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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갖을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지"

박성우
발행날짜: 2017-01-11 04:59:30

인턴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66]

기회란 멋진 것

추위가 부쩍 다가온 11월, 소화기내과 인턴 동기가 병동에 고3 여학생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했는데 금식하고 치료한다 해도 수능 날 시험 보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과연 학생이 병원에서 수능을 치르게 될 지 궁금했다. 바로 일주일 뒤에 수능을 앞둔 상황이어서 불가능할 것 같다는 여론이 인턴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급성 췌장염은 입원 치료를 하고 며칠이 지나면 거동이 편해질지 모르지만 당장 수능 시험을 앞두고는 통증이 심해 시험을 제대로 치르기 힘들 것이다.

2011년 수능 전날, 당직을 서고 아침 7시 즈음 씻기 위해 기숙사로 돌아왔다. 수많은 수험생들이 밤새 잠은 잘 잤을까 궁금했다. 아직도 수능 날만 되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오전 정규 병동잡을 마치고 티비 채널을 돌리던 중, 그 고3 학생이 우리 병원 1인실에서 무사히 시험봤다는 뉴스를 보았다. 다행히 학생의 사정이 참작되어 1인 병실에 시험장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뉴스를 보는 순간에도 학생이 아픈 배를 부여잡고 시험을 보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 깊이 응원하게 되었다.

동기 말로는 학생이 어제도 통증이 심해 진통제를 맞았다고 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맞으면 정신이 몽롱하다는데 수능을 잘 볼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고3 수험생이 진통제 맞아가며 싸우는 투혼을 보여주고 있었다.

투혼이 성적으로 이어져 그 학생이 전국 수석을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한국의 교육열이라면 해당 병실은 '수능 수석 배출 병실'이라고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지 않을까. 그래서 내년 수능, 그 병실에서 시험을 치르려는 학생들이 나올 것만 같았다.

과거에 비해 대학 입시 전형에 수시와 정시 이외에 다른 전형들이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수능'이라는 단어가 주는 존재감은 무시무시하다.

관문을 통과하는 데 실패하면 스스로에 대한 분노, 수치심, 좌절감, 후회 등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 친다. 관문을 성공적으로 넘어섰을 때는 이전까지 맛보지 못한 희열을 안겨준다.

나는 수능에서 한 번의 실패를, 의대에 입학하면서 한 번의 성공을 맛보았다. 실패와 성공에서 깨달은 것은 실패가 일어났다 해도 이유를 내 자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탓하는 태도만으로는 절대 발전이 없다. 인생에서 대비를 한다는 것은 최고의 정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실력의 최저점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능 시험에서 인생 최고의 점수를 얻지 못한다. 평상시 실력과 비슷한 점수를 얻거나 더 못한 점수를 얻는 경우가 많다. 수능이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내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점수의 최저점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인생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가족, 사회 그리고 내 자신이라는 안전바가 지지해주고 있다. 그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수능 성적이 좋게 나왔든 혹은 나쁘게 나왔든, 시험장에 들어가는 순간처럼 인생에는 늘 응원하고 믿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소아과 인턴 때 딱한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아들이 힘겹게 숨을 쉬고 있을 때는 딱하다는 표현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치료가 잘 되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역시나 그러한 기회조차 없는 환아들도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삶의 기회를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박탈당한 생명 앞에서 우리는 선택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어떤 위치에 서 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데 감사하자. 또 그 기회를 통해 쓰린 결과를 맛보더라도 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67]편으로 이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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