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데바를 처음 보다
최윤갑 학생(가천의대 예과 2학년)
기사입력 : 2021-10-1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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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가 개강한지 한 달여가 지나갔다. 2학년 2학기는 처음 기초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때이므로 의대생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시기이다. 본과 과정을 시작하는 시기라 예과 1학년, 2학년 1학기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수업들이 진행되었다. 낯선 이 느낌에 많이 긴장되기도 하고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앞섰다.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조직학을 배우는데 가장 힘들 것 같은 과목을 꼽으라면 당연히 해부학이다.

여름 방학 동안 비대면으로 골학이 진행됐다. 비대면 골학의 마지막날에 두개골(skull)파트가 배정되었고, 마지막 날 전까지는 탈없이 잘 버텨왔다.

마지막 날 skull 파트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상지 하지를 암기할 때와는 다르게 skull 부분을 암기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 많은 구멍들과 뇌신경들을 외우고 있노라면, 지금 생각해도 정신이 아찔해져 눈이 감기는 것만 같다. 시험 전까지 제대로 다 못 외울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나의 불안한 감은 틀리지 않았고, 제대로 암기하지 못하여 조별로 진행된 시험에서 우리 조가 꼴찌로 골학을 끝마쳐야 했다.

조원들에겐 너무 미안함과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 큰 실망을 했었다. 이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골학을 베이스로 진행되는 해부학이기에 기초의학 중에서 가장 많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여파로 해부 실습은 연말로 미뤄졌고, 우선 비대면으로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다. 이론 수업이 끝나고 나면 수업한 부위를 e-anatomy를 활용해 영상을 보고 리포트를 제출하는 방법이다. 레포트는 영상 중에서 반드시 찾아야 하는 구조물들을 찾고, 해당 구조물을 찾는 과정을 정리하는 식이다.

아마 실제 카데바를 보기 전에 많은 의대생들이 하는 생각은 '과연 내가 카데바 해부를 볼 수 있을까?'가 아닐까 싶다. 영상으로 카데바를 보게될 나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이론 수업 때 암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이걸 다 외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더 커져버려, 앞서 생각한 걱정은 쉽게 묻혀버렸다.

우리 학교는 하지, 상지, 머리, 몸통 순으로 수업을 진행해서 가장 먼저 봐야할 카데바의 부위는 다리였다. 이론을 어느 정도 듣고 나서 실습 영상을 봐야 이해가 되겠지만 나는 미리 한 번 봐두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E-anatomy 홈페이지에서 시신해부 윤리지침을 우선적으로 읽었다. 이 때에는 당연한 윤리의식인 것 같았다.

얼굴 파트는 아직 수업을 하지 않았기에,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얼굴 파트의 실습 영상을 보았다. 카데바를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몇 주전에 영상으로 본 것이지만 그때의 그 강렬한 인상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검은 천으로 상체가 덮혀 있고, 얼굴만 보이는 시신 한 구가 카메라의 빛을 받으며 누워있었다. 눈은 검은색 선으로 모자이크 되어있었고, 피부는 거뭇거뭇하였다. 나이가 많은 남성의 시신이었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인형아닐까?', '이걸 내가 직접 본다고?', '얼굴 피부를 벗겨낸다고?'… 23년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고 접한 사건들 중 가장 미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빠르게 이 순간을 벗어나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부가 진행돼감에 따라, 카데바는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의 탈을 벗어내고, 해부학적 대상으로 변모해갔다.

피는 나지 않고, 근육들과 뼈만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 교과서에서 보던 익숙한 그 모습들이었다. 처음에 들던 오만가지 생각은 온데 간데 없이 싹 사라진채, 이론수업 때 말한 구조물들을 찾는데 열중하는 나의 모습만이 모니터 속에 비춰졌다.

처음 해부영상을 보기 전에 보았던 시신해부 윤리지침을 다시 보았다. 당연하게 여겼던 윤리지침들이, 실제 해부의 무게감을 알고 난 뒤에는 해부가 얼마나 엄숙하고 경건한 행위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 말고 또 느낀 점이 있었다.

'시신해부의 목적은 오로지 귀중한 생명을 살리는 지식과 의사로서의 윤리적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고 좋은 의사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라는 윤리지침서의 마지막 지침인데, 이 문장 속의 좋은 의사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의사는 무엇일까.

공부를 열심히 해 의학적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사람을 살리는 의사일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꼈다. 골학 수업 때 겪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앞으로 더 정진하겠노라고 다짐하게 되었다.

시신기증에 대해서 좀 더 찾아보았다. 시신기증은 사망 후 의학연구 및 해부학 교육을 위하여 본인의 유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아무런 조건과 보수없이 자신의 몸을 의과대학에 기증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증이 많이 부족한 탓에 무연고자를 연구목적으로 해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기증자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아마 내가 본 분도 고귀한 뜻을 가지고 자신의 시신을 기증한 한 분이라 생각된다. 정말 감사한 일임이 틀림없다. 이제 이 글을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는 말로 끝맺음 하려 한다. 좋은 의사가 될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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