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은 교도소가 아니다" 2019-07-08 05:57:23
간혹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진을 폭행했다는 신문 기사를 볼 때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예민한 상황에서 갈등이야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실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환자와 의료진에게 모두 큰 피해가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병원 내 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행한 환자나 보호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에 앞서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다른 환자들의 안전도 책임져야 할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법을 제정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체 왜, 최근 몇 년 사이 병원 내 폭행 사건이 이처럼 늘어나게 된 것일까? 최근 늘어난 병원 내 폭력 사건을 살펴보면 비슷하게 반복되는 어떤 유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개 ‘응급실’에서 술에 많이 마신 ‘주취자’에 의해 발생하는 의료진 폭행이다. 주취자에 의한 병원 내 폭력이 늘어난 이유는 바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이라는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011년 처음 시행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길에서 신고 되거나 발견된 주취자들을 병원 응급실에 맡기는 제도이다. 경찰들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때론 신원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해장 치료’를 하라며, 진짜 응급환자를 봐야 할 응급실에 데리고 온다. 본인이 왜 응급실에 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취자는 다음 날 술이 깨고 나면 자신에게 청구된 병원비에 항의하기도 한다. 전북 익산의 한 병원에서는 주취자가 담당 의사를 피가 흐르도록 때리고 밟는 ‘범행 현장’에서, 코 앞의 ‘주취자 현행범’을 제압도 않고 그냥 서 있는 경찰의 모습이 CCTV에 공개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일각에서는 응급실에 경찰이 한 명 배치된다는 이유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더 늘리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슬쩍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분명 재검토되어야 하는 실패한 정책이다. 경찰에서 담당하던 주취자 보호 업무를 일부 공공 병원 응급실에 떠넘기면서, 정작 병원들은 정말 응급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제대로 맡아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질병이 아닌 것을 질병으로 간주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사회의학 용어로 ‘의료화’(medicalization)라고 하는데,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의료 서비스가 본래 가치에 맞게 쓰이지 못하고 행정적인 요구에 의해 남용되는, 이른바 ‘행정에 의한 의료화’의 대표적 경우다. ‘행정에 의한 의료화’에는 또 다른 케이스가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환자를 입원시키는 경우는 입원이 환자의 치료에 필요할 때이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얘기다. 안정을 취해야 하거나, 꾸준하고 반복적인 치료 혹은 밀접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는 정신질환자의 입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일부 정신질환자에게는 본인에게 병이 있다는 인식, 즉 ‘병식’이 없어서 강제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이 경우 병원은 환자를 대신에 가족이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고, 고도의 전문적이고 의학적인 판단 하에 환자의 입원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일반적인 상식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경찰관의 요청’에 의해 정신 질환자를 입원 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행정입원’이라는 제도인데, 이전 법안에서 지자체장이 의뢰하던 것을 지금은 경찰관도 입원을 자의적으로 검토하고 병원에 요구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법조문에서 ‘요청’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도, 지자체나 경찰의 ‘입원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일선 병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심지어 ‘응급입원’의 경우에는 의사의 동의 없이 경찰관 단독으로도 진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환자 본인도 보호자도 아닌 ‘경찰관’ 한 사람의 요구에 의해 ‘타인에게 해를 미칠 수 있는 사람’을 교도소가 아닌 병원에 수용한다는 발상은 병원의 본래 역할을 물론, 환자의 건강과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 문제는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엄중히 지적한 바 있다. 정신질환의 입원 목적은 질환의 관리와 치료가 되어야지,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강제 수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입원 기준은 환자와 보호자 스스로가 느끼는 필요성과 더불어, 외부의 개입에 간섭받지 않는 의료인의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이 되어야 한다. 최근 일부 언론이 조현병 환자의 강력 범죄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에 대한 국민 여론이 갈대처럼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정신질환자의 인권에 반하는 강제 입원에 대해 의료계를 비판하던 여론은 이제 범죄자가 된 환자의 관리 책임을 병원에 요구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둘 다 정답이 아니다. 병원은 질환 관리와 치료를 목적으로 입원을 결정할 뿐, 징역 개념의 사회적 격리를 책임으로 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은 강력 범죄가 아니고, 전염병도 아니며, 정신병원은 교도소가 아니다. 특히 이슈가 된 조현병은 약 100명 당 1명 꼴로 발생하는 흔한 질병으로 알려져 있으며 환자마다 임상 양상과 예후도 다양하다. 다수의 조현병 환자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관리된다고 하며, 조현병 환자에서 일반 인구에 비해 범죄자의 비율이 높지도 않다. 즉, 모든 조현병 환자가 잠재적 범죄자인 것이 아니라, 언론이 주목한 일부 범죄자가 조현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 뿐 이다. 범죄자는 조현병 환자이든 고혈압 환자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공무원이든 학생이든, 법이 정한 대로 처벌하고 격리시키면 된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일은 교도소가 할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병원은 교도소가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경기도의 모 국회위원은 본인 지역구에 정신병원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일개 의사가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신병원을 혐오시설로 보는 시각은, 정신질환자를 병원에서 범죄자처럼 관리하길 바라는 ‘행정에 의한 의료화’와 맞닿아 있다. 결국 그들에게 정신질환자는 범죄자이거나 혐오대상이다. 몇 번의 선거와 몇 번의 개혁이 더 걸리더라도, 우리 사회가 기필코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병폐임에 틀림없다. 정신질환자의 행정입원과 같은 ‘행정에 의한 의료화’는 많은 문제점을 지닌다. 의료 자원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며, 대상 환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야기한다. 행정 편의주의에 의한 인권 침해를 막고 의료가 본래 역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에 의한 의료화’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폐지와 더불어 정신건강복지법의 재개정을 위해, 병원의 역할과 정신질환자의 입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세한톡|의학도라면 북한 보건의료에 관심을… 2019-07-02 06:00:00
우리나라를 조금 벗어나서 대한민국을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요즘 정말 유명한 BTS와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르자면 바로 북한이 있을 것이다. 실제 문화체육부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외국인들이 '한국‘하면 북핵 문제와 정치-군사적 문제가 많이 떠오른다고 답변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단지 신문, 뉴스에서 가끔씩 다루는 주제 중 하나로 여길 수 있는 북한이지만 실제로 매우 중요한 이슈이고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올해 국방 예산만 해도 50조에 가까우며, 매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군복무도 북한과 관련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매년 천문한적인 돈과 인력이 소모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가운데 우리는 북한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예로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서 올 초 훗날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혹시 무엇인지 알겠는가? 여름에는 제 1차 정상회담 겨울에는 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있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한창 신문을 떠들었던 2차 북미정상회담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가 싶었던 분위기는 둘째날에 회담이 결렬되면서 푹 가라앉았다. 아마 많은 학생이 생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과대학/의전원 학생들도 함께 모여서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는 곳이 있다. 메드띵크(MedTHiNK, Medical Student Talking About Human Rights in North Korea)가 그것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인권국의 통일 보건의료인 메드띵크는 대북보건 의료지원, 북한이탈주민 보건의료, 남북의료통합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2012년에 시작돼 2016년 IFMSA(세계 의대생 협회)에서 공인 프로젝트로 인가를 받았으며 매년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통일 보건 의료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현재 북한과 통일의료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으며 온라인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매년 세미나를 개최해 북한 관련 전문가를 모셔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과 강연을 통해 심도 있는 북한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의과대학생들에게 대중적으로 북한을 알리고 있다. 나 역시도 메드띵크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북미 정상회담을 단지 지나가는 오늘의 소식정도로만 느꼈다. 하지만 메드띵크에서 조금씩 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북한에 대한 관심을 꼭 가져야함을 깨닫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의 의료문제와 우리는 별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소위 결핵왕국으로 불리는 만큼 북한도 결핵을 전담하는 의료체계가 따로 있을 정도로 결핵이 창궐한 나라이다. 이미 수많은 다제내성 결핵균이 병원에서 진단되는 우리나라보다 북한은 훨씬 더 심각하다. 만약 한국과 북한이 교류를 하게 된다면, 이러한 보건학적 문제는 꼭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반도가 분단되고 벌써 70년 가까이 지났다. 그 동안 서로 단절된 채 서로의 길을 가느라 많은 벽이 생겼고 북한을 더 이상 한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고, 또 통일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학도로서 앞으로 처할 문제에 준비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메드띵크는 조금씩 북한을 공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만들어내는 우리의 작은 발걸음이 북한을 향한 긍정적 변화의 시초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메드띵크는 바로 그러한 것을 위해 모인 학생들이다.
|신세한톡|전공의와 의료현실 2019-06-24 05:30:59
친한 지인들은 내가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정체를 털어놓지 않았다. 어쩌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거기서 뭐 해?”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대답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맡은 일이 별 일이 아니라 말하기에 민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질문을 한 친구에게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주요 활동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 길고 복잡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전공의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아직 어색한 관계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다음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이다.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한 노력 및 국민과 함께 하는 새로운 의사상 구현을 위한 노력 ▲의사 단체의 개혁과 의사 사회의 혁신을 선도 ▲회원 상호 간의 학술교류를 통한 전공의 자질 향상 ▲수련 내용의 표준화 및 내실화를 위한 전공의 수련 제도의 개선 ▲전공의에 대한 처우개선과 신분보장을 위한 노력 5가지 모두 모두 중요한 목적이지만 수련환경이 워낙 열악한 덕분에 아무래도 주된 활동은 전공의 특별법 제정, 전국 전공의 병원 평가, 수련환경평가 위원회 참석 등 아래 2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다. 전공의들은 적어도 한 번쯤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발송한 각종 설문 조사 문자를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여러 활동을 펼치고 시대가 변하면서 전공의의 현실이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불합리한 수련 환경과 문제투성이인 의료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전공의는 아직도 너무 부족해 보인다. 잘 시간도 부족한 전공의가 의료계의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전공의의 근로시간과 강도가 높은 것이 수련환경의 핵심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공의 수련환경은 저수가, 기능을 상실한 의료전달체계 등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대한민국 의료 환경을 바탕으로 한다. 그 한계는 점차 전공의의 안위, 더 나아가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이대 목동 사건, 성남 중앙 구속, 길병원 전공의 사망 사건, 세브란스 폭행 사건 등등 크고 작고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러한 사건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른 전공의에게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전공의 한 명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본인의 의료 환경을 둘러보는 것, 새삼스레 바라보는 것, 그리고 대한전공의협의회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본인이 놓여있는 의료 환경을 환기해보면 문제의식이 생긴다. 당장 주치의라면 자신이 맡은 환자 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전공의 1인당 환자 수는 의료전달체계와 입원전담전문의 문제로 이어진다. 혹시 폭언과 폭행,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면 대화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이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민원을 넣고 신고를 할 수 있다. 비윤리적인 의사와 이를 묵인하는 수련 환경이 훗날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이어져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트릴지 모른다. 의료계 문제는 대부분 서로 얽혀있는 경우가 많아 조금만 노력해서 찾다보면 곧 전반적인 문제의 핵심을 알 수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참여하는 것은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회비 납부, 설문 조사 응답,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선거 투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의견과 민원을 전달하는 것도 좋은 참여이다. 각오가 되어있는 전공의라면 대한전공의협의회 또는 각 병원의 전공의협의회에서 직접 활동하는 것도 권장할만하다. 특히, 대한전공의협의회의 많은 활동은 집행부가 직접 한다. 설문 조사 항목을 만드는 것, 이를 바탕으로 언론 보도, 학술대회 발표 자료를 만드는 것,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것, 각종 민원에 적절한 참고자료를 조회해서 답변을 보내는 것 모두 전공의인 집행부가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회칙 상 대한민국의사로서 수련 중인 모든 전공의로 구성된다. 즉, 대한민국 전공의는 모두 회원이다. 회원들의 크고 작은 관심과 노력이 수련환경, 나아가 전체 의료계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의대생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언어: 수화 2019-06-17 06:00:56
낯선 해외에서 우연히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있는가? 그 때 드는 이유모를 안도감, 친근감 등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청각을 잃어 세상과 소통이 끊긴 사람들을 '농인'이라고 한다. 듣지 못함과 더불어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대다수이며, 특히 선천적으로 청력이 소실된 경우에 그렇다. 선천적인 경우,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리를 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농인들이 병원을 찾을 때 가장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2019년 현재 전국에 의료수화통역사는 단 3명뿐이며, 그 외에는 내원 시에 환자가 직접 인근 지역 센터의 수화 통역자에게 연락 후 대동해야한다. 하지만 늦은 새벽 응급실에 가야하거나 지역 행사 등으로 연락 가능한 통역사가 없는 경우에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나는 예과 때 좋은 기회로 두 학기동안 '교양 수화'를 배운 적이 있었다. 처음은 가나다, 짧은 단어와 같은 기초 수화에서, 점점 문장형 수화를 배울 수 있었는데 꽤 다양한 수화를 구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강이 끝난 뒤 금세 수화를 잊어버릴까 아쉬워 농인 관련 봉사활동에 참여해보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자주 만나는 농인 분들에게 수화로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부족한 수화실력으로 아는 척 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몇 마디 시도했다가 대화가 안통하게 되면 괜히 더 씁쓸함만 안겨드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내가 마주쳤던 농인분들은 전부 활짝 웃으며, 혹은 반가워하며 적극적으로 반응을 해주셨다. 농인 체육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을 때에도, 더듬더듬 수화를 하는 나에게 맞추어 천천히 답해주시고, 교과서로 수화를 배운 내게 보다 실용적인 표현이 어떤 것인지 많이 가르쳐주시기도 하셨다. 한 마디로, 농인과 세상 사이에 소통 경로를 만들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듣지 못하는 농인에게 표음문자인 한글은 쉽지 않은 것이어서, 농인 환자가 내원했을 때 필담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자주 범하는 실수라고. 간단한 '안녕하세요', 혹은 '어디가 아프세요' 라는 수화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병원을 찾은 농인 환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다. 물론 몇 마디 배운다고 해서 주증상이나 병력청취를 심도 있게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의사가, 내가 쓰는 언어를 조금이라도 쓸 줄 안다'는 것은 실제로 농인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사소한 수화 몇 가지만 함께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안녕하세요'라는 수화에 대해 알아보자. 정말 간단하다. ①오른손으로 왼팔(팔꿈치에서 손목 정도)을 빠르게 쓸어내린다. ②양 손을 주먹쥐면서 아래로 살짝 내린다. 여기서 첫 번째 동작은 '잘', 두 번째 동작은 '있다' 라는 의미로, 합쳐서 '잘 있다'를 의미한다. 즉 '안녕하세요'의 어원을 생각해보면 일맥상통하는 의미이다. 농인이 아닌 사람들을 '청인'이라고 한다. 청인들이 대화할 때 어조에 따라 같은 말도 큰 차이를 내포하듯이, 농인들에게는 표정이 중요하다. 실제로 그들은 '화났었다'라는 말을 하며 표정을 마구 찌푸리기도,(잘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나에게 화내는 것으로 착각해 당황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슬펐다'라는 말을 하며 크게 울상을 짓기도 한다. 그만큼 표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농인에게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땐, 활짝 웃으며 위 수화를 해보자. 다음으로, '어디가 아프십니까?'에 대해 배워보자. '안녕하세요'를 '잘+있다'로 표현했다면, 이 수화는 '어디+아프다+입니까?' 라고 구성된 간단한 수화이다. ①어디: 오른손 검지만 펴서 좌우로 두 번 흔든다 (흡사 모 가수의 유명한 안무 '고민고민하지마'를 떠올리면 쉽다) ②아프다: 오른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해 약간 오므린 뒤, 좌우로 살살 흔든다. (여기서 포인트! 그림처럼 무표정으로 이 동작을 시행하면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아픈 듯 표정을 찡그리며, 손도 아픈 듯 '부들부들' 떨어주는 편이 농인에게 이해되기 쉽다) ③-입니까?: 오른 검지를 오른쪽 관자놀이에 댔다가, 모든 손가락을 펼치며 밖으로 내려 손바닥이 위로 간 자세를 취한다. 앞서 언급했듯 수화는 표정이 중요하기에, ②번에서는 아픈 표정을, ③번에서는 궁금한 표정을 적극적으로 지어주는 것이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 두 가지 수화에 대해 알아보니 어떤가. 우리말 구성과 아주 비슷하고, 동작도 간단하며 직관적인 편이어서 생각보다 배우기 어렵지가 않다. 이런 작은 노력만으로도 환자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다면 왜 하지 않겠는가. 다만, 수화 몇 마디 한다고 해서 완벽히 진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세한 병력 청취를 위해서는 결국 통역사가 있어야 할 것이며, 생각지도 못한 많은 장벽이 있을 것이다. 한 예로, 말하는 게 무엇인지, 소리 내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라 '아-소리를 내보세요' 라는 이비인후과 의사의 요청조차 농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작은 '관심'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나 하나만 해도, 마냥 복잡하고 어려워보였던 수화가 농인과 수화에 대해 알고 난 뒤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들을 보면 대화를 시도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 다양한 동영상 매체의 발전으로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서도 수화 관련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동영상을 보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지역 문화센터 등에 개설된 수화 강의를 신청해보자.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과 무궁무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 당장 이번 여름부터, 매력적인 수화라는 언어에 한 번 빠져보는 것은 어떤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2019-06-10 06:15:53
지난 5월 말, 경주에서는 올해로 35번째를 맞이하는 의학교육학술대회가 열렸다. 평소 의학교육에 관심이 있어 꾸준히 참석하던 중, 올해는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에서 한 세션을 맡아 진행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알고 보니 학회측에서 몇 해 전부터 이러한 제안을 계속 해주셨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번번이 고사하였다고 하는데, 매번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처음으로 준비를 해보기로 하였다. 사실 이번 학회의 화두는 새 평가인증기준인 ASK2019였다. 공교롭게도 대전협 세션이 ASK2019 세션과 같은 시간대에 배정을 받아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분이 참석하셨고, 특히 관련 기관을 이끌고 계신 여러 원로 선생님들께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관심을 보여주셨다. 올해 학회의 큰 주제는 ‘창의와 가치지향 교육’이었다. 이를 어떻게든 엮어보기 위해 고민을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인턴과 레지던트를 아우르는 졸업 후 교육(GME)에 대해 대전협이 가진 짧은 생각을 나누는 자리로 꾸며보았다. 전공의 교육과정을 살피다 보면 창의나 가치를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뜻에서였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부족함을 논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의학교육(BME)의 목표는 의료전달체계의 버팀목이 될 지역사회 내 일차진료의 양성이다. 평균적인 환자들에게 일반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사에까지 창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의사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잠잠해지나 싶으면 들려오는 의료계 내의 각종 사건 사고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의학적인 문제가 쟁점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은 이러한 가치의 가치, 이른바 ‘메타가치’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 의학교육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매우 반갑지만, BME에서의 교육이 그 이후, 특히 GME로 전혀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근 전공의들의 교육수련 현장에서 극히 드문 일부의 자칭 ‘교육자’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매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오고 있다. 대전협은 이유를 불문하고 어떠한 형태의 폭언이나 폭행에 대해서도 매우 강경한 태도지만, 이를 두고 또 다른 극히 드문 일부에서는 그나마 후배 교육에 관심이 있으니 그러는 것일 텐데 굳이 스승을 그렇게 망신주어야 하냐는 질책이 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비단 스승의 탈을 쓴 자들 뿐만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한 전공의가 간호사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였다가 적발되었다. 대전협은 해당 회원을 즉시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에 제소하였고, 스승들로 하여금 잘못된 우리 동료를 엄벌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아무 소식이 없다. 새롭게 들려온 폭행 소식에 대해 이번에는 각 지역의사회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는 전문가평가제에 의지해보고자 서울시의사회에 즉시 제보하였다. 과연 달라진 것이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이러한 ‘내부 상황’을 무분별하게 제보하지 말라는 요청도 있다. 부끄러움은 남아있다는 뜻일까. 기술로서의 의료 측면에서 우리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의학, 특히 교육의 측면에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유일한 의학교육 전문 학회인 의학교육학술대회는 지나치게 BME에 치중되어있고 BME-GME-CME의 연계에 관해서는 아직 부족함이 많아 이곳에서의 생산적인 논의가 실제 의료와 의학이 행해지는 현장으로 이어지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느낌을 매번 받곤 한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본다면 올바른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BME를 통해 바르게 익혀 GME 가운데 철저히 깨닫고 수련받도록 이어줄 역할이 아직 우리 젊은 의사들에게 남겨져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우리가 무가치함에 오랜 시간 익숙해진 나머지 메타가치의 소중함을 시나브로 잃고 막상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에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마저 사라짐을 우려할 뿐이다.
의료보험제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2019-06-03 06:00:01
벌써 대한민국에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된 지 40년이 흘렀다. 이 40년이란 기간 동안 건강보험제도는 도입 이래로 국민들의 보건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꾸준히 발전해왔음을 부인하는 의사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의료보험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 싼 가격에 양질의 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외국인들도 자국보다 한국에서 진료 받는 게 더 싸고 좋다면서 흔히들 말하는 의료 관광을 오는 외국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항상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고 했던가. 이렇게 마냥 좋아 보이기만 하는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는 현재 많은 문제들과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글을 통해서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가 걸어온 길과 그리고 현주소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20세기의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 1963년 12월, 대한민국은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위한 첫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이 때 당시 의료보험제도는 강제성을 띄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시행은 유보됐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고 사회의 인프라들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어쩌면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은 시기상조였으리라. 이렇게 유보된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은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서야 드디어 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1977년 7월,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했으며 1979년에는 건강보험의 적용범위를 300인 이상의 사업장 근로자들, 공무원들, 사립학교 교직원들까지 넓혀 보장성의 범위를 확대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전국의 농어촌 지역을 대상으로 농어촌 의료보험 실시 및 5인 이상의 사업장 근로자들로까지 적용범위를 확대함에 따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렇지만 의료보험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10년 남짓한 기간에 의료보험의 적용 대상을 이렇게 갑자기 넓힌 것은 결국 양날의 검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전 국민들이 비교적 싼 가격에 양질의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들도 야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21세기의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에서 후술하겠다. 21세기의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 대한민국의 의료보험제도는 본격적으로 시행된 후 건강보험 적용 대상 확대 및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의료보험의 적용 대상이 너무 짧은 기간 내에 확대됐다는 점과 저부담-저수가-저급여의 악순환이다. 1970년대 본격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할 때 정부는 의료보험제도에 강제성을 띄게 하면서 국민들의 부담을 우려해 외국에 비해서 수가가 비교적 낮게 책정됐다. 그럼에도 수가 정상화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의료관계자와 정부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화하면서 적정수가에 대해 논의한 후 반영했다면 비록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제도의 시행은 느려졌겠지만 지금과 같은 악순환이 생기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본과 독일만 보더라도 전 국민 의료보험 달성까지 각각 36년, 100년이 소요됐다) 반면, 정부는 고작 10년 남짓한 기간에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의 확대를 추진했고 이는 수가의 정상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10년이라는 기간은 의료기관과 정부가 수가의 정상화를 논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고 무엇보다 전 국민이 이미 낮은 수가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 수가 정상화를 위해 의료보험비를 올릴 시 예상되는 국민들의 반발로 인해 수가는 정상화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의료계는 비급여를 늘려 저수가에 따른 적자를 메우려고 했었다. 오죽하면 큰 병원들도 장례식장, 병실료 등으로 적자를 메운다는 얘기까지 나왔을까. 이런 상황에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하는 문재인 케어를 발표했다. 매년 60~65% 선을 유지하던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늘려 국민들의 본인부담율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다만, 비급여의 팽창이 야기된 근본적인 원인인 저수가는 해결하지 않고 비급여만 급여화 한다면 의료계 입장에서도 문제이지만 비급여를 급여화함에 따라 지출하게 될 돈도 문제다. 비급여의 과도한 팽창은 분명 해결돼야할 문제지만 대한민국이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의료비 지출이 점차 늘고 있는 상황에서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는 의료비 과다 지출을 야기해 보험 재정의 고갈을 더욱 부추길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지금 초점을 둬야할 부분은 비급여가 아니라 의료보험제도가 지속가능성이 떨어진 근본적인 원인과 지속가능한 의료보험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의료보험제도의 나아가야할 길과 의료계가 해야 할 일 결국 이 모든 상황이 야기된 이유는 저수가다. 또 미래에도 지속가능할 의료보험제도를 만들기 위해선 지금의 저수가 체계를 탈피하는 것이 반드시 밟아야할 절차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저수가 체계를 탈피하면서 이에 따라 단계적으로 비급여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 지금의 비정상적인 의료수익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의료 수가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의료보험비 인상이 필수적이지만 국민들은 당장 자기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 많아진다고 하면 반발이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도 자신의 '표'를 잃어가면서까지 나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하는 중요한 시기다. 현재 의료수가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해서 역설하며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고 그와 동시에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며 수가 정상화를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리고 정부와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어 지금 의료보험제도가 봉착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면 국민들과 의사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꼰대문화도 변할까? 2019-05-27 19:30:02
모 보험회사의 광고가 화재다. 배경은 회사 휴게실로 추정되는 곳. 중년의 선배 직원이 "라떼는 말이야"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말이야"라고 자문자답하며 아재 개그를 선보이더니 젊은 후배 직원이 1초 뒤 이해한 듯 웃음을 보인다. 이후로는 '취직은 했냐며 핀잔을 하려 하자 유튜버로서 일한다는 조카', '회사 밥이 집밥 보다 낫다며 시어머니가 연 냉장고를 닫는 며느리', '야식으로 뭘 시켜줄까 하는 팀장에게 '퇴근시켜주세요'라고 화면에 띄우는 사원'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후 '시대가 변했다. 보험도 변했다'라는 카피가 나오며 광고가 끝난다. 최근 시대상을 잘 반영한 만큼 시청자의 공감과 웃음을 끌어낸 점이 인상 깊다. 포털 사이트 용어사전에 '꼰대'를 검색해보면, 이는 학생들의 은어로써 '선생', '늙은이' 등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요즘 유행하는 '꼰대'는 훨씬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인다. 선후배나 나이로 강하게 서열 정리를 하는 사람, 본인의 업적에 심하게 취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 팀워크를 끌어올린다며 회식이나 야근 및 주말 출근을 압박하는 사람, 융통성 없이 자기주장만 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본인의 답을 강요하는 사람 등을 비꼴 때 쓰는 단어이다. "나도 고생했는데 너희들도 해야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다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는 변명이 들리지만, 젊은 층의 공감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꼰대 문화는 전염성이 있는 것 같다. 인사를 안 했다며 후배들을 집합시켜 혼낸다거나, 테이블 수저 준비가 안 되었다며 꾸짖거나, 스스로 해야 할 잡일을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등 '젊은 꼰대'의 위세도 만만치 않다. 역시나 이는 윗사람에겐 향하지 않고 언제나 아래로만 향하며, 누구라도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꼰대의 평범성'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만연하다. 꼰대 문화는 사회생활을 하며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단체 생활을 하며 필요한 단합, 협력과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사적 영역까지 간섭하는 언행은 선한 권유나 조언조차 꼰대 행동으로 평가될 만하다.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계는 그 특성만큼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문화를 보이며, 우리나라의 인재들이 모이는 만큼 자기애적이고 강박적인 특성이 나타나는 곳이다. 물론 이런 특성 덕분에 든든하게 치료를 받지만, 한편으론 꼰대 문화의 번식에 알맞은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주 평균 80시간 근무 등을 다루는 소위 ‘전공의법’을 향한 수많은 불만과 회유는 그 위력을 가늠케 하며, 전공의들이 호소하는 꼰대 행동은 다 열거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전공의가 꼰대 문화의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전공의인 필자 또한 과거의 행적을 돌아보면 부끄럽다. 업무 중 발생하는 수많은 사무적 잡일은 저년차 또는 학생의 몫이며, 고년차의 빨래나 프린터 수리, 여행 전 환전 등의 개인적인 잡일까지 시키는 모습도 비일비재하다.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환자-의사 관계와 치료 과정에 있어서 강압적이고 고집스러운 꼰대 문화가 스며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환자나 보호자, 타 직종에 내는 짜증이 단순히 피곤함 때문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치고 고단한 환경 속에서 전공의는 의료계의 잘못된 행동과 사고방식을 비판 없이 따르는 영혼 없는 의사가 되어가고 있다. '전공의법'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로 우리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전공의법’이 개선되고 정착될수록 조금은 심리적 여유가 생길 것이며 환자 건강에서도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변화가 보일 것이다. '전공의법'이 외적 변화를 끌어낼수록 내적인 부분도 발맞추어 변해야 할 것이다. 귀찮게 여겨지는 사무적인 일부터 기록과 처방, 의학적 처치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고된 수련환경 속의 한 톱니바퀴로 무기력하게 '꼰대 문화'에 끌려가는 게 아닌, '꼰대 문화'를 행하는 우리의 능동성이 보이기 시작한 점은 '전공의법'의 또 다른 긍정적이면서도 아픈 영향이 될 것이다.
|신세한톡|혈관 속 인공위성을 상상하다 2019-05-22 10:25:59
인류의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후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수천 개의 위성들은 지구 주위를 돌며 구름, 바다, 땅, 얼음으로부터 방대한 양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했고, 우리는 이 정보를 토대로 기상을 예측하고, 토양의 수분, 수증기, 강수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됐다. 기상학은 '허리가 쑤시니 비가 올 것이다' 수준의 경험적 지혜에서 수증기와 기압의 데이터 과학이 됐고, 농업은 '씨앗을 심고 쟁기로 땅을 가는' 행위를 넘어서 토양의 수분과 기온의 데이터 과학이 됐다. 이 모든 것은 지구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인공위성이 있기에 가능했다. 결국 인공위성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지식과 통찰을 얻게 해주었다. 인체는 지구 못지않게 많은 데이터들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보들은 대부분 기록되지 못한 채 시간 속으로 흩어진다. 현재 병원에서 소변 검사, 혈액 검사, CT, MRI 등등 많은 검사가 이루어지지만, 이 검사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데이터를 연속적으로 측정하지 못한다. 최근 웨어러블 기기 등을 이용해 몸의 연속적인 데이터를 모으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에서 출시한 애플워치4는 사용자의 심전도(ecg)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으며, 세계 곳곳의 기관에서 혈관 내의 포도당 수치를 채혈침을 쓰지 않고 측정하는 연속적 혈당 모니터링(continuous glucose monitoring)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은 데이터의 바다이다. 그 바다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건져 올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이다. 만약 혈당 이외에 혈압, 콜레스테롤 수준, 호르몬, 작은 단백질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다면, 의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하루 중 도파민, 세로토닌의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면, 우울증을 더 정확히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암세포 바이오 마커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항암제가 잘 듣는지 여부를 더 빠르게 알게 되고 다른 항암제를 처방해 더 많은 암 환자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실시간 측정 장비를 소형화 해 하나로 묶어 혈관 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면 초소형 실시간 검사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반 상대성 이론이 그 자체만으로는 기상예측을 할 수 없듯이, 이러한 것들은 분자생물학의 지식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반드시 공학적인 응용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실시간 바이오센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항원-항체 반응 혹은 리간드-수용체 반응이 가역적으로 일어나고, 이 결합 유/무의 정보가 어딘가 저장되고, 이 정보는 실시간 몸 밖으로 전송돼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들이 엔지니어링이 요구되는 부분들이다. 엔지니어들의 손으로 인공위성과 같은 '센서'가 만들어짐으로써, 비로소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걸어 다니는 데이터다. 하지만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으는 능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분자생물학과 반도체 공학이 만나 이러한 체내의 단백질들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바이오센서들이 개발되기 시작하면 새로운 의학적 발견과 치료법이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의사의 인식 한계 속에서 행해지던 기존의 의료는 다른 인식의 높이를 가진 데이터 과학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실시간 바이오센서'가 가져올 파급력이다. SF 소설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신세한톡|의사, 감당하기 힘든 존재의 무거움 2019-05-15 10:26:45
1. "보호자분, 아드님이시라고 했죠? 잠시만 이쪽으로…" "네…" '난로 불이 옮겨 붙어 발생한 심재성 2도 화상으로 인한 합병증 우려로 귀원으로 전원 - 심근경색 고혈압 당뇨병 알코올성 간질환 및 치매 병력'이 적힌 전원의뢰서만으로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 의사M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호자와 나란히 벽에 기댔다. 아무리 치매라한들 아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듯한 환자와 그런 환자에게 대신 물어봐주거나 그렇다고 환자에 대해 제대로 답해주지도 않으려는 슬프기보다는 당황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으로 상황을 회피하려는 듯한 보호자. 억지로 어두운 세월을 밝게 물들여보려 애써본 듯한 아들의 노란머리는 관리한 지 몇 달은 된 듯한 파마처럼 흐릿했다. 눈가의 주름까지 검게 그을린 얼굴과 험한 세월이 짐작되는 투박한 손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애써 차려입은 재킷은 이런 모든 어색함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어 그가 아들이라는 사실조차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2. 설 연휴에 봐야 할 환자는 잔뜩 밀려있지만, 지금 눈 앞에 흩뿌려져있는 파편들을 맞춰가야만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다. 왜 이렇게 다친 사람이, 다른 병원을 거쳐 굳이 이 응급실까지 오게 된 걸까. 사람과 병을 다루는 과학자, 의사들은 이럴 때 하릴없이 을이 되고 만다. 온통 뒤죽박죽인 상황에 짜증을 숨기지 못한 채 조금은 다그치는 듯한 말투로 병력을 묻던 의사M은 그래도 다행히 무모하게 파편을 즈려밟고 나아가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씩 톺아보기를 택한 듯 숨을 고르고 나란히 벽에 기대 선 채 보호자의 손을 마주잡고 오른눈을 마주친 채 천천히 말을 건넸다. "솔직히 뭔가 상황이 좀 이상해서 여쭤보는 거긴 해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어서… 그런데, 제가 제대로 알아야 잘 도와드릴 수 있거든요. 다 괜찮으니까, 저에게 편하게 천천히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3. 따스한 보금자리는커녕 인생의 그늘이었을 뿐이었던 집을 박차고 나온 지 20여 년. 그 세월을 오롯이 혼자 아등바등 이겨내고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 가족과 따스한 보금자리를 일궈내어 이제는 이전의 명절보다 조금은 덜 외롭게 지내고 있던 어느 설날 갑자기 처절히 망가져 그의 인생에 나타난 잊고 지낸 아버지라는 '저 사람'. 아마 그를 집 밖으로 내몰아낸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그 놈의 술은 등진 세월동안 이미 '저 사람'을 처절히 망가뜨려 정작 지금은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수 개월 전 어지럽다고 해 데려간 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 진단에 이은 심혈관스텐트 시술에 알코올성 치매라는 이름의 위축된 대뇌와 정상일리 없는 간기능, 거기에 수 년간 방치되었을 당뇨병과 그 외의 합병증까지 확인한 오랜 중환자실 치료 끝에 일단 살려는 놓은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한 친척 아무개는 이후 몇개월간 시 외곽 비닐하우스에서 아마도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등유난로를 잘못 다뤄 발생한 화재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은 '저 사람'을 이제는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었는지, 며칠만에 기어코 그를 찾아내, 아들이라는 책임을 지우는 잔인한 인수인계를 해내고 말았던 것이다. 화재현장에서 멀지 않은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만, 온갖 병에 성치 않은 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으니 큰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소견서를 들고, 보호자가 된 지 고작 24시간도 채 되지 못해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당도하게 된 그는, 한참을 그저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던 의사M의 침묵을 깨려는 듯 이윽고 되물었다. "저, 선생님. 저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죠?" 4. 처치가 마무리된 후, 두 사람의 거주지와 동선을 고려하고, 연휴기간임에도 지속적으로 외래로 방문할 수 있어 비용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 할 수 있는 곳을 운 좋게 수소문한 의사 M.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했을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이번에도 기어코 선을 넘고 말았다. "저기, 보호자분" "네" "제가 뭐라고 함부로 말씀을 드릴 수는 없겠죠. 그래도 저에게 말씀을 해 주셨기에 저는 지금 아드님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네" "주제넘을 수 있는데,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어요. 본인은 잘못 없어요." "…" "그냥 상황이 이렇게 된 거 뿐이에요. 뭘 어떻게 해야할지 저라도 잘 모를 거 같아요. 그 누구도 몰라요. 어쨌든 아드님은, 아무런 잘못 없어요." 어깨를 토닥이는 의사의 팔에 매달리듯 두 다리를 겨우 버텨낸 채, 20여년의 원망과 회한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그의 울음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5.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어요", "아이 키우다 보면 이런 일 있을 수 있어요", "이렇게 해서 확인되는 경우도 있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가구에 부딪쳐 부러져버린 아이의 발가락도, 보글보글 궁금한 커피포트를 엎어 크게 데인 물집도, 울면서 데굴데굴 구르게 하는 요로결석도, 그리고 이미 늦어져버리게 퍼져버린 악성종양까지도, 차라리 나의 아픔이었으면 하는 애달픈 사랑에 가슴을 부여잡고 울음을 참고 있는 가족. 그들이 가장 위로가 필요한 대상이라고 생각해 보호자에게 종종 느닷없이 불쑥 용서와 위로를 감히 건네곤 했던 의사M은, 이후로 더 신중해졌다고 한다. 진심을 담은 위로란 결코 쉽거나 가볍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신세한톡|우리는 모두 정치적이다 2019-05-07 06:00:40
올해 초, 연구를 위해 병원청소노동자 근로 실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면접을 진행하던 중 인권실태와 관련해 여러 번 듣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우리도 같은 사람이에요.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 주세요."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 환자, 보호자를 포함한 병원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러한 말은 소위 인간으로서 당당히 누려야할 권리,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힐 때 외치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인권이란 무엇일까? 인권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것 역시 의미 있지만, 현실에서 인권이란 말이 어디서 사용되고 적용되는지를 보면 그것을 유추할 수 있다. 바꿔 말해 인권의 범위를 볼 때 인권의 정의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범위는 적용되는 대상과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돌아가면 군주제를 타파하고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나설 때 인간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중산층 이상의 내국인 남성에게만 적용했으며, 적용되는 정도 역시 지금 정립되고 있는 건강권, 이동권, 재생산권 등의 개념들을 그 당시에 대입해보면 인권선언문은 심히 부족할 것이다. 아직 인권의 정의는 모르겠지만 인권의 범위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할 수 있다. 그러면 범위가 확장되기 전에는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존재가 인간으로 인정되고,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지만 침해 받았던 권리가 이제는 권리로 인정받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을 넘어서 비인간동물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기득권이 아니었던 모든 계층의 존재들은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역사적으로 셀 수 없이 피와 땀을 흘리며 투쟁해왔다. 이러한 투쟁 끝에 바꿔낸 사회가 그들을 인간이도록 만들었다. 즉 인권이란 사회가 만들고 규정하는 것이다. 지금은 오염되고 폄훼하는 용어로 돼버렸지만 이렇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정치적'인 사람이라 칭한다.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거나, 현재 국회에서 몸싸움과, 혐오 발언만 해대는 정치인들을 칭하는 속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사회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걸고 열심히 싸우는 사람 말이다. 그럼 여기서 의사는 어떤 위치에 있고, 있어야 할까. 내 주변의 의대생은 "난 정치는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주변의 의사는 단지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라고 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자신이 다 사회를 아는 듯 현 정부에 대해 입으로 비판만 한다. 이 사람들은 비정치적인 것일까? 아직 현재 법 제도에서 배제되고, 인권이 침해되는 존재들은 수없이 많다. 여성들은 드디어 재생산권을 인정받는 과정의 한 걸음을 디뎠고, 장애인의 이동권과 자립할 권리는 아직도 취약하며,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은 아직 죽지 않고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또한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지만 현재 국가는 의료산업 부흥을 위해 검증 받지 않는 의료기술을 도입하려 애쓰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일부의 존재에게 부족한 권리를 부여하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기득권들만의 위한 사회존속을 위해 애쓰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그것도 결국 정치적인 선택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치적이기에 우리의 말과 행동이 사회가 변화하는데 영향을 끼친다. 그 방향이 어떠냐에 따라 사회는 더 진보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고, 인권의 범위가 넓어질 수도 좁아질 수도 있다. 아무도 인권의 범위를 좀 좁힐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보이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만의 이익,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보는 편협한 인간일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줄 순 없다.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의 시작, 더 나아가 인권 향상의 시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