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의료와 개인 정보 2020-05-31 21:28:52
|가천의대 의예과 2학년 최시연|"환자를 조기 발견하고, 접촉자를 신속하게 격리하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하는 한국은 COVID-19 대응에 있어서 WHO가 구상하고 추구하는 모든 요소와 전략을 이미 잘 구현하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열린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마이크 라이언 사무차장이 한 말이다.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에서 한국의 방역 대응 체계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프랑스의 한 변호사가 한국의 코로나 19 방역 대책을 보고 “개인의 자유를 오래 전에 버린 나라” 라고 비난하여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문제의 기고문은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에 실린 ‘코로나 19와 확진자 동선 추적: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지 말라’ 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그는 프랑스 당국이 한국을 본뜬 확진자 동선 추적 시스템을 도입하려 하자 이 시도에 반대하는 취지에서 칼럼을 기고하였다고 알려졌다. 이후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은 이가 과도한 비판이라고 보고 반박 기고문을 보냈으며, 프랑스 내에서도 모순된 태도라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 이 일의 여파는 상쇄되는 듯 보였다. 다만 이 논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인 정보는 분명 민감한 사안일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늘어났고, 비대면 강의가 이루어졌으며 원격의료 등 비대면 서비스 산업이 부상하였다. 작년까지는 몇 년이 걸렸을 코로나 관련 의약품의 승인은 비상 상황 아래 신속하게 허가가 이루어졌다. 평소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사람들은 이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고, 비대면 서비스에서 이 정도의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생활의 자유와 건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선택지가 주어졌고, 우리는 건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에 대한 배려로, 사람들은 코로나가 어서 종식되기를 바라며 기꺼이 ‘일시적일’ 불편을 감수하였다. 이제 코로나가 유행성 질병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코로나 이후의 사회는 우리가 이전에 살아왔던 세상과는 많이 다를 것임을 우리는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우리는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기꺼이 데이터화하였다.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는 것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인터넷 상에서 본인의 동선을 남기며 생활하였다. 내가 질병에 노출되면 언제든 이 정보들이 공개될 수 있는 상황에서, 모두의 동선은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원격의료는 그 필요성을 새롭게 조명받으며 급속도로 성장할 전망을 보이고 있다. 원격의료를 실현할 경우 우리가 네트워크 상에 남기게 되는 개인정보에는 우리 신체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혈압, 진료기록부터 내가 시행한 모든 검사의 결과까지, 의료 정보는 앞으로 네트워크 상에 오르게 될 나의 정보들 중 가장 상세하고 은밀한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일상이 될 글로벌 팬데믹 시기에 이 정보가 가장 철저히 보호받아야 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 개인정보의 데이터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의 목적은 우리가 프라이버시와 건강을 모두 누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는 불안과 공포에 의한 것이 아닌, 권력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제거된, 투명한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반대하며 2020-05-25 11:25:49
|대전협 김명식 정책이사 코로나의 큰 줄기가 지나간 지금, 이제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그 창의적인 당국자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구태의연한 대책들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새롭지 않은 정책들의 첫머리에는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 운영에 대한 법률안이 있다. 의료의 양극화 해소와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을 위한 공공의료의 발전 취지에는 공감한다. 아울러 강화된 공공의료는 코로나를 비롯한 신종 감염병에 더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될 수 있다는 시각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의료취약지에 장기간 근무할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목적으로 설립되는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에는 반대한다. 기본적으로 공공의료 인력 부족은 종사 부문과 지역에 따른 의료인력의 분포에 대한 문제이다. 법안을 발의한 측도 법률안의 제안 이유에서 의사인력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의료취약지에 대한 근무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의사인력의 분포를 거론한다. 그럼에도 이 문제의식은, 의료인력의 분포를 해결하거나 혹은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을 증진하는 것이 아닌, 엉뚱하게도 양적인 공공의료 인력 공급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모순적 대책으로 귀결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지역에 있는 인력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에 있다. 공중보건의사와 1차의료기관 등이 시골 각지에 퍼져 있는데도 이들을 배제한 채 새로운 의대생을 교육해 의사를 양성하고 공공의료 전문가로 굳이 키워나가겠다는 것은 행정력의 낭비다. 정부가 기존 전문의 인력도 제대로 쓰지 못한 정책 실패를 자인하고도 이들에 대한 적재적소의 배치와 교육을 재고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비전문가를 전문가로 육성하는 어려운 과정을 다시 밟겠다는 데 황당함을 금하기 어렵다. 민간 1차의료기관과의 연계를 구축하고, 지역거점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환자 이송 체계를 수립하며, 보건소의 지역사회 모니터링 역량만 강화하여도 대한민국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영토가 작은 국가에서는 충분한 정책적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새로운 대학이나 기관을 설치할 필요도 없이 기존의 인프라를 활용함으로써 재정적인 성과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아울러 의료인력의 수급은 의료의 질이 좋아지는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한 사회적 요구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의료계에는 정부가 의료인력이 많고 적음을 작위적으로 해석하여 이 정책을 강행한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단순히 관변 보고서 몇 편을 인용하여 의사 수가 많고 적음만으로 공공보건의료의 대계를 결정하기 보다는 의료취약지의 환자를 어떻게 잘 관리하여야 할 것인가라는 공공의료의 본질적 시각에서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90년대 우후죽순으로 설립된 의과대학들이 자리잡는 데 30여 년이 걸렸다. 그조차도 해내지 못 해 폐교된 학교도 존재한다. 더욱이 의학 교육의 특성상 의과대학 하나만 설립하면 교육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충분한 교육여건이 갖춰진 수련병원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수련받지 않은 의사의 양산은 결국 국민의 피해로 돌아온다. 그저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 또는 지역균형발전을 참칭한 기계적 배분을 위해 의과대학 설립 정책을 그르친 우는 서남대학교의 사례 한 번으로 족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05-18 05:45:50
|아주의대 의학과 6학년 정호민|금요일은 항상 설렌다. 실습이 끝나면 옷을 갈아입고 얼른 집으로 뛰어간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넷플릭스에 로그인하면 벌써 새로운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다. 방금까지도 병원에 있었지만 율제병원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나의 마지막 의학드라마는 골든타임이었다.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참 재밌었지만 이후 한국 의학드라마는 한편도 보지 않았다. 매년 의학드라마는 새롭게 나왔지만, 손이 가질 않았다. 고독하고 능력 좋은 천재 의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언제나 자극적이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달랐다. 그곳엔 내가 봤던 모습이 있었다. 의사도 아니고 환자도 아닌 실습생으로 봤던 시선 말이다. 교수, 레지던트, 인턴, 환자 그리고 보호자의 모습이 화면 속에 사실적으로 그려져 첫 화를 봤을 때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에 가깝다 생각했다. 현실은 한 명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사람'이 있다. 이들을 사람냄새 가득하게 풀어놓는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마음도 절로 따뜻해진다. 어떤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았는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볼 때면 혼자 한창 깔깔대다가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휴지를 찾는다. 드라마가 현실적이다 보니 학생으로서 배울 점도 많았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5명의 젊은 교수들은 저마다 살아온 배경, 전공, 성격이 모두 다르지만, 이 다섯 명 모두 의료인문학에서 글로 배웠던 좋은 의사의 표본이었다. 의사는 환자의 질환만 다루는 게 아니라 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삶을 이해하고 해결해주어야 한다. 의사는 공감능력으로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표현방식은 달라도 에피소드마다 교과서를 옮겨놓은 듯한 주인공들의 모습에 환자에게 무뚝뚝하고 차가운 장겨울 레지던트 선생님이 변해가는 모습이 저절로 이해가 됐다. 의대생이라면 이 드라마를 꼭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꼭 실습을 하고 봤으면 좋겠다. 율제병원의 이야기를 본인의 실습일기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고, 실습생의 눈으로 보았던 모습, 의학이 환자에게 실제로 적용되는 모습을 화면에서 보면 누가 나의 시선을 화면에 옮겨놓은 듯한 재미도 있다. 의대생이 아니더라도 모든 국민이 이 드라마는 봤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의사라는 직업이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알 수 있듯이 분명 의료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며 언제나 그 중심엔 의사가 있다. 출혈이 심해 응급 수술을 받던 환자가 걱정되어 "교수님 그 환자 살았나요?"라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응 당연히 살았지."라고 말하는 교수님의 모습. 일과가 끝나고 밥을 먹다가도 응급콜을 받고 자연스럽게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병원을 떠나기를 주저하는 의대생들을 위하여 2020-05-14 05:45:50
|울산의대 본과 4학년 김은영| 무슨 과 할 거니? 라는 질문을 안 받아본 의대생이 있을까? 우리에게 이 질문은 너무나도 익숙한 질문이고 서로 흔히 주고받는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꼭 진심이 아니더라도 모범답안처럼 한 개 준비해서 다니곤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질문에 반기를 들고 싶다. 의대생이 아닌 친구들과 장래에 관하여 얘기 나눌 때, ‘나중에 뭐 하고 살 거야? 어떻게 살고 싶어?’ 이렇게 묻지 ‘너 회사 무슨 부서 갈 거야?’ 이렇게 묻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의대생들은 병원에 남아서 전공의가 되는 것이 전제되어 무슨 과를 할 것인지를 묻는다. 물론 전공의 과정을 밟고 과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결정이고 큰 갈림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게 우리 모두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과 4학년이 되어 졸업을 앞둔 지금에 와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뭘 위해서 이렇게 달려온 걸까? 매일 밀려들어 오는 지식들과, 매주 찾아오는 시험들을 하나둘씩 이겨내며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국제 보건을 해서 더 적절하게 의료 배분을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으나, 경험을 해보기는커녕 경험담을 들어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쪽으로 꿈을 꾸려고 해도 두려움과 망설임이 앞서게 되었고, 포기하기에는 마음의 미련이 많이 남았다. 포기하더라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알고 포기하고 싶어서 졸업하고 바로 인턴을 하거나 학생 시절 잠시 휴학을 하는 일명 정규코스에서 벗어나 방황을 해보려고 했다. 내가 꿈꾸는 일이니 내가 시도하면 그만이지만, 길을 잃지는 않을까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의사 연봉이 얼마인 줄 아느냐, 네가 방황하는 1년 동안 그만큼의 가치를 만들 수 있겠냐.’, ‘안정적으로 병원 생활하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네가 쉬고 싶지 않아도 쉬게 될 날이 온다.’, ‘남들은 다 하는데 너만 쉬고 왔다고 끈기없는 애로 보일 수 있다.’ 등등. 모두 나를 위해서 한 말이었지만, 그래서 나에게는 더 크고 무거운 돌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뭔가를 벗어나 도전하려면 정말 그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할 것 같았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꿈을 찾고 방황하고 싶다는 말이 사실은 쉬고 싶다는 말을 돌려 말하고 있었던 건가 나를 의심하게 되기도 했다. 사실 아직도 확신은 없다. 당장 내년에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달라진다. 그렇지만, 나는 나에게 다짐했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길이면 가보자고. 가서 후회해도 좋고, 실패해도 좋고, 결국 포기해도 좋다고. 그게 내 연봉에, 내 승진에, 내 평가에 손해를 끼칠지 몰라도, 나 스스로와 한발 더 가까워지고, 한발 더 나아가는 길이 될 거라고. 혼자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동기 한 명에게 이런 생각을 넋두리처럼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보다 너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아직 여린 생각을 괜히 남들에게 말해서 상처받게 두지 말고, 네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꼭 해봐. 그러고 나서 아니면 다시 돌아와서 같이 인턴, 레지던트 하면 되지.’ 무심한 듯 얘기해준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다음에 만나면 서로에게 무슨 과 할거냐 물으며 선을 긋지 말고,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또는 나중에 뭐하고 싶은지 물어보자.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라서 당황하는 친구도, 사실 속으로 많이 고민하고 있어서 누군가와 얘기가 너무 하고 싶던 친구도, 자기가 품고 있던 꿈을 막 풀어놓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한 번 더 물어보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 말이다. 그러면서 생기는 마음속 말들을 너무 외면하지 말자. 마음속의 빈 곳이 작은 대화, 작은 문장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조금 더 자유로운 대화가 오갈 수 있기를 살며시 바라본다. 내가 스스로 하는 확신으로는 조금 부족했던 부분이 동기의 한마디로 채워졌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의대생이기 이전에 청년인 것을 잊지 말자. 꿈을 꾸고, 방황하고, 나의 삶을 찾는 청년. 나를 포함한 모든 청년의사의 도전과 방황을 응원한다.
그 색안경을 언젠가 한번쯤은 내려놓아 주십시오 2020-05-11 05:45:50
|강원의대 의학과 2학년 김미성|작년 8월 대만, 저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 합류했습니다. 모로코, 파키스탄, 스위스, 영국, 독일, 폴란드, 그 외에 발음하기 어려운 나라들까지. 다양한 나라만큼 다양한 의견, 다양한 수업 방식, 다양한 면허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Standing Committee of Human Rights and Peace라는 상임위원회 세션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Law of war, 전시에만 적용되는 법칙, 싸우기를 포기한 사람을 해치지 않는, 전시에만 적용되는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짧은 영상이었습니다. 뒷 좌석에 중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딸아이를 태운 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안고 달래 주고 싶은 지 연신 뒤를 돌아보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새된 울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총을 든 사람들을 잔뜩 태운 차가 아이와 아버지가 탄 차를 지나쳐 갑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결국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좋아하던 노래를 불러 주며 아이를 깨우려 애쓰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한참이 지나 애써 도착한 병원, 차를 세우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아버지는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웬일인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은 채로 망연자실합니다. 병원이 폭탄을 맞고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을 파괴하는 행위는 국제적으로 금지된 행위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비인간적이지요. 이어 우리는 전쟁에서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마주치게 될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 제가 사는 나라는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군인들은 이웃 나라에 가서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예정입니다. 정부에서는 저에게, 군인들이 생화학 무기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Premedication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몇 해가 지나,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왔습니다. 정부는 PTSD를 심하게 겪고 있는 군인들을 다시 전쟁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PTSD가 아니라 정상으로 진단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저는 지금 전쟁터에 있습니다. 제 눈앞에는 환자가 두 명 있습니다. 한 사람은 팔을 살짝 긁혔고, 다른 사람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저는 지금 머리에 총구가 겨누어 진 채로 팔이 긁힌 사람을 치료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답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한참 동안 씨름해 보았습니다. 사실, 전쟁이란 것을 겪어보지 않은 저는 대답을 할 때 그리 길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는 오히려 풀기 쉬운 법이니까요. 생각하던 대로, 옳다고 느끼는 대로.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조금 더 가까이 가져와서, 각자의 나라에서 느끼고 있는 Healthcare in Danger에 대한 예시를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환자에게 고소당하는 의사, 칼에 찔린 의사, 폐암 환자가 병원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지적하자 환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결국 사망한 의사, 총에 맞은 의사, 의사는 돈을 많이 벌어서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스위스에서 온 친구였습니다. 그 어떤 친구도 자기 나라는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말 괜찮아도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괜찮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단점은 눈에 잘 띄고 말하기 쉬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선거를 치르며, 의료 정책과 더불어 의사를 바라보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USMLE, JSMLE를 이야기하며 이 나라를, 이 사회를 떠나면 이 문제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의사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편견, 고정관념은 전 세계적입니다. 언제부터 시작했을지도 저는 감히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생각나는 모든 이유를 한 곳에 적는다 하더라도, 어딘가 빠진 게 있을 것 같은, 오래되고 무거운 색안경입니다. 이 색안경은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을 볼 때도 으레 씌워지곤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낱 인간입니다. 무릎이 늘어난 추리닝을 입고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헐레벌떡 아침에 학교로 뛰어가는 가는 한 학생입니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라는 책을 얼마 전에 한 간호사 선생님께서 써 주셨지요. 예, 간호사도, 의사도 그저 사람입니다. 어쩌면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저 조금 오지랖이 더 넓은 사람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합니다. 그리고 실은, 아주 다정하고, 섬세하고,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밤을 새우고, 밥을 굶고, 내 즐거움을 포기하더라도, 담당 환자가 건강하게 나아서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에 힘들었던 게 다 잊혀집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색안경을 언젠가 한 번쯤은, 내려놓아 주십시오.
의학교육 바람(wind)이 학생이 이끄는 바람(wish)이 되려면 2020-04-27 05:45:50
|원광의대 예과 2학년 정은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언제, 어떻게 상황이 급변할지 모르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함’은 일상 곳곳을 침범했다. 약 두 달 전 집단 및 지역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시간표대로 강의실에서 칠판을 보고 필기하던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어느새 ‘평소와 다름없이’ 모니터 앞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기존에 익숙하게 이루어졌던 강의실에서의 기초·임상의학 강의나 TBL(Team Based Learning, 팀 중심 학습)·PBL(Problem Based Learning, 문제 중심 학습)의 경우 녹화강의, 화상회의 플랫폼을 활용한 실시간 화상강의 및 토의발표로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직접 조직, 기관을 관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해부학, 조직학 등의 기초의학실습의 경우 학교에 따라 온라인 디지털 방식을 도입하거나, 대면 실습 방식과 함께 병행하기도 한다. 환자를 보고, 병원의 업무구조를 파악하며 증상 중심 학습이 이루어져야 하는 병원 임상 실습 역시 비대면 온라인 개강 후 병원 실습 재개 전까지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평가항목에 대한 동영상 학습을 진행하는 등 대면과 비대면 방식을 함께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졌던 의학교육과정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코로나19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며 의학교육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의 정형화된 의학교육이라는 호수에 돌수제비를 던진 코로나19가 가져온 의학교육의 변화는 비단 그 형식과 수단뿐만이 아니다. 학생 개인에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 역시 또 다른 코로나19 발 의학교육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 체제가 본격화되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시험 평가 횟수가 줄어들면서 기존의 대면 강의에 비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시간을 활용하여 코로나19로 인해 활성화된 웨비나(webinar) 등을 활용한 의학 외에도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와 물리적으로 강의실과 학교에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하지 못했던 활동들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녹화 강의 중심으로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의 경우, 교육과정 상 짜인 수업시간표를 꼭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수업시간표를 짜 볼 수 있다. 가령,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강의 수강 순서를 바꾸어보거나, 집중이 잘 되는 시간대에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같은 주제에 대해 설명한 다른 온라인 강의와 학교의 녹화 강의를 모니터 양쪽에 띄워 놓고, 비교해서 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으로 인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의 형태이기 때문에 학생이 생각하는 강의 진행 방식 개선 방안이나, 시도해 볼만한 방법을 보다 쉽게 제안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사례를 들자면, 필자의 경우 작년부터 화상회의 플랫폼들을 이용하면서, 동료 교육(peer education) 형태의 IFMSA(세계의대생연합)에서 주관한 역량 강화(capacity building) 온라인 교육을 수강한 적이 있다. 실시간 화상 강의 중 짧은 시간 내에 객관식 혹은 주관식 문제를 풀면 모든 사람의 답변을 집계해 바로 보여주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교육 담당자가 수강자들의 답변에 따른 맞춤 설명을 진행한 적도 있다. 또는 제한된 시간동안 낱말풀이,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종류 중 한 미션을 수행하면 다음 미션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화상교육이 진행되기도 했다. 화상회의 플랫폼은 교수와 학생 누구나 화면공유를 하고, 발표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서 개인적 사례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상호적(interactive) 방법들을 활용해 TBL, PBL과 같은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총 12개 정부 부처에서 31개 분야에 대한 생활방역 세부지침 초안이 공개되었다. 이 초안의 주요 내용은 업무, 일상, 여가의 큰 영역에서 상황과 장소별 방역 행동수칙이며, 의견 수렴과 논의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사회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확정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생활 방역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변화의 국면을 맞이한 새로운 표준, ‘뉴 노멀(new normal)’ 의학교육에 있어서도 현재는 도입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의 창의적인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생활방역 지침처럼, 학생들이 원하는 그리고 개성 있는 아이디어를 의학 교육에 녹여, 학생 개개인이 만들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뉴 노멀’ 의학교육 청사진이 그려지기를.
진심을 다하는 의사에 대해 2020-04-20 10:59:30
|강원의대 의학과 2학년 염인지| 우리 학교는 의전원에 입학할 때, 신입생들이 각자의 포부를 담아 "나는 00한 의사가 될 것이다"라는 문구를 적는다. 나는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적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막연하게 실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력이 좋아지려면 배움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은 두루뭉술하게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적었다. 그리고 의학과 2년 차인 지금은 실력을 갖출 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도 위로해줄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멋모르고 썼던 진심을 다한다는 말은 내게 더욱더 깊은 의미가 돼가고 있다. 2학년에 올라오면 의사입문이라는 과목을 가장 먼저 배운다. 본격적인 임상 이론을 배우기 전에 아주 간단한 임상 술기와 더불어 환자에 대한 예의, 환자와의 공감 교육을 받는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환자의 정서반응 이해", "적극적 경청과 공감 실습" 수업이었다. 표준화 환자를 모셔두고 의사와 환자 역할극을 통해 환자와의 소통을 연습했다. 교실 앞에 한 명의 동기와 표준화 환자분이 마주 앉았다. 학생의사 역할을 맡은 동기가 환자분께 검사 결과 위암이라는 소식을 전하자 표준화 환자는 절망하며 눈물을 보이셨다. 의사 역할을 맡은 동기는 어떻게든 치료를 잘해보자는 의지와 응원을 불어넣으려 했지만 이미 환자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의사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교실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슬픔이 감돌았다. 그제야 내가 배우는 것이 사람을 다룬다는 것을, 무미건조한 문장으로 표현됐던 하나의 증례가 한 사람의 중대한 사연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암 재발을 걱정하는 환자, 검사 예약이 잘못돼 화가 난 환자 등 여러 사례에 대해 다루었으며 소규모로 조를 나누어 모두가 역할극에 참여해볼 수 있었다. 사례 역할극이 끝나면 표준화 환자분이 우리의 대응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이야기해주셨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동기가 환자와의 공감, 환자에 대한 경청에는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환자의 입장에서 소통이 잘 안 되는 느낌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많은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모든 환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청하려는 집중력이 극대화됐던 수업에서조차 소통하기 힘들었던 것은 그만큼 환자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하려는 노력과 고찰이 평소에 부족했다는 증거였다. 이때 비로소 환자와 소통하며 마음의 위로도 건넬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을 다한다는 것은 감정적 공감뿐만 아니라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환자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 얼마 전 배운 중증복합면역결핍증(SCID)을 앓는 환자는 만 3세를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사망한다. 게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감염을 막기 위해 외부와 격리돼 좁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지내게 된다. 의사로서 우리는 환자의 수명 연장을 위해 치료 방법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사는 동안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교수님도 이 부분을 강조하셨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삶을 위해 의사로서 어떤 노력을 할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한때 나는 의사는 그저 실력이 좋으면 그만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많은 시험을 보며 힘들게 배우는 의학은 결국 사람을 향해있기 때문이다. 국가고시를 통과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가 되는 의전원/의대의 특성상, 학생일 때 그저 시험공부에만 몰두하면 의사가 됐을 때 환자와 소통할 수 없는 의사, 마음이 없는 의사가 되기에 십상이다.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은 학생인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2020-04-16 05:45:50
|대구가톨릭의대 의학과 1학년 김보현| 몇 년 전만 해도 반려동물을 데려올 때 펫샵이나 가정분양을 이용하는 것이 주된 선택지였다. 하지만 애견공장의 실태가 밝혀지면서 펫샵에서 동물을 소비하지 말고 유기동물을 입양하자는 움직임이 커졌고 이러한 맥락 안에서 나온 슬로건이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다. 그런데 지난 2일 뉴욕시가 대리모를 합법화 한만큼 이제는 이 문구를 사람에게도 적용해야 할 것 같다. 대리출산이 최근에서야 생긴 산업은 아니다. 남성의 정자를 대리모에게 주입하여 대리모의 난자와 수정되도록 하던 과거의 방식부터 온라인으로 구매된 난자와 정자를 3세계 여성의 몸에 착상시키기까지 나름의 진화를 해왔다. 그러나 ‘대리모가 윤리적인가?’, ‘대리모가 일이 될 수는 없는가?’ 등의 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대리출산의 윤리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주로 등장하는 말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열망일 뿐, 권리가 아니다. 또한 대리출산을 통해서만 해결이 되는 열망이라면 아이를 가지고 싶어한다기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를 얻고 싶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러한 욕구의 실현을 위해 타인의 신체를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보는 게 윤리적인가? 또 적절한 규제는 대리출산을 윤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대리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성의 재생산과 아이를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여기는 것이다. 여성은 젊고 정숙해야,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성별의 ‘하자 없는’ 상태여야 상품성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구도 안에서 아이는 부모의 재산으로, 여성은 이 특별한 재산을 얻게 해줄 수 있는 도구로써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재산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이며 여성의 존재가 하나의 장기(자궁)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 2017년 로마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처벌 근절에 대한 협약(CEDAW)에 대리모를 금지하도록 권고하는 절차를 포함해달라고 UN에 요청했을 때 지적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삶이라는 경이로운 선물’과 개인의 자유라는 수사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대리모는 어머니와 아이를 비인간화하며 부모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아이의 생명을 사적 재산으로 만드는 개인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로 이어질 수 없다. 대리모 옹호론자들은 대리모들이 ‘출산 노동’에 종사하고 있을 뿐이며 이를 직업으로 인정해야 양지에서의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이 출산 노동의 대가로 얻는 보수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다며 대리모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고 윤리적인 책임을 회피한다. 하지만 대가의 지급이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고, 대가를 받았다고 하여 그의 결정이 그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선택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게다가 대리모의 출산 노동은 일로 평가될 수 없다. 대리모는 일이 그의 건강에 끼치는 장기적인 영향은 연구된 바가 없으니 알지 못하고, 임신 기간 동안 생기는 수많은 변수는 각각의 사건에 보상을 상정하기 힘들 만큼 다양하다. 그리고 대리모가 일이 된다면 이들이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아이를 유산하지 않고 임신 기간 동안 몸의 변화가 크지 않으며 또다시 임신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베테랑 대리모도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베테랑 대리모가 얻는 수익이 초보자보다 많거나 이들이 대리모 산업의 정점에 서 있지는 않는다. 대리모의 일은 자기파괴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대리모 산업에서 실질적인 이익은 브로커들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것을 일로 정의할 수 없고, 정의된다 하더라도 윤리적일 수는 없다. 한국에서 대리모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도 의뢰인 본인들의 난자와 정자를 체외수정한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하도록 하면 처벌하지 않고, 2017년 11월 주네팔 한국대사관에서 인도의 대리모 불법화 이후 한국인들이 인도에서 구한 대리모를 네팔에서 출산하도록 하여 네팔 당국이 주시하고 있다고 공지한 바 있다. 게다가 요즘 해외 자본가들 사이에서는 불임이 아님에도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가지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만큼 한국이 언제까지 대리모 산업과 무관한 것처럼 있을 수는 없다. 생명에 대한 논의에서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것은 없다.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이 산업이 대리모와 아이 모두를 착취하는 비윤리적 행위라는 사회적 합의가 생기길 바란다.
COVID-19 속 의학 교육, 그리고 풀어야 할 숙제 2020-04-13 05:45:50
|가천의대 의학과 2학년 모채영| 2020년 4월 현재, 국적과 성별, 연령을 막론하고 모두의 관심은 COVID-19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는 지금까지 여러 유행병을 경험해보았지만, 21세기 들어 COVID-19만큼 사회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범세계적 유행병은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 집회는 중단되었고, 봄마다 벚꽃놀이 인파로 붐비던 공원들은 폐쇄되었으며, 개학이 4월로 미루어 지는 사상 초유의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의과대학의 교육 과정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전국 거의 모든 의과대학에서 오프라인 수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임상 실습도 평상시보다 훨씬 연기되어 시작되었다. 가천대학교의 교육 일정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현재 의학과 1학년은 오프라인 해부 실습이 중단된 상태이며 임상실습을 시작한 의학과 3학년을 제외하고는 모든 학년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열람실을 비롯한 의과대학의 모든 시설은 폐쇄 조치가 내려졌으며, 오프라인 모임이 필요한 행사들은 모두 취소되었다. 의학 교육의 특성상 임상 실습이나 조직학, 해부학과 같이 오프라인 실습이 필수적인 과목이 존재하며, 학사 일정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고 여러 과목의 일정이 맞물려 돌아가는 만큼 한 과목의 일정이 조정되면 다른 과목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많은 학교에서 채택하고 있는 블록 제도는 몇 주의 기간 동안 한 과목을 배우고 그 기간이 끝나면 해당 과목의 성적이 산출되는 제도이다. 따라서 한 블록의 일정이 조정되면 도미노처럼 다른 블록의 일정들도 밀리게 된다. 중간기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학교들도 여러 과목을 한꺼번에 배우므로 시간표가 촘촘하게 짜여 있어 시간표 조정이 여의치 않음은 마찬가지이다. 그에 더해 유급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과목마다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매 학기마다 배우는 과목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요인들은 의학 교육 학사 일정의 융통성을 매우 떨어뜨린다. 2003년 SARS,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 2015년 MERS 그리고 2020년 COVID-19.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영향을 주는 범세계적 유행병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변화로 인해 이러한 전염병의 유행이 4~5년 주기로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 또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COVID-19와 같이 파급력이 강한 전염병이 2025년, 2024년, 혹은 그보다 더 일찍 다시 찾아올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COVID-19와 같은 전염병, 또는 그에 준하는 자연재해에 대비하여 비상시 의학 교육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졸업에 일정 시간 이상의 임상 실습이 필수적인 의과대학 특성상, 졸업 요건이나 국시 응시 자격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임상 실습의 전염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의과대학 실습생 생존권에 관한 청원이 올라오기도 하였고, 한국의학교육협의회 한희철 이사장도 임상 실습의 감염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에 관한 안전장치의 마련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항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오프라인 실습이 필수적인 과목들의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권자들의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의학 교육은 비단 미래의 의학자를 양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의 건강이 위협당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선봉에 나설 사람들의 기반을 닦는다는 데에 있어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진다. 이번 일을 계기로 비상시 의학 교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그 개선 방향에 대해 2020-04-09 05:45:50
|차의과대학 본과 3학년 김태겸| 첫 코로나 확진자가 국내에 나온 지 80여일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수많은 사망자가 나왔고 많은 국민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외출을 금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요즘, 오히려 코로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최전선에 서있는 의료진들이 있다. 대구/경북 지역을 포함한 의료지원이 필요한 어느 곳이든 자처해서 걸음을 옮긴 많은 영웅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 모습에 많은 국민들은 의료진에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편 국내 첫 의료진 사망이라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대구 60대 내과 의사분이 진료 중 코로나 환자 접촉으로 인하여 돌아가셨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선배님들의 모습은 나의 미래 의사상에 대한 생각에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비단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만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신종플루, 메르스 사태 때도 영웅들은 같은 자리에 묵묵히 서있었다. 나는 한 가지 물음을 던져보고자 한다. 이러한 의료진들의 묵묵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과연 국민의 의사에 대한 신뢰도, 사회적 인식이 과연 현재에 나아졌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평소 의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의사에 대한 불신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현저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편이다. 2015년 메르스 당시 의료진들의 헌신이 있었던 이후에도, 2016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우리나라 국민의 공중보건 위험 인식 조사와 정책 활용 방안에 대한 기반연구' 보고서를 보면 보건의료직군 중 의료과실, 사고에 대해 신뢰도는 의사가 가장 낮다. 이에 반해 유럽의 경우, 의사를 향한 신뢰 수준이 불신하는 정도의 두 배가 넘는, 우리나라와의 정 반대의 경향을 보이는 것을 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앞선 메르스, 신종플루의 사례에서 보았듯,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사회적 인식 개선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코로나 사태 진정 국면 이후에도 그것이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의사에 대한 신뢰 수준 향상, 그것은 환자와 의사간의 관계에 있어서 꼭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환자의 적은 질병이다. 의사의 적도 질병이다. 같은 적을 두고 손을 잡고 싸워야 하는 의사-환자 관계가 불신으로 얼룩져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 의료진과 환자가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캠페인 등 적극적인 사회문화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비슷한 사례로, 일전에 음식점, 카페 등 아르바이트생을 향한 일부 사람들의 이른바 '갑질'은 사회적으로 많은 자성의 목소리와 비판이 나옴으로써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흔한 의사- 환자관계에서 나오는 갈등 또한, 또 다른 자성의 목소리로 변화를 꾀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단체 차원에서 의사와 환자 집단이 서로의 벽을 허물고 소통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구체적인 채널을 마련하여 소통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제도적 개선이 앞서 말한 개선방안과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의사를 폭행하거나 멱살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곤 한다. 이런 폭행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2019년 관련법 개정이 이뤄졌으나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가 벌을 면하는 반의사불벌규정'은 아직 남아있다. 이 조항은 사법당국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양자 간 합의에 집중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한다는 지적을 받는 조항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실질적으로 반영한 제도적인 개선이 뒤따라야 안전환 환경에서 건강한 진료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 생각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환자를 진료하다 돌아가신 내과 의사분의 죽음과 지금도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땀방울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환자와 의사가 두 손을 꼭 잡고 질병에 맞서 싸우는, 건강한 의료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 잡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