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의 살림꾼, 액팅 치프 2019-02-20 10:47:16
원내의 살림꾼, 액팅 치프 레지던트는 연차로 구별하기도 하지만 저연차는 주치의, 고연차는 치프(chief)로 구분하기도 한다. 영어로는 '치프 레지던트', 우리말로 '수석 전공의'는 레지던트 중 경력이 가장 높은 의사를 칭한다. 이런 수련제도는 역사도 제법 깊다. 1892년 존스 홉킨스 병원의 외과 과장을 역임했던 윌리엄 홀스테드 박사가 이 수련체계를 확립시켰다. 당시 수련의들의 연차가 올라가면서 더 많은 책임을 지고 고연차가 될수록 수가 적어지는 경쟁적인 외과의사 체계를 만들어서 치프 레지던트는 그해 한 명만 맡았다고 한다. 현재는 4년차를 '치프 레지던트'라 부르고 3년차는 '바이스 치프(Vice chief)'라 칭한다. 의과대학 실습 중에 만났던 4년차 치프 선생님들은 모르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언제 저렇게 치프가 되나 싶었다. 그만큼 3년의 수련 기간 동안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는 영예로운 자격이다. 그래서 '수석 전공의'라는 직책에서 오는 무게감은 묵직했다. 저연차 때는 정해진 일정만 소화하기도 바쁜 날들이지만 고연차 치프가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처방이나 기록 업무에서 해방되고 수술이나 진료에 집중할 수 있다. 수술실에서도 첫 번째 어시스턴트로 집도의 교수님과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때로는 집도의 자리에 서기도 한다. 그만큼 치프의 의견은 의국 내에서 존중받는다. 한마디로 레지던트들의 대표자다. 하지만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레지던트 사이의 업무를 조율하고 후배 레지던트 교육에도 책임이 있다. 4년차 수련 때는 4년차 레지던트가 4명이었다. 그래서 모두 '치프'라고 불렸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격인 치프를 '메인 치프(main chief)'또는 '액팅 치프(acting chief)'로 뽑아서 번갈아가면서 수행했다. '액팅 치프'가 역사적인 초창기 치프에 해당한다고 봐야 하는데 의국의 살림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반 회사들도 그렇지만 종합병원 의국 역시 각종 행사가 많다. 학술대회, 원내 교육일정, 회식, 인턴이나 의과대생 관리 등. 의국 행사 때마다 액팅 치프가 나서서 조율한다. 회식 장소를 섭외하거나 지방 학술대회 시 묵을 숙소를 정하고 원서를 구입하거나 회식할 때 필요한 비용을 관리한다. 권한이 많아지는 만큼 귀찮은 일도 많지만 의국을 이끌어나가는 데 업무만큼이나 살림살이가 중요하다. 4년차 막바지에 이르러 액팅 치프가 되었다. 서는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액팅 치프가 힘든 건 삐뚤어지기 쉬운 1년차들을 다독이면서 레지던트들을 이끌어나가는 일이다. 1년차가 삐뚤어지면 그 선생이 맡은 일만 구멍나는 것이 아니라 연쇄작용처럼 모두가 힘들어진다. 수술실에서는 칼같이 업무가 구분되지 않 아서 일손이 필요하면 1년차는 부림을 당했기에 늘 불만이 많아 삐뚤어지기 쉽다. 같은 고연차끼리는 아무리 액팅 치프여도 일방적으로 내 지시에 따르게 할 수는 없다. 의국 운영과 업무에 대한 생각이 각자 다르니 이를 잘 따르게 하는 것도 고역이다. "아랫 연차는 빡세게 굴려야 일이 잘 돌아간다"고 얘기하며 자고로 아랫 사람은 윗사람을 편하게 잘 모셔야 된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레지던트들도 있다. 반대로 지금 사회 에서 연차 구분은 업무 구분이지 1년차나 4년차나 모두 평등하게 자기 맡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레지던트들도 있다. 생각이 다른 만큼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1년 내내 의국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일이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가장 큰 책임을 진 윗사람이 가장 늦게 보고받는 풍토 때문이다. 종합병원도 마찬가지여서 1년차가 문제를 확인하면, 2년차에게 알리고 그러면 2년차가 3년차와 상의하고 마지막에 치프가 보고 받는다. 보고받은 치프는 상황에 따라 교수님께 보고하는데 간혹 결정을 늦추면 이미 제 때 해결하기엔 시간이 지나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야! 그런 것까지 나한테 직접 보고하냐? 너는 보고체계도 없어? 나한테 이런 소리하기 전에 밑에서 좀 알아서 해결하란 말이야!" 이런 짜증을 한 번 듣고 나면 보고하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진다. 해결되어야 할 일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는 이유도 그렇다. 그래서 하찮은 일일지라도 아랫 연차와 윗연차의 딱딱한 소통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 바뀌지 않는 원내 문화 동기들과 고연차가 되면 바꾸고자 했던 노력은 이런 부분이 많았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늦게 변화하는 곳은 학교와 군대, 병원이라고 얘기한다. 변화를 빨리 수용하다가는 교육, 국방 그리고 의료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검토시간을 갖고 늦게 변화한다. 그래서 병원 역시 상명하복의 철저한 위계질서가 지금까지 내려온다. 드라마 '하얀거탑'은 이런 병원 문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장된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때로 더 심한 일들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2014년 11월에 한국의료정책 연구소에서 나온 '전공의 근무 환경 및 건 강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수련 중 신체적 폭행을 당한 경험은 22.0%로서, 폭행을 행한 대상으로는 환자가 36.9%로 가장 많았고 상급전공의 28.4%, 교수가 21.9%로 뒤를 이었다. 저연차 시절, 나 역시 맞으면서 수련했다. 의사들이 맞으면서 성장한다는 현실은 이름 모를 변방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대형종합병원에도 버젓이 일어난다. 폭행을 경험하니 병원에서는 세계 일류 의료 수준이라고 하면서 선진국 병원들과 비교하지만 병원 문화는 그보다 뒤떨어진 것이 우습고 위선적이라 생각했다. 선진국 수준의 의료 수준을 뽐내고 싶으면 그만큼의 병원 내 의료 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살림꾼으로 일했던 액팅 치프 기간 동안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아랫 연차가 잘못하면 내가 잘못 관리하고 지도해서 그런 것 같았다. 한 친구가 더 이상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연락을 두절한 채 도망간 적이 있었다. 도망간 1년차 선생을 찾는다고 레지던트들이 경의실, 주차장, 치료실 등 숨을 만한 곳을 다 뒤지며 다녔었다. 좋은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는 기회였다. 나 역시 고연차가 되니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저연차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란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그 친구는 돌아왔고 무사히 수련을 하고 있다. 내가 치프일 적 아랫 연차 선생들이 수련을 마치고 졸업하면 내가 훌륭한 치프였는지 나쁜 치프였는지 진솔한 평가를 듣고 싶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여름마다 시작하는 카데바 실습 2019-02-07 09:51:23
여름 카데바 성형외과에 대한 첫 인상은 카데바 실습 때 만들어진다. 카데바는 해부 실습을 의미한다. 시체나 사체란 표현은 아직까지 거부감이 있어 시신 기증 혹은 시신 해부라고 일컫는다. 정서상 용어가 주는 께름칙함을 털어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카데바 실습이라 부르는 것이 해부하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하다. 의과대학 시절에도 '의사가 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는 유일한 수업이 해부학 수업이었다. 그런데 의사가 되어 마주하는 카데바 실습은 마음가짐이 다르다. 모든 의대생이 한 번은 거치는 이 실습은 말 그대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실습의 대상이 된다. 피부, 근육, 혈관, 신경 뿐 아니라 심장, 폐, 소장, 대장, 콩팥 등을 모두 해부한다. 기간도 서너 달이 걸릴 뿐더러 술기도 부족하여 오래 걸린다. 수술장에서 쓰는 메스는 매우 날카롭다. 스윽 하고 피부를 한 번만 지나가도 두부가 잘리듯 피부가 갈라진다. 그래서 학생 때는 수술용 메스를 쓰지 못하고 실습용 메스를 갈아서 썼다. 다칠 위험도 있고 너무 날카로우면 관찰해야 할 해부학적 구조를 절단해버리는 상황이 생겨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수술용 메스는 환자 한 명에게 쓰이기 때문에 일회용이지만 실습용 메스는 1회용이 아니다. 그래서 포르말린에 부패 방지 처리가 된 단단한 카데바로 실습하다 보면 칼날이 무뎌져 숫돌에 갈아 썼던 추억도 있다. 전공의의 카데바 성형외과 전공의로서 카데바를 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전공에 기초한 항목들로 실습이 이루어졌다. 동일하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실습이 이루어지지만 피부와 근육에 보다 집중된다. 예를 들어, 심장, 폐, 간 등 내부 장기는 성형외과의 영역으로 보기 힘들다. 예전에는 장기 이식의 미세혈관 문합술 역시 성형외과 의사가 다루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주로 근육과 피부, 그리고 얼굴 전체가 주요 대상이다. 피판술이 주요 무기인 종합병원 성형외과이기 때문에 단순히 해부학적 구조를 찾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술기를 미리 연습하는 중요한 훈련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 여러 의료센터에서는 성형외과나 신경외과, 정형외과 서젼을 위한 카데바 심화 실습 세미나도 매해 개최된다. 대표적인 세미나로는 안면이식을 하기 위한 술기를 연습하는 세미나가 있다. 그만큼 고난도의 기술과 인내심이 필요한 만큼 카데바를 대상으로 미리 연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떼어내서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얼마나 어려울까. 이제는 수술을 전공하는 서젼이기 때문에 날카로운 메스를 쓸 수 있다. 도구가 날카롭고 섬세할수록 카데바 실습은 매우 편하다. 근무가 끝난 후의 실습이라 고통스러웠는데, 도구마저 잘 들지 않았더라면 더 지옥을 경험할 뻔했다. 종합병원, 특히 대형병원에서 짬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모든 전공의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주말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응급실 당직은 병원에 상주해야 하기에 언제나 한 명씩 결원은 생긴다. 그래서 카데바 실습은 평일 저녁 9시는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 또한 카데바 실습을 매주 항목마다 마치고 발표하는 시간은 토요일밖에 없다. 토요일 오전에 그 주의 해당 카데바 실습을 마치고 나면 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지나간다. 건물 지하 2층에 있는 카데바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죽음을 금기시하는 문화에서 해부 실습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밤에 카데바실을 지나갈 때면 처음에는 서늘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반복은 사람의 감각을 무뎌지게 하지 않던가. 나중에는 홀로 새벽 4시까지 카데바와 함께 있어도 아무렇지 않아진다. 표현하기 힘든 포르말린 냄새가 몸에 배기 시작하고 실습이 끝나면 온몸을 구석구석 문지르며 그 냄새가 빠지길 바랐다. 해부 자체는 학생 때 마친 것이라 어렵지 않다. 단,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구조를 관찰하고 해부하는 게 혼자하기에는 힘이 든다. 저연차 때는 홀로 실습하는 것이 서러워 4년차가 되면 절대 후배들을 홀로 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배들이 퇴근하면서 "오늘 안으로 여기 적혀있는 구조들 다 찾아놓고 표시해놔"하고 가버리면 막막했다. 간혹 도와주는 선배가 있으면 너무 고마웠다. 4년차가 되어서는 내가 퇴근하지 않으면 후임들이 아무도 못 가니 밤 12시까지 모두 함께했다. 카데바라 해도 한때 살아있던 이의 얼굴이다. 그래서 다른 팔 다리나 몸통을 해부하는 것에 비해 느낌이 좋지는 않다. 특히 성형외과처럼 쌍꺼풀이나 코 등 주요 수술 대상이 얼굴에 있는 경우 카데바의 눈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감수하고 쌍커풀에 붙어 있는 여러 근육들을 박리하고 어디까지 안전하고 어디부터 조심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책과 사진에서 보고 외워도 3차원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실제로 만져봐야 가능하다. 그리고 수술 어시스트를 할 때와 달리 자신이 직접 박리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모든 수술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는 집도의의 위치이다. 집도의의 위치에서 카데바를 통해 언젠가는 마주쳐야 하는 수술을 미리 연습한다. 그것이 성형외과 전공의가 되어 하는 카데바 실습이고 학생 때와 다른 점이다. 덕분에 일반적인 해부학 교과서에서 보기 힘든 구조들까지 다룬다. 과연 이런 것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일까란 의구심이 들지만 전문가를 구분 짓는 경계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수술의 모든 기초는 해부학으로부터 세워진다. 의학의 기초가 해부학에서 유래되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약초를 써서 치료하는 주술적인 단계의 의학과 현대 의학을 구분 짓는 경계가 해부학이기 때문이다. 해부학을 정통하지 않고는 수술 또한 겉핥기에 불과하다. 술기 자체는 반복적으로 습득하면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지만 깊은 이해와 사고, 변이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전문적인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전공을 정하고 10년 20년이 지난 종합병원 교수님들도 카데바 실습 을 통해 기초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쌍커풀 수술이지만 수술을 안전하고 빠르게 할 수 있기까지 많은 훈련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100미터 육상 선수가 10초 이하의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할까. 마찬가지로 수술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름마다 시작하는 카데바 실습. 카데바실의 포르말린 냄새처럼 여름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없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독감약 타미플루에 항체 섞는다?…만능 독감백신 예고 2019-01-30 05:30:53
|메디칼타임즈 원종혁 기자| 변종 독감 바이러스의 활동을 원천봉쇄하는 '만능 독감 백신'이 시험대에 올랐다. 매년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 돌연변이 관리에 애를 먹는 가운데, 기존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오셀타미비르)에 신규 항체 약물을 섞는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항체 접합 독감 백신이 인플루엔자 A형 및 B형 모두를 커버하는 동시에 체내 면역반응을 끌어올린다는데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독감 백신에 저항성을 가지는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놓고 이른바 만능 독감 백신 관련 연구들이 속도를 내고 있다. 작년말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에 항체 접합 약물이 전임상 결과를 보고한데 이어, 국립보건원(NIH) 산하 알레르기감염질환국립연구소(NIAID)의 최신 성과도 이러한 차세대 독감 백신의 진입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기존 독감 치료제인 로슈 타미플루에 독감 항체 물질을 적용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국제 학술지 '실험의학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 최근호에 발표된 이번 결과는, 일단 마우스 모델에서 독감 바이러스 표면 단백질인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을 표적으로 하는 항체 물질을 평가했다. 현행 독감 치료제의 경우, 헤마글루티닌의 머리(head) 부위를 인식하고 정상 세포 내로 바이러스를 이동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차단하는 작용을 한다. 여기서 문제는 감염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면서 독감약의 치료 작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연구자들은 헤마글루티닌의 줄기(stem) 영역을 표적으로 하는 항체를 새롭게 적용했다. 이 항체는 바이러스 돌연변이에 훨씬 저항력이 강한 것으로 전했다. 결과를 보면, 타미플루에 항체를 섞었을 때 바이러스 외피 막에 있는 당단백질 효소인 뉴라미니다아제(neuraminidase)를 억제함으로써 중증 바이러스 감염에도 생존 가능성을 높였다. 연구팀은 "차세대 독감 백신의 개발 분야에는 헤마글루티닌의 줄기를 표적하는 항체 개발이 오랜기간 이어져 왔다"며 "추후 이러한 작용기전에 충분한 이해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설명했다. 타미플루 항체 접합 "바이러스 복제 차단 시너지"…얀센 등 항체 물질 전임상 완료 현재 진행 중인 연구들에서는 해당 항체가 헤마글루티닌 이외에도 뉴라미니다아제까지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라미니다아제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복제를 증폭시키는 것과도 관련이 깊어, 이번 항체 백신 연구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다. 의료계 관계자는 "타미플루에 해당 항체를 추가했을때, 독감에 노출된 면역세포들의 활성화가 촉진됐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후기임상에 진입한 만능 독감 백신 사례도 있다. 올해 초 2b상 임상 결과가 발표된 'FLU-v'는, 증상 개선과 면역반응 모두가 증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백신은 3상임상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이외 다국적제약사인 얀센은 다국가 연구기관들과 협업해 만능 독감백신과 관련한 전임상을 끝마쳤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와 얀센은 작년 11월, 독감 백신에 새로운 항체를 접합시킨 후보물질 개발에 성공적인 결과를 보였다. 해당 항체는 인플루엔자 A형과 B형 모두에서 개선효과를 보였다. 사이언스 11월호에 게재된 결과는, 만능 독감 항체로 나노항체 유전자 네 개를 이어 붙여 아데노바이러스 관련 바이러스(AAV)를 게놈에 넣는 방식이다.
4년차 레지던트 자리 비운 수술실 보릿고개 2019-01-15 12:00:10
3~4년차 치프-보릿고개 연말이면 병원에 보릿고개가 찾아온다. 최고참인 레지던트 4년차들이 전문의 국가고시 준비를 위해 잠시 현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데 최고참들이 빠지면 타격이 크다. 더군다나 외과계열은 4년차들이 수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높아 연말 수술실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성형외과의 경우 겨울 방학기간에 환자들이 많이 몰리고 수술 건수도 증가하기 때문에 연말 연초는 고통스러운 보릿고개가 시작된다. 보릿고개는 농가에서 가을 작물을 모두 소비하고 보리가 여물기 전 인 5월과 6월의 식량사정이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하고 있었는데 연말에 갑자기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인원수 로 따지면 인력 중 25퍼센트만 빠지는 것이지만 수술실 상황은 손실이 무척 크게 느껴진다. 물론 보릿고개는 1년차가 2년차로, 2년차가 3년차로, 3년차가 4년차 로 성장하는 데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4년의 수련이 끝나고 전문의 시험을 통과한다고 해서 짠하고 전문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가는 것처럼 연차별로 성장하면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다. 1년차 때 배워야 하는 술기가 있고 4년차가 되면 그에 걸맞은 술기, 수술실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는 것이다. 간혹 환자에게 수술을 설명할 때면 이런 질문을 듣곤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교수님이 직접 다 하시는 건가요?" 최근 대리 수술이나 비의료인이 수술을 집도하는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불거지면서 이런 의심이 생겼다. 심지어 강남의 성형외과 개원가에서는 수술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CCTV를 통해 보호자가 지켜볼 수도 있다는 마케팅도 한다.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도 안타깝고 같은 질문을 하는 환자나 보호자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질문 자체는 수술이 진행되는 과정을 한 번이라도 지켜본다면 그릇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수술을 집도의 혼자서 하는 것은 힘들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술도 힘들어진다. 당연히 수술 결과도 좋지 않다. 수술 어시스턴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종합병원에서 수행하는 많은 종류의 고난도 수술은 더욱 그러하다. 수술은 대개 2명에서 최대 5명까지 팀으로 이뤄진다. 그 팀원으로 레지던트가 참여하면서 수술을 배우고 직접 해보면서 성장한다. 수술은 다른 의학 분야와 달리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책 내용을 아무리 읽어본다 해도 눈앞에서 4차원으로 진행되는 수술을 금방 따라할 수는 없다. 1년차 때는 간단한 피부 봉합에서 시작하여 피부 이식술을 배운다. 해가 지날수록 근육을 박리하고 봉합하고 골절된 뼈를 수복하는 등의 복잡한 술기를 직접 수행한다. 4년차를 마칠 때면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맡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그리고 국가고시를 통과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면 어엿한 전문의가 탄생한다. 물론 이후로도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보다 원숙한 단계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종합병원의 이런 생리에 불편함을 표하는 환자들을 본다. 많은 형태의 종합병원, 특히 교육을 책임지는 수련병원은 미래 의사들을 양성한다. 양성에 있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술기는 전통적인 교육 방법이자, 전 세계적으로 널리 수용되는 교육법이다. 그것은 때로 환자의 병상 옆에서 교수님과 레지던트가 나누는 토의로 나타나기도 하고, 응급실에서 위태로운 환자의 흉부를 번갈아 압박하면서 전해지기도 하며 수술실에서 교수님이 레지던트에게 메스를 넘기면서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가장 두드러지게 일어나는 시간이 보릿고개의 순간이다. 4년차 선배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3년차는 빠르게 성장한다. 그렇게 신분 상승과 함께 처음 해보는 술기 앞에서 짜릿한 순간들을 맛본다. 어시스턴트 역시 서는 위치에 따라 수술대 위의 풍경이 달라진다. 저연차 때는 수술대 변방에서 어깨 넘어 힐끗힐끗 배운다면 고연차 때는 집도의 바로 옆에서 수술의 모든 과정을 방해 없이 눈에 담을 수 있다. 흔히 서젼은 센스가 좋아야 한다고 한다. 어시스턴트로서 집도의 교수님이 의도하는 바를 재빠르게 파악해서 매끄럽게 수술이 진행될 수 있도록 들어갈 때와 빠질 때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처음 손발을 맞추는 팀은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수술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술이 반복되고 어시스턴트의 경험이 쌓일수록 언제부터인가 집도의와 팀원들 사이에 대화 없이도 수술이 술술 진행된다. 정해진 수순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기계 공정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수순 중간에 발생하는 개별적인 상황에 센스 있게 집도의를 따라가야 한다. "옳지. 바로 거기, 이제 잘 보이네." 집도의와 어느 순간 합이 맞았을 때 느껴지는 쾌감 역시 짜릿하다. 수술 센스는 타고 난다고 하지만 보릿고개를 버티는 동안 강제로 센스도 길러진다. 그래서 보릿고개 기간에는 수술실이 시끄럽다. 아무래도 졸업하기 직전의 4년차에 비해 3년차의 센스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1년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손발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수술실 분위기가 냉랭해지기도 하고 고함도 울려퍼진다. "아니 거기를 그렇게 당기면 안 되지. 아직도 수술을 이해 못하겠어?" 하지만 보릿고개를 거쳐야 연차가 올라갈 수 있다고 했듯 뿌듯한 첫 경험을 할 수 있다. 매일 봉합사 컷만 하던 위치에서 근막도 봉합하고 피부도 모양에 맞춰 깔끔하게 봉합한다. 골절된 뼈에 금속 플레이트 나사를 이용하여 단단하게 고정할 때 느껴지던 손맛도 보릿고개에 맛보았다. 무영등이 밝혀주는 피부 위에 조심스레 메스로 절개를 할 때, 미세한 혈관을 루뻬를 통해 보며 한 가닥 한 가닥 박리할 때의 쾌감과 뿌듯함 역시 보릿고개에 찾아왔다. 보릿고개가 지나가면 풍족함이 찾아온다던 어르신들 말씀은 틀림이 없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의지를 다시 이을 수 있다면 2019-01-03 05:30:20
삶의 의지를 다시 이을 수 있다면 레지던트 2년차는 일은 바쁘지만 마음은 텅 비어있던 날들이었다. 1년 차 때 심하게 부림을 당해서인지 2년차가 돼서는 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병원 안이든 밖이든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성형외과 의사로 당찬 포부를 지녔던 것은 유통기한이 한 달도 가지 못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병원이라는 공장에서 나는 하나의 소모품이라고 스스로를 폄하했다. 힘든 수련과 고된 노동의 보상을 취미와 여가에서 찾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힘들게 버티는 이 순간들이 과연 나에게 득일까 하는 의구심이 도무지 떠나질 않았다. 환자를 대하던 초심도 희미해졌다. 2013년 겨울, 외래가 끝나갈 즈음 치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병동에 열상 환자가 있으니 연락 받으면 가보라는 것이다. 응급실에서도 찢어진 환자가 있으면 꿰매는 게 성형외과 주치의의 일이었다. 또 병원 내에서 낙상, 부딪혀서 상처를 입는 환자나 간호사, 의사를 꿰매는 것도 성형외과 주치의가 하게 되는 일이었다. 치프 선생님의 전화가 끊어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종양내과 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희 병동에 자해하다 팔목에 여러 군데 열상이 생긴 환자가 있는데,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팔목이요?" "네. 오늘 새벽에 화장실에서 과일 깎는 칼로 손목을 막 그으셨어요. 상처는 깊지 않은 것 같은데, 일단 드레싱은 해놨어요." "환자는 괜찮나요?" "일단 처치실에 있는데, 지금은 많이 안정은 되셨어요." "알겠습니다. 성형외과 수쳐 세트랑 실은 일단 5 - 0 PDS랑 6 - 0 에칠론 모두 준비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웬일인지 병동 수간호사님이 직접 전화를 했다. 보통 담당 간호사가 노티하는 것과 달랐다. 아마도 새벽에 병동이 꽤나 시끄러웠던 것 같았다. 자해 환자라니, 낙상 환자나 부딪힌 환자는 종종 봤어도 자해 환자는 처음이었다. 혹시나 해서 윗연차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자살 시도로 팔목에 라세레이션 환자인데 어떻게 해야 돼요 ?" "아터리동맥&8201;터진 거 아니지?" "예. 지혈돼서 괜찮다고 하는 것 보니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내과 주치의도 그 정도는 구분하겠죠." "그럼, 가서 상처 깨끗이 세척하고 텐던힘줄이나 그래도 모르니 혈관 괜찮은지 한번 보고, 그냥 꿰매도 돼." "실은 5 - 0랑 6 - 0 쓰면 돼요 ?" "너무 깊지 않으면 6 - 0만 해서 피부만 꿰매." 통화를 마치고 우리 병동과 정 반대편에 있는 종양내과 병동으로 향했다. 단순 상처가 아니어서 그런지 양 내과 병동 간호사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처치실에는 50대 후반의 환자가 침대에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저씨가 수척한 모습으로 나를 보고 웃었다. 혹여 다시 자살 기도를 할까 봐 주치의가 처치실에서 보자고 했던 모양이다. 병실과 달리 처치실에는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오가며 업무를 본다. 문을 닫으면 개인 방이나 다름없는 병실에 환자를 두기에는 걱정이 들 법했다. 환자 옆에 있던 부인이 같이 반겨주었다. "환자분, 성형외과 의사인데 상처 좀 볼 수 있을까요?" 압박 붕대와 거즈를 들쳐보니 도합 20개가 넘는 자해상이 있었다. 우선 드레싱을 보면서 출혈이 심하지 않은 것 같아 안도했는데 상처를 보니 상황이 달랐다. 종양내과에 입원하여 오랜 항암 치료로 힘이 없었는지 상처 자체는 깊지 않았다. 상처를 깊게 낼 힘이 없어서 목숨을 끊지 못한 상황을 보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안쓰러웠다. 상처의 갯수로 봐도 단순히 난동을 피우기 위한 상처는 아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진행된 폐암이 기도까지 전이되면서 기도를 압박하여 호흡곤란 때문에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 기관절개술을 해서 임시방편으로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도 하지 못했다. 숨 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가족들에게 폐만 끼치는 것 같다고, 그래 서 새벽 1시에 간이 침대에서 자고 있던 부인 몰래 화장실로 나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이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다 보면 별의별 환자를 다 본다. 그중에는 꼭 죽겠다고 난동을 피우는 환자들이 있다. 그런 경우 병동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면서 떼쓰는 아이처럼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아저씨는 그러지 않았다. 힘들었을 결정과 아픈 가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저씨가 조금이라도 기력이 남아 있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아저씨에게는 어떠한 나무람도 비난의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상처를 깨끗이 소독하고 마취하고 꿰맬 준비를 했다. "다행히 상처가 깊은 것 같지는 않아요. 손바닥 쥐었다 폈다 해보시고 움직여보세요. 힘줄이나 혈관 손상은 없는 것 같아요. 일단 봉합은 하는데 나중에라도 손가락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팔목 움직임이 이상하면 다시 상처를 열어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저씨는 괜찮다고 손사래 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깊은 상처들은 꿰매고요. 얕은 상처들은 저절로 낫게 하는 게나을 것 같아요. 실로 꿰매는 것도 다 실밥 자국 남을 수 있어서 꼭 꿰매야 하는 것만 꿰맬게요. 안 아프게 국소 마취할 건데 그때만 조금 아프실 거예요." 아저씨는 씨익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듯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서 상처를 봉합했다. 혹여 내가 대충 꿰매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이 폐암 말기 환자라서 의사가 대충 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 한 바늘 한 바늘 정성을 들였다. 응급실에서 얼굴 이외에 상처로 내원한 환자를 성형외과 의사가 봉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응급실 의사가 봉합한다. 아저씨의 상처도 응급실에 내원했다면 우리가 진료할 이유가 없는 환자였다. 하지만 여기서 되돌아가면 아저씨가 낙심할까 봐 두려웠다. "환자분, 여기 상처가 많아서 나중에 흉터는 남을 거예요. 아무리 성형외과 의사가 꿰매도 흉터 없이 꿰매기는 힘들어요. 그래도 나중에 다 낫고 퇴원하셔서 생활하실 때 팔에 상처 보이면 흉하잖아요. 최대한 흉터 안 나게 정성들여서 꿰맸어요." 왜 자살 시도를 하셨나고, 병은 치료하면 된다고 병원 의료진 믿고 따라오면 된다는 말들은 싫었다. 아저씨는 나를 보며 씩 웃으며 자신의 상처를 내려보았다. 몇몇 남은 얕은 상처들과 함께 드레싱을 했더니, 내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하셨다. 기관절개술 때문에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암 치료 마무리 잘 하시고요. 여기 봉합한 것 실밥 제거하고 몇 개월 후에 레이져 치료도 필요하면 받으세요. 그러면 흉터는 훨씬 좋아질 거예요. 제가 아기 얼굴 꿰매듯 봉합했으니, 다시 또 상처 내면 안 돼요. 아셨죠?" "여보 들었지 ? 선생님이 흉터 안 남게 정말 이쁘게 꿰매주었잖아." 나는 그날 누군가 당신에게 정말 고마워한다면 비록 말은 못할지라도 그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담당 간호사에게 소독하는 법을 알려주며 인턴이나 주치의에게 챙겨달라고 했다. 아저씨와 아 주머니에게는 10일 후에 실밥 빼러 다시 오겠다고 인사했다. 그렇게 또 다시 쳇바퀴 돌듯 10일이 지나갔다. 그때부터 조금이나마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 같다. 10일 후 찾아간 아저씨는 밝은 얼굴로 병동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기도를 압박하는 암 덩어리 때문에 말씀하시기는 힘들었지만 반가워하는 기색은 숨겨지지 않았다. 꿰맸던 상처는 다행히 잘 아물었고 손가락이나 팔목도 잘 움직일 수 있었지만 항암치료 때문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날의 상처에서 실밥을 제거했다. 일부러 챙긴 샘플용 흉터 연고도 하나 드렸다. "환자분, 흉터는 남겠지만 이 연고 매일 빼먹지 말고 꾸준히 바르면 좋아질 거예요. 나중에 퇴원하시고 상처가 흉하면 성형외과 외래로 오세요. 보통 몇 개월 지나야 레이저 할 수 있지만, 그때까지는 이 흉터 연고 꾸준히 바르세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여보 나중에 레이저 치료도 받으러 갑시다." 아저씨는 자해했던 손으로 OK 사인을 보내며 알겠다고 하셨다. 얼마 후 아저씨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폐암인데다 주변 장기로까지 전이되어 그리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약속대로 흉터 치료를 받으러 오시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의 삶을 조금이나마 연장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었다. 자해한 상처가 나을수록 병마로 찢어졌던 아저씨의 마음도 같이 낫기를 바랐다. 나를 반기던 아저씨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방황하던 내 마음에 새로운 의지를 주었듯 말이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공중보건-임상의학 따로국밥 옛말…임상공중보건 뜬다 2018-12-20 05:30:10
|메디칼타임즈 이지현 기자| "최근 의료분야 3가지 메가트렌드 쟁점인 고령화, 양극화, 만성질환 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임상공중보건'이라는 개념을 적극 도입해야한다."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권용진 단장은 20일 열리는 제1회 서울 임상공중보건 컨퍼런스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임상공중보건'의 명칭이 주는 취지와 의미를 밝혔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공중보건과 임상의학 영역이 겹치게되면서 이제 학문적으로도 논의를 해야할 때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단장은 "공중보건은 인구집단의 건강문제 관련 교육, 건강인프라, 시설, 환경의 변화를 다루는 반면 임상의학은 진단, 투약, 수술, 처치 등을 다루는 것이 오래된 전통적 개념이지만 최근 그 영역이 중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령화, 만성질환 문제를 해결하는데 의학만 갖고 논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이러한 고민은 미국 등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정부가 의료기관에 고혈압, 당뇨 상담수가를 지급하는 등 과거 공중보건분야의 영역을 의료기관이 상당수 흡수하는 등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 그는 더 이상 공중보건과 임상의학을 구분할 게 아니라 이를 통합한 '임상공중보건'이라는 개념을 가져와야 한다고 봤다. 권 단장은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이 무엇을 해야하는 곳인가 하는 문제의식에 대한 결과물이 임상의학공중보건 컨퍼런스"라며 "이번 행사가 공중보건의료의 학문적 기초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제1차 서울 임상공중보건 컨퍼런스에서는 권용진 단장이 '커뮤니티케어와 대학병원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고 이어 분당서울대병원 강철환 임상예방의학센터장이 권역 국립대병원의 역할을 주제로 이천의료원과의 교류사업을 소개한다. 또한 서울대병원 김남중 감염관리센터장이 좌장을 맡고 메르스 대응 워크샵을 열고, 기후변화시대에 공중보건 대응 전략 심포지엄과 함께 한국사회 중증 정실질환과 커뮤니티 케어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실시한다. 특히 이번 컨퍼런스는 공공의학회와 공동 세션을 마련, 결핵환자 치료에서의 정신건강 문제와 개입, 지역 공공의료사업 협력사례 등을 두루 다룰 예정이다.
병동의 파수꾼, 모니터링의 운명 2018-12-17 11:48:30
병동의 파수꾼 흔히 상상하는 응급 수술의 모습은 이렇다. 헐떡이는 환자는 피를 토하고 있고 의사와 간호사가 급하게 수술실로 환자를 이송한다. 급박하게 수술은 시작되고 집도의가 양 손을 위로 들고 "가운"하고 외친다. 곧 이어 진행되는 수술은 피로 범벅이고 집도의는 땀을 뻘뻘 흘린다. 그때 갑자기 삡삡 울리던 소리가 멈추고 마취과 선생님이 외친다. "선생님, 환자 생명이 위독합니다!" 성형외과에도 응급 수술이 있다. 간혹 발생하는 그 수술 때문에 마음 편히 자지 못했다. 성형외과의 응급 수술 풍경은 매우 다르다. 환자는 더할 나위 없이 숨을 잘 쉬고 있고 집도의는 차분하게 현미경을 보면서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재건수술이 지긋지긋했던 본원은 미세수술이 매일 이어졌다. 하루는 유방 재건술, 하루는 하지 재건술, 또 하루는 두경부 재건술. 많게는 일주일에 10건 넘게, 적게는 하루에 1건씩 매일 수술이 이어졌다. 1~2밀리미터 남짓의 혈관과 혈관을 잇는 수술 덕분에, 환자는 없어 진 가슴을 얻고 설舌암 환자는 혀를 얻었지만 성형외과 주치의는 잠을 잃었다. 미세수술은 특성상 수술한 작은 혈관이 막힐 수가 있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한다. 연예인은 자신이 나온 TV프로그램을 모니터링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한 미세수술의 플랩, 즉 피판을 밤새며 모니터링 했다. 혹여 이어놓은 미세혈관이 막혀버리면 재건에 이용한 플랩 전체가 괴사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징후가 보이면 바로 응급이다. 플랩은 기본적으로 이어놓은 혈관의 피가 원활하게 잘 통해야 한다. 혈액순환이 좋아야 이식하여 재건한 부위가 주변 조직과 잘 치유되어 새로운 가슴이 되고 살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 몸이 동맥과 정맥으로 이루어져 있듯 플랩 역시 미세수술로 동맥과 정맥 모두를 이어주어야 하고, 어느 쪽이 막히든 응급상황이 된다. 학창시절에 하던 장난 중 ‘손에 전기를 오르게 하는’ 장난이 있다. 다들 한 번씩 해봤을 이 장난은 손으로 주행하는 두 주요 동맥을 눌러서 일시적으로 피를 통하지 않게 하는 것이 기본 원리다. 요측 동맥과 척측 동맥을 모두 눌러서 동맥 순환을 막으면 손에 혈액순환이 부족해지면서 하얗게 질리는 것이다. 그렇게 유지하다가 꽉 조르고 있던 것을 풀면 순식간에 손에 혈액순환이 돌면서 짜릿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일시적이라면 큰 이상이 없지만 오래 지속되면 피를 공급받지 못하는 손은 조직 병동의 괴사, 즉 죽게 된다. 피는 산소를 운반하기 때문에 피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몸의 조직은 죽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세수술 후 혈관이 막히는 상황, 대개는 2~10퍼센트까지 보고하는 이런 상황이 오면 재빠르게 다시 수술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응급 수술을 통해 막힌 혈관의 상태를 살피고 피떡이 져서 뭉쳐있으면 피떡을 없애고, 그래도 시원치 않을 경우에는 다른 혈관을 이어서 혈액순환을 개통해야 한다. 응급 수술을 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다시 막혀 미세수술을 이용한 재건술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응급 수술을 통해 이런 혈액순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성형외과 주치의에게 주어진 엄명이자 숙명이었다. 모니터링의 운명 수술 후 2~3일째에 혈액순환이 막히는 응급 상황이 빈번하다. 응급상황 발생 시 다시 개통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존재해서 수술 당일에는 2~3시간마다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그런 수술을 하면 매일 밤 병동을 배회하면서 환자들의 플랩을 봐야 한다. 말이 2~3시간이지, 가만히 앉아서 때마다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중간 중간 동의서 받으랴, 응급실 가랴, 이것저것 하다 보면 정신이 없다. 더군다나 고된 노역에 지쳐 깜빡 잠에 들었다가 깨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못 본 사이에 혹시 문제라도 생겼을까 싶어 눈을 비비면서 자고 있는 환자 옆에 가서 조심스레 모니터링을 한다. 다행히 아무 이상 없으면 한시름 놓지만 혹여 푸르딩딩하게 변하거나 하얗게 질린 플랩을 보면 내 얼굴도 하얗게 질린다. 그때부터 응급 수술을 준비하면 그날 밤은 물론이고, 다음 날까지 잠은 포기해야 된다. 그래서 종합병원에서는 성 형외과 1년차가 다른 과 1년차들에 비해 삶의 질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 어느 종합병원이든 가장 힘든 주치의를 꼽으라고 하면 신경외과와 성형 외과 1년차가 1~2위를 다툰다. 잠을 못자는 주치의는 주치의대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 다른 쪽으로도 악명이 높다. 주변 사람들에게 "전공이 성형외과예요"라고 하면 "종합병원에는 성형외과가 뭐해요? 별로 힘들지는 않겠네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럴 땐 억울하지만 설명하는 것이 더 힘들어 웃고 만다. 더 최악인 상황도 있다. 응급 수술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면 다행이다. 간혹 동맥 순환은 좋은데 정맥 순환이 시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 고속도로로 따지면 하행선은 차들이 시원하게 다니는데 상행선이 서행하면서 교통상황이 안 좋은 것과 같다. 이런 경우는 바깥쪽으로 샛길을 내준다. 플랩에 거머리를 물려서 정체된 혈액순환을 풀어주는 원리이다. 점차 보랏빛으로 부풀어 오르는 곳에 살아 있는 거머리를 물리면 거머리가 배를 불리면서 교통상황이 좋아진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보통 일주일 가까이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거머리 치료를 해야 되어 새벽에 잠을 못 잔다. 도시에서 자라 거머리를 본 적도 없는데 병원에서 거머리와 친해지니 나중에는 맨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잡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모니터링은 상당한 노동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간호사가 하거나 기계로 하는 경우도 있다. 간호사의 경우 3교대 근무이기 때문에 의사보다는 유리하다. 다음 날에도 수술이 이어지는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근무시간에 밤과 낮이 따로 없다. 낮 시간에도 수술 중간에 병동에 와서 모니티링을 해야 한다. 다행히 본원 성형외과 병동 간호사들은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에 참여해주어 혹여 깜빡하는 경우나 응급상황이 왔을 때 연락받고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레지던트 근무시간이 매우 엄격한 미국의 경우 이어놓은 혈관에 도플러 초음파를 심어서 그 신호를 집도의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받아 본다고 한다. 아직 한국에는 의료수가 문제로 그런 기계들을 쓰기 힘든 실정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성형외과 레지던트들이 병동의 파수꾼처럼 플랩을 모니터링하면서 거머리를 물리게 될 것 같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공포의 100일 당직 2018-12-04 12:50:53
100일 당직 최근까지 공공연하게 존재하던 관습 중 하나가 100일 당직이다. 레지던트 입국과 동시에 100일간 당직을 선다. 일이 익숙하기 전까지는 휴식을 취해도 원내에서 쉬라는 의미이다. 원내 감금이나 다름없어 병원 밖을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병원 차원에서 정해진 규칙이라기보다 각각의 의국에서 레지던트끼리 정해진 암묵적 규칙이었다. 대놓고 감시하지는 않았지만 제한받는 입장에서는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가 심했다. 당직 기간 동안 새벽 2시가 넘어 24시간 국밥집에 동기와 밥을 먹으러 갈 때면 감옥 탈출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으니까. 병원마다 편차가 있지만 각 과 의국에는 이런 규칙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 규칙은 레지던트 사회를 지탱한다. 실수 하나가 의료사고나 의료과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엄격한 위계질서와 숨 막히는 분위기가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군대만큼 위계질서가 엄격한 곳이 의국이다. 이런 암묵적 규칙도 좋게 자리 잡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폭언과 폭력이 당연시되던 과거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당하는 저연차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더 많다. 2013년부터 활발하게 점화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논의와 법제화 추진은 이런 불건전한 수련환경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100일 당직은 내가 레지던트 1년차 때에도 제법 많은 의국에서 행하고 있었다. 주말이 되어도 집에 못 가고 병원에서 쉬고 있노라면 입이 삐쭉 나온다. 안 그래도 주중 내내 자정이 되도록 끝나지 않는 일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데 주말까지 병원에 있으라니. 그 시간은 참기 힘든 인내의 시련이었다. 더군다나 입국은 3월에 이루어진다. 이제 막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풀리는데 나만 야위어가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동기들도 나와 똑같이 생명력을 흡수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소한 행복에 눈물 짓다 2012년 6월 8일. 100일 당직이 끝나는 날이었다. 제대할 날만 바라보 며 날짜를 손꼽는 병장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100일 당직 내내 한 번도 병원 밖을 나가지 못한 것은 아니다. 몰래 탈출하다 들켰을 때 두려웠던 것은 윗연차 레지던트 선배들이다. 그래서 선배들이 얼추 퇴근하고 잠에 드는 새벽이면 몰래 탈출을 감행했다. 병원 근처에 있던 고기집이나 24시간 순대국밥집이 주요 탈출 장소였다. 그곳에서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잔을 하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행복에 눈물겨워 하는 내 신세가 너무 서글펐다. 그래도 의사인데! 사람이 자유를 박탈당하면 사소한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 창문 밖으로만 보던 햇살을 낮에 쬐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가운만 걸치고 한여름 밤에 한강으로 가면 야경이 무척 아름다워보였다. 익숙한 일상의 맛과 향기, 냄새,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4년의 수련기간 동안 가 장 기억에 남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시절은 1년차였는지도 모른다. 하루는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전의 날을 정했고 그날은 영화를 보러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하는 내내 콧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11시. 모든 일을 끝내고 2시간 선잠을 쇼파 위에서 잔 뒤 새벽 2시에 심야 영화를 보러 나갔다. 분신과 같던 콜폰은 같은 죄수 신세였던 동기가 선뜻 맡아주었다. 가운과 콜폰과 마음속 책임마저 병원에 두고 영화를 보는데 그렇게 뭉클했던 적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100일 당직의 시작은 3월 1일이지만 사실상 레지던트 합격자 발표가 난 날부터 각종 일로 불려갔기 때문에 더 오랜 시간 맘 편히 나가지 못했다. 다른 과의 인턴이었고 오프였지만 병원을 나가려면 선배 레지던 트의 허락을 받고 나가야 했다. 전해 12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80여일 추가, 족히 180여일, 즉 반년을 오프없이 보낸 것이다. 심지어 100일 당직이 끝난 이후로도 일을 빵꾸냈다는 등 선배에게 건방지게 말대답 했다는 이유로 '벌칙 당직' 소위 '벌당'을 섰고 그해 10월이 되어서야 오프다운 오프를 만끽할 수 있었다. 1년차 해방의 날이었다. 남자들은 군대 시절 추억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하지만 레지던트 1년차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르면 괴롭고 힘들었던 1년차의 경험은 안주거리가 된다. 하지만 다시 군대를 가라고 하면 절대 안 가듯, 다시 1년차를 하라고 하면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악을 쓰고 버텼기에 버텼지, 알고 나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보다 대단한 의사가 레지던트를 2번, 총 8년을 한 복수 전문의라고 하지 않나. 수험생 세계에서는 재수하면 인생을 알고 삼수하면 철학을 안다고 하는데, 1년차를 2번 하면 세상의 진리를 깨우칠 것만 같다. 힘겨웠던 1년차가 끝나던 날, 동기와 함께 약속했다. 우리가 윗연차가 되고 치프가 되면 100일 당직부터 없애자고. 병원에는 정식 휴가를 신청해놓고 의국에 몰래 숨어 강제로 노역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불합리하다 느꼈던 악습들을 우리 선에서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가 4년차를 졸업하던 날까지 지켰다. 이제는 전공의 수련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근무 시간 상한선이 법제화되고 있기에 100일 당직은 옛 일로만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법이 그럴지라도 레지던트들이 자신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한다면 근무 환경은 개선될 리 만무하다. 비록 '우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한들 말이다. 뻔한 얘기지만 수련 환경을 개선하려면 당사자인 레지던트부터 조금씩 양보하며 생각과 태도를 바꿔야 할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부광약품, 당뇨병신약 MLR-1023 후기 2상 임상 투약 완료 2018-11-29 13:37:01
|메디칼타임즈 최선 기자| 부광약품의 당뇨병신약인 MLR-1023의 후기 임상시험 환자 투약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40개 사이트와 한국 21개 사이트로 총 61개 사이트에서 400명의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2상 후기 임상이다. 11월 29일 마지막 환자의 투약이 완료됐고 앞으로 4주간의 관찰기간 후 임상이 완료된다. 2013년말에 유희원 대표가 신약후보물질을 도입 하고 5년만에 2상후기까지 임상을 완료하는 것은 상당히 빠른 진행속도이다. 그 사이에 이미 기간이 오래 걸리는 만성 독성 시험 등도 완료했고, 전세계에 대한 특허도 취득했다. 이번 후기 2상 임상시험을 통해 400명의 당뇨병환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결과를 얻을 수 있어 신약 성공에 가장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미국 당뇨병학회에서 발표한 MLR-1023의 전기 2상 임상시험 결과에 의하면 식후혈당·공복혈당이 유의미하게 감소했고, 일부 환자군에서는 유의미한 체중감소도 관찰됐다. MLR-1023이 개발되면 연간 최대 예상매출이 3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당뇨병 치료제 시장은 DPP-4 저해제, GLP-1 유사체, SGLT-2 억제제 등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들이 주도하고 있다. MLR-1023은 인슐린 민감도를 증가시키는 린 카이네이즈(Lyn Kinase) 활성제 계열의 첫 번째 물질(first in class)이며 310억 달러의 거대한 당뇨병 시장의 규모와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들이 시장 진입 시의 결과를 고려했을 때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예상이라고 보인다. 부광약품 관계자는 "MLR-1023이 2상 후기 임상 완료 단계에 다다른 만큼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대내외 적으로 모두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형외과 레지던트의 응급실 고충 2018-11-19 12:00:20
응급실의 고충 응급실 당직은 복불복이다. 인턴 때는 응급의학과 소속으로 배정되었기 때문에 그 공간에 상주하지만 응급의학과가 아닌 다른 과 소속이 되면 달라진다. 성형외과 레지던트로 응급실에 가는 경우는 관련 환자가 내원하는 경우다. 콜이 오면 응급실로 직접 찾아가서 해결하고 오는 것이다. 본원 내과와 영상의학과의 경우 응급실 전담 인원이 배정되어 바로바로 원활한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과는 늘 콜을 두고 말썽이다. 식사를 하다 가시가 목에 걸린 환자는 이비인후과에 연락이 간다. 갑자기 하반신이 마비되는 환자는 신경과에 연락이 취해진다. 심한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에는 검사 이후 외과에 연락이 갈 때도 있다. 그리고 안면 외상이라고 부르는, 즉 얼굴이 찢어져서 봉합해야 하거나 얼굴뼈에 골절이 있는 경우 성형외과에 콜이 온다. 응급실 콜은 정말 싫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레지던트들도 마찬가지여서 응급실을 개미지옥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정규로 하는 업무 외에 덤으로 주어지는 것 같았고, 때로는 그 일이 더 큰 부담을 주기도 했다. 얼굴이 찢어져서 봉합이 필요한 환자들은 어김없이 성형외과를 찾았는데 병동에서, 수술장에서, 혹은 당직실에서 불려 내려갈 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마찰이 심했던 업무이기도 했다. 특히 수술이 많아서 자정이 될 때까지 업무가 끝나지 않는 날의 응급 실 당직은 형언할 수가 없다. 12시가 넘어 환자 동의서도 받았겠다 싶어 쉬려고 하면 응급실 콜이 야속하게 울린다. “선생님, 6구역에 라세레이션 laceration*&8201;환자 있어요.” 성형외과 병동은 응급실과 대각선으로 제일 먼 지점에 있기 때문에 가는 길만 10분은 넘게 걸린다. 15층에서 1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300미터 넘는 커다란 병원 로비를 가로지르면 응급실에 도달한다. 인적 없는 로비에서 띄엄띄엄 보이는 것은 잠 못 이루는 환자나 응급실을 왔다 갔다 하는 당직의밖에 없다. 성형외과는 봉합하는 데 간단한 봉합세트만 필요해서 응급실로 직접 가야 했다. 안과나 이비인후과, 치과의 경우 검사를 하는 데 필요한 특수한 기구나 검사대가 병동에 있어서 응급실로 환자가 와도 병동으로 이송해서 진료했지만 성형외과는 그 반대였다. 즉 환자가 당직 의사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의사가 응급실로 환자를 찾아가는 경우였다. 도착하면 차분히 봉합을 해야 한다. 다친 지 얼마 안 돼서 피가 나는 상처를 살피고 소독하고 봉합하는 과정은 당직의 혼자 한다. 누구라고 도와주면 좋겠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다. 다친 상처들은 수술할 때의 봉합과는 다르다. 수술할 때의 봉합은 마취한 상태에서 날카로운 메스를 이용해 절개를 넣기 때문에 나중에 꿰매기도 용이하고 상처면도 깨끗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넘어져서 터지고 걸려서 뜯겨나간 상처들은 경계가 깨끗하지 않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누워서 부탁한다. “선생님 흉터 안 나게 꿰매주세요.” 봉합하는 당직의의 입장도 당연히 그렇다. 이왕 봉합하는 거 흉터 안 나게 꿰매고 싶다. 하지만 이미 물러터진 상처에서 흉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상처는 무조건 생긴다. 아무리 훌륭한 서젼이 수술을 해도 봉합한 부위에 흉터는 남는 법이다. 흉터란 것이 개인차가 있고, 수술 시 흉터가 잘 안 보이는 주름이나 경계부에 절개선을 넣기 때문에 가려져서 안 보이는 것일 뿐이다. 콧등이나 이마, 뺨 등 얼굴에서 도드라지는 부위가 주로 부딪혀서 상처가 나기 때문에 그런 부위를 흉터 없이 완벽하게 꿰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상처 안에 박힌 흙이나 아스팔트 가루는 없는지 다시 확인 하고 기구 3~4개를 동시에 써가면서 봉합하고 드레싱한다. 협조가 잘 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안 되는 경우는 속에서 열불이 난다. 인격수양을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속에 참을 인忍자를 새기며 환자를 어르 고 달래야 한다. 제일 힘든 환자는 술을 마시고 다쳐서 오는 환자들이다. 그런 환자들은 새벽녘에 오기 때문에 자다가 콜을 받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환자가 협조조차 안 되면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선생님, 제가 너무 억울해서 그래요. 오늘따라 너무 외로워서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데 다 도망가고 저만 있잖아요… 근데 다 꿰매셨어요?” 술주정 환자들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술주정은 1년차 당직을 서면서 봤다. 같은 말 반복하기, 안 취했다고 하기, 신세 한탄하면서 울기, 집에 가겠다고 떼쓰기, 온 몸을 뒤틀면서 잠꼬대 하기 등. 응급의학과에 술 취한 환자들은 술이 깨면 연락 달라고 말을 해서 대부분은 협조가 되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다. 봉합 환자가 있다고 새벽에 응급실에서 콜이 오면 환자가 술에 취했는지부터 물어보게 되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는 술주정 부리는 환자를 빨리 퇴실시키려고 어느 정도 잠잠하다 싶으면 환자 상태가 괜찮다며 성형외과 당직의한테 내려오라고 한다. 잘 넘어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새벽 3시에 내려갔더니 술이 다 깼다는 환자가 화장실에 가서 자리에 없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환자는 술주정을 부리고, 봉합하려고 소독한 상처 부위를 더러운 손으로 계속 만진다. 봉합하지 못하면 응급실에 문자를 할 수밖에 없다. “술주정 환자 보내고 싶어서 노티하지 말고 깨운 다음에 연락 좀 하세요. 이게 뭡니까?” 당직 레지던트들은 주로 늦게 온다고 말썽이었는데, 새벽에 쓰러져 자다가 잠결에 콜을 받고 다시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는 환자대로 응급실에서 빨리 처리 안 해준다고 난리지, 당직 의사는 잠 들어서 전화를 안 받지, 응급실의 고충도 많을 것이다. 되도록 응급실과 싸우지 않길 바라지만 줄다리기는 끝나지 않는다. 아마도 성형외과 레지던트가 응급실 열상 봉합을 하는 동안에는 영영 그렇지 않을까. 개미지옥 같은 응급실에서 해방된 날은 무척 행복하다. 동시에 삶의 질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잠 못 이루고 봉합했던 경험 덕에 이룬 것도 있었다. 응급실에서 수행하는 봉합 역시 수술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수술은 인내의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귀찮음과 피곤함 속에서 한 번이라도 더 참고 집중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훗날 더 복잡한 수술에 어시스트로 참여했을 때도 같았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다양한 자세로 봉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정자세로 책을 읽듯 봉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얼굴의 곡면에 따라 턱에 있든 귀 뒤에 있든 상처가 있는 곳에는 몸을 접고 뒤틀어서라도 봉합할 수 있었다. 병원 말로는 하드코어하게 봉합에 익숙해진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응급실이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상처를 봉합하던 순간만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본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동의를 통해 그의 저서 '성형외과 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