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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김가현
발행날짜: 2021-12-06 05:45:50

김가현 학생(경북의대 본과 1학년)


지난 1년동안 나는 나름 열정적인 의학도였다. 본과에 올라와 몰아치는 시험일정에 지치고 힘들었지만, 생명을 살려내는 귀중한 지식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크나큰 기쁨과 뿌듯함을 느꼈다. 죽음이란 나에게 다소 추상적인 개념으로 다가왔었다. 죽음은 불치병이나 암, 사고로 인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그런 막을 수 없는 문제 외에는 현대의학이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지난 가을, 외할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으셨기에 더욱 갑작스러웠다. 90세라는 고령, 완전한 노화만으로 인해 급속히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보며 나는 현대의학이 제시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배우던 의학지식은 병에 대한 끝없는 알고리즘과 선택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모든 기능이 멈춰가는 한 노인의 신체 앞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전혀 배운 적이 없었다.

연명치료를 절대 받지 않겠다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 가족은 연명치료를 중단하였고, 할아버지께서는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하셨다. 이후 죽음과 현대의학, 노화와 연명치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지음)', '나이듦에 관하여(루이즈 에런슨)' 등의 책을 읽으며 현대의학 속 소외받는 환자들의 삶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노인의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큰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다.

세계는 이제 외면할 수 없는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과거의 사람들보다 더 오랜 시간 신체의 기능이 떨어진 노인의 상태로 살아간다. 인류는 고도로 발전한 현대의학을 통해 노화를 나름 잘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각종 만성질환에 대해 약을 먹고 꾸준히 관리를 하며, 수술을 통해 수명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모두 독립적인 신체기능을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미국의 노인병 전문의 실버스톤 박사는 "노화 과정에 관여하는 단일하고 일반적인 세포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그저 허물어질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의학은 삶을 연장할 수 있는 많은 도구를 가지고 환자의 생명을 지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는 질병 뒤에 숨겨진 환자의 삶에 집중한 적이 있었는가? 노화와 질병으로 인해 환자는 자신이 평생 지켜왔던 삶의 가치를 하나씩 잃어간다. 자신이 삶의 마지막까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몰개성화된 투병 과정을 거치며 죽음은 현대의학의 경험으로 변질된다.

노인의학 전문의들은 죽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마지막으로 경험할 인생의 여정을 더 존엄하고 가치 있게 보낼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노인에게 필요한 것이 안전과 치료라고 생각하지만, 노인에게도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 우리는 최첨단 기술과 알고리즘에 의존하기보다 환자 개개인의 삶에 귀 기울이고 환자가 마지막까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맞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면 복용하는 약이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한 부작용도 함께 증가한다. 의사는 약으로 인한 부작용을 또 다른 질병으로 오인하고 약을 처방해주어, 환자는 먹는 약이 늘어나지만 몸은 더 피곤해지게 된다. 질병에만 집중하다 환자의 불편함이 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개개인의 상태와 약의 부작용을 면밀히 분석해 꼭 필요한 약만 처방한다면, 환자의 증상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고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다.

그들이 삶의 마지막에 어떤 것을 원하는지,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평소 충분한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가치는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다. 사랑하는 이웃, 가족과 이야기하며 평범한 오후를 보내는 것이나 주말 오전 평생 다니던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에 대한 대화는 중요한 의학적 결정을 내릴 때 환자의 삶을 지켜주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의료의 패러다임은 나에게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인류보다 오랜 시간 노년기를 보내게 될 우리에게 꼭 도입되어야 할 시스템이라고 직감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죽음과 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서툴다. 나 또한 삶의 마지막과 죽음은 철학, 종교 분야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서 노화와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가장 가까이 있으며, 죽음을 과학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의사이다. 환자를 살리는 것이 의사의 가장 중요한 소명이지만,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의사의 역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마지막까지 삶의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노인의학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노화와 죽음에 대해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좋은 나이듦에 대한 대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내가 행하는 의료행위가 진정 환자의 삶을 위한 것인지 윤리적인 고민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물론 노인의학이 우리나라에 보편화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정부의 지원도 부족하고, 관련 전문의 수도 매우 적다. 하지만 이럴수록 의료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먼저 의학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의술을 베푼다면, 더 많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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