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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경성의전 역사 되짚는 서울대병원

발행날짜: 2019-02-23 06:00:00

김희중 서울대 의학역사문화원장 "일제시대 이전 조선의 역사적 자료까지 확대할 것"

1919년 3.1운동 이후 100년이 지난 2019년 3월 1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이 서울의대의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들의 치열했던 3.1운동 활동이 재조명 받고 있다.

100년이 흐른 현재의 시각에서 볼 때 경성의학전문학교(이하 경성의전)이라 하면 일제시대 일본에 의해 건립된 학교로 이곳에 다니는 학생 상당수 친일파 혹은 그들의 자녀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3.1운동에 참여한 전문학교 학생 중 경성의전 학생 비중이 가장 높았던 것.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김상태 교수(서울대 역사학과)에 따르면 1919년 3월 1일 종교계 대표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던 그 순간에 학생들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함과 동시에 종로, 덕수궁 앞 도심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일본 경찰은 저녁 무렵부터 시위 진압을 시작해 3.1운동에 참여했던 학생 상당수가 재판에 회부됐다. 210명(학생 164명) 중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이 32명으로 가장 많았다.

관립전문학교 중에서도 의학전문학교에서 참여한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머 사립 전문학교와 비교해도 경성의전 학생이 대거 참여했다.

자료출처: 서울대 의학역사문화원 김상태 교수
더 흥미로운 것은 고등보통학교 중 일본이 장악한 관립보통학교였던 경성고보 학생의 3.1운동 참여 또한 보성고보, 배재고보 대비 훨씬 많았다는 점이다.

3.1운동 관련 재판 회부학생 수를 보면 경성고보는 27명으로 보성고보 16명, 배재고보 7명보다 훨씬 많았다.

당시 3.1운동에 나섰던 경성의전 학생 32명의 죄명은 출판법 위반 혹은 보안법 위반으로 실제 1년 이상 옥고까지 치렀다.

특히 경성의전 한위건 군은 학생 독자적 독립선언서를 만들었으며 국내외 정세를 파악하고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인물로 3.1운동이 현실화 되는게 크게 역할을 했다.

그는 전문학교별, 중등학교별 학생대표를 선정했는가 하면 천도교, 기독교 등 종교계 독립운동을 단일화하고 경성의전 학생들에게 독립선언식 참가를 권유했다.

3.1운동에 경성의전 학생들의 참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왜일까.

경성의전 초창기에는 한국인 교사에 한국 학생만 운영하던 학교였다. 이후 일본이 이를 장악하면서 교사도 일본인으로 바뀌고 일본인 학생 비중도 늘어나면서 교육을 받는데 있어 차별이 극심했다.

당시 일본인 교사는 전문학교 수업 중에도 조선인이 해부학적으로 열등하다는 등 치욕적인 발언이 이어지면서 학생들의 가슴속에는 응어리가 크고 단단해졌고 결국 3.1운동에 대거 참여하는 기폭제가 됐다.

김상태 교수는 "의사라는 신분은 현재와 달리 일제시대는 개인의 지위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각자 이미지가 컸다"며 "특히 1919년 대학생들은 10대에 나라를 잃는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로 식민지 설움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막연히 경성의전은 일제시대 친인파를 위한 전문학교처럼 비춰졌을 수 있지만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며 "오히려 가장 선두에서 3.1운동을 이끌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아 오는 25일 오후 '의학도, 3.1운동의 선두에 서다'를 주제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를 열고 역사를 되짚는다.

김희중 서울대 의학역사문화원장
이에 앞서 행사를 총괄한 김희중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장(정형외과)을 만나 의미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김희중 원장은 "서울대학교 개교 이후를 병원의 역사로 봐야한다는 입장도 있지만 일본제국 시절 즉, 경의전 부터도 역사로 바라봐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계속해서 역사적 의미를 찾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이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5년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부터다.

당시 역사학자 3인을 통해 제중원은 조선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서울대병원 즉, 경성의전의 모태가 됐음을 확인했다.

제중원은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으로 서울대병원의 시초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던 것.

역사는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의 것인 만큼 김희중 원장은 서울대병원의 역사를 되짚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그는 "문헌이 닿는 곳까지 서울대병원 역사 조사를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서양의학이 시작된 이전, 혜민서 등 조선 왕의 의료정책까지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를 되짚는데 서양의학, 동양의학을 구분지을 필요도 없다고 봤다.

그는 이어 "당장은 경성의전 역사를 되짚는 것도 벅차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선이라는 국가에서 의료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등 역사적 자료를 발굴해야 한다고 본다"며 "사회적,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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