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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언어: 수화

김가영
발행날짜: 2019-06-17 06:00:56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김가영



낯선 해외에서 우연히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있는가? 그 때 드는 이유모를 안도감, 친근감 등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청각을 잃어 세상과 소통이 끊긴 사람들을 '농인'이라고 한다.

듣지 못함과 더불어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대다수이며, 특히 선천적으로 청력이 소실된 경우에 그렇다. 선천적인 경우,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리를 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농인들이 병원을 찾을 때 가장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2019년 현재 전국에 의료수화통역사는 단 3명뿐이며, 그 외에는 내원 시에 환자가 직접 인근 지역 센터의 수화 통역자에게 연락 후 대동해야한다.

하지만 늦은 새벽 응급실에 가야하거나 지역 행사 등으로 연락 가능한 통역사가 없는 경우에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나는 예과 때 좋은 기회로 두 학기동안 '교양 수화'를 배운 적이 있었다. 처음은 가나다, 짧은 단어와 같은 기초 수화에서, 점점 문장형 수화를 배울 수 있었는데 꽤 다양한 수화를 구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강이 끝난 뒤 금세 수화를 잊어버릴까 아쉬워 농인 관련 봉사활동에 참여해보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자주 만나는 농인 분들에게 수화로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부족한 수화실력으로 아는 척 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몇 마디 시도했다가 대화가 안통하게 되면 괜히 더 씁쓸함만 안겨드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내가 마주쳤던 농인분들은 전부 활짝 웃으며, 혹은 반가워하며 적극적으로 반응을 해주셨다.

농인 체육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을 때에도, 더듬더듬 수화를 하는 나에게 맞추어 천천히 답해주시고, 교과서로 수화를 배운 내게 보다 실용적인 표현이 어떤 것인지 많이 가르쳐주시기도 하셨다.

한 마디로, 농인과 세상 사이에 소통 경로를 만들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듣지 못하는 농인에게 표음문자인 한글은 쉽지 않은 것이어서, 농인 환자가 내원했을 때 필담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자주 범하는 실수라고. 간단한 '안녕하세요', 혹은 '어디가 아프세요' 라는 수화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병원을 찾은 농인 환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다.

물론 몇 마디 배운다고 해서 주증상이나 병력청취를 심도 있게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의사가, 내가 쓰는 언어를 조금이라도 쓸 줄 안다'는 것은 실제로 농인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사소한 수화 몇 가지만 함께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안녕하세요'라는 수화에 대해 알아보자. 정말 간단하다.
①오른손으로 왼팔(팔꿈치에서 손목 정도)을 빠르게 쓸어내린다.
②양 손을 주먹쥐면서 아래로 살짝 내린다.
출처: 더나은복지세상 (https://www.welfare24.net/)

여기서 첫 번째 동작은 '잘', 두 번째 동작은 '있다' 라는 의미로, 합쳐서 '잘 있다'를 의미한다. 즉 '안녕하세요'의 어원을 생각해보면 일맥상통하는 의미이다. 농인이 아닌 사람들을 '청인'이라고 한다.

청인들이 대화할 때 어조에 따라 같은 말도 큰 차이를 내포하듯이, 농인들에게는 표정이 중요하다. 실제로 그들은 '화났었다'라는 말을 하며 표정을 마구 찌푸리기도,(잘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나에게 화내는 것으로 착각해 당황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슬펐다'라는 말을 하며 크게 울상을 짓기도 한다. 그만큼 표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농인에게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땐, 활짝 웃으며 위 수화를 해보자.

다음으로, '어디가 아프십니까?'에 대해 배워보자. '안녕하세요'를 '잘+있다'로 표현했다면, 이 수화는 '어디+아프다+입니까?' 라고 구성된 간단한 수화이다.
①어디: 오른손 검지만 펴서 좌우로 두 번 흔든다 (흡사 모 가수의 유명한 안무 '고민고민하지마'를 떠올리면 쉽다)
②아프다: 오른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해 약간 오므린 뒤, 좌우로 살살 흔든다. (여기서 포인트! 그림처럼 무표정으로 이 동작을 시행하면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아픈 듯 표정을 찡그리며, 손도 아픈 듯 '부들부들' 떨어주는 편이 농인에게 이해되기 쉽다)
③-입니까?: 오른 검지를 오른쪽 관자놀이에 댔다가, 모든 손가락을 펼치며 밖으로 내려 손바닥이 위로 간 자세를 취한다.
출처: 국립국어원 한국수어 사전

앞서 언급했듯 수화는 표정이 중요하기에, ②번에서는 아픈 표정을, ③번에서는 궁금한 표정을 적극적으로 지어주는 것이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

두 가지 수화에 대해 알아보니 어떤가. 우리말 구성과 아주 비슷하고, 동작도 간단하며 직관적인 편이어서 생각보다 배우기 어렵지가 않다. 이런 작은 노력만으로도 환자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다면 왜 하지 않겠는가.

다만, 수화 몇 마디 한다고 해서 완벽히 진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세한 병력 청취를 위해서는 결국 통역사가 있어야 할 것이며, 생각지도 못한 많은 장벽이 있을 것이다. 한 예로, 말하는 게 무엇인지, 소리 내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라 '아-소리를 내보세요' 라는 이비인후과 의사의 요청조차 농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작은 '관심'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나 하나만 해도, 마냥 복잡하고 어려워보였던 수화가 농인과 수화에 대해 알고 난 뒤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들을 보면 대화를 시도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 다양한 동영상 매체의 발전으로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서도 수화 관련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동영상을 보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지역 문화센터 등에 개설된 수화 강의를 신청해보자.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과 무궁무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 당장 이번 여름부터, 매력적인 수화라는 언어에 한 번 빠져보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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