 주치의가 하는 말 한 마디에 많은 두려움을 얻기도, 큰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의학과 3학년에 접어들며, 모든 의과대학생이 그렇듯 나도 PK 실습을 시작했다. 각 과마다 배우는 내용도, 실습에서 하는 활동도 모두 다르지만 대개 외과 계열과 내과 계열로 나누어 각 계열 내에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외과 계열의 실습에서는 수술방에 들어가 참관하는 것이 대부분을 이루고, 내과 계열의 실습에서는 회진, 케이스 발표, 외래 참관이 주된 일정이다. 이 중 케이스 발표는 보통 각 과의 실습 첫날인 월요일, 교수님께서 배정해 준 환자에 대해 학생인 내가 그 환자의 담당 의사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문진 및 신체 진찰을 하고 환자와 질환에 대해 공부하여 발표하는 활동이다. 케이스를 준비하는 동안 환자분께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진을 하다 보니, (그리고 흰 가운을 입고 있다 보니) 환자분들은 우리의 질문에 많은 대답을 해주시고, 더불어 많은 질문을 하신다. 질환에 관련된 내용이나, 검사 결과와 같은 내용은 내가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대답할 수 있지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선생님, 저는 언제 퇴원할 수 있나요?" "약 때문에 식욕이 없는 것 같은데 그만 맞으면 안 될까요?" 위와 같은 결정(decision making)이 필요한 질문들이다. 물론 이 질문들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결정은 주치의인 교수님께서 하실 것이고, 학생인 나의 생각이 실제 진료에 변화를 일으켜 영향을 줄 일은 거의 없다. 이러한 점도 큰 이유지만, 사실 내가 아는 것을 토대로 어렴풋이 대답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이유는 나의 말 한마디로 인해 환자분이 기대감을 가지거나, 실망감을 갖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 해, 그 말에 책임을 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점이 이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내후년에 의사가 된다면 그 때도 두렵다는 이유로, 책임 회피를 위해 대답을 마냥 피해서만은 안 될 것이다. 나의 말에 자신감을 갖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지식이다. 의사의 무지는 환자에게 큰 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많은 지식과 실력을 가진 의사는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환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내 말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그보다 강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지식이라는 근력이 필요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매우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속에서, 환자에게 하는 의사의 말은 그들의 건강과 감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더 큰 중요성을 가진다. 많은 질문들에 대해 온전히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는 의사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만날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많은 지식과 책임감을 가진 의사가 되고 싶다.
뜨거운 스타트업 열기…창업하기 가장 쉬운 시대? 2021-04-26 05:45:50
|메디칼타임즈=김요섭 학생| 온 세계가 스타트업의 열기로 뜨겁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고무적인 성공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어서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다시피 '배달의 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4조7500억원에 매각되었고, '쿠팡'은 미국 상장 이후 5조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으며 '마켓컬리'는 약 5조 규모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수천억 규모의 자금 조달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치과의사 이승건씨가 창업한 것으로 유명한 '토스'는 지난해 매출만 3898억원에 이르며 올해는 약 1조원의 매출을 기대한다. 이 모든 것이 3년내에 일어난 것이다. 예비창업패키지, 청년창업사관학교, 소셜벤처지원사업, 일자리 지원사업 등 정부 각 부처에서 경쟁하듯 쏟아내는 수천만원 규모의 지원사업과 TIPS 등 억대 규모의 R&D 자금이 다수의 초기창업자들에게 풀리고 있는 것도 벤처 창업 붐에 힘을 보태고 있다. 좋든 싫든 단군이래 창업하기 가장 쉬운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성공한 사례들만 보고 헛된 망상을 갖거나, 국가지원사업 수주의 요행을 바라며 창업을 한다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창업을 한다는 것은 마치 늪 속에 빠지는 것과 같아서 뛰어들기는 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나오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공의 열쇠는 늪 깊숙이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어서 손을 뻗을 수록 창업자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뿐이다. 창업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나라 또는 기업을 처음으로 이루어 시작한다는 뜻이 담겨있는데 나라와 기업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능력이 부족한 임금(기업인)이 나라(회사)를 이끌게 되면 국민(임직원)들이 굶어죽는다. 지도자는 나라(회사)가 어려울 때, 능력있는 국민(임직원)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희생해 주길 바라겠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민(이직)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도 국가(기업) 운영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해서 감사히 생각하는 것이 리더로서 올바른 마음가짐일 것이다. 창업 성공의 영광을 누리고 싶다면 실패에 대해서도 온전히 책임을 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관우와 장비가 힘이 약해서 유비의 장수가 된 것이 아니다. 제갈량이 머리가 나빠서 승상 자리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다. 유비가 동료들에 비해 힘도 약하고 머리도 좋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리더였기 때문에 한중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늪에 뛰어들기 전에 기업을 이끌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라.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지켜주길 바라기 이전에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지 살피라." 이것은 열정과 패기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2년 전 나 자신한테 했던 말이다. 이말을 잘 새긴다면 모든 사람이 훌륭한 창업과 성공을 맛볼 것이다.
공부하고 시험치는 반복된 일상 속 '건강한 열심'이란? 2021-04-19 05:45:50
"요즘 하고 있는 취미가 뭐니?" 동아리 담당 교수님께서 자주 물어보시는 질문이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이전 동아리 모임 때마다 교수님은 학생들의 취미를 물으셨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있는 취미에 대해 열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교수님은 취미를 가지라고 항상 말해오셨다. 본과 2학년이 된 필자는 아직도 확실하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 저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는 예과 2학년으로 지금보다 더 여유가 있었을 때였다. 그 여유롭던 시기에는 취미에 대한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취미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본과 2학년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취미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2021년 현재, 본과 2학년의 생활을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2주마다 시험을 치기 때문에 2주 단위로 생활 패턴이 똑같이 반복된다고 볼 수 있다. 항상 첫 블록이 시작된 주 수요일이나 목요일까지 쉬엄쉬엄 강의를 듣다가 두 번째 주 시험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시험이 끝난 후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다시 첫 주의 시작을 조금 여유롭게 보내는 삶이다. 이번 과목이 지나가면 이 과목에 대해 더 자세히 공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험 보기 직전까지 정말 열심히 모든 것을 시험에 쏟아붓는다. 동기들도 하루, 이틀 밤을 새워가며 시험에 모든 것을 쏟는다. 처음 2주간의 패턴대로 살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시험이 반복될수록 이 패턴대로 살기가 버겁다고 느껴진다. 코로나로 인해 더욱 단절된 환경 속에서 정해진 패턴대로 산다는 것은 다시 블록 강의의 첫 주가 돌아왔을 때 다음 블록 강의를 시작하며 산다는 것은, 에너지가 어느 정도 바닥이 난 상태에서 다시 에너지를 쏟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살의 굴곡이 너무 정형화되어 단조로움만 있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모든 에너지를 특정 목표에 쏟으며 살다가 여유가 있는 삶의 구간에서 다시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취미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물론 PBL이나 과제, 시험 등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상에 치이다 보면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여유를 갖기 어렵다. 시험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시험이 끝난 주말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삶의 조그마한 변화보다는 다음 2주간의 패턴을 다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체력을 보충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취미가 있다는 것은, 필자가 취미라고 그냥 일컬었지만 무언가 조그마한 흥미라도 생기는 활동은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다음 2주를 견뎌낼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시험공부로 인해 과부하가 걸린 것 같은 필자의 상태를 다시 원상태로 복구 시켜주는 힘이 취미 활동에서 나온 것을 자주 경험하기도 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가수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와서 한 이야기가 있다. 그 가수는 콘서트 표가 1분 안에 매진 될 만큼 유명하고 그만큼 열심히 제 일을 한 가수다. 그런데 이 가수는 "제가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한 건 일밖에 없구나를 느꼈다. 일만 하느라고 다른 거는 남들만큼 열심히 못 했구나 싶었다. 과연 이게 '건강한 열심'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달라져야 하겠다는 생각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의대생의 본과 생활은 정말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고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동기조차도 열심히 자신의 공부를 한다. 그만큼 의대생 모두 자신의 시간을 대부분 전공에 쓸 텐데 그 열심이 '건강한 열심'이기를 바라고 매번 똑같은 일정에 가슴이 뛰는, 활력을 얻는 그런 활동이 바쁜 일상에 조금이나마 스며들어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는 열심이기를 바란다.
젊은 의사 실습 경험 그 기회의 소중함 2021-04-12 05:45:50
아침이다. 알람이 울린다. 눈을 뜨기가 싫다. 하지만 떠야 한다. 내가 지각하면 함께 혼날 실습 조 동기들의 얼굴이 눈 앞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차가운 아침 공기는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능한한 마지막 일 분까지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얼른 이불을 떨치고 일어나서 바쁘게 준비를 한다. 후다닥 아침도 먹고 커피도 끓여서 한 잔 마시고 실습 복장을 갖춘다. 오늘 외래가 있었나? 가방에 청진기를 챙긴다. 마지막으로 옷걸이에 걸어둔 실습 가운을 챙기고 한 번 집을 휘둘러본 다음 얼른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선다. 오늘 첫 일정은 외래 참관이다. 대기하는 환자들로 와글와글한 병원 대기실을 지나 교수님 진료실 앞에 가 선다. 함께 실습을 도는 동기가 보인다. 교수님 외래 환자 확인했어? 어제 미리 EMR을 체크해서 적어뒀던 환자 목록을 본다. 그런데 웬걸 교수님 대기 환자에 떠 있는 이름은 완전히 새로운 이름이다. 이게 뭐지? 그 사이에 신환이 들어왔나? 혼란스럽지만 일단 자세를 갖추고 앞에 외래 참관을 하던 동기들을 기다린다. 어느 순간 진료실 문이 달칵 하고 열린다. 앞 타임 외래를 참관한 동기들의 얼굴이 보인다. 잠시 인사를 주고받고 진료실 문고리를 붙잡고 허리를 숙인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나보다 아마도 더 이른 시간에 훨씬 바쁘게 움직이셨을 교수님의 얼굴이 보인다. 바쁘다. 표정에서는 피곤함이 읽히지 않지만 아마 교수님께서도 피곤한 아침을 보내셨을 거다.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시면서도 손과 눈은 EMR을 떠나시지 못한다. "어제는 뭐 했어? 그거 관련해서 질문은 없니?" 질문을 받아주시려고 하다가도 다음 환자가 들어온다. 이번 과는 소아과라 환자들이 어리다. 교수님께서는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시며 환자를 맞으신다. 2달만에 보네요~ 심전도 힘들진 않았어요? 교수님께서 청진기를 소독하고 환자 심음을 청진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바라본다. 저기, 저기, 저기, 저기 저 순서였지. 저기서는 무슨 심음이 들리더라. 손에 들고 있는 클립보드에다가 환자 병명과 증상을 적어내려간다. 다리가 아프다. 시계를 흘끔 본다. 외래 참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들로 가득한 대기실을 가로질러 심초음파실로 갈 준비를 한다. EMR에 오더를 넣으시던 교수님이 어느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진료실을 나가신다. 얼른 그 뒤를 바짝 붙어 따른다. 대기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칫하면 교수님을 놓칠 수도 있다. 가면서 다른 동기들에게 연락을 넣는다. 지금 내려가니까 심초음파실 앞에서 만나자. 레지던트 선생님과 교수님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자리 선정을 하여 선다. 초음파를 찍어야 하는데 어린 아기 환자가 병원이 떠나가라 빽빽 운다. 교수님은 익숙하다는 듯이 초음파실 컴퓨터로 뽀로로를 틀어주신다. 어느새 환자 입에는 츄파춥스가 물려 있다. 초음파 화면으로 심장을 왔다갔다하는 혈류를 열심히 바라본다. 초음파실은 어둡다. 하지만 졸리진 않는다. 계속 서있어야 해서 다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이런 일상이 매일 조금씩 다른 순서로, 달마다 다른 과로 결만 달리하며 반복된다. 그러나 스쳐지나가는 환자들은 너무나 다르다. EMR을 켜서 의무 기록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길래 이 병으로 우리 병원에 오시게 되셨나요? 특히 나이가 많은 환자일 수록, 과거력란에 적혀 있는 병명이 많을 수록, 의무기록에 적혀 있는 내용이 자세할 수록 그런 생각은 더 자주 든다. 매일 소주 2병을 마셔서 당뇨병과 고혈압, 간염을 기저질환으로 달고 온 환자를 보면서는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매일 소주 2병을 마시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론 공부를 하다가 넘어와, 아직 실습 가운이 더러워지지도 않은 채인 새파랗게 어린 초짜 학생 의사의 눈에 모든 것은 생경하게 다가온다. 본과 공부 2년, 인간 대 활자의 싸움을 마친 실습생에게 이제는 그 활자들이 담고 있던 내용이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실습생은 조금씩 깨닫는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지식 너머에는 수천년간 쌓아온 무한한 데이터가 있음을 머리가 아니라 피부로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겸허해진다. 실습은, 나의 지식을 측량하는 과정이 아니라, 나의 무식을 인지하고 조금씩이나마 그것을 고쳐나갈 수 있는 기회임을, 비로소 느끼기 시작한다. 이 기회의 소중함을 깨닫고 노력한다면 2년 뒤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만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고, 실습생은 다짐한다.
평범한 의대생의 하루, 계획에 대한 깊은 생각 2021-04-05 05:45:50
좋아하는 노래를 질리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노래를 알람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한 첫 번째 생각이었다. 블라인드를 열자, 기숙사 창문 밖으로 푸르스름한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나에게 보이는 하늘의 크기는 딱 그 창 하나만큼의 크기이다. 아직은 어둠이 드리워 있지만 투명한 하늘을 보며, 날씨가 좋은 날은 어김없이 공부해야 하는 날임을 떠올린다. 잠을 더 달라고 항의하는 뇌를 깨우고자 창문을 밀어 제끼자 A4용지 한 장만한 크기의 공백으로 찬 공기가 밀려들어온다. 조금은 건조한 도시의 아침 공기 냄새 사이 연하게 초봄의 나무 냄새가 난다. mbti가 한 때 P(즉흥형, 계획형과 반대) 였던 나지만, 정리하지 않으면 놓치는 부분이 많아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플래너를 정리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플래너 쓰기에 곧잘 맛을 들였지만 어제 다 해결하지 못한 강의록 복습 계획과 눈이 마주치자 계획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조금 사라진다. 그 항목을 끌어다가 오늘 오후에 추가해 놓고, 오늘이 가기 전 할 일로 '칼럼 쓰기'를 적은 뒤 플래너를 덮는다. 이번 주제는 사회적인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의대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면 좋겠다고 전하던 회장님의 말이 떠올라 벌써부터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막막해진다. 약리학 수업시간은 오늘도 어김없이 벅찬 세 시간이었다. 교수님께서는 강의록에 없는 설명들을 쏟아내셨고 강의록에 손필기를 하던 나는 결국 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키보드를 꺼내들었다. 그마저도 강의록에 적힌 수백 개의 약물 이름은 다 거기서 거기 같아 보여 나는 그만 정신을 놓고 싶어진다. 수업시간에 이해하겠다는 생각은 사치라고 냉철하게 판단한 나는, 일단 빠트리지 말고 받아 적기라도 하자고 생각하면서 그 이상은 오후의 나에게 미뤄두기로 한다. 폭풍과 같은 세 시간 반이 지나고, 꿀같은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 안에 점심을 먹고 방을 청소하고 칼럼 초안을 잡고 싶다. 라는 생각은, 교수님께서 수업 직전 참고자료를 올려주시면서 보기 좋게 날아간다. 계획 세우기의 단점은? 계획을 세우는 것의 단점은, 그 계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작던 크던 실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 감정은 계획이 어긋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짜증일 수도 있고, 계획대로 되도록 좀더 노력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일 수도 있다. 평소 나의 감정은 후자에 좀 더 가까웠다. 하지만 하루를 마친 조용한 밤에 그렇게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분노하다 보면, 문득 공허함이 찾아왔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분노하고 있지? 이 감정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주지도 않고, 미완인 과제를 뚝딱 완성해주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하루를 계획함으로써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일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든지 끊임없이 본인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열망한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며,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이왕이면 근사한 결과를 얻기를 기대할 것이다. 가끔은 남들의 인정을 받기를 원하고, 그 순간에도 자칫 나의 기준을 잃지 않을까 경계하지만 또 그 균형을 맞추며 살아간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나는 계획을 세우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따금씩 많이 헷갈려하기는 한다. 사실, 내가 뭔가 틀을 만들고 그 안에 나를 집어넣으려는 것보다는 나의 특성을 인정하고, 이걸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것도 내가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으며 그저 내가 좀 덜 불안해하기 위한 허울이 아닐까? 어디까지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 이고, 어디서부터가 나를 인정하지 않고 바꿔버리려는 데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인가. 반대로, 어디까지가 '나를 있는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소망' 이고, 어디서부터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지 않는 안일한 사람의 아집일까. 3년간의 긴 수험생활을 끝내고, 처음으로 온 대학이라는 곳은 늦게 된 만큼 더 소중한 공간이었고,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게 한 조직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수험기간 동안 다른 사람들과 벽을 치고 공부에만 집중한 세월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나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고, 많은 활동을 하고 경험을 쌓았다. 그러면서 이러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3년 전의 나와 지금 나는 성격도 계획하는 것들도 많이 달라졌으니까. 혹여 또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이 생기게 되면 나 자신에게 위에 써놓은 수많은 질문들을 하며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왔던 것 같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이런 고민을 멈추지 못하겠지만, 일단은 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해 보일 수도 있는 결론을 하나 내려보기로 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분명히 노력하지 않는 상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할 것이고, 자신을 지키고 싶어하려는 노력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들이 서로 충돌할 수도 있지만, 두 욕망은 모두 나를 발전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가기로 했다.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문구를 가져와 보았다. 시험기간이라 예민해진 정신은 이 글귀를 읽고는 내가 이걸 할 수 있으면 신이지 사람이겠냐 라는 비판적인 반응을 뱉어냈지만, 사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계획 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도움이 될 문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용기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라인홀드 니버 비록 바쁜 실습 일정에 치이거나 연이은 시험으로 허름해졌더라도, 조금이나마 잠을 보충해야 할 토요일 오전 9시에 보충수업이 잡혀 있더라도 (필자의 이야기 맞음), 우리는 나름의 속도와 에너지로 오늘 하루를 살아냈고 내일도 잘 이겨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치열한 고민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 당신에게, 우리의 이런 하루들이 모여 미래의 단단한 자신을 만들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와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말을, 이런 조악한 글로나마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미래 우리가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게 될 때에, 고민했던 순간들이 모여 더 나은 처치를 떠올리게 하고 또 누군가에게 더 진심어린 위로를 전할 수 있게 되기를.
의사가 환자에게 하지 못하는 말 2021-03-29 05:45:50
"더이상 저희가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학생 의사로 병원실습을 돌던 중 교수님께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말이다. 교수님의 회진시간을 기다리던 환자분은 메모장과 펜을 든 채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셨다. 앞으로 어떤 걸 해야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교수님께서는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3개월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왜?' 이렇게 멀쩡해보이는 환자가 3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것이며, 왜 교수님께서는 저렇게 매정하게 말씀하실 수 밖에 없는것일까? 교수님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냉정하다고 생각했던 교수님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무거웠고 눈에는 미안함, 안타까움이 뒤섞인 눈물이 밖으로 나오지못한 채 고여있는듯 했다. 희망을 주는 것과 남은 생을 자유로이 살 시간을 주는 것, 그 사이에서 의사들은 수많은 고민과 선택을 하고 산다는 것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도 기적이라는 건 있지 않냐"고. "기적적으로 암이 완치되는 사람들을 TV에서 봤다"고. 맞다. 틀린말이 아니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에게 희망만 줄 수는 없다. 안타까움와 아쉬움은 그 한번 뿐이 아니었다. 한번은 정신건강의학과 실습을 돌 때 치매와 우울증을 앓고있던 환자가 면담 중 과자를 나눠먹자고 가져온 일이 있었다. 하지만 환자-의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받지 못했던 것도 아쉬운 일 중 하나다. 또 안타까운 일로 치자면 한창 꿈을 펼칠 나이에 갑작스럽게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젊은 환자를 본 일도 있다. 이처럼 병원에는 참 내 마음같지 않은 일들이 많다. 그럼 정말로 더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우리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긍정적으로 지내며 병을 극복한 분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환자들에게 이를 권해 줄 수 있다. 또한 정기검진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기획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도 있고, 혈소판 수혈이 필요한 환자를 주변에 알리는 플랫폼을 통해 응급상황을 넘길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된다. 살아갈 의지와 치유에 대한 희망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환자를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다. 필자는 병원 실습을 돌며 환자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지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고자 '우리'들의 따뜻한 손길이 의료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첫번째 프로젝트로, 메디컬 매버릭스의 공익캠페인플랫폼팀에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의료봉사를 기획해보고자 한다. 다음 칼럼을 쓸 때 쯤에는 따뜻한 손길을 받으신 분이 한분이라도 나오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만남과 헤어짐, 그 끝없는 반복속에서 2021-03-15 05:45:50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 정호영| "선생님, 저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말이 참 싫어요. 왜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어야해요?" 정신과 병동 실습을 마치는 날, 실습 중 제법 친해진 나은(가명)이가 마지막 인사를 하며 했던 질문에 뭐라 대답을 해야할지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울컥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웃으며 잘 지내라고 인사하며 돌아섰지만, 그 순간은 나의 작년 1년간 병원생활 중 가장 강렬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었다. 개인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 말해보자면, 나은이는 오랜 우울증을 앓고있는 여고생 환자이다. 제법 씩씩하게 병동생활을 하는 것 같다가도 나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러다가도 “저는 선생님이 좋아요. 제 말 잘 들어주시잖아요. 선생님한테 말하니까 답답한 기분이 없어졌어요. 감사해요.“하며 배시시 웃던 환자였다. 3주라는 실습기간 동안 정이 꽤 많이 들었던 모양인지 나은이의 질문은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지만 쉽사리 답을 내지 못했다. 그러게, 왜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병원에서의 생활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다. 매주 다른 실습일정 속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많은 환자들을 비슷한 루틴으로 마주했지만, 헤어지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증상이 호전되어 웃는 얼굴로 병원을 떠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생사의 기로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환자도 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떠나기도 하는가 하면, 10달의 기다림 끝에 새로운 생명을 안고 병원을 떠나는 엄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러나 저러나 헤어짐은 늘 아쉽다. 환자의 완치는 정말 기쁜 일이지만, 오랜 기간동안 환자와 동고동락 하던 환자가 퇴원하여 침대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볼 때는 왠지 모를 허전함도 느껴진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생명을 떠나보내는 일이나, 오랜기간 병마와 싸우던 환자를 영원히 보내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겪으면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정의 한다면 좋든, 싫든 헤어짐은 의사와 환자의 숙명이 아닐까. 그렇지만 의사와 환자가 헤어진다고 해서 둘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사가 행한 의술은 환자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을테니. 그 뿐만이 아니다. 의사에게 역시 환자와의 경험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니 말이다. 가끔 나은이가 퇴원해서 학교는 잘 다니고 있을지, 먹고싶어하던 떡볶이는 먹으러 갔을지, 요즘은 죽고싶단 생각은 하지 않을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또 환자가 마지막에 내게 던진 질문 역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환자와 헤어짐이 인연이 다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헤어짐이 조금은 덜 슬프지 않을까. 만남과 헤어짐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 이 소중한 인연을 잘 보듬고 가야지 다짐해본다. 또한 나 역시 내가 만났던 환자의 인생의 조그마한 해답을 주었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의사(醫師)의 의사(意思)는 어디에 2021-03-02 05:45:50
|원광의대 본과1학년 정은별|지난 해 여름, 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추진 등의 법안에 대해 의대생들은 동맹휴학과 수업 및 국시거부, 전공의들 중심의 의사들은 파업이라는 단체행동을 하며 투쟁했다. 의정 합의가 이루어지고 단체행동이 종료되었지만, 동맹휴학에 참여한 의대생으로서 단체행동의 경과에 대한 아쉬움과 걱정이 많이 남는다. 수업거부 및 동맹휴학에 참여한 학생들은 단체행동 중단이 결정되기 전까지 학업에 공백이 생기면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국시거부에 참여한 본과 4학년 학생들의 경우, 기존에 준비하고 있던 실기 일정이 완전히 뒤틀리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시험을 준비해야 했기에 심리적 부담감이 타 학년 학생들에 비해 상당했을 것이다. 전공의들 역시 병원에 따라 징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도 했으며, 대학병원 진료에 있어 시간 지연이 발생하는 등의 불편을 환자들은 겪었다. 단체행동의 end-point 도달을 완전히 하지는 못했기에, 앞서 언급했던 각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에 비했을때 이룰 수 있었던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근래 '의사면허 취소법'이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의&8226;정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는데, 반년 전의 투쟁의 발단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가장 안타깝고 답답한 점은, 일반 대중에게 의료계 현안에 대한 의사들의 생각이 왜곡되어 언론을 통해 전달되면서 색안경을 끼고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의사면허 취소법의 경우 의사들이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주된 이유는 '모든' 금고형 이상의 처벌에 대해 해당 법안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의료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나 의료행위와는 무관한 교통사고, 경영난으로 인한 임금 체불 등의 이유만으로 의료행위를 수 년간 할 수 없게 되는 과잉 처벌을 받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 의사 옹호’와 같은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함께, 성추행 등의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에 대해서 면허 취소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의사들이 취하고 있다는 보도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기사를 본 사람들은 ‘특권 의식을 가진 의사들’, ‘범죄를 저질러도 버젓이 진료하는 의사들’이라는 틀을 통해 의사들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의사들은 6년간의 의대 학부과정 혹은 4년간의 의전원 학사과정을 통해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올바르게 치료할 수 있도록 방대한 양의 의학지식과 의료 윤리에 대해 배운다. 이후 4년에서 5년 간의 수련을 받는 과정에서, 최소 일주일에 80시간 이상을 병원에서 일하며 생명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수많은 의사들의 의료계 현안에 대한 입장은 특권 의식이나 범죄 옹호와는 거리가 멀다.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제대로 진료받을 수 있도록, 의사들의 의료행위를 금지하는 형벌의 범위를 불필요한 영역까지 확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검증된 양질의 의료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학생들이 의학교육을 받게 해 ‘돌팔이 의사’를 양산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전문 분과에 대해 충분한 수련을 받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 환자를 위한 더 효과적이고 적절한 약물을 경제적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 이와 같은 의사들의 뜻과 생각, 의사(醫師)의 의사(意思)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나라를 구원할 수 있는 '선택받은 자', 바로 당신 2021-02-22 05:45:50
|서울의대 본과2학년 강지형|왜 하필이면 여린 학생인 세일러문에게 지구를 구하라는 가혹한 사명이 주어졌냐는 질문에, 트위터의 한 현자는 "회사원들에게 세일러 전사의 사명을 맡겼다면 그 전사들이 앞장서서 지구를 파괴했을 거"라고 답한 바 있다. 이처럼 자기 인생의 주인공 노릇 하기도 벅찬 현대인들에게 지구를 구하는 것은 다소 버거울지도 모르나, 그들 역시 마음 한켠에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엄청난 일을 도모하고 싶은 꿈을 여전히 갖고 있을 것이다. 엑스칼리버를 뽑은 아서 왕,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자'라고 예언된 아나킨 스카이워커, 볼드모트를 무찌른 해리 포터, 디지몬과 함께 디지털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선택된 일곱 친구들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택받은 자(The Chosen One)'의 서사가 수없이 많은 반복과 변주를 거치면서도 사랑받은 것은 그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가까이에, 자신이 그 '선택받은 자'가 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 바로 골수 이식을 위한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데이터베이스에 이름을 올려놓는 것이다. 가까운 헌혈 장소에 가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데이터베이스 등록을 위한 혈액 샘플 5mL를 채취한 뒤 연락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나중에 본인의 조혈모세포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등장하면 본인에게 연락이 오게 되는데, 이때 형편이 될 경우 며칠의 시간을 내 조혈모세포 기증을 할 수 있게 된다. 옛날에는 골수천자라고 해서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바늘을 갖고 엉덩이뼈에서 직접 골수를 채취해 기증자의 후유증이 심했지만, 이제는 일반 헌혈을 하듯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는 기술이 생겨 기증자의 부담은 훨씬 줄어들었다. (자세한 절차 안내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참고) 왜 조혈모세포 기증은 일반 헌혈과 달리 '선택받은 자'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의 면역학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 몸이 하나의 작은 나라라고 한다면, 면역계는 그 나라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겸 군대라고 할 수 있다. 이 나라의 세포 시민들은 모두 주조직적합성복합체(MHC)라는 옷을 입고, 자신이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했는지 증언하고 다닌다. 면역계 군인들은 이런 세포 시민들을 시찰하다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세포가 있으면 가차없이 처단한다. 만약 이 나라에서 쿠데타(급성골수성백혈병)가 일어나는 등 모종의 이유로 군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내란을 진압해야 할 군인들이 내란을 일으켰으니 나라는 외세의 침략에도 무방비하고 내부적으로도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치료법이, 바로 문제가 되는 본국 군인들을 깡그리 쓸어버린 뒤 다른 나라의 군수 시설과 교관들을 들여와 거기서 양성한 군인들로 새로 나라를 지키는 조혈모세포 이식이다. 문제는 이렇게 수입해 온 외국 군인들은 원래 세포 시민들과 다른 옷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융통성 없기는 매한가지인 외국 군인들은 옷만 다를 뿐인 무고한 세포들도 수상한 자로 간주하고는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을 이식편대숙주반응(GvHD)이라고 칭하며, 환자 입장에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므로 최대한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따라서 조혈모세포 이식을 해줄 때는 최대한 옷이 똑 같은 나라에서 군대를 모집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흔히 알고 있는 수혈의 ABO 항원이 MHC로 바뀌었을 뿐이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MHC 항원 형태가 호환 가능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각각 받은 HLA-A, HLA-B, HLA-C, HLA-DRB1, HLA-DQB1 등 10개 유전자의 조합이 거의 모두 일치해야 한다 (HLA 유전자는 MHC 분자 제작에 쓰인다). 문제는 HLA-B 유전자만 해도 변이형이 800개를 넘어가는 등, 인간의 HLA 유전자는 다형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형제의 경우에는 이 유전자 조합이 일치할 가능성이 그나마 높지만, 아예 모르는 사람과 우연히 이 모든 조합이 같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혈액형 종류가 800개나 된다면 알맞은 피를 확보하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해 보라. 이제 그와 비슷한 조건이 10개가 중첩된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알맞은 조혈모세포 기증자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조금 감이 올 것이다. 이처럼 HLA 유전자가 다양한 것은, 종 전체 수준에서 최대한 많은 종류의 MHC를 만들어 아무리 새로운 항원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인간 중 누군가는 그 항원에 반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이다. 이는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는 데는 큰 도움이 됐겠지만, 현대에 장기 이식을 할 때는 매우 큰 장애물이 된다. 만약 형제 중에 이식 가능한 사람이 없으면, 환자와 의료진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 중 HLA가 일치하는 누군가가 기증 의사를 밝혀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가 조혈모세포 기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선택받은 자'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나의 HLA 조합이 일치했다는 건, 내가 최대한 많은 MHC를 만들어 내라는 진화의 압력을 뚫고 그 사람과 겹치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기증 희망 누적 등록자는 그 수가 30만을 훌쩍 넘기지만, 그동안 실제 이뤄진 수술은 7000여 건에 불과하다. HLA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을 해놓는다 하더라도, 10년이 넘도록, 아니 어쩌면 평생토록 내 조혈모세포를 필요로 하는 환자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등록자가 더 늘어날수록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날 확률도 높아지며, 그렇게 일치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환자에게는 희망의 빛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을 하지 않은 당신, 어쩌면 당신은 쿠데타로 신음하고 있는 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선택받은 자'일지도 모른다. 어떤가, 당신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 이야기에 함께해보지 않겠는가?
대한의사면허관리원에 대한 고찰 2021-02-15 05:45:50
작년 11월 14일, 의사협회와 의료정책연구소에서 진행한 젊은 의사 포럼에 참석했다.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님께서 ‘의사 단체와 젊은 의사’를 주제로, 앞으로 어떤 의사 단체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 그 과정에서 젊은 의사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일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다. 의사 단체가 해야 하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흔히 알고 있는 이익단체 역할이다. 대의원회, 상임이사회, 정책연구소로 나누어져 있으며 정책을 개발하고, 수가를 협상하며, 회원을 보호하고 신분, 경제적 이익 보장을 위한 조합의 기능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조금 생소하지만, 공공 법정단체 역할이다. 면허와 관련된 업무와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며, 윤리 지침, 윤리 강령을 만들고 졸업 후 교육, 연수, 보수교육, 면허 등록과 갱신, 소원 수리 접수, 조사, 행정 처분 기능을 뜻한다. 요약하자면 Trade union(조합의 기능)과 Regulator(면허관련 업무와 교육 기능)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칼럼에서 다루고 싶은 것은, 포럼 끝에서 의사 단체 정체성 문제로도 지적된 바 있는 조합과 면허기구 이원화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 법정단체로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가칭)대한의사면허관리원’이다. 지난 1월 20일, 대한의사협회는 의사 면허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가칭)대한의사면허관리원 설립’을 추진할 예정임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일부 극소수 의사의 바람직하지 못한 의료활동으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사회에서는 의사 집단이 규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의사 집단 전체를 질책한다. 즉 의사 단체가 Regulator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인데, 의사 단체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법적인 근거와 권한이 없다. 정말 억울한 일 아닌가. 이 권한은 현재 보건복지부가 가지고 있다. 그러나 13만 명이나 되는 의사, 도합 100만 명이나 되는 전체 보건의료인을 관리하는 보건복지부-보건의료정책실-의료인력정책과 소속 공무원은 8명뿐이다. 8명의 공무원이 100만 명이나 되는 의료인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규정상,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에서 별도로 처벌위원회를 만들어서 처벌하게 된다. 즉 의료 결과가 형사 범죄화 되어, 결과적으로 전과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의사의 진료는 것은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완벽하지 않으며 의사는 신이 아니다. 진료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형법이라는 것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타인에게 해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행하였을 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상대방을 칼로 찔러 사망하게 한 살인 사건과 수술 중 의도하지 않은 부위에 손상을 받아 출혈로 사망을 초래한 과실치상 사건 모두 형법의 적용을 받는 것이 과연 옳은가? 대한의사면허관리원에서는 의사면허 자율징계권을 가지고, Regulator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낯설게 느껴지지만, 실은 이미 같은 법정 단체인 변호사협회에서 시행 중인 역할과 같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개업을 하려면 변호사협회의 허가가 필요하며, 문제가 생길 경우 법적으로 징계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즉 변호사협회는 1심 기능을 가진 행정법원인 것이다. 이번에 초안이 마련된 대한의사면허관리원에서는 변호사협회와 동등한 수준의 자율규제권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중앙윤리위원회가 이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중앙윤리위원회가 보건복지부에 의사의 면허 정지를 요구할 수 있는 경우는 의료법 제66조 1항 1호, ‘의료인의 품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할 때’뿐이다. 애매하지 않은가? 심각함의 기준과 품위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의료법 시행령 제32조에 의료인의 품위 손상 행위의 범위가 제시되어 있기는 하다.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진료행위, 비도덕적 진료행위, 허위 과대광고, 불필요한 검사 투약 수술을 한 경우, 전공의 선발 부정행위, 환자 유인행위, 약국 담합행위 등이 품위 위반 행위로 제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에 해당하지 않는 ‘품위손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즉 사기, 몰카범, 의료진 폭행, 성범죄, 살인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경우 시행령 제33조에 따라 보건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요청하게 되는데, 의료법이나 의료법 시행령에 규정된 면허 정지 사유가 아니라고 해서 면허 정지나 취소 같은 처분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치 겉에서 보면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의사 면허가 정지되지 않는, 마치 면허는 철밥통이라는 인상을 주며, 의사 단체가 더욱 거센 사회 전체의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대한의사면허관리원의 초안이 마련되었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다. 시범사업 중간보고 기자회견에서도 거론되었듯이, 보건복지부, 지자체 보건소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나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협조가 원활하지 않다. 또한 조사권의 한계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렵고, 조사가 지연되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구를 설립함과 동시에, 법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덧붙여, 출범한 기구에 회원의 신뢰, 사회 전체의 신뢰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종이호랑이와 다를 것이 없다. 좁은 단체, 직업적 동질성이 있으면 소위 ‘팔이 안으로 굽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당연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전문가 집단이라면 소수의 동료가 나머지 다수의 동료에게 나쁜 집단 이미지를 주거나, 사회적 불신을 만드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겠는가? 우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교육과 설득으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문제가 발생했다면 의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전문성을 가지고 사건을 조사하고 잘잘못을 판단하는 것이 훨씬 공정하고 정확할 것이다. 이 공정함과 정확성을 기반으로, 모든 사람의 신뢰를 얻어내는 작업 또한 진행되리라 기대한다. 우선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올 3월 의사협회 회장 선거이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제41대 집행부가 새로이 의사협회를 맡아 꾸려나가게 될 것이다. 집행부 변화가 대한의사면허관리원 출범사업 진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기도한다.
금연 정책, 가격 규제만이 답은 아니다 2021-02-01 05:45:50
|전남의대 본과2학년 이균건|1월 27일 보건복지부는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발표했다. 2021년도부터 2030년도까지의 장기적인 국민건강의 향상을 위한 로드맵은 건강수명 연장과 건강형평성 제고라는 총괄 목표 아래에, 건강생활 실천/정신건강 관리/비감염성 질환예방관리/감염 및 환경성질환 예방관리/인구집단별 건강관리/건강친화적 환경구축의 분과로 나누어진 국민건강의 포괄적인 분야에 걸쳐져 있다. 이 중 사람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운 부분은 단연 담배 규제와 관련한 것이다. 앞으로는 담배의 정의를 기존 연초의 잎으로 제조하는 담배에서 연초 및 합성 니코틴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는 담배와 전자담배 기기장치로 확대하고 건강증진부담금을 WHO 평균 수준으로 인상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현재 4500원인 담뱃값을 10년에 걸쳐 WHO가 발표하는 OECD 평균 담배값인 7.36 달러(한화 약 8136원)까지 인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담뱃갑 경고그림 면적을 현행 50%에서 75%까지 확대하고 광고 없는 표준담뱃갑 도입 등 가격·비가격 규제를 함께 강화한다. 흡연은 폐암과 같은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분과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내과질환의 유발 원인이 되기에, 일차예방의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금연을 장려할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담배가격 인상으로 인한 흡연량 감소는 저소득층에서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흡연율이 높은 우리나라 현 상황상 가장 효과적인 규제책일 것이다. 가격규제의 효과는 담배 가격을 80%인상함으로써 반출량이 15.5% 떨어졌던 2015년에 잘 나타났다. 정말로 쉽고, 효과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흡연율을 낮추는 방법은 개개인의 금연을 장려하는 방법과 흡연 자체를 규제하는 방법의 두 가지 방향의 정책으로 나뉠 수 있다. 이는 흡연율 감소를 위한 당근과 채찍에 비유할 수 있다. 위에 언급된 계획들은 아무래도 흡연을 규제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흡연을 규제하는 것이 결과론적으로는 효과적인 정책일 수 있으나, 이것에도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담뱃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금연을 하지 못하는 저소득자도 분명히 존재하며, 이들의 담뱃세 부담은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담뱃세는 직접세가 아닌 간접세이기 때문에 금연을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고소득자에 비해 저소득자에게 담뱃세 인상은 크나큰 타격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저소득층의 흡연량 감소에 기여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세율 인상을 넘어, 이들에 대한 금연사업 집중 등의 방법 또한 필요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지속적인 담배규제 정책이 남성흡연율 감소에는 기여하고 있으나, 여전히 여성 흡연율은 증가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번 5차 계획의 목표에는 건강수명 연장뿐만 아니라 건강형평성의 제고 또한 있기 때문에, 단순한 규제정책을 넘어 저소득자와 여성 등을 고려한 대책 또한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결과의 형평성뿐만 아니라 그 과정의 형평성 또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이전 정책들의 부작용 또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국민건강증진법 제 9조에 의해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이외에도 추가로 지정된 금연구역까지 더해져 서울시에만 28만개가 넘는 금연구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에 비해 흡연 구역은 1만개도 되지 않는다. 이는 국민건강증진법상 금연구역 지정이 의무화되어 있지만, 흡연구역 지정은 의무가 아닌 가이드라인 정도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금연구역은 흡연자들이 무분별한 장소에서 흡연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비흡연자들의 간접흡연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다. 하지만 현재처럼 금연구역만 수두룩한 상황에서는, 풍선 효과 때문에 밀려나온 흡연자들로 인해 실효성 있는 금연구역 운영이 가능할 지 의문이다. 여기에 더해 이번 계획에서는 단계적으로 모든 공중이용시설 실내에서 흡연금지까지 추진한다고 한다. 담배 자체를 판매금지 함으로써 흡연율을 0%로 만들 것이 아니라면, 흡연자들이 비흡연자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흡연자들의 흡연권을 보장하는 것이 비흡연자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은 없으며, 흡연자에 비해 비흡연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기에 흡연에 대한 강력한 규제책이 나오게 된 배경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함께 사용해서 흡연자들이 본인 의지로 금연에 나서게끔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