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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침에 의식잃은 환자 목숨 구했는데 '수가 3만원'

손의식
발행날짜: 2014-07-17 11:42:54

"의사 판단·환자 중증도 무시된 수가에 자괴감·분노 느껴"

강원도의 한 동네의원에 벌에 쏘인 환자가 급히 실려왔다. 환자는 벌 알러지로 인해 호흡곤란과 의식소실이 동시에 발생한 상태. 인근에 대형병원도 없어 전원조차 쉽지 않은 상황.

K원장과 간호조무사 등 세명은 환자에게 붙어서 30분 동안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다른 환자는 신경 쓸 여력이 전혀 없었다.

급히 혈관수축제를 투여해 벌 알러지에 따른 확장된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떨어뜨린 후 기관지 확장제를 흡입하게 하려 했으나 의식소실로 그마저 쉽지 않은 상황.

어쩔 수 없이 기도삽관을 하려는데 다행히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다. 이후 처치를 통해 호흡과 혈압이 안정된 것을 확인한 이후 119를 불러 전원시키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환자분, 깨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한숨을 내쉰 K원장은 청구프로그램 수납창을 띄우고 환자에게 처치한 것을 입력하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처음의 한숨이 환자를 살렸다는 안도의 한숨이라며 두 번째 한숨은 자신의 행위에 비해 극도로 낮은 수가로 인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진찰료 1만 3750원, 피하근육내 주사 재료대 610원과 행위료 1060원, 수액제 재료대 2562원과 행위료 4420원, 처치 행위료 6090원 등 2만 8492원에 가산율 15%를 합한 급여총액은 3만 220원이 전부였다. 환자로부터 받은 본인부담금은 9000원에 불과했다.

K원장이 벌알러지로 위급한 환자를 진료한 이후 청구한 내역.<당사자의 동의 하에 게재함.>
이상의 상황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최근 실제 강원도 K원장의 사례이다.

K원장에 따르면 최근 벌에 쏘여 내원하는 환자의 비율이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봄과 여름 사이 옷이 얇고 야외활동을 하는 빈도가 높다보니 벌에 쏘일 확률도 높다는 설명이다.

개인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벌에 쏘여서 오는 환자 중 일년에 서너명은 생명에 위협을 받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K원장은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벌의 종류도 상관있고 개인적으로 어떤 물질에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알러지가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벌에 쏘였을 때 벌독 알러지(bee venom allergy)가 심한 환자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벌에 쏘일 경우 일시적으로 혈관이 확장돼 혈압이 떨어지고, 기관지 수축에 따른 호흡곤란 증세가 올 수 있으며 온몸의 혈관이 확장돼 의식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처치가 늦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

K원장은 "보통은 혈관을 수축하게 만들어 혈압을 올리고 빠른 시간에 다량의 수액을 투입함과 동시에 기관지 수축에 대해 확장제를 투입해야 한다"며 "그러나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는 흡입을 못하는 경우가 있어 시기를 놓치면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기도삽관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같이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사의 노력은 수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벌 알러지에 의해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동네의원이 할 수 있는 처치에 따른 수가는, 기관삽관까지 시도 안 될 때를 기준으로 주사료, 주사에 따른 행위료, 처치료, 수액 재료대 등이 고작"이라며 "이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 보험제도의 대표적 문제점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질환과 정도, 의사의 의학적 판단은 수가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K원장은 "행위별 수가에서는 환자의 질환과 위중 정도에 관계없이 동일한 행위에 동일한 수가가 책정돼 있다"며 "예를 들어 벌에 쏘여 생명이 위급한 환자에 대한 처치는 스테로이드, 항히스타민제, 수액주사 등인데 아토피나 알러지 피부염 환자에게도 이약이 비슷하게 투여된다. 결국 두 행위는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행위료는 같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수가에 책정에 있어서 동일행위 동일수가가 아니라 환자의 상태와 질환, 그 처치를 함에 있어 의사가 내리는 의학적 판단들을 고려해서 수가가 책정된다"며 "만일 벌 알러지에 의해 쇼크가 발생한 환자가 미국에서 진료를 받았다면 국내에서의 비용과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 환자에게 적절한 처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법률적 비용 등에 대해서도 수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K원장은 "벌은 흔히 쏘일 수 있는 것이고 환자가 의식을 갖고 내원했다가 갑자기 사망하면 의학적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가족과 보호자 등은 병원에 책임을 돌릴 수 있다"며 "이 때 발생할 수 있는 법률적 비용과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도 우리나라 수가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수가를 목숨값으로 보고 싶지는 않지만 낮은 수가에 따른 자괴감을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벌에 쏘여 생명을 잃을 뻔 환자를 살려내는데 받는 3만원을 그 사람의 목숨값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며 "환자의 목숨값에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그런 환자를 처치한 후 수납창을 띄우고 청구하다보면 의사로서 자괴감은 분명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한두번 겪는 일이 아님에도 매번 수가를 접할 때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다"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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