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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노트| 어느 유방 재건 환자의 편지

박성우
발행날짜: 2018-01-30 12:15:56

우리가 몰랐던 성형외과의 세계…박성우의 '성형외과노트'[12]

어느 유방 재건 환자의 편지

의사는 종종 환자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다. 수련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환자 중 한 명은 유방암 절제 후 재건을 받은 분이었다.

유방암 재건수술은 일주일에 최소 8건, 많으면 10건이 넘을 정도로 거의 매일 이루어졌다. 보형물로 유방암 재건수술을 하면 반나절이면 충분하지만, 미세수술을 이용하여 자가조직으로 재건하면 수술 시간만 7~9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반대편 유방도 함께 교정술을 시행하면 아침 첫 수술이 저녁 6시를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일 반복되니 환자들의 병이 암이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유리 피판술로 뱃살을 플랩으로 이용하여 재건하는 경우, 혹여 혈관이 막혀 응급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지 감시하게 된다.

성형외과 주치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암 수술이 깨끗이 잘 되었는지보다 이식한 유방 조직이 무사히 생착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유방암 재건수술은 일차적으로 외과에서 암을 절제하고 성형외과에서 재건을 하지만 플랩을 감시하고 드레싱을 교체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성형외과에서 관리했다. 자연히 환자가 입원하여 퇴원하기까지 일주일 동안 이런저런 정이 들기도 한다.

인턴을 할 때는 직업병처럼 팔의 혈관을 보느라 정작 환자 얼굴을 못 봤는데, 주치의로서는 플랩과 상처에만 신경 쓰느라 환자 얼굴을 모르고 가슴만 쳐다보게 된다 (엉뚱한 상상은 사양한다 ).

환자 가슴을 볼 때마다 부디 이식한 플랩이 무사해야 하는데,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앞선
다. 혹여 플랩이 좋지 않으면 한밤중 응급 수술로 한숨도 못 잘 수 있다. 상처가 벌어지거나 괴사가 일어나면 교수님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죄지은 느낌마저 든다.

같은 환자는 수술 이후 특별한 문제가 없어 정해진 일정대로 퇴원할 수 있었다. 같은 진단에 같은 수술을 받은 환자들만 있어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퇴원 후 외래에서 뵈었을 때 편지 한 통을 주셨다.

두려운 마음으로 병원 문을 처음 들어서던 날,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이제는 제법 녹음이 우거지고 있습니다. 저도 이제는 두려운 마음을 떨쳐내고 초록 생명의 새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힘겨운 일과 중에도 늘 웃는 얼굴과 즐거운 덕담으로 환자의 마음까지 치유해주려 애쓰신 마음, 깊이 감사드리며 작은 정성을 전합니다.

곱씹어 읽을수록 부끄러웠다. 정작 나는 쳇바퀴 돌듯 일하고 있는데 환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술을 집도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드레싱을 하고 문제가 생기면 보조하는 역할이었지만 갓 2년차가 되었던 그해 많은 생각을 했다.

수술이 늦게 끝나고 회복실을 거쳐 환자가 병동으로 올라오면 하루 종일 기다렸던 가족들이 병실에 있다. 병동 간호사들이 간호하는 사이 “수술 잘 끝났나요 ?” 하는 환자의 걱정 어린 질문을 받는다.

성형외과적 입장에서 수술은 잘 끝났다고 대답하지만 암도 깨끗이 잘 제거 되었는지 물어보는 의미일 거다. 퇴원하는 순간에도 문제 없이 잘 퇴원한다고 생각하지만 환자는 이제 시작하는 것이다.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 호르몬 치료 등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간직한 채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을
것이다.

그때 받은 편지는 액자로 만들어서 지금도 책장 한 켠에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는데, 그 환자가 큰 가르침을 주었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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