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권역외상센터로 지정받은 병원의 자격조건 2020-01-20 05:45:50
경증환자가 큰 병원에 가면, 대형 응급실의 과밀화로 의료자원을 낭비하게 할 것이고, 중증환자가 작은 병원에 가면, 생존률이 낮아질 것이다. 응급의료체계가 환자의 흐름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응급의료체계의 학문적 목적은 '적절한 환자를,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병원에'로 표현된다. 한국은 권역외상센터를 정부가 지정하고 있다. 그런데 응급실을 가진 다른 많은 병원들도 외상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손가락을 베인 환자도 외상환자이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외상센터 개념은 엉터리이다. 손가락을 베인 환자들은 어디에서 진료받아야 하는가? 그들이 진료받을 병원도 지정받아야 한다. 외상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모든 병원이 각 급수의 외상센터라는 개념 하에서, 경증환자는 작은 병원, 중증환자는 큰 병원으로 가는 체계의 구성이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주(州)에 따라 다르지만, 외상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병원들을 1-3급 또는 1-5급으로 분류해 지정 혹은 인증하고 있다. 외상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모든 병원이 외상센터인 것이다. 급수가 다를 뿐이다. 손가락을 베인 환자는 5급 외상센터에서 진료받으라는 것이다. 병원이 일단 외상센터로의 지정을 신청했다면, 해당 병원은 어떤 의학적 수준의 환자를 진료하기를 원한다고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외상센터로 지정되었다면, 당국, 구급대 및, 국민과 병원 간에 계약이 성립됐다는 의미다. 외상센터는 병원과 어떤 관계인가? 미국에도 독립된 건물을 가진 외상센터는 드물다. 1급 외상센터라 하더라도 그렇다. 외상센터로 지정받은 것은 병원 전체이며, 특정 공간이나 인원이 아니다. 중증외상센터로의 지정은 해당 병원 전체의 진료능력과 관계된다는 의미이다. 중증외상센터로의 지정에 따른 의무는, 특정 건물에 속한 특정 인원이 아닌, 해당 병원 전체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즉, 이번 이국종 교수와 아주대 병원 집행부 간의 분쟁에 있어, 병실부족과 운영 상의 제반문제에 대한 책임은 병원 집행부에 있다. 문제해결의 의지가 없었다면, 외상센터로의 지정을 신청하지 말았어야 한다. 또한 최근 아주대병원과 이국종 교수의 갈등과 관련해 언론보도와 정부당국의 대처가 국민들로 하여금, 바이패스(bypass, 우회)가 악(惡)이라고 오해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바이패스라는 용어는 이러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구급대로 하여금, 중증외상 환자를 진료능력이 없는 작은 병원에 이송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즉 선(善)한 목적으로 도입된 가치중립적 용어이며, 바이패스가 악(惡)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의 구급대는 미국의 60년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결정하고 있다. 거리가 가깝다고 중증환자를 작은 병원, 경증환자를 큰 병원에 이송하고 있다. 그러면, 생존률이 낮아진다. 중증외상 환자를 바이패스 시키면 권역 외상센터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당국이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당국은 구급대에게도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중증외상 환자에서 작은 병원을 바이패스하고 중증외상 센터로 이송하는 것이 구급대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 물론 중증외상 센터는 사고현장과 거리가 멀 것이다. 당국은 닥터헬기 운용방안을 먼저 확립해야 할 것이다. 이번 분쟁의 근본원인은 개인 간의 감정 싸움이 아니다. 이국종 교수와 아주대 병원 집행부간 분쟁은, 상기 개념을 인식한 상태에서 실행하지 못한 보건당국, 소방 구급대, 아주대학교 이사회에 기인한 것이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상기의 개념을 확립하고 사회에 확산시키지 못한, 응급의학 전문의 및 외상외과 의사 포함하는, 전문가 집단의 몰이해와 무책임에 기인한다.
|신년칼럼|경자년, 의학발전 위해 희생한 쥐를 추모하며 2020-01-13 05:45:50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신년은 6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로 12지신 동물 중 첫 번째 쥐의 동물로, 경자해년의 경(庚)은 백색을 뜻하므로 경자해년은 하얀 쥐의 해라고 합니다. 하얀 쥐의 해는 다산(多産)과 풍요 지혜와 근면의 상징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측이 빠르고 몸이 날쌘, 지혜롭고 총명한 동물로 전해내려 오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생쥐라고 하면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만화영화 톰(고양이)과 제리(쥐) 중에서 톰은 제리를 잡으려고 합니다만, 영리한 제리는 뛰어난 순발력으로 위기대처를 잘 해서 탈출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생쥐는 설치류에 속하는 동물로 1회 출산 시 10마리 내외로 번식력이 높으며 약 1,800여종으로 지구상에서 인간다음으로 가장 수가 많은 포유동물로 실험용 쥐의 경우 색깔은 대부분 흰색이지만 검정색, 갈색 등 다양합니다. 최근 과학계에서 쥐의 위상은 급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쥐를 개량한 실험용 쥐는 의학, 수의학, 약학, 축산학 등 의생명과학분야에 필요로 하며 더불어 인간의 질병 예방 및 치료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특정질환모델 생쥐가 개발되어 질환 예방 및 치료제 개발에도 사용되고 있어 기여하는 부분이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으며 2007년 노벨생리의학상으로 ‘유전자 변형 쥐’를 생산한 연구자가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위와 같이 동물실험 필요성이 있는 반면 실험동물의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 유럽의 경우 동물보호단체에서 동물을 과학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없애고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법안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다른 대체 모델이 만들어 지기 전까지는, 질병연구에 있어서 실험동물의 사용은 필요악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첨단과학이 발달하고 의료기기 개발 및 신약 개발이 활발해 지면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전 단계인 임상시험에서 동물실험이 증가해 실험동물 사용수 또한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EU 집행위원회도 “응용연구와 의약품 개발에서 안전성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동물 실험 이외 다른 대안이 없다”며 동물실험의 폐지는 현재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동물복지가 낮은 나라에서 동물실험이 더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으므로 동물실험에서 고통 받는 동물이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2008년 동물보호법 및 2009년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습니다만, 최근에 동물실험윤리 증진 및 실험동물의 복지에 관한 구체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관련 분야의 전문가 및 관련 부처 담당자, 동물보호단체 등 관계자가 모여서 토론회 개최 동물복지에 관한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하고 실험동물 관련법과 제도를 점검하면서 동물실험윤리 확보를 위한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연구자 입장에서 동물실험을 실시하는 경우에는 국제규범인 3R 원칙 즉 대체사용법 강구(Replacement)하고 동물고통 최소화(Refinement) 및 동물 개체 수 감소(Reduction)를 반드시 준수하고 이와 함께 연구의 타당성과 중복실험을 피하면서 진행해야합니다. 경자년, 하얀 쥐띠 해를 맞이해 비록 동물이지만 인간을 위해 희생한 숭고한 목숨을 기리고 연구목적으로 희생된 실험동물에 대해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동물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와 함께 진정한 실험동물의 복지를 위해서는 관련 실험동물시설에서 근무하는 현장 종사자들에 대한 제도적 관리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서두에 잠시 언급한 톰과 제리의 만화에서 쫓아다니는 톰에서 이제는 소중한 제리를 모셔오는 모습을 잠시 떠올려보면서 끝으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쥐띠 해를 맞이하여 몸 건강하고 여러분 모두가 뜻한 바를 이루시고, 또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보사 사태로 끝났을까? 조건부 허가 제도 복마전 2020-01-13 05:45:50
작년 인보사 사태는 식약처의 여러 심각한 문제를 한꺼번에 드러냈다. 언론에서는 주로 세포가 뒤바뀐 문제, 즉 품질 문제를 다루었지만, 유효성에 대한 심사 문제도 심각했다.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주된 안건은 허가를 할 만큼의 유효성 근거가 있는가 하는 점이었는데, 1차 위원회에서는 대부분의 의원들이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2차 위원회 때 기존 위원들이 대거 바뀌면서 허가로 결론이 났다. 또한 대한류마티스학회과 대한슬관절학회는 심평원의 급여화 의견에 대해서 반대했는데, 일반적으로 의사 집단은 어느 정도 효과가 인정되면 환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급여화에 찬성을 하는 편인데, 급여화를 반대한다는 의견은 매우 이례적이며, 이는 인보사의 허가가 얼마나 부적절했는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인보사는 정부가 조건부허가를 완화하는 정책에 따라 조건부 허가된 치료제였다. 필자는 인보사 사태를 통해 국산 신약의 조건부 허가 심사가 매우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후 한 의약품이 충분한 과학적 근거 없이 조건부 허가된 것을 확인하게 됐고, 식약처와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고위공무원들에게 허가를 취소하라고 요청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 이 제품은 임상3상 진행 중 무용성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와 식약처에서 임상시험 지속을 결정했는데, 무용성 결과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을 지속하는 경우를 필자는 처음 본다. 임상 지속의 이유는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는데, 효과는 없지만 안전하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지속할 수 있다면 환자들에게 물과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 제품을 개발한 회사는 임상시험 지속 결정으로 인해 주가가 많이 올랐고, 이전에도 조건부 허가 이후 여러 차례 먹튀 논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조건부 허가 10개 정도에서 2개 제품이 허가에 문제가 있다면, 나머지 8개도 과연 제대로 된 허가 심사가 이루어졌을지 의심해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체 50개가 안되는 국산 신약 중 10개 이상의 품목이 조건부 허가를 받았으며, 이 중 허가시 조건을 충족한 제품은 단 1개에 불과하고, 임상3상을 완료한 제품은 단 1개의 제품도 없다. 국산 신약이 아니라 글로벌 신약은 어떠할까? 글로벌 신약의 경우 조건부 허가 후에는 대부분 임상3상을 진행해 성공하면 조건부를 뗀 정식 허가를 받거나 또는 실패하면 회사가 자진 철수하거나 허가가 취소된다. 예를 들어 다국적 제약회사 릴리에서 개발한 항암제 라트루보는 2016년 하반기 2상 결과에 기초해서 미국과 유럽 등 및 국내에서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그 뒤 진행한 임상3상에서 실패하면서 2019년 1월 회사는 시장에서 자진 철수했다. 불과 3년이 체 안되는 시간 내에 이루어진 결과이다. 조건부 허가는 단어 그대로 조건 이행을 전제로 잠시 허가를 내주는 것이므로, 허가 자체도 신중해야 하지만 허가 후 제대로 된 조건 이행을 심사하고, 부적절한 경우 신속한 허가 취소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건부 허가는 부적절하게, 허가 후 조건 이행은 심하게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어떤 조건부 허가 약물은 허가받을 당시에만 잠시 생산되다가 생산을 전혀 하고 있지 않으며, 인보사의 경우 FDA에서 문제가 발견돼 허가가 취소됐지만 그 외에는 허가가 취소된 적도 없다. 만약에 제대로 된 조건부 허가였다면 해당 적응증의 환자들에게 대부분 처방이 이루어져야 마땅하지만, 그렇게 처방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매우 적다. 과연 누구를 위한 조건부 허가인가? 회사의 주가나 올려주고, 먹튀에나 도움을 주는 조건부 허가가 아닌가? 그런데 정부는 지난 하반기 통과된 첨단재생바이오법에 신속 심사와 조건부 허가 조항을 삽입했고, 식약처는 최근 '맞춤형 신속심사' 가이드라인을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와 글로벌의약산업협회와 의논해서 속히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과연 식약처는 이름을 바꾸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특히 의약품과 의료기기에 있어서는 안전처가 아니라 산업처로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산업 자체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참 부끄러운 현실이다. (참고로 필자는 첨단재생바이오법의 취지에는 공감하며, 다만 조건부 허가와 조건부 허가를 위한 신속심사는 삭제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경권칼럼|의료의 패러다임은 언제나 바뀔까 2020-01-06 11:38:23
요즘 어린이들은 유튜브를 주로 본다고 한다. 처음에는 별반 믿지 않다가 어느덧 유튜브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모 유명인이 공영방송을 다소 비난하는 듯한 유튜브를 한 적이 있다. 싸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상당 기간 이슈가 되었다. 주 1~2회 방영되는 드라마를 보고 다음 주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청자는 옛말이다.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새로운 미디어 기업들이 제작과 동시에 전편을 몰아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룡 언론들이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세돌 9단의 은퇴대국이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었다는 사실이, 그것도 치수고치기였다는 사실에서 또 한 번 세상이 바뀌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 뿐이랴. 도쿄올림픽과 같은 기존의 스포츠 축제도 조만간 E-sport에 우위를 내 줄 가능성이 높으며, 아마존이 백화점을 비롯한 오프라인 시장들을 문 닫게 하고 있다. 세상은 변했다. 우리는 100년 이래 제2·3·4차 산업혁명을 경험하고 있으며, 농업사회에서, 산업화사회를 거쳐 정보화사회에 이르렀다. 이제는 정보를 돈이라고 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의료계 역시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의료정보의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축적된 의료정보와 이에 기반한 인공지능의 활용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대체로 개별 산업 영역의 형태 자체를 바꾸고 있다. 오프라인 위주에서 온라인 위주로, 대량생산에서 소량맞춤 생산으로, 일방적 정보전달에서 쌍방향 정보교류로.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의료계는 반영하고 있는가. 여전히 의사는 하나의 의료기관만을 개설·운영해야 한다. 의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신이 개설한 의료기관에서만 진료할 수 있다. 병원들은 병상의 규모에 따라 필요한 과와 일정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환자는 집에서 진료를 받으면 안 되는가. 의사는 만성환자를 화상으로 진료하고 온라인으로 처방하여 드론을 띄워 집으로 배송하면 안 되는가. 정부가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지만 더디다. 세상의 변화속도에 버금가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 전에 상상력을 제약하고 가로막는 현행 의료법에 대한 대대적인 개정작업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21세기 의료법’이라고 부르는 의료법의 전면적 개정이 필요한데 정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자신과 관련된 지엽적 부분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아쉽고 안타깝다. 중국에서는 하늘이 무너질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는 10명의 의인이 없어 멸망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본 칼럼은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뉴스레터 및 LK 보건의료정보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lkhealthcare.co.kr
|신년칼럼| 2020년 보건의료 분야가 나아갈 길 2020-01-02 05:45:50
한동일 교수는 그의 명저 ‘로마법 수업’에서 다사다난 했던 하루가 저물고 나면 또 다른 아침이 시작되지만 하루가 바뀌는 그 순간 대개 사람들은 잠들어 있듯이 변화란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찾아온다고 말한다. 그렇다. 지난 수 년 동안 보건의료분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에게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보건의료분야의 변화는 무엇이고, 올 해 이에 대처하는 방향은 무엇일까 . 우선, 보건의료의 주요한 외적 환경 분야의 변화를 살펴보면, 급속한 저출산과 고령화의 진행으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가 심화되었다. 가임여성들의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지는 이미 오래 전인데 비해 올해부터 베이비부머 1세대인 1955년생들이 노인이 된다. 그 동안에는 1년에 평균 38만명 정도가 노인인구로진입하였지만 앞으로 8년 동안은 평균 80만명~85만명 수준이 진입한다. 뿐만 아니라 평균수명의 증가로 의료비 지출이 많은 75세 이상의 후기노령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는 건강보험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임은 불문가지다. 보건의료의 주요한 내적환경변화도 크다. 근자에 각종 전염병 등은 크게 감소하였지만, 암과심뇌혈관 질환, 자살,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폐쇄성폐질환(COPD), 우울증 등은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자신의 건강상태가 나쁘다고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유난히 많다.(보사연2012) 따라서 이제 보건의료의 내적 환경변화에 우리사회가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국민들의 불안감을 제대로 해소해주고 있는지, 관련 재정은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때가 되었다. 또한, 의료기술의 개발과 신약개발, 신의료기기의 개발 등 보건의료산업분야에서도 이제는 R&D를 변수가 아닌 상수로 생각하고 있다. 고무적이고 큰 진전이다. 보건의료산업의 발달은 잘 활용하면 치료효과도 높이고 의료비도 절감하며 국가경제에도 도움을 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과 국민 건강에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육성은 말이 아니고 실천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어렵게 신기술 신약을 개발했는데도 관련규정이 있느니 없느니 핑퐁이나 치면서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난센스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게 육성하는 자세다. 불쑥 우리에게 찾아온 보건의료와 관련 산업분야의 다양한 변화에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과제는 무엇일까. 다양한 의제가 도출될 수 있겠지만 필자는 보건의료분야의 많은 과제를 포괄하는 의제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보건의료분야에서우리가 원하는 어떤 개혁이나 개선, 변화를 모색하든 그 재원은 사회보험(건강보험)하에서는 건강보험재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담보가 과제를 추진하는 에너지고정책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과제를 중심으로 올해 보건의료계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의료자원들간의 역할분담과 전달체계를 재구축하고 수가가산제도를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현재 의원, 병원, 종합병원, 전문병원, 상급종합병원 간의 역할과 기능의 중복에 따른 오용과 낭비가 너무 심하다. 심하게 얘기하면 1차 의료기관과 상급병원이 경쟁하는 형국이다. 복잡한 수가가산제도는 제도를 만든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 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의료자원의 낭비와 보험재정의 낭비는 얼마나 심하고 비효율성은 또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민관이 함께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합심하여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둘째,통합적 만성질환의 관리체계를 구축해아 한다. 만성질환의 효율적인 관리는 향후 건강보험의 재정안정과 직결되는 과제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베이비부머들이 노인으로 진입하고 있다. 앞으로 더 급증할 노인의료비의 절감은 지금과 같은 분절적 단편적인 만성질환 관리체계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수요자(노인)는 오히려 더 편리하고 재정안정에도 큰 도움을 주는 통합적 만성질환 관리체계의 구축은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가름 할 수 있는 가늠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보건의료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진료를 하든, 진단검사를 하든, 신약과 신의료기기를 개발하든 관련 정책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그래야 더 효과적인 치료방법, 더 효과적인 약재, 더 적합한 의료기기를 찾는 자발적인 노력을 유도할 수 있고 자원의 투입도 과감하게 이루어 질 수 있다. 손쉬운 재정확보 방법만 찾다보면 재정은재정대로 악화되고 신뢰는 신뢰대로 잃어버릴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다. 보건의료분야의 시급한 과제가 어찌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뿐 이겠냐 마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닐뿐더러 생색도 나지 않는 힘든 일들이다. 게다가 올해는 생색내기 좋은 과제가 각광을 받는 총선이 있는 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관 보건의료계가 지혜를 모아 주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경자년의 벽두에.
|칼럼|"인공유방 부작용,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 2019-12-30 05:45:50
필자는 위해평가에 대한 개론에서 입증된 위해의 경우 적극적인 안전성 관리조치를 시행하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기술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발사르탄이나 라니티딘을 장기 복용하고 암이 발생했다는 근거는 없다. 단지, 추정되는 잠재적 위험이다. 그런데도 얼마나 열심히 판매중지를 했는가? 그것이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 그렇게 적극 조치를 취한 식약처가 확증된 위험인 인공유방 사태에 대해서 너무나도 부실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인공유방 관련 역형성림프종((Breast -Associated Lymphoma, BIA-ALCL)은 2019년 10월 기준 전세계에서 500예 이상이 보고 됐고, 이중 30예 이상에서 사망했다. 즉, 이는 완벽하게 확증된 위험인 것이다. 첫째, BIA-ALCL의 위험을 평가할 때 특히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이 수술을 받는 사람들이 일부 유방암으로 유방 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건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투여 또는 시술되는 의약품/의료기기의 경우 유익/위해 평가상 유익이 환자들에 비해 적기 때문에 빈도가 매우 낮을지라도 상당히 엄격한 위해 평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이안느35정은 처음 허가 시 피임제로도 허가됐지만 독일에서 이 약의 장기 복용 후 간암 발생 사례가 1예 보고됐고, 유전독성상 과학적 개연성이 있었으므로 피임제 적응증은 삭제됐다. 즉, 건강한 여성이 피임제를 복용할 때 약 10년 후에 암이 발생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용할 필요는 없다고 상식적으로 판단한 것이다(포탈에서는 이 약이 여전히피임제로 검색된다). 그렇기 때문에 BIA-ALCL의 위해평가시에도 이 수술이 대부분 건강한 사람들이 받는 수술이라는 점을 주의해야한다. 전세계적으로 거친 표면 인공유방의 판매중지를 가장 먼저 시행한 프랑스의 규제기관인 ANSM은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느끼는 유익/위해를 평가하기 위해서 수술 받은 사람들을 불러서 공청회를 시행했으며, 이로 인해 적절한 평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미국 FDA의 조치를 일부 그대로 복사해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방문하고 예방차원의 제거는 권고되지 않는다고 반복하고 있다. 일부 보고된 BIA-ALCL은 무증상이었으며, 미국 FDA도 정기적인 검진을 권유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는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필자는 필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여성들이 암에 대해 훨씬에민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몸에 암이 발생할 수 있는 인공유방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식약처는 FDA의 조치를 그대로 따라할 것이 아니라 프랑스와 같이 공청회 등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들이 느끼는 유익/위해에 대해 적절한 평가를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 BIA-ALCL의 위해성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이 발병까지의 기간이다. 발표된 역학조사의 결과들에 따르면 인공유방을 이식하고 BIA-ALCL이 발생하기까지 약 8년 전후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인공유방을 이식받은 사람들은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정기적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이 새롭게 확인된 위험을 환자들에게 알리기가 어렵다. 선진규제기관들은 BIA-ALCL에 대한 우려가 시작됐던 2010년대 초부터 환자등록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인공유방을 시술받은 환자들에 대한 정기적인 관찰을 시행하고, BIA-ALCL이 발생하면 이를 보고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반면 식약처는 FDA 발표에 따라 2011년 BIA-ALCL에 대해 인지했으나, 안전성 서한만 뿌리고 FDA와 같은 환자등록연구는 전혀 시행하지 않았다. 또 인공유방은 의료기기법상 추적관리대상에 해당했으나 식약처는 추적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즉, 환자들을 환자등록연구든, 추적관리대상이든 등록을 해 정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이후에도 2013년 의료기기통합안전관리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으나 만들어지지 않았고, 추적관리대상 의료기기에 대한 관리 부실이 거의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음에도 시정되지 않았으며, 2016년에는 실리콘 인공유방에 대한 안전성 재평가, 2017년에는 인공유방의 파열로 모유에 섞이는 사건이 발생해 인공유방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다시 하면서 역형성 림프종의 문제를 더욱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위험성을 적극 환자들에게 알리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국 식약처가 추적관리시스템을 들여다 본 것은 국내에서 BIA-ALCL 환자가 결국 발생한 뒤였다. 이때서야 부랴부랴 의료기관에 자료요청을 했으나 시술받은 환자들의 50%도 확인하지 못했으며, 실제 안전성 정보에 대한 환자 개별 통보는 이 중의 일부 환자들에게만 이뤄졌다. 뒤늦게 시작된 환자등록연구에는 12월 26일 현재까지 60여명의 환자만이 등록했다고 하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수없이 반복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추적관리대상을 전혀 관리하지 않은 것은 식약처라는 조직의 완악함, 안전 불감증을 보여주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떠안게 된 것이다. 세번째로 BIA-ALCL은 거의 대부분 텍스처드(textured) 인공유방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텍스처드 제품에는 매크로텍스처드(macro-textured)와 마이크로텍스처드(micro-textured) 제품이 있는데, 식약처는 매크로텍스처드 제품에 대해서만 판매 중지가 아닌 사용 중지를 했다. 심지어 유일하게 자발적 회수 조치를 하고 있는 엘러간사 제품도 회수율이 5%에 못미치고 있으니 실로 어이상실이다. 물론 매크로텍스처드 제품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큰 것은 사실이나 마이크로텍스처드 제품도 위험도가 분명히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국가는 모든 텍스처드 제품에 대해서, 일부 국가는 매크로텍스처드 제품에 대해서만 사용중지를 한 점이 있으나, 마이크로텍스처드 제품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국내 전문가그룹과 논의해 분명한 조치가 필요하다. 또 식약처는 매크로텍스처드 제품에 사용 중지를 하면서 엘러간사 제품만 부각시킴으로써 환자들이 엘러간사 제품만 아니면 괜찮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방치했다. 식약처는 지금이라도 모든 텍스처드 제품에 대해서 판매 중지와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하며, 모든 제품의 회사명과 제품명을 환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확증된 위험임에도 불구하고 안전성 관리를 소홀히 한 인공유방사태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제2의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칼럼은 개인 의견으로 저자 소속 기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협을 보며 9세기 신라 경주가 떠오른 이유 2019-12-17 10:33:23
|호시탐탐 왕권 노린 경주 귀족처럼 |회장 직 탈취에 몰두한 몇몇 감투 쓴 의사들 |내분으로는 ‘의료 새 세상’ 열지 못해 의사는 아니지만, 최대집 집행부 출범 때 "국민과 의사를 가깝게 할 수 있는 레토릭을 만드는 데 도움이 돼 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에서 이사로 일하게 됐다. 단 몇 주 의협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서기 9세기 신라가 딱 요 모양이었겠구나'였다. 호시탐탐 왕권 탈취를 노리는 진골 귀족 세력 간 쟁투 탓에 피가 마를 날이 없던 경주처럼, 의협이 딱 그런 꼴이었다. '귀족 상쟁' 탓에 몰락한 신라와 의사 사회의 공통점 신라의 역사는 상대(上代)와 중대(中代), 그리고 하대(下代)로 삼분된다. 이중 하대는 김 씨 일가 귀족에게 살해된 혜공왕(재위 765~780년)의 죽음 이후였다. 신라 몰락의 서막이었다. 이후 신라 왕실은 죽고 죽이는 암투가 이어졌다. 서기 9세기 전반에만 세 명의 왕이 일가친척이 되는 진골 귀족에게 살해됐다. 정치와 행정이 제대로 작동될 리 만무. 결국 지방의 호족이 발흥했다. 양길과 궁예, 견훤, 왕건이 그들이다. 최고 엘리트인 김 씨 귀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 ‘새 세상’은 진골이 보기에는 '듣보잡'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열고 있었다. 현 집행부 출범 직후의 의협을 지켜보면서 놀랐던 것은 '반란을 꿈꾸는 감투 쓴 의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집행부 출범 초기부터 탄핵을 노리는 듯 보였다. 서기 9세기 경주의 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물이 났다. 의사도 아닌 필자가, 의사들이 벌이는 이전투구의 장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이사직을 미련 없이 던졌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20년째 반복되는 내분 요즘 최대집 회장에 대한 탄핵 주장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지난 20년 간 의협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탄핵할 사람은 마땅히 탄핵해야 한다. 그렇다면 탄핵하자는 사유부터 면밀히 살피자. 결국 수가 대폭 인상에 실패했다거나, 문재인 케어(이하 문케어) 저지를 못했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회장이 바뀐다고 이 주장이 현실화될 수 있느냐다. 우선 따질 것은 문케어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다. 보장성을 강화한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표를 의식해서 정책을 펴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반(反)민주'일 수도 있다. 베네수엘라처럼 극단적인 경우를 들면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기에 앞서 보장성 강화가 시대적 흐름이라면 '완급 조절'을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문케어 파기를 외치기보다는. 저수가 문제도 그렇다. 국민은 병원에 가든 않든 '세금과 다름없으면서도 해마다 다락 같이 오르는' 건강보험료를 다달이 내며 한숨 쉰다. 은행에서 빌린 채무와 건강보험료 미납분이 있을 때, 변제 우선순위는 무조건 건강보험료다. 법에 그렇게 정해져 있다. 우리 의료 정책은 어찌됐든 사회주의적 틀을 근간으로 한다. 제도로 인한 고통이라면 '그래도 진료를 통해 밥벌이를 하는' 의사의 고통이 크겠는가, 아니면 세금처럼 다달이 보험료를 내는 국민의 그것이 크겠는가? 필자 주변의 자영업자들은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 아파도 약국에서 약을 사 먹으면서 참는 사람도 많다. 필자의 경우 1990년 직장 생활 이후 건강보험료로 지금까지 낸 원금(회사 분담금 포함)만 1억 원 정도는 된다. 그러나 '자유인'이 된 지난 11년 동안 단 한 번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 병원에 가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런 와중에 몇몇 의사들의 주장처럼 "수가를 30% 높이자"거나 "문케어를 타도하자"는 주장이 먹힐 수가 있을까? 국민은 의사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 의사들이 고통당하고 희생한다는 이야기를 의사들은 안타깝게 이야기하지만, 국민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TV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단 한 번이라도 보셨는가? 필자가 대학에 입학한 1984년, 연세의대의 커트라인은 후하게 쳐도 서울대 중하위권 공대보다 낮았다. 지금은 전국의 꼴찌 의대 커트라인이 서울대 공대의 커트라인과 비교되는 세상이다. 특정 학과의 커트라인은 그 학과가 배출하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와 선망의 표상이다. 그럼에도 의사들이 힘들다고 외치겠다고? 설사 정권이 바뀌어도 수가의 대폭 인상이나 '공공성이 강한 의료 정책의 후퇴'는 당분간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한데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의협 집행부를 탄핵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사실, 그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일로 보이는데? 파업을 하자고? 파업 주동자들이 줄줄이 연행되고, 파업에 단순 가담한 의사들이 운영하는 의원에까지 국세청 조사관 2~3명이 나와서 장부의 먼지까지 탈탈 터는 것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일까? 병자호란 때 숱한 선비들이 전쟁을 외쳤다. 그러나 주전파(主戰派)의 대표자였던 김상헌마저 호미조차 들지 않았음은 물론, 남한산성이 열리고 청에 항복할 때 몰래 혼자 도망갔음은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돼 있다. 현실이란 그런 것이다. 지난 3월 호기롭게 파업을 외쳤지만 여론을 등에 업고 강공에 나선 정부에 밀려 단 하루 만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경우도 이를 증명한다. 현실과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어떻게든 국민을 '의사 편'으로 설득하는 것이 최우선일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의사 사회는 어찌됐든 '대외적으로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 뭉친 것처럼 보여야 한다. 그것이 현금 의사 사회에서 최우선의 과제일 것이다. 그래도 정부와 싸워 이기기 힘든 판국이다. 실상은 '감투 쓴' 몇몇 의사들이 협회장을 주살하기에 바쁠 뿐이다. 그렇게 등극한 새 왕 역시 문케어 저지나 수가의 대폭 인상을 이룰 수 없기에, 누군가 또다시 "왕을 참수하자"고 나설 것이고... 그 반복되는 역사가 의협에서는 어느덧 20년 가까이 되는 듯하다. 경주의 진골 엘리트 귀족들이 그 짓거리를 하다가 급기야 경애왕이 견훤에게 자살을 강요당했고, 왕비가 적장에게 성적 능욕마저 겪었다. 결국 그 잘난 신라의 엘리트들은 나라를 제 손으로 '듣보잡' 출신 왕 씨에게 가져다가 바쳤고. 중앙 대의원, 의협 중심 단합에 힘 모아야 물론 "최대집도 그렇게 해서 회장이 됐다"고 이야기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에게 '원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런 '못난 되돌이표'는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엘리트 귀족 간 내분으로 나라를 망친 신라 꼴을 따를 것인가!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들인 의사들, 특히 의협 중앙대의원들이 최소한 그것만큼은 기억하시기를 엎드려 바란다. 제대로 된 싸움을 위해서라도, 엘리트 간 내부 다툼은 무조건 멈추고 뭉쳐야 할 때라는 것을. *칼럼 및 기고는 메디칼타임즈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전자담배 위해평가 편파적…평가 내용 공개해야 2019-12-16 05:45:50
담배는 아마도 가장 긴 인류 역사를 지닌 기호품이 아닌가 싶다. 약 50여년 전에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역학 조사가 발표된 후 각 나라에서는 국가 단위의 법적인 제한(예: 담배 홍보 제한, 담배에 세금 부과 등)을 하고, 금연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 인구의 20% 이상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담배처럼 확실히 입증된 발암불질이 여전히 합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번 라니티딘 경우는 잠재적 위험임에도 불구하고 판매중지가 됐는데 말이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담배의 허용에 대한 이 사회,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암묵적인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위해 평가는 절대 평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담배 또는 유사담배의 위해 평가는 흡연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인 허용을 고려해, 이미 명백히 알려져 있는 연초 담배의 위해성을 기준으로 상대 평가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올해 미국에서는 전자담배로 인한 폐질환(E-cigarette or vaping product use associated lung injury, EVALI)의 집단발생(outbreak)이 있었고, 현재도 감소하고는 있지만 진행 중이다. EVALI의 원인으로 THC(tetrahydrocannabinol), 비타민 E acetate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미국의 질병관리본부는 비타민 E acetate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했지만, 미국의 Mayo Clinic 분석 결과와는 일치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다. 그런데 한가지 확실한 것은 거의 모든 발병 환자들이 허가된 전자담배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불법 음지에서 제조되거나 판매된 것들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실상 액상전자담배는 수년 전부터 허용돼 오던 것인데 왜 올해 이런 집단발생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더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불법음지에서 시행된 액상 담배 제조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유럽이나 일본, 또 우리나라에서는 집단 발생이 없는 지역적 특색을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액상전자담배로 인한 폐질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할까? 예를 들어 영국은 미국에서의 집단발생에 대해서 매우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식약처라고 할 수 있는 MHRA에서 전자담배를 포함한 담배에 대한 엄격한 품질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영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액상전자담배에는 포함될 수 있는 성분들이 제한돼 있으며, 예를 들면 비타민 E acetate가 포함될 수 없다. 또 담배를 사용한 후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서 의약품 부작용을 보고하듯이 적극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즉, 이미 엄격한 관리 하에 허가 및 안전성 관리가 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비정상적인 집단 발생에 대해서도 차분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전자담배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어서 정부 차원의 관리가 안되고 있다. 즉, 액상전자담배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 품질관리가 안되고 있는 것이다. 관리가 안되니 우려가 되면 일단 모든 제품을 다 중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발사르탄 사태 때에도 NDMA 분석을 할 수 없었던 식약처는 NDMA가 높은 특정 발사르탄 제품을 집어낼 수가 없으므로, 일단 모조리 판매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년쯤 뒤에 식약처는 막상 조사해보니 발사르탄에 포함된 NDMA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었다고 발표함으로써 '아님 말고'식의 무책임한 자세를 보였다. 이번 액상전자담배에 대한 강력 사용 중단 조치도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판단보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였다. 본래 복지부는 미국발 집단 발생에 대해서 해당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면서 사용 자제를 권고했고 의료진에게는 의심사례를 적극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보고된 EVALI 의심사례 1예에 대해서 1예를 가지고 연관성을 판단할 수 없으며, 좀 더 사례가 모여야 역학 조사를 통해 연관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의 조치를 취하면서 전자담배에 대한 근본적인 조치, 즉 정부 차원의 관리를 전향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한 말이 갑자기 근본적인 과학적 근거가 생긴 것같이 대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대통령이 의도하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위험을 충분히 알리고, 위험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해서 적극 조치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강력 사용 중단 조치 후 식약처와 복지부는 분석 결과에 대해서 적절한 평가를 했을까? 12일 식약처는 액상전자담배와 유사담배 성분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EVALI의 직접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는 비타민 E acetate가 일부 제품에서 검출됐으나, 극미량이었다. 식약처의 발표에 따르면 0.1~8.4ppm의 범위로 검출됐다. 그런데 매우 정밀한 HPLC(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검출 방법의 비타민 E acetate 정량한계(limit of quantitation, LOQ)는 0.899ppm으로서 이는 0.899ppm 미만 결과는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식약처는 분석법과 분석법에 대한 평가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도 식약처와 복지부는 미량의 위험물질이 검출된 제품뿐만 아니라, 여전히 모든 액상전자담배에 대해서 기존 조치, 즉 강력 사용 중지 권고를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EVALI 의심사례 1예, 일부 제품에서의 극미량의 비타민 E acetate가 이런 권고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연초 담배는 우리나라에서 진작에 퇴출됐어야 마땅할 것이다. 물론 필자는 액상전자담배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액상전자담배를 포함해 금연을 희망한다. 그러나 위해평가를 편파적으로 하는 것은 못봐줄 노릇이다. 이 사태의 원인은 전자담배의 위해성 자체라기 보다는 전자담배에 대한 품질 등 관리를 하지 않고 사각지대에 둔 정부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분명히 입증된 위해였지만 매우 소홀히 조치돼, 여전히 우려가 되고 있는 인공유방 사태에 대해서 정리하겠다. ※ 칼럼은 개인 의견으로 저자 소속 기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2019-12-09 05:45:50
"그라나다에서 눈이 먼다는 것보다 더 참혹한 인생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새하얀 달과 함께 서 있는 어딘가 애조(哀調)를 띤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스페인의 남부지방 안달루시아에 있는 고도(古都)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 대해 설명할 때는 으레 최상급 표현이 동원된다. "알함브라 궁전은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예술적 창조물의 하나이다. 알함브라의 요새는 가장 놀라운 건축물의 하나이고 궁전은 지금 세계에서 현존하는 아랍 궁전중 최고이다. 낙원(樂園)과 흐르는 물을 결합시킨 설계는 코란의 에덴동산을 구현한 것으로 이런 곳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고 미쉐린 가이드 북에 적혀 있기도 하다. 나의 소원 중의 하나가 부모님과 함께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정말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고 팔십을 목전에 두신 아버지와 일흔을 넘긴 어머니를 모시고, 여름 휴가를 그라나다로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당시 대상포진을 앓고 있었다. 가야하는 여행일까 고민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밤 열두시에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터키 공항을 경유하고 마드리드 공항에 내려서 또 세시간을 기다렸다가 또 세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27시간만에 그라나다에 도착하였다. '내 욕심이 너무 컸구나' 라고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다행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내가 대상포진에 걸려서 아프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부모님을 좀더 세심하게 챙겨드릴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저녁을 트렁크에 있던 음식들로 대충 때우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먹기위해 부모님 방으로 갔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랑 이제 밥먹으러 가야지"라고 어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어머니와 한참을 이야기를 했는데도 아버지는 일어나실 기색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아빠, 아침 식사하시러 가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빠, 배고프실 텐데 식사하시러 가야지요." 이번에도 답이 없으셨다. 나는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게로 다가가서 이불을 들추었다. 아! 아버지는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셨다. 얼굴에도 약간 파란 기운이 도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머리 속이 하얘졌다. '머나먼 타국에서, 어떡하지…나 때문에 아버지가, 불쌍한 우리 아버지가' 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한 번만 더 깨워보고 안되면 chest compression 을 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지?'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도, 동생도 사색이 되어있었다. 나는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제발 좀 일어나봐…" 그 때 정말 다행히 아버지는 작은 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눈을 떴고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일어나 앉히고 물을 좀 먹이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몸은 한쪽으로 기울어졌고, 말은 어눌했다. 말이 어눌하니 당연히 목소리가 커졌다. "오늘은 어디를 가니? 얼른 구경가야지…" 아버지는 이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하실 수가 없었다. 자꾸만 넘어지는 아버지를 겨우 부축해서 병원으로 가야 했다. 호텔 주인의 도움으로 우리는 구급차도 아닌 택시를 불러서 그라나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라나다 병원에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 낯선, 동양인을 모두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라나다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였고 우리에게는 구글 번역기가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식 아니 그라나다 식으로 부르는 아버지 이름 석자를 듣는 일도 너무 어려웠다. 몇 번을 혹시 이름을 불렀냐고 확인을 해야 했다. 응급실 접수 2시간 반 만에 의사를 만나고 또 2시간만에 약 처방을 받고 또 2시간 만에 혈액 검사 확인을 하고 퇴원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버지의 증상은 조금씩 좋아져서 호텔로 돌아올 때는 똑바로 서실 수가 있었다. 지금은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오셨다. 밤에 주무실 때 숨을 잘 쉬시는지 걱정이 되어 어머니께서 잠을 못 이루시긴 한다. 숨을 잘 쉬고, 스스로 식사를 하고,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느꼈던 순간이었다. 이번 일을 겪기 전에는 나는 오롯이 의료인의 입장에서만 서서 환자를 치료 하고 보호자를 대면했던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 "환자분 나이를 생각하면 치료가 어려우시겠습니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았고,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아도,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이렇게 될 때까지…' 이런 생각도 했었다. 밤에 울리는 CPR 방송이 의료인에게 전해지는 것보다 보호자에게 몇 십배는 아니 몇 백배는 더 아픔으로 다가올 거라는 것을 이번에야 깨달았다. 라틴어에 Usus est magister optimus(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다. )라는 너무나 유명한 말이 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을 뻔 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의사였는지 느꼈다. 이 세상에 한 분 뿐인 어머니이고, 아버지이고, 자식일 텐데, 그 귀중한 존재 앞에서 나는 너무나 경솔한 태도를 가졌던 것이었구나 하는 후회가 물밀듯이 다가왔다. 그분들에게 하루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또 다른 하루에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 어떻게 내가 알 수 있을 것인가? 중환자실에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 나는 그 일이 있고 나서 환자분들에게 혹은 가족분들에게 다른 단어로 말씀드리기로 했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텨 보겠습니다. 환자분께서 잘 이겨 내 주실 겁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아름답다고 해서 꿈에서라도 보고싶었던 알함브라 궁전을 이번 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다. 궁전은 보지 못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간직하고 돌아왔다. 지금의 알람브라를 있게 한 Washington Irving의 Tales of the Alhambra에는 알람브라에서 톨레도까지 이어지는 여행과, 신비로운 사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스페인 사람들의 상상력은 고달픈 현실을 잊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해준다. 그라나다 자체도, 놀라울 만큼 척박한 사막과 돌로 이어진 땅이지만 거기에는 꿈에서나 나올 법한 눈부신 정원이 있는 알함브라 궁전이 숨어있는 것이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온다는 것, 더군다나, 생명이 위독하여 중환자실에 들어온다는 것 그 사실은 환자도, 보호자도, 의료인에게도 큰 어려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의 간절한 마음과 최선의 노력으로 환자의 삶을 다시 얻은 순간, 어둠속에서 빛나는 알함브라 궁전을 마주한 순간만큼이나 아름다운 순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경권칼럼|정책과 현장의 괴리 2019-12-02 13:47:14
의료계에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심사제도를 공격할 때 심평의학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진료비를 삭감당하지 않기 위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정한 급여기준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병명을 바꾸기도 하고 약제를 바꾸는 경우도 있어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리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하는 빅데이터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급여기준의 변경에 따라 진단이나 처방이 바뀌는 경우를 과장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건강보험의 재정만을 고려해 급여기준을 만든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의료인들도 급여기준 제 개정에 참여하였을 텐데 이런 단어나 표현이 사용되는 것일까 의료인의 푸념에 불과한 것인가. 최근 재밌는 기준이 생겨 소개해 보고자 한다 2019년 요양병원 건강보험 수가 급여기준 개정사항에 의하면 환자평가표에는 환자의 교육수준을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의료진이 환자의 그것도 대체로 나이가 많은 환자의 학력을 알아야 하는지 선뜻 납득 되지 않는다. 예전 수사기관에서 작성하던 신문조서에도 학력, 종교, 집, 소유 여부 및 월급 등과 같이 수사와 관련이 적은 사항들도 묻도록 되어 있었다가 최근에 항목이 많이 줄었다. 더 한 것도 있다. 위 개정사항의 사회환경 선별조사항목에 의하면 환자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묻고 확인해야 한다. 『 a. 식사준비, 간병 등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음. b. 전기 수도 등 공과금 미납으로 서비스 중단 고지를 받은 적 있음. c. 안정적으로 거주할 집이 없어 노숙 등을 한 적 있음. d. 병원비 월세 등 주거비 난방비 등 비용 지불이 어려운 적이 있음. e. 교통수단 부족으로 진료 복지관 등 외출이 어려웠던 적이 있음. f. 먹을 것이 없거나 학대를 받는 등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적이 있음.』 사적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인 것은 물론 타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실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인 몇 분에게 환자에게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더니 솔직히 어렵다고 답하는 것을 들었다. 기준을 만든 측에서는 필요에 따라 이러한 문항들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어떻게 시행될지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노인들이 자신의 얘기를 하기 좋아한다 해도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질문에도 흔쾌히 대답할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급여기준을 포함한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실제 정책이 펼쳐질 현장의 상황과 애로를 사전에 예측하고 반영하려는 노력을 좀 더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칼럼은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뉴스레터 및 LK 보건의료정보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lkhealthca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