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여행기7| 호이안을 찾는 이유 2019-09-21 19:21:41
호캉스, 즉 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를 염두에 두고 여행을 왔지만 그래도 나름 한국을 벗어나 베트남이라는 외국을 온 것이기에 오롯이 방 안에서만 지내다 가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한국보다 더 더운 날씨였기에 더위가 두려웠지만 그래도 서울과는 다른 베트남의 더위를 한번 쯤은 겪어보고 싶었다. 최대한 태양 볕에 타지 않도록 원단은 얇지만 긴 옷을 입고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나갔는데 이런 모든 조치는 역부족이었다. 리조트 밖으로 나서는 순간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그냥 더운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후덥지근해서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더위였다. 이왕 나온 김에 조금이라도 바깥 구경을 할 생각으로 일단 시내로 데려다 주는 리조트의 셔틀버스에 올라탔는데, 가는 내내 이게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막상 나갔다가 곧바로 돌아와야 할 것 같은데 고민을 하는 틈에 버스는 이미 시내에 다다르고 있었다. 함께 셔틀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그다지 힘들어보이지 않았다. 원래 이 정도로 더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인지 이미 오랜 시간 베트남에서 여행하며 익숙해 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엄살을 떠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다른 사람들은 설레는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려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다낭에서는 시내를 거의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다낭만의 특색은 잘 모르겠으나 호이안은 작은 골목길을 따라서 온갖 상점들이 쭉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었고, 다낭보다 좁은 길이지만 길가에 오토바이가 무척이나 많았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떼지어 다니니 오토바이에서 나오는 매연과 열기가 더해져 길가를 걷는 일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호이안에서의 즐거움은 골목길을 걸어다니며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것인데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어렵다보니 억지로 즐거움을 찾아 나선 기분까지 들었다. 베트남에 가면 한국사람들이 흔히 찾는 콩카페가 있는데, 달달한 커피로 유명한 곳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아메리카노는 즐기지 않지만 그래도 단 맛이 나는 커피는 좋아하는지라 베트남에 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도를 보면서 그곳을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을 만큼의 더위였다. 하지만 우리를 다시 데리러 오는 셔틀버스는 앞으로 한 시간 남짓이 지나야 오기 때문에 강제로 한 시간의 여행을 해야하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발길 닿는 대로, 다만 길을 잃을 만큼 너무 멀리는 가지 않기 위해 신경 쓰면서 돌아 다녔는데 조금씩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인파가 점점 더 많이 몰리기 시작했다. 더위가 좀 풀리려 해서 그런건가? 싶었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인파들 너머로 많은 사람들이 호이안을 찾는 이유가 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는 내 마음도 어쩔 수 없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다낭여행기6| 최상의 휴가 2019-09-18 19:16:42
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리조트 안으로 들어가니 보통의 호텔들과는 달리 어두운 톤의 원목 위주로 이루어진 로비가 반기고 있었다. 대리석과 같은 차가운 소재보다는 원목 탁자, 지붕, 협탁 등을 이용한 인테리어라서 좀 더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원 안내에 따라 로비 의자에 앉아 기다리니 갖가지 종류의 열대 과일을 가져다 주었다. 예쁜 접시에 놓인 과일을 먹으면서 앞으로의 리조트 생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설렘이 배가 되었다. 로비 뒤쪽으로 보이는 풀장과 숲길처럼 마련된 조용한 산책길은 리조트에서의 휴식을 만끽할 수 있게끔 조성된 최상의 조화였다. 이 리조트는 구관과 신관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구관은 좀 더 클래식한 느낌이라면 신관은 그 이름처럼 현대적이고 넓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보다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한국에서 미리 알아보았을 때는 구관의 투숙객들이 신관의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구관과 신관의 시설 이용 간에 따로 제한을 두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신관과 구관이 갖고 있는 풀장 종류도 달랐지만 둘 다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베트남이 더운 편인 것은 알았지만 방문했을 당시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덥게 느껴졌다. 사실 이럴 것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리조트에 머무는 시간이 길 것이라 생각하고 계획을 짰으나 정말로 시내에 나가기 힘들 정도로 잠시 바깥에만 나가도 땀이 줄줄 흘렀다. 이러다 호이안 시내를 한 번도 못 보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 리조트에서 많이 쉬고 휴양하는 것이 가장 주된 여행의 목적이었기에 짐을 풀고 그 다음 일정에 대한 부담감은 내려놓기로 하였다. 로비와 마찬가지로 룸 인테리어도 원목으로 꾸며진 방이었고, 널찍한 공간에 은은한 나무향과 아로마향이 어우러져 휴식을 취하기에 제격이었다. 가만히 누워 쉬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휴가는 없겠다 싶었다. 요새 ‘호캉스’(호텔과 바캉스를 합친 신조어)가 유행하는데 어차피 호텔에서 쉬는 것이라면 무엇을 위해 타지로 여행을 가느냐 하는 반문이 있기도 하지만 호캉스를 즐겨 보면 그곳이 어디든 간에 한 번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는 이리 저리 바쁘게 돌아다니고 최대한 많이 보고 겪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여행을 곧 휴가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어딘가로 가서 별 것을 하지 않아도, 특별한 것을 경험하지 않아도 그것이 곧 여행이자 휴가가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 휴가의 형태가 자유로운 방식으로 다양화되면서 호캉스도 일상 탈출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닐까 싶다. 반나절 정도 쉬었을까. 뜨거운 태양이 어느덧 내려앉을 기운이 보이자 석양을 보면서 한가로이 수영을 하면 좋겠다 싶어 수영할 채비를 하고 호텔 일층으로 내려왔다. 오후가 되면서 더위가 한 풀 꺾이고 풀장 바로 옆에 야외석을 마련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한국에서 종종 먹었던 분짜라는 베트남 음식을 시켰는데 대단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소소하게 맛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뷔페식으로 이것저것 먹는 것 보다는 음식 한 두 개만 시켜놓고 그 자체의 맛에 집중하면서 먹는 것이 더 먹는 기쁨을 배가 시키는 것 같다. 음식도 맛있고, 날씨도 괜찮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하니 이보다 더 좋은 휴가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좋은 밤이었다.
|다낭여행기5|다낭에서 호이안으로 2019-09-15 17:02:10
한국과 베트남은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반복된 비행기 지연 탓에 피곤해서 그런지 여행 첫 날 치고 푹 잘 수 있었다. 첫날은 저렴한 값에 공항 근처 호텔을 구했지만 나름 픽업과 조식이 포함된 곳이었기에 가볍게 나마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제는 너무 늦은 시간에 호텔에 도착해서 부산스럽고 정돈이 잘 되지 않은 모습이었기에 조식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날 직원이 알려준 대로 7층에 있는 식당에 갔더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이었고, 아침 뷔페 종류도 많아 보였다. 베트남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더니 직원이 다가와서 원하는 쌀국수 종류가 있는지 물었다. 다른 메뉴들은 뷔페식으로 자유롭게 먹으면 되고 쌀국수는 해산물과 고기 중에 선택하면 조리해서 직접 가져다 주는 방식이었다. 보통 현지에서 먹는 쌀국수는 향신료의 향이 강해서 한국사람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걱정이 되었고, 인터넷에서 고수는 빼달라는 표현을 급하게 찾아서 직원에게 말하니 필자 외에도 이런 표현을 하는 한국인이 많았는지 알겠다고 웃어 보였다.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파인애플, 망고 같은 과일들이 많았고 계란이나 빵 등 따뜻한 음식 종류도 고루 있어서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다른 음식들을 먹고 있으니 금세 쌀국수가 서빙되어 나왔고, 고기와 야채도 많고 예상보다 향신료가 강하게 가미되어 있지 않아서 맛있게 먹었다. 어제 체크인 때 받았던 인상보다 호텔의 조식 수준이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체크아웃 하면서 소액만 미리 베트남 화폐로 환전을 하고 바로 하노이로 넘어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처음 계획이 다낭보다는 하노이에 머물 생각이었기 때문에 많은 짐을 들고 다낭에서 애매하게 돌아다니기 보다는 바로 하노이로 가서 앞으로 머물 호텔에 짐을 풀고 편하게 하노이를 집중 탐색하려는 생각이었다. 어제 한번 택시 기사에 안 좋은 경험이 있던 터라 이번에도 하노이까지 가는 거리가 꽤 멀기 때문에 약간 긴장을 했는데, 일단 인상이 좋은 분이 픽업을 오셔서 내심 안심했다. 차에 타서 목적지를 다시 확인하고 출발했는데, 기사님이 전혀 난폭운전을 하지 않으시고 묵묵하면서도 젠틀하게 운행해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베트남은 길에서 엄청난 수의 오토바이들을 볼 수 있는데, 출퇴근을 오토바이로 많이들 하는 만큼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보여행자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것이 꽤나 많은 매연을 길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특히나 더운 날씨에 매연까지 겹치면 여행하기에 고역일 수 있는 환경이 된다. 다낭에서 호이안까지는 차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가면서 다낭 시내를 구경했고 호이안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더 전원의 느낌이 강해졌고 큰 도로보다는 골목길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호이안은 올드타운, 즉 구시가지로 유명한 곳인데 복고적인 분위기가 짙고 특히나 밤에 등불을 켜 둔 강가의 모습이 멋져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인다고 한다. 다낭과는 다른 분위기의 거리가 나오면서 서양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다낭보다 호이안을 선호하는 관광객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실감났다. 우리는 호이안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한 한적한 분위기의 리조트를 예약했는데, 리조트의 이름인 ‘라 시에스타’를 해석하면 낮잠, 또는 낮잠을 자는 시간이라는 뜻으로 숙박객이 편히 쉴 수 있는 조용한 분위기의 숙소였다. 안전하게 호이안까지 잘 데려다 주신 택시기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내리니 리조트의 직원이 나와서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사진으로만 본 리조트를 실제로 와서 보니 더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4일간의 일정을 보낼 이곳과의 만남이 반갑다.
|다낭여행기4| 호텔 도착전 첫번째 고비 2019-09-11 16:59:12
미터기 기준으로 요금을 받겠다는 약속대로 우리가 택시에 올라타자 택시 기사는 미터키를 키고 출발했다. ‘다행이다. 역시 이런건 미리 알아보길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가고 있었고, 늦은 밤 중이라 호텔에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늦은 시간 비행기가 도착한다는 것을 고려해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잡았기에 몇 분이 지나자 구글 지도상으로 거의 다 와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던 호텔이 점차 가까워지면서 미터기에 찍힌 금액대로 택시비를 지불하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도착과 동시에 택시 기사에게 그 금액을 드리니 갑자기 이건 아니다 싶은 표정으로 필자를 다시 바라본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아까 미터기로 가겠다고 약속한 그 사람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분히 영어로 소통해서 오케이라며 확인을 받고 탄 택시임에도 기사는 전혀 다른 소리를 한다. 미터기는 미터기이지만, 이 금액에서 더 많이 줘야 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물론 늦은 시간이기에 심야 할증을 고려한다해도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요구할 것이었다면 대체 왜 미터기를 킨 것인지, 단지 눈속임일 뿐이었던 건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여행의 첫 시작인데 이런 식으로 실랑이하며 싸우고 싶지는 않아서 택시기사가 요구하는 금액과 미터기에 찍힌 금액 사이에서 적당히 절충하여 금액을 지불하고 나서야 택시에서 내릴 수 있었다. 물론 이에도 택시기사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툴툴 대며 우리가 호텔에 들어갈 때까지 볼멘소리를 하고 있었다.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베트남의 물가가 싸서 큰 지출은 아니었기에 괜찮다고 위로하며 호텔로 들어갔다. 이런 게 여행자의 비애인가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처사인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일이니 웃픈(?) 해프닝으로 삼고 지나가기로 했다. 밤 늦은 시간에 호텔에 들어가니 로비는 불이 꺼져 있고 리셉션에는 아무도 없다. “헬로우?” 일부러 인기척을 내니 어둠 속에서 리셉션 의자에서 자고 있던 직원 한명이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얼굴을 내민다. 첫 날 늦게 도착해서 잠만 자고 갈 곳이라 공항 근처에 저렴한 곳으로 예약하기는 했으나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식의 체크인 경험은 처음이었다. 오히려 필자가 직원에게 늦은 시간에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여권을 내보이자, 이름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방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룸 컨디션은 생각했던 수준 정도였고, 늦은 시간이라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방을 더 둘러 볼 새도 없이 자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직원은 ‘굿 나잇’이라고 짧게 말하며 자리를 떴고 필자도 내일부터 여행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오늘 겪었던 에피소드들은 웃어 넘기고 일찍 잠에 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 무사히 몸 건강히 즐겁게 잘 지내다 갔으면 좋겠다.
|다낭여행기3| 여행의 시작 2019-09-09 15:34:32
여행을 갈 날이 다가오면서 한국의 날씨도 점점 더 더워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날씨도 비슷하게 덥겠지만 그래도 내가 있는 이곳 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여행길에 올랐다. 저녁 8시에 출발하는 항공편이었는데 불안하게도 오후 3시경에 1시간 정도 연착될 것이라는 공지 문자가 왔다. 이미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고 한 시간 정도면 넓은 공항에서 충분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안한 예감이 자꾸 들었다. 베트남 공항에 도착할 예정 시간이 밤 11시정도였는데 이보다 더 연착이 될 경우 새벽 시간대에 도착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이대로만 잘 도착하기를 바랐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공항 라운지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에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의 시간이 지겹지 않았고, 오히려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부러 넉넉히 여유시간을 두고 일찍 공항으로 가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면 시간이 딱 적절하겠다 싶었는데 아뿔싸, 한 번 더 연착 문자가 온다. 한 시간 더 연착이다. 한 시간 여유는 괜찮은데 예정에 없던 두 시간의 여유가 더 생겨버렸다. 이 참에 평소에 바빠서 못 봤던 영화를 공항 영화관에서 볼까도 싶었지만 영화를 보기에는 약간 애매한 시간대인데다가 여행을 앞두고 괜히 더 피곤해질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면세점을 둘러보고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야지 생각을 하며 출국 수속을 마쳤다. 여유를 갖고 라운지로 향했고 미처 하지 못한 식사를 한 후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여행 계획을 대략적으로 정리했다. 시간이 좀 남았지만 라운지에서 더 할 만한 일도 이젠 없다 싶어서 게이트 앞으로 갔다. 게이트 앞이 연착 때문인지 승객들의 문의로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항공사 측에서도 계속 어딘가에 전화를 하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더 이상의 연착 없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는데, 더 큰 문제는 탑승한 이후로도 이륙까지 약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려야 했다. 항공사 측에서는 계속 도착지의 사정 상 아직 확정이 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출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승객들은 거듭 되는 연착에 지쳐 이제는 불평을 할 힘도 없는지 포기하고 잠을 자기도 했는데, 필자 역시도 이미 늦은 시간이고 비행기에서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그저 가만히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상황이 정리되어 이제 이륙할 수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안 그래도 저녁 항공편이라 피곤했는데 이제는 밤 시간이 되어 가는 내내 잠을 청했다. 다낭은 약 6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는데, 도착하니 새벽 한 두시 경이었고 호텔에 따로 픽업요청을 하지 않아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미리 다낭에 대해 들은 바로는, 절대 아무 택시나 타면 안 되고 택시의 색이 다양한데, 특정한 색 택시들이 신뢰할 만한 업체이기 때문에 잘 가려서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역시나 여러 무리들이 택시를 찾냐고 물어온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만 쉽사리 말하지 못했고, 많고 많은 택시들 중에 믿을 만한 업체라는 택시를 찾아 기사에게 물었다. “미터기 기준으로 가나요? 아님 정해진 가격이 있나요?” 기사는 내가 예상했듯이 미터기 기준으로 간다고 말했다. 아, 이거다. 미터기 기준으로 가는 택시를 타야 한다고 들었기에 알겠다고 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에 올라타니 기사가 미터기를 켰고 나는 안심했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 약간의 불안감은 남아있었다. 늘 여행에 가면 설렘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있어서일까. 어두운 새벽, 짐은 많고 수많은 택시들 중 이 기사님을 믿고 올라탔다. 나는 무사히 호텔로 갈 수 있을까? 갈 수 있겠지. 속으로 끝없이 되뇌었다.
|다낭여행기2|한 여름 날에, 그래도 더운 곳으로 2019-09-02 14:54:34
여행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 다음으로 생각이 난 곳은 다낭인데, 동남아는 물가가 싸고 그리 멀지 않아서 부담 없이 가기에 좋지만 요즘 들어 부쩍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점이 걱정이 되었다. 무언가 지금 내가 머무는 곳과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은 것이 여행의 묘미인데 막상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까지 갔는데 그곳에도 온통 한국인 뿐이라면 실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또 다른 곳을 찾아보려 했는데 다낭 바로 옆에 있는 호이안은 그래도 다낭에 비해 한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으며 호이안 특유의 볼거리가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다낭에 가 본 사람들이 다음에 다시 베트남을 방문할 때는 호이안에만 머물러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는 ‘아, 나는 처음부터 호이안에서만 머물러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선지를 정하고 나니 이제는 항공권부터 기본적인 것들을 정해야 했다. 이미 여행까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여서 오래 더 고민하고 끌어봤자 항공권 가격이 조금 더 오를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평소 잘 사용하던 사이트를 통해 바로 항공권을 알아보았다. 저녁 항공편이 많았기 때문에 오전 일정이 있는 날 일과 후에 떠날 수 있어서 하루라는 시간을 더 벌 수 있었다. 요새는 저가항공이 많아져서 그런지 다양한 시간대로 항공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다낭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물가가 워낙 싸다보니 특히 숙박의 경우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이 저렴했다. 선택의 폭이 넓은 만큼 역시나 고민의 폭도 넓어졌고 날씨도 덥고 물가도 싸니 이곳에서 만큼은 좋은 곳에서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숙소에서 지낼 시간이 더 많을 것을 고려하면, 숙소의 중요성은 훨씬 높아지게 된다. 객관적인 숙소의 가격이나 평점 자체보다 필자가 숙소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그곳에 이미 머물렀던 방문객들의 후기이다. 평점 자체가 높을지라도 개인마다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요소나 숙소에서 이것은 꼭 있어야 한다, 이것만은 피하고 싶다하는 등의 요소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사람들이 남긴 후기에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위생이 가장 중요하고, 조식의 퀄리티,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와 부대시설을 중시하는데, 예를 들어서 다낭에 있는 해안가 주변 호텔들은 무료로 자전거를 대여해 주어서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다. 2년 전 쯤 키프로스 섬으로 여행을 갔을 때, 굉장히 작은 호텔이었음에도 쉽게 자전거를 구할 수 없는 마을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주어서 아기자기한 마을을 돌아다니며 소소한 즐거움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에 여행을 가면 매우 더운 시기라 거의 택시만 타고 다녀야하는 수준의 날씨인데, 그렇게 되면 자전거 대여 여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게 된다. 오히려 호텔 내부의 수영장과 같은 부대시설이 훨씬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규모가 크고 화려한 인테리어의 호텔이라도 위생이 좋지 않았다는 후기가 보이면 바로 선택지에서 제외하고는 하는데, 특히나 여행을 가서 지친 몸을 편안하게 쉴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더럽다면 맘 편히 잠들지 못 해서 남은 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상황이 싫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다낭이 아닌 호이안에서 주된 일정을 보낼 예정인 만큼 밤 늦게 공항에 도착하는 당일만 다낭에서 머물고, 다음 날 오전에 바로 호이안으로 이동하여 지낼 생각이었기에 호이안 내에서는 숙소 이동 없이 같은 곳에서 지내는 쪽으로 계획을 짰다. 여행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숙소이기에 내 선택이 나쁜 선택이 아니기를 바라며, 항공권과 숙소까지 모든 예약을 마쳤다.
|다낭여행기| 한 여름 날에, 그래도 더운 곳으로 2019-08-26 12:01:59
조금이라도 여유가 나고 휴일이 나겠다 싶으면 이번엔 어디를 가면 좋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같은 날씨엔 어디가 좋을까, 휴양과 관광 중 이번엔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춘 여행을 해볼까 또 다시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사실 여행만을 다루는 글만 쓰려고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하나 둘 쓸만한 글감들을 떠올리다 보면 다른 일들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의학계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다 알법한 내용들 같아서 마음 놓고 글을 쓰는 것이 꺼려지곤 했다. 그리고 짧지만 적절한 간격으로 여행을 계속 이어나가다 보니 의대를 다니는 학생들이나 병원이나 여타 직장에서 일하고 계신 선배들에게는 소소한 여행기가 더 읽기 편하고 재미 있겠다 싶어서 여행기를 거듭 연재하게 되었다. 항공편이 자주 있어 효율적으로 일정을 짤 수 있는 곳을 원했고 가장 관건은 한국도 한참 더운 시기이다보니 너무 덥지않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동시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곳은 일본의 삿포로였는데, 아무래도 삿포로 정도 외에는 한국에 여름이 올 때 쯤이면 주변의 휴양지나 관광지들도 한국만큼 더운 곳들이 대부분인지라 오히려 더운 곳으로 피서를 떠나야 하는 아이러니한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 방문했던 러시아의 모스크바도 여름에 날씨가 시원하고 볼거리도 많아서 좋았는데 안타깝게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아서 이동에만 이틀 정도를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 가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을 받고 삿포로를 알아보니 역시나 다른 사람들도 이곳 저곳에서 추천을 많이 받았는지 항공권 가격이 보통 때에 비해 한참 높아져 있었고, 평점이 높은 괜찮은 호텔들도 매진인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경우 여행 출발 시기보다 5달 정도를 미리 비행기 발권을 해야 가장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여행 몇 주를 앞두고 알아보려니 턱없이 비쌀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간 일본에 자주 가다 보니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까운 나라들 중 갈 만한 곳은 다른 곳일지라도 뻔하긴 하지만 말이다. 삿포로는 안 그래도 추운 겨울날 더 추울 때 떠나는 즐거움과 볼거리도 있다고 하니, 나중을 기약하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또 다른 후보지는 대만 그리고 괌이었다. 그런데 세 곳은 모두 역시나 한국보다 더웠다. 이제는 더운 것만큼은 고려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기 보다는 여행 자체에 의미를 두고 가장 끌리는 곳으로 가는 것으로 마음 먹었다. 괌은 보통 어린 자녀를 가진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고 면세점 쇼핑을 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대만은 가까우면서 일본과는 또 다른 느낌의 볼거리가 있고 맛있는 음식도 많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다. 괌은 차를 렌트도 해야하고 좀 심심할 것 같기도 해서 대만을 더 가고 싶었는데 아뿔싸, 대만에서 지진이 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예전에도 지진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취소 수수료가 아깝기도 해서 그냥 갔다가 여행하는 기간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안전한 곳으로 가고 싶었고 대만은 다음 번에 가는 것으로 하고 마음을 접었다. 여행지를 정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나 여행지 선정하는 단계부터 고민이 계속된다. 이번에는 어디를 다녀오는 것이 좋을까.
|신세한톡| '일상' 속에서 이동권 고민하기 2019-08-12 06:00:50
2016년 학교와의 교학간담회에서, 우리 학교 여러 곳에 턱/계단만 있는 곳을 학내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다른 친구와 함께 조사해 발제한 적이 있다. (당시 동아리방 진입 경사로 폭은 좁았고, 동아리방 화장실 및 샤워실은 대놓고 턱이었으며, 스터디룸 진입로 역시 계단이었다.) 당시 학교의 대답은 차치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현 상황에서 배리어를 인지하지 않아도 될 몸을 가진 사람이 무심코 지나갔을 때) "일상" 속에서 얼마나 "이동권"이라는 것이 인지하기 어려운지,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련 문제가 드러나거나 개선되지 못하고 있음을 체감했다. 언젠가 횡단보도를 건너 차도에서 인도로 연결되는 부분에 있는 점자블록이 파손돼있는 것을 보았고, 또 언젠가 휠체어를 사용하는 친구와 식당에 뭔가를 먹으러 갈 때 경사로가 있는 식당을 찾는 게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우리학교의 경우 학내 장애인권 동아리에서 배리어-프리 지도를 (Barrier-Free, 생활에 방해가 되는 턱, 계단 등의 장벽을 없애거나 자막ㆍ음성지원ㆍ속기 등을 시행하는 운동이나 행동. 여행ㆍ식당ㆍ이동ㆍ영화관람 등 수많은 곳에서 시행돼야 하는 현재진행형 목표) 만들어 용이하기는 했다. 또 언젠가 엠티 및 현장 활동을 기획할 때, 접근성 및 활동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배리어-프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온전히 가능한 목표인가를 고민했다. (물론 여전히 고민 중이고, 아직 답을 모르겠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예시들이 낯설지는 않다는 점에서, 약간 (많이)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잠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어떻게 이동권을 쟁취해왔고 현재 상황은 어떤지 (매우 간략하게) 살펴보자. 2001년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리프트 고장으로 인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추락사했을 때, 보상금만 지급하고 무마하려 했던 서울지하철공사와 정부에 맞서 여러 장애 단체들은, 선로점거투쟁 등을 통해 "장애인들도 지하철을 탈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이후 4월 20일 (이날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기도 하다!) 만들어진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동권연대)'에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ㆍ저상 버스 도입ㆍ장애인 콜택시와 같은 특별 교통수단 확보 등을 목표로 긴 싸움을 시작했다. 많은 부분에서 진전이 있었고, 또 변화했지만 작년 서울 지하철 1호선 및 5호선 환승역 신길역 리프트에서 한 분이 추락해 사망하셨고, 장애 단체들이 지하철 1호선 집단 승/하차 투쟁을 통해 (일률적이면서 빠른 속도에 저항하며) "리프트 철폐/엘리베이터 전 역에 설치"를 알리고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을 보면, 이동권 완전 보장 및 배리어-프리는 요원해보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예전에 엠티를 기획할 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동아리에게서 "배리어-프리 엠티 매뉴얼"을 받은 적이 있다. 거기 첫 페이지에는, "장애유형과 정도에 따라 필요한 편의지원 내용이 매우 상이할 수 있으므로 장애학생과 적극적으로 상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다." 라고 적혀 있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객관적/사회적인 조건 개선과 더불어 "대상화/소비/시혜적으로 바라보지 않기 위함"을 구체화하기 위한 가장 기본요소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덜 시혜적으로, 동시에 장애인의 주체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각자의 "일상"속에서 "이동권"보장 및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고민하고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현재 의대생이고 비장애인인 "나"는, 학교에서 "병"을 "고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며, 이를 통해 사람들의 "건강"을 향상할 수 있다고 듣는다. 동시에 "우리"는 "건강"이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라고도 배웠다. 한편, "손상"이 어떻게 "장애"가 되고, "장애"와 "질병", "정상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의학적, 사회적 모델 등에서 관점과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몸"과 내밀한 관계를 맺어나갈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인 장애담론의 특성상, 현재도 매우 활발한 논의와 행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당연해 보인다.) 각각의 관점에 대한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이동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교육을 받으며 투표를 행사하는 등,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가는 행위가 보장되는 것이 "건강권"에 밀접한 연관이 있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는 "이동권"은 자체로서도 매우 중요한 권리이자 동시에 생존권이며, 탈시설ㆍ교육권ㆍ노동권 등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이동권 보장은 "개별자로서의 삶"과 함께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금 당장, 여기서 실현돼야 하는 권리임을 확인했다. 이후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질문했으나 답을 뜯거나 하지 않(못)한 것들은 무엇일까. 또, 아직 묻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앞에서 쭉 살펴본 장애인 이동권 보장 현황이나 역사, 통계수치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아픔"에 대한 침묵을 강요당한다면, 그만큼의 자리는 침묵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것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들이 바뀌거나 추가돼야 권리를 구체화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몸이나 행동을 "고치려고" 하는 구조 및 방해물들에 저항하며, (방법은 다양하겠으나) "이동권"이란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편을 들어 함께 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 불매운동에서 의사가 배울 것 2019-07-31 06:00:02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물결치며 9시 뉴스를 도배하는 시기와 동시에 의료계에선 원격의료 반대를 비롯한 대한의사협회의 적극적인 의료 개혁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불매운동과 달리 이러한 의사들의 투쟁은 의료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어째서 두 가지 이슈에 대해 하나는 수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분개하는 데 비해 다른 하나는 인지도조차도 떨어지는 것인가? 뉴스 등에 크게 관심 없던 필자가 처음 불매 운동을 들었을 땐 우선 배경이 궁금해졌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 과정에 이용되는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화 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에 대한 수출규제. 이과생도였던 필자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물질들에 대한 수출규제에 의해 국민 경제에 타격을 입힐 악랄한 일본 사람들에 대한 보복으로서 불매운동을 시작하였다는 듯 하다. 실상은 이전부터 무역에 관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아웅다웅 하던 상황이었던 듯 한데, 필자로서는 들어본 적도 없고 모든 국가간의 무역 협약은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있어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을 관심거리로 만들고 사회운동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어떤 점에 국민은 분노하고 어떤 점에 집단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 여론을 특정방향으로 몰아가고 행동을 촉구하게 하는 현상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부족한 필자의 견식은 다음과 같다. 현 시대를 구성하는 한국 국민은 필수 교육과정에 의해 자긍심 높은 한국의 역사와 일제시대에 대해 교육받고 주기적으로 국민의례와 애국가를 제창하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일본에 대한 내재된 감정을 이용한 정치라 함이 맞겠다. 이를 통해 현 정권은 다른 문제들을 국민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정치적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다. 일본에 대한 특수한 감정을 자극하여 개인의 삶에 거의 상관 없는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데 성공적이었고 이를 통해 애국심,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통치성을 확보해 나간 것이다. 이와 같이 문제를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정책 형성에 있어 의제화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세상엔 다양한 문제가 산재되어 있는데 특정 사건 및 계기, 정치 등을 통해 이 문제는 의제, 즉 아젠다가 된다. 문제를 의제화 하는 것은 정책이 만들어지고 변화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일이다. 9시 뉴스에 한번이라도 나온 이슈는 쉽게 정책이 바뀌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이런 점에서도 9시 뉴스는 포털사이트 뉴스에 비해 상징적이다.) 잠시 잊고 있었겠지만 의료계를 확인해보자. 애당초 투쟁의 배경은 무엇이었나? 단식투쟁 직전 대한의사협회에서 올린 영상을 보면 정부에서 수가인상률을 2.9%로 낮게 책정하여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언급을 한다. 수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제가 있겠지만 이것을 의제화 시키는데 성공적이었는지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한 의료 개혁이 투쟁의 목표라고 하고 있는데 국민이 공감을 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국민은 의사는 신뢰하지 못하더라도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은 신뢰하는 듯 하다. 값싸고 쉽게 진료받을 수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냐는 분들을 많이 봤는데 이는 비교대상이 주로 미국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반대로 미국인들은 본인의 주치의, 즉 의사는 신뢰하지만 의료시스템은 신뢰하지 않는 특징이 있는 듯 하다) 그나마 의료인들이라도 투쟁에 공감해서 적극 참여해주면 좋겠지만 의료인들 조차도 의견은 분분하고 의사들 간에도 다양한 의견이 엇갈린다. 수가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도 유일하게 의사들의 동일한 관심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를 의제화 시키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의사가 정치를 잘 못하는 것은 의사가 행정부나 입법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의 관점을 모르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의사출신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원이 된 것은 의사라서 가 아니라 지역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선출직 공무원은 재선이 관심사인 만큼 지역의 유권자들을 대표하는 것이지 의사를 대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수가를 올리는 법안에 의사출신 국회의원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얼마나 있겠는가? 유권자의 관심이 수가를 올리는 것인가? 프로 불만러인 필자의 경우 일본 불매운동에 대해서도 세계시민주의적 관점에서 두 국가가 서로 괴롭히는, 지구촌 어느 누군가에게는 실직과 삶의 위기를 줄 수도 있는 운동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사건에서 의료계는 배워야 한다. 어떤 방법과 어떤 것들이 국민의 관심을 이끌고 국민의 감정과 행동을 불러일으키는지. 유권자인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한국 보건의료를 바꾸는 데 의사들은 또다시 실패할 것이다.
의대생, 전공책을 접고 신문사에 다녀오다 2019-07-23 06:00:50
기나긴 20주의 1학기가 끝이 났다. 더 이상 아침 일찍 울리는 알람과 사투를 벌일 필요도 없고 눈이 감기는 1교시 수업을 커피로 버틸 필요도 없어졌다. 며칠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잠을 자고 싶어서 매일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마저 깨있는 시간 동안에도 핸드폰만 뒤적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방학이 무료함만을 남긴 채 하루하루 흘러가던 중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던 작년 겨울방학이 떠올랐다. 학교 선배가 신문사에서 2주간 인턴 할 기회가 있다며 소개해줄 때, 고민 뒤에 "네" 라고 대답했다. 단순히 방학 동안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고는 출근 첫날부터 후회를 했다. 등교를 하듯이 아침 8시에는 집을 나와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자가 꿈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을 사서 고생하는지 매일 후회하며 버스에 올라타 꾸벅꾸벅 졸았다. 첫날 인턴프로그램 담당 기자님께서 인턴들에게 기사를 하나씩 쓰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에 대해 쓸까 고민하다가 당시 나름 핫이슈였던 제주녹지국제병원을 다루기로 했다. 기사를 쓰려니 아는 것이 없어 며칠을 검색하고 공부하는 데에만 몰두한 기억이 난다. 기사를 쓰는 틈틈이 기자님들과 외근을 나가 병원홍보실에 가보기도 하고, 협회에 가서 토론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작년 겨울방학의 그 2주는 나에게 많은걸 보고 느끼게 해주었던 기간이었다. 물론 고작 한편 쓴 기사는 지금 봐도 못 쓴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머릿속에 해부학과 생리학뿐이던 나에게 기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현 의료사회를 좀 더 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내 주위 의대생들은 각자 자신만의 재능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들 폐쇄적인 의과대학의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재능을 숨기며 그저 모두가 걷는 길을 따라 걸으려고 한다. 마치 그 길을 벗어나면 틀리고 안 되는 것 마냥. 나도 작년까지는 그런 틀에 박힌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다른 쪽에 재능을 가지지 않아서 만은 아니었다. 주위사람이 모두 인턴 레지던트를 마치고 병원에서 일하는데 혼자 다른 방향을 걷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턴체험 2주를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의학을 배운 사람은 많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의사출신 국회의원이 돼 보건의료체계를 개선하는데 힘쓰는 것도 좋을 것 같으며, 법을 공부해 의료전문 변호사, 검사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제약회사, 의료기기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른 의학도들도 잠시 교과서를 덮고 주위세상을 한번 둘러봤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공부와 실습으로 바쁜 본과생에게 잠시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외활동을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쉽지 않다. 의과대학의 학사일정이 타과와는 크게 다른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의대협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도록 더 노력하는 의대협이 됐으면 한다. 현재는 인턴십이 언론계, 법무계 그리고 의사협회 총 세 곳으로 제한적이다. 이에 점점 다양한 분야와 회사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의대생들에게 제공됐으면 좋겠다.
"정신병원은 교도소가 아니다" 2019-07-08 05:57:23
간혹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진을 폭행했다는 신문 기사를 볼 때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예민한 상황에서 갈등이야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실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환자와 의료진에게 모두 큰 피해가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병원 내 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행한 환자나 보호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에 앞서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다른 환자들의 안전도 책임져야 할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법을 제정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체 왜, 최근 몇 년 사이 병원 내 폭행 사건이 이처럼 늘어나게 된 것일까? 최근 늘어난 병원 내 폭력 사건을 살펴보면 비슷하게 반복되는 어떤 유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개 ‘응급실’에서 술에 많이 마신 ‘주취자’에 의해 발생하는 의료진 폭행이다. 주취자에 의한 병원 내 폭력이 늘어난 이유는 바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이라는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011년 처음 시행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길에서 신고 되거나 발견된 주취자들을 병원 응급실에 맡기는 제도이다. 경찰들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때론 신원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해장 치료’를 하라며, 진짜 응급환자를 봐야 할 응급실에 데리고 온다. 본인이 왜 응급실에 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취자는 다음 날 술이 깨고 나면 자신에게 청구된 병원비에 항의하기도 한다. 전북 익산의 한 병원에서는 주취자가 담당 의사를 피가 흐르도록 때리고 밟는 ‘범행 현장’에서, 코 앞의 ‘주취자 현행범’을 제압도 않고 그냥 서 있는 경찰의 모습이 CCTV에 공개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일각에서는 응급실에 경찰이 한 명 배치된다는 이유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더 늘리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슬쩍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분명 재검토되어야 하는 실패한 정책이다. 경찰에서 담당하던 주취자 보호 업무를 일부 공공 병원 응급실에 떠넘기면서, 정작 병원들은 정말 응급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제대로 맡아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질병이 아닌 것을 질병으로 간주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사회의학 용어로 ‘의료화’(medicalization)라고 하는데,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의료 서비스가 본래 가치에 맞게 쓰이지 못하고 행정적인 요구에 의해 남용되는, 이른바 ‘행정에 의한 의료화’의 대표적 경우다. ‘행정에 의한 의료화’에는 또 다른 케이스가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환자를 입원시키는 경우는 입원이 환자의 치료에 필요할 때이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얘기다. 안정을 취해야 하거나, 꾸준하고 반복적인 치료 혹은 밀접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는 정신질환자의 입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일부 정신질환자에게는 본인에게 병이 있다는 인식, 즉 ‘병식’이 없어서 강제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이 경우 병원은 환자를 대신에 가족이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고, 고도의 전문적이고 의학적인 판단 하에 환자의 입원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일반적인 상식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경찰관의 요청’에 의해 정신 질환자를 입원 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행정입원’이라는 제도인데, 이전 법안에서 지자체장이 의뢰하던 것을 지금은 경찰관도 입원을 자의적으로 검토하고 병원에 요구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법조문에서 ‘요청’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도, 지자체나 경찰의 ‘입원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일선 병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심지어 ‘응급입원’의 경우에는 의사의 동의 없이 경찰관 단독으로도 진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환자 본인도 보호자도 아닌 ‘경찰관’ 한 사람의 요구에 의해 ‘타인에게 해를 미칠 수 있는 사람’을 교도소가 아닌 병원에 수용한다는 발상은 병원의 본래 역할을 물론, 환자의 건강과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 문제는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엄중히 지적한 바 있다. 정신질환의 입원 목적은 질환의 관리와 치료가 되어야지,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강제 수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입원 기준은 환자와 보호자 스스로가 느끼는 필요성과 더불어, 외부의 개입에 간섭받지 않는 의료인의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이 되어야 한다. 최근 일부 언론이 조현병 환자의 강력 범죄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에 대한 국민 여론이 갈대처럼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정신질환자의 인권에 반하는 강제 입원에 대해 의료계를 비판하던 여론은 이제 범죄자가 된 환자의 관리 책임을 병원에 요구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둘 다 정답이 아니다. 병원은 질환 관리와 치료를 목적으로 입원을 결정할 뿐, 징역 개념의 사회적 격리를 책임으로 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은 강력 범죄가 아니고, 전염병도 아니며, 정신병원은 교도소가 아니다. 특히 이슈가 된 조현병은 약 100명 당 1명 꼴로 발생하는 흔한 질병으로 알려져 있으며 환자마다 임상 양상과 예후도 다양하다. 다수의 조현병 환자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관리된다고 하며, 조현병 환자에서 일반 인구에 비해 범죄자의 비율이 높지도 않다. 즉, 모든 조현병 환자가 잠재적 범죄자인 것이 아니라, 언론이 주목한 일부 범죄자가 조현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 뿐 이다. 범죄자는 조현병 환자이든 고혈압 환자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공무원이든 학생이든, 법이 정한 대로 처벌하고 격리시키면 된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일은 교도소가 할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병원은 교도소가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경기도의 모 국회위원은 본인 지역구에 정신병원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일개 의사가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신병원을 혐오시설로 보는 시각은, 정신질환자를 병원에서 범죄자처럼 관리하길 바라는 ‘행정에 의한 의료화’와 맞닿아 있다. 결국 그들에게 정신질환자는 범죄자이거나 혐오대상이다. 몇 번의 선거와 몇 번의 개혁이 더 걸리더라도, 우리 사회가 기필코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병폐임에 틀림없다. 정신질환자의 행정입원과 같은 ‘행정에 의한 의료화’는 많은 문제점을 지닌다. 의료 자원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며, 대상 환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야기한다. 행정 편의주의에 의한 인권 침해를 막고 의료가 본래 역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에 의한 의료화’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폐지와 더불어 정신건강복지법의 재개정을 위해, 병원의 역할과 정신질환자의 입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세한톡|의학도라면 북한 보건의료에 관심을… 2019-07-02 06:00:00
우리나라를 조금 벗어나서 대한민국을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요즘 정말 유명한 BTS와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르자면 바로 북한이 있을 것이다. 실제 문화체육부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외국인들이 '한국‘하면 북핵 문제와 정치-군사적 문제가 많이 떠오른다고 답변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단지 신문, 뉴스에서 가끔씩 다루는 주제 중 하나로 여길 수 있는 북한이지만 실제로 매우 중요한 이슈이고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올해 국방 예산만 해도 50조에 가까우며, 매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군복무도 북한과 관련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매년 천문한적인 돈과 인력이 소모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가운데 우리는 북한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예로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서 올 초 훗날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혹시 무엇인지 알겠는가? 여름에는 제 1차 정상회담 겨울에는 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있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한창 신문을 떠들었던 2차 북미정상회담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가 싶었던 분위기는 둘째날에 회담이 결렬되면서 푹 가라앉았다. 아마 많은 학생이 생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과대학/의전원 학생들도 함께 모여서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는 곳이 있다. 메드띵크(MedTHiNK, Medical Student Talking About Human Rights in North Korea)가 그것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인권국의 통일 보건의료인 메드띵크는 대북보건 의료지원, 북한이탈주민 보건의료, 남북의료통합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2012년에 시작돼 2016년 IFMSA(세계 의대생 협회)에서 공인 프로젝트로 인가를 받았으며 매년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통일 보건 의료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현재 북한과 통일의료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으며 온라인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매년 세미나를 개최해 북한 관련 전문가를 모셔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과 강연을 통해 심도 있는 북한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의과대학생들에게 대중적으로 북한을 알리고 있다. 나 역시도 메드띵크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북미 정상회담을 단지 지나가는 오늘의 소식정도로만 느꼈다. 하지만 메드띵크에서 조금씩 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북한에 대한 관심을 꼭 가져야함을 깨닫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의 의료문제와 우리는 별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소위 결핵왕국으로 불리는 만큼 북한도 결핵을 전담하는 의료체계가 따로 있을 정도로 결핵이 창궐한 나라이다. 이미 수많은 다제내성 결핵균이 병원에서 진단되는 우리나라보다 북한은 훨씬 더 심각하다. 만약 한국과 북한이 교류를 하게 된다면, 이러한 보건학적 문제는 꼭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반도가 분단되고 벌써 70년 가까이 지났다. 그 동안 서로 단절된 채 서로의 길을 가느라 많은 벽이 생겼고 북한을 더 이상 한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고, 또 통일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학도로서 앞으로 처할 문제에 준비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메드띵크는 조금씩 북한을 공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만들어내는 우리의 작은 발걸음이 북한을 향한 긍정적 변화의 시초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메드띵크는 바로 그러한 것을 위해 모인 학생들이다.
|신세한톡|전공의와 의료현실 2019-06-24 05:30:59
친한 지인들은 내가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정체를 털어놓지 않았다. 어쩌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거기서 뭐 해?”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대답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맡은 일이 별 일이 아니라 말하기에 민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질문을 한 친구에게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주요 활동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 길고 복잡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전공의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아직 어색한 관계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다음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이다.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한 노력 및 국민과 함께 하는 새로운 의사상 구현을 위한 노력 ▲의사 단체의 개혁과 의사 사회의 혁신을 선도 ▲회원 상호 간의 학술교류를 통한 전공의 자질 향상 ▲수련 내용의 표준화 및 내실화를 위한 전공의 수련 제도의 개선 ▲전공의에 대한 처우개선과 신분보장을 위한 노력 5가지 모두 모두 중요한 목적이지만 수련환경이 워낙 열악한 덕분에 아무래도 주된 활동은 전공의 특별법 제정, 전국 전공의 병원 평가, 수련환경평가 위원회 참석 등 아래 2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다. 전공의들은 적어도 한 번쯤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발송한 각종 설문 조사 문자를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여러 활동을 펼치고 시대가 변하면서 전공의의 현실이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불합리한 수련 환경과 문제투성이인 의료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전공의는 아직도 너무 부족해 보인다. 잘 시간도 부족한 전공의가 의료계의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전공의의 근로시간과 강도가 높은 것이 수련환경의 핵심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공의 수련환경은 저수가, 기능을 상실한 의료전달체계 등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대한민국 의료 환경을 바탕으로 한다. 그 한계는 점차 전공의의 안위, 더 나아가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이대 목동 사건, 성남 중앙 구속, 길병원 전공의 사망 사건, 세브란스 폭행 사건 등등 크고 작고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러한 사건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른 전공의에게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전공의 한 명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본인의 의료 환경을 둘러보는 것, 새삼스레 바라보는 것, 그리고 대한전공의협의회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본인이 놓여있는 의료 환경을 환기해보면 문제의식이 생긴다. 당장 주치의라면 자신이 맡은 환자 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전공의 1인당 환자 수는 의료전달체계와 입원전담전문의 문제로 이어진다. 혹시 폭언과 폭행,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면 대화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이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민원을 넣고 신고를 할 수 있다. 비윤리적인 의사와 이를 묵인하는 수련 환경이 훗날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이어져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트릴지 모른다. 의료계 문제는 대부분 서로 얽혀있는 경우가 많아 조금만 노력해서 찾다보면 곧 전반적인 문제의 핵심을 알 수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참여하는 것은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회비 납부, 설문 조사 응답,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선거 투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의견과 민원을 전달하는 것도 좋은 참여이다. 각오가 되어있는 전공의라면 대한전공의협의회 또는 각 병원의 전공의협의회에서 직접 활동하는 것도 권장할만하다. 특히, 대한전공의협의회의 많은 활동은 집행부가 직접 한다. 설문 조사 항목을 만드는 것, 이를 바탕으로 언론 보도, 학술대회 발표 자료를 만드는 것,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것, 각종 민원에 적절한 참고자료를 조회해서 답변을 보내는 것 모두 전공의인 집행부가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회칙 상 대한민국의사로서 수련 중인 모든 전공의로 구성된다. 즉, 대한민국 전공의는 모두 회원이다. 회원들의 크고 작은 관심과 노력이 수련환경, 나아가 전체 의료계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의대생에게 추천하는 또 다른 언어: 수화 2019-06-17 06:00:56
낯선 해외에서 우연히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있는가? 그 때 드는 이유모를 안도감, 친근감 등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청각을 잃어 세상과 소통이 끊긴 사람들을 '농인'이라고 한다. 듣지 못함과 더불어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대다수이며, 특히 선천적으로 청력이 소실된 경우에 그렇다. 선천적인 경우,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리를 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농인들이 병원을 찾을 때 가장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2019년 현재 전국에 의료수화통역사는 단 3명뿐이며, 그 외에는 내원 시에 환자가 직접 인근 지역 센터의 수화 통역자에게 연락 후 대동해야한다. 하지만 늦은 새벽 응급실에 가야하거나 지역 행사 등으로 연락 가능한 통역사가 없는 경우에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나는 예과 때 좋은 기회로 두 학기동안 '교양 수화'를 배운 적이 있었다. 처음은 가나다, 짧은 단어와 같은 기초 수화에서, 점점 문장형 수화를 배울 수 있었는데 꽤 다양한 수화를 구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강이 끝난 뒤 금세 수화를 잊어버릴까 아쉬워 농인 관련 봉사활동에 참여해보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자주 만나는 농인 분들에게 수화로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부족한 수화실력으로 아는 척 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몇 마디 시도했다가 대화가 안통하게 되면 괜히 더 씁쓸함만 안겨드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내가 마주쳤던 농인분들은 전부 활짝 웃으며, 혹은 반가워하며 적극적으로 반응을 해주셨다. 농인 체육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을 때에도, 더듬더듬 수화를 하는 나에게 맞추어 천천히 답해주시고, 교과서로 수화를 배운 내게 보다 실용적인 표현이 어떤 것인지 많이 가르쳐주시기도 하셨다. 한 마디로, 농인과 세상 사이에 소통 경로를 만들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듣지 못하는 농인에게 표음문자인 한글은 쉽지 않은 것이어서, 농인 환자가 내원했을 때 필담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자주 범하는 실수라고. 간단한 '안녕하세요', 혹은 '어디가 아프세요' 라는 수화를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병원을 찾은 농인 환자들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다. 물론 몇 마디 배운다고 해서 주증상이나 병력청취를 심도 있게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의사가, 내가 쓰는 언어를 조금이라도 쓸 줄 안다'는 것은 실제로 농인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사소한 수화 몇 가지만 함께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안녕하세요'라는 수화에 대해 알아보자. 정말 간단하다. ①오른손으로 왼팔(팔꿈치에서 손목 정도)을 빠르게 쓸어내린다. ②양 손을 주먹쥐면서 아래로 살짝 내린다. 여기서 첫 번째 동작은 '잘', 두 번째 동작은 '있다' 라는 의미로, 합쳐서 '잘 있다'를 의미한다. 즉 '안녕하세요'의 어원을 생각해보면 일맥상통하는 의미이다. 농인이 아닌 사람들을 '청인'이라고 한다. 청인들이 대화할 때 어조에 따라 같은 말도 큰 차이를 내포하듯이, 농인들에게는 표정이 중요하다. 실제로 그들은 '화났었다'라는 말을 하며 표정을 마구 찌푸리기도,(잘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나에게 화내는 것으로 착각해 당황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슬펐다'라는 말을 하며 크게 울상을 짓기도 한다. 그만큼 표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농인에게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땐, 활짝 웃으며 위 수화를 해보자. 다음으로, '어디가 아프십니까?'에 대해 배워보자. '안녕하세요'를 '잘+있다'로 표현했다면, 이 수화는 '어디+아프다+입니까?' 라고 구성된 간단한 수화이다. ①어디: 오른손 검지만 펴서 좌우로 두 번 흔든다 (흡사 모 가수의 유명한 안무 '고민고민하지마'를 떠올리면 쉽다) ②아프다: 오른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해 약간 오므린 뒤, 좌우로 살살 흔든다. (여기서 포인트! 그림처럼 무표정으로 이 동작을 시행하면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아픈 듯 표정을 찡그리며, 손도 아픈 듯 '부들부들' 떨어주는 편이 농인에게 이해되기 쉽다) ③-입니까?: 오른 검지를 오른쪽 관자놀이에 댔다가, 모든 손가락을 펼치며 밖으로 내려 손바닥이 위로 간 자세를 취한다. 앞서 언급했듯 수화는 표정이 중요하기에, ②번에서는 아픈 표정을, ③번에서는 궁금한 표정을 적극적으로 지어주는 것이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 두 가지 수화에 대해 알아보니 어떤가. 우리말 구성과 아주 비슷하고, 동작도 간단하며 직관적인 편이어서 생각보다 배우기 어렵지가 않다. 이런 작은 노력만으로도 환자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다면 왜 하지 않겠는가. 다만, 수화 몇 마디 한다고 해서 완벽히 진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세한 병력 청취를 위해서는 결국 통역사가 있어야 할 것이며, 생각지도 못한 많은 장벽이 있을 것이다. 한 예로, 말하는 게 무엇인지, 소리 내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라 '아-소리를 내보세요' 라는 이비인후과 의사의 요청조차 농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작은 '관심'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나 하나만 해도, 마냥 복잡하고 어려워보였던 수화가 농인과 수화에 대해 알고 난 뒤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들을 보면 대화를 시도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 다양한 동영상 매체의 발전으로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서도 수화 관련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동영상을 보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지역 문화센터 등에 개설된 수화 강의를 신청해보자.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과 무궁무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 당장 이번 여름부터, 매력적인 수화라는 언어에 한 번 빠져보는 것은 어떤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2019-06-10 06:15:53
지난 5월 말, 경주에서는 올해로 35번째를 맞이하는 의학교육학술대회가 열렸다. 평소 의학교육에 관심이 있어 꾸준히 참석하던 중, 올해는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에서 한 세션을 맡아 진행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알고 보니 학회측에서 몇 해 전부터 이러한 제안을 계속 해주셨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번번이 고사하였다고 하는데, 매번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처음으로 준비를 해보기로 하였다. 사실 이번 학회의 화두는 새 평가인증기준인 ASK2019였다. 공교롭게도 대전협 세션이 ASK2019 세션과 같은 시간대에 배정을 받아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분이 참석하셨고, 특히 관련 기관을 이끌고 계신 여러 원로 선생님들께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관심을 보여주셨다. 올해 학회의 큰 주제는 ‘창의와 가치지향 교육’이었다. 이를 어떻게든 엮어보기 위해 고민을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인턴과 레지던트를 아우르는 졸업 후 교육(GME)에 대해 대전협이 가진 짧은 생각을 나누는 자리로 꾸며보았다. 전공의 교육과정을 살피다 보면 창의나 가치를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뜻에서였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부족함을 논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의학교육(BME)의 목표는 의료전달체계의 버팀목이 될 지역사회 내 일차진료의 양성이다. 평균적인 환자들에게 일반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사에까지 창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의사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잠잠해지나 싶으면 들려오는 의료계 내의 각종 사건 사고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의학적인 문제가 쟁점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은 이러한 가치의 가치, 이른바 ‘메타가치’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 의학교육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매우 반갑지만, BME에서의 교육이 그 이후, 특히 GME로 전혀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근 전공의들의 교육수련 현장에서 극히 드문 일부의 자칭 ‘교육자’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매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오고 있다. 대전협은 이유를 불문하고 어떠한 형태의 폭언이나 폭행에 대해서도 매우 강경한 태도지만, 이를 두고 또 다른 극히 드문 일부에서는 그나마 후배 교육에 관심이 있으니 그러는 것일 텐데 굳이 스승을 그렇게 망신주어야 하냐는 질책이 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비단 스승의 탈을 쓴 자들 뿐만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한 전공의가 간호사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였다가 적발되었다. 대전협은 해당 회원을 즉시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에 제소하였고, 스승들로 하여금 잘못된 우리 동료를 엄벌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아무 소식이 없다. 새롭게 들려온 폭행 소식에 대해 이번에는 각 지역의사회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는 전문가평가제에 의지해보고자 서울시의사회에 즉시 제보하였다. 과연 달라진 것이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이러한 ‘내부 상황’을 무분별하게 제보하지 말라는 요청도 있다. 부끄러움은 남아있다는 뜻일까. 기술로서의 의료 측면에서 우리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의학, 특히 교육의 측면에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유일한 의학교육 전문 학회인 의학교육학술대회는 지나치게 BME에 치중되어있고 BME-GME-CME의 연계에 관해서는 아직 부족함이 많아 이곳에서의 생산적인 논의가 실제 의료와 의학이 행해지는 현장으로 이어지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느낌을 매번 받곤 한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본다면 올바른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BME를 통해 바르게 익혀 GME 가운데 철저히 깨닫고 수련받도록 이어줄 역할이 아직 우리 젊은 의사들에게 남겨져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우리가 무가치함에 오랜 시간 익숙해진 나머지 메타가치의 소중함을 시나브로 잃고 막상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에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마저 사라짐을 우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