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환자실에서 호흡기내과 의사로 살아가기
이대서울병원 호흡기내과 박소영 교수
기사입력 : 2019-07-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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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은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순간순간 질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환자와 의사, 간호사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현대 의학에서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집약된 최첨단의 기구들이 즐비해 있고 분, 초를 다투어 환자의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늘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중환자실에서는 하루에 한두번 20-30분만 면회가 허락되기 때문에 가족들의 안타까움도, 환자의 지독한 외로움도 '치료'를 위해 견뎌내야 한다.

중환자실에는 폐렴을 비롯한 여러가지 원인으로 스스로 숨쉬기가 어려워져 입실하는 환자가 많다. 이렇게 숨을 쉬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나는 존재한다. 중환자실의 호흡기내과 의사로서.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내과는 시간을 다투는 환자를 돌보아야 할 뿐 아니라 수주에 걸쳐 환자가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아주 조금의 변화에 기뻐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기다려야 하는 진료과이다.

숨을 쉬지 못해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게 되면, 인공 삽관이라는 가느다란 튜브를 통해서 인공호흡기와 연결을 하고, 숨을 불어넣어서 하루를 또 하루를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만든다. 그리고 그 희망이 완성되는 순간(드디어 인공 삽관을 했던 튜브를 빼고 환자가 스스로 숨을 쉬는 그 순간)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내과 의사의 임무는 어느 정도 끝나게 된다.

이때가, 드디어 다시 한번의 삶의 순간이 찾아왔음을 느끼는 환자에게도, 가족에게도, 의료진에게도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인공삽관을 했던 환자가 말을 하고 입으로 물을 먹고, 게다가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집으로 돌아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모든 일들이 정말 대단한, 삶의 경이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4년전 겨울, 전공의 2년차 때 중환자실 수련을 하면서 마음먹었다. ‘아, 이런 경험을 평생할 수 있다면 의사로서 너무나 행복하겠구나'라고. 그러나 모든 환자가 이렇게 인공호흡기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다.

단 하루 이틀도 있기 어려운 이런 중환자실에 보통 보름이 넘게, 길게는 한 두달을 머무는 (인간의 삶에 대한 열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 환자를 떠나 보내는 보호자의 몸부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요양병원과 중환자실을 왔다갔다 할 수 밖에 없는 슬픈 운명의)환자들이 있다. 이 분들 중 많은 수가,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는, 기계 호흡에 의존해야하루하루 아니 일분 일분을 버틸 수 있는 만성 호흡부전 환자들이다.

이 환자들은 분들은 숨이 막히는 고통을 참아내는 분들이기 때문에 웬만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에 의식이 너무 명료하기 때문에 이분들을 지켜보는 내내 의료진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다. '하루 종일 저 침대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얼마나 외로울까. 죽음이 다가오는게 얼마나 두려울까' 하는 생각이 늘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걱정하는 나를 위로해 주는 환자분들 또한 그러한 만성 호흡부전 환자분들이다. 이러한 만성 호흡부전 환자들은 기관절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잃어버려 주로 필답을 하는데 "오늘 왜 이렇게 힘들어 보여, 손이 너무 차네. 나는 너무 걱정안해도 되"라고 손바닥에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글씨를 쓸 때 왈칵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기는 정말 힘들다.

스스로 숨을 쉬고, 두발로 서서 걷고 푸른 하늘을 언제든지 바라볼 수 있고, 집에 가서 단잠을 잘 수 있게 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과 그렇게 해드리지 못하는 의사로서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 사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니, AI 의 발전이니, 하는 눈부신 미래가 펼쳐진 것 같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중환자실 한 모퉁이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미래는 14년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이란 꿈을 가진 존재이다. 이제부터 나의 칼은 생명과 동시에 그 꿈을 구하리라." 1890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스스로가 폐결핵을 이겨내고,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에서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했던 Henry Norman Bethune의 말이다.

중환자실의 호흡기내과 의사는 Henry Norman Bethune처럼 칼을 갖진 못했지만 환자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니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청진기를, 숨을 대신해 쉴 수 있는 인공 호흡기라는 기계를 환자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청진기와 인공호흡기로 중환자실의 환자에게 생명을 이어가는 것 이외에도 어떤 꿈을 꾸게 할 수 있을까.

함께 할 동료가 없이, 반복되는 당직과 36시간 지속근무에도 또 자정을 넘기는 너무 힘든 일상이 반복되어 여기서 멈춰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될 때가 있지만, 오늘도 나의 손을 잡아주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분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나는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내과 의사로서의 삶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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