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기업에서 마케팅을? "변화 두려워 마세요" 2018-01-31 05:00:57
|메디칼타임즈 박양명 기자| 'Attitude is Everything(모든 것은 자세에 달려있다)' 제프 켈러(JEFF KELLER)의 책 제목이면서 윤지영 부장(42)의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윤 부장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박스터(Baxter) 신장사업부에서 일한다. 평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성향과 태도 덕분에 그는 '간호사'이지만 이례적인 길을 걷고 있다. '의료'라는 큰 틀 안에 있다는 것은 여느 간호사와 같지만 일반적으로 간호사하면 떠오르는 일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2003년 복막투석 환자 및 관련 의료진 교육을 담당하는 클리니컬 코디네이터로 박스터에 입사해 2011년 코디네이터를 관리하는 클리니컬 트레이닝 매니저를 거쳐 2013년에는 복막투석 마케팅 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 15년을 기업에 근무하면서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가 바로 '복막투석'이다. 메디칼타임즈는 대한간호협회와 공동기획하는 '나는 간호사다' 인터뷰를 통해 기업에서 일하는 간호사로서 일상을 들어봤다. Q. 간호사가 기업에서 마케팅을 한다? 좀 생소한 부분인데요. 간호사가 기업에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나요. 기업이라고 해도 다른 기업의 사정은 잘 모르니 박스터로 범위를 좁혀야 할 것 같네요.(웃음) 박스터에는 약 40명의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중 33명은 클리니컬 코디네이터 일을 하고 학술부, 고객서비스센터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클리니컬 코디네이터는 2003년 제가 박스터에 입사했을 때 시작했던 일인데요, 복막투석 환자를 비롯해 의료진을 교육하는 일을 주로 합니다. 2013년부터 마케팅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 복막투석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자원했습니다. 복막투석 관련 제품을 관리하고 전략을 짜고 여러 가지 계획을 실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임상에서는 기존에 많이 하던 치료를 적용하지만, 마케팅은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치료군을 먼저 접할 수 있습니다. 또 간호학을 기본으로 갖고 있으면서 마케팅을 하기 때문에 환자나 질병 자체에 대한 이해폭이 넓습니다. 지난해 만성콩팥병(CKD) 플랜 애플리케이션을 론칭했고 다가오는 3월 자동복막투석 기계인 홈초이스 클라리아 론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Q. 15년을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복막투석' 분야에서만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복막투석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에서부터 자가간호에 관심이 많았어요. 자기 질환을 관리하면서 일상생활, 정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흥미 있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병동 간호사로서 처음 일을 시작했는데, 이때 혈액투석 말고도 복막투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접하게 됐습니다. 투석하는 환자를 만나 그들이 잘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서 간호사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장병 환자가 투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투석을 받는 말기신부전 환자 생존율이 대장암 환자 생존율보다 더 낮을 정도니까요. 박스터는 복막투석액, 자동 복막투석 기계 및 혈액투석 장비 등을 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 저의 관심사와도 맞았습니다. 투석치료를 하면서 가정생활,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환자에게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Q. 회사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환자를 볼 기회는 아무래도 없지 않나. 임상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아닌가요. 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병원에서처럼 환자 치료를 위해 적극 참여하는 일은 없습니다. 복막투석 관련 업무만 담당하다 보니 만성콩팥병 환자 중에서도 복막투석을 받는 사람만 접하고 있는데 클리니컬 코디네이터는 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환자를 접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의료기기, 프로그램 론칭을 준비하면서 인터뷰하는 형태로 환자를 직접 만나고 있습니다. 15년 회사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복막투석 환자가 있습니다. 20년 정도 복막투석을 한 남성인데, 그는 딸이 세 살쯤 됐을 때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이 환자는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성은 딸이 초등학교 입학은 물론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하는 모습까지 봤습니다. 복막투석이 20년간 그를 살려준 것이죠. Q. 기업에서 일하는 간호사로서 특히 갖춰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기업은 병원보다 변화가 많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변화를 즐길 줄 알고 스스로 기회를 가져서 성장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회사라는 환경은 의료진 말고 다른 부서원을 만나면서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는 곳입니다. 타 부서 사람들과도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오픈 마인드로 소통하려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식사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조직원과 스킨십 자주 갖는 것도 소통에 좋은 방법이죠. Q. '나는 간호사다'의 공통질문입니다. 이 코너가 간호대생들과 신규 간호사들을 위한 직업 탐방과 같은 코너거든요. 간호사의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Attitude is Everything!'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사건은 사실이 있지만 사람마다 인지하는게 다릅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택하는 게 중요한데, 긍정적인 태도로 상황을 바라보고 컨트롤 가능해야 합니다. 대학을 다닐 때 오고 싶지 않았는데 성적 맞춰서 왔다는 친구도 봤고, 의사 보조인력이라며 자존감이 낮아지는 친구도 봤습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긍지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간호학은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학문입니다. 임상뿐 아니라 다른 여러 기회가 열려 있으니 직업군을 병원으로 한정하지 말고 밖을 보고 배우고 성장하다 보면 많은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기계와 인간을 연결해주는 간호사, 바로 투석간호사죠" 2017-12-07 05:00:58
|메디칼타임즈 박양명 기자| 대학시절 간호사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답은 임상에서 찾고 증명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이 소신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처음 자원한 곳은 중환자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꿈을 찾게 된다. 바로 신장. 4년차부터 지속적신대체요법(CRRT) 전담간호사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3년을 CRRT 전담간호사로 활동한 경험은 그를 만성 신부전 환자를 상대하는 '혈액투석실'로 이끌었다. 혈액투석실 근무 5개월차를 맞은 그에게 신장은 여전히 공부해야 할 분야다. "CRRT 전담간호사는 기계와 인간의 중간자 위치에 있다. 혈액투석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투석 기기를 잘 다루면서도 환자를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잘 케어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신부전 환자에게 더 나은 간호를 제공하기 위한 '신장내과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이 청년은 세브란스병원 혈액투석실 김대영 간호사(36)다. 메디칼타임즈는 대한간호협회와 공동기획하는 '나는 간호사다' 인터뷰를 통해 신장투석실 간호사의 일상을 들어봤다. Q. 투석간호사는 기계와 인간을 연결한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투석간호사가 하는 일이 더 궁금해지는데요. 혈액투석 기기나 CRRT 원리는 95% 똑같습니다. 나머지 5%는 연결부위 차이일 뿐이죠. 투석기계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기계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계의 원리와 작동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합니다. 투석이 진행되는 동안은 기계와 대화하는 과정이니까요. 더불어 투석실을 이용하는 환자 특징이 만성, 장기 환자입니다. 단순히 투석을 해서 혈액 수치만 조정하는 게 아니고 조혈, 골 생성이 잘 안 되는 등의 여러 부작용도 함께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즉, 환자도 보고 기계도 봐야 하는 거죠. 그래서 기계와 인간을 연결하는 위치에 간호사가 있다고 표현을 하는 겁니다. CRRT를 3년간 다룬 경험이 혈액투석실에 적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Q. 만성 환자를 케어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투석 간호사로서 갖춰야 하는 게 있을까요. 만성신부전 환자는 장기간 식생활부터 제한을 받고, 병원을 오가며 생활습관 관리를 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습니다. 여행한 번 가기도 어려우니 말이죠. 그래서 혈액투석실이 신규 보다 경력 간호사를 선호하기도 하죠. 환자 시야에 늘 간호사가 있어 환자들이 투석을 받으면서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간호사와 정서적으로 많이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투석간호사는 정서적 스킨십이 많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그 간호사한테는 투석 받고싶지 않다"고 하는 환자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감정노동 강도가 큰 곳입니다. 정서적으로 여유로울 수 있고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간호사의 주요 가치 중 하나가 환자와 의료기술 중재자 위치에 있다는 것인데 투석실 간호사가 간호사의 미래가치와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 케어에 대한 요구도도 나날이 올라가고 있고 말이죠. Q. 그렇다면 다양한 만성신부전 환자를 경험하면서 보람됐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만성신부전은 신장 이식을 받기 전까지는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환자가 편안히 투석을 받고 간호사가 조언하는 생활습관, 식습관 등을 잘 이행하면 보람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복숭아는 칼륨이 높은 과일인데 먹고 싶어서 과하게 먹어 응급실로 실려오면 안타깝죠. 반대로 주말 모임을 갔는데 음식을 잘 참았다고 환자가 자랑하듯 이야기하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신장이식 후 투석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를 보면 온 마음을 다해 축하를 건넵니다. 이식 수술 전 마지막 투석을 할 때면 만감이 교차하죠. CRRT 전담간호사로 근무할 때는 더 역동적이었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급성신부전 환자를 케어하다 보니 중환자팀과 긴밀한 협조가 필수였습니다. 급성 위험 상태에서 빠르고 안전하게 환자를 안정 상태로 교정하는 업무라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핸들링을 잘 해 고비를 넘기면 보람의 강도는 더 크죠. Q. 투석간호사가 '전문'간호사 제도 안에 들어가 있지는 않은데요. 따로 해야 하는 공부가 있을까요. 공부라기보다는 기계와 사람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칫 투석실 일이 익숙해지면 투석기기를 환자에게 연결하고, 투석하고, 종료하고, 투석 전후 평가하는 등의 과정이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세브란스병원 혈액투석실에는 20여명의 간호사가 일하고 있는데 소규모로 모임을 만들어 보다 나은 질 관리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6명으로 이뤄진 질 향상(QI)팀에서 통계를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동정맥루를 한 번 형성하면 장기간 써야 하는데 이를 더 잘 관리하는 방법, 투석 바늘 천자하는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소소한 것 바꿔나가기를 좋아합니다. 환자 컴플레인의 90%가 니들링이라는 데 착안, 바늘 쓰는 방법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현장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간호사는 개인사업이 아닙니다. 팀이 간호를 제공하는 것이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입니다. 팀이 발전할 수 있는 게 장기적으로 좋은 것입니다. 다른 팀원이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같이 협조하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Q. 20명이 넘는 혈액투석실 간호사 중 유일한 남자 간호사입니다. 적응해 나갈 수 있는 팁 하나만 알려주세요. 간호사는 아무래도 여성 중심의 집단이다 보니 남자 간호사가 적응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저도 대학 때, 임상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후배 간호사에게도 말하는 것은 사람들과 인간관계의 끊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통 탈의실이 남녀로 분리돼 있는데, 옷을 갈아입고 여성 탈의실 앞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퇴근합니다. 일만 끝나면 인사만 하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일이 끝난 후 인간적인 교류가 이어지게 됩니다. 퇴근 정도만 같이해도 적응해 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Q. '나는 간호사다'의 공통질문입니다. 이 코너가 간호대생들과 신규 간호사들을 위한 직업 탐방과 같은 코너거든요. 간호사의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에게 이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어떤 간호사가 될 건지에 대한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임상에서 어떤 간호사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전인간호라고 가르치지만 현장에는 임상 '스킬'만 갖고 오고 '전인'을 잊어버립니다. 나와 환자, 여기서 존재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간호대생은 고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식을 바탕으로 진단, 처방하는 것은 의사 책임입니다. 간호사도 그것을 모르고 있어서는 안되지만 지식을 실제화 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치열한 중환자실 경험이 나를 교수로 만들었다" 2017-11-10 05:00:57
|메디칼타임즈 이지현 기자| "남들은 꺼리는 중환자실이지만 그곳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경험을 안겨줬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깨닫게 해줬어요. 당시의 경험은 나에게 교수의 길을 열어주고 연구에 대한 끊임없는 영감을 줍니다." 연세대 간호대학 교수직을 맡은지 18년째를 맞은 오의금 교수. 십여년째 교수의 길을 걸어왔지만 졸업 직후 강남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했던 3년이 자신에겐 가장 피 끓는 순간이었다고 말하는 그다. 그래서일까. 그는 수업시간 중 학생들에게 '간호 현장'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간호는 환자를 기반으로 한 '실무과학'이자 '응용과학'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오 교수. 연구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환자가 최우선이며 모든 이론은 환자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단다. 30년 전, 환자의 숨결을 느끼며 일했던 당시를 마치 어젯 일처럼 되새김질하는 오 교수의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치열한 중환자실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20대의 간호사는 지금 어떤 교수로 성장했을까.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교수님, 중환자실 근무는 30년전 일이지만 여전히 간호현장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집니다. 네, 맞아요. 간호대 4학년 실습할 때 중환자실을 처음 접했을 때를 지금도 기억해요. 그때 운명처럼 '내가 있어야할 곳이 이곳이구나'라고 생각했죠. 지금도 이유는 모르겠어요. 매순간이 긴장이고 치열한 곳이지만 내가 간호했던 환자 증세가 호전되는 것을 보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어요. 그렇다면 계속 병원에 남을수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교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인가요? 중환자를 간호하면서 저에게 도전의식을 느끼게 했던 환자군이 호흡곤란 환자였어요. 호흡기 장치에 전적으로 의지해야하는 호흡곤란 환자들은 간호사로서 해줄 게 없어 무력감을 줬죠. '저 기계가 나보다 낫구나'라는 생각에 도전의식이 발동했죠. 저는 자연스럽게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석사과정에 이어 시카고로 건너가 박사과정까지 밟은 것이 지금 이렇게 교수까지 하게 됐네요. 미래의 간호대학 교수를 꿈꾸는 간호사가 많을 것 같은데요. 간호대학 교수의 주 업무는 어떤게 있나요. 모든 전공이 그렇겠지만 요즘 교수는 과거와 달리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요. 대학마다 다르겠지만 매년 교수 평가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논문을 요구하고 학생들에게도 평가받기 때문에 수업 준비를 게을리 해선 안되요. 또 정교수가 될 때까지 계속 평가를 받는데 점점 더 타이트해지고 있어요. 과거에는 부교수가 되면 정년을 보장받았지만 요즘에는 부교수도 매년 평가를 통해 재계약하는 식이에요. 굉장히 치열하죠. 그렇군요. 교수가 되고 싶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하고,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세요. 일단 과거와 달리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고 SCI급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게 기본이에요. 또한 교수의 역할은 교육, 연구, 봉사 등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생 교육은 가장 기본이고 일정 수준이상의 연구도 필수항목이죠. 이와 더불어 전문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활동 또한 교수의 역할 중 하나라고 봅니다. 교수님들이 수업만 하시는 게 아니었네요(웃음) 네, 그럼요. 사립인 연세대 간호대학의 경우 학부 이외에도 RN-BSN, 일반대학원, 간호대학원 등 커리큘럼이 다양해요. 이는 곧 교수가 맡는 수업이 많다는 얘기죠. 개인적으로 제 경우에는 오전 6시에 집에서 나오면 오후 8시까지 퇴근하기도 빠듯하답니다. 수업이 전부가 아니거든요. 교수로서 연구업적을 쌓아야 하다보니 나머지 시간은 연구에 할애하고 있어요. 연구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연대 간호대학 IRB(연구심의위원회)위원장 이외에도 국제한인간호재단 이사, 미국 간호학 한림원 정회원에 복지부 산하 보건산업진흥원 연구사업관리위원회(PM제도)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이유가 있나요. 네, 사실 연구분야는 저의 남은 교수 생활을 쏟아 붓고 싶을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어요. 솔직히 간호대학 연구는 의과대학에 비해 정부 투자가 인색한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비용대비 효율을 따져보면 간호 분야 연구를 늘려야한다고 봐요. 적은 비용으로 의료현장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연구가 많거든요. 가령, 신약 및 의료기기는 시간 및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성공할 확률은 낮지만 간호기기는 즉각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넘쳐납니다. 지금도 중환자실 등 임상 현장에서는 간호사들이 직접 만들어 사용할 정도죠. 정부에서 판을 깔아주면 얼마든지 산업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보건복지부에 간호정책국조차 없다는 게 늘 아쉬워요. 최근에는 대구첨복단지와 함께 간호분야 의료기기를 통해 산업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요. 교수님이 연구에 관심이 많다보니 학생들에게도 자극이 되겠는데요? 호호(웃음),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지난 2001년 교수직을 맡자마자 연세대 간호대학 주최로 간호용품 아이디어 공모전을 실시했는데 그때 발간한 책자를 지금까지도 보물처럼 갖고 있어요. 수업시간에는 늘 '임상에 쓰일 수 없는 연구는 쓰레기다'라고 강조해요. 간호는 '실무과학'이자 '응용과학'으로 모든 연구의 바탕도 환자로부터 나온다고 수시로 얘기해줍니다. 실무 즉, 간호 현장에서 철저히 기본을 다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요. 결국 환자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봐요. 교수직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좀 극단적인 얘길해볼까요. 얼마 전에 '내가 만약에 죽으면 내 관에는 무엇을 넣을까'를 생각해봤어요. 가족사진은 아들딸이 챙겨주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와 쪽지들 그리고 그동안 펴낸 논문을 넣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학생들의 진심이 담긴 편지와 임상현장을 바꿔보고 싶은 진정성을 녹여낸 연구논문은 저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매번 인터뷰를 할 때마다 던지는 공통질문인데요, 간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거나 꼭 알아뒀으면 하는 게 있다면 한마디 해주세요. 간호는 한 가을의 '감'같은 존재라는 걸 꼭 말해주고 싶어요. 감은 덜익은 상태에선 떱고 맛이 없죠. 하지만 햇살과 시간이 무르익으면 맛좋고 달콤한 감이 되잖아요. 사실 요즘 젊은 간호사들은 자본주의에 물들고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하죠. 간호사는 소명의식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분야이고 무르익었을 때 그 가치를 더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의사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그래서 더욱 도를 닦는 직업이에요(웃음). 흔히, 간호는 과학이자 예술이라고들 말하죠. 이 두가지가 맞닿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위해선 환자를 많이 보고 공부도 해야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완성된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어요.
"어메이징한 수술실…간호 분야 스페셜리스트, 나야 나" 2017-10-24 04:34:58
|메디칼타임즈 박양명 기자| "어메이징(amazing)한 일들이 방마다 일어나고 있었다." 건국대병원 수술간호팀 김정희 선임간호사(43)는 대학교 4학년 인턴십 과정 때 처음 들어가 본 수술실을 '어메이징'하다고 기억했다. 1지망도, 2지망도, 3지망까지 오로지 수술실 근무를 고집했고 20년 넘도록 수술실에서만 일해온 그는 여전히 수술실이 "멋지다"고 말했다. 병원 차원에서 야심 차게 준비 중인 로봇수술센터 세팅에 투입된 김정희 선임간호사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분야를 공부하는 게 즐겁기만 하다. 메디칼타임즈는 대한간호협회와 공동기획하는 '나는 간호사다' 인터뷰를 통해 김정희 선임간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술실 간호사는 그저 의사에게 수술복을 입혀주고, 의사가 달라고 하는 기구를 넘겨주는 등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려지더라고요. 현실은 어떤가요. 수술실 간호사는 순회 간호사와 소독 간호사가 팀을 이뤄 근무하는데 두 사람은 동시다발적으로 굉장히 많은 일을 진행합니다. 출근하면 수술 스케줄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기구 및 소모품을 준비하며,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수술실 간호사는 아주 수동적입니다. 현실은 다릅니다. 의사가 기구를 달라고 해서 주는 게 아니라 의사와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포인트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며 수술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수술팀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술실 간호사는 해부학을 필수로 공부해야 하고, 수술 절차(procedure), 수술 기구를 모두 외워야 합니다. 숙련된 간호사는 오히려 외과의사에게 수술을 더 잘 진행할 수 있는 기구를 추천하는 등의 능동적인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Q. 해부학부터 수많은 수술기구까지 외우려면 근무시간 외 공부는 필수겠군요. 요즘은 자료가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해부학은 기본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해부학은 4년 과정 중 한 학기만 들었고, 용어 자체도 한글로 배웠어요. 결국 수술실 간호사가 되고 나서 의대생들이 주로 보는 '시바'라는 해부학 교과서를 들고 다시 해부학 공부를 해야 했죠. 이 밖에도 수술 절차를 비롯해 수많은 기구와 치료재료, 장비를 외워야 합니다. 정형외과는 수술기구를 조립해서 쓰는 경우도 많고 이비인후과는 1mm 단위로 수술 재료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료과별로 수술 매뉴얼이 있는데 이를 아무리 외워도 실전에 들어가면 혼란이 오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경험도 중요하다는 거죠. Q. 간호사 면허를 따는 순간부터 20년이 넘도록 수술실에서만 근무하셨어요. 도대체 수술실의 매력은 뭔가요. 골절 환자가 수술을 받으면 부러진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집니다. 턱교정 수술을 하면 처음 수술실에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다른 사람이 돼서 나가죠. 이런 어메이징한 일들이 방방마다 일어나고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수술실에서는 동시다발적인 의료 행위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 의사든 간호사든 함께 긴장하고 있습니다. 수술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팀 워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응급수술 때눈에 자다가 뛰어나갈 일도 생겨요. 간호 분야에서도 스페셜리스트 같은 느낌입니다. Q. 2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수술을 겪어봤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수술실은 응급콜을 종종 받습니다. 잠결에 응급 제왕절개술을 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에 나왔어요. 정신없이 수술에 참여했다가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쉬게 되죠.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으로 축복해주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어요. 힘들었던 게 달아날 정도죠. 무려 25시간 동안 이뤄졌던 수술도 기억나네요. 아침에 수술에 들어갔다가 퇴근하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했는데 수술이 계속 이뤄지고 있더라고요. 의료진도 그렇지만 25시간 동안 수술대에 누워 있었던 환자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제가 본 가장 최장시간 수술이었습니다. 다행히 환자 예후도 좋아서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Q. 생명이 오가는 수술실에 들어가는 간호사로서 갖춰야 하는 게 있을까요. 해부학 등 공부 말고요. 일을 해보지 않으면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처음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델과 실제는 다릅니다. 완전히 멘붕(멘탈 붕괴)이 되는 후배들도 많이 봤어요. 수술실에 처음 오면 수술기구도 많고 조립해서 쓰는 기구도 많습니다. 만들기 등이 취미인 사람들은 업무와 연결 지으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체력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수술실 간호사를 하고 싶었지만 출근 첫날 8시간을 내리 서있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고요. 30분 만에 끝나는 수술도 있지만 몇 시간씩 서있어도 끄떡없는 체력이 필수입니다. Q. 건국대병원은 로봇수술센터 개소를 준비 중입니다. 여기에 투입,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계시죠. 건국대병원이 개원할 때부터 몸을 담았습니다. 수술기구를 담은 바구니 하나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부터 제 손으로 했습니다. 수술실을 셋업하는 작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같았죠. 수술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죠. 처음 수술실을 세팅했던 것과 같은 과정을 로봇수술센터를 준비하면서 또다시 겪고 있습니다. 애틋한 마음이 더 생기네요. 수술 과정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해부학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준비가 안 돼 있는 겁니다. 그럼 수술에 들어가면 안 되죠. 준비 없이 수술에 들어가는 것은 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수술실에서 좋은 간호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준비를 하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Q. '나는 간호사다'의 공통질문입니다. 이 코너가 간호대생들과 신규 간호사들을 위한 직업 탐방과 같은 코너거든요. 규칙적인 근무 시간 때문에 수술실 근무를 꿈꾸는 후배들이 많은데요. 후배들에게 이것만은 꼭 알아뒀으면 하는 게 무엇일까요. 장점만 보고 선택하면 좌절을 할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분야가 있다면 장점 말고 단점을 정리해보고, 그 단점들도 극복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특히 수술실 간호사는 학교에서는 집중적으로 배우는 분야가 아니니까 실습이나 인턴십 때 눈여겨보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해버리는 후배들이 많은데 버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쌓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다른 탈출구를 찾으세요.
"임상만이 전부? 세상은 넓고 간호사가 할 일은 많다" 2017-10-13 06:00:57
|메디칼타임즈 문성호 기자|'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기업 대우그룹을 일궈낸 김우중 회장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지만, 2014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 심사직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조영현 대리가 간호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대학교 졸업 후 병동 간호사로 일해 오다 뒤늦은 결심 끝에 2014년부터 심평원 심사 간호사로서 살아온 그. 심평원 사내 자격증에 합격했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그는 심평원 심사직 간호사로 지내면 지낼수록 직책이 더 애착이 가고, 노력해 발전해야겠다고 항상 자신을 채찍질한다. 이에 메디칼타임즈와 대한간호협회의 공동 기획 '나는 간호사다' 인터뷰를 통해 심평원 의료급여실 조영현 대리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럼 조영현 대리가 말하는 심평원 심사직 간호사로서의 삶을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보자. Q. 대부분 '간호사' 하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실제로 간호업무에 종사하시는 분들 외에는 심평원이라는 기관 자체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심평원이란 기관은 무엇이고 그곳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나요? 간단히 심평원을 말하자면 의료기관이 환자를 진료한 후 비용의 일부는 환자에게 수납받고, 나머지 진료내역을 심평원에 청구하는 거죠. 그래서 심평원이 이를 심사하면 의료기관은 나머지 진료비용, 즉 요양급여비용을 받게 되는 거예요. 저는 심사직 간호사로 의료급여 환자 진료내역 심사를 하고 있어요. 심사는 의료기관에서 제공한 대부분의 진찰, 검사, 투약, 치료재료 등에 기준에 맞고 효율적으로 사용됐는지 확인하는 업무에요. 심평원에서 일하는 심사직 간호사는 대부분 심사업무를 하고 있는데 뿐만 아니라 조사, 기준, 분류, 교육 및 홍보 업무에도 심사직 간호사들이 배치되는 사례도 많답니다. Q. 일반적인 간호사와는 다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정말로 많이 다르죠. 일반적인 간호사는 병원이나 의원에서 임상을 하는 간호사를 뜻하잖아요. 이들 간호사는 직접 환자를 만나 오더를 수행하고 간호를 제공하는 반면, 심평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그 후 진료내역으로 환자를 간접적으로 만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진료가 제공됐는지 확인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요. 결국, 간접적으로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어요. Q.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껴 심사직 간호사를 지원하게 되신 건가요. 병동에서도 꽤 오랫동안 생활하신 것 같은데요. 사실 대학교 시절부터 심평원이란 공공기관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왜였냐면 당시 심평원에서 일선 간호대생을 대상으로 각종 설명회와 견학을 진행했는데, 그 행사에 간호대생으로 참여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부터 심평원 이란 조직에 반해 심사직 간호사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됐어요. 그래서 대학병원 병동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8개월 동안 데이나 나이트 근무가 끝나고 시간을 빼 심평원에 지원하기 위해 노력을 하기도 했어요. Q. 심평원 심사직 간호사로서 횟수로 4년째 근무하고 계시는데, 생활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조금 식상한 답이 될 수 있지만, 심평원에서 심사하는 의료비를 심사의료비라고 하는데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제가 입사하던 2014년엔 62조 정도였는데, 작년에 73조를 넘었고 비급여 항목이 급여가 되면서 앞으로 계속 증가할 텐데,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내가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에요.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한다면 심평원 사내자격증이 몇 가지 있는데, 올해 EBRM 마스터 자격시험에 합격한 일이 생각나네요. EBRM(Evidence Based Review Manual, 근거문헌 활용지침)은 기본적인 의학 지식뿐만 아니라, 통계적 개념과 논문을 검색하고 요약까지 할 줄 알아야 취득할 수 있어요. 생소한 개념이 많고, 실습에 시간제한도 있어서 걱정했는데 합격해서 몹시 기뻤다. 나의 업무역량이 한 단계 올라간 계기가 돼 더욱 보람된 경험이었어요. Q. 조심스럽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에요. 최근 의료계에서 심평원을 향한 비판 목소리가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특히 심평원 심사 조정을 문제 삼는 동시에 이를 심사하는 심사직 간호사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속상할 것 같아요. 심사직 간호사로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있다면, 공정한 것일 거예요. 심평원은 모든 업무를 관련 법령에 의해 수행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어느 경우에서나 공평하고 일관성 있게 업무를 처리해야 해요. 없을 것 같지만 애교스럽게 "한 번만 봐달라"나 "잘 부탁한다"는 말 자주 듣는데,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해요. 의료계 비판에 대해서는 심사 업무를 하다 보면 조정이 발생하는데, 의료인의 한사람으로서 저도 안타깝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문헌적인 근거를 토대로 마련한 기준이 정해져 있고, 그 기준에 따라 인정이든 조정이든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마음을 다잡고 근무하고 있어요. Q. 말씀을 들으니까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매우 중요할 것 같아요. 심사로 인한 민원으로 힘든 점이 많을 것 같은데, 심사직 간호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랄까 그런 것들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태도가 있다면, 적극적인 자세일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배우는 것, 급여기준을 적극적으로 찾고 적용하는 것, 민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답변을 주는 태도일 것 같아요. 여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배워야겠다는 태도도 중요해요. 심평원의 업무는 고도로 전문화·세분화돼 매우 다양해지기 때문에 일을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저는 짧게는 회사 내·부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내년쯤에는 보건대학원에 진학하여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싶어요. Q. 이제 '나는 간호사다'의 공통 질문을 드릴게요. 이 코너가 간호대생들과 신규 간호사들을 위한 직업 탐방과 같은 코너거든요. 간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것만을 꼭 알아뒀으면 하는게 무엇일까요. '세상은 넓고 간호사가 할 일은 많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정부와 공공기관, 연구소나 일반 기업까지 찾아보면 간호사를 원하는 곳이 많거든요. 보통 간호학과 4학년 1학기면 병원은 다음 년도 신규간호사 모집을 하고, 학생들은 입사 지원을 하게 되죠. 그래서 마치 '간호사=병원 간호사'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 같고, 저도 그랬어요. 물론 병원이 간호사를 간호사답게 만들어주고, 그래서 간호사에게 임상경력은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병원에만 있지 않았고, 임상만이 간호사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다행인 건 간호사를 꿈꾸는 이들이 심평원을 아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길이 트였다고 생각해 기분이 좋아요.
"3분 진료 메워주는 외래간호사 기지발휘가 생명" 2017-09-08 05:00:58
|메디칼타임즈 이인복 기자|"대학병원에서 모든 민원의 정점이 바로 외래간호 파트에요.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직업을 갖고 여기에 있나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들지만 그러니 내가 지켜야죠. 전 간호사잖아요." 삼성서울병원 안과 외래를 이끌고 있는 허수경 수석간호사가 가장 먼저 꺼내놓은 말이다. 1998년 간호사 면허를 받아든 후 벌써 20년의 세월동안 간호사로서 살아온 그. 그렇기에 이제는 조금 쉬어갈만 하지만 그는 외래간호가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경험 많은 간호사가 아니면 버틸수가 없는 곳이기에 자신이 지켜내겠다는 각오다. 안과 의료진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고 환자 상담을 진행하며 협진을 도모하고 신입 직원 교육까지 맡으며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그이지만 그에게도 꿈이 있다. 병원을 떠나가는 후배들을 지켜내기 위한 간호사 라이프 코치가 바로 그것. 후배들이 힘든 병원생활 속에서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간호사로서 꿈과 목표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20여년의 간호사의 삶을 모두 쏟아부어도 부족하다는 외래 파트를 인터뷰를 통해 한번 들여다 보자. 대부분 대학병원에서 '간호사'하면 병동 간호사를 떠올리잖아요. 실제로 간호업무에 종사하시는 분들 외에는 외래간호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외래 간호사는 어떠한 일을 하고 있나요? 아주 간단하게 얘기해 의사와 환자를 이어주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병동간호사는 병동별 주치의와 호흡을 맞춘다면 외래 간호사는 외래를 보는 의사들과 함께 하는 거죠. 한마디로 얘기해 병동간호사는 주치의를 통한 처방, 투약이 주고 외래간호사는 설명이 주에요. 병동은 주치의와 소통을 한다면 외래는 환자와 소통을 하는거죠. 안과 파트를 예를 들면 5개 파트가 있어요. 각막과 백내장, 시력교정술, 노안교정술, 각막이식이죠. 이 파트마다 외래간호사가 있다고 보면 되죠. 우리나라 대학병원은 3분 진료가 주를 이루잖아요. 그 안에 충분한 설명이 힘들어요. 의사들이 진료실에 들어가면 외래 간호사가 사전 설명과 사후 설명을 담당하죠. 의사들이 빠르게 핵심만 진료할 수 있도록 그 전후에 구멍을 메워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될 듯 해요. 외래진료의 윤활유와 같은 거죠. 그 외에도 의사들의 진료 스케줄 관리와 신입사원 교육도 함께 담당해요. 3교대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그만큼 업무량은 엄청나죠. 설명을 듣고 보니 확실히 병동간호사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의사의 부담을 일정 부분 나눠지는 느낌인데 여기에 외래 간호사의 특성이 있는 걸까요? 얼핏 들어봐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그래서 대학병원에서 모든 민원의 정점이 외래간호 파트라고 얘기하죠. 환자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서거든요. 의사를 보는 시간은 3분이고 그 전과 후의 일을 우리가 담당하잖아요. 원활하게 잘 돌아가면 만족도가 크게 올라가지만 조금이라도 삐걱대면 민원이 쏟아져요. 의사들의 불편과 환자의 불편 모두 저희 몫이 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기지 발휘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저처럼 경험 많은 간호사들을 배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환자가 원하는 부분과 불만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는게 업무의 핵심이니까요.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없이는 버티기 힘들어요. 하루에 많게는 100여명에 달하는 환자를 보며 그 판단을 해야 하니까요.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고 보람도 많은 부서죠. 하루에 100명을 상담한다. 정말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환자도 있지만 불편한 환자들도 많은게 사실이잖아요. 좀 무거운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정말 힘들다는 생각을 하실때가 언제인지 궁금해요. 많은 후배들도 이런 부분을 궁금해 하거든요. 결국 사람이 가장 힘들죠. 대형병원이다 보니 흔히 말하는 강약약강인 환자들이 있어요. 강한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사람들. 남을 배려하기 보다는 차별에 익숙하고 존중보다는 멸시에 익숙한 이기심에 빠져있는 환자들이 있죠. '내가 누군데'하시는 분들. 병원에서는 모든 환자가 공평해야 하거든요. 당연하죠. 가장 차별이 없어야 하는 곳이 병원이에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반말을 하며 '내가 누군데 바로 진료가 안되냐'는 식으로 차별을 요구하죠. 저는 강강약약형 인간이기에 그런 사람들을 보면 주먹이 불끈 쥐어져요.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언정 절대로 이러한 차별행위를 용납하지 않죠. 그래서 이렇게 힘들게 사나 싶기도 하고...(웃음) 그런 스트레스로 힘들지만 그만큼의 보람이 있기에 버틸만 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버티게 해주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해요. 사람때문에 힘들지만 사람때문에 치유를 받아요. 제가 맡고 있는 각막 분야는 합병증이 상당히 많거든요. 퇴원했다가 다시 들어오고 시간이 지난 후에 또 다시 진료를 받고 하죠. 차별을 요구하는 환자도 있지만 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며 정말 열심히 치료에 임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퇴근하고 혼자 공부를 해요. 책도 찾아보고 논문도 뒤지고 하면서. 그래서 다음에 환자를 만날때 이런 얘기를 해줘야 겠다. 이런 방법도 설명해 줘야 겠다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관계가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간호사님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나요'라고 말해주는 환자들도 생겨요. 그게 바로 보람이죠. 아! 간호사가 되기를 정말 잘했구나 싶은?(웃음) 간호사는 결국 환자와의 관계에서 힘들고 또 환자에게 힘을 얻는 직업이에요. 그렇기에 환자옆에 있어야 하고 환자와 함께 해야 하죠. 그렇기에 전에 말씀하신 기지 발휘를 포함해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매우 중요할 듯 해요. 결국 환자로 인해 힘들고 환자로 인해 보람된다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 그런 것들이 중요해보이고 하고요. 외래간호사로서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랄까 그런 것들이 있을까요? 모든 의료인이 마찬가지겠지만 간호사도 경력이 쌓이고 하다보면 은연중에 환자에게 지시나 충고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의료인으로서 답답하고 환자가 잘 따라와줬으면 좋겠고 하다보니 당연한 일일수도 있죠. 하지만 답은 상대에게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관점이 달라져요. 의료인이 아무리 강조해봐야 환자가 느끼지 못하면 소용이 없거든요. 금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수술을 받고 담배를 피면 안된다는 것은 환자도 알아요. 아무리 '담배 피시면 안되요', '절대 금연입니다' 얘기해도 피시는 분들은 피시거든요. 이때 필요한 것이 결국 라포르에요. '이 어려운 수술도 이겨내셨는데 이번 기회에 담배도 한번 끊으시면 가족들이 정말 좋아할꺼 같아요'라던지 하는 방법으로 동기를 주는거죠. 의료인이 아무리 똑똑해도 환자를 바꿀 수는 없어요. 끊기있게 환자를 지켜보며 동기를 주는 것. 그것이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죠. 그렇게 벌써 20년을 간호사로 살아오셨어요. '민원의 정점'이라고 포현하신 외래 간호파트에서도 상당한 경력을 쌓으셨고요. 언뜻 보면 간호사로서의 삶에 대부분을 지나오신 듯 한데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간호사가 사실 쉬운 직업은 아니에요. 그렇기에 매번 목표를 가지고 버텨보자는 의지로 위기를 넘겨왔죠. 전문간호사를 따자. 외래 파트를 해보자 라는 식으로요. 이루고 나니 기쁘기는 하지만 평생을 이끌어줄 목표는 아니었다 싶어요. 이러한 고민과 위기를 후배들은 겪게 하고 싶지 않아요. 간호사가 이직률이 정말 높은 직업이잖아요. 이유가 있거든요. 대부분이 감정 소진때문에 나가요. 감정이 닳고 닳아서 황폐해진 상태로 병원 문을 나서는 거죠. 그래서 코칭을 생각해봤어요. '간호사 라이프 코치'정도 될까요? 흰머리가 뒤덮인 선배 간호사가 자리에 앉아서 후배들이 언제라도 찾아와 자신의 꿈과 목표에 대해 대화하고. 힘든 부분이 있으면 어짜피 내가 걸어온 길이기에 그들이 스스로 간호사의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용기도 주고. 결국 모든 답은 스스로에게 있거든요. 그런 답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돕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능력이 된다면 그러한 센터를 만들고 또 다른 흰머리 선배 간호사를 키우고 하면 더 좋겠죠.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 될듯 해요. 사실 '나는 간호사다' 공통 질문이기도 하고요. 이 코너가 간호대생들과 신규 간호사들을 위한 직업 탐방과 같은 코너거든요. 20년차 간호사로 간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것만을 꼭 알아뒀으면 한다 하는 것이 있을까요? 사람이 미래다?(웃음).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간호사가 굉장히 힘든 직업이거든요. 특히나 사람속에서 환자속에서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래요. 아까 말했듯 결국 사람으로부터 힘들고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아요. 내 옆의 동료, 환자들을 소중하게 여기다보면 어느새 훌륭한 간호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꺼에요. 다음으로 꿈을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웅대한 꿈 말고 단계단계 이룰 수 있는 꿈이요. 20대의 꿈, 30대의 꿈, 40대의 꿈, 50대의 꿈. 이렇게. 그렇게 크게 크게 보다보면 힘들 과에 있을때도 편한 과에 있을때도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어요. 사실 꿈이 없으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많거든요. 순간의 모욕감과 좌절을 느끼기도 쉽고. 병원에만 목매지 말고 세상을 크게 보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진짜로 원하는 꿈이 있으면 작은 장애물들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을꺼에요. 그래도 안되면 찾아와요. 흰머리 선배 간호사를.
"전쟁터이자 성지를 오가는 병동…그렇기에 지켜야죠" 2017-08-25 05:00:59
|메디칼타임즈 이인복 기자|"병원은 누구에게나 무서운 곳이에요. 삶과 죽음을 오가는 곳이잖아요. 전쟁터가 됐다가 성지가 되는 곳이 병동이죠. 그래서 지키는 거에요. 간호사니까." 강북삼성병원 신경외과병동 이혜원 간호사의 말이다. 간호사 휘장을 달자 마자 중환자실 근무를 자처할 만큼 속된 말로 '깡'이 있었던 신규 간호사는 어느덧 5년차를 맞이했다. 울고 싶었던 1년차 병원에 눈을 떴던 3년차 간호사가 무엇인지를 것을 느낀 5년차라고 자신의 병동 생활을 돌아보는 그는 이제서야 한명의 간호사가 됐다며 자신을 평가한다. 그래서 결정했다. 메디칼타임즈와 대한간호협회의 공동 기획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의 출발에 이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병원 홍보 영상의 주인공이 될 만큼 그의 수려한 미모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도 안 비밀. 하지만 인터뷰 내내 주먹을 불끈 쥐며 또박또박 간호사의 삶을 이야기 하는 그의 눈빛은 신규 간호사들과 예비 간호사들에게 결정적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지금부터 이어지는 인터뷰를 통해 한번 들여다보자. Q.대부분 '간호사'하면 병동간호사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그만큼 누구에게가 친숙한 간호사의 이미지는 병동간호사죠. 그렇다면 '병동 간호사는 뭐다' 한번 정의할 수 있을까요? 병동간호사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참 힘든 것 같아요. 그만큼 하는 일이 너무 다양하고 병동에 따라서도 많이 차이가 나거든요. 가장 주된 업무를 꼽으라면 역시 의사와 환자를 잇는 역할이라고 봐야겠죠. 투약부터 주사, 수술후 상처 관리를 담당하는 것이 간호사고 역으로 환자의 불편 사항이나 이상 징후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것도 간호사에요. 그만큼 하는 일고 많고 해야할 업무도 많죠.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백의의 전사라고 부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 아닐까요? 하지만 그만큼 더 의사, 환자와 교감하기에 배우는 것도 많고 보람도 많은 곳이 병동이고 간호사 업무의 출발선도 병동이라고 봐요. Q. 그중에서도 지금 근무중이신 신경외과병동은 힘들기로 유명한 병동이에요. 어떠한 특이점이 있어서 이러한 소문이 났을까요? 벌써 5년이 지나셨으니 이제 감이 올듯 해요. 신경외과병동이 힘들다고 소문이 난 것은 아마 중환자들이 많아서일꺼에요. 실제로 급격하게 안좋아 지는 환자들이 많은 곳이고 그렇기에 더욱 꼼꼼하게 환자를 살펴야 하는 곳이거든요. 숨이 차다는 환자의 한마디를 흘려들은 것만으로 자칫 생명이 오가는 곳인 만큼 간호사들도 더 예민하게 일을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해요. 그렇기에 환자, 보호자들과 갈등도 많은 편이고...하지만 반대급부도 있어요. 대부분 장기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다는 거죠. 몇달씩 환자를 마주하기에 더 세심한 부분까지 케어할 수가 있어요. 다른 병동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보람이죠. 또 내과와 외과를 아우르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것도 특징이에요. 그렇기에 다른 병동에서 시간이 걸려야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을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장이 된다는 것도 간호사로서는 메리트라고 봐요. Q. 벌써 신경외과병동에 오신지 5년이 되셨다고 들었어요. 그만큼 많은 환자들을 보셨고 기억에 남는 환자들도 있으실텐데 그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을까요? 3년차 때였나. 산모분이 뇌출혈로 들어오신 적이 있었어요. 의료진 모두가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만큼 선택의 순간도 많았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장면 있잖아요. 아이를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한 선택이요. 수 없이 그러한 선택의 순간들이 지나갔는데 산모의 의지가 대단했어요. 어떻게든 이겨내며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저에게까지 느켜졌죠. 그 의지 덕분이었는지 그 의지에 감복한 의료진의 노력이었는지 결국 무사히 출산까지 마치고 아이를 안고 퇴원하셨어요. 그때 상황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요. Q. 그러한 위기를 계속해서 겪어야 하는 것이 간호사의 숙명 같아요. 그렇기에 가져야할 마음가짐이 남달라야 할 것 같은데 이제 어느덧 선배 간호사로서 이러한 마음가짐에 대해 조언을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 저도 이제 프리셉터(신규간호사 교육 담당)을 하고 있지만 늘 강조하는 것이 있어요. 겁이 많아야 한다. 또 하나가 의심이 많아야 한다에요. 병동은 전쟁터이자 성지에요. 늘 환자의 생사가 오가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간호사가 있는거잖아요. 사건은 어디에서 언제나 터지고 겁과 의심이 많아야 그런 것들에 대비하고 대처할 수 있어요. 이 환자 지금 괜찮은건가?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제대로 처치를 하고 있는 걸까? 빠트린 것은 없나? 하고 늘 의심하고 겁을 먹고 있어야 집중력이 생기죠. 그러한 겁과 의심만 늘 유지하면 스킬 등은 나중 문제라고 생각해요. 도와줄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잖아요. Q. 이야기를 하다보니 천상 간호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부터 꿈이 간호사였나요? 그렇지 않았다 해도 앞으로 이루고 싶은 계획이나 목표가 있을 것 같은데. 아주 어렸을적 부터 꿈은 간호사였어요. 엄밀히 얘기하면 의료인이었죠. 어려서부터 늘 봉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자연스레 꿈도 그렇게 이어진거죠. 그렇게 들어온 병원이었지만 현실이 많이 다르긴 했어요. 정말 1년만 버티자라는 생각으로 이겨왔는데 이렇게 시간이 흐른거죠. 그렇게 버티고 나니 다시 봉사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어요. 나중에 간호사를 계속 하던 그렇지 않던 봉사는 지속하고 싶어요. 그래서 조만간 대학원에 진학하려 해요. 노인전문간호사가 되면 봉사의 길이 더 넓어질 수 있겠다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그것이 가장 시급한 목표에요. Q. 봉사에 대한 이야기 다음 질문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간호사로서 또 피할 수 없는 질문인 것 같아요. 바로 태움이죠. 악습인 것은 맞지만 아직도 의견이 분분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간호사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 간호사라면 누구나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태움이에요. 누구나 병원에 오기 전까지 그 태움에 대해 두려워하고 고민하죠. 실제로 간호사들이 병원을 그만두는 이유의 90%는 태움 때문이에요. 저는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의지요. 설사 태움이 있다고 해도 의지할 수 있는 단 한명의 사람만 있어도 이겨낼 수 있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신규간호사때 하루가 멀다하고 울었는데 수선생님 한분이 끝까지 저를 믿고 응원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는거죠. 지금 프리셉터를 하면서도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도 여기에 있어요. 내가 많은걸 가르쳐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친한 언니로 남자. 제가 그랬듯 믿어주는 사람 한명만 있어도 버틸 수 있거든요. Q.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아요. 사실 이 코너가 신규 간호사, 예비 간호사들을 위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물을께요. 간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하는 것이 있을까요? 간호사는 힘들다?(웃음) 저는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간호사가 되기 전까지는 막연한 동경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있거든요. 실제로 저도 간호대에 다닐때도 실습을 나와서도 그랬어요. 하지만 막상 병원에 들어오면 엄청난 좌절감이 몰려들 꺼에요. 혼자 동떨어져 있는 기분도 들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겠죠. 그래서 1년차에 그만두는 동기들, 후배들도 많이 봤어요. 하지만 그 또한 과정이에요. 어느 곳에 가던지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뜻이죠. '딱 1년만 참자'를 되뇌이며 버티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또 아무리 나쁜 선배도 배울 점은 있다고 위로하고. 그렇게 1년만 버티면 길이 열려요. 또 2년이 되면 익숙해지죠. 선배들 모두 그렇게 지나온 거에요.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딱 1년만 버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