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제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2019-06-03 06:00:01
벌써 대한민국에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된 지 40년이 흘렀다. 이 40년이란 기간 동안 건강보험제도는 도입 이래로 국민들의 보건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꾸준히 발전해왔음을 부인하는 의사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의료보험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 싼 가격에 양질의 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외국인들도 자국보다 한국에서 진료 받는 게 더 싸고 좋다면서 흔히들 말하는 의료 관광을 오는 외국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항상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고 했던가. 이렇게 마냥 좋아 보이기만 하는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는 현재 많은 문제들과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글을 통해서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가 걸어온 길과 그리고 현주소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20세기의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 1963년 12월, 대한민국은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위한 첫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이 때 당시 의료보험제도는 강제성을 띄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시행은 유보됐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고 사회의 인프라들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어쩌면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은 시기상조였으리라. 이렇게 유보된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은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서야 드디어 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1977년 7월,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했으며 1979년에는 건강보험의 적용범위를 300인 이상의 사업장 근로자들, 공무원들, 사립학교 교직원들까지 넓혀 보장성의 범위를 확대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전국의 농어촌 지역을 대상으로 농어촌 의료보험 실시 및 5인 이상의 사업장 근로자들로까지 적용범위를 확대함에 따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렇지만 의료보험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10년 남짓한 기간에 의료보험의 적용 대상을 이렇게 갑자기 넓힌 것은 결국 양날의 검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전 국민들이 비교적 싼 가격에 양질의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들도 야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21세기의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에서 후술하겠다. 21세기의 대한민국 의료보험제도 대한민국의 의료보험제도는 본격적으로 시행된 후 건강보험 적용 대상 확대 및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의료보험의 적용 대상이 너무 짧은 기간 내에 확대됐다는 점과 저부담-저수가-저급여의 악순환이다. 1970년대 본격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할 때 정부는 의료보험제도에 강제성을 띄게 하면서 국민들의 부담을 우려해 외국에 비해서 수가가 비교적 낮게 책정됐다. 그럼에도 수가 정상화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의료관계자와 정부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화하면서 적정수가에 대해 논의한 후 반영했다면 비록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제도의 시행은 느려졌겠지만 지금과 같은 악순환이 생기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본과 독일만 보더라도 전 국민 의료보험 달성까지 각각 36년, 100년이 소요됐다) 반면, 정부는 고작 10년 남짓한 기간에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의 확대를 추진했고 이는 수가의 정상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10년이라는 기간은 의료기관과 정부가 수가의 정상화를 논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고 무엇보다 전 국민이 이미 낮은 수가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 수가 정상화를 위해 의료보험비를 올릴 시 예상되는 국민들의 반발로 인해 수가는 정상화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의료계는 비급여를 늘려 저수가에 따른 적자를 메우려고 했었다. 오죽하면 큰 병원들도 장례식장, 병실료 등으로 적자를 메운다는 얘기까지 나왔을까. 이런 상황에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하는 문재인 케어를 발표했다. 매년 60~65% 선을 유지하던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늘려 국민들의 본인부담율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다만, 비급여의 팽창이 야기된 근본적인 원인인 저수가는 해결하지 않고 비급여만 급여화 한다면 의료계 입장에서도 문제이지만 비급여를 급여화함에 따라 지출하게 될 돈도 문제다. 비급여의 과도한 팽창은 분명 해결돼야할 문제지만 대한민국이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의료비 지출이 점차 늘고 있는 상황에서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는 의료비 과다 지출을 야기해 보험 재정의 고갈을 더욱 부추길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지금 초점을 둬야할 부분은 비급여가 아니라 의료보험제도가 지속가능성이 떨어진 근본적인 원인과 지속가능한 의료보험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의료보험제도의 나아가야할 길과 의료계가 해야 할 일 결국 이 모든 상황이 야기된 이유는 저수가다. 또 미래에도 지속가능할 의료보험제도를 만들기 위해선 지금의 저수가 체계를 탈피하는 것이 반드시 밟아야할 절차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저수가 체계를 탈피하면서 이에 따라 단계적으로 비급여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 지금의 비정상적인 의료수익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의료 수가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의료보험비 인상이 필수적이지만 국민들은 당장 자기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 많아진다고 하면 반발이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도 자신의 '표'를 잃어가면서까지 나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하는 중요한 시기다. 현재 의료수가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해서 역설하며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고 그와 동시에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며 수가 정상화를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리고 정부와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어 지금 의료보험제도가 봉착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면 국민들과 의사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꼰대문화도 변할까? 2019-05-27 19:30:02
모 보험회사의 광고가 화재다. 배경은 회사 휴게실로 추정되는 곳. 중년의 선배 직원이 "라떼는 말이야"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말이야"라고 자문자답하며 아재 개그를 선보이더니 젊은 후배 직원이 1초 뒤 이해한 듯 웃음을 보인다. 이후로는 '취직은 했냐며 핀잔을 하려 하자 유튜버로서 일한다는 조카', '회사 밥이 집밥 보다 낫다며 시어머니가 연 냉장고를 닫는 며느리', '야식으로 뭘 시켜줄까 하는 팀장에게 '퇴근시켜주세요'라고 화면에 띄우는 사원'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후 '시대가 변했다. 보험도 변했다'라는 카피가 나오며 광고가 끝난다. 최근 시대상을 잘 반영한 만큼 시청자의 공감과 웃음을 끌어낸 점이 인상 깊다. 포털 사이트 용어사전에 '꼰대'를 검색해보면, 이는 학생들의 은어로써 '선생', '늙은이' 등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요즘 유행하는 '꼰대'는 훨씬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인다. 선후배나 나이로 강하게 서열 정리를 하는 사람, 본인의 업적에 심하게 취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 팀워크를 끌어올린다며 회식이나 야근 및 주말 출근을 압박하는 사람, 융통성 없이 자기주장만 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본인의 답을 강요하는 사람 등을 비꼴 때 쓰는 단어이다. "나도 고생했는데 너희들도 해야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다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는 변명이 들리지만, 젊은 층의 공감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꼰대 문화는 전염성이 있는 것 같다. 인사를 안 했다며 후배들을 집합시켜 혼낸다거나, 테이블 수저 준비가 안 되었다며 꾸짖거나, 스스로 해야 할 잡일을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등 '젊은 꼰대'의 위세도 만만치 않다. 역시나 이는 윗사람에겐 향하지 않고 언제나 아래로만 향하며, 누구라도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꼰대의 평범성'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만연하다. 꼰대 문화는 사회생활을 하며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단체 생활을 하며 필요한 단합, 협력과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사적 영역까지 간섭하는 언행은 선한 권유나 조언조차 꼰대 행동으로 평가될 만하다.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계는 그 특성만큼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문화를 보이며, 우리나라의 인재들이 모이는 만큼 자기애적이고 강박적인 특성이 나타나는 곳이다. 물론 이런 특성 덕분에 든든하게 치료를 받지만, 한편으론 꼰대 문화의 번식에 알맞은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주 평균 80시간 근무 등을 다루는 소위 ‘전공의법’을 향한 수많은 불만과 회유는 그 위력을 가늠케 하며, 전공의들이 호소하는 꼰대 행동은 다 열거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전공의가 꼰대 문화의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전공의인 필자 또한 과거의 행적을 돌아보면 부끄럽다. 업무 중 발생하는 수많은 사무적 잡일은 저년차 또는 학생의 몫이며, 고년차의 빨래나 프린터 수리, 여행 전 환전 등의 개인적인 잡일까지 시키는 모습도 비일비재하다.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환자-의사 관계와 치료 과정에 있어서 강압적이고 고집스러운 꼰대 문화가 스며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환자나 보호자, 타 직종에 내는 짜증이 단순히 피곤함 때문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치고 고단한 환경 속에서 전공의는 의료계의 잘못된 행동과 사고방식을 비판 없이 따르는 영혼 없는 의사가 되어가고 있다. '전공의법'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로 우리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전공의법’이 개선되고 정착될수록 조금은 심리적 여유가 생길 것이며 환자 건강에서도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변화가 보일 것이다. '전공의법'이 외적 변화를 끌어낼수록 내적인 부분도 발맞추어 변해야 할 것이다. 귀찮게 여겨지는 사무적인 일부터 기록과 처방, 의학적 처치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고된 수련환경 속의 한 톱니바퀴로 무기력하게 '꼰대 문화'에 끌려가는 게 아닌, '꼰대 문화'를 행하는 우리의 능동성이 보이기 시작한 점은 '전공의법'의 또 다른 긍정적이면서도 아픈 영향이 될 것이다.
|신세한톡|혈관 속 인공위성을 상상하다 2019-05-22 10:25:59
인류의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후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수천 개의 위성들은 지구 주위를 돌며 구름, 바다, 땅, 얼음으로부터 방대한 양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했고, 우리는 이 정보를 토대로 기상을 예측하고, 토양의 수분, 수증기, 강수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됐다. 기상학은 '허리가 쑤시니 비가 올 것이다' 수준의 경험적 지혜에서 수증기와 기압의 데이터 과학이 됐고, 농업은 '씨앗을 심고 쟁기로 땅을 가는' 행위를 넘어서 토양의 수분과 기온의 데이터 과학이 됐다. 이 모든 것은 지구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인공위성이 있기에 가능했다. 결국 인공위성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지식과 통찰을 얻게 해주었다. 인체는 지구 못지않게 많은 데이터들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보들은 대부분 기록되지 못한 채 시간 속으로 흩어진다. 현재 병원에서 소변 검사, 혈액 검사, CT, MRI 등등 많은 검사가 이루어지지만, 이 검사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데이터를 연속적으로 측정하지 못한다. 최근 웨어러블 기기 등을 이용해 몸의 연속적인 데이터를 모으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에서 출시한 애플워치4는 사용자의 심전도(ecg)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으며, 세계 곳곳의 기관에서 혈관 내의 포도당 수치를 채혈침을 쓰지 않고 측정하는 연속적 혈당 모니터링(continuous glucose monitoring)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은 데이터의 바다이다. 그 바다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건져 올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이다. 만약 혈당 이외에 혈압, 콜레스테롤 수준, 호르몬, 작은 단백질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다면, 의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하루 중 도파민, 세로토닌의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면, 우울증을 더 정확히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암세포 바이오 마커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항암제가 잘 듣는지 여부를 더 빠르게 알게 되고 다른 항암제를 처방해 더 많은 암 환자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실시간 측정 장비를 소형화 해 하나로 묶어 혈관 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면 초소형 실시간 검사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반 상대성 이론이 그 자체만으로는 기상예측을 할 수 없듯이, 이러한 것들은 분자생물학의 지식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반드시 공학적인 응용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실시간 바이오센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항원-항체 반응 혹은 리간드-수용체 반응이 가역적으로 일어나고, 이 결합 유/무의 정보가 어딘가 저장되고, 이 정보는 실시간 몸 밖으로 전송돼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들이 엔지니어링이 요구되는 부분들이다. 엔지니어들의 손으로 인공위성과 같은 '센서'가 만들어짐으로써, 비로소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걸어 다니는 데이터다. 하지만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으는 능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분자생물학과 반도체 공학이 만나 이러한 체내의 단백질들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바이오센서들이 개발되기 시작하면 새로운 의학적 발견과 치료법이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의사의 인식 한계 속에서 행해지던 기존의 의료는 다른 인식의 높이를 가진 데이터 과학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실시간 바이오센서'가 가져올 파급력이다. SF 소설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신세한톡|의사, 감당하기 힘든 존재의 무거움 2019-05-15 10:26:45
1. "보호자분, 아드님이시라고 했죠? 잠시만 이쪽으로…" "네…" '난로 불이 옮겨 붙어 발생한 심재성 2도 화상으로 인한 합병증 우려로 귀원으로 전원 - 심근경색 고혈압 당뇨병 알코올성 간질환 및 치매 병력'이 적힌 전원의뢰서만으로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 의사M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호자와 나란히 벽에 기댔다. 아무리 치매라한들 아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듯한 환자와 그런 환자에게 대신 물어봐주거나 그렇다고 환자에 대해 제대로 답해주지도 않으려는 슬프기보다는 당황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으로 상황을 회피하려는 듯한 보호자. 억지로 어두운 세월을 밝게 물들여보려 애써본 듯한 아들의 노란머리는 관리한 지 몇 달은 된 듯한 파마처럼 흐릿했다. 눈가의 주름까지 검게 그을린 얼굴과 험한 세월이 짐작되는 투박한 손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애써 차려입은 재킷은 이런 모든 어색함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어 그가 아들이라는 사실조차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2. 설 연휴에 봐야 할 환자는 잔뜩 밀려있지만, 지금 눈 앞에 흩뿌려져있는 파편들을 맞춰가야만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다. 왜 이렇게 다친 사람이, 다른 병원을 거쳐 굳이 이 응급실까지 오게 된 걸까. 사람과 병을 다루는 과학자, 의사들은 이럴 때 하릴없이 을이 되고 만다. 온통 뒤죽박죽인 상황에 짜증을 숨기지 못한 채 조금은 다그치는 듯한 말투로 병력을 묻던 의사M은 그래도 다행히 무모하게 파편을 즈려밟고 나아가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씩 톺아보기를 택한 듯 숨을 고르고 나란히 벽에 기대 선 채 보호자의 손을 마주잡고 오른눈을 마주친 채 천천히 말을 건넸다. "솔직히 뭔가 상황이 좀 이상해서 여쭤보는 거긴 해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어서… 그런데, 제가 제대로 알아야 잘 도와드릴 수 있거든요. 다 괜찮으니까, 저에게 편하게 천천히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3. 따스한 보금자리는커녕 인생의 그늘이었을 뿐이었던 집을 박차고 나온 지 20여 년. 그 세월을 오롯이 혼자 아등바등 이겨내고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 가족과 따스한 보금자리를 일궈내어 이제는 이전의 명절보다 조금은 덜 외롭게 지내고 있던 어느 설날 갑자기 처절히 망가져 그의 인생에 나타난 잊고 지낸 아버지라는 '저 사람'. 아마 그를 집 밖으로 내몰아낸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그 놈의 술은 등진 세월동안 이미 '저 사람'을 처절히 망가뜨려 정작 지금은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수 개월 전 어지럽다고 해 데려간 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 진단에 이은 심혈관스텐트 시술에 알코올성 치매라는 이름의 위축된 대뇌와 정상일리 없는 간기능, 거기에 수 년간 방치되었을 당뇨병과 그 외의 합병증까지 확인한 오랜 중환자실 치료 끝에 일단 살려는 놓은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한 친척 아무개는 이후 몇개월간 시 외곽 비닐하우스에서 아마도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등유난로를 잘못 다뤄 발생한 화재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은 '저 사람'을 이제는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었는지, 며칠만에 기어코 그를 찾아내, 아들이라는 책임을 지우는 잔인한 인수인계를 해내고 말았던 것이다. 화재현장에서 멀지 않은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만, 온갖 병에 성치 않은 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으니 큰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소견서를 들고, 보호자가 된 지 고작 24시간도 채 되지 못해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당도하게 된 그는, 한참을 그저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던 의사M의 침묵을 깨려는 듯 이윽고 되물었다. "저, 선생님. 저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죠?" 4. 처치가 마무리된 후, 두 사람의 거주지와 동선을 고려하고, 연휴기간임에도 지속적으로 외래로 방문할 수 있어 비용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 할 수 있는 곳을 운 좋게 수소문한 의사 M.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했을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이번에도 기어코 선을 넘고 말았다. "저기, 보호자분" "네" "제가 뭐라고 함부로 말씀을 드릴 수는 없겠죠. 그래도 저에게 말씀을 해 주셨기에 저는 지금 아드님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네" "주제넘을 수 있는데,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어요. 본인은 잘못 없어요." "…" "그냥 상황이 이렇게 된 거 뿐이에요. 뭘 어떻게 해야할지 저라도 잘 모를 거 같아요. 그 누구도 몰라요. 어쨌든 아드님은, 아무런 잘못 없어요." 어깨를 토닥이는 의사의 팔에 매달리듯 두 다리를 겨우 버텨낸 채, 20여년의 원망과 회한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그의 울음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5.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어요", "아이 키우다 보면 이런 일 있을 수 있어요", "이렇게 해서 확인되는 경우도 있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가구에 부딪쳐 부러져버린 아이의 발가락도, 보글보글 궁금한 커피포트를 엎어 크게 데인 물집도, 울면서 데굴데굴 구르게 하는 요로결석도, 그리고 이미 늦어져버리게 퍼져버린 악성종양까지도, 차라리 나의 아픔이었으면 하는 애달픈 사랑에 가슴을 부여잡고 울음을 참고 있는 가족. 그들이 가장 위로가 필요한 대상이라고 생각해 보호자에게 종종 느닷없이 불쑥 용서와 위로를 감히 건네곤 했던 의사M은, 이후로 더 신중해졌다고 한다. 진심을 담은 위로란 결코 쉽거나 가볍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신세한톡|우리는 모두 정치적이다 2019-05-07 06:00:40
올해 초, 연구를 위해 병원청소노동자 근로 실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면접을 진행하던 중 인권실태와 관련해 여러 번 듣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우리도 같은 사람이에요.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 주세요."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 환자, 보호자를 포함한 병원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러한 말은 소위 인간으로서 당당히 누려야할 권리,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힐 때 외치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인권이란 무엇일까? 인권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것 역시 의미 있지만, 현실에서 인권이란 말이 어디서 사용되고 적용되는지를 보면 그것을 유추할 수 있다. 바꿔 말해 인권의 범위를 볼 때 인권의 정의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범위는 적용되는 대상과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돌아가면 군주제를 타파하고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나설 때 인간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중산층 이상의 내국인 남성에게만 적용했으며, 적용되는 정도 역시 지금 정립되고 있는 건강권, 이동권, 재생산권 등의 개념들을 그 당시에 대입해보면 인권선언문은 심히 부족할 것이다. 아직 인권의 정의는 모르겠지만 인권의 범위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할 수 있다. 그러면 범위가 확장되기 전에는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존재가 인간으로 인정되고,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지만 침해 받았던 권리가 이제는 권리로 인정받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을 넘어서 비인간동물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기득권이 아니었던 모든 계층의 존재들은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역사적으로 셀 수 없이 피와 땀을 흘리며 투쟁해왔다. 이러한 투쟁 끝에 바꿔낸 사회가 그들을 인간이도록 만들었다. 즉 인권이란 사회가 만들고 규정하는 것이다. 지금은 오염되고 폄훼하는 용어로 돼버렸지만 이렇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정치적'인 사람이라 칭한다.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거나, 현재 국회에서 몸싸움과, 혐오 발언만 해대는 정치인들을 칭하는 속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사회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걸고 열심히 싸우는 사람 말이다. 그럼 여기서 의사는 어떤 위치에 있고, 있어야 할까. 내 주변의 의대생은 "난 정치는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주변의 의사는 단지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라고 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자신이 다 사회를 아는 듯 현 정부에 대해 입으로 비판만 한다. 이 사람들은 비정치적인 것일까? 아직 현재 법 제도에서 배제되고, 인권이 침해되는 존재들은 수없이 많다. 여성들은 드디어 재생산권을 인정받는 과정의 한 걸음을 디뎠고, 장애인의 이동권과 자립할 권리는 아직도 취약하며,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은 아직 죽지 않고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또한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지만 현재 국가는 의료산업 부흥을 위해 검증 받지 않는 의료기술을 도입하려 애쓰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일부의 존재에게 부족한 권리를 부여하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기득권들만의 위한 사회존속을 위해 애쓰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그것도 결국 정치적인 선택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치적이기에 우리의 말과 행동이 사회가 변화하는데 영향을 끼친다. 그 방향이 어떠냐에 따라 사회는 더 진보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고, 인권의 범위가 넓어질 수도 좁아질 수도 있다. 아무도 인권의 범위를 좀 좁힐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보이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만의 이익,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보는 편협한 인간일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줄 순 없다.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의 시작, 더 나아가 인권 향상의 시작 아닐까.
국민은 의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2019-04-29 12:00:58
대한민국 의료계의 가장 큰 행사인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가 막을 내렸다. 의료계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정국에 이번에는 내빈의 규모가 많이 줄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선거가 가까워져서인지 오히려 여느 총회보다도 많은 국회의원들이 참석하신 듯한 모습이었다. 특히 의료계의 중요한 행사마다 관심을 가져주시는 의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축사가 무척 인상 깊었다. 한 의원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다며 총회의 시작에 일침을 가했고, 다른 의원은 의사들의 사회성이 부족해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지적하였으며 또 다른 의원은 의사들이 말하는 것이 국민건강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것이지만 전혀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다르구나 싶다. 작년의 총회가 새 집행부 구성으로 뜨거웠다면 올해 총회는 의사 사회의 대원칙이라 할 수 있는 정관과 관계규정 개정안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를 위한 준비로 정관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지난 몇 달간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치며 정말 오랜 시간 토의를 했다. 중대한 사안인 만큼 첨예한 찬반 논쟁이 있었지만 대립에 이르지는 않았고 가능한 모든 안건에 대해 다수결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설득과 양보로 합의를 도출하고자 노력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과정에서 모든 위원들이 함께 가졌던 마음은 이것이 특정 집행부나 지역 내지는 직역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의료계 구성원 모두에 공명정대하게 작용하여 궁극적으로는 갈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도구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고심 끝에 내놓은 안이 정작 총회에서의 법·정관 소위원회에서는 시작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은 분명 보장되어야 하겠으나 일부 주장은 한편으로는 그 참신함이 놀라울 정도의 음모론에 가까운 수준이기도 하였다. 이 모든 과정에 참여했던 회원으로서 우리의 선한 의도를 왜곡하려는 시도와 이로 인해 정작 중요한 논의는 하지도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한바탕 논쟁을 거치고 난 이후의 결론은 다시 원점이라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지향하는 바는 같을 뿐 아니라 이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인데, 단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비난하는 과정은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볼 때 내분도 해결하지 못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작년 이맘때쯤, 국민들에게 투쟁 의지를 알리기 위해 의협 인터넷 방송국을 만들고 시작할 것이며 초기사업비로만 1억 원 정도에 가까운 지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의사협회는 방송 전문가도 아니고 홍보 전문가도 아니니 차라리 그 예산으로 전문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국민을 대상으로 이미 나락에 떨어진 의사들의 이미지 개선과 우리의 진정성을 알리고 소통할 방안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담당자는 컨설팅업체가 의료계에 대해 잘 모르니까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고 답하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시작된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 활동에 관하여 그동안의 홍보활동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에 관한 논의가 있자 담당자는 의사들에게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의사들은 이미 다 아는 얘기인데 무슨 필요이냐 하니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란다. 국민들은 이런 이야기에 관심도 없다고 하자 사실 아직은 확실히 대상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해 임시대의원총회에 이어 이번 정기총회에서도 대의원들은 집행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계속해서 큰 결단을 내리고 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도 십시일반으로 모은 회원들의 회비로 방송국을 만들어주었고, 올바른 것을 위한 투쟁에 전념하라며 격려하였으며, 한정된 인원으로 격무에 시달리는 이들의 노고를 안타깝게 여겨 정관을 고치고 집행부 인원을 대폭 증원하는데 동의하였다. 남 탓은 소위 무능력한 좌파의 특징이라고 흔히들 이야기 한다. 적어도 현 의협 집행부는 무능력하지 않고 좌파는 더더욱 아니다. 탓 할 거리를 어떻게든 줄여주기 위해 회원들은 노력해왔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같다는 믿음이 있기에 조금 더 인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기다리지 않는다. 총회에 참석하셨던 윤일규 의원께서는 축사의 첫 마디를 "의료계를 위해 일할 생각이 없다"는 단호한 선언으로 시작하시며, 그러나 "올바른 것을 말하겠다"고 덧붙이셨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도에서 벗어났다거나, 지나친 집단 이기심의 발로라거나, 또는 올바르지 않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어릴 때부터 자의이든 타의이든 간에 모범생의 삶만을 살아온 의사들에겐 옳지 못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개인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신문과 뉴스를 통해 적절히 편집된 의사집단의 모습을 보는 것만이 의료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국민과 사회에게 의사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이해해줄 정도의 여유가 남아있을까. 아니, 이 모든 것을 떠나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만약 의사가 아니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의사들의 모습에 공감할 수 있었을까.
의대생들이 의학교육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 2019-04-22 06:00:50
작년 '젊은의사포럼'에서 교육국 부스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생각하는 의학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설문조사를 받았었다. 먼저 의예과 1,2학년 학생들은 교양과목의 다양성 부족을, 의학과 1,2학년 학생들은 너무 많은 양의 내용이 몰려있다는 점과 학술적인 내용 외에 인문학적 소양을 높일 수 있는 활동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활동이 부재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의학과 3,4학년 학생들이 큰 문제점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체계화 되지 않은 실습교육이었다. 또한 교육국에서는 실습을 돌고 있는 의학과 3,4학년 6400명을 대상으로 작년 PK실습실태조사를 실시했지만 응답률은 571명 (약 8.9%)에 불과했다. 나도 작년에 병원 실습을 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목격했고 친구들과 건강한 비판의식이 담긴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었던 '34회 의학교육학술대회'에 의견을 내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대한민국의 모든 의과대학은 4년 혹은 6년을 주기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서 평가인증을 받아야 한다. 평가인증의 대상이 되는 학교는 해당 학교 학생회가 주축이 돼 학생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학생보고서는 의학교육인증평가 평가 항목에서 잘 드러나기 어려운 의학교육 전반에 대한 학생들의 주관적 생각이나, 학교 생활에서 불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제도/시설 등을 효과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개발됐다. 설문조사로 밝혀진 불편한 시설이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제도 등은 학생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학교 및 한국의학교육평가원으로 제출되며, 이 과정을 거쳐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설문조사에 대한 피드백에서 학생들이 신중한 답변을 고르지 않고 심지어 일부 학생은 동일한 답으로 통일을 해버리기까지 한다고 한다. 참으로 인상 깊은 피드백이었다. 올해 교육국장으로 일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단체 및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고,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들의 관심이 있더라도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교육환경을 제공해주는 분들은 학생들의 요구를 알 도리가 없다. 우리는 교육을 받는 주체로서 당당히 개선점과 요구사항을 말할 권리가 있다. 우리의 작은 목소리가 모이고 모여서 보다 나은 의학교육환경이 만들어지길 소망한다.
닥터 K, 메이드 인 코리아 2019-04-15 09:02:55
닥터 K가 일하는 병원은 환자들로 붐빈다. 환자를 위한 진정한 의료에 힘쓰는 닥터 K는 매 진료 무려 3분이나 되는 시간을 할애하며 환자를 위해 제일 비싼 비급여 약제를 처방, 병원 운영에 가장 도움이 되는 효율적인 진료를 한다. 환자의 건강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닥터 K는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 돈이야 말로 K의 가장 큰 자긍심이다. 물론 가끔씩 고도의 의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들은 닥터 K의 전문과도 아니고 닥터 K가 일하는 병원 수준이 아니기에 3차병원을 추천한다. 위대한 경제 대국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중요한 부품이 되어버린 K는 문득 고등학생 때를 떠올려본다. 그때 생각했던 의사와 지금 현재 자신은 뭔가 많이 다른 듯 하다. 고등학생 K는 공부를 잘하는 똑똑한 모범생이었다. K는 자신의 능력을 인류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써야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의사라는 직업 이야말로 인류와 사회에 기여하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K는 투철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발휘한다는 온전한 자유의지로 열심히 공부하여 의대에 입학하였다. 물론, 온전한 자유의지라는 건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K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의대에서 K는 공장에서 제품이 나오듯 의사로 제조된다. 의료인력에 대해선 제조라는 말 대신 양성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 듯 하지만, 본질적으론 같은 듯 하다.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의대 교육과정과 전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K가 장착하게 되는 것은 수많은 의학 지식과 의사로서의 자부심, 추가 옵션으로 특권의식도 부여된다. 건강에 대해서 의사가 제일 잘 안다는 믿음과 힘든 과정을 겪었다는 피해의식까지 덤으로 장착한 의사가 제조된다. 의사 제조과정은 그렇게 복잡하진 않은데 공장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본과'라는 이름으로 4단계를 거치고 마지막으로 국가고시라는 불량테스트를 하게 되면 보건복지부 인증 의사가 만들어진다.(Made in Korea, designed by 보건복지부) 일반적으로 단계별 검열 과정이 있어 불량은 회수하여 유급이란 방법으로 각 단계를 다시 거치게 된다. 일반의 전문의 할 것 없이 실제로 사회가 요구하는 건 양질의 실력 있는 의사 라기보단 K 에게 부여된 면허번호와 서명이었다. 보건복지부 인증 면허증 및 자격증을 얻은 닥터 K는 자본주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것 때문에 K의 부모는 K를 의대에 보내려고 했고 의대 과정이 힘들다고 엄살은 피웠을 망정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괴로워하는 취업준비생들과는 전혀 다른 과정을 거쳤다. 컨베이어벨트는 꽃길은 아니었지만 어떤 길인지,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눈에 아주 잘 보이기 때문에 두려운 길은 아니었던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를 다 마치고 훌륭하게 양성된 의사 닥터 K는 대학병원에 남고자 하였다. 다만 경험 많고 숙달된 의사들이 교수라는 노동자로 자리잡고 있던 대학병원에 남는 것은 실패하였기에 K는 개원을 하게 된다. 의학적 지식 이외에 아무것도 없이 갑작스럽게 의원을 차린다고 잘 될 리는 없겠지만 은행은 K의 면허번호와 서명만 확인한 후 거금을 대출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안 그래도 포화된 수도권에서 병원 경영은 실패로 돌아갔고 K에게는 수억의 빚만 남겨졌다. 그렇지만 괜찮다. 보건복지부 인증 훌륭하게 양성된 의사인 닥터 K는 소위 '페이 닥터'라는 고용 형태의 노동자로 일하면 수년 내지 수십년 안에 빚을 결국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게 착취당하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컨베이어벨트에서 교육받은 특권의식과 의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덕분에 닥터 K는 스스로를 자본가 계급이라고 생각하면서 살 수 있다. K가 컨베이어벨트에서 공부했던 수많은 지식과 의사로서의 역량은 대부분 아무 쓸모가 없지만 그런 직업으로서의 소외감도 괜찮다. 의사로서 버는 돈, 명품 옷, 고급 자동차만 있으면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허세 가득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닥터 K는 허구의 인물이다. 필자는 예방의학과 레지던트이자 보건대학원 정책 연구실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이름에 K가 들어가긴 하지만 닥터 K와는 별개의 인물이다. K는 한국, Korea에서 따온 것으로 의사로서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현대 한국 의사의 모습 중 하나이다. 야구나 과거 특정 만화책에서 언급된 닥터 K는 유능한 투수를 의미하거나 사명감 깊은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필자의 닥터 K는 유능함 인증마크를 달아 놓은 자본주의의 노예에 가깝다. 이것이 필자가 관찰한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의사의 모습이다. 시스템에 의해 자기 결정권을 잃어버리고 기계의 부품처럼 일만 하는 처방 머신이 되어 박탈감과 소외감에 젖어가는 전문가 집단. 자아의 존재 의미를 경제능력 밖에 찾을 수 없게 되자 수많은 의사들은 돈 버는 데 목을 매게 되었고 이러한 의사들의 모습에 국민은 신뢰를 잃고 등돌리고 있다. 필자가 처음 의대에 들어갔을 때 몇가지 불편함을 느꼈는데 이는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교육과정에 있었다. 물론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을 살인적인 의대 교육과정과 그 뒤를 기다리고 있는 비 인간적인 전공의 수련 과정은 불편함의 원인이 아니다. 살인적 이라니, 그래 봤자 의사면허를 부여하는 국가고시에 떨어지는 인원은 전국에 10%도 안되고 비인간적인 전공의 수련 과정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훨씬 비인간적인 직업도 한국엔 많이 존재할 터이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뒤 약 10여년간의 삶이 단번에 결정되어 버리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박탈이 불편함의 원인이었다. 의대 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두번째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것은 의사 직종의 폐쇄성과 위계질서 때문이었다. 의대 동아리는 폐쇄적인 의대생 만을 위한 동아리가 상당히 많이 존재하였고 다른 과들과 교류가 극히 적었다. 뿐만 아니라 선후배 관계를 비롯해서 병원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위계질서가 굉장히 분명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 중에 들여온 일본의 도제식 교육 방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턴 레지던트 과정이야말로 도제식 교육의 폐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전문의가 되려면 병원 청소부터 해라 라는 것과도 비슷한 수련과정이다. 위계질서 하에서 상하 권력관계를 이용하여 전문성이나 역량 교육과는 전혀 무관해보이는 업무들마저 도맡아 수련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도제식 교육의 병원 문화를 의대생 때부터 일명 '개념' '예의' 라는 이름 하에 주입식으로 강제하게 된다. 의대생들은 어차피 졸업을 하더라도 폐쇄된 사회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끝없이 마주해야 할 선배들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권력 관계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매년 컨베이어벨트에 의해 주입되는 공부도 양이 많다 보니 선후배 관계, 또는 윗년차 아랫년차 간의 지식 차이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지식의 권력 차이, 경험의 권력 차이에 의해 위계를 깨뜨릴 수도 없고 무조건 "네 죄송합니다"로 일관된다. 위계 질서 내에서 의견 표현의 자유가 떨어지면서 생기는 박탈감을 똑같이 후배들에게 권력 남용의 형태로 의견 강요가 이루어진다. 물론 많은 한국사회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적어도 필자의 경험에서 의대는 대학이라고 하기 보단 의사 제조 공장에 더 가까워 보인다. 개성은 비정상으로 규정하여 환자와 같이 취급하고 자유로운 의견은 경험의 결핍으로 인한 통찰력의 부족함으로 취부하여 묵살당한다. 심지어 필자의 의대에서 자주 쓰던 말이 있는데 '닥암'이었다. '닥암'은 '닥치고 암기해'의 약자로 공부하다가 무언가 궁금하여 질문을 하는 동기들에게 서로 학업을 독려하던 용어이다. 의학을 이해하는 것보단 그냥 암기하는 게 빠를 뿐만 아니라 암기하지 않으면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최종적으로 유급이라는 불량 판정을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닥암'이 무슨 학문이며 공부이겠으며 '닥암'을 할 수밖에 없는 장소가 무슨 대학인가. 고등학교 수능도 이보단 더 학문에 가까웠다. 의대는 의사 제조 공장 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떠한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할 것 일까. 문제는 시스템이라고 본다. 닥터 K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느꼈던 가장 큰 불편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K가 어릴 적 꿈꿔왔던 이상향, 즉 인류 사회에 기여하려고 했다는 점과 현재 닥터 K의 속물적인 모습 사이에 있는 괴리에 있다. 이러한 인생의 원인은 K가 잘못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든 시스템에 있다. 공장처럼 의사를 제조하는 시스템. 우수한 의료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시스템. 인류에 대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묵살하는 시스템. 경제적인 성공과 발전에 지나친 가치를 두는 시스템. 똑똑했던 고등학생을 사회의 부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입막음 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 모든 시스템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시스템. 의대 교육도, 전공의 수련 과정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있는 추가적인 모든 의사들을 관리하는 교육과정도 공장처럼 양성되는 의사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고민하는 의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인력은 양성하는 게 아니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의사를 왜 양성하는가. 의사는 양성하는 게 아니라 깨우치는 것이다. 환자를 위하는 방법을 깨우치고 인류를 위해 고민하는 법을 깨우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깨우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1년 의사 배출 인원, 1년 전문의 배출 인원 이런 식의 양적 접근은 교육이나 수련 방법에 잘못되었다. 무슨 이산화탄소처럼 배출량을 측정하여 의료인력의 수급을 정한다니, 접근법이 매우 이상하다. 의사 한 명, 환자 한 명, 사람 한 명의 고통을 덜기 위해, 박탈과 소외감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지지할 것이고 어떤 관점을 취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정답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 2019-04-07 16:00:59
의학과 정책의 공통점은 '객관적 판단의 집결'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실습을 시작한 지 이제 7주차이지만, 수많은 판단이 짧은 시간 내에 오차 없이 결정돼야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순전히 학문적 열망에서 시작한 의학공부와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협회 (이하 의대협) 정책국 활동은 의외로 감정선 여린 나를 이성적인 사람으로 담금질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작년에는 교내 테니스동아리 회장으로서 다른 사람이 부여하는 역할들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그려내는 연습을 했다. 그 중 새로운 테니스규칙을 만들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테니스규칙이 필요했던 이유는 의학전문대학원 체육대회 종목에 테니스를 포함시키기 위해서였다. 기존 종목인 농구, 축구, 발야구와 달리 테니스는 규칙과 기본자세를 익히는데 시간투자가 꽤나 필요한 운동이다. 만약 대회 종목으로 채택되더라도 주로 테니스동아리 소속 학생이 참가해 우승할 확률이 높고, 이는 학생 전원이 참여하는 체육대회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년에는 학년별 대항으로 테니스 시합을 했다. 우선 학생회에서 체육대회 일정을 조율하면서 잉여시간이 예상됐고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결국 우리 동아리 측에 제안이 들어왔고, 모두가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나 흔쾌히 수락했다. 테니스는 남녀 혼합복식이 가능하고, 네트경기라서 부상이 적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 방식을 변경해서라도 종목에 포함된다면 테니스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고, 호응을 얻어 자리잡는다면 내후년쯤에는 정식규칙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서 3월 훈련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했던 테니스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테니스경기를 구상했다. 승패 없이 테니스 공과 친해지려고 했던 놀이를 점수화하는 경기로 만들자니,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브방식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새로운 경기방식에 맞는 득점 인정과 반칙 상황을 예상하고 정확히 계산해야 했다. 애초부터 경기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가 필수조건이므로 동아리 동기들과 시뮬레이션 동영상을 촬영해 경기규칙과 함께 배포했다. 또한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수많은 검토 끝에 경기 흐름과 규칙에 대한 일관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체육대회에서 테니스를 치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시행하기까지 두 가지만 고려했다. 테니스를 즐기게 하자는 목표와 이에 대한 합의이다. 그 외 발생한 문제는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다른 방안으로 바꾸었다. 또한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심판 및 선수 선별방식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방향성만 있을 뿐 정답은 없었고, 상황과 맥락에 맞는 타당한 판단 하에 결정하려고 노력했다. 정책 적용 대상 간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의료정책도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정책국원으로서 과제가 주어지면 이슈에 대한 해결책보다 배경을 먼저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당장의 포트폴리오와 발표준비 그리고 시험이 더 이상의 생각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지만… 모두 잘 해결해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칼럼|왜 환자는 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울까 2019-04-02 06:00:30
왜 환자는 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울까. 지인의 가족이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고 한다. 만나려고 할 때마다 ‘다른 환자를 보고 있다’ ‘응급실에있다’ ‘수술방에 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통해서라도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지만, 중환자병동 간호사를 통해서만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에 속이 터져버릴 것 같다고 했다. 지인이 물었다. 정말 주치의들은 이렇게 바쁜 거냐고. 그래서 대답했다. 안타깝지만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바쁠 거라고. 얼마 전, 인천 소재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선생님이 사망했다. 한참 주치의 업무를 도맡아 하는 저(低)년차 전공의 선생님이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근무시간이 주당 평균 100시간이 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병원 측 추정으로도 최소 주당 80시간 가까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망 전날에는 제대로 된 수면시간 없이 연속 36시간의 당직 근무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당 52시간이 제한인 일반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근무형태다. 이것은 비단 전공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윤한덕 선생님도 지난 달 과로로 순직했다. 설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센터장으로서 일터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간호사의 3교대 근무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목소리가 많다. 야간 근무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임신까지도 순번을 매겨서 해야 한다는 보도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전공의들에게는 이러한 3교대 근무마저도 꿈같은 일이다. 전공의 근무를 3교대 혹은 2교대 수준으로라도 운영해보자는 논의에 전공의 내부에서조차 실현이 힘들지 않겠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임신과 출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의사도 누군가의 딸이고 엄마이길 원한다. 그러나 임신한 전공의들은 때론 배가 불러오기 전까지 본인의 임신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저출산 대책을 위해 출범한 정부기관 조차, 임신 전공의의 모성보호 문제에는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에서, 환자-의사 간 소통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바로 전공의의 ‘열악한 근무환경’이다. 주치의로서 맡아야 하는 '과도한 업무량'은 결국 그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진(Burn-out)시킨다. 매번 자신이 돌보던 환자의 죽음에 마주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감정적으로 지치고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감정을 숨기거나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새로운 환자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하며, 끊임없는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과로에 시달리는 전공의는 환자를 직접 만나는 데에 제대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을 뿐더러, 불친절해지거나 심지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전공의의 과로는 환자와의 소통은 물론 환자의 안전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어느 누구도 며칠 잠을 못자고 수술 도중 꾸벅꾸벅 조는 전공의에게 수술 받길 바라지 않겠지만, 현실과 바람은 때론 너무 다르다. 그럼에도 대형병원에서는 누구도 전공의의 과도한 업무를 나누거나 대신하려는 직역이 없다. 그러면 그 많던 의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경우마다 다르겠지만, 강남에 새로 오픈한 성형외과나 피부과가 넘쳐나는 통에 채 1년을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이른바 미용 진료와 같은 보험 외(外) 진료로 의사들이 내몰리는 것이다. 물론 성형외과와 피부과의 미용 진료가 모두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미용 진료도 환자의 수요가 있는 만큼 충분히 가치를 인정 받을 만하다. 문제는 산부인과나 흉부외과와 같이 이른바 '비인기과'의 전문의들이 전공의 때 배운 본업에 안정적으로 종사하지 못하고, 원치 않게 미용 진료로 내몰리는 현실이다. 한쪽은 의사가 부족한데, 다른 한쪽은 의사가 넘쳐서 망하고 있다. 여기 의료계에서는, 나름의 고민 끝에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바로 '입원전담의사' 제도다. '호스피탈리스트'라고도 불리는 입원전담의사 제도는 말 그대로 입원한 환자를 전담하여 보는 의사를 별도로 병원에 고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이 제도는 세부적인 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또 다시 '전공의 5년차'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에 입원전담의사의 지원을 꺼리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업무 강도를 설정하되, 현재 전공의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분담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제도의 확대와 안착을 위해, 가능하면 정규직과 같은 안정적인 고용 신분을 보장하여, 그들이 다시 보험 외(外) 진료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문제는 입원전담의사를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고용하고 제도를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킬 재원이다. 성공한 입원전담의사 제도는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뿐만 아니라, 환자의 안전에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가의 재원은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 안전하게 치료받을 환자의 권리를 위해, 입원전담의사 제도를 정착시킬 진일보한 논의와 재원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칼럼|세계 의대생 총회에서 인권을 외치다 2019-03-25 06:00:10
의과대학 입학 이후 예과 1학년으로 별 생각없이 지내던 내가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세계 의대생 총회 참여였다. 국제보건에 관심을 가지고 학교에 입학했기에,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협회(이하 의대협)에서 올린 세계 의대생 총회 한국 파견단 모집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떨어지더라도 붙을 때까지 매년 지원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했고, 운 좋게 파견단으로 참여하게 됐다. 그 해 2016년 세계 의대생 총회는 멕시코에서 열렸다. 세계 의대생 총회는 여러 주제로 나뉘어 주제마다 세션이 있었고, 그 중 인권 및 평화 부서로 파견됐다. 세계의대생협회는 각 나라의 의료계 학생들의 학생 협회가 모여 이루어진 단체로, 세계의대생 총회를 연 2회, 매번 다른 나라에서 연다. 총회의 많은 시간이 학생들이 진행하는 학생세션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중 두 개 세션이 기억에 남았다. 첫 번째 세션은 '너가 누리는 것들은 마땅히 누리는 것인가?'라는 이름으로 Privilege, 특권에 관한 세션이다. HIV positive 인 난민, 남자 위주의 직장에서 레즈비언 여자 등 소수자의 역할을 가정하고 여러 상황이 주어져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알아보는 Privilege walk 로 시작했다. 이후 Norm(비공식적으로 정상이라 여겨지는 행태), stereotype(특정 집단에 대한 일반화된 생각), prejudice(stereotype 에 기반한 감정), discrimination(prejudice에 기반해 불이익을 주는 것) 등의 개념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 ally(협력자)가 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번째는 world trade, 세계 무역을 해보는 세션이다. 그냥 무역 시뮬레이션을 예상했는데 상당히 골 때리는 시간이었다. 각 팀은 종이, 가위, 자 등으로 삼각형, 원 등을 만들어 진행자들에게 팔면 점수를 얻는다. 팀마다 종이, 가위, 자 배분이 달랐다. 진행자는 상당히 편파적이어서 어떤 팀은 굉장히 점수를 후하게 주고, 어떤 조는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받아주지 않았다. 종이를 많이 가진 조는 가위, 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었고 (손으로 자른 것은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가위 가진 조가 종이 가진 조를 착취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불공정한 세계 무역 안에서 개발도상국이 경제적으로 이용당하는 그 억울함을 간접적으로 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인권 및 평화 세션은 이 세상이 정의롭고 별 탈 없이 돌아가는 줄 알았던 그 당시의 나에게, 인권의 개념은 존재하지만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인권은 단순히 동동 떠있는 개념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차별과 억압에 맞서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인권 및 평화 세션의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인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의대생들로써 자신의 지역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하며, 이를 세계 의대생 총회에서 나누었다. 세션 진행자는 학생들이었고, 프로그램은 강연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이 직접 체험하는 활동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행자와 참여자 간 의견교환이 활발했다. 세계 의대생 총회는 내 대학생활의 전환점이 됐다. 총회에서 배운 것들을 한국 의대생들에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의대협 활동을 시작했고,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완벽하게 생각했던 세계의대생협회의 한계도 느끼고 (가장 아쉬웠던 점은 총회가 유럽 국가 중심으로 움직이고, 아직도 인종차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도입할 수 없는 점들도 보였다. 그러나, 한국 의대생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 청사진에는 세계의대생협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의대생들이 더 건강한 세계를 위해 미래 의료계 리더로서 준비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think global) 주위 사회의 문제들에 행동하는 (act local) 단체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일매일 본과 수업에 시달리면서도 대한민국 의대생들이 어떤 비전,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행동해 나가야 할 지 생각하며 희망을 가진다.
|칼럼| 인턴도 전공의입니다 2019-03-18 05:30:10
어느 당직 날 밤 1시간마다 동맥혈채혈을 했던 적이 있다. 환자도 밤새 6번쯤 동맥을 찔렸다. 한두 번 반복되니 결과가 궁금했다. 병동으로 내려갔다가 채혈을 하고 당직실로 돌아와서 침대에 눕지 않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환자는 말기 암 환자였다. 채혈 검사는 그 전의 결과와 비교해서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처방도 추가된 것이 없었다. 잠시 후에 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동맥혈채혈 있습니다"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됐다. 함께 당직을 섰던 내과 레지던트의 생각이 아주 궁금한 밤이었다. 대체 무엇을 알고 싶어서 또 처방을 냈을까. 2018년도 수련규칙 표준안에 제시되어있는 정의에 의하면 '인턴'이란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으로서 일정한 수련병원에 전속되어 임상 각 과목의 실기를 수련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턴의 업무는 실기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실기를 수련하는 사람이 실기 중심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행의 인턴 수련 과정은 수련의 측면에서 합리성과는 거리가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는 현장에서 마주치는 흔한 문제 상황 중 하나일 뿐이다. 인턴 업무 과정을 자세히 보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인턴의 업무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레지던트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처방을 내리면 간호사가 확인하고, 인턴에게 시행할 실기의 내용을 전달하면 인턴은 실기를 시행한다. 이러한 업무 흐름 상 인턴은 자연스럽게 의학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핵심인 ‘레지던트가 처방을 내리는 단계’와 ‘실기의 결과를 통해 다음 처방을 결정하는 단계’ 과정에서 소외된다. 심전도, 소독, 채혈 등 인턴이 수행하는 실기는 대체로 난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실기 자체에 능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인턴이 실기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시점부터는 수련이 아닌 근로를 하는 셈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다보니 인턴도 수련을 받는 전공의라는 사실이 등한시되는 모양새이다. 2018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실시한 전공의 수련병원 평가 비교분석에서 수련환경에 대한 인턴들의 의견을 알 수 있다. 각 연차의 학습 과정이 적절하게 구성되어있는지에 대한 항목에서 인턴 응답자 총 934명 중 약 28%인 269명이 '전혀 아니다'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보통'이라고 답한 이는 454명으로 총 응답자 중 77%인 723명이 '인턴의 학습 과정이 적절하게 구성되어있는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현행 인턴 과정을 수료한 의사는 많은 실기에 능숙하다. 그러나 임상적 상황을 판단하여 검사와 처치를 결정하는 의학적 의사결정은 미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학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 실제로 인턴과 레지던트가 바뀌는 3월을 전후로 예비 레지던트를 대상으로 자체 사전교육을 시행하는 과가 점차 늘고 있다. 인턴은 1년간 주 최소 80시간의 수련을 한다. 그럼에도 별도의 사전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결국 이들 과에서도 인턴 학습 과정이 레지던트가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한 때 인턴제 폐지론이 제기되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턴과 레지던트는 일련의 수련 과정이다. 인턴 수련 과정은 적절한 방법을 통해 레지던트 과정에서 수행하게 되는 업무를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실기 수련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인턴 수련 과정에서 의학적 의사결정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새로운 수련이 시작되는 3월이다. 병원 곳곳에서 인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선배 의사들이 병원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인턴들도 전공의이고 피교육자라는 쉬운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 힘든 수련을 거치며 얻은 값진 경험을 인턴에게도 조금은 나눠줬으면 한다. 수련을 위해 내딛은 첫 발걸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을 기대한다.
|칼럼|지금 이곳에서, 의대생으로 산다는 것 2019-03-13 12:00:36
한참 학기가 시작하는 무렵인 3월 초, 슬로베니아의 작은 마을 포르토즈에서는 전 세계 136개국의 의대생들이 모이는 세계의대생협회연합(International Federation of Medical Student Association) 총회가 일주일간 열렸다. 한국에선 나를 포함한 6명의 작은 파견단이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와 나라를 대표해 참석했다. 총회에서는 매일 적게는 40개에서 많게는 60개의 안건이 상정되고 이를 토론하기 위한 낮 시간과 투표하는 저녁 시간이 5일 동안 반복된다. 안건의 종류로는 각 나라의 정부와 국제보건기구와 같은 국제기관 등에 전달하는 정책 제안, 국가 가입 및 퇴출, 헌법 및 회칙 개정, 임원진 선출 등 매우 다양했다. 그 외에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건강 관련 주제들이 낮이나 밤이나 회의장과 식탁에 올랐다. 세계의대생연합협회 총회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점들도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모든 나라가 투표를 하기 전에 안건에 대해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메일 서버를 통해 미리 공유하고 그 자리에서 낭독한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첨예한 정치적 발언들이 오가기도 했고 거의 모든 나라가 동의의 의미로 국기를 들어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 워낙 다들 활발하게 참여하다 보니 일주일 동안 읽은 메일의 수만 하더라도 150개가 넘었다. 또 다른 점은 수많은 의사결정이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민주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안건은 그게 설령 1년 동안 연합을 이끌 임원진 선거라고 해도 가차 없이 폐기하자는 의사진행 발언을 한다. 또한 독자적인 기구인 의결신임위원회와 자문위원회는 총회 내내 모든 사항이 연합이 추구하는 가치와 헌법, 그리고 회칙에 따라 이뤄지는지 감독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세계의대생협회연합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비정부기구가 될 수 있었고 가장 큰 청년 정치 참여 기구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청년 참여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의 분위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각 나라의 정부 및 교육 기관, 그리고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많은 청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이들의 건강을 위해 의대생들은 나름의 책임감을 지니고 오랜 기간 동안 노력해왔다. 반면, 이곳 한국의 의대생들은 우리나라 보건 정책은 물론 학교 내의 의사결정에서조차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있다. 학생도, 의사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앵무새처럼 선배들이 하는 말과 생각들을 따라 하도록 종용받고 이를 벗어나면 가차 없이 낙오자로 낙인찍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학생은 좌절을 경험하고 상처받는다. 총회 내내 가슴이 뛰었던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생채기로 가득한 내가, 사는 이곳의 너머를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의대생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대답하기 어렵지만 분명 어디에선가 노력과 책임감은 자리를 넓혀가고 있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잠을 조금 더 줄여가며 노력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삼삼오오 모여 시작하는 봉사활동부터 매일 쏟아지는 의료 관련 뉴스를 보며 내뱉는 한숨까지 모두가 그들이 조금씩 나아가는 방식이다. 그렇게 한국의 의대생들은 지금 이곳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총회가 자리한 포르토즈 앞 투명한 아드리아해를 함께 산책하며 파견단 중 한 친구가 재밌는 사실을 알려줬다. 거대한 해류는 계산할 수 있어도 자갈 사이로 스미는 작은 물결들은 어떤 방향으로 들이칠지 현대 기술로도 계산할 수 없다고 했다. 만오천 명이 만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작은 물결들이 큰 해류가 되어 어느 순간 포르토즈 앞바다에 닿길 기대한다.
의전원생이 전하는 일본 온천 여행기⑨ 2019-03-05 10:41:56
오늘은 일본 온천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숙소에 도착해서 바로 잠 든 후에 알람도 맞추지 않고 잠에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늦은 오후인데다가 마지막 날이라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않았기 때문에 서두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짧은 여행의 특성 상 늘 아쉬운 점은 숙소를 자주 옮겨 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관광할 거리가 한 곳에만 모여있다면 짧은 일정일 지라도 한 숙소에만 머무를 수 있지만, 이번처럼 여러 장소를 이동할 경우에는 숙소 역시도 매일 옮겨다닐 수 밖에 없다. 물론 숙소를 옮기면 매일 다른 곳에서 머무는 색다른 재미도 있을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늘 유랑 다니는 완전한 여행객으로서의 여행보다는 그 지역에 사는 거주민처럼 하는 느긋한 여행을 더 선호하는 지라 그렇다. 예를 들어서 여행지에 가서 여행기간 내내 숙소 한 곳에만 머무는 경우에는 매일같이 이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서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여유를 부리며 누워서 쉬다가 늦은 오후에 슬리퍼만 신고 주변 마을을 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숙소를 이동해야 한다면 짐도 한 번을 제대로 풀지 못한다. 그 상태로 다시 싸서 다음날 나갈 생각을 하면 차마 짐을 풀어 둘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체크아웃 시간을 매일 확인해서 부지런히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는 처음 온 날처럼 잘 갖춰 입고 짐을 그대로 바리바리 싸서 또 다시 여행객처럼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한다. 이렇게 되면 진짜 그 지역을 편안하게 둘러보기가 힘들어진다. 무거움 짐은 다 내려놓고, 옷차림새도 마음도 편안하게 마을 곳곳 구석까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면 해당 지역의 거주민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삶을 보다 가까이 살펴볼 기회도 생긴다. 이번 여행은 여러 곳을 둘러보겠다는 욕심에 미처 이런 여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다시 온다면 한 지역에 터를 잡고 좀 더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고 싶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는 아침을 먹고 공항에 가기 전에 일본의 한 맥주공장에서 운영하는 투어를 가 볼 생각이었다. 관광객들에게 나름 인기가 많은 코스여서 일찍이 예약이 마감되곤 하는데, 여행 10일 전 쯤 한 타임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바로 예약을 해두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탓에 투어를 한국어로 진행한다고 하여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예약 시간에만 잘 맞춰 갈 요량이었다. 바로 공항에 갈 생각이라 짐을 싸서 시간에 맞춰 노선대로 버스를 타고 맥주 공장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지금 투어에 참여할 수 없단다. 대체 왜 그랬던 건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을 잘못 알고 있어서 예약한 투어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하였고, 단체로 진행하는 특성상 이미 투어가 시작된 후에는 개별 입장이 불가하다고 한다. 투어를 못 하는 것 자체보다 버스를 타고 거기까지 갔는데 그냥 돌아오는 것이 아쉬워 몇 번 더 물어봤지만 이후 타임에 참여하는 것도 불가하다는 답변을 듣고 힘없이 후쿠오카역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텅 빈 일정에 시간도 많겠다 천천히 걸어왔는데,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는지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주변은 잘 구경하지도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식사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서 수차례 검색을 해서 명란 덮밥을 아주 잘하는 곳을 찾았는데 아뿔싸, 내 주머니에 있는 호텔 자전거 키를 발견했다. 오전에 일찍 호텔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탈 생각으로 챙겨둔 건데 자전거 높이가 너무 높아서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었다. 그런데 키를 돌려주지 않고 체크아웃을 해버린 것이다. 결국 맥주공장도 가지 못하고, 원하던 마지막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다시 호텔로 자전거 키를 돌려주러 갔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이도저도 아닌 날이 되버렸다. 아무 일도 없이 무난하게 여행을 마무리 하나 싶었는데 늘 그러지 못하도록 방해할 만한 요소들이 도처에 있나보다. 느긋하게 시작한 하루였지만 고생 아닌 고생을 하다보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공항에 가기 전에 후쿠오카 역에서 크로와상 몇 개만 사들고 비행기를 타러갔다. 마지막 날의 실수로 이번 여행의 즐거움이 반감된 것은 아니다.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며 잘 여행하다가 마지막날 그저 우스운 마무리에 헛웃음만 날 뿐이다.
|칼럼|전공의법이 가야할 길 2019-03-05 05:30:56
아직도 기억에 남는 법대 시험문제가 있다. 복잡한 계약 상황을 주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묻는 문제였는데 각종 난해한 민사소송과 계약이론이 보기로 제시됐지만, 흥미롭게도 정답은 '당사자간의 대화와 타협'이었다. 올해로 시행된지 두 번째 해에 접어든 전공의법은 일선 수련기관의 근로와 수련환경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나 때는 말이야” 라는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전공의들은 이제 스스로의 근로환경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법에서 규정한 기준을 따르지 못하는 수련기관들은 적어도 양심의 가책정도는 느끼지 않나 싶다. 심지어 의료계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도 전공의법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바뀔 수 없을 것 같던 근로와 수련환경의 기틀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한 많은 이들의 헌신과 과도기의 혼란을 묵묵히 인내해준 선배 전공의들의 희생 덕분이리라. 그럼에도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 접수되는 민원 가운데는 전공의법은 고사하고 2019년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 심심찮다. 이러한 회원들을 위해 대전협은 원칙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전공의 교육수련에 관련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수평위)에 정식으로 민원접수를 하시도록 안내하곤 하는데, 문제는 수평위가 익명이나 당사자 본인 이외의 대리 민원을 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감정적 대응이나 찔러나 보자는 식의 음해성 민원이 난무하여 행정력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음에 공감하지만, 잃을 것이 많은 전공의에게 실명접수는 민원창구가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대전협이 민원인에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도움은 전공의 현안에 관심을 가져주는 언론인들의 협조를 받아 ‘크게 터트리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이런 접근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지만 장담컨대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언론화의 즉각적인 효과를 경험해본 전공의들은 12명의 위원 가운데 전공의가 고작 2명뿐인 수평위의 사실상 답이 정해진 논의 과정에 점점 더 회의적으로 되어갈 수밖에 없으며, 사실상 수평위와 동질체인 병원협회나 수련병원협의회 등을 대표하는 교수위원들 역시 대전협을 소위 노조보다 더 독한 녀석들로 여긴다. 서로를 믿지 못하다 보니 대화와 타협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서로 법조문만 내세우는 안타까운 광경이 연출된다. 법은 만능이 아니다. 처음 이 법을 제정하는 데 깊게 관여한 이들이나 수년간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준수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일선 현장에서는 나름의 아쉬움이나 불만이 있겠지만 이를 이유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결국에는 당사자 모두의 손발이 묶여 아무런 기능도 할 수 없는 맹목적인 구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법은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옳고 그름을 가릴 최소한의 준거로 기능할 수 있다면 족하며 전공의법은 적어도 ‘근로’의 관점에서는 당해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본다. 이제는 다시 한번 지혜를 모아 전공의법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할 때이다. 전공의들의 근로환경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이들이 교육생으로서 충분한 배움 가운데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국 대부분의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은 교육수련병원으로서 배움의 과정에 있는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과 전공의가 진료과정에 당연히 참여해야 하지만, 수련기관이나 주관부처 누구도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의사가 아닌게 들통날까봐 명찰을 가려야 하는 의대·의전원 실습학생, 남학생은 내보내라는 환자들의 요구, 분만개조에 한 번도 참여해보지 못한 인턴, 몇 년차에 무엇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워야하는지 모르는 레지던트는 우리 의학교육의 현 주소이다. 엄밀히 말해 혹독한 근로환경은 개인이 몇 년 참으면 끝날 일이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의사는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우리가 교육에 무지한 동안 의학 선진국은 아카데믹메디슨(academic medicine)을 위해 경주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양질의 교육수련환경을 조성하고 의학의 저변을 넓히며 국민을 위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도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본다면, 이번에는 서로가 법조문을 들이밀고 기자를 찾아다니며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이 공동선과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함께 해야 한다는 다짐에서의 출발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