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제네바 선언 사이에 선 정신과 의사들
문성호 기자 news@medicaltimes.com
  • 기사입력 2016-10-28 12:00
    |메디칼타임즈 문성호 기자|"한 겨울에 환자를 반팔, 반바지차림으로 내보내야 하는 것인가."

    최근 검찰이 정신병원장 및 봉직의를 무더기로 기소한 것을 두고 한 정신과 전문의의 말이다. 실제로 의정부지검은 지난 6월 경기북부 일대 정신의료기관 20여 곳에 대한 압수수색 및 정신병원장 및 소속 봉직의 66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최근 약식기소 47명을 포함, 53명이 기소했다.

    검찰은 정신보건법 제24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시 6개월 이후 퇴원명령'에 따라 정확히 환자를 퇴원시켰는지를 집중 조사하는 한편, 이를 근거로 퇴원명령을 받은 환자를 즉시 퇴원시키지 않고 단 2~3일이라도 계속 입원시켰다면 '감금'이라고 판단하고 경기북부 일대 정신의료기관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법적인 기준을 어긴 병원장 및 봉직의를 기소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천지검 등도 퇴원명령을 둘러싼 정신의료기관들의 집중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조사가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정신과 전문의들은 검찰의 이 같은 조사를 두고 의료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정신의료기관 특성 상 퇴원명령이 내려져도 가족이 없어 갈 곳이 없는 환자가 상당수거나 퇴원 즉시 환자가족이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즉 정신의료기관 입장에서는 퇴원명령이 내려져 환자를 퇴원시키고 싶어도 퇴원시킬 수 없는 처지도 많다는 것이다.

    한 정신병원장은 "환자가 한 여름에 입원한 뒤 6개월 후 퇴원명령이 내려졌는데, 정신병 환자 특성 상 갈 곳이 없는 환자들이 간혹 있다"며 "그렇다고 한 겨울에 반팔, 반바지차림의 환자를 내보낼 순 없지 않나. 이번 사태도 이로 인해 일어났는데, 검찰이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법적인 모호성도 이번 사태를 키웠다. 정신보건법 제24조 4항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의 장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환자 입원 시 6개월 이 후 환자 퇴원심사 결과에 따라 퇴원 등의 명령을 받은 때에는 '즉시' 퇴원을 시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퇴원명령에 따라 '즉시' 퇴원했다고 보는 시점이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하위 법령이 없는 상황이다. 각 지자체마다 이를 제각기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의료기관 입장에선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

    물론 이번 검찰 조사가 일부 정신의료기관들의 환자 인권침해로 비롯됐기에 이에 대한 조사가 잘못됐다고 보진 않는다.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면 해당 기관은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인권침해가 아닌 법적인 미비와 갈 곳 없는 환자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의료기관과 의사들까지 벌을 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로 인해 정신의료기관과 의사들은 환자가 아닌 법적 기준을 우선시 해 진료하게 됐다는 점이다.

    결국 오갈 데 없어 그동안 의료기관에 입원해 있던 상당수의 장기입원 환자들만 피해를 보게 될 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에,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 나는 종교나 국적이나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어떤 위협이 닥칠지라도 나의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다."

    의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제네바 선언' 중 일부다.

    법과 제네바 선언 사이, 지금 그곳에 정신과 의사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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