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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불공정: 코로나19 백신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전승민
발행날짜: 2020-12-07 05:45:50

전승민 충북의대 학생(예과2학년)
Medical Mavericks 국제팀장



|충북의대 예과2학년 전승민|코로나19 팬데믹이 거의 1년 동안 지속되고 전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이로 인해서 코로나19를 ‘이퀄라이저’(equalizer)라고 칭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퀄라이저란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만드는 현상 또는 힘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이퀄라이저는 인간 사회에서 평등을 유발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죽음이 있다. 빈민과 부호, 백인과 유색인종, 왕과 평민, 남자와 여자 사이에 모든 차이점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죽음 앞에서 동등하고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을 ‘위대한 이퀄라이저’(the great equalizer)라고 부르기도 한다.

코로나19가 인종, 경제적 상태, 정치적 환경, 나이, 성별 등 사회를 구분하는 모든 기준을
무시한 채 무서운 기세로 환자와 사망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19 또한 위대한
이퀄라이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물론 우리 모두를 동등하게 불행하게 만든 코로나19에
‘위대한'이라는 표현이 모순적이다). 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하며 그 껍질을 조금만
분리해도 속에 내포된 불편한 진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죽음의 예시를 다시 한 번 사용하겠다. 죽음이 모든 인간에게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내전 중인 예멘에서 영양실조와 질병 때문에 죽은 1살짜리 아이와 스칸디나비아에서 풍요와 평화를 90세까지 누리다가 고통 없이 죽은 노인의 죽음을 과연 비교할 수 있을까?

이들의 죽음은 균등하다. 어쨌든 둘 다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균등(equality)을 공정(equity)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노인이 누리던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권리와 이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교육, 보건, 영양 등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의죽음이 과연 공정일까?

우리는 코로나19에서도 이러한 불공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계는 수 백 년 간 지속된 구조적 차별 때문에 백인보다 더 높은 감염률과 사망률을 보인다. 프랑스에서 부자들이 코로나19를 피해 한적한 시골의 별장과 저택으로 대피하는 와중에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핫 스폿(hotspot)이 된 지역에서 전전긍긍해야 한다.

한국에서 수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을 때 ‘팬데믹 특수’를 맞아 돈방석에 앉게 된 이들도 존재한다. 재난은 불공정하다. 그것은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경제적 불공정을 더 악화시키고 그 충격을 더 강력하게 만든다. 겨울이 가난한 이들에게 더 춥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재난도 약자에게 더 가혹하고 잔인하고,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곧 더 큰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강구해야 할지 모른다. 최근 코로나19 백신과 관련된 여러 희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화이자(Pfizer), 모더나(Moderna) 등 제약사가 개발 중인 백신이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물론 백신이 완성된 것은 아니고 설령 백신이 보급돼도 코로나19 이전 일상을 바로 회복할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존재하지만 백신 개발은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문제는 누구부터 백신을 접종시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과 같은 일부 국가들은 백신이 완성되기 전부터 물량 확보를 위해 ‘싹쓸이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나머지 국가들, 특히 개도국들은 이들이 남긴 부스러기나 주워 먹어야하는 또 다른 재앙적 상황에 부닥쳐 있다. 실제로 일부 언론에 따르면 개도국들에 대한 백신공급은 2024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세계 모든 시민은 국적을 초월해서 백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코로나19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보건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들은 특정 국가의 국민이기 전에 건강권이라는 보편적 권리를 갖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1년 동안 지속된 코로나19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이름도 모르는 개도국 사람들에게 백신을 보급하는 것은 어쩌면 잔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치료를 제공하는데 있어서 인종 또는 국적을 이유로 개인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의료인들은 이러한 명제에 강력하게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지금 위급한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을 치료하기 전까지는 저 환자가 죽든 말든 치료해서는 안 된다'라는 지침이 있다면 그것을 수용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전까지는 개도국에 백신 보급은 보류하겠다'라는 ‘백신 민족주의'(vaccine nationalism)과 큰 차이가 있는가? 특히 개도국은 선진국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리고 설령 이러한 이타적이고 공정에 기반을 둔 이유에 동의하지 않아도 개도국에 백신을 분배해야 할 실리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초연결 사회에서 몇 개 나라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보급해도 대다수의 다른 국가에서 팬데믹이 계속 창궐할 경우 큰 효과를 보기 힘들다. 중국 우한이라는 한 도시에서 발병한 코로나가 1년 미만의 짧은 시간 동안 전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의 감염자를 발생시킨 것도 이러한 초연결 사회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목표는 팬데믹의 종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는 코로나19의 불공정에 대한
고민과 해답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것이 절대 쉽지는 않겠지만
코로나19를 종식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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