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20-07-27 05:45:50
|강원의대 본과 4학년 심미정| 이전에 COVID-19 가 아직 우한 바이러스, 우한 폐렴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울 때 '코로나19, 우리의 성숙한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이것이 벌써 4~5개월 전 이야기 이고, 그 때는 이렇게 까지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그때는 마스크를 잘 끼고 손을 잘 씻고 아프면 빠르게 병원에 가 진료를 보는 것 들이 보건문제에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으나, 크나큰 오판이었다. COVID-19는 현재 보건문제 뿐 아니라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또한 경제, 사회와 같은 큰 문제 말고도 COVID-19는 개개인의 일상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고있다. 바이러스 유행 이전에는 다양한 모임을 마스크 끼지 않고 만나고, 공연, 콘서트, 강의, 맛집탐방 등 모여서 하는 활동에 전혀 제약이 없었고, 해외 여행도 자유로웠다. 바이러스 팬데믹 초창기에는 종업원이 가게에서 마스크를 쓰는 행동이 'COVID-19 때문에 저희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합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라는 문구로 고객의 양해를 구해야 할 만큼 어색한 광경이었다. 이전을 회상하다 보니 과거의 바이러스 유행이 없던 세상에 대한 감사함이 생긴다. 일상이었지만 잃고 나니 그때가 정말 소중했었구나 하는 뒤늦은 감사함이 아쉬울 뿐이다. 또한 이런 불편함 속에서도 마스크를 열심히 끼고, 대면 행사를 줄이고, 적극 적으로 전염 방지에 힘쓴 국가와 국민들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세계 각국들의 찬사를 받는 것을 보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바이러스 팬데믹이 한창인 지금, 앞으로 국시를 앞두고 있는 본과 4학년 학생으로서 모든 일상의 변화들이 낯설고 새롭다. 대면 강의가 비대면으로 바뀌어 감에 따라 정말 이전에는 논의가 필요 없었던 많은 것들을 새로 태어난 아기 마냥 하나하나 논의해가며 바뀌어 나가고 있다. 처음 학교를 개강할 것 인가 말 것 인가 하는 생각부터 독서실을 개방하냐 마냐, 체온체크를 하냐 마냐, 시험을 보냐 마냐 등 다양한 일상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아직까지 어느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그렇다면 팬데믹 이후, 제목으로 말한 'COVID-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나의 대답은 No이다. 아니라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대답이 ‘바이러스 유행이 지속되어 마스크를 끼지 않고 사람을 만날 수 없게된다.’는 아니다. 물론 일부 전문가들은 바이러스의 유행이 끝나지 않고 앞으로 스포츠 경기 구경과 같은 단체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상보다 장기화되어 가고 있지만 모든 대유행 전염병들이 그러했듯 이번 COVID-19도 예외는 아닐 것이며 언젠가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 시대를 지나며 굳어진 우리의 변화된 위생관념, 변화된 집합문화, 변화된 교육 방법, 변화된 의료 등 많은 것이 바뀐 채로 굳어질 것이나 쉽사리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하는 것일까?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첫 번째 선택지는 변화하는 세상에 저항하며 멈추어 있는 것이고, 두 번째 선택지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 나가며 한발 한발 걸어보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어디에도 정해진 길은 없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멈출 것인지 걸어갈 것인지 정하는 것뿐이며, 우리가 선택한 것들이 정답이 되기를 꿈꾸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 걸어감이 부정적인 결과가 예상되는데 걸어보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팬데믹인 지금 상황에서 생각이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팬데믹 종말 이후의 상황 까지 충분히 고심하고 검토하여 신중히 한발을 내딛어야 할 것이다.
의사 정원 확대, 목적이 무엇인가? 2020-07-20 05:45:50
|연세의대 본과 2학년 김요섭|정부는 연간 배출되는 의사 수 정원을 적어도 400명 이상은 더 늘려 공공의료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감염내과 전문의, 예방의학과 전문의 등 COVID-19 관련 분야 인력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낮은 전공과 의사들을 충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위 인구 당 의사 수를 늘린다고 보건 의료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다. 인구 당 의사 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TOP7은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리투아니아, 스웨덴,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로 꼽힌다. 그렇다면 의사 수가 많은 나라들은 COVID-19에 대한 방역과 치료과정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대처했을까? 인구 당 의사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5.1명) 오스트리아는 약 900만 명의 인구 중 0.2% 이상인 1만9천여 명이 감염되어 710명이 사망하였으며 노르웨이 또한 전체 인구의 약0.2%가 감염되어 인구비율 대비 감염자 수와 사망자수는 우리나라의 10배에 이른다. 우리나라와 인구가 비슷한 이탈리아는 약 24만 명이 감염되어 약 3만5천여 명이 사망하였고, 독일도 약 20만 명이나 감염되어 방역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스웨덴은 코로나 방역을 포기하고 사실상 방치해 1,012만 명의 인구 중 7만6천여 명이 감염되었고 그 중 5,540명이 사망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인구의 0.025%인 1만3천여 명이 감염되었고 그 중 289명이 사망하였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방역과 치료 성적을 보인 것이다. (참고자료: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연간 의료인 400명 추가 양성에 들어가는 비용을 공급보다 수요가 높은 영역의 의료수가를 높이는데 사용하면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의료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료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까지 의사 1인당 교육·수련비용이 8억6700만원에 달한다는 결과가 있다. 400명의 전문의를 양성하는데 3468억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목표대로 10년간 4000명의 의사를 추가 양성하게 된다면 3조4680억 원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비용을 정책적으로 잘 활용하여 의료수가를 조절하면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공급에 비해 수요가 높은 진료에 대해 수가를 높이면 된다) 특정 분야의 전문인력 공급을 높일 수 있고 의료전달체계까지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기사: http://www.medicaltimes.com/Users/News/NewsView.html?ID=1131845) 무작정 의사수를 늘리면 우리나라 의료인의 전문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의사들에 대한 급여가 낮은 국가에서는 의대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젊은 의사들이 해외로 이민 가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의료수가를 높이지 않고 무작정 의사 머리수만 늘려서 의사들의 기대급여가 낮아지게 된다면 훌륭한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될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리고 한국에 남아 경쟁에 내몰린 의사들은 본인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마케팅과 영업에 더욱 열을 올려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환자들이 떠안게 될 것이다. 또한 수가는 그대로인데 단순히 의사 수가 늘어났다고 해서 삶의 질도 낮고 급여도 낮은 학과에 지원자 수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며, 서울에 있는 유명한 병원에 환자 쏠림 현상이 생기는 것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학령인구는 감소하는데 의대생 숫자만 더 늘린다는 것은 결국 미래 세대의 교육과 산업 생태계에 큰 교란을 일으키는 행위이기에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참고기사: http://www.medicaltimes.com/Users/News/NewsView.html?ID=1097133).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가 오면 진료 보는 의사가 지금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지원이 포함된 뉴딜정책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젊은 의대생/의사들은 일찍이 IT 교육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에 긍정적인 편이다. 따라서 곧 다가올 미래에는 비대면 진료, 디지털치료제, 의료 인공지능 (IBM왓슨, 루닛, 뷰노 등) 등 새로운 기술들이 합법화될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의 핵심 축으로 자리를 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를 웨어러블 장비를 통해 24시간, 365일 모니터링 하는 기술이 상용화&8231;표준화될 경우, 의사들의 진료 효율성이 높아지고 지역에 따른 격차가 해소된다. 따라서 의사수가 적은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질 것을 우려하며 지금부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중대한 정책 결정을 하려면 기대효과, 예산, 부작용 등 예상 시나리오에 대해 깊이 있는 검토를 거쳐야 하는데 현 정부는 지금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비가역적으로 바꿔버릴 사안들에 대해서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으로는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정 수가를 먼저 반영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 같은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으니, 무작정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의대 정원 확충에 대하여 2020-07-13 05:45:50
|차의과대학 본과 3학년 김태겸|최근 여러 차례에 걸쳐 의대 정원 확충에 대한 소식이 들린다. 한 언론기관에 따르면 정부가 2022학년도부터 약 10년간 총 4천명의 정원 확대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증원된 4천명의 인원들은 각각 ▲중증·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무 복무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지역의사’ 3천명 ▲역학조사관과 중증외상, 소아외과 등 특수한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의사 500명 ▲기초과학 및 제약·바이오 연구인력 500명 등으로 나눠서 뽑을 계획이라 한다. 이와 관련된 논쟁은 사실 그간 의사협회의 반대에 부딪혀왔다. 의료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인원을 충원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정부의 취지에 의사협회는 왜 반대하는걸까? 많은 사람들이 의사협회는 '이익집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들의 주장을 곡해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의사협회가 '이익집단'인가, 아닌가의 여부 이전에 해당집단은 ''전문가 집단'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료, 의사와 관련된 정책을 논하는데, 관련 분야의 '전문가 집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정책을 수립해나간다면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한 비현실적인 정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정부의 취지는 사실 좋다. 하지만 의사협회를 비롯한 해당 정책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은 "과연 정부의 단순 인원 확충이라는 방안이, 또 그 인원을 배분하여 뽑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단순히 현재 우리나라 의료영역 저변의 확대와 단점 개선에 기여할지 미지수"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더 많은 의사수를 뽑는다 할지라도 증원된 인원들은 지금과 같이 특정과에 쏠림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부의 추진 정책 방안을 보면 특정 지역에 의무복무기간을 설정한다던가, 기초 의학 등 특수 전문분야 복무를 조건으로 내걸었다지만 이것이 실제로 부작용 없이 잘 적용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어떤 기준에 따라서 해당 인원들이 배정될 것인지, 그 배정은 자유롭게 이뤄질 것인지 강제로 이뤄질 것인지 등 벌써부터 골머리 앓는 논쟁이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의 실생활에서 대입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한 음식점에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는데 짠 물만 나온다고 가정해보자. A라는 사람은 정수기에서 짠물이 나오는 것에 대한 대응책으로 컵에 따른 물에 짜지 않은 물을 받아다가 섞어서 물을 마신다. B라는 사람은 정수기에서 왜 짠물이 나오는지 정수기 수리기사를 불러 정수기를 뜯고 원인을 찾아본다. 어떤 사람이 미래를 고려하여 올바른 계획은 세웠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정부의 정책은 A라는 사람의 태도와 비슷하다 생각이 든다. 지금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분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장에서 그러한 연유를 듣고 그 이유들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 분야로 자원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수기 수리기사와 같은 전문가를 불러 같이 의논하고 현상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물이 짜다 해서 다른 물을 더 타는 것은 일시적인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다. 사람 B와 같이 정부가 보다 현명하고 미래를 생각한 정책을 세우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의 논의, 특히 관련 전문가 집단에 귀를 기울이고 정책에 반영한다면 더 나은 해결책이 모색될 것이다.
나는 돌팔이 의사이다 2020-07-06 05:45:50
|을지의대 의학과 4학년 김기덕|2040년의 어느 날, A는 진료실에 앉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A는 2025년 새로 지어진 의과대학을 입학하여 2031년 졸업 후 이제 막 10년 간의 의무 복무의 끝을 앞두고 있다. A에게 의과대학에서의 6년과 병·의원에서의 9년, 지난 15년은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찔했지’ 새로 지어진 의과대학의 첫 신입생으로 입학했을 때, A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의대생이 되었으니. 다른 의대생들과 마찬가지로 환자를 살리고 싶었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실력 있는, 멋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꿈은 본과 1학년, 해부학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새로 지어진 학교에 기꺼이 본인의 시신을 기증해줄 의인은 없었다. 아니, 사람들은 그 이전에 이 의과대학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A는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다른 의과대학에 가서 다른 평범한 의대생들이 해부하는 것들을 구경해야만 했고, 운이 좋으면 한 번쯤 시신에 손을 댈 수 있었다. 시신에 손을 댈 수 있던 그 날, 이제는 ‘진짜 의대생’이 된 것 같은 행복감과 동시에 A가 얻어냈던 한 번의 칼질만큼의 기회를 빼앗긴 다른 학생들의 원망 어린 눈초리를 견뎌내야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어떤 감정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왠지 모를 서러움과 왠지 모를 억울한 행복감이 기이하게 뒤엉켜 지새웠던 그 밤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렇게 의사가 되어도 되나’ 본과 1학년과 2학년의 글로 배우는 공부는 어떻게 책만 보고서라도 할 수는 있었다. 소아과 교수님께서 감염내과도, 예방의학도 가르치시니 자주 뵈어서 더 친해지는 기분도 있었다. 가끔은 다른 학교 교수님들이 와서 본인 학교 이야기를 해주고 가실 때도 다른 학교 이야기를 들으니 철없이 마냥 재밌었다. 그 땐 그게 좋은 줄 알았었다. 병원에 실습을 처음 나갔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학교에 변변한 병원이 없다 보니 여러 의료원과 국립대 병원들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국립대 병원의 교수님들께 A는 서자였고, 의료원의 선생님들께 학생은 귀찮은 존재였다. 몇 동기들은 편하게 진급한다며 좋아했지만 A는 가슴 한 켠이 불안했다. A에게 병원은 실습이 아닌 환자 구경뿐이었고, 그 마저도 의료원에 없는 환자에 대한 수술은 유튜브나 동영상으로 대신했다. 실력 있는, 멋있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은 빼앗겨버렸고 이렇게나마 졸업하면 ‘나도 같은 의사가 될 수 있다’라는 마음만 그 자리를 대신할 뿐이었다. 그렇게 껍데기 뿐인 의대생에서 껍데기 뿐인 의사가 되었다. ‘나 때문은 아니었을 거야’ 인턴과 레지던트, 전공의 시절은 자괴감과 죄책감의 연속이었다. 해부 실습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A에게는 일반외과 전공 강제 배정이라는 가혹한 형벌이 내려졌다. 환자 한 번 본 적 없고, 동영상으로만 수술을 봐왔던 A에게 꿈이었던 외과는 훔친 보석처럼 제자리에 돌려두기 전까지 목을 조여왔다. “선생님, 수술 시간 2시간 넘게 지났는데요?” “어… 네 알겠습니다. 금방 끝낼게요.” 알긴, 전혀 모르겠다. 머리가 하얘졌다. 분명 CT로 충수돌기염인 걸 확인했던 환자인데, 아니 충수돌기염이라고 생각했는데, 충수돌기가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하겠다. 그 환자, 결국 배를 열어 충수돌기를 간신히 찾았다. 책에는 여기 있다고 했는데, 거기에 없었다. CT상 충수돌기염인 줄 알았는데 배를 열고 보니 게실염이었다. 결국 돌아가셨다. 74세의 나이로 3시간이 넘는 수술을 견디지 못해서였을까, 수술 후 관리가 부족해서였을까. ‘어차피 병원 못 가서 돌아가시나, 이렇게 수술해서 돌아가시나.’ 처음에는 이렇게 애써 자위하며 환자들을 가슴 속에 묻었다. A가 붙들고 있지 않았다면 멀쩡한 병원에 갈 수도 있었던 환자들을 애써 외면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잠을 깨웠던 악몽도 사라지고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부족한 자신을 개선하는 것보다 부족한 의료원의 자원을 탓하는 것이 더 쉬웠다. “넌 복무 끝나면 뭐 할래?” 가끔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15년이 지난 지금 동기들은 어떤 길을 생각하고 있을까. A는 다시 칼을 잡을 자신이 없다. 가슴에 묻은 환자들이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A같은 반쪽짜리 의사에게 생명이란 너무 과분한 것이었다. 서울로 상경해 미용 의원을 차려야 할지, 아니 그 전에 의사는 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다시는 칼은 잡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위 내용은 현재 국회에 입법 예고 중인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관련법이 통과했을 때를 가정하고 쓴 짧은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의과대학의 정원 확대를 주장하지만, 그 누구도 정원 확대에 필수적인 교육 자원의 구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의과대학 인증 평가 없이 의대를 짓게 하겠다는 법을 발의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많은 의과대학들은 교수를 구하지 못해 매 학기 십수명의 임용 공고를 내곤 합니다. 지금도 많은 의과대학들은 해부 실습용 카데바를 구하기 어려워 많은 학생들에게 그 기회를 주기 어려워합니다. 의학 교육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져가고,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의 가슴 아픈 폐교 사태는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불인증, 조건부 인증, 2년 인증 등 제대로 된 의학 교육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의과대학들이 매년 존재합니다. 의사 면허를 종이에 써서 준다고 모두 의사가 아닙니다. 의사는 좋은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사람입니다. OECD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을 가진 나라에서 그 접근성의 미미한 상승을 위해 ‘돌팔이 의사 양산법’, ‘의료사고 촉진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옳은가요? 공공보건의료법에 따른 공공의료의 대상들을 위해서는 수준 낮은 의료를 공급해도 좋은가요? 제 소설이 사실이 아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의 교육권과 국민의 건강권이라는 사회에서 당연히 보장해야 하는 인권이 보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의사, 흰 가운의 무게를 견뎌라 2020-06-22 05:45:50
|원광의대 의학과 3학년 이호명| "선생님, 링거 쪽으로 피가 올라와요! 어떻게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임상실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던 3월의 어느 날, 한 보호자의 요청은 나를 두 번 당황하게 만들었다. 일단, 내가 생각한 나는 '선생님' 이 아니었다. 아직 병원보다 강의실이, 출근보다 등교가 익숙한 학생이었기에, 몇 번이고 '선생님'을 찾는 목소리에도 그것이 나를 향한 것임을 깨닫는 데 한참이 걸렸다. 뒤늦게 달려갔지만, 이동식 침대 위 환자에게 학생의사가 해줄 수 있는 처치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무엇도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자의 간절한 눈빛은 나를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젖어 들게 했다. 이내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스테이션에 계신 간호사 선생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한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였기에, 정말 태연하게 들렸을 지는 모를 일. 병원에서 흰 가운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복잡한 병원 구조에 길을 헤매고, 혹여 모르는 게 생길까 하루 종일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어리숙한 학생의사였지만, 적어도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달랐다. 흰 가운에 청진기와 펜라이트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교수님들, 레지던트 선생님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가장 먼저인 의료현장에서 어떠한 자의적인 의료 행위를 '하지 않는', 아니 '하지 못하는' 학생의사가, 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의사로 비추어지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이 날을 계기로, 실습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실습을 시작할 즈음, 책으로 배운 '죽은 지식'에 실습이라는 생기를 불어넣어, 탁상공론만 하는 이론가가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수업을 들을 때와 다름없는 등록금을 지불함으로써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하는 학습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부딪혀보니 임상실습 과정은 학습권의 행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음으로써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감이 더해졌다.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의사 자격을 갖춘 후가 아닌, 흰 가운을 입기 시작하는 '화이트 코트 세레모니' 때 외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그래서 학생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는가'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3월의 이 날에도 5월의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를 찾는 보호자 앞에서 당황할 것이고, 주사바늘을 다시 꽂아주는 것도, 수액 양을 조절해 주는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변함없이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드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흰 가운을 입은 나를 의사로 알고 있을 환자와 보호자를 생각한다면, 환자 치료 과정의 일원이라는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진다면, '큰 일 아니니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간호사 선생님께서 조치해 주실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환자를 안심시키는 말 한 마디, 따뜻한 눈맞춤 한 번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냉정하게 환자의 치료에는 아무 영향이 없겠지만, 환자가 치료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의사로 오해받으며, 수많은 질문을 받고 있다. 이제야 익숙해진 병원 위치에 대한 물음 외에는,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처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언제쯤 CT를 찍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지독히도 병이 안 낫는다는 호소에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 하지만, 공감의 눈빛, 따뜻한 말 한마디로 환자가 위로를 받는다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는 마음을 환자에게 기꺼이 내어 보인다면 나름대로 '흰 가운의 무게'를 잘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신의 첫 마음을 기억하시나요?" 2020-06-15 05:45:50
|인제의대 의하과 2학년강혜윤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에 종사하고 계시는 교수님을 운 좋게 찾아 뵌 적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니?"라고 물으셨다. 해당 분야에서 저명하신 교수님 앞이라 교수님의 질문에 더 잘 답해드리고 싶었다. 그동안 읽었던 책과 여러 경험을 인용하며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자세히 말씀드렸다. 이에 교수님께서 생각에 잠기신 표정으로 계시다가 한 마디를 건네셨다. "지금 그 첫 마음 잊지 말아라". 중요하지만, 너무나도 지키기 어려운 한 마디였다.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기숙사에 내려가는 중에, 교수님께서 왜 첫 마음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는지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를 이끌어오기까지 가졌던 첫 마음을 떠올려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 진로 수업에 '나의 꿈 발표하기'라는 활동 시간이 있었다. 그 꿈을 왜 가지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 꿈을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비록 학업의 양이 많아 힘든 길이겠지만 그 길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마음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다고 발표를 했다. 발표가 끝나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며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다. 격려를 받은 나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됐다. 처음으로 나의 꿈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 이 순간, 지금 이 마음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후 '마음이 따뜻한 의사'는 어떤 일을 지원할 때 빠지지 않는 지향점 같은 단어가 됐다. 그 8글자를 적을 때면 당시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나의 꿈을 발표했던 기억이 떠올라 저절로 힘이 났다. 하지만 의과대학에 들어와 학업과 동아리, 여러 활동들을 바삐 할 때면 당장 앞만 보게 됐다. 그렇게 하루하루 현재 삶에 익숙해지고, 당장의 것들만 보고 살아가게 됐다. 며칠 후에 있을 시험을 향해, 눈앞에 있는 동아리 공연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가 나도 모르게 지쳐 갔다. 마음도 몸도 점점 지쳐 가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누구나 의과대학에 다니다가 이렇게 지친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의과대학에 입학해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양상의 학업량과 시험들을 맞이하게 되면 시험에 맞춰 d-day를 세며 살게 된다. 주마다 한 번씩 시험이 있는 경우가 빈번하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무시무시한 재시험과 유급이 기다리고 있어 시험은 더욱 커다란 존재로 다가온다. 이에 다른 것들은 뒷전이 된다. '당장 시험에 통과하는 게 중요하니까.', '적어도 무사히 학교는 다닐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졸이며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예민해지고, 지치기 시작한다. 이렇듯 당장의 발걸음을 떼는 데 집중하다보면 왜 처음에 이 길로 나아왔는지, 왜 내가 이 길 위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지를 잊을 때가 많다. 더욱이 힘들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잠시 쉬어갈까. 왜 내가 이 길을 선택했지.' 하며 이 길을 선택한 과거의 나를 후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과대학 생활 중 왜 이렇게 지치는 것일까. 당장의 시험, 성적, 성과물과 같은 단기적인 목표에 맞춰 달리다 보니 정작 내가 바라는 꿈을 위해 이 모든 여정을 시작했다는 가장 큰 그림을 잊은 것은 아닐까. 처음에 꿈을 향한 이 여정을 왜 시작하게 됐는지, 꿈을 향해 노력할 때 나의 첫 다짐과 포부는 어떠했는지, 꿈을 이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말이다. 나의 꿈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했을 때의 순간을 떠올려보자. 물론 이러한 회상이 지치고 피곤한 의과대학 생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돼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어두컴컴한 밤에 길잡이 별
잠재된 능력의 발견, 공명의 시작 2020-06-08 11:30:36
|원광의대 예과 2학년 정은별|학생은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지, 나중에 의사로 일하는데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일을 왜 하려고 하니? 학생이 그 활동을 한다고 실질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는데, 그럴 시간에 책 한 자나 더 봐! "요즘 뭐 하니?" 라는 질문을 받고, 학교 공부 외에도 관심을 가지고 하고 있는 활동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종종 듣게 되는 반응이다. 작년에 IFMSA(세계의대생연합)이라는, 세계의 의대생들을 대표하는 비정부기구(NGO)에 대해 알게 되고, SCOPH(공중보건상임위원회)의 우리나라 담당자를 지원했을 때만 해도, 그저 다른 나라의 의대생들과 교류해보고 싶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홍콩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의대생들을 만나고, 대만에서 전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의대생들을 만나 가벼운 각 나라의 학교 생활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다소 학문적 성격이 강한 주제를 다루기도 하는 국제보건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두 번의 총회에 참석하고 나서, 단순히 세계의대생연합이 여러 대륙에서 온 의대생들의 교류의 장을 제공하는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형태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지난 18일에 개회한 제 73차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의 세계의대생연합 대표단으로 참가한 의대생들은 세계의대생연합 내에서 ‘건강 형평성 및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Health Equity and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등에 대해 쓴 정책 제안서(Policy Document)를 기반으로 의대생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다. 뿐만 아니라, 세계보건총회의 본 회의 전에는 각국의 의대생들이 주도하여 세계보건총회에 대표단으로 참가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역량 강화를 위한 워크숍을 기획하고 운영하기도 했다. 가령, 역량 강화 워크숍에서 보편적 의료 보장(Universal Health Coverage)을 다룰 때에는, 참가자들이 정부, 의사, 보험 회사 등의 이해 당사자들 역할을 맡게 한다. 각 이해 당사자들이 특정 활동을 했을 때 보편적 의료 보장을 구성하는 6개의 요소 중 특정 요소에 대한 유&8729;불리 정도의 변동을 점수로 표시하고, 6개 요소에 대한 최종 점수에 따라 자신이 미국, 대만, 남수단, 필리핀, 시리아, 독일의 보편적 의료 보장 형태 중 어떤 것과 가장 비슷한 결과를 얻었는지 비교하면서 자연스럽게 각 국의 의료시스템의 장단점을 익히고 비교해 볼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워크숍의 내용부터 전달 방식까지 모두 학생들이 자력으로 설계했다는 사실은, 학생은 그저 정해진 교육과정에 맞추어 학습을 하는 수동적인 객체라는 일반적 관념의 틀을 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대생들은 국제 단위 총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학생 자치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레바논 의대생들의 경우, 정부나 학교에서 정해주는 지침에 따라 학습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대생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코로나19 대응 전략 매뉴얼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에 준하는 기관과 협력하여, 상담 전화 센터 봉사, 출입국관리, 인식 제고 캠페인 등을 진행하는 데 참여하는 구체적인 의대생의 수 등을 명시하고, 정기적으로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 하는 방식이다. 케냐 의대생들의 경우, 코로나19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7회의 웨비나(webinar) 시리즈를 계획하여 정부 및 지역단체, 유관기관과 함께 2달간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자국 및 타국의 의대생들이 임상 연구와 사례 연구를 출판할 수 있는 무료 온라인 의료 학생 저널을 운영하여 학생들의 연구 역량 구축, 연구 멘토링 참여, 연구 출판 등을 독려하기도 한다. 물론, 학생의 가장 기본적인 본분은 전공 과목에 대해 학교에서 주어진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하며 따르는 것일 것이다. 의대생들의 경우, 공부해야 하는 학문의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것도 만만치만은 않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세계보건회의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는 의대생들, 국가 및 지역사회 수준에서 코로나19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의대생들은 교육과정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의학을 전공하며, 많은 공부량에 시달리는 학생들이다. 모든 학생들이 국제사회나 지역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대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조금의 관심이라도 가진다면 각자의 시간을 조금씩 쪼개어 역량 강화나 옹호 활동들에 참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모인다면 소수의 의대생들의 작은 날갯짓이 큰 공명(resonance)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의료와 개인 정보 2020-05-31 21:28:52
|가천의대 의예과 2학년 최시연|"환자를 조기 발견하고, 접촉자를 신속하게 격리하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하는 한국은 COVID-19 대응에 있어서 WHO가 구상하고 추구하는 모든 요소와 전략을 이미 잘 구현하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열린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마이크 라이언 사무차장이 한 말이다.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에서 한국의 방역 대응 체계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프랑스의 한 변호사가 한국의 코로나 19 방역 대책을 보고 “개인의 자유를 오래 전에 버린 나라” 라고 비난하여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문제의 기고문은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에 실린 ‘코로나 19와 확진자 동선 추적: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지 말라’ 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그는 프랑스 당국이 한국을 본뜬 확진자 동선 추적 시스템을 도입하려 하자 이 시도에 반대하는 취지에서 칼럼을 기고하였다고 알려졌다. 이후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은 이가 과도한 비판이라고 보고 반박 기고문을 보냈으며, 프랑스 내에서도 모순된 태도라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 이 일의 여파는 상쇄되는 듯 보였다. 다만 이 논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인 정보는 분명 민감한 사안일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늘어났고, 비대면 강의가 이루어졌으며 원격의료 등 비대면 서비스 산업이 부상하였다. 작년까지는 몇 년이 걸렸을 코로나 관련 의약품의 승인은 비상 상황 아래 신속하게 허가가 이루어졌다. 평소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사람들은 이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고, 비대면 서비스에서 이 정도의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생활의 자유와 건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선택지가 주어졌고, 우리는 건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에 대한 배려로, 사람들은 코로나가 어서 종식되기를 바라며 기꺼이 ‘일시적일’ 불편을 감수하였다. 이제 코로나가 유행성 질병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코로나 이후의 사회는 우리가 이전에 살아왔던 세상과는 많이 다를 것임을 우리는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우리는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기꺼이 데이터화하였다.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는 것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인터넷 상에서 본인의 동선을 남기며 생활하였다. 내가 질병에 노출되면 언제든 이 정보들이 공개될 수 있는 상황에서, 모두의 동선은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원격의료는 그 필요성을 새롭게 조명받으며 급속도로 성장할 전망을 보이고 있다. 원격의료를 실현할 경우 우리가 네트워크 상에 남기게 되는 개인정보에는 우리 신체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혈압, 진료기록부터 내가 시행한 모든 검사의 결과까지, 의료 정보는 앞으로 네트워크 상에 오르게 될 나의 정보들 중 가장 상세하고 은밀한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일상이 될 글로벌 팬데믹 시기에 이 정보가 가장 철저히 보호받아야 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 개인정보의 데이터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의 목적은 우리가 프라이버시와 건강을 모두 누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는 불안과 공포에 의한 것이 아닌, 권력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제거된, 투명한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반대하며 2020-05-25 11:25:49
|대전협 김명식 정책이사 코로나의 큰 줄기가 지나간 지금, 이제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그 창의적인 당국자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구태의연한 대책들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새롭지 않은 정책들의 첫머리에는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 운영에 대한 법률안이 있다. 의료의 양극화 해소와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을 위한 공공의료의 발전 취지에는 공감한다. 아울러 강화된 공공의료는 코로나를 비롯한 신종 감염병에 더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될 수 있다는 시각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의료취약지에 장기간 근무할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목적으로 설립되는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에는 반대한다. 기본적으로 공공의료 인력 부족은 종사 부문과 지역에 따른 의료인력의 분포에 대한 문제이다. 법안을 발의한 측도 법률안의 제안 이유에서 의사인력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의료취약지에 대한 근무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의사인력의 분포를 거론한다. 그럼에도 이 문제의식은, 의료인력의 분포를 해결하거나 혹은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을 증진하는 것이 아닌, 엉뚱하게도 양적인 공공의료 인력 공급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모순적 대책으로 귀결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지역에 있는 인력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에 있다. 공중보건의사와 1차의료기관 등이 시골 각지에 퍼져 있는데도 이들을 배제한 채 새로운 의대생을 교육해 의사를 양성하고 공공의료 전문가로 굳이 키워나가겠다는 것은 행정력의 낭비다. 정부가 기존 전문의 인력도 제대로 쓰지 못한 정책 실패를 자인하고도 이들에 대한 적재적소의 배치와 교육을 재고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비전문가를 전문가로 육성하는 어려운 과정을 다시 밟겠다는 데 황당함을 금하기 어렵다. 민간 1차의료기관과의 연계를 구축하고, 지역거점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환자 이송 체계를 수립하며, 보건소의 지역사회 모니터링 역량만 강화하여도 대한민국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영토가 작은 국가에서는 충분한 정책적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새로운 대학이나 기관을 설치할 필요도 없이 기존의 인프라를 활용함으로써 재정적인 성과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아울러 의료인력의 수급은 의료의 질이 좋아지는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한 사회적 요구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의료계에는 정부가 의료인력이 많고 적음을 작위적으로 해석하여 이 정책을 강행한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단순히 관변 보고서 몇 편을 인용하여 의사 수가 많고 적음만으로 공공보건의료의 대계를 결정하기 보다는 의료취약지의 환자를 어떻게 잘 관리하여야 할 것인가라는 공공의료의 본질적 시각에서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90년대 우후죽순으로 설립된 의과대학들이 자리잡는 데 30여 년이 걸렸다. 그조차도 해내지 못 해 폐교된 학교도 존재한다. 더욱이 의학 교육의 특성상 의과대학 하나만 설립하면 교육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충분한 교육여건이 갖춰진 수련병원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수련받지 않은 의사의 양산은 결국 국민의 피해로 돌아온다. 그저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 또는 지역균형발전을 참칭한 기계적 배분을 위해 의과대학 설립 정책을 그르친 우는 서남대학교의 사례 한 번으로 족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05-18 05:45:50
|아주의대 의학과 6학년 정호민|금요일은 항상 설렌다. 실습이 끝나면 옷을 갈아입고 얼른 집으로 뛰어간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넷플릭스에 로그인하면 벌써 새로운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다. 방금까지도 병원에 있었지만 율제병원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나의 마지막 의학드라마는 골든타임이었다.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참 재밌었지만 이후 한국 의학드라마는 한편도 보지 않았다. 매년 의학드라마는 새롭게 나왔지만, 손이 가질 않았다. 고독하고 능력 좋은 천재 의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언제나 자극적이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달랐다. 그곳엔 내가 봤던 모습이 있었다. 의사도 아니고 환자도 아닌 실습생으로 봤던 시선 말이다. 교수, 레지던트, 인턴, 환자 그리고 보호자의 모습이 화면 속에 사실적으로 그려져 첫 화를 봤을 때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에 가깝다 생각했다. 현실은 한 명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사람'이 있다. 이들을 사람냄새 가득하게 풀어놓는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마음도 절로 따뜻해진다. 어떤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았는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볼 때면 혼자 한창 깔깔대다가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휴지를 찾는다. 드라마가 현실적이다 보니 학생으로서 배울 점도 많았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5명의 젊은 교수들은 저마다 살아온 배경, 전공, 성격이 모두 다르지만, 이 다섯 명 모두 의료인문학에서 글로 배웠던 좋은 의사의 표본이었다. 의사는 환자의 질환만 다루는 게 아니라 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삶을 이해하고 해결해주어야 한다. 의사는 공감능력으로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표현방식은 달라도 에피소드마다 교과서를 옮겨놓은 듯한 주인공들의 모습에 환자에게 무뚝뚝하고 차가운 장겨울 레지던트 선생님이 변해가는 모습이 저절로 이해가 됐다. 의대생이라면 이 드라마를 꼭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꼭 실습을 하고 봤으면 좋겠다. 율제병원의 이야기를 본인의 실습일기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고, 실습생의 눈으로 보았던 모습, 의학이 환자에게 실제로 적용되는 모습을 화면에서 보면 누가 나의 시선을 화면에 옮겨놓은 듯한 재미도 있다. 의대생이 아니더라도 모든 국민이 이 드라마는 봤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의사라는 직업이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알 수 있듯이 분명 의료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며 언제나 그 중심엔 의사가 있다. 출혈이 심해 응급 수술을 받던 환자가 걱정되어 "교수님 그 환자 살았나요?"라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응 당연히 살았지."라고 말하는 교수님의 모습. 일과가 끝나고 밥을 먹다가도 응급콜을 받고 자연스럽게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병원을 떠나기를 주저하는 의대생들을 위하여 2020-05-14 05:45:50
|울산의대 본과 4학년 김은영| 무슨 과 할 거니? 라는 질문을 안 받아본 의대생이 있을까? 우리에게 이 질문은 너무나도 익숙한 질문이고 서로 흔히 주고받는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꼭 진심이 아니더라도 모범답안처럼 한 개 준비해서 다니곤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질문에 반기를 들고 싶다. 의대생이 아닌 친구들과 장래에 관하여 얘기 나눌 때, ‘나중에 뭐 하고 살 거야? 어떻게 살고 싶어?’ 이렇게 묻지 ‘너 회사 무슨 부서 갈 거야?’ 이렇게 묻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의대생들은 병원에 남아서 전공의가 되는 것이 전제되어 무슨 과를 할 것인지를 묻는다. 물론 전공의 과정을 밟고 과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결정이고 큰 갈림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게 우리 모두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과 4학년이 되어 졸업을 앞둔 지금에 와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뭘 위해서 이렇게 달려온 걸까? 매일 밀려들어 오는 지식들과, 매주 찾아오는 시험들을 하나둘씩 이겨내며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국제 보건을 해서 더 적절하게 의료 배분을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으나, 경험을 해보기는커녕 경험담을 들어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쪽으로 꿈을 꾸려고 해도 두려움과 망설임이 앞서게 되었고, 포기하기에는 마음의 미련이 많이 남았다. 포기하더라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알고 포기하고 싶어서 졸업하고 바로 인턴을 하거나 학생 시절 잠시 휴학을 하는 일명 정규코스에서 벗어나 방황을 해보려고 했다. 내가 꿈꾸는 일이니 내가 시도하면 그만이지만, 길을 잃지는 않을까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의사 연봉이 얼마인 줄 아느냐, 네가 방황하는 1년 동안 그만큼의 가치를 만들 수 있겠냐.’, ‘안정적으로 병원 생활하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네가 쉬고 싶지 않아도 쉬게 될 날이 온다.’, ‘남들은 다 하는데 너만 쉬고 왔다고 끈기없는 애로 보일 수 있다.’ 등등. 모두 나를 위해서 한 말이었지만, 그래서 나에게는 더 크고 무거운 돌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뭔가를 벗어나 도전하려면 정말 그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할 것 같았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꿈을 찾고 방황하고 싶다는 말이 사실은 쉬고 싶다는 말을 돌려 말하고 있었던 건가 나를 의심하게 되기도 했다. 사실 아직도 확신은 없다. 당장 내년에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달라진다. 그렇지만, 나는 나에게 다짐했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길이면 가보자고. 가서 후회해도 좋고, 실패해도 좋고, 결국 포기해도 좋다고. 그게 내 연봉에, 내 승진에, 내 평가에 손해를 끼칠지 몰라도, 나 스스로와 한발 더 가까워지고, 한발 더 나아가는 길이 될 거라고. 혼자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동기 한 명에게 이런 생각을 넋두리처럼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보다 너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아직 여린 생각을 괜히 남들에게 말해서 상처받게 두지 말고, 네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꼭 해봐. 그러고 나서 아니면 다시 돌아와서 같이 인턴, 레지던트 하면 되지.’ 무심한 듯 얘기해준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다음에 만나면 서로에게 무슨 과 할거냐 물으며 선을 긋지 말고,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또는 나중에 뭐하고 싶은지 물어보자.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라서 당황하는 친구도, 사실 속으로 많이 고민하고 있어서 누군가와 얘기가 너무 하고 싶던 친구도, 자기가 품고 있던 꿈을 막 풀어놓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한 번 더 물어보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 말이다. 그러면서 생기는 마음속 말들을 너무 외면하지 말자. 마음속의 빈 곳이 작은 대화, 작은 문장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조금 더 자유로운 대화가 오갈 수 있기를 살며시 바라본다. 내가 스스로 하는 확신으로는 조금 부족했던 부분이 동기의 한마디로 채워졌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의대생이기 이전에 청년인 것을 잊지 말자. 꿈을 꾸고, 방황하고, 나의 삶을 찾는 청년. 나를 포함한 모든 청년의사의 도전과 방황을 응원한다.
그 색안경을 언젠가 한번쯤은 내려놓아 주십시오 2020-05-11 05:45:50
|강원의대 의학과 2학년 김미성|작년 8월 대만, 저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 합류했습니다. 모로코, 파키스탄, 스위스, 영국, 독일, 폴란드, 그 외에 발음하기 어려운 나라들까지. 다양한 나라만큼 다양한 의견, 다양한 수업 방식, 다양한 면허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Standing Committee of Human Rights and Peace라는 상임위원회 세션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Law of war, 전시에만 적용되는 법칙, 싸우기를 포기한 사람을 해치지 않는, 전시에만 적용되는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짧은 영상이었습니다. 뒷 좌석에 중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딸아이를 태운 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안고 달래 주고 싶은 지 연신 뒤를 돌아보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새된 울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총을 든 사람들을 잔뜩 태운 차가 아이와 아버지가 탄 차를 지나쳐 갑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결국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좋아하던 노래를 불러 주며 아이를 깨우려 애쓰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한참이 지나 애써 도착한 병원, 차를 세우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아버지는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웬일인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은 채로 망연자실합니다. 병원이 폭탄을 맞고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을 파괴하는 행위는 국제적으로 금지된 행위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비인간적이지요. 이어 우리는 전쟁에서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마주치게 될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 제가 사는 나라는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군인들은 이웃 나라에 가서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예정입니다. 정부에서는 저에게, 군인들이 생화학 무기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Premedication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몇 해가 지나,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왔습니다. 정부는 PTSD를 심하게 겪고 있는 군인들을 다시 전쟁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PTSD가 아니라 정상으로 진단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저는 지금 전쟁터에 있습니다. 제 눈앞에는 환자가 두 명 있습니다. 한 사람은 팔을 살짝 긁혔고, 다른 사람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저는 지금 머리에 총구가 겨누어 진 채로 팔이 긁힌 사람을 치료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답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한참 동안 씨름해 보았습니다. 사실, 전쟁이란 것을 겪어보지 않은 저는 대답을 할 때 그리 길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는 오히려 풀기 쉬운 법이니까요. 생각하던 대로, 옳다고 느끼는 대로.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조금 더 가까이 가져와서, 각자의 나라에서 느끼고 있는 Healthcare in Danger에 대한 예시를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환자에게 고소당하는 의사, 칼에 찔린 의사, 폐암 환자가 병원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지적하자 환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결국 사망한 의사, 총에 맞은 의사, 의사는 돈을 많이 벌어서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스위스에서 온 친구였습니다. 그 어떤 친구도 자기 나라는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말 괜찮아도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괜찮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단점은 눈에 잘 띄고 말하기 쉬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선거를 치르며, 의료 정책과 더불어 의사를 바라보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USMLE, JSMLE를 이야기하며 이 나라를, 이 사회를 떠나면 이 문제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의사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편견, 고정관념은 전 세계적입니다. 언제부터 시작했을지도 저는 감히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생각나는 모든 이유를 한 곳에 적는다 하더라도, 어딘가 빠진 게 있을 것 같은, 오래되고 무거운 색안경입니다. 이 색안경은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을 볼 때도 으레 씌워지곤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낱 인간입니다. 무릎이 늘어난 추리닝을 입고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헐레벌떡 아침에 학교로 뛰어가는 가는 한 학생입니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라는 책을 얼마 전에 한 간호사 선생님께서 써 주셨지요. 예, 간호사도, 의사도 그저 사람입니다. 어쩌면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저 조금 오지랖이 더 넓은 사람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합니다. 그리고 실은, 아주 다정하고, 섬세하고,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밤을 새우고, 밥을 굶고, 내 즐거움을 포기하더라도, 담당 환자가 건강하게 나아서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에 힘들었던 게 다 잊혀집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색안경을 언젠가 한 번쯤은, 내려놓아 주십시오.
의학교육 바람(wind)이 학생이 이끄는 바람(wish)이 되려면 2020-04-27 05:45:50
|원광의대 예과 2학년 정은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언제, 어떻게 상황이 급변할지 모르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함’은 일상 곳곳을 침범했다. 약 두 달 전 집단 및 지역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시간표대로 강의실에서 칠판을 보고 필기하던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어느새 ‘평소와 다름없이’ 모니터 앞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기존에 익숙하게 이루어졌던 강의실에서의 기초·임상의학 강의나 TBL(Team Based Learning, 팀 중심 학습)·PBL(Problem Based Learning, 문제 중심 학습)의 경우 녹화강의, 화상회의 플랫폼을 활용한 실시간 화상강의 및 토의발표로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직접 조직, 기관을 관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해부학, 조직학 등의 기초의학실습의 경우 학교에 따라 온라인 디지털 방식을 도입하거나, 대면 실습 방식과 함께 병행하기도 한다. 환자를 보고, 병원의 업무구조를 파악하며 증상 중심 학습이 이루어져야 하는 병원 임상 실습 역시 비대면 온라인 개강 후 병원 실습 재개 전까지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평가항목에 대한 동영상 학습을 진행하는 등 대면과 비대면 방식을 함께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졌던 의학교육과정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코로나19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며 의학교육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의 정형화된 의학교육이라는 호수에 돌수제비를 던진 코로나19가 가져온 의학교육의 변화는 비단 그 형식과 수단뿐만이 아니다. 학생 개인에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 역시 또 다른 코로나19 발 의학교육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 체제가 본격화되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시험 평가 횟수가 줄어들면서 기존의 대면 강의에 비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시간을 활용하여 코로나19로 인해 활성화된 웨비나(webinar) 등을 활용한 의학 외에도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와 물리적으로 강의실과 학교에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하지 못했던 활동들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녹화 강의 중심으로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의 경우, 교육과정 상 짜인 수업시간표를 꼭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수업시간표를 짜 볼 수 있다. 가령,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강의 수강 순서를 바꾸어보거나, 집중이 잘 되는 시간대에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같은 주제에 대해 설명한 다른 온라인 강의와 학교의 녹화 강의를 모니터 양쪽에 띄워 놓고, 비교해서 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으로 인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의 형태이기 때문에 학생이 생각하는 강의 진행 방식 개선 방안이나, 시도해 볼만한 방법을 보다 쉽게 제안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사례를 들자면, 필자의 경우 작년부터 화상회의 플랫폼들을 이용하면서, 동료 교육(peer education) 형태의 IFMSA(세계의대생연합)에서 주관한 역량 강화(capacity building) 온라인 교육을 수강한 적이 있다. 실시간 화상 강의 중 짧은 시간 내에 객관식 혹은 주관식 문제를 풀면 모든 사람의 답변을 집계해 바로 보여주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교육 담당자가 수강자들의 답변에 따른 맞춤 설명을 진행한 적도 있다. 또는 제한된 시간동안 낱말풀이,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종류 중 한 미션을 수행하면 다음 미션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화상교육이 진행되기도 했다. 화상회의 플랫폼은 교수와 학생 누구나 화면공유를 하고, 발표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서 개인적 사례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상호적(interactive) 방법들을 활용해 TBL, PBL과 같은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총 12개 정부 부처에서 31개 분야에 대한 생활방역 세부지침 초안이 공개되었다. 이 초안의 주요 내용은 업무, 일상, 여가의 큰 영역에서 상황과 장소별 방역 행동수칙이며, 의견 수렴과 논의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사회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확정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생활 방역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변화의 국면을 맞이한 새로운 표준, ‘뉴 노멀(new normal)’ 의학교육에 있어서도 현재는 도입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의 창의적인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생활방역 지침처럼, 학생들이 원하는 그리고 개성 있는 아이디어를 의학 교육에 녹여, 학생 개개인이 만들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뉴 노멀’ 의학교육 청사진이 그려지기를.
진심을 다하는 의사에 대해 2020-04-20 10:59:30
|강원의대 의학과 2학년 염인지| 우리 학교는 의전원에 입학할 때, 신입생들이 각자의 포부를 담아 "나는 00한 의사가 될 것이다"라는 문구를 적는다. 나는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적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막연하게 실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력이 좋아지려면 배움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은 두루뭉술하게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적었다. 그리고 의학과 2년 차인 지금은 실력을 갖출 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도 위로해줄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멋모르고 썼던 진심을 다한다는 말은 내게 더욱더 깊은 의미가 돼가고 있다. 2학년에 올라오면 의사입문이라는 과목을 가장 먼저 배운다. 본격적인 임상 이론을 배우기 전에 아주 간단한 임상 술기와 더불어 환자에 대한 예의, 환자와의 공감 교육을 받는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환자의 정서반응 이해", "적극적 경청과 공감 실습" 수업이었다. 표준화 환자를 모셔두고 의사와 환자 역할극을 통해 환자와의 소통을 연습했다. 교실 앞에 한 명의 동기와 표준화 환자분이 마주 앉았다. 학생의사 역할을 맡은 동기가 환자분께 검사 결과 위암이라는 소식을 전하자 표준화 환자는 절망하며 눈물을 보이셨다. 의사 역할을 맡은 동기는 어떻게든 치료를 잘해보자는 의지와 응원을 불어넣으려 했지만 이미 환자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의사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교실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슬픔이 감돌았다. 그제야 내가 배우는 것이 사람을 다룬다는 것을, 무미건조한 문장으로 표현됐던 하나의 증례가 한 사람의 중대한 사연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암 재발을 걱정하는 환자, 검사 예약이 잘못돼 화가 난 환자 등 여러 사례에 대해 다루었으며 소규모로 조를 나누어 모두가 역할극에 참여해볼 수 있었다. 사례 역할극이 끝나면 표준화 환자분이 우리의 대응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이야기해주셨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동기가 환자와의 공감, 환자에 대한 경청에는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환자의 입장에서 소통이 잘 안 되는 느낌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많은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모든 환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청하려는 집중력이 극대화됐던 수업에서조차 소통하기 힘들었던 것은 그만큼 환자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하려는 노력과 고찰이 평소에 부족했다는 증거였다. 이때 비로소 환자와 소통하며 마음의 위로도 건넬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을 다한다는 것은 감정적 공감뿐만 아니라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환자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 얼마 전 배운 중증복합면역결핍증(SCID)을 앓는 환자는 만 3세를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사망한다. 게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감염을 막기 위해 외부와 격리돼 좁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지내게 된다. 의사로서 우리는 환자의 수명 연장을 위해 치료 방법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사는 동안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교수님도 이 부분을 강조하셨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삶을 위해 의사로서 어떤 노력을 할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한때 나는 의사는 그저 실력이 좋으면 그만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많은 시험을 보며 힘들게 배우는 의학은 결국 사람을 향해있기 때문이다. 국가고시를 통과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가 되는 의전원/의대의 특성상, 학생일 때 그저 시험공부에만 몰두하면 의사가 됐을 때 환자와 소통할 수 없는 의사, 마음이 없는 의사가 되기에 십상이다.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은 학생인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2020-04-16 05:45:50
|대구가톨릭의대 의학과 1학년 김보현| 몇 년 전만 해도 반려동물을 데려올 때 펫샵이나 가정분양을 이용하는 것이 주된 선택지였다. 하지만 애견공장의 실태가 밝혀지면서 펫샵에서 동물을 소비하지 말고 유기동물을 입양하자는 움직임이 커졌고 이러한 맥락 안에서 나온 슬로건이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다. 그런데 지난 2일 뉴욕시가 대리모를 합법화 한만큼 이제는 이 문구를 사람에게도 적용해야 할 것 같다. 대리출산이 최근에서야 생긴 산업은 아니다. 남성의 정자를 대리모에게 주입하여 대리모의 난자와 수정되도록 하던 과거의 방식부터 온라인으로 구매된 난자와 정자를 3세계 여성의 몸에 착상시키기까지 나름의 진화를 해왔다. 그러나 ‘대리모가 윤리적인가?’, ‘대리모가 일이 될 수는 없는가?’ 등의 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대리출산의 윤리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주로 등장하는 말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열망일 뿐, 권리가 아니다. 또한 대리출산을 통해서만 해결이 되는 열망이라면 아이를 가지고 싶어한다기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를 얻고 싶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러한 욕구의 실현을 위해 타인의 신체를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보는 게 윤리적인가? 또 적절한 규제는 대리출산을 윤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대리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성의 재생산과 아이를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여기는 것이다. 여성은 젊고 정숙해야,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성별의 ‘하자 없는’ 상태여야 상품성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구도 안에서 아이는 부모의 재산으로, 여성은 이 특별한 재산을 얻게 해줄 수 있는 도구로써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재산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이며 여성의 존재가 하나의 장기(자궁)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 2017년 로마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처벌 근절에 대한 협약(CEDAW)에 대리모를 금지하도록 권고하는 절차를 포함해달라고 UN에 요청했을 때 지적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삶이라는 경이로운 선물’과 개인의 자유라는 수사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대리모는 어머니와 아이를 비인간화하며 부모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아이의 생명을 사적 재산으로 만드는 개인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로 이어질 수 없다. 대리모 옹호론자들은 대리모들이 ‘출산 노동’에 종사하고 있을 뿐이며 이를 직업으로 인정해야 양지에서의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이 출산 노동의 대가로 얻는 보수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다며 대리모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고 윤리적인 책임을 회피한다. 하지만 대가의 지급이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고, 대가를 받았다고 하여 그의 결정이 그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선택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게다가 대리모의 출산 노동은 일로 평가될 수 없다. 대리모는 일이 그의 건강에 끼치는 장기적인 영향은 연구된 바가 없으니 알지 못하고, 임신 기간 동안 생기는 수많은 변수는 각각의 사건에 보상을 상정하기 힘들 만큼 다양하다. 그리고 대리모가 일이 된다면 이들이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아이를 유산하지 않고 임신 기간 동안 몸의 변화가 크지 않으며 또다시 임신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베테랑 대리모도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베테랑 대리모가 얻는 수익이 초보자보다 많거나 이들이 대리모 산업의 정점에 서 있지는 않는다. 대리모의 일은 자기파괴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대리모 산업에서 실질적인 이익은 브로커들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것을 일로 정의할 수 없고, 정의된다 하더라도 윤리적일 수는 없다. 한국에서 대리모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도 의뢰인 본인들의 난자와 정자를 체외수정한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하도록 하면 처벌하지 않고, 2017년 11월 주네팔 한국대사관에서 인도의 대리모 불법화 이후 한국인들이 인도에서 구한 대리모를 네팔에서 출산하도록 하여 네팔 당국이 주시하고 있다고 공지한 바 있다. 게다가 요즘 해외 자본가들 사이에서는 불임이 아님에도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가지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만큼 한국이 언제까지 대리모 산업과 무관한 것처럼 있을 수는 없다. 생명에 대한 논의에서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것은 없다.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이 산업이 대리모와 아이 모두를 착취하는 비윤리적 행위라는 사회적 합의가 생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