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속 의학 교육, 그리고 풀어야 할 숙제 2020-04-13 05:45:50
|가천의대 의학과 2학년 모채영| 2020년 4월 현재, 국적과 성별, 연령을 막론하고 모두의 관심은 COVID-19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는 지금까지 여러 유행병을 경험해보았지만, 21세기 들어 COVID-19만큼 사회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범세계적 유행병은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 집회는 중단되었고, 봄마다 벚꽃놀이 인파로 붐비던 공원들은 폐쇄되었으며, 개학이 4월로 미루어 지는 사상 초유의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의과대학의 교육 과정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전국 거의 모든 의과대학에서 오프라인 수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임상 실습도 평상시보다 훨씬 연기되어 시작되었다. 가천대학교의 교육 일정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현재 의학과 1학년은 오프라인 해부 실습이 중단된 상태이며 임상실습을 시작한 의학과 3학년을 제외하고는 모든 학년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열람실을 비롯한 의과대학의 모든 시설은 폐쇄 조치가 내려졌으며, 오프라인 모임이 필요한 행사들은 모두 취소되었다. 의학 교육의 특성상 임상 실습이나 조직학, 해부학과 같이 오프라인 실습이 필수적인 과목이 존재하며, 학사 일정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고 여러 과목의 일정이 맞물려 돌아가는 만큼 한 과목의 일정이 조정되면 다른 과목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많은 학교에서 채택하고 있는 블록 제도는 몇 주의 기간 동안 한 과목을 배우고 그 기간이 끝나면 해당 과목의 성적이 산출되는 제도이다. 따라서 한 블록의 일정이 조정되면 도미노처럼 다른 블록의 일정들도 밀리게 된다. 중간기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학교들도 여러 과목을 한꺼번에 배우므로 시간표가 촘촘하게 짜여 있어 시간표 조정이 여의치 않음은 마찬가지이다. 그에 더해 유급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과목마다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매 학기마다 배우는 과목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요인들은 의학 교육 학사 일정의 융통성을 매우 떨어뜨린다. 2003년 SARS,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 2015년 MERS 그리고 2020년 COVID-19.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영향을 주는 범세계적 유행병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변화로 인해 이러한 전염병의 유행이 4~5년 주기로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 또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COVID-19와 같이 파급력이 강한 전염병이 2025년, 2024년, 혹은 그보다 더 일찍 다시 찾아올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COVID-19와 같은 전염병, 또는 그에 준하는 자연재해에 대비하여 비상시 의학 교육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졸업에 일정 시간 이상의 임상 실습이 필수적인 의과대학 특성상, 졸업 요건이나 국시 응시 자격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임상 실습의 전염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의과대학 실습생 생존권에 관한 청원이 올라오기도 하였고, 한국의학교육협의회 한희철 이사장도 임상 실습의 감염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에 관한 안전장치의 마련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항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오프라인 실습이 필수적인 과목들의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권자들의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의학 교육은 비단 미래의 의학자를 양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의 건강이 위협당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선봉에 나설 사람들의 기반을 닦는다는 데에 있어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진다. 이번 일을 계기로 비상시 의학 교육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그 개선 방향에 대해 2020-04-09 05:45:50
|차의과대학 본과 3학년 김태겸| 첫 코로나 확진자가 국내에 나온 지 80여일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수많은 사망자가 나왔고 많은 국민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외출을 금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요즘, 오히려 코로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최전선에 서있는 의료진들이 있다. 대구/경북 지역을 포함한 의료지원이 필요한 어느 곳이든 자처해서 걸음을 옮긴 많은 영웅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 모습에 많은 국민들은 의료진에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편 국내 첫 의료진 사망이라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대구 60대 내과 의사분이 진료 중 코로나 환자 접촉으로 인하여 돌아가셨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선배님들의 모습은 나의 미래 의사상에 대한 생각에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비단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만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신종플루, 메르스 사태 때도 영웅들은 같은 자리에 묵묵히 서있었다. 나는 한 가지 물음을 던져보고자 한다. 이러한 의료진들의 묵묵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과연 국민의 의사에 대한 신뢰도, 사회적 인식이 과연 현재에 나아졌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평소 의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의사에 대한 불신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현저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편이다. 2015년 메르스 당시 의료진들의 헌신이 있었던 이후에도, 2016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우리나라 국민의 공중보건 위험 인식 조사와 정책 활용 방안에 대한 기반연구' 보고서를 보면 보건의료직군 중 의료과실, 사고에 대해 신뢰도는 의사가 가장 낮다. 이에 반해 유럽의 경우, 의사를 향한 신뢰 수준이 불신하는 정도의 두 배가 넘는, 우리나라와의 정 반대의 경향을 보이는 것을 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앞선 메르스, 신종플루의 사례에서 보았듯,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사회적 인식 개선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코로나 사태 진정 국면 이후에도 그것이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의사에 대한 신뢰 수준 향상, 그것은 환자와 의사간의 관계에 있어서 꼭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환자의 적은 질병이다. 의사의 적도 질병이다. 같은 적을 두고 손을 잡고 싸워야 하는 의사-환자 관계가 불신으로 얼룩져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 의료진과 환자가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캠페인 등 적극적인 사회문화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비슷한 사례로, 일전에 음식점, 카페 등 아르바이트생을 향한 일부 사람들의 이른바 '갑질'은 사회적으로 많은 자성의 목소리와 비판이 나옴으로써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흔한 의사- 환자관계에서 나오는 갈등 또한, 또 다른 자성의 목소리로 변화를 꾀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단체 차원에서 의사와 환자 집단이 서로의 벽을 허물고 소통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구체적인 채널을 마련하여 소통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제도적 개선이 앞서 말한 개선방안과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의사를 폭행하거나 멱살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곤 한다. 이런 폭행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2019년 관련법 개정이 이뤄졌으나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가 벌을 면하는 반의사불벌규정'은 아직 남아있다. 이 조항은 사법당국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양자 간 합의에 집중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한다는 지적을 받는 조항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실질적으로 반영한 제도적인 개선이 뒤따라야 안전환 환경에서 건강한 진료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 생각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환자를 진료하다 돌아가신 내과 의사분의 죽음과 지금도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땀방울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환자와 의사가 두 손을 꼭 잡고 질병에 맞서 싸우는, 건강한 의료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 잡길 바라며.
고뇌하는 인간에게 헌사하는 책임과 연대에 대한 소고 2020-04-06 05:45:50
|가천의대 의학과 2학년 백명훈| 인간은 물론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고 존엄하다. 그러나 전 세계에 70억이 넘는 사람들이 현존하고 있으며,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은 사라져 갔으며 미래에도 사람들이 오고 갈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 하나에 불과한 우리 자신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는 순간, 삶의 대한 허무를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존재를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순간, 인간 하나가 갖는 존재감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영감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인간을 네트워크 속의 점(node)로서 생각할 수 있고, 상호 간 맺는 관계를 네트워크의 연결(link)에 대응할 수 있다. 하나의 점은 다른 많은 점들과 연결되는 동시에 그 점들은 다수의 점들과 연결을 공유한다. 복잡한 연결성 속에서 한 점이 하나의 네트워크 내에서 갖는 힘은 실로 파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망 속에서 타인과 상호작용한다는 맥락에서 인간의 존재는 작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가치를 자유롭게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치는 본질적으로 좋음에 대한 표현이거나 이익에 대한 추구일 수밖에 없다. 좋음과 이익은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각자의 영역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가치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관계를 지탱하는 규범의 역할이 여기서 드러난다. 규범은 서로 다른 가치들의 다양성과 이들이 타협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성을 균형 있게 확보해야 한다. 규범의 형성 과정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충분한 논의와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규범은 조화라는 대의 앞에 우리의 가치, 삶과 자유를 일정 수준 규정하고 제한하기 때문이다. 규범은 가치에 기반하여 형성되는 것이지만 가치와 보편 규범의 구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가치와 규범을 혼동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도덕적 우월감과 당위성을 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설득하는 쉬운 길일지 몰라도,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과도한 갈등을 야기할 뿐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선호와 이익 추구의 결과임을 직시하고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보편 규범과 혼동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타협에 참여하는 것이 조화로운 연대의 시작이다. 그렇게 시작된 연대는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으로 완성할 수 있다. 소통은 상호 간에 서로 다른 인식의 틀과 가치체계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가진 인식의 틀과 가치체계를 자각하지 못하거나 이를 적절하게 표현하지 않고 군중 속으로 침잠하는 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존중의 자세로 보기 힘들다. 서로 다른 인식의 틀과 가치체계를 조화하려는 노력 없이,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끼리의 과잉 연결에 안주하는 것은 집단적인 트랜스(trance)와 다름 아니다. 연결(link)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이제는 연결이 가진 속성을 재고할 시점이 다가왔다. 현존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꾸밈없이 적절하게 표현하고, 타인에게 귀 기울이며, 진정한 조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함께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에 참여할 책임이 있다. 이 네트워크 속에서 진정한 자기 책임과 조화로운 연대를 실현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존재의 의미와 활력을 마주할 수 있다. 모든 이들은 각자마다 삶을 감내하고 있다. 그리고 무력감에 대응하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면, 희망은 없다.
군 병원, 이대로 괜찮은가? 2020-03-30 05:45:50
|고대의대 의학과 2학년 신주윤| 학창시절과 20대의 동고동락을 같이한 소중한 내 죽마고우들, 지금은 각자의 길을 준비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만 해도 그들은 전부 군 복무 중인 장병들이었다. 당시에 거의 모든 친구들이 휴가 때마다 의대생인 나를 보고 하는 얘기가 있었다. "군대병원은 민간병원이랑 서비스가 너무 다르다", "훈련을 빠지러 꾀병으로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정말 아픈 사람이 올 때도 소홀하게 대한다", "다른 증상으로 방문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약 한 종류만 처방 받으니 제대로 된 처방인지 믿기가 어렵다", 이와 같이 절대다수의 친구들은 각 대대별로 있는 전방병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의료기술은 선진국 중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알고 있는데, 정작 국가 중요기관 중 하나인 군대에서는 제대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에 현재 군 병원은 어떠한 문제점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찰해 보았다. 1. 군 병원이란? 국군의무사령부 산하에 있는, 군 장병을 대상으로 하는 병원으로서 크게 전방병원, 후방병원으로 나뉜다. 전방병원은 각 대대별로 있는 중소형 병원으로 주로 경상 환자들을 다룬다. 후방병원은 그보다 도심에 있는 중대형 병원들로서 중증 환자나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 혹은 그 후에 요양이 필요한 환자들을 받는다. 본 글에서는 주로 전방병원에 대해 다루었다. 2. 군 병원의 문제점 (1) 비효율적 인력배치 군의관 대부분은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 전문의 자격을 가진 채 군복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3~4년 동안 근무했던 전공과와 무관한 진료를 해야 하며 임상 경험도 부족하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례로 2016년 3월, 故 홍정기 일병은 사망 11일 전부터 극심한 구토, 두통 등 급성 백혈병과 뇌출혈의 대표적인 증상을 보였지만 당시 담당 군의관들은 그에게 급성 두드러기약과 두통약, 감기약만을 처방했다. 피부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그들은 백혈병이라는 진단에 대해 이론적으로만 알았을 뿐이지 실제 접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혈액암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으며,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응급 환자를 진료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2) 낙후된 시설과 의료기기 병사들이 아플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대대/연대급 의무대에는 청진기와 기본적인 문진 기구가 전부이며 혈액검사 장비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이다. 심지어 바늘이나 가위 같은 의료기기들을 주방세제로 세척해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의료기기 중 상당수가 수명연한을 초과한 상태이다. 지난 2016년 국군의무사령부의 자료에 따르면 노후 의료기기는 439기에 달했으며,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는 수명연한은 무려 27년이나 초과한 저울을 사용 중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 보급된 기기가 20대에 달했고, 1989년에 보급된 피부이식기, 1990년대에 보급된 지혈대, 1999년에 보급된 응급환자 수송용 구급차, 1997년 보급된 멸균소독기 등 수십년 된 의료기기들을 여전히 사용 중이었다. 이러한 행태는 국방부의 훈령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고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3) 무성의한 진료태도와 도덕적 해이 2018년 3월 기준, 국내 군의관 전체의 93.5%(2299명)이 38개월 단기군의관이었다. 이러한 장기군의관 부족 문제는 군의관들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2019년 3월, 실리콘을 이용해 지문을 본떠 출퇴근 시간을 조작한 군의관 8명이 군 당국에 적발됐다. 이들은 실리콘으로 본떠 만든 지문을 일부 당번 군의관들에게 맡겨 관례적인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지문을 찍게 만들었으며, 출근 시간을 길게 기록해 야근 수당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2019년 2월에는 "어머니가 화나게 해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3년 간 124번 늑장 출근하고 62번 전화로 휴가를 신청했으며 응급대기 중 종종 연락이 두절됐던 군의관이 체포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납품업체 직원이 직접 수술실에 들어와 십자인대 수술 과정에 참여해 무릎에 구멍을 뚫게 한 군의관들도 적발됐다. 3 해결방안 왜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하게 됐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군의관의 90% 이상은 자원이 아닌 병역의 의무로서 복무하고 있다. 이들이 병역 이후에도 계속 군 병원에 남고 싶을 만한 메리트가 충분치 않기 때문으로 필자는 해석했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군의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유인책일 것이다. 대학병원에 남아서 페이닥터로 일하거나 개원의로서 병원을 경영하는 대신 군의관을 선택하도록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군의관 월급을 인상하거나, 여가시간을 늘리거나, 공무원으로서의 사회적 혜택을 많이 보장해 주는 대책들이 있을 것이다. 군의관 한 명이 부대 한 곳을 떠맡아서 전공분야와 무관한 진료를 계속 맡게 되는 것에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부대마다 여러 명의 전공의 혹은 전문의를 두는 만큼 사회적 비용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다만 보완책으로서 한 명의 의사가 다양한 분야의 진료를 어려움 없이 잘 수행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강구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으로 보인다. 군대에서 자주 발병하는 질환들에 대해 통계 조사가 이루어진 후 해당 질환들에 대한 진단 및 치료에 대한 매뉴얼을 개발하는 것은 어떨까? 매뉴얼에 덧붙여 단기군의관이 38개월 동안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초반의 오리엔테이션을 보강하고, 수시로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한다면 군의관의 진료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군 병원과 군의관 제도는 군대를 다녀온 모든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쉽게 공감할 만한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었지만 수면 위로 공론화 된 적은 많지 않았고 그 문제들의 원인도 얽혀있어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적인 많은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사회 역시 군 병원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군대에 있는 국군 장병들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러 온 20대 남성들이고 장차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역군이다. 이들이 안전한 보건환경에서 나라를 지키고 건강한 신체로 전역해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군 병원의 의료 서비스가 선진국에 걸맞게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명감 하나로 코로나 전쟁터에 뛰어든 의사들 2020-03-26 05:45:00
|충남의대 의학과 3학년 정호영| 꽃이 피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새 출발이 시작되는 계절의 3월, 우리에게 이런 봄은 멀게만 느껴진다. 거리는 한산하고 약국 앞에는 마스크를 낀 인파가 줄을 잇는다. 초&8231;중&8231;고등학교는 유례없는 사상 첫 4월 개학, 대학교는 온라인 개강을 결정했으며 북적여야 할 학교는 굳게 문을 닫은 지 한 달이 다 돼간다. 텅빈 가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자영업자들의 곡소리가 들려온다. 며칠 전 1800선이 붕괴됐다던 코스피지수는 이제 1400도 위태해 보인다. 경제도 코로나 사태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사람들 역시 공포에 떨고 있다. 병에 걸릴까도 두렵지만 이제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상황이 장기화 될까봐'이다. 우리의 평온했던 일상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COVID-19 사태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꾸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사회혼란을 틈타, 마스크를 왕창 사 비싼 값에 팔거나, 가짜 마스크를 유통해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우리 인간을 병들게 하는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이제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까지 병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루는 병동에 가니, 한 환자가 폐렴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쓰기 싫다고 학생의사인 나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환자에게 괜찮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켜주었지만 사실 나라고 두려운 마음은 무엇이 다를까. 병동을 나오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전날 대면진료 했던 고열, 기침의 환자는 혹시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이 아닐까. 환자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했는데 괜찮은 걸까. 고작 몇 십 분 환자를 본 나도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 매일 수십, 수백 명의 확진 환자와 접촉하는 현장의 의료진들은 어떤 마음일까. 사명감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이들의 걱정과 혼란이 가득한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계는 방역과 환자관리의 최일선 현장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렇기에 질병관리본부를 필두로 관련 공무원들, 보건 관련 전문가들은 잠도 못 자면서 방역에 앞장서고 있다. 대학병원도 비상체제에 돌입했으며, 의료진들은 밤낮없이 고생하고 있다. 교수님들의 수척해진 얼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뿐이던가. 본업을 잠시 뒤로 하고 대구로 봉사를 떠나는 의료인들, 직무교육만 받고 현장으로 파견된 공중보건의사들도 볼 수 있었다. 많은 연구진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많은 이들의 사명감과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의료계는 간신히 돌아가고 있다. 병원이 사태의 최일선에서 굴러가고 있는 동안, 이곳에 오길꺼리는 환자도 생겼다. 교수님 사이에서는 '환자가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서워 암으로 돌아가시게 생겼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어쩌면 환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잠시 다녀간 곳만 해도 사람들이 발걸음이 뚝뚝 끊기는데 수십, 수백, 수천 명의 확진 환자가 다녀가고, 머무는 병원은 오죽할까. 그렇기에 의사는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건강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병으로부터 건강해야 한다. 의사 본인을 위해서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다.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가 대다수인 병원에서는, 나의 감염이 나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개인위생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번 달 말이면 병원 실습이 재개된다. 재개될 병원 실습을 기다리면서 우리 예비의료인들도 위험지역 방문 자제, 각종 모임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의 출입 자제, 외출 시 마스크 착용과 개인위생을 위한 손 씻기 등의 생활 수칙을 지키며 국가 비상사태에 협조하고 있다. 나 자신, 내 주위 사람들, 그리고 환자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밤낮없이 고생하는 선배 의사 선생님들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지 않게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많은 사회의 혼란이 가중된 지금이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막아내고 있다. 소의(小醫)는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고, 중의(中醫)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이며, 대의(大醫)는 사회를 고치는 의사이다. 라는 말이 있다. 사명감 하나로 오늘도 코로나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지금의 의료진들이야말로 사회를 고치는 '대의'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많은 선배 의사 선생님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힘찬 박수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이들이 묵묵히 자기 일을 다해주고 있는 덕분이다. 밤낮없이 사명감 하나로 겨우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 견딜힘마저 바닥나기 전에, 하루빨리 모든 것이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해본다.
이태원 클라쓰 어디까지 보셨습니까? 2020-03-23 05:45:50
|건양의대 의학과 3학년 강주연| 요즘 10대와 20대를 비롯한 다양한 연령층에서 '이태원 클라쓰'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JTBC라는 방송사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로, 원작인 웹툰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되면서 드라마로까지 발전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가 유독 색다르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동안의 한국 드라마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LGBTQI+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LGBTQI+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 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 인터 섹스 그 외 제3 의성을 줄인 단어로 성 소수자들을 일컫는 단어로 오늘날 사용되고 있다) 드라마 속 '마현이'라는 인물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이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여러 차례 1등을 차지하자, 경쟁의 대상이었던 '장가'라는 요식업계 회사에서 마현이가 트랜스젠더라는 정보를 기사화해 그녀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자 한다. 해당 기사에 대한 대중적 반응을 통해 우리는 한국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차갑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꽤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자랐던 터라 한국에서 처음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 적지 않은 문화 충격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 더 나아가 한 사회 전체가 LGBTQI+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한국에서는 성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편협한 채로 그 색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몇 해 전, 우연한 기회로 참여하게 된 한 대학 강의에서는 '동성애는 정신병이다'라는 자극적인 문구의 수업자료와 '의료인은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와 같은 이야기가 토론 수업의 주제가 되기도 했었다.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자극적인 문구가 수업의 자료로 사용되고 있는 문화 속에서의 성 소수자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근래에 큰 화제가 됐던 우리나라의 성전환자 군 복무를 비롯해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회사인 디즈니에서도 성 소수자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등 LGBTQI+는 점차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여전히 비난받고 차별받곤 한다. 한참 성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무렵, 관련 세미나를 듣기 위해 참석한 의학학회에서 우연히 트랜스젠더를 만날 수 있었다. 그분과 함께 여러 담소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해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혹시 성 소수자로서의 삶 속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시나요?" 그분은 익숙한 질문이라는 듯,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공용 화장실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 때면 크게 좌절한답니다. 저는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여자 화장실을 들어가면 예외 없이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고, 남자 화장실을 들어가려니 막상 제가 민망해지더군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대답을 듣고서 한참을 생각했다. 그동안의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됐고, 지난날의 생각과 태도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온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성 소수자들에 대한 선입견은 적지 않았다. 무의식중에도 그들의 옆자리는 선호하지 않았으며 큰 용기를 가지고 커밍아웃을 한 친구들에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선을 긋고 있었다. 전 세계 의과대학생들이 모이는 학회에 참가하면 성 소수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다르게 해석해보자면,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용감해서 솔직할 수 있었다기보다는 그 사회 안에서는 누구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솔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안에서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 잡혀 있었다. 성 소수자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도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들에게 잠재돼 있던 터무니없는 선입견을 바로 잡았고, 더 나아가 관련 이슈들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한 사회적 분위기가 개개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절대 적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학생들이 가치관을 확립하고 사고를 정돈하는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동성애는 정신질환이다'라는 근거 없는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하며 편협한 교육을 이어나가는 것이 올바른 처사인지 의문이다.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만이 옳은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쉴 틈 없이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전통의 옳고 그름은 결국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판단해야 한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 서툴고 더딜지라도 분명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삶의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비난을 가하는 문화가 아닌 평등 사회로의 이행을 실천할 때가 왔다.
신종 코로나 속 선한 영향력 2020-03-16 05:45:50
|경상의대 의학과 1학년 김가연|신종 코로나가 지속됨에 따라 생활방식이 달라졌다. 학생들은 개강 연기 및 비대면 학습 방식의 변화가 나타났다. 재택근무를 권하는 회사들의 증가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하게 되는 심리적인 반응으로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생활 방식의 변화는 다른 형태로도 존재한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지역 차별로 인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했고, 마스크 사재기 등 일명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 공적마스크도 입으로 이어졌다. 코로나로 인한 외출에 제한이 걸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불편함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선, 유명 연예인들의 기부가 이어졌다. 여러 유튜버들은 직접 마스크를 구해 나누어주는 선행을 하기도 했다. 기업에서는 의료진에 대한 지원, 기부금 등 다양한 영향을 미쳤는데 식품업계, 금융권 등 다양한 범위의 기업이 다양한 형태로 선한 힘을 드러냈다. 개인 차원에서 코로나로 인해 업무량이 늘어난 공무원들에게 떡, 마스크 등을 지원하는 '얼굴 없는 천사'도 있었고, 의료진을 대상으로 도시락, 마스크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통해 직접 선한 행동을 실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대한 의사협회, 카카오, 경상남도 의사회, 대구광역시의사회, 경상북도의사회 등 코로나 19 모금 활동으로 개개인의 선한 영향력을 하나로 모아 그 힘을 발휘했으며, 700명의 군의관 및 간호장교 분들은 인력이 부족해 도움을 원하는 목소리를 따라 대구로 직접 지원하는 모습도 확인이 가능했다. 이밖에도 정말 많은 수의 의료진들이 본업을 잠시 놔두고, 대구로 자원해 온몸으로 선한 영향을 끼치는 분들도 있다. 특히 개인 병원에서 마스크 등 필요한 물품을 챙겨서 대구로 가신 분도 많았다. 처음 이 분들의 기사를 접했을 때, 과연 나도 저런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대구로 자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2월 24일 기준으로 의료진 20여명이 신종 코로나가 확진됐고, 격리된 의료진의 수도 260명이 넘었다. 그리고 확진자가 나온 병원들 중 환자로부터 의료진이 감염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이 감염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낯선 곳으로 떠나는 발걸음에는 정말 많은 용기와 선택에 따른 희생이 필요하다. 특히, 많은 시간 동안 마스크와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보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이 너무 바빠 먹을 시간,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료진들이 여럿 많았다. 한동안 의료 물품도 부족해서 감염 위험이 크기도 했다. 이런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제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의료진들로 인해 그 선한 영향력이 많이 행사됐다. 퇴원 하는 환자의 수가 증가했고, 다른 국가에 비해 사망자 수가 확진자 수의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 감염 위험이 높고, 힘든 환경에서 주저 없이 지원하는 의료진들의 선한 영향력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의료진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특히 의료진을 응원하는 캠페인이 다음 3명을 지목해 도전하는 방식 등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여러 사람들의 선한 행동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여러 선한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형태로의 선한 영향력을 이끌어 내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선한 행동으로 인한 영향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선한 행동을 이끌어 낸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따뜻한 힘으로 이겨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의대생이지만, 장차 이러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의 전문적인 위치에서 가장 나다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의료인이 되고 싶다.
의대생들의 건강은 누가 지켜주나요? 2020-03-13 05:45:50
|연세대 원주의대 의학과 2학년 고우림| 지난달 초 전국적으로 대학교 개강일자 변경을 공지 할 즈음, 필자는 다른 학교들의 개강 연기소식을 학교 열람실에서 접했다. 얼마 남지 않은 혈액학 시험을 위해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던 와중, 갑자기 추가된 2주 방학에 기뻐하는 타과 친구들의 환호성을 듣고 있자니 그 모습이 대비돼 괜히 마음이 심란해졌다. 뭐 어쩌겠는가? 의과대학 특유의 짧은 방학은 이미 적응했다. 의대생이라고 해서 특별히 면역력이 더 뛰어나지는 않을 터, 곳곳에서 개강 연기 소식이 들려옴에도 여전히 임상 실습을 포함한 학사일정을 강행하는 대다수의 의과대학들을 보며 의문을 가진 채 어느새 2월 중순이 지나고 있었다. 그 후 코로나 19 (COVID-19)의 확산 및 지역사회 감염이 가속화 되고,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 2월 24일경을 기점으로 많은 의과대학들이 학사 일정 조정에 들어갔다.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이하 의대협)의 '코로나 19 사태에 따른 각 대학별 대응 현황 자체 조사'에 따르면 개강 후에 본과 과목 수업 및 실습을 중단한 단위는 총 28단위이다. (미응답 5단위 제외) 문제는 아직까지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장기적인 휴교에 따른 대책 마련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하 KAMC)는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온라인 강의 등 수업 대체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물론 필자의 학교를 비롯해 빠르게 온라인 강의 체제를 도입해 학생들의 교육권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학교도 있지만, 전체학생대표자총회 대의원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협 내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3월 2일 기준으로 비대면 원격 수업 진행에 있어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응답한 단위는 4단위에 그쳤다. 특히 임상 실습의 경우, 원격 수업의 한계를 보완하는 적절한 대책을 내놓은 학교는 없는 실정이다. 유례없는 휴교에 따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학생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줄어든 여름방학, 틀어진 시험 일정, 채우지 못하는 출석 일수에 따른 졸업 요건 미충족, 기존 학사 일정변경으로 발생할 각종 불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크기를 더해간다. 이에 따라 한편에선 대책 없는 무기한 휴교 대신 차라리 수업을 강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모두가 불안하고 상황을 의심스러워할 때에는 확실한 대책 마련과 명확한 공지,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혼란을 최소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는 상반된 조치를 취하는 학교들에 대한 제보가 페이스북 익명 커뮤니티, 협회 메일, 그리고 개인적인 연락을 통해 들어왔다. 그 내용은 학사 일정 변경 기간 동안 코로나 19 발생 지역 또는 국가 방문으로 발생하는 모든 불이익은 학생이 감수, 학교가 위치한 지역을 벗어나지 말라는 권고 및 벗어난 후 감염 시 제적을 포함한 중징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대면 출석 요구 등이다. 물론, 학생들의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규제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권고는 그 필요성을 떠나,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조치가 될 수도 있다. 너무나 안타깝다. 감염은 단순히 개인 건강의 악화를 넘어 학생 본인의 제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더더욱 공포스러우며, 결국 의대생은 성적에 악영향을 받는 것이 두려워 수업 강행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코로나 19 감염 위험 보다 더 두려운 것이 유급이고, 당장 다가올 시험인데. 어쩌면 의대생들은 안전 불감증을 가장 위험한 곳에서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의과대학생들의 건강과 안위가 위험에 놓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월 사이 의대협 교육국에서 시행된 제2차 임상실습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60% 가량의 응답자가 학교로부터 임상실습 전 예방 접종에 대한 적절한 비용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각 학교별 통계로 자세히 살펴보니 40개 의과대학 중 9개 의과대학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의대생들은 병마와 지극히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들의 건강과 권리에 대한 보호는 등한시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건강의 최소 보장을 위해서는 학교와 학생 모두가 '함께' 해결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이런 일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한 공론화 기구의 필요성이 더욱 더 절실해 지는 때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남기고 갈 숙제 2020-03-09 05:45:50
|동국대 일산병원 응급의학과 이경민 전공의| 이번 달 우리 의국에서 진행한 주간 컨퍼런스 핫이슈는 단연 COVID-19였다. 3주 연속 시시각각 바뀌는 COVID-19에 대한 리뷰를 진행했다. 마지막 주에 살펴보았던 Medical Medscape news의 한 기사에서 아직 알지 못하는 감염병에 대해 선별의 목적은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그 동안 질병에 대한 의료적인 지식을 획득하고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2020년 2월 18일 대한민국에서 COVID-19는 하루아침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의료의 고질적인 문제가 또 다시 반복됐다. 대구경북 지역 뿐 만 아니라 전국이 정도만 다를 뿐 '전문가'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병원은 응급상황을 고려한 인력을 확보하지 않는다. 안정된 상황에서 모두가 최대로 일해야 24시간 환자에 대한 진료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기 전에도 전문가가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같이 바뀌는 상황을 따라가며 진료 지침을 준비하고 음압은커녕 각 침대가 분리되지 않은 응급실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역학분야는 처음부터 소수의 전문가조차 존재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지만 18일, 31번째 환자가 생기기 전까지는 어떻게 버티는 듯했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도 한계에 부딪혔고 갑자기 변화한 상황에 숙련된 전문의로만 전투를 벌이던 병원들이 아직 숙련되지 않은 전공의를 선별진료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전면전이 돼 최정예 군단 외에도 일병, 이병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숙달된 전문가를 지금 당장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 '미래의 전문가'를 미리 교육시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련프로그램의 부재와 전공의를 인력으로만 생각하던 수련병원의 현실은 여전했다. 추가적인 교육도 없이 진료 일선에 투입되는 전공의들은 미래의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허술한 인력에 불구하다. 혹자는 의료인으로써 보호복 착용이나 감염에 대한 인식은 기본이라고 말하지만 의과대학에서도 감염관리에 대한 교육은 충분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 '제2차 임상실습 실태조사'(2019. 12. 30 ~ 2020. 1. 12)에 따르면 임상 실습 전 감염관리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58%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절반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무균 술기 정도의 기본 감염관리 교육조차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현 상황에서 추가적인 교육 없이 전공의를 COVID-19 관련 진료에 투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응급 상황을 고려해 인력이 확보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COVID-19 관련된 인력을 따로 선별할 수 없다. 그래서 기존의 업무를 병행할 수밖에 없고 교육받지 못한 전공의는 개인 감염의 위험 뿐 아니라 원내 감염의 위험도 높인다. 게다가 3월에는 이제 막 훈련소에 입대한 훈련병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인턴 선생님들과 레지던트 1년차 선생님들이 들어온다. 매년 시행하던 인턴 오리엔테이션마저 취소하는 병원이 생기고 있고 예정대로 진행됐다고 하더라도 COVID-19와 관련해 추가 내용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현장에는 교육받지 못한 전공의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또한 사태가 급물살을 타면서 관련과목 전문의와 전공의만으로 역부족인 곳이 생기고 있다 그래서 신종 감염병과는 거리가 먼 전문과의 전공의들까지 차출하는 병원도 생긴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 다는데, 아무리 교육이 부실해도 감염과 관련이 있는 과에서 전문의 지도하에 1, 2년 동안 곁눈질이라도 하던 전공의와 그렇지 않은 이들은 다르다. 전공의를 값싼 인력으로만 생각하는 수련병원의 현실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생뚱맞은 과의 전공의들은 진료 투입 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을까? 진료 중에 적절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까? 이 두 가지가 잘 이루어진다고 해도 수련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들까지 동원 돼야하는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은 정상적인 것일까? 지금 SNS는 속도를 늦추는데 실패한 이유에 대해 날카로운 말로 연일 감정적인 언쟁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는 감정싸움은 급변하는 상황마다 불거지는 문제를 흐리게 만든다. 병상 부족, 음압 시설의 부족, 전문가의 부족처럼 당장에 시급하고 주목받는 문제 뿐 만 아니라 감염에 취약한 병실 및 응급실 환경, 응급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인력 배정, 예방이나 역학과 관련한 전공의 미달로 지속되는 전문가 부족, 관련 수련프로그램의 부재와 전반적인 감염 교육의 부재 등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정말 핵심적인 문제들도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감정싸움보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나가고 난 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COVID-19는 현 세대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신종감염병이 아니다. 조금씩 양상은 달랐지만 우리는 SARS와 MERS를 격은 세대이고 신종플루도 겪었다. 신종 감염병의 유행으로 드러난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얼마나 파악하고 얼마나 발전했을까? 충분하지 못했지 때문에 또 다시 그 때만큼 혼란스러운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과거는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을 통해 배우고 발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은 COVID-19와의 전투 하나에만 집중하자. 그리고 날카로운 비판과 문제의식은 마치 장보기 목록을 작성하듯 하나하나 적어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따듯한 봄날이 오면 잊지 않고 하나씩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직업은 평범한 톱니바퀴 2020-03-05 05:45:50
|경희의대 의학과 3학년 김재의| 우리는 태어날 적부터 사회라는 거대조직의 일원이 된다. 사회를 이루는 것은 또 다른 작은 규모의 사회이고, 이러한 모양새는 하나의 사회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개개인 단위로 세분화될 때까지 이어진다. 그렇기에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 혹은 거대한 기계에 비유되곤 한다. 그 기계의 일부를 이루는 우리는 어디 즈음에 위치하고 있나요? 왜 우리는 우리가 현재 위치하는 데에 자리하게 됐나요? 그 자리가 우리를 누군지 규정하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의 존재가 그 자리를 규정하게 되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을 누구에게 던져야 할까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의사는 아주 독특한 입지에 자리한다. 대한민국은 국민건강보험을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의 가입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지기에 타의적이고, 인구집단의 보편적 건강을 위해 운영되기에 전체주의적이다. 또한 진료의 가성비를 높이는 데에 목적이 있는 제도이기에 진료의 질보다는 경제적인 운영에 더 치중하게 된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제도가 운영됨에 있어, 수가 책정이 이루어진 항목들은 평균적으로 원가보전조차 보장이 되지 않다. 국가 당국의 손을 떠났지만 채워지지 않은 금전적 공백은 의사들의 피땀으로 채워지고, 이를 통해 통계적으로는 국민의료비 절감이 이루어진다. 즉,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타의적, 전체주의적, 경제적 최적화의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불합리한 제도의 유지 수단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거시적 관점의 문제만이 비단 우리를 기계화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미시적 관점에서, 대내적으로 우리 스스로마저 매너리즘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의사가 되기 전, 의대생일 때부터 우리들은 가공이 되기 시작한다. 의대생들은 입학 직후부터 여러 전제들, 관습들, 성문화돼 있지는 않으나 암암리에 존재하는 규범들에 대한 무조건적 순응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교육받는다. 그리고 임상 실습 과정에 들어서면서, 마치 정교한 기계처럼 운영되는 듯 하는 하나의 사회인 병원을 체험하며 결국 스스로의 존재를 정리하게 된다. 우리는 행정적 기계 속으로 산입이 된다. 결국 우리는 기관이 운영됨에 있어 다스려지는 사물로 약호화 및 규격화 된다. 안타깝다. 이 글에 전부 담을 시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시적·미시적 문제들이 얽히고설켜 이렇게 됐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굴레들이 실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 조차 우리의 잘못만은 아님을 알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돌파구가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생명을 다루는 업을 영위하고 있거나 미래에 할 우리는 이런 사유조차 할 시간이 부족하기에, 우리 앞에 제시된 정도(正道)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은 결국 탈선 정도로 취급이 되곤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상황이 악화되기만 할 것이라는 점도 알기에, 우리는 더욱 각성해야만 한다. 함께 관심을 가지고 개선책을 대내적·대외적 개선책을 모색해야만 한다. 기계는 그 내부가 워낙 정교하고 복잡하기에, 톱니바퀴와 같은 부품 하나가 고장나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톱니바퀴가 불량일 수 있으니, 우선 흔히들 톱니바퀴를 먼저 교체할 것이다. 그렇지만 교체를 몇 번이나 해도 계속 그 톱니바퀴가 고장난다면, 다른 부품이나 구동 방식이 불량이라 톱니바퀴가 고장나는 경우라 볼 수 있다. 작금의 우리는 이 이야기 속 톱니바퀴다. 세상은 더 이상 거대한 기계 속 톱니바퀴와 같은 역할만 하는 이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불합리성은 객체가 대놓고 불평하거나 슬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욱 심화된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타성에 젖은 현상(現狀)에서 능동적으로 벗어나야만 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우리 모두 빨간 약을 택할 때가 됐다.
코로나19, 우리의 성숙한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2020-03-02 05:45:50
|강원대 의전원 본과 4학년 심미정| 현재 창궐하고 있는 우한을 이해하기 위해 앞서 지나간 전염병들에 대해 배웠던 내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14세기 유럽에 있었던 흑사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최소 7500만 명, 거의 전체 유럽인구의 1/3을 사망에 이르게 했고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나아가는 토대가 됐다. 이후 1500년대 경, 신대륙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에게 variola virus인 천연두를 전파시켜 손쉽게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다. 1918~1920년 세계 1차 대전 중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H1N1의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이며 사망자가 2000만 명으로 전쟁사망자의 세배 정도였다. 이 병 때문에 전쟁이 빨리 끝났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의학과 위생의 발전으로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크게 줄었고,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지구상에서 천연두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선언했다. 그런 선언이 가능할 정도로 여러 백신과 항생제들이 빠르게 개발됐다. 이렇게 감염병보다 만성질환과 건강증진으로 눈을 돌리던 중에 우리 앞에 신종전염병들이 나타나고 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2020년 우한이라고 불리는 코로나19까지 말이다. 신종 전염병들의 유행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여러 지역의 교류가 증가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동물에게도 동시에 감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RNA바이러스는 균이나 DNA바이러스에 비해 돌연변이 발생확률이 높고, 사람이 걸려서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금의 과학이나 의학적 수준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발생하고 나서 알게 되니 그에 따른 치료와 예방도 사실상 어렵다. 바이러스를 분석해서 어렵사리 치료약을 개발해도 똑같은 약에도 치료 반응이 각각 다르고, 이내 곧 내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신종 전염병의 발생을 막거나 예방하는 방법은 아직 모를 수 있어도 이러한 전염병이 바이러스라는 미생물에 의한 것이고 전파를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것도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다.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잘 끼며, 사람이 많은 곳을 자제하고, 기침이 나올 때는 소매로 가리는 것, 열이 나거나 재채기 등의 증상이 있으면 병원에 가는 것이다. 처음 한국에 우한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초반에는 나름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았다. 1월 20일 1명이던 확진자가 2월 중순 까지 30명이 안됐을 당시 나름 역학조사가 이뤄지고 대규모 전파를 막아보려는 노력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2월 23일 코로나19의 위기경보가 '심각'단계로 격상됐고 하루에 확진자가 200명 가까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감염경로를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28일 기준 확진자수는 총 3150명으로 3천명을 넘었다. 이렇게 까지 퍼지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공동체의식의 부재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국가에서 역학조사를 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예상 밖의 상황이 많았다.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진료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특정 종교임을 숨긴다거나 일단 조심해야할 상황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마스크 등의 안전장비 없이 다닌다니는 모습. 또 중국 방문 이력을 물으면 없다고 한다든지 일반 진료를 받는 도중에 몇 차례 더 묻을 때 사실대로 말한다든지 하는 등의 예상할 수 없는 상황들이 사태를 이렇게까지 키우게 된 것 같다. 이렇듯 개개인의 공동체의식의 부재 속에서 국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맡기기에는 병원이나 국가도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돼 있다. 우리는 사용 가능한 입원실, 검사 시약, 인력 등이 한정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전염이 '의심' 된다는 사실만으로 병원에 오는 모두에게 우한 폐렴에 대한 모든 검사와 격리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점점 나위주로 돼갈 수밖에 없는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런 개인적이고 미숙한 공동체의식이 나, 가족 더 나아가서 국가에 큰 위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좀 더 성숙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앞으로의 사태를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의 생명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2020-02-24 09:29:06
|을지의대 의학과 4학년 김기덕| "여러분들은 왜 의사가 지금만큼 돈을 번다고 생각해요? 의과대학에 온 이상 몇 년이 걸리든 여러분들은 의사가 될 것이고, 의사가 아닌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들을 거예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그 친구들과 멀어질 수도 있고, 여전히 잘 지낼 수도 있다. 그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고민해보세요“ 본과 2학년 환자-의사-사회 시간에 강의를 들어오신 교수님께서 처음 하신 질문이다. 보건 정책 관리(Health policy and management)를 전공하신 교수님께서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대로의 대답을 원하고 이런 화두를 던지진 않으셨을 것 같아 꽤 긴 시간 생각에 잠겼다. "의대생은, 의사는 오랫동안/많이 공부하잖아" 주변에 많은 의대생들이 해당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다. 글쎄, 노력과 투자한 시간만큼의 결과를 주는 세상은 동화 속에나 존재한다. 열심히, 많이 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재수와 의과대학 생활을 거치며 충분히 깨달았다. 의대생과 의사들만 공부를 오랫동안, 많이 한다는 말에도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살면서 봐온 많은 공학 계열과 인문 사회 계열의 박사님들도 의사만큼이나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공부를 했다. 또 의사들도 그들 내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오래 한 사람이 꼭 더 많이 벌지 않는다는 데에 동의를 할 것이다. "의사는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직업이고, 생명의 가치에 따른 보상을 받는 법이다" 의사는 병원이라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현장을 책임지며 진두지휘하는 사람이다. 현대 사회에선 본인이 창출하는 만큼의 가치에 대해 보상받는 법이고, 생명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는 의사는 그에 대응하는 보상을 받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 생명은 고귀한 가치인 만큼, 동시에 보편적인 가치여야 한다. 모두가 영위할 수 있어야하는, 그러나 공급자에 충분히 그에 대해 보상해야 할 만큼 고귀한 생명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둘.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 따르는 보상이라면, 왜 우리나라에서 생명의 가치를 가장 최전선에서 직접 실현하는 바이탈과의 의사 선생님들에게는 적은 보상이 따르는 걸까. 셋. 마찬가지로 함께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간호사를 비롯한 다른 의료 활동 종사자들은 왜 조금은 다른 보상을 받게 될까. 각각의 주제만으로도 왜 그런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지면의 한계로 글을 줄인다. "그럼 지금 의사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어떻게 결정이 될까" 사실 어떻게 보면 간단하고, 어떻게 보면 어려운 문제다. 의사들의 평균 수입을 결정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면허라는 배타·독점적인 권리, 다음으로는 사회적 결정 요인들인 경상 의료비, 그리고 총 의사의 수. 면허라는 배타·독점적인 권리를 의사에게만 주는 이유가 있다. 위에 서술한 생명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실현함에 있어, 그 고귀하고 중요한 가치를 아무렇게나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위해 의학교육인증평가, 의료기관평가인증을 비롯한 여러 엄격하게 그 질을 관리하는 제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총 의사의 수를 제한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우리 사회의 한정된 재화와 용역을 투자해 가장 효율이 좋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하기 때문이다. 뢰머의 법칙을 비롯해, '더러운 손의 의사들'과 같은 의사 유인 수요에 대한 이야기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의사는 불필요한 의료비만을 증가시킬 뿐이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서남대 사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그렇게 많은 의사들을 길러낼 교육기관을 운영할 여력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경상의료비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결정이 되는 편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 그리고 실손 보험. 결국 국민들이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의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고 수준의 의료를 실현하지만, 여전히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경상의료비를 부담하는 나라에서 건강보험료 3% 상승은 올해도 국민들이 분노할 만한 일인 듯하다. "앞으로는 어떨까" 나는 OECD health at a glance를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보는 편이다. Outlier에 따라 변화하고, 의료의 수준을 반영하지 못하는 평균은 집어던지고, 우리와 의료 수준이 비슷하거나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몇 나라의 지표들을 보자. GDP대비 경상의료비(Health expenditure as a share of GDP). 미국, 16.9%. 일본, 10.9%. 영국, 9.8%. 한국, 8.1%. 우리의 눈높이에 맞는 진료를 위해서는 1.2배는 더 지불해야한다. 국민들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국민 1,000명당 의사 수(Practising doctors per 1,000 population). 미국, 2.6. 일본, 2.4. 영국, 2.8. 한국, 2.3. 그리고 증가 추세는 상위에 있는 우리나라. 동의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의사의 수입은 의사가 결정하는 걸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25인 중 4명 남짓한, 16%의 의사가 보험 급여를 결정할까. 미용과 비급여 시장의 의사의 손은 과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의 팔씨름을 이길 수 있을까. 의사는 왜 돈을 벌어야 할까. 당신의 생명의 가치는 얼마인가. 당신은 당신 주변의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나. 당신은 당신이 의사가 아니라도 납득할 수 있는가.
제2의 이국종 교수가 필요없는 사회를 기다리며 2020-02-19 19:59:59
|전남대학교 본과 2학년 이윤건| 한 달 전 2020년 1월 13일,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의 병원 내 위치를 공공연하게 보여주는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의료계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4~5년 전의 녹취록을 지금 공개하는 것이 과연 병원과의 갈등 해소를 위한 옳은 방법이냐는 주장도 있고, 이유를 막론하고 한 병원의 의료원장이 센터장에게 욕설과 막말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래도 이미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외상외과의 제도적 개선에 있어서도 '영웅'인 이국종 교수님이기에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아주대병원에 대한 비난이 큰 편이다. 하지만 이 논란은 의료원장과 센터장의 갈등 그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옛말에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위 격언에 빗대 보면 '영웅'이라고 부를 만한 이국종 교수님의 존재는 지금이 '난세'라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영웅'의 존재보다는 '난세'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맞게 돌아가고 있는 사회였다면, 애초에 이국종 교수님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국종 교수님은 외상외과의 제도 개선에 관한 이해 충돌에 엮이지 않고 수많은 외상환자를 살린 명의 정도로 세상에 소개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어야 정상적이고 올바른 사회이다. 때문에 지금은 ‘난세’ 라고 칭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난세’는 어떻게 하면 고쳐질 수 있을까. 필자는 여기서 전공 외의 트랙을 걷는, 딴 짓 하는 사람의 중요성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의료계가 어떠한 상황인지 직시할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의료 행정 전문가가 의료 공급의 체계를 바꾸고, 국제보건, 공공보건 전문가가 의료 공급의 대상자를 넓히고, 의료 현장을 느껴본 작가와 기자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그런 과정이 있어야만 정말로 올바른 형태의 의료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영웅'이 필요 없는 사회라고 믿는다. 이것은 다른 직종에도 해당되지만 의료계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의사의 수가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환자의 수와 비교했을 때 결국 의사는 소수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정책가가 많은 사람에게 환영 받기 위해서는 당장에 의사보다는 환자를 위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외상외과, 흉부외과 등의 기피과 처우 개선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부담이 계속 의사에게 지워진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정말로 의료 현장을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가 행정&8729;언론&8729;문화&8729;법률&8729;공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료인의 관점에서만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주어 균형 잡힌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국종 교수님 같은 실력 있고 열정 있는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것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신세한톡|오늘, 여러분들의 정신건강은 안녕하신가요? 2020-02-17 11:34:27
|아주의대 의학과 4학년 조승현|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이 떠올랐던 때가 종종 있었다.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었던 나의 죽음과,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상했을 누군가의 죽음이 자연스럽고 무책임하게 떠올랐다. 나 자신과 내 삶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로서 이성적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 실체를 보였을 때는 이미 속수무책이었다. 문제의 원인은 연초부터 망가져온 성적과 그로 인한 시험 부담이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우울의 끝자락에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시험은 내 불안을 끌어올리며 매시간 매분 경종을 울렸다. 나는 당장 눈앞의 시험이라는 관문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숴 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부서질 테니. 투쟁도피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은 견주어 볼 만한 상대와 '싸우거나', 거대한 상대에게서 '도망치거나'의 두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선택 하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과도한 업무와 사고에 치인 스트레스 덩어리 앞에 정상적으로 놓인 선택은 없었다. 알몸인 채로 눈앞에 호랑이를 만났다면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치고 싶은 상황 속에서 흐르는 시간은 나를 그 필패의 장으로 몰아넣는다. 그렇기에 그저 시험이 미뤄지거나 미뤄졌으면 하는 기대뿐이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는 방법은 시스템을 뒤흔들만한 비정상적인 사건뿐이었다. 영겁의 시간이 흘러 시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경멸하는 쨍한 햇발 아래 멈춰서 구역질을 해댔다. 진의를 떠나 터무니없는 생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했음에 자괴감을 느끼며 있는 힘껏 내 머리를 후려쳤던 기억이 난다. 그 즈음 나는 붉은 깃발을 열심히 흔들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적으로 고통 받는 상황 속에서 정신과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개념조차 이루지 못했으며,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의대생인 이상 힘들다는 푸념을 털어놓아도 공감해줄 리가 만무했다. 부모님께 휴학에 대해 언급하며 내 상황에 대해 피력했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저 열심히 하라는 말뿐이었다. 다행히 존경하는 지도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잠시 말씀을 나누며 마음 챙김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회고할 수 있는 흉터로 남았지만 어디에 쉬이 털어놓기까지 반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다만 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비단 개인적이라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주변에는 스트레스성 질환을 앓는 수준을 떠나 정신과 약을 처방받는 친구들이 늘어 그 수를 양손으로는 세기 어려워졌고, 페이스북 익명 커뮤니티에는 심심찮게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온다. 병원에 가고 싶지만 기록에 남아 당신의 커리어에 흠집이 날까 걱정이라는 글 말미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이 미어지게 억장을 울렸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 '힘들다'는 주관적이고 마법 같은 단어는 작금의 시대 속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자가 면역돼 쉽게 털어놓는 것조차 터부시 돼왔다. 더구나 의과대학에서의 삶은 자명하게 구성원 모두가 힘들어할 텐데 어찌 나 혼자 유독 더 힘들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어린 투정과, Red flag sign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게워낸 대답 없을 외침이 보일 때마다 매번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우리의 정신건강은 그 누구도 신경 써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질환이 없다고 모두가 건강한 것은 아님에도,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클리셰가 될 만큼의 사회적 분위기를 구성원 모두가 만들어낸다. 누가 힘들지 않겠냐며 버티고 열심히 하라는 핀잔은,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이에게 나약하다는 꾸중밖에 던지지 않는다. KAMC(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 왕규창 회장 임기 시절인 2007년에 의과대학생들의 정신건강에 관한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임기가 끝나기 바쁘게 이슈도 함께 마무리 됐다. 구글에 확연히 줄어있는 검색 결과가 생각보다 당연하게 이를 증명한다. 우리의 정신건강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과연 조금 더 안녕해졌을까. 그리고 여러분들의 정신건강은 오늘, 안녕하신가요?
뿌연 안개 속의 국가고시 실기시험 2020-02-03 05:45:50
2020년도 의사 국가시험도 막을 내렸다. 1월 필기시험을 마지막으로 의사 국가시험을 끝내고, 합격한 학생들은 대부분 인턴 준비에 한창이다. 그러나 매년 그렇듯, 어떤 시험에서나 그렇듯, 의사 국가시험에도 불합격자들은 존재한다. 이들이 불합격한 원인은 무엇일까? 모두 노력이나 역량이 부족했던 것일까? 의사 국가시험(이하 '국시')은 실기시험과 필기시험 두 형태로 나뉜다. 이렇게 나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9년, 부족한 임상 실습을 개선하고 필기시험과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하며 새로이 도입된 것이다. 도입 첫해부터 소송에 휘말리던 실기시험은 10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고 매년 개선을 해나가는 중이다. 2017년에는 의과대학생 및 의사 6인이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CPX(표준화 환자 진료) 6문항의 각 항목 ▲OSCE(단순 수기 문제) 6문항의 각 항목 ▲ 각 항목별 합격/불합격 여부 ▲항목별 응시자의 점수 ▲OSCE의 각 항목별 체크리스트 정보를 공개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OSCE 항목별 체크리스트를 제외한 나머지를 공개할 것으로 판결내렸다. 이에 따라 2019년도부터는 실기시험 각 항목에 대한 합격/불합격 여부를 공개하고, 응시자 취득점수와 합격선을 공개했다. 2020년도 제 84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에서는 이의제기 제도를 최초 도입하기도 했다. 그 전까지 불합격자들은 왜 탈락했는지도 모르는 데다, 억울한 점이 있어도 이의신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선에도, 국시 응시대상인 의과대학생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는 현실이다. 체크리스트의 비공개, 여전히 불충분한 피드백 기회 등이 대표적인 미해결과제들이다. 우선, 체크리스트가 공개되지 않은 이상, 구체적인 채점 기준을 알 수 없어 준비하는 데에도 모호함이 있고,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도 알기 어려운 것은 여전하다. 합격선과 취득 점수가 공개되더라도, 본인이 어떤 특정 행위를 해 그 점수를 취득한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점수공개로 일명 '깜깜이 시험'의 누명을 탈피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 입장에서는 뿌연 안개 속에서 준비하는 기분이다. 어떻게 해야 맞는 것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불안감 속에 시험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체크리스트 항목에 대한 평가를 내릴 시에 평가 교수의 해석이 다를 수도 있고, SP(표준화환자)의 실수나 집중력 부족, 주관 개입 등으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보완장치도 없다. 피드백을 할 기회조차 없었고, 시험결과 재검토나 CCTV 검증은 국시원 측에서 공개할 수 없다고 명확히 밝혀왔다. 올해 처음 도입된 이의제기 제도는 범위도 '전산오류', '합격 여부 오류', '실기시험 진행과 관련된 명백한 오류'로 한정돼 있고, 이마저도 형식적이고 홍보 및 안내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시원에서는 실기시험이 절대평가라고 하지만, 항목별 합격선이 다르고 최종 합격선에 대한 심의과정이 투명히 공개되지 않아 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국시 실기시험이 매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시원에서 여러 소송이나 민원을 반영해 개선한 점도 많고, 앞으로도 CPX와 OSCE가 통합되면서 더욱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응시생들에게 남아 있는 여러 의문점들을 보면,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국시원에서 발표한 의사 국가시험[실기] 평가목표집 (2015.6.30.)에 의하면, 의사 국가시험[실기]의 평가목표는 궁극적으로 '역량을 갖춘 의사(competent physician)'를 배출함으로써 의료서비스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라면 올바르고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공부하고 부족한 부분은 수정, 보완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공부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도 없으며, 학생들은 국시를 합격하고도 어떤 점이 부족했었는지 알지 못한 채 의사가 돼버릴 수 있다. 이는 국시원에서 발표한 실기시험의 궁극적 목표와도 맞지 않으며, 불명확성으로 인해 기존의 도입 목적인 '부족한 임상 실습의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의대생들이 정확한 내용으로 공부해 환자들도 더 안전하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우리와 선배들, 후배들이 더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