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데바를 처음 보다 2021-10-12 05:45:50
2학기가 개강한지 한 달여가 지나갔다. 2학년 2학기는 처음 기초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때이므로 의대생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시기이다. 본과 과정을 시작하는 시기라 예과 1학년, 2학년 1학기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수업들이 진행되었다. 낯선 이 느낌에 많이 긴장되기도 하고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앞섰다.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조직학을 배우는데 가장 힘들 것 같은 과목을 꼽으라면 당연히 해부학이다. 여름 방학 동안 비대면으로 골학이 진행됐다. 비대면 골학의 마지막날에 두개골(skull)파트가 배정되었고, 마지막 날 전까지는 탈없이 잘 버텨왔다. 마지막 날 skull 파트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상지 하지를 암기할 때와는 다르게 skull 부분을 암기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 많은 구멍들과 뇌신경들을 외우고 있노라면, 지금 생각해도 정신이 아찔해져 눈이 감기는 것만 같다. 시험 전까지 제대로 다 못 외울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나의 불안한 감은 틀리지 않았고, 제대로 암기하지 못하여 조별로 진행된 시험에서 우리 조가 꼴찌로 골학을 끝마쳐야 했다. 조원들에겐 너무 미안함과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 큰 실망을 했었다. 이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골학을 베이스로 진행되는 해부학이기에 기초의학 중에서 가장 많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여파로 해부 실습은 연말로 미뤄졌고, 우선 비대면으로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다. 이론 수업이 끝나고 나면 수업한 부위를 e-anatomy를 활용해 영상을 보고 리포트를 제출하는 방법이다. 레포트는 영상 중에서 반드시 찾아야 하는 구조물들을 찾고, 해당 구조물을 찾는 과정을 정리하는 식이다. 아마 실제 카데바를 보기 전에 많은 의대생들이 하는 생각은 '과연 내가 카데바 해부를 볼 수 있을까?'가 아닐까 싶다. 영상으로 카데바를 보게될 나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이론 수업 때 암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이걸 다 외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더 커져버려, 앞서 생각한 걱정은 쉽게 묻혀버렸다. 우리 학교는 하지, 상지, 머리, 몸통 순으로 수업을 진행해서 가장 먼저 봐야할 카데바의 부위는 다리였다. 이론을 어느 정도 듣고 나서 실습 영상을 봐야 이해가 되겠지만 나는 미리 한 번 봐두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E-anatomy 홈페이지에서 시신해부 윤리지침을 우선적으로 읽었다. 이 때에는 당연한 윤리의식인 것 같았다. 얼굴 파트는 아직 수업을 하지 않았기에,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얼굴 파트의 실습 영상을 보았다. 카데바를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몇 주전에 영상으로 본 것이지만 그때의 그 강렬한 인상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검은 천으로 상체가 덮혀 있고, 얼굴만 보이는 시신 한 구가 카메라의 빛을 받으며 누워있었다. 눈은 검은색 선으로 모자이크 되어있었고, 피부는 거뭇거뭇하였다. 나이가 많은 남성의 시신이었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인형아닐까?', '이걸 내가 직접 본다고?', '얼굴 피부를 벗겨낸다고?'… 23년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고 접한 사건들 중 가장 미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빠르게 이 순간을 벗어나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부가 진행돼감에 따라, 카데바는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의 탈을 벗어내고, 해부학적 대상으로 변모해갔다. 피는 나지 않고, 근육들과 뼈만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 교과서에서 보던 익숙한 그 모습들이었다. 처음에 들던 오만가지 생각은 온데 간데 없이 싹 사라진채, 이론수업 때 말한 구조물들을 찾는데 열중하는 나의 모습만이 모니터 속에 비춰졌다. 처음 해부영상을 보기 전에 보았던 시신해부 윤리지침을 다시 보았다. 당연하게 여겼던 윤리지침들이, 실제 해부의 무게감을 알고 난 뒤에는 해부가 얼마나 엄숙하고 경건한 행위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 말고 또 느낀 점이 있었다. '시신해부의 목적은 오로지 귀중한 생명을 살리는 지식과 의사로서의 윤리적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고 좋은 의사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라는 윤리지침서의 마지막 지침인데, 이 문장 속의 좋은 의사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의사는 무엇일까. 공부를 열심히 해 의학적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사람을 살리는 의사일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꼈다. 골학 수업 때 겪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앞으로 더 정진하겠노라고 다짐하게 되었다. 시신기증에 대해서 좀 더 찾아보았다. 시신기증은 사망 후 의학연구 및 해부학 교육을 위하여 본인의 유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아무런 조건과 보수없이 자신의 몸을 의과대학에 기증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증이 많이 부족한 탓에 무연고자를 연구목적으로 해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기증자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아마 내가 본 분도 고귀한 뜻을 가지고 자신의 시신을 기증한 한 분이라 생각된다. 정말 감사한 일임이 틀림없다. 이제 이 글을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는 말로 끝맺음 하려 한다. 좋은 의사가 될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의사도 누군가의 가족이다 2021-10-05 05:45:50
"오늘은 2018년 2월 27일이지." 2021년 8월 말, 치매 검사라고 불리는 'MMSE(간이정신상태검사)' 진행 중 환자에게서 들은 대답이었다. 뇌출혈로 인지 능력 저하가 나타난 환자라는 정보를 미리 알고 왔기에, 어느 정도 예상된 답변이었으므로,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검사자와 나, 피검사자인 환자 외에 옆에서 이 대답을 들은 다른 한 사람은 많이 놀랐던 것 같다. 환자의 침대 옆에서 그를 보살피고 있던 보호자였다. 이후로도 환자의 검사를 위한 질문은 계속되었고, 여기가 어디인지 묻는 질문에 집이라고 대답하는 등 '엉뚱한 대답'은 이어졌다. MMSE 검사를 위한 질문을 모두 마치고 옆을 보았을 때, 그제서야 고개를 푹 숙인 채 거의 울먹일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보호자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보호자는 그러한 슬픈 태도를 금세 숨기고 그 후 운동 검사, 감각 검사 등의 신경학적 검사를 이어서 진행하는 동안 환자가 검사를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환자의 순응도를 높이는 격려를 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 아마도 치료를 위한 보호자의 의지였던 것 같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환자가 나의 가족이고, 내가 보호자로 병원에 와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며칠 전까지 함께 식사도 하고 대화도 잘 하던,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소위 엉뚱한 대답들을 하며 인지 기능이 저하된 모습을 직접 보게 된다면, 다른 사람이 그런 반응을 보였을 때처럼 놀라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PK 실습을 돌다 보면 매주 한 명의 환자를 맡아 진단부터 치료, 그리고 그 질환에 대해 공부해보는 기회를 가진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어떠한 증상이 나타났고, 어떻게 입원하게 되었는지 등의 많은 정보를 환자가 가지고 있기에 환자분께 많은 문진을 하며 정보를 얻곤 한다. 그렇게 20주 가량 실습을 돌았으니, 적어도 20명 이상의 환자와 직접 대화를 해 보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지만, 작년까지 의자에 앉아 의학에 대하여 책과 ppt 파일로만 접하였던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경험이었다. 그 경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를 떠올리면 바로 이 환자가 떠오른다. 그 검사를 진행하던 병동에서의 장면말이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이 당연한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기에 떠올리기 어려운 것 같다. 환자 한 명 한 명이 나의 가족이라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그들을 대하게 될 것인지 생각해본다. 물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대처해야 하는 의사가 항상 감성에 치우쳐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이 당연한 생각을 이따금씩 떠올리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험을 잊지 않고 더 열심히, 그리고 게으르지 않게 공부해 환자와 보호자가 힘들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최근 방영하고 있는 의학 드라마에서, 한 주인공이 했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저는 환자를 진료할 때, 만약 내 가족이었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항상 떠올려 봐요. 제 가족이었다면 이 방법을 이용하여 치료할 것입니다.' 그런 의사가 되고 싶다.
메트로놈이 펄스였다면 2021-09-27 05:45:50
응급의학과 실습을 돌며 원하는 학생들에 한해 나이트 근무를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교수님 말씀에 홀린 듯이 신청했다. 그렇게, 12시간의 밤샘 근무를 하게됐다. 처음엔 역대급으로 많은 환자수에 놀라며 인턴, 레지던트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술기 등을 참관했다. 4시간쯤 지났을까. 한 환자가 흉부압박을 받으며 소생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따라들어갔다. 심장무수축(asystole)이었다. 즉시 심장 충격기(Defibrillator, 디피브릴레이터)를 부착하고 압박(compression, 컴프레션)을 교대하며 실시하셨고, 각종 약물투여를 지시하던 교수님께서 "10초 후 학생선생님 들어가세요"라며 나를 바라보셨다. 애니가 아니었다. 멀쩡히 밤산책을 하던 사람이었고, 난 지독히도 연습했던 심폐소생술(cpr)을 하기위해 가슴을 내려보았다. 배운대로 유두(nipple) 위치를 확인하고, 흉골(sternum)에 손바닥을 댔다. 압박을 시작한다. 분당 110회의 박자와 fully recoil할 수 있는 압박. 번갈아 교대하며 대충 40분이 넘어갔을까. 중간중간 맥박 체크와 전기충격이 지나가고,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살리고 싶다는 생각과 내가 조금 더 잘하면 다를 수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에 압박 속도가 약간 빨라지는 듯 하자, 110bpm으로 맞춘 메트로놈을 켜주셨다. 이내 멈춰도된다는 말을 하셨다. 거기까지였다. 흉부압박으로 뱉어지는 숨소리와 여러 모니터링 장비의 알람소리로 가득찼던 소생실이 일순간 고요해지고 메트로놈만 속절없이 똑딱였다. 저 메트로놈이 똑딱거리듯 심장이 다시 뛰었다면, 저 밖의 보호자들은 오열하지 않았을 수 있을까. 내가 했던 천 여 번의 압박중 한번이라도 더 잘된 압박이었다면 돌아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스크럽복과 캡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고, 잠시 응급실밖을 나왔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넘기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차장까지 참아냈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며 울음을 토해냈다. "우리 재호가 이렇게 성장해가는구나. 잘했다." 내 손 끝에 죽음을 담은 것은 아득히 슬픈 일이었다. 급성심근경색(AMI)로 십여년전 돌아가신 작은아버지의 기억이 떠오르고, 죄책감을 가졌다. 이내, 또다른 심정지(arrest) 환자가 응급실로 밀고 들어온다. 응급실 의료진은 다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뛴다. 배우고 공부하여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야겠다. 이 땅의 모든 응급의학과 선생님들께 깊은 존경을 전합니다.
우리에게 방학이 필요한 이유 2021-09-13 05:45:50
너무나 짧게만 느껴졌던 방학이 끝났다. 학기 중에는 그렇게 꾸물꾸물 흘러가던 시간이 왜 이리 쏜살같이 지나가기만 하는지! 개강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다음 방학에 할 일을 몰두해서 고민하는 나는 흔한 방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수많은 공부량,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맞이하는 기간은 더 특별하다. 문득, 이렇게 소중한 방학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나름 의대생으로 4년째 방학을 맞이하고 있는 입장에서, 몇주간의 '쉼'의 의의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방학은 다양한 것을 시도해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수업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우리는 바쁠 때에는 차마 엄두가 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도전해볼 여유와 용기를 가진다. 우선, 진로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관심분야에 대한 인턴십이나 세미나에 참여해 흥미를 이어가거나, 랩에서의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연구경험을 쌓을 수도 있다. 서브인턴을 통해 병원에서의 삶을 미리 겪어볼 수도 있다. 의학과 다른 분야의 지식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코딩, 인문학, 경제학 등 언뜻 보면 의학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여도 우리의 삶의 향상에 도움이 될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다. 새로운 취미를 내 삶 속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 헬스, 필라테스, 서핑 등의 스포츠를 즐기거나, 요리나 커피 제조 자격증을 취득하고, 창작적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은 방학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행복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방학이 필요한 이유는 휴식과 자유를 선물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치료받는 동안 휴식을 취하세요." 병원을 찾았을 때 흔히 듣는 말이다. 휴식은 몸과 마음의 건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를 지닌다. 하지만 오히려 의대생이라면 휴식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꽉꽉 차 있는 수업과 과제에 치여 열심히 살아보면 쉬는 것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방학은 잠깐 우리가 쉴 수 있게 함으로서 마음의 여유를 제공한다. 방학 기간동안 여러 활동에 도전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며, 물론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쉬기만 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잠깐이나마 즐긴 삶의 여유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게끔 하고, 앞으로의 일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이번에도 각자의 기간과 추억은 달랐겠지만 모두들 자신만의 즐거운 방학을 보냈기를 바란다. 모두들 하반기 또한 방학에서 얻은 기억을 간직한 채 잘 보낼 수 있기를 응원한다.
나는 오늘, 작년의 교수님과 만난다…강의의 재탕 2021-09-06 05:45:50
아침에 눈을 뜨면 오전 9시가 좀 넘어가고 있다. '도대체 대면 강의하던 시절 선배들은 어떻게 9시까지 강의실에 가서 수업을 들었던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졸린 눈을 비비고는 기숙사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편다. 하루 종일 방에 구어박혀 노박이(한곳에 붙박이로 있는 사람. 충청 지방 방언)로 노트북만 쳐다보고 있는 코로나 시대의 의대생에게, 이 책상은 강의실이요 도서관이요 세상의 창이다. 첫 번째 강의를 틀고 업로드된 강의록을 펼치자, 세 자리 숫자의 페이지 수를 자랑하는 크고 아름다운 분량의 PPT가 나를 반겨준다. 혹시나 중간중간에 강조 표시가 있지는 않을까 실낱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강의록을 쭉쭉 훑어보지만, 끝없는 글과 그림의 향연만이 있을 뿐이다. 벌써부터 심사가 울민해진 나는 강의 화면으로 시선을 옮긴다. 영상 속에는 나처럼 노트북 모니터를 응시하며 마이크에 대고 어색한 듯 입을 떼는 교수님이 보인다.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코비드 나인틴 사태로 인해…" 앗, 잠깐, 코로나가 터진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갑작스러운'이라고? 작년 강의 재탕의 냄새를 맡은 나는 빠르게 선배들로부터 받은 작년 필기를 뒤져 같은 교수님의 강의록을 찾아내 펼쳐 본다. 역시,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작년 필기 내용과 올해 수업 내용이 일치한다. 무지막지한 양을 모조리 읽어 놓고는, 마지막에 "비록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내용을 전달하느라…"라는 의례적인 수습용 멘트를 덧붙이는 것까지 완벽히 작년 강의와 똑같다. 부디 강의가 똑같은 만큼 시험문제도 작년과 똑같길 바라며, 나는 재빨리 다음 강의의 재생 버튼을 클릭한다. COVID-19 시대, 본과 2학년으로서 나의 일과 중 일부를 약간의 조미료를 쳐서 다소 익살스럽게 재구성해 보았다. 비대면 수업을 시작한 지 2년차에 접어들며 작년과 비교해 생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작년과 동일한 강의가 업로드(일명 재탕)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때로는 위와 같이 아예 똑같은 강의가 올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강의 중 일부만 새롭게 촬영한 영상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제는 방에 홀로 앉아 헤드셋을 쓰고 강의를 듣는 데 익숙해지다 못해 이골이 난 2021년의 의대생과, 아직 바뀌어버린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대면 강의를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2020년의 교수님이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이 진풍경은 COVID-19로 인해 변해버린 의과대학의 교육환경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오해는 마시라, 나는 강의 재탕을 전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의대생들에게 가르칠 기초 수준의 내용은 거의 바뀌지 않을 텐데, 한 번 제대로 찍어서 여러 번 활용하고 필요한 부분만 조금씩 보충/수정하면 얼마나 경제적이고 효율적일 것인가? MIT와 같은 곳에서는 아예 유튜브에 MIT OpenCourseWare이라는 채널을 운영하여, 몇 년 전에 촬영된 강의들을 일반 대중들이 원하는 때에 얼마든지 들을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다만 수업을 듣는 학생 입장에서 한 가지 주제넘게 바라는 게 있다면, 한 번 강의를 찍을 때 '잘' 찍었으면 한다. 수많은 교수님의 강의들을 듣다 보면 정말 이해가 쏙쏙 되는 강의도 있지만, 가끔 워드 파일을 그대로 PPT로 만들어 읽고 있는 듯한 강의, 지엽적인 부분을 설명하느라 한참 시간을 쓰고는 뒷부분에 시간이 모자라 정작 중요한 부분은 후다닥 수박겉핥기로 넘어가는 강의도 있다. 물론 하고 싶으신 말씀이 많으시고 바쁘신 시간을 쪼개어 강의를 하시느라 그러신 줄은 알고 있으나, 솔직한 말로 이런 강의는 듣고 나도 도대체 뭘 들은 것인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껏 열심히 강의하신 교수님도 손해고, 강의를 다 들어 놓고 또 따로 교과서와 논문을 찾아봐야 하는 학생도 손해가 아닌가. 적어도 중요한 부분은 중요하다고 강조해주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확실히 설명을 해 주는 강의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COVID-19 사태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마무리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그에 따라 지금과 같은 온라인 강의 체제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나중에 다시 대면 수업이 가능해진 뒤에도, 이렇게 수고해서 찍어 놓은 양질의 강의들을 굳이 버릴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애초에 처음 강의를 찍을 때 여러 번 쓸 생각으로 조금만 더 공을 들여 잘 찍은 뒤 몇 번 재활용할 수는 없을까. 이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강의 재활용이라면 적극 찬성한다. COVID-19으로 인해 온라인 수업으로 부득이하게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된 이 상황을, 오히려 교수님들의 수고는 덜고 학생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길 바라 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이 남긴 선물 2021-08-30 05:45:50
방학 중 선택실습을 하게 된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아직까지 한번도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필자는, 앞으로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학과 공부를 하고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정리와 결단이 필요했다.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의학전문지 학생인턴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인턴십 시작과 동시에 코로나 4차 대규모 확산이 시작되어 현장 취재에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나 원격진료와 같은 의료계 쟁점들에 대한 학생 입장의 생각을 기고할 수 있었다. 이해당사자별 의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의료계 이슈에 대해 병원 실습도 아직 돌아보지 않은 학생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부담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각 주제들과 관련된 여러 기사 및 논문들을 찾아보면서 보다 명확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필자가 배우고 경험한 범위 내에서 이해 가능하고 동의할 수 있었던 전문가분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생각과 언어로 살을 붙여 내용을 재구성해보기도 했다. 한 쟁점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들을 살펴보면서 필자의 가치관을 점검하고 만들어갈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비임상 진로의 길을 걷고 계시는 선배 의사분들을 뵙고 삶의 발자취, 사회구조 및 제도의 현주소와 바람직한 개선방향, 비임상 진로를 위해 학생 단계에서 노력할 수 있는 사항들에 대한 압축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일련의 인터뷰 기사 작성 또한 귀중한 배움의 기회였다. 코로나 대규모 확산 국면에도 불구하고, 대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기에 학생 후배로서 편안한 마음으로 전문적 내용을 필자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듣고, 추가적 궁금증들을 즉각적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법조인을 꿈꿨었던 적이 있고, 의료법 교과를 체계적으로 잘 가르쳐 주셨던 담당 교수님의 수업에 재미를 느끼면서 열심히 들었던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법무법인 인턴십에도 참여했다. 상고 후 파기 환송된 민사 손해배상 사건의 경우 사건기록지가 4000장 가까이에 달하는 등 읽어야 할 내용이 많았지만, 학교에서 기계적으로 시험을 보기 위해 암기했던 지식과 교과서 페이지들이 소송의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순차적으로 준비서면 및 답변서를 읽어가면서 소송의 추이를 예측하고 확인해보는 것뿐만 아니라, 원고와 피고 각 입장의 대응전략에 대해 판례 및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고하여 글로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인턴십 과제 수행을 위해 도서관의 보존 서고에서 의료소송 실무에 관한 전문 서적들을 찾아 탐독해보기도 했다. 강의 범위 내에서 개념을 정리하고 수동적으로 암기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중에, 필요한 지식을 직접 취사 선택한 후 여러 개념 간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태도를 익힐 수 있었다. 현재 의과대학 교육과정 상으로 선택실습은 본과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도록 되어있다. 물론, 임상 지식과 병원 실습 경험을 충분히 갖춘 후에 선택 실습에 참여하면 보다 실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부터 학생들이 의학 외에도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탐색해보고 실제 현장 경험을 해본다면 학생 개개인의 진로 설계 및 학업 동기 부여에 있어서 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쳇바퀴 돌듯 끝이 없는 공부에 방황하고 있는 동료가 있다면 본인이 열정을 가지고 있거나, 있었던 분야를 생각해보고 방학을 이용하거나 학기 중 시간을 쪼개서라도 해당 분야와 관련된 서적이나 논문, 강연 등을 꾸준히 접해보고 인턴십과 같은 선택실습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빠른 판단력에 정확도까지 필요한 '땡시'의 경험 2021-08-23 05:45:50
본과를 겪은 학생들이라면 모두들 익히 잘 알겠지만, 의과대학에는 '땡시'라는 무시무시한 시험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해부학, 병리학과 같은 기초 과목에서 주로 진행되는데 '땡시'라고 불리는 이유는 교수님이 '땡'하는 종소리를 치게 되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필자의 학교 같은 경우 한 문제 당 약 50초의 시간을 주기 때문에 50초(이 50초는 문제를 알면 꽤 길지만, 문제를 모르면 정말 찰나에 가깝다)에 한 번씩 종이 울리고, 종의 소리에 맞추어 모든 학생이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개요만 듣고 보면 그다지 압박이 심하다거나 악명이 높을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식은 땀이 줄줄 난다. 땡시 문제 같은 경우 과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해부학을 예를 들어 보자면 해부학 실습을 하면서 배운 우리 몸의 장기, 혈관, 신경과 같은 구조물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물어본다. 실제 교수님께서 우리가 실습한 카데바 위에다가 핀과 같은 것을 꽂아 놓고 학생들이 해당 구조물의 이름을 적는 구조이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답지와 필기구를 직접 들고 돌아다니면서 푸는 시험이라니. 타 전공을 졸업하고 의과대학을 온 나로선 굉장히 인상 깊었다. 학생들이 실습실을 한 바퀴씩 돌면서 자리를 이동하는 모습도,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며 딱딱한 표정을 짓는 교수님의 모습도(그리고 대부분의 구조물을 알아보기 힘든 나의 모습도…) 모두 어색하고 신기한 시험이었다. 또한 문제 당 시간이 철저하게 정해져 있는 시험이다 보니 압박감이 심했다. 한 문제 당 주어지는 시간이 1분이 채 안 되는데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는 별에 별 생각이 다 든다. 이 문제를 내가 실제로 배웠는지, 이런 구조물이 실존하는지, 심할 땐 딱 그 구조물 이외의 근처 모든 구조물의 이름이 스펠링까지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던 지. 그런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다 지나칠 때 즈음이면 종이 치고 빈칸이 덩그러니 남겨진 나의 답지와 함께 다음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꼭 풀다 보면 미련이 남아서 시간이 조금씩 남을 때 마다 다시 기억을 상기시켜보려고 노력하는 문제가 생긴다. 처음에는 그나마 기억에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머릿속에서 구조물을 헤집어가며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데 나중에는 해당 구조물이 동맥이었는지, 정맥이었는지, 신경이었는지 분간이 안가서 포기하게 된다. 역시 이럴 때에는 빠른 순간의 판단력과 정확성을 요하는 시험인 만큼 미련 없이 모르는 문제는 넘어가야 한다. 모른다고 해당 문제를 계속해서 떠올리기엔 그 뒤에 문제도 많이 남아 있고 계속 붙잡고 있으면 아는 문제도 못 풀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련은 버리고 얼른 다음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의과대학 생활도 꼭 땡시와 같다고 느껴진다. 빠른 순간 판단력 그리고 그 와중에 지켜야 하는 정확도. 블록 강의를 주로 채택하는 의과대학인 만큼 수많은 과목들이 빠르게 지나가게 된다. 모든 과목을 정확하게 알고 넘어가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학습량 때문에 당연히 실수로 가득한 과목도 생기기 쉽다. 그럴수록 미련을 가지긴 보다 종이 치면 얼른 다음 문제로 넘어가서 새로운 마음으로 과목을 시작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의사가 되기 위하여 2021-08-17 05:45:50
의사는 책임의 영역이 큰 직업군 중 하나이다. 의료 행위 하나하나에는 모두 책임이 따르며 특히 그 영향력이 클수록 책임의 강도도 강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성에 반해 의대에서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의료 윤리에 대한 교육이 효율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학교에서 배우는 의료 윤리에 대한 한계를 느낀 적이 종종 있다. 강의 시수도 많지 않으며 대부분 단순 전달식 강의다 보니 학생들이 직접 적용을 하는 데에 무리가 있을 뿐더러 습득에도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본과 3학년이 되어 실습을 돌게 되면서다. 실제로 병원생활을 하게 되면 알아야 되는 기본 윤리 지식 등이 있는데, 실습을 돌며 이러한 지식의 중요성을 더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의료윤리라는 특성상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없고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들이 있다. 이러한 부분들에 있어서 누군가 짚어주지 않으면 실수하기 쉽상인데 실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배들로부터 인계받는 것 외에는 접할 수 없다는 부분이 맹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 존재하는 윤리 의식에 대한 부재도 학교에서의 윤리 교육을 통해 적절히 해결해야 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는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타직종에 비해 윤리적 판단 능력이 요구되는 상황이 더 많이 발생하며 의료 행위에서의 책임이 크기 때문에 이를 감당할 윤리적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 윤리 교육은 의과학적 지식에 밀려 학생도, 학교도 그 중요성과 비중을 적게 두고 있다. 의과학적 지식에 배정된 수업 시수가 워낙에 많은 의대 특성상, 의료 윤리에 적절한 시간을 배분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의 수업 시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의료 윤리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수업 방식의 효율성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의료 윤리에 있어서는 고려해야 할 점이 다양하다. 환자의 정보에 대한 부분뿐만 아니라 성윤리 등의 사회적 이슈가 되는 부분들도 함께 다루게 되면 더욱 풍부한 수업 구성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수업의 시수가 적절한지, 강좌의 다양성, 그 운영 방식이 적절한지, 뿐만 아니라 강의 시수가 많고 시험이 많은 의대 교육의 특성에 맞는 시간 배치 또한 의료 윤리 과목을 설계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Variation! 지식의 불확신을 날리는 마법 주문 2021-08-09 05:30:10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경험은 단 몇 단어들만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골학, 땡시, 포르말린 냄새. 이 단어들은 마법 주문이다. 어느 의대생을 붙잡아 외쳐도 공통적으로 해부학기에 대해 떠들게 만든다. 주변에 의대생이 있다면 쉽게 시전할 수 있는 하등 마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어떤가. Variation. 해부실습의 경험이 있다면 시전할 수 있는 조금 더 고급 주문이다. 읽는 그대로 발음하면 소리도 제법 그럴싸하다. 이 주문은 앞서 본 세 단어보다 더 강력한 공감을 끌어낼 확률이 높다. 이 단어만큼 해부학기에 한창인 의대생들을 혼란스럽게 한 단어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상지실습을 하던 따뜻한 봄날, 실습수업의 목표는 brachial plexus를 찾는 것이었다. 나와 실습 조원들은 몇 시간 동안 샅샅이 파낸(?) 끝에 말단 신경에 이르렀는데, 배운 것과 다른 방식으로 신경들이 합쳐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럴 때, 아직 dorsal과 ventral도 헷갈리던 병아리 의대생들은 집단지성에 의존했다. 이 집단지성은 '난 틀릴 수 있어도 동기 중 하나쯤은 정답을 외웠을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을 먹고 자란다. 그런데 실습조의 집단지성 역시 실습에서 발견한 구조물과 달랐고, 위기에 봉착한 우리가 할 수 있던 최선의 방법은 질문하기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교수님께 질문드렸더니, 교수님은 'variation' 한 단어를 남기고 훌쩍 떠나셨다. Variation! 군더더기 없이 이 단어만으로 모든 형태가 정상이 되었다. 지식의 불확신을 깔끔하게 날리는 마법 주문. 이날 이후로도 우리는 이 단어를 수없이 접했고, 수없이 사용했다. 도무지 구조물을 찾을 수 없다면 variation, 구조물 모양이 이상해도 variation일 것만 같았다. 저명한 과학자이자 작가인 마이클 셔머Michael Brant Shermer는 '인간은 패턴을 찾는 동물이다'라고 주장한다. 낯선 무언가를 단순히 이미 아는 '패턴'의 variation 으로 치부해 버릴 때 느낀 큰 안정감은 위 주장의 좋은 근거일 테다. 해부실습에서 variation은 요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에 봉착했다. 임상의학이란 끝 없는 바다에 빠져보니 'A라면 B' 식의 직관적인 패턴에 모든 다양성을 담기에는 그 한계가 너무 컸다. 예컨대 '기침하면 감기'와 같은 단순한 틀로만 환자를 바라보고 치료하려는 안일한 생각 탓에 내 상상 속의 환자들은 끊임없이 사지에 내몰렸다. 이들의 값진 희생(?) 덕에 나는 환자의 나이, 성별 등의 기본 정보는 물론이고 병력, 직업력, 종교, 경제적 사정까지 환자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 즉 환자 개개인의 다양성을 아는 것이 생(生)의 길로 인도하는 것임을 배웠다. 그렇기에 의대생은 더더욱 세상과 사람들을 배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장자'에 "여름벌레는 자신이 사는 여름만 고집하기에 얼음을 모른다"라는 대목이 있다. 의대라는 세상만 안다면 우리는 겨울의 굶주림과 추위를 모른 채 춤만 추는 베짱이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겨울을 살지 못하는 베짱이들에게 백날 얼음을 설명해봤자 자기의 세상을 초월해 추위를 이해할 가능성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해를 바탕으로 겨울 동물들의 처지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철학자 베짱이는 거의 없다. 그저 우리는 눈물은 흘리지 못할망정, 세상에는 다양한 계절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계절들에 사는 다른 생명이 많음을 아는 것만으로 족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다른 사회·세상에 사는 다양한 집단의 마법 주문을 여럿 익히는 것이다. 각 주문 뒤에 숨겨진 의미와 배경들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 다양한 패턴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환자와 의사 사이에 필요한 소통과 이해의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히려는 개인적인 노력(e.g. 독서, 대외활동)뿐만 아니라 의과대학의 교양수업 커리큘럼이 더욱 실용적으로 보강되어야 한다. 다양한 환자의 배경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좁은 세상 밖의 다채로움을 깨달을 때, 우린 비로소 병아리도, 여름 베짱이도 아닌 의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딴짓' 하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 2021-08-02 05:45:50
' 의사 라이센스를 따는 과정은 국가마다 다른데 각국의 방법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어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어렵고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사람마다 선호도가 있을텐데 필자는 미국식 교육과정과 문화가 정말 부럽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과정 덕분에 미국에는 딴짓하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각자 본인의 관심분야와 재능을 살려서 나름대로의 커리어를 쌓고 있을 뿐이다. 딴짓하는 의대생이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미국식 교육과정과 문화가 참 부럽다. 우리나라 의대에서는 예과 2년에 본과 4년을 마치고 의학사를 취득할 수 있다. 학교마다 학사일정이 조금씩 다른데 결국 6년안에 의학사(MBBS)를 취득한다. 미국처럼 학부 4년 + 본과 4년 과정을 통해 의사를 배출하는 의학전문대학원 시스템을 도입해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은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전문대학원생들이 본인들의 학부 전공과 경험을 살려 MD - Ph.D 과정을 밟거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기대했는데 나이가 많은 전문대학원생들이 전문의(Residency) 과정도 밟지 않고 서둘러 개원을 하는 통에 기대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정책 실패로 간주하게 되었다나 뭐라나. 의학전문대학원 출신들이 배출된게 2009년부터 였으니 이제 갓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정책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제1회 졸업생들이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펠로우까지 밟았다면 이제야 본격적으로 사회에서 영향력을 드러내기 시작할텐데, 국가의 백년대계여야 할 교육정책이 너무 가볍게 움직이는게 아닌가 싶다. 의전원 제도를 도입할 때 부터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이렇게 쉽게 정책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본론으로 돌아와 미국에서는 의대 본과에 진학하기 위해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예과 과정(Pre-Med)에 해당하는 과목들을 수료해야 한다. 능력과 의지가 있다면 2년안에 학사과정을 마치고 의대에 진학하는 것도 가능하고, 대학교 입학 성적에 따라서 특정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을 보장받는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덕분인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의대생들은 예과 과정 중에도 쉬지 않고 공부하고 각자의 꿈을 향해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그렇게 학위 콜렉터가 탄생한다. 결국엔 의사로 살아갈건데 뭐하러 다른 전공을 공부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냐는 궁금증이 생긴다면 Dr. Kalanithi가 쓴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는 스탠포드에서 영문학 학/석사, 케임브리지에서 철학 석사, 예일대 의대에서 메디컬 닥터(MD), 스탠포드에서 신경과 Residency 과정을 밟았다. 미국 의사 중에는 학위 콜렉터만 있는게 아니라 경력 콜렉터(?)도 있다. 애플헬스(Apple Health) 디렉터 Dr. Sumbul은 컴퓨터공학 학사 취득 후 IBM, 월트디즈니, ABC-TV, 보건의료정책 연구재단, 스탠포드 흉부외과 전문의 과정을 거쳐 스탠포드 혁신전략실 부실장을 역임하였고 애플에 합류해서는 Research Kit, Health Kit, Care Kit을 만들고 Apple Watch Series 6를 선보였다. 이렇게 미국 의대생들은 모두가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졌기 때문에 의학 외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풍토로 자리잡고 있다. 의사가 책을 쓰고, 유튜브를 하고, 발명을 하고, 창업을 하고, 정치를 하고, 식당이나 헬스장을 운영한다고 해서 딴짓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딴짓을 하기 위해 휴학을 할 필요도 없다. MD/MBA 복수학위 과정을 통해서 의대를 다니면서 경영학 수업을 듣고 졸업하기 전에 회사에 인턴을 나가거나 창업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펜실베니아대학(Upenn)에서는 본과 4학년때 부터 2년 동안 병원 실습과 MBA과정을 동시에 밟고 산업체에서 근무하면 MD/MBA과정을 5년만에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출처: https://www.med.upenn.edu/). 또 다른 예시로 하버드에서는 본과 3학년 때 부터 6년간 임상실습과 박사학위 과정을 동시에 밟고 하버드에서 MD 학위, MIT에서 Ph.D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출처: https://www.hms.harvard.edu/). 이렇게 미국에서는 임상의사 이외의 길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인정해주니 병원 밖에서의 커리어를 꿈꾸는 의대생들이 주목을 받거나 눈총을 받을 일도 없고 나름대로의 커리어로 존중 받을 수 있어 부러울 따름이다. 눈치보지 않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과정과 문화가 뒷받침 되어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국가 주도의 대대적인 변화가 아니라 대학과 민간 주도의 작은 혁신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나는 '딴짓'하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
위험의 과학...위험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 2021-07-26 05:45:50
백신 접종같이 국민 다수의 참여를 요구하는 보건의료정책은 대중의 위험 인식을 개선해야 원활히 진행된다. 당신은 자신의 생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 섭취 후 사망률이 50%인 사탕이 있다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망률이 10%라도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사망률이 얼마나 낮아야 먹을 수 있을까? 1%? 0.1%? 사망률이 0%인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한 인간의 모든 선택은 손해의 가능성인 위험(risk)을 동반하며, 인간은 안전을 위해 매 순간 위험과 이익을 저울질하는 위험 인식(risk perception)을 한다. 한 사람의 위험 인식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확장하면 대중의 위험 인식은 공동체 유지를 위한 것이다. 위험 인식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인식하는 위험은 실제 위험, 전문가들이 인식하는 위험과 동떨어져 있을 때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이 있다. 지난 4월 초, 세계보건기구, 유럽의약품청 등 전문 기관에서 혈전 부작용과 백신 투약 사이의 인과성이 미미하다고 발표했지만, 아직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위험하고 열등한 백신'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백신 접종같이 국민 다수의 참여를 요구하는 보건의료정책은 대중의 위험 인식을 개선해야 원활히 진행된다. 즉, 왜 전문가와 대중의 위험 인식에 깊은 괴리가 존재하는지 알아야 한다. 대중의 잘못된 위험 인식은 그들의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만약 위험 인식의 괴리가 정말 지식 수준의 차이 때문이라면 일반 대중과 전문가가 같은 통계를 공유했을 때 인식된 위험이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Zanin et al., 2020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는 국민 대부분이 올바른 자료 조사를 하고 있었음에도 코로나19에 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위험 인식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Savadori et al., 2004는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높은 인식된 위험은 전문 지식의 부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단순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사전 지식만으로는 위험 인식을 할 수 없다.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 오리건대 심리학 교수 폴 슬로빅의 '심리측정 패러다임(psychometric paradigm)'에 따르면, 사람은 사전 지식뿐만 아니라 내적, 외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쳐 판단을 한다. 예를 들어, Fischhoff et al., 1978은 같은 사망률을 가지더라도 '자발적'인 행위가 '비자발적'인 행위보다 약 1000배 더 위험 인식이 낮다고 발표했다. 또한, 일반인들이 흡연의 위험이 높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일상 생활에서 금연 광고를 흔히 접할 수 있으며, 흡연으로 인한 질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발성과 접근성 외, 개인의 사회경제적 위치, 위험에 노출될 사람의 수도 위험 인식을 할 때 고려되는 중요한 요소다. 위험 인식의 과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주관적이니, 전문가 집단은 대중의 위험 인식이 단순히 비논리적인 과정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최근까지의 연구는 전문가 집단이 대부분 수치적 위험 해석(quantitative risk analysis)만 하기 때문에 심리측정 패러다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된 채 진행되어왔다 (Jasanoff, 1998). 그러나 다루는 분야가 비슷한 전문가 집단이라도 경험과 목적의 차이로 인해 위험 인식의 차이가 크게 다를 수 있다. Zingg et al., 2012에 따르면 수의사들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것이 주 목적이기 때문에 도태에 대한 위험 인식이 각 가축과 교감을 하는 농부들의 인식보다 낮다. 이와 유사하게, 인구 전체의 보건을 다루는 예방의학과가 환자 개개인의 수술을 맡는 외과보다 백신에 우호적이다. 전문가 집단의 위험 인식에도 주관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가의 위험 인식은 최신 연구 결과, 수치 해석, 교차 검증 등 최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줄이는 기법을 기반으로 위험을 평가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위험 인식보다 타당하다. 즉, 전문가가 인식하는 위험은 실제 위험과 가장 가깝다. 때문에 많은 국가들은 일반 대중의 관심이 적은 정책을 만들 때, 전문가의 위험 인식만 반영하는 '현실주의적 모델(realist model of risk perception)'을 수용한다. 하지만 코로나19같이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재난은 관련 정책에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또한, 범국가적 재난이 진행되는 동안 허위 정보가 증가했으며, 사회경제적 차이가 벌어졌고, 정치적 이념에 따라 '자발적'과 '비자발적' 위험의 정의가 극단적으로 갈라졌다. 그 어떤 이슈든 전문가와 대중의 위험 인식의 괴리는 넓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실현되어야 한다. 먼저 직관적인 통계가 필요하다. 마음에 와닿기 어려운 절대적 위험도보다 상대적 위험도를 사용하면 효율적으로 위험에 대해 각인시킬 수 있다. 최근에 발생했던 재난 혹은 널리 알려진 질병의 사망률을 그 위험도와 비교하면 된다. 전달자의 다양화 또한 필요하다. 위험 인식은 통계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위험 인식은 주관적인 관점이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위험 인식의 차이를 좁히려면 소통 방식에 있어서 개인 단위로 소통을 해야 한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소통 방식은 불특정 다수의 위험 인식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정부 차원의 소통보다 시청자가 인간적인 공감을 할 수 있는 전문 커뮤니케이터 혹은 인플루엔서가 위험 인식을 쉽게 바꿀 수 있다. 코로나19가 20개월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시민들은 이미 지친지 오래다. 판데믹(pandemic)을 극복하기 위해선 모든(pan) 사람(demos)의 협조가 필요하며, 이는 서로의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공부라는 외길만 걸어온 의대생, 당신의 부캐는? 2021-07-19 05:45:50
TV 예능 프로그램 에 소개된 소위 '부캐''라는 개념이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부캐라는 단어는 원래 게임 용어로 본 캐릭터가 아닌 새롭게 추가한 부캐릭터를 의미하는 단어다. 이 프로그램은 진행자 유재석에게 여러 부캐릭터들을 설정하고 기존 본업인 MC로서의 모습이 아닌 부업에서의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슷한 움직임은 다른 매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Youtube)로 대표되는 인터넷 기반의 스트리밍, 영상 플랫폼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인해 현재 개인 콘텐츠 시장이 매우 활발하게 팽창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은 물론 정치인까지 기존 본업과 다른 부캐를 콘텐츠로 하는 영상으로 제작, 유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부캐의 창출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흐름은 여러 질문들과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줄기차게 '자아정체성' 이라는 단어를 들어왔다. 직업과 진로를 결정할 때 자신이 가장 원하고 잘하는 것을 선택해야한다는 가르침을. 하지만, 일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대와 매우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퍽퍽한 하루 하루를 견디며 내가 바라던 것과는 많이 다를 지라도 스스로를 달래며 주어진 상황에 타협하고 어릴 적 낭만을 치기 어린 것으로 치부하며 살아간다. 다소 서글픈 삶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캐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내가 잘하는 것은 뭐지?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즐겁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공 여부 혹은 주요 수입원이 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부캐를 탐색하고 도전해 삶의 의미를 찾으며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사회의 트렌드와 의료인 혹은 예비 의료인인 의대생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매회 최고 시청률을 갱신 중인 드라나 에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는 5명의 동기 의대교수들이 바쁜 일정 속에도 매주 한번씩 모여 밴드 연습을 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길 정도로 바쁜 일과 중에서도 밴드 연습을 할 때 밝게 웃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몰래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곤 한다. 이처럼 현재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 동아리의 형태로 본업과 다른 활동을 장려하고는 있지만, 사실 위에서 언급한 부캐와는 다른 성격의 취미 공유 혹은 동호회의 성격이 강하다. 단순한 동아리 차원이 아니라,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본업 외에 부캐로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의사 혹은 의대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의학 상식을 전달하고 잘못된 건강 상식을 바로 잡는 youtube 의학 채널들이 있다. 여러 다른 전공 분야의 전문의 선생님들께서 대중들에게 올바른 의학 상식을 제공하는 것은 본업이 가지는 전문성이라는 특성을 잘 살린 좋은 부캐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이미 많은 의사 선배님들께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흥미롭게도 서울의대를 졸업하시고 안과 전문의를 취득하신 후 서울대 안과 교수로 계시는 서종모 교수님은 서울공대 전기공학부 교수를 겸임하신다. 이 경우 역시 본업의 전문성을 부업에서도 연계하여 환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좋은 부캐의 예이다. 창업 분야에서는 더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DHP(Digital Healthcare Partners)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김준환 선생님의 본업은 서울아산병원 입원전담의다. 생활습관과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건강을 관리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고안된 스마트벨트 회사 ‘웰트’의 강성지 대표이사 역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출신이다. 대구 지역의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신약 개발 회사 ‘아스트로젠’의 대표 이사 황수경 대표의 본업은 경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이다. 또한, 최근 원격 비대면 진료로 급부상하고 있는 스타트업 '닥터나우'의 대표는 놀랍게도 의대생이다. 예시로 제시한 youtube 채널, 연구, 창업 외에도 정치, 작가, 기업 등 의사들이 활약하고 있는 분야 역시 사회적 트렌드에 맞추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꿈꾸는 의대생으로서 크게 와 닿는 두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의사는 전문의가 가지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부캐를 생성하기에 아주 좋은 직업이라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렇지만 그 전문성이 전부가 아니기에 꾸준하게 내 안에 숨겨진 부캐를 발견하고 키워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환자를 실제로 마주하기 시작하는 인턴, 레지던트 생활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부캐를 발견하는 여유를 현실적으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로운 의대 재학 시절 중에 부캐로 성장할 수 있는 내 안의 씨앗을 고민해보고 발견하여 새싹을 틔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묻는다. 당신의 부캐는 무엇인가요?
완벽한 불완전함(Perfectly imperfect) 2021-07-12 05:45:50
그 전부터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한테 언제 시험 기간인지 묻지 말고, 차라리 '안 시험 기간'이 언제인지를 물어봐! 난 늘 시험 기간이거든." 칼럼을 쓰고자 문서 파일을 열었을 때, 몇 년 전 시험 기간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금 또한 -당연하게도- 수많은 페이지의 강의록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의과대학 학생에게 수많은 시험은 너무나도 자주 찾아오는 존재다. 카페인과 함께하는 밤샘의 여정을 계속 맞이하는 것이 작년의 나에게는 벅차게 느껴졌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시험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작년 어느 새벽 날이었을 것이다. 해안도시에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나의 악몽에서는 해안가에 서 있는 나를 거대한 파도가 덮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날 내 눈앞에 남아있는 엄청난 강의록의 페이지 수가 마치 내 꿈속의 쓰나미를 닮아있었다. 끔찍하다, 라고 마음속으로 혼자서 되뇌었던 것 같다. 공부로 인한 부담감으로 인해 생겨난 두 가지 나쁜 관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우선 가면 증후군이 있었다. 가면 증후군은 자신의 성취를 운, 또 주변 사람들을 속여서 이룬 것으로 생각하며 자신을 스스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불안해하는 심리를 일컫는다. 다들 저렇게나 똑똑하고 완벽하게 모든 일을 해내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기 일쑤였다. 첫 번째의 잘못된 관념은 자연스럽게 시간에 대한 강박으로 나를 이끌었다. 너는 안 그래도 능력도 부족한데,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도 못한다면 너는 실패한 인생인 거야!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잠을 예상보다 1시간 더 많이 잤다고, 2시간 동안 자신을 자책했다. 그렇게 3시간을 허비했다고 또 4시간을 우울했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누가 하냐 싶지만, 과거의 나에게는 꽤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했던 내가 지금은 훨씬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가끔씩 불안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금세 평온을 되찾는다.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나의 취미생활을 놓지 않는다. 동시에 공부할 때는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 지식을 습득하고자 한다. 과연 어떠한 변화가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해답은 완벽 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그저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었다. 내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 그래서 어떻게든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내서 공부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완벽해져서 결코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에서 기원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고 노력해도 결국 나는 잠이 많으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룰 수 없는 환상을 좇으며 자신을 갉아먹기보다는,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완벽해지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자, 오히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역경을 기반으로 조금씩 발전하고자 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직도 실패는 쓰라리고, 아프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실패를 통해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오히려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다가올 힘든 순간을 더욱 단단하게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환자의 참여를 환영해주세요 2021-07-05 05:45:50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 시즌2가 시작됐다. 첫 방송을 보니 의과대학에 막 입학하고 앞으로 의학을 배움에 들떠 의료와 관련된 무엇이라도 시청해야겠다는 마음에 슬의생 시즌1을 보았던 작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따뜻한 의술을 베푸는 소아외과 교수 안정원을 보며 가지게 된 소아과에 대한 관심과 99즈 5인방의 밴드 합주를 보며 의대 라이프에 품었던 로망이 의료 파업과 집단 휴학으로 좌절되었던 기억이 흉터로 남아있는 듯하다. 슬의생1의 여러 에피소드 중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튜브에 클립조차 올라오지 않은 사소한 장면이다. 바로 아이 엄마가 담당의 안정원과의 상담을 몰래 녹취하다 들킨 장면이다. 아이 엄마는 "다른 병원은 장중첩증의 경우 수술이 아닌 시술을 하더라. 인터넷을 찾아보니 수술할 경우 아이 키가 안 자랄 수도 있다고 하던데..."라며 담당의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질문을 시전한다. 하지만 아이의 장에는 이미 괴사가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며, 의사는 수술 외엔 방법이 없다고 단언한다. 아이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인터넷에서 수술하면 아이 키가 안 자란다고 읽었다며 집요하게 시술을 요구한다. 의사가 그런 정보는 믿지 말라고 하는 순간 아이 엄마의 녹음본이 실수로 재생되고 의사가 간호사에게 수술을 위한 신속한 원무과 수속을 부탁하며 상황은 종결된다. 이 장면과 관련해 화두가 되었던 것은 의사와 상담 녹음의 합법 여부였다. 여러 변호사 및 법률 블로그에서는 담당 의사의 진료 상담을 몰래 녹음하는 행위의 불법 여부를 다루곤 했다. 그러나 내가 주목했던 것은 바로 참여의료였다. 미숙하기는 해도 아이 엄마의 의견도 진료와 치료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일종의 참여의료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담당의에게 의사결정과 관련해 질문하고 요구하는 아이 엄마를 단순히 고집스럽고 아는 체하는 모습으로 표현할 뿐이다. 물론 위 장면에서 의사가 자신의 판단을 배제하고 환자의 제안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다면, 아이의 치료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것은 환자가 치료 의사결정에 참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흔한 부작용이다. 그러나 환자의 의료 참여가 돌파구를 제시하기도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세계적인 구루인 에릭 토폴 박사의 저서 에서 킴 굿셀(Kim Goodsell)이라는 환자에 대해 읽은 기억이 있다. 그녀는 활기차고, 운동을 좋아하고, 놀라울 정도로 힘이 넘쳤으며, 20대와 30대에는 철인 삼종 경기로 세계 순위를 다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심장부정맥으로 쓰러졌다가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적이 있으며, 정밀 검사 결과 부정맥유발성 우심실 형성이상(ARVD)이라는 아주 드문 심장 질환을 앓고 있음이 밝혀졌다. 1만명당 1명꼴로 발생하며, 보통은 굿셀처럼 40대가 아닌 청소년기에 발병하고, 일반적으로 상염색체 우성 방식으로 유전되는 이 질환이 돌연사나 심각한 심장리듬 이상의 가족력이 전혀 없었던 굿셀에게 발병했다는 점이 매우 희한했지만, 담당 의사는 별다른 의구심 없이 그녀를 ARVD 진단에 따라 치료하였다. 그러다 심실성 빈맥이 여러 번 재발하고 근력 저하와 함께 신경학적 증상들이 나타나며 상황이 악화되자 굿셀은 메이요 클리닉을 찾았고, 결국 희귀한 질병인 2형 샤르코-마리-투스(CMT)까지 진단받았다. CMT 또한 ARVD와 같이 일반 대중에서 발병률이 매우 낮으며, 40대가 아닌 성인 초기에 주로 발현되는 유전 질환이다. 굿셀의 친척 중에는 ARVD 증상을 가진 사람이나 CMT나 다른 신경학적 장애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굿셀은 왜 자신에게 이런 희귀한 질병이 두 개나 생겼을지 의문을 품었다.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자 그저 운이 나쁜 것뿐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하지만 굿셀은 '그저 운이 나빠서'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의학적 배경지식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지만 자기 질병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2년간의 조사 작업에 착수했다. 유전학을 독학으로 배우고, 수많은 난해한 논문들을 읽으며 결국 LMNA라고 불리는 유전자에서 일어나는 희귀한 돌연변이를 찾아냈다. 이 돌연변이가 바로 그녀의 심장 질환과 신경계 질환을 하나로 묶어 주는 돌연변이였다. 굿셀은 메이요 클리닉으로 돌아가 자신의 DNA에서 이 특정 유전자 부위의 서열을 분석해 줄 것을 요구했고, 굿셀이 실제로 해당 돌연변이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돌연변이와 거기에 관여하는 생물학적 경로를 알고 있던 굿셀은 그에 맞추어 식생활을 개선했고, 덕분에 증상들 중 일부는 경감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굿셀은 자신의 질병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며, 두 질병을 하나로 묶는 진단은 없다는 의사의 권위적인 말을 떨쳐내고, 결국 대단히 복잡하게 조합된 희귀한 유전 질환들의 근본 원인을 본인이 직접 진단해내었다. 그녀의 의료 참여는 고집과 아는 체가 아닌 끈기와 지식이며, 참여의료의 이상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환자의 의료 참여는 간섭일까 보조일까. 첫 번째 사례에서처럼 환자가 인터넷에서 근거 없는 정보를 읽고 담당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그것은 의사의 시간을 뺏는 간섭일 뿐이다. 그러나 굿셀의 조사와 유전자 분석 요구를 통한 성공적인 진단은 보조를 넘어서 혁신에 이른다. 이것이 환자의 의료 참여를 더 이상 간섭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인터넷 혁신으로 의학 정보의 비대칭성은 점점 해소되고 있으며, 개인 의료기기를 통해 병원 밖에서도 환자가 직접 자기 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디지털 의료 시대가 도래했다. 'Doctor knows best'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의료는 더 이상 공급자 중심이 아니며, 환자 또한 일방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이제 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인 존재이자, 참여의료의 선두 주자이다. 다만 일반인이 올바른 의료 및 의학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가짜 정보에 기반한 참여의료는 정말로 간섭이 되어버릴 수 있으며, 의사가 환자의 의견을 수용한다 해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의사-환자 관계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의료정보, 의학지식, 의학논문의 세계가 아직 일반인에게는 난해한 것은 사실이다. 굿셀처럼 자신의 질병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2년간의 끈기 있는 학습과 조사 작업에 착수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플랫폼을 열고 의학 정보의 비대칭성을 허물어버릴 것으로 기대한다. 의학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와 함께 의료에서의 환자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이며, 환자참여는 부작용 예방, 재원 기간의 단축, 치료 효과의 극대화 등의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평소엔 무관심하던 사람이라도 환자가 되어서는 호기심 많은 아이가 그렇듯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진다. 이젠 아이들도 미지의 자연 속에서 탐구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의학 지식에 있어서는 의사와 비교해 아이와 같은 환자도 이젠 의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진료 및 치료 의사결정에서 의사와 환자는 서로 협력해야 하며, 환자의 의료 참여는 더욱 독려 되어야 한다.
의대생의 '인공지능' 맛보기 2021-06-28 05:45:50
2010년대 중반 등장한 알파고를 필두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 사회 전반적으로 크게 증대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제 단순히 영화에서나 나오는 콘텐츠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산업에서 활용되고 직업을 변화 및 대체시키며 인공지능의 가치관을 판단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 산업에도 활용될 만큼 기술이 발전했다. 의료에서도 다양한 방면으로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 활용될 예정이다. 처음에는 의료 전반적인 보수적인 시각 때문에 인공지능이 도입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고 몇몇 진료과(ex. 영상의학과)에서만 통용될 기술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기술이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가면서 특정 과의 특정 업무를 대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의료계 큰 틀에 변화를 부르는 기술임을 알게 되고 있다. 초창기 의료 인공지능은 학습할 수 있는 창구의 부족이 심했다. 지금은 의료인공지능학회도 생기고 강의도 개설이 되어 일반 의료인들도 쉽게 교육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고 꼭 논문을 읽거나 방대한 양의 개발 공부(ex. 파이썬)를 처음부터 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졌다. 이렇듯 본과 학생으로서 인공지능을 좀 더 거부감 없이 경험해 볼 수 있는 창구 몇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해커톤 및 공모전 참여를 권장하고 싶다. 의료계에 인공지능 바람이 분 만큼 다양한 공모전과 해커톤이 개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SAIHST) 디지털헬스학과와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DHP)가 공동 주최하는 'Digital Health Hackathon'이 있겠다. 메디컬 해커톤으로서 인공지능을 뛰어나게 알지 못하는 본과생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해커톤이다. 메디컬 해커톤의 장점은 인공지능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해커톤들은 팀을 이루어 진행하게 되는데 팀으로서 일하면서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본과생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가 의과대학 학생들로 한정되기 마련인데 해커톤에서라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인간관계를 다양하게 만들고 생각의 넓이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두번째론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단체, 모임 혹은 메디컬 매버릭스처럼 비임상쪽 단체에 참여해 보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자신이 공부하는 것 보다는 인공지능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이다. 또한 보통 이런 단체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연결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새로운 기회를 찾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창구로 소개드릴 것은 '강의'이다. 인공지능도 결국 학문의 일종이다. 강의나 책만큼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해당 학문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다양한 강의가 있지만 입문자로서 경험하기 좋다고 느낀 강의는 'coursera'에서 제공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 강의다. 실제 저명한 대학 교수님들, 머신 러닝의 대가들이 가르치는 강의이니 신뢰도는 아주 높다. 단계를 따라가면서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미니 프로젝트도 있는 경우 나름의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단점이 있다면 강의가 너무 친절해 코드가 기본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주도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초심자의 입장에선 우선 답지를 펴놓고 구현이라도 해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